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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텔링ESG] 유럽 윤리금융단체, "방위 투자에 ESG 표지 붙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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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소프트텔링ESG] 유럽 윤리금융단체, "방위 투자에 ESG 표지 붙이지 말라"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박경아 기자
2025-09-04 06:00:00

 EU의 국방비 지출을 '지속 가능 투자'로 분류 검토에 민간 반발

"방위비 역시 사회적 안정‧제도적 강화 위한 '지속 가능 투자'로 봐야" 

무기 산업에 '지속 가능' 딱지 논란… 윤리금융단체 "워 워싱 위험" 경고

구름 속을 비행 중인 전투기의 모습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구름 속을 비행 중인 전투기의 모습.[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코노믹데일리] 유럽연합(EU)이 국방비 지출을 ‘지속가능 투자’로 분류하는 방안을 논의하면서 거센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라는 테두리 아래 방위 산업까지 포괄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윤리금융단체와 시민사회는 강력히 반대하며 “이는 ESG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는 심각한 왜곡”이라고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가치와 안보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어찌 보면 현대 자본시장에서 매우 흥미롭고도 중대한 논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방비, ‘지속가능 투자’로 인정?

로이터 보도 등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최근 국방비 지출을 '지속가능 투자'로 분류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한 바 있습니다. 가장 최근의 논의는 지난 6월 24일~25일(이하 현지시간)까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 회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회의에서는 EU 회원국들이 국방비를 GDP의 5%로 증액하는 방안을 포함한 '헤이그 투자 계획'을 채택했으며 EU는 이를 통해 국방비 지출을 지속가능한 투자로 공식 분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앞서 3월 6일 열린 EU 정상회의에서도 국방비 지출을 ‘지속 가능한 투자’로 분류하는 방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졌습니다. 이 회의에서 EU는 국방비 지출을 증액하고 이를 지속 가능한 투자로 분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

이번 논의는 EU가 2028~2034년 예산 계획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됐습니다. 최근 유럽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갈등, NATO의 방위비 확대 요구 등 전례 없는 안보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일부 정책 당국자들은 국방 지출을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16번’, 즉 ‘평화·정의·강력한 제도 구축’과 직접적으로 연결해 해석하며 방위비 역시 사회적 안정과 제도적 강화를 위한 ‘지속 가능 투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강력한 주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유럽 내 ESG 투자 확대가 금융시장 규제와 맞물려 제도적으로 엄격하게 강화된 만큼 국방비가 ‘지속 가능 투자’로 포함된다면 막대한 글로벌 자본이 방위산업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큽니다. 이를 두고 일부 업계 관계자들과 안보 전문가들은 “안보 없이는 지속 가능성도 없다”며 국방비의 ESG 분류를 적극 옹호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옌스 스톨텐베르그 전 NATO 사무총장은 "일부 투자자들은 방위산업이 비윤리적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지만 동맹국과 자유를 방어하기 위해 무기를 생산하는 것은 결코 비윤리적이지 않다"며 "방위산업 없이는 방어도, 억지력도, 안보도 존재할 수 없다"고 역설하며 힘을 싣기도 했습니다.

◆윤리금융단체의 강력 반발

그러나 윤리금융단체와 사회책임투자 진영은 이러한 움직임에 즉각적이고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글로벌 윤리금융 네트워크인 GABV(Global Alliance for Banking on Values)를 비롯한 주요 단체들은 EU 입법자들에게 공식 서한을 보내 방위비 지출을 ESG 범주에서 철저히 배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러시아가 개발한 단거리 탄도 미사일SRBM 체계 이스칸데르Iskander사진게티이미지뱅크
러시아가 개발한 단거리 탄도 미사일(SRBM) 체계 이스칸데르(Iskander)[사진=게티이미지뱅크]

GABV는 2024년 2월 2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러한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혔습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무기 산업이 본질적으로 파괴와 폭력을 수반하며 이를 '지속 가능한 투자'로 분류하는 것은 심각한 왜곡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워 워싱(war-washing)'이라는 표현을 전면에 내세우며 무기와 군비 지출을 ESG란 긍정적 이미지를 이용해 포장하는 행위가 ESG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강도 높게 강조했습니다. ‘워 워싱’이란 기업이나 기관이 무기와 군비 지출을 마치 친환경적이거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ESG 활동인 것처럼 교묘하게 포장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또한 GABV는 지난 7월 22일 발표한 성명에서 EU의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무기' 정의가 너무 좁고 관대하다고 지적하며 국제 인도법 기준에 엄격히 부합하는 무기 범주를 포함하도록 규제 강화를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무기 사용이 국제 인도법 기준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명확히 하여 군비 지출이 ESG 투자로 무분별하게 분류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방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틴 로너 GABV 사무총장 역시 "평화는 긍정적인 사회적·환경적 변화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절대적인 전제 조건"이라며 "금융권은 무기 생산과 거래를 부추기는 행위를 멈추고 전쟁이 아닌 평화에서 이익을 얻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러한 GABV의 강경한 입장은 EU가 추진하는 국방비의 ESG 범주 포함 시도가 ESG의 본래 목적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그동안 사회적 책임과 지속 가능성의 상징으로 기능해온 ESG의 도덕적 신뢰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깊은 우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들은 거듭 “무기와 군수 산업은 본질적으로 파괴와 폭력, 인명 살상을 수반한다”며 이를 ‘사회책임 투자’로 둔갑시키고 분류하는 것은 심각한 왜곡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러시아의 해안 순시선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러시아의 해안 순시선들[사진=게티이미지뱅크]

◆ESG 본래의 목적과 충돌

이들 윤리금융단체들은 국방비의 ESG 편입이 단순한 산업 분류상의 문제가 아니라 ESG 프레임워크 전체의 근간과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심각한 도전이라고 말합니다. ‘ESG 라벨’은 자본시장에서 사회적 책임과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상징으로 기능해왔는데 파괴를 전제로 하는 군비 확대가 그 범주에 들어간다면 투자자와 시민사회 모두 극심한 가치관의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ESG 투자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인간과 생태계의 복지 증진에 있다고 강조합니다. 환경 파괴를 줄이고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며 투명한 지배구조를 확립하는 것이 ESG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입니다. 하지만 군비 확대는 필연적으로 전쟁과 갈등을 촉진할 가능성이 크며 이는 돌이킬 수 없는 환경 파괴나 대규모 인권 침해와 직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방위비를 ESG 범주에 넣으려는 시도는 ESG의 근본 목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인 입장들입니다. 유럽의 지속가능 투자 가이드라인을 이끄는 유럽 지속가능투자포럼(Eurosif) 등도 무기 산업의 특수성을 지적하며 일찌감치 우려를 표명하고 나선 바 있습니다.

또한 ESG 투자는 기후 변화 대응, 주거 안정, 교육, 보건과 같은 공공 복지 영역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윤리금융단체들은 “지속 가능 금융은 평화적이고 포용적인 사회를 뒷받침하는 든든한 토대가 되어야 하며 군비 확대는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인류를 몰아가는 것”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계기로 현대전의 새로운 양상을 선보인 전투용 트론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계기로 현대전의 새로운 양상을 선보인 전투용 트론.[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신뢰성 위기에 놓인 ESG…향후 전망과 시사점

이번 논란은 ESG 프레임워크의 신뢰성과 그 경계가 과연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중대한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ESG라는 개념이 본래의 순수한 사회적 가치를 유지하지 못하고 당장의 정치적 필요나 국가 안보라는 경제적 이해에 따라 왜곡된다면 글로벌 투자자들 사이에서 ESG 무용론이나 회의론이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이미 일부 기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ESG 라벨이 정치적 목적이나 로비에 따라 남용되고 있다”는 뼈아픈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향후 EU가 어떤 최종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ESG의 미래 방향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국방비 지출이 ESG로 공식 분류된다면 이는 유럽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시장 전체에서 방위산업 투자의 새로운 전례이자 면죄부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윤리금융단체들의 주장이 힘을 얻어 방산 편입이 무산된다면 ESG 라벨은 그 신뢰성과 본래 취지를 더욱 엄격하게 강화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 논란은 결국 자본시장을 향한 하나의 묵직한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ESG의 본질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 국가 안보라는 현실적 위협 앞에 무기를 지속 가능성의 이름 아래 포함시킬 것인지 아니면 ESG를 인간과 환경 복지를 위한 순수한 평화적 투자 기준으로 끝까지 지켜낼 것인지는 앞으로의 치열한 논의와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여기서 내린 잘못된 선택이 그동안 쌓아온 ESG의 도덕적 힘을 약화시키고 자본시장의 사회적 신뢰를 돌이킬 수 없이 훼손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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