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회장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백악관 행사에 참석해 오는 2028년까지 총 210억 달러(약 31조원)를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투자 범위는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전기차 공장 확대, 루이지애나 제철소 건설, 물류·철강 공급망 강화, 미래 에너지 인프라 구축 등을 포괄한다. 이 가운데 산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대목은 '미래 에너지 인프라' 분야가 쏘아 올릴 수소 생태계 확장의 파급력이다.
수소 생태계는 단순히 수소차를 몇 대 더 파는 개념이 아니다. 수소의 생산-운송-충전-활용-재활용까지 연결되는 전주기 산업 구조를 의미한다. 누가 먼저 인프라를 깔고 표준을 설계하느냐가 향후 수소 산업의 주도권을 좌우한다. 현대차가 미국에서의 실증 및 상용화에 사활을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대차는 이미 조지아주 공장 내 부품 물류에 수소전기트럭을 상용 투입하고 있으며, 캘리포니아 항만에는 친환경 상용트럭 도입 프로젝트(NorCAL ZERO)의 일환으로 수소트럭 30대를 공급해 상업 운행 중이다. 해당 지역의 이동식 수소충전소 구축 및 인프라 실증 프로젝트 역시 현대차그룹이 직접 챙기고 있다.
현대차의 수소전담 브랜드인 ‘HTWO’는 수소 생산부터 활용까지 전 주기를 포괄하는 통합 밸류체인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단순한 차량 판매가 아니라 충전소 설치, 연료전지 시스템, 유지보수 서비스, 금융 상품까지 하나로 묶은 'B2B 수소 모빌리티 솔루션'을 구축 중이다. 이를 기반으로 오는 2030년까지 북미 지역에서 누적 수소 상용차 1만2000대를 판매하겠다는 구체적 목표도 제시했다.
그룹 내부의 제도적 변화도 이러한 전략 전환을 뒷받침한다. 지난달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현대차는 정관 사업목적에 ‘수소사업 및 관련사업’을 명시하며 수소의 위상을 격상시켰다. 사업보고서를 통해서도 “HTWO 브랜드를 중심으로 진정한 엔드 투 엔드(End-to-End) 솔루션을 제공하는 수소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천명했다.
국내 자동차 학계도 현대차의 이 같은 행보를 '블루오션의 룰 세터(Rule Setter)'가 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 전기차(BEV) 치킨게임에 매몰된 사이 현대차는 아직 절대 강자가 없는 수소 상용차 시장의 진입장벽을 선제적으로 높이고 있는 것"이라며 "한 번 수소 충전 및 물류 인프라 표준이 깔리면 후발주자들은 꼼짝없이 현대차의 플랫폼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막강한 구조적 해자를 갖추게 된다"고 분석했다.
특히 현대차그룹이 수소 생태계 구축의 최적지로 미국을 낙점한 것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막대한 혜택과 직결된다. 미국은 IRA를 통해 청정 수소 1kg 생산 시 최대 3달러의 세액공제(PTC)를 제공하며 연방 차원에서 대규모 지역 수소 허브 구축을 밀어붙이고 있다.
국내 자동차 산업 정책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前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은 막대한 보조금을 통해 초기 수소 인프라 구축의 가장 큰 걸림돌인 '비용 문제'를 상쇄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시장"이라며 "현대차가 미국 정부의 정책적 수요와 자금을 지렛대 삼아 상용화 사업성을 검증한 뒤 이를 글로벌 표준 모델로 역수출하는 고도의 전략을 택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대차그룹의 종착지는 결국 단순한 완성차 제조사를 넘어선 '에너지 모빌라이저'다. 수소라는 틈새시장을 거대한 생태계로 구조화해 나가는 정의선 회장의 승부수가 글로벌 모빌리티 산업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뒤흔들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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