문제는 단지 일자리의 양이 아니라 질과 구조다. 일부 청년들은 구직 자체를 포기하고 있다. 노동시장에 진입하기보다 아예 머무르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이는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아르바이트나 중소기업 취업을 통해 얻는 소득과 각종 정부 지원금을 비교했을 때 실질적인 차이가 크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 된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동의 유인이 약해진 사회에서 근로의 가치는 자연히 흔들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최근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겹쳤다. 미·이란 간 긴장 고조는 에너지 가격과 글로벌 공급망을 자극하며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이런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 경기가 나빠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고용시장이 먼저 흔들리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이럴 때일수록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일자리는 정부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 이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의 기본 원리다. 정부가 할 일은 시장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랫동안 반대로 해왔다. 규제는 늘어났고, 기업 활동의 자율성은 제약을 받아왔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 해도 각종 인허가와 규제의 벽에 가로막히기 일쑤다. 기존 기업들 역시 노동, 세제, 환경 규제의 복합적인 부담 속에서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기업이 움츠러드는 환경에서 일자리가 늘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 물을 주지 않으면서 열매를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고전은 이미 답을 제시하고 있다. 『논어』에는 “백성이 먹을 것이 넉넉하면 예절을 안다(倉廩實而知禮節)”는 말이 있다. 이는 물질적 기반이 갖추어져야 사회 질서와 도덕이 유지된다는 뜻이다. 오늘날로 치환하면, 안정된 일자리가 있어야 사회의 건강성도 유지된다는 의미다. 또 『맹자』는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無恒産則無恒心)”고 했다. 일정한 생업이 없는 사람에게 지속적인 도덕성과 책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청년들이 노동시장을 떠나는 현상은 단순한 고용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신호일 수 있다.
따라서 해법은 분명하다.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걷어내고, 예측 가능한 정책을 통해 기업의 투자 의지를 북돋워야 한다. 노동시장 역시 경직된 구조를 유연하게 바꾸어야 한다. 기업이 사람을 뽑는 것이 부담이 아니라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정부의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최소한의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다. 그러나 그것이 노동 의욕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해서는 곤란하다. 지원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대체 소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규제를 붙잡고 기업을 옥죄는 길을 계속 갈 것인가, 아니면 과감한 전환을 통해 성장과 고용의 선순환을 복원할 것인가. 청년들이 다시 일터로 향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기업이다.
경제는 결국 사람의 문제다. 그리고 사람은 일로서 자존을 지킨다.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사회, 일하고 싶은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상식이며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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