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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GA 재본격화… 미국 조선 재건 누가 이끄나
[사진=ChatGPT] [경제일보] 미국 조선업 재건을 둘러싼 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의 경쟁이 다시 본격화하고 있다. 중동 정세 불안과 통상 불확실성으로 한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한미 조선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가 미국 정부의 정보요청(RFI)을 계기로 실무 검토 단계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RFI로 본격화된 한미 조선 협력 11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국방부와 해군은 국내 조선사들에 전투함과 급유함 건조·설계 역량을 묻는 RFI를 보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전투함 관련 역량을 미 국방부에 전달했고, 미 해군의 중형급 급유함 RFI에는 삼성중공업까지 포함해 국내 조선 3사가 회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RFI는 곧바로 발주를 뜻하지 않는다. 다만 미국 정부가 한국 조선사의 건조 실적, 설계 인력, 연간 생산능력, 현지 협력 구도 등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이재명 대통령에게 “미국 군함 10척을 빠르게 건조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는 발언과 맞물리면서 마스가가 구호를 넘어 실제 사업 검토 단계로 진입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마스가는 미국 조선업 재건을 목표로 한 한미 제조업·안보 협력 프로젝트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해 4월 ‘미국 해양 지배력 회복’ 행정명령을 통해 조선업과 해양 산업, 관련 인력 기반을 되살리는 것이 국가안보와 경제 번영을 위한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한국 조선업에 손을 내미는 배경에는 중국과의 조선 역량 격차가 있다. 미국은 해군력과 상선 건조 능력을 동시에 끌어올려야 하지만, 자체 조선소만으로는 단기간에 생산능력을 회복하기 어렵다. 한국 조선사들이 보유한 설계·건조·공정관리 역량이 미국 조선 재건의 현실적인 보완재로 떠오른 이유다. 조선 3사 전략 경쟁 본격화 가장 앞서 있는 곳은 한화오션이다. 한화오션은 한화시스템과 함께 미국 필라델피아의 필리조선소를 인수하며 현지 거점을 확보했다. 한화는 2024년 필리조선소 인수에 1억 달러를 투자했고, 이후 시설과 인력, 생산능력 개선을 위한 추가 투자도 진행해왔다. 한화오션의 강점은 ‘미국 안에 있는 조선소’와 ‘한국의 함정 건조 역량’을 함께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화는 미 해군 함정 발주와 관련한 법·제도 개정 흐름을 주시하면서, VARD, 한화필리조선소, 한화디펜스USA와의 협업을 기반으로 미 해군 차세대 군수지원함(NGLS) 개념설계 사업에 참여하는 등 주요 프로젝트에 공동으로 뛰어들고 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한국의 건조 역량과 미국 현지 생산 거점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비용·납기·정책 리스크 측면에서 경쟁력 있는 사업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미국 해양방산 시장에 선제적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다만 현재까지 한화오션의 미 함정 MRO는 군수지원함을 중심으로 진행돼왔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현재는 관련 규제 내에서 수행이 가능한 MRO 사업을 다각도로 검토 및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현지 생산 기반을 확보한 만큼 향후 법·제도 변화에 따라 MRO와 신조 사업의 확장 가능성을 함께 열어두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HD현대중공업은 미국 방산 조선사와의 협력망을 넓히는 방식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2024년 미국 해군보급체계사령부와 함정정비협약(MSRA)을 체결해 향후 5년간 미 해군과 해상수송사령부 소속 함정 MRO 사업 입찰 자격을 확보했고, 이후 미 7함대 소속 4만1000톤급 화물보급함 ‘앨런 셰퍼드’함과 ‘세사르 차베즈’함 정비 사업을 잇달아 수주했다. 지난해 4월에는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인 헌팅턴 잉걸스와 선박 생산성 향상 및 첨단 조선 기술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양사는 함정 건조 비용과 납기 개선, 조선소 디지털화, 공정 자동화, 로봇·AI 도입, 생산인력 교육, 기자재 공급망 참여 등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GE에어로스페이스, L3해리스, 안두릴, ABS 등과의 협력까지 감안하면 HD현대중공업은 미국 현지 조선소를 직접 보유한 한화오션과 달리 미국 방산·기술·선급·기자재 기업을 촘촘히 묶는 네트워크형 전략에 가깝다. 삼성중공업은 급유함과 군수지원함 분야에서 미국 시장 접점을 넓히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제너럴다이내믹스 산하 미국 조선사 나스코와 차세대 군수지원함 기본설계 사업에 참여했고, 미국 비거 마린 그룹과는 미 해군 MRO 사업 협력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LNG선과 해양플랜트, 자동화 조선소 기술에서 강점을 가진 만큼 전투함보다 지원함과 상선 성격의 군수 분야에서 역할을 찾는 구도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삼성중공업은 전투함 사업을 해온 회사는 아니기 때문에 전투함보다는 급유함이나 군수지원함 쪽에서 역할을 찾고 있다”며 “미국에서는 군수지원함이 전투함과 달리 상선 성격에 가까운 영역으로 분류돼 삼성중공업도 접근 가능한 분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조선사들이 보유한 자동화·로봇 기술도 미국 조선업의 인력 부족 문제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들 세 기업의 전략은 다르다. 한화오션은 필리조선소와 MRO 경험을 앞세운 ‘현지 거점형’이다. HD현대중공업은 미 해군 MRO 실적과 헌팅턴 잉걸스 협력을 기반으로 한 ‘방산 네트워크형’이다. 삼성중공업은 전투함보다 급유함·군수지원함에 초점을 맞춘 ‘비전투 지원함형’ 전략에 가깝다. 결국 관건은 누가 미국의 제도 장벽을 먼저 넘고, 한국식 생산 시스템을 미국 조선 재건 과정에 실제로 이식하느냐다. 마스가가 여는 조선 생태계 확장 수혜는 조선소에만 머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마스가가 본격화되면 엔진, 전장, 통신체계, 친환경 기자재, 선박관리, MRO 서비스 등으로 파급 효과가 확산될 수 있다. 한화엔진, 한화시스템, HD현대마린솔루션, HD현대마린엔진 등 한화·HD현대 계열 밸류체인뿐 아니라 국내 기자재업체에도 기회가 열릴 수 있다. 다만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미국 함정 건조는 법·제도와 보안, 원산지, 노조, 인력 양성, 현지 조달망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RFI가 실제 발주로 이어지려면 미국 내 건조 규정 완화, 현지 조선소 투자, 한국 인력·기술 투입 방식에 대한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 단순히 “한국이 빨리 지을 수 있다”는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결국 마스가의 본질은 조선소 투자 경쟁이 아니다. 미국 안보 공급망 재편 속에 한국 조선 생태계가 얼마나 깊이 편입될 수 있느냐의 문제다. 한화오션은 미국 안에서 생산 거점을 확보했고, HD현대중공업은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와 협력망을 구축했으며, 삼성중공업은 지원함·MRO 시장에서 접점을 넓히고 있다. 미국 조선 재건의 첫 실전 무대에서 조선 3사의 승부가 시작됐다.
2026-07-11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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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맡길 수 있나"…美, K-조선에 첫 정보요청
[경제일보] 미국 정부가 한국 조선사에 함정 건조·설계 역량을 묻는 정보요청(RFI·Request for Information)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한미 조선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 논의가 투자 구상 단계를 넘어 미 국방부와 해군의 실무 검토로 옮겨가는 흐름이다. 8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미 국방부와 해군은 최근 국내 조선사들에 각각 전투함과 중형급 급유함 관련 RFI를 보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한미 조선협력 논의가 본격화한 가운데 미국 측이 RFI 형식으로 국내 조선소의 함정 역량을 공식 타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번 RFI는 최근 한미 정상 간 대화가 공개된 직후 나왔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군함 10척을 빠르게 건조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서는 정상 차원의 관심 표명이 미 국방부와 해군의 실무 검토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RFI는 발주가 확정된 입찰 절차는 아니다. 미 연방조달규정(FAR)에 따르면 RFI는 정부가 당장 계약을 체결하려는 단계가 아니라 가격, 납기, 시장 정보, 수행 역량 등을 파악하기 위한 사전 절차다. 다만 미국 정부가 어떤 업체와 어떤 방식으로 협력할 수 있는지 공식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국내 특수선 양강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지난달 각사의 전투함 설계·건조 역량을 미 국방부에 회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해군의 중형급 급유함 RFI에는 두 회사에 삼성중공업까지 더해 국내 조선 3사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절차가 주목받는 것은 한미 조선협력의 무게중심이 상선과 유지·보수·정비(MRO)를 넘어 함정 건조 가능성으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오션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리조선소 인수를 통해 현지 생산 거점을 확보했다. HD현대중공업은 미국 헌팅턴 잉걸스와, 삼성중공업은 제너럴다이내믹스 나스코와 각각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 조선업의 생산성과 납기 경쟁력이 필요하다. 미 회계감사원(GAO)은 미 해군 함정 건조 사업이 장기간 예산 초과와 일정 지연을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 의회예산국(CBO)도 해군과 해안경비대의 여러 조선 프로그램이 비용 증가와 납기 지연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해군력 확대에 대응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동맹 조선소 활용 방안을 검토할 유인이 커진 셈이다. 다만 실제 수주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미국법 10 U.S.C. §8679는 미군 함정과 선체·상부구조물의 주요 구성품을 외국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가안보상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예외를 허용할 수 있지만, 의회 통보 등 절차가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미국 함정 협력이 당장 국내 조선소의 완성함 건조로 이어지기보다 MRO와 생산기술 협력부터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 해군 MRO는 본토로 복귀하지 않고 인도·태평양 지역에 전개된 7함대 함정을 한반도 인근에서 정비하는 개념”이라며 “한국 조선소가 일정 역할을 맡을 수 있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 조선업은 인력 부족 문제가 큰 만큼 한국의 자동화 설비와 로봇 기반 생산기술이 현지 조선소에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국내 조선소의 건조 슬롯도 한정돼 있어 미국 물량을 모두 한국에서 지어주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대미 투자 패키지 가운데 1500억 달러를 조선 협력에 투입하는 방안을 논의해왔다. 마스가 프로젝트에는 미국 조선소 신설·현대화, 조선 인력 양성, 미 해군 MRO, 공동 건조 등이 포함된다. 이번 RFI는 이 같은 협력 구상이 실제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확인하는 첫 관문이라는 점에서 국내 조선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대미 투자 패키지 가운데 1500억 달러를 조선 협력에 투입하는 방안을 논의해왔다. 마스가 프로젝트에는 미국 조선소 신설·현대화, 조선 인력 양성, 미 해군 MRO, 공동 건조 등이 포함된다. 이번 RFI는 이 같은 협력 구상이 실제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확인하는 첫 관문이라는 점에서 국내 조선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26-07-08 17: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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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오션, 길고 긴 싸움 끝났다…KDDX 선도함 건조 최종 확정
[경제일보] 2년 넘게 이어진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의 주도권 경쟁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한화오션이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최종 선정되면서 장기간 표류했던 KDDX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이번 선정은 단순한 선도함 1척 건조를 넘어 향후 한국 해군의 차세대 전력과 국내 특수선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화오션은 전날 방위사업청으로부터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최종 선정됐음을 통보받았다고 공시했다. 지난달 11일 업체 선정평가에서 경쟁사인 HD현대중공업을 근소한 차이로 앞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잠정 선정된 이후 HD현대중공업의 이의신청 절차까지 모두 마무리되면서 최종 선정이 확정됐다. 계약금액과 계약기간은 향후 정부와 협상을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KDDX는 총사업비 약 7조8000억원을 투입해 한국 해군의 차세대 구축함 6척을 국내 기술로 건조하는 대형 국책사업이다. 이 가운데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비는 약 8820억원 규모다. 기존 구축함보다 향상된 탐지·지휘·전투 능력을 갖춘 첫 한국형 차세대 구축함으로, 통합전기추진체계(IEPS)와 첨단 전투체계, 자동화 기술 등이 집약되는 국내 함정 산업의 대표 프로젝트로 꼽힌다. 이번 사업은 원래 지난해 사업자 선정이 완료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기본설계 단계에서 불거진 군사기밀 유출 사건과 공정성 논란, 법적 공방이 이어지면서 사업이 2년 이상 지연됐다. 방위사업청은 올해 경쟁입찰을 다시 진행했고, 현장실사와 기술·가격 평가를 거쳐 지난달 한화오션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이후 HD현대중공업이 제기한 이의신청을 검토한 끝에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한화오션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최종 확정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결정으로 국내 최대 수상함 사업이 정상 궤도에 오르게 됐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KDDX는 단순한 함정 건조 사업이 아니라 향후 한국 해군의 핵심 전력 확보와 국내 함정 기술 발전을 동시에 이끌 사업으로 꼽힌다. 사업 지연이 길어질수록 전력화 일정은 물론 국내 특수선 산업 경쟁력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한화오션은 이번 사업을 위해 10여 년간 관련 기술 개발을 이어왔다. 대우조선해양 시절인 2012년 KDDX 개념설계를 수행하며 통합전기추진체계와 통합마스트, 통합네트워크, 병력절감 자동화 기술 등 핵심 기반 기술을 확보했다. 이후 신개념 함정 설계와 함정 생존성 향상 기술 등에 대한 자체 연구개발을 지속하며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준비해 왔다. 지난해에는 자체 기본설계한 '차세대 전략수상함'으로 영국 로이드 선급(Lloyd's Register)의 기본설계 인증(AiP)을 획득했다. 차세대 전략수상함에는 유·무인 복합전투체계와 레이저 무기, 자폭드론 대응 다층 방어체계, 자동화·무인화 기술 등이 적용돼 미래 해군 작전환경을 고려한 기술력이 반영됐다. 이번 선정은 한화오션의 특수선 사업 경쟁력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도 전망된다. 선도함 건조 경험은 향후 후속 함정 사업뿐 아니라 해외 함정 수출 과정에서 중요한 실적(레퍼런스)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화오션은 최근 캐나다와 중동, 동남아시아 등을 중심으로 해외 함정 수출 확대를 추진하고 있어 KDDX 사업 수행 경험이 글로벌 시장 경쟁력 강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현재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완료된 단계로, 계약금액과 계약기간 등 세부 계약 조건은 정부와의 협상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한화오션은 최종 계약이 체결되는 시점에 관련 내용을 다시 공시할 예정이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데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첨단 함정 기술력과 사업 수행 역량을 바탕으로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된 만큼 정부와 협상에 성실히 임해 사업 정상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2026-07-02 11: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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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학교 통합, 개혁보다 먼저 설득이 필요하다
[경제일보] 군 개혁은 필요하다. 병역자원은 줄고 전쟁의 양상은 인공지능·무인체계·우주·사이버 전장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육·해·공군이 따로 움직이는 시대도 지났다. 합동성은 더 이상 구호가 아니라 생존 조건이다. 그러나 군 개혁이 필요하다는 말과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통합해야 한다는 결론은 같은 말이 아니다. 더구나 그 결론을 입시를 앞둔 수험생에게 갑자기 들이밀 수 있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정부가 이르면 2028학년도부터 육·해·공군 사관생도를 통합 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국방부는 ‘국군사관학교’를 신설해 생도를 함께 뽑고 1·2학년에는 공통교육을 실시한 뒤 3·4학년에는 군별 특화 교육을 받게 하는 구상을 추진 중이다. 이르면 기본계획 발표, 공청회, 법령 정비, 국군사관학교 설치법 제정 절차를 거쳐 현재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첫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방부는 선발 시기가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지만 입시 현장은 이미 흔들리고 있다. 사관학교 입시는 일반 대학 입시와 다르다. 필기시험, 체력검정, 면접, 신체검사, 군별 적성 준비가 함께 맞물린다. 학생들은 고교 1~2학년 때부터 육사·해사·공사 중 어느 학교에 지원할지 정하고 준비한다. 그런데 고3을 앞두고 선발 구조 자체가 바뀔 수 있다면 이는 단순한 제도 변경이 아니라 진로 경로의 재설계다. 대입 사전예고제 취지와도 충돌한다. 국방부는 사관학교가 특수대학이어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설명하지만 법적 예외가 곧 정책적 정당성은 아니다. 입시는 조문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예측 가능성과 신뢰로 굴러간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사관학교 통합 필요성을 설명하며 “사관학교 입학 성적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학교 규모를 키워 인재 양성의 그릇을 키워야 한다는 논리다. 또 군 합동성은 사관학교 시절부터 함께 배우고 훈련하는 과정에서 체질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사관학교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면 먼저 물어야 할 것은 학교의 간판이 아니다. 왜 청년들이 장교의 길을 덜 선택하느냐다. 초급간부 처우, 장기복무 전망, 군 조직문화, 잦은 전출과 생활 여건, 민간 일자리와의 기회비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 원인을 놔둔 채 학교를 합치면 우수 인재가 더 모인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그릇을 키운다고 물이 저절로 차는 것은 아니다. 샘을 살려야 물이 고인다. 합동성 논리도 더 정교해야 한다. 현대전에서 육·해·공군의 합동작전 능력이 중요하다는 데 이견은 없다. 문제는 합동성을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키우느냐다. 육군 장교는 지상작전과 부대운용을, 해군 장교는 함정과 해양작전을, 공군 장교는 항공작전과 공중우세 개념을 깊이 익혀야 한다. 합동성은 전문성을 없애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전문성을 가진 각 군이 공동의 작전개념 아래 결합할 때 생긴다. 세계 최강의 합동전력을 운용하는 미국도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분리해 유지한다. 반대로 통합형 체계를 둔 나라들도 있지만 병력 규모와 역사적 배경이 한국과 다르다. 해외 사례는 이름표가 아니라 조건을 비교해야 한다. 정치적 의심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사관학교 통합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12·3 계엄 사태 이후 군 통제와 정치적 중립, 특정 출신 중심의 군 인사 구조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졌다. 군이 민주적 통제를 벗어나거나 특정 인맥과 출신 문화에 갇힌다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 그러나 제도개혁이 특정 학교 지우기, 특정 출신 배제, 정치적 상징 조치로 비치면 개혁의 정당성은 오히려 약해진다. 최근 육·해·공군사관학교 총동창회가 ‘졸속 통합 반대’ 집단행동에 나선 것도 이런 불신의 연장선에 있다. 국방부의 소통 방식도 문제다. 사관학교 통합은 교육제도이자 군 인사제도이며 지역 문제이자 청년 진로 문제다. 육사의 서울 노원, 해사의 진해, 공사의 청주, 거론되는 대전 자운대와 전남 장성까지 모두 지역사회와 연결돼 있다. 학교가 어디로 가느냐, 1·2학년 공통교육을 어디서 하느냐, 기존 학교의 역사와 시설은 어떻게 할 것이냐, 각 군 정체성은 어떻게 보존할 것이냐가 모두 쟁점이다. 그런데 당국의 설명은 ‘합동성 강화’와 ‘인재 양성의 그릇’에 머문다. 국민이 묻는 것은 원론이 아니라 설계도다. 향후 파장도 작지 않다. 첫째, 입시 현장의 혼란이다. 2028학년도 적용 가능성이 열려 있는 한 현재 고2 학생들은 불확실성 속에서 준비해야 한다. 둘째, 군 내부 갈등이다. 육·해·공군의 교육철학과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다. 셋째, 정치권 공방이다. 여권은 군 개혁과 합동성 강화를 말하고, 야권은 졸속 추진과 ‘육사 지우기’를 공격할 가능성이 크다. 넷째, 지역 갈등이다. 통합 사관학교 위치와 기존 학교 활용 방안은 지역경제와 상징성 문제로 번질 수 있다. 다섯째, 장교 충원 구조 전반의 재검토 요구다. 사관학교 출신 장교가 전체 장교 양성의 일부에 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학군장교·학사장교·3사관학교 등 더 넓은 초급장교 양성체계까지 함께 봐야 한다. <손자병법>은 ‘병자, 국지대사’라고 했다. 군사란 나라의 큰일이라는 뜻이다. 큰일은 큰 절차를 필요로 한다. 국가 안보를 다루는 일일수록 속도보다 신뢰가 중요하다. 전장에서 빠른 결심은 미덕일 수 있지만 제도를 바꾸는 국정에서는 빠른 결심만으로 부족하다. 더 많이 설명하고 더 많이 듣고 더 정확히 설계해야 한다. 사관학교 통합을 무조건 금기시할 필요는 없다. 병역자원 감소와 전장환경 변화 속에서 장교 양성체계 개편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각 군 사관학교의 중복 교육을 줄이고 공통 안보·과학기술·AI·우주·사이버 교육을 강화하는 방향도 검토할 수 있다. 합동성 교육 확대도 필요하다. 다만 그 방식이 반드시 학교 통합이어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공동 교과 확대, 3군 생도 합동훈련 정례화, 합참·연합작전 중심 교육 강화 등 대안은 많다. 정부가 정말 사관학교 개혁을 성공시키고 싶다면 순서를 바꿔야 한다. 먼저 장교 양성체계 전반의 진단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사관학교 지원율과 합격선 변화, 중도 이탈률, 장기복무율, 초급장교 충원난, 교육성과를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그다음 통합안과 대안을 비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적용 시기를 정해야 한다. 특히 2028학년도 적용은 신중해야 한다. 현재 준비 중인 수험생 세대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충분한 유예기간을 두는 것이 상식이다. 개혁은 명분으로 시작하지만 절차로 완성된다. 사관학교는 단순한 대학이 아니다. 장교를 길러내는 국가의 공적 장치다. 그 문을 어떻게 열고, 어디에서 가르치며, 어떤 정신과 전문성을 심을 것인지는 대한민국 안보의 다음 세대를 결정하는 문제다. 국방부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통합 선발 일정표를 내미는 것이 아니라 수험생과 군,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서를 내놓는 것이다. 나라의 장교를 뽑는 제도라면 그 출발도 장교답게 정직하고 신중해야 한다.
2026-07-02 11: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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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서 방산·조선·우주 '산업복합체'로…한화, M&A로 재계 5위 '점프'
[경제일보] 한화는 한국 재계에서 변신의 폭이 가장 큰 그룹 중 하나다. 출발은 화약이었다. 1952년 한국화약으로 시작한 한화는 전후 복구에 필요한 산업용 화약을 국산화하며 성장했다. 도로, 터널, 공장과 항만을 짓던 시대의 뒤편에 한화의 화약이 있었다. 위험한 물질을 다루는 기술, 대형 산업 현장을 뒷받침하는 공급 능력, 국가 기간산업과 맞닿은 제조 감각이 한화의 초기 DNA였다. 약 70년의 시간이 지나 한화의 무대는 크게 달라졌다. 화약은 로켓 추진체와 정밀무기로 이어졌고, 방산은 자주포와 다연장로켓, 항공엔진과 레이더로 넓어졌다. 조선은 액화천연가스 운반선·특수선, 미 해군 정비사업으로 확장됐다. 태양광은 미국 현지 생산망을 통해 에너지 안보 산업으로 바뀌었다. 한화는 이제 방산·조선·우주·에너지를 묶어 산업 플랫폼을 만드는 그룹으로 거듭났다. 올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시대상기업집단을 지정하면서 한화는 재계 순위 7위에서 5위로 올라섰다. 삼성 방산 계열 인수, 대우조선해양 인수, KAI 지분 확대 움직임이 누적된 결과다. 한화는 회사를 사서 덩치만 키우는 방식이 아니라 사들인 회사를 기존 사업과 연결해 새로운 산업 지도를 그리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M&A로 체급 바꾼 한화식 성장법 한화 DNA의 핵심은 인수합병(M&A)을 통한 체급 변화다. 결정적 전환점은 2015년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 인수였다. 당시 삼성그룹이 방산·화학 계열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한화가 이를 받아들였다. 시장에서는 부담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거래는 한화 방산의 판을 바꾼 승부수가 됐다. 삼성테크윈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삼성탈레스는 한화시스템의 축으로 이어졌다. 항공엔진, 방산전자, 레이더, 지휘통제, 정밀무기라는 가치사슬이 한화 안에서 연결되기 시작했다. 2023년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두 번째 체급 변화였다. 한화는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 한화오션으로 새출발시켰다. 한화 계열 5개사는 약 2조원을 투입해 한화오션 지분 49.3%를 확보했다. 조선은 한화에 낯선 산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방산·에너지와 맞닿아 있다. LNG 운반선은 에너지 운송이고, 특수선은 해양 방산이며, 해양플랜트는 대형 엔지니어링이다. 한화는 조선을 별도 산업이 아니라 방산과 에너지를 잇는 플랫폼으로 본 셈이다. 최근 한화가 KAI 지분 확대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화는 올해 말까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지분을 그룹 합산 12% 이상으로 높일 예정이다. KAI는 국내 유일의 완제 항공기 개발·제조 기업이자 위성·항공 전투체계 역량을 가진 기업이다. 이에 한화의 KAI 지분 확대는 항공기, 위성, 엔진, 레이더, 발사체를 묶는 '한국형 항공우주 체계'를 구상하는 포석으로 읽힌다. 한화 방산의 성장세도 이와 같은 전략을 뒷받침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9 자주포와 천무 다연장로켓을 앞세워 유럽과 중동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올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노르웨이에 장거리 포병체계와 로켓을 공급하는 대형 계약을 따냈다. 유럽 안보 불안과 각국의 재무장 흐름은 한국 방산에 기회가 됐고, 한화는 빠른 납기와 검증된 양산체계로 그 기회를 잡고 있다. 방산·조선·우주로 이어지는 산업 플랫폼 한화의 강점은 단품 무기를 넘어 체계를 팔 수 있다는 데 있다. 자주포, 다연장로켓, 항공엔진, 레이더, 함정, 위성, 정비, 금융 조달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면 한화는 한국형 방산 플랫폼 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다. 한화오션은 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상화력과 엔진, 한화시스템은 눈과 두뇌, KAI 지분 확대는 하늘과 우주를 향한 연결고리를 맡는 구조다. 이 조합이 실제 시너지로 이어지면 한화는 한국 재계에서도 드문 산업 복합체가 된다. 태양광 사업도 한화 DNA를 설명하는 또 다른 축이다. 한화큐셀은 미국 조지아주 카터스빌 공장에서 태양광 셀 생산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해당 공장은 잉곳·웨이퍼·셀·모듈을 한곳에서 만드는 미국 내 수직계열화 공장이다. 방산과 태양광은 달라 보이지만, 한화가 읽는 문법은 비슷하다. 공급망을 장악하고, 현지 생산을 깔고, 국가 전략산업의 흐름에 올라타는 방식이다. 방산에서는 안보가, 태양광에서는 에너지 안보가 시장을 움직인다. 한화의 방향은 뚜렷하다. 한화는 소비자에게 친숙한 브랜드라기보다 국가 인프라와 안보, 에너지, 해양, 우주를 잇는 산업재 그룹으로 자신을 다시 규정하고 있다. 삼성은 '초격차', 현대차는 '제조와 공급망', SK는 '포트폴리오 전환'을 말한다면, 한화는 산업의 뼈대를 사들여 다시 조립하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재계 관계자는 "한화 DNA의 본질은 화약 그 자체가 아니라 위험을 통제하고, 큰 산업을 버티며, 필요한 기업을 사들여 새 체계를 만드는 능력"이라며 "지금의 한화는 가장 한화다운 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이어 "화약회사에서 출발한 기업이 방산·조선·우주라는 폭발력 있는 산업으로 돌아왔다"며 "체계와 신뢰, 안전과 기술로 증명돼야 하고, 이는 재계 5위로 올라선 한화가 마주한 다음 시험대"라고 덧붙였다. [아주경제 2026년 07월 02일자 13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7-02 08: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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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의 귀환, 에너지 안보와 책임의 균형을 세울 때다
문명이 화려해질수록 인간은 때때로 가장 기본적인 것을 잊는다. 전기가 그렇다. 우리는 스마트폰과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의 불빛을 당연한 듯 여기지만, 그 모든 문명의 밑바닥에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라는 가장 오래되고도 근본적인 조건이 놓여 있다. 전기가 흔들리면 산업이 흔들리고, 산업이 흔들리면 국가의 경쟁력과 국민의 삶도 함께 흔들린다. 정부가 경북 영덕에 대형 원전 2기, 부산 기장에 국내 첫 소형모듈원전(SMR) 1기 건설 용지를 확정한 것은 그런 점에서 단순한 발전소 건설 계획이 아니다. 신규 원전 부지 선정이 14년 만이라는 사실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에너지 문제를 얼마나 오랫동안 이념과 공포,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 묶어 두었는지를 보여준다. 이제야 비로소 국가 에너지 전략의 저울추를 현실 쪽으로 돌려놓으려는 늦었지만 필요한 결단이라 할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는 전력의 시대다. AI 데이터센터, 첨단 반도체 공장, 배터리 산업, 클라우드 서비스는 막대한 전기를 먹고 자란다. 데이터가 새로운 석유라면 전기는 그 데이터를 움직이는 혈액이다. 안정적인 전력 없이 AI 강국도, 제조업 강국도, 첨단산업의 미래도 없다. 에너지는 더 이상 단순한 산업 정책이 아니라 안보 그 자체다. 국제 정세가 흔들리고 에너지 공급망이 불안정해질수록 자국 안에서 안정적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은 국가 생존의 핵심 조건이 된다. 이번 결정에서 주목할 대목은 지역 주민들의 높은 찬성률이다. 영덕 주민 찬성률이 86%에 달했다는 사실은 과거의 이른바 ‘원전 포비아’를 넘어선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말해 준다. 원전은 한때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막연한 공포만으로 국가의 미래를 설계할 수는 없다. 주민들은 이제 위험과 편익, 지역 경제와 국가적 필요를 함께 따져 보기 시작했다. 이는 감정의 정치에서 상식의 정치로 이동하는 중요한 신호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서 시작되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데서 시작된다”고 했다. 에너지 정책도 마찬가지다. 거창한 구호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필요한 한 걸음을 내딛는 일이다. 원전 부지 확정은 그 첫걸음이다. 그러나 첫걸음이 옳다고 해서 모든 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큰 결단일수록 그 뒤에는 더 큰 책임이 따라야 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다. 원전을 짓겠다고 하면서 사용후핵연료의 영구처분장 문제를 뒤로 미루는 것은 책임 있는 국가 운영이 아니다. 지금의 임시 저장 방식은 언젠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오늘의 전기를 쓰기 위해 내일의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원전 확대가 진정한 국가 전략이 되려면 영구처분장 마련을 위한 사회적 합의와 법적·제도적 장치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공자는 “군자는 의를 생각하고 소인은 이익을 생각한다”고 했다. 원전의 경제성과 효율성만 앞세우고 폐기물 처리라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의로운 정책이 아니다. 정부는 부지 선정과 발전소 건설만 발표할 것이 아니라,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안전하게 관리하고 최종 처분할 것인지 국민 앞에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원전 정책의 신뢰는 안전 기술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책임 있는 정보 공개와 장기 계획, 그리고 주민과의 정직한 소통에서 나온다. 또 하나의 원칙은 균형이다. 원전이 필요하다고 해서 신재생에너지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태양광과 풍력, 수소와 에너지저장장치 역시 미래 에너지 체계의 중요한 축이다. 원전은 안정적인 기저전원으로서 산업을 떠받치고, 신재생에너지는 탄소중립과 지속 가능성의 길을 넓혀야 한다. 어느 하나만을 절대화하는 순간 에너지 정책은 다시 이념의 함정에 빠진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원전 부지 선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안전성 검증, 주민 지원, 지역 경제와의 상생, 폐기물 처리, 전력망 확충까지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특히 지역 주민의 높은 찬성률을 단순한 정책 명분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찬성한 주민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신뢰와 보상이 따라야 하고, 우려하는 국민들에게는 과학적이고 정직한 설명이 제공되어야 한다. 에너지는 국가의 기본이다. 기본이 흔들리면 화려한 문명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AI 시대의 대한민국이 세계와 경쟁하려면 안정적인 전력 기반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그 기반은 안전과 책임, 균형이라는 세 기둥 위에 세워져야 한다. 이번 원전 부지 확정은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우리는 이제 원전 공포를 넘어 현실을 보아야 한다. 동시에 원전 낙관에 취해 미래 세대의 부담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참된 국정은 오늘의 필요와 내일의 책임을 함께 살피는 데 있다. 정부가 원칙을 지키되 섬세하게 조정하고, 국민이 공포가 아니라 상식으로 판단할 때 대한민국의 에너지 안보는 비로소 단단한 토대 위에 설 것이다.
2026-06-20 10: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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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오션, KDDX 유리한 고지 선점…해양방산 주도권 잡는다
[경제일보] 한화오션이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면서 국내 해양방산 시장의 주도권 경쟁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단순히 7조8000억원 규모 사업에 다가서는 것을 넘어 차세대 구축함 시장과 해외 함정 수출 시장까지 노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2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방위사업청은 전날 KDDX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을 위한 평가를 마무리하고 결과를 각 사에 통보했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점수 차는 1점에도 미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KDDX 사업은 7조8000억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KDDX는 국내 기술로 6000톤급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사업이다. 국산 전투체계와 레이더, 무장체계 등을 적용하는 첫 한국형 구축함으로 해군 전력 현대화의 핵심 사업으로 꼽힌다. 방산업계에서는 KDDX 사업의 진짜 가치를 단순 수주 금액보다 향후 파생될 후속 사업과 수출 경쟁력 확보에서 찾고 있다. 이번 평가의 최대 변수는 과거 KDDX 자료 유출 사건에 따른 보안 감점이었다. 약 14년 전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이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이 수행한 KDDX 개념설계 자료 등을 촬영·유출한 혐의로 8명은 2022년 11월, 나머지 1명은 2023년 12월 유죄가 확정됐다. 해당 유죄 판결에 따라 HD현대중공업은 방사청의 보안사고 감점 기준이 적용되는 올해 12월까지 평가 과정에서 1.2점 감점을 받게 됐다. 업계에서는 이번 평가에서 양사 간 점수 차가 1점 미만에 그친 만큼 해당 감점이 사실상 승부를 가른 변수로 보고 있다. 선도함 건조 경험이 최대 자산…한화 방산 퍼즐이 완성된다 KDDX는 이번 선도함 건조로 끝나는 사업이 아니다. 조선업계와 방산업계는 선도함 사업자를 사실상 해당 함정 체계의 원 개발사로 평가한다. 선도함을 설계하고 건조한 업체가 함정 설계 데이터와 체계통합 경험을 확보하게 되기 때문이다. 해군 함정은 건조 이후에도 수십 년간 운용되며 레이더 교체, 무장체계 업그레이드, 전투체계 개선 등 지속적인 성능개량이 이뤄진다. 이 때문에 선도함 건조 경험은 후속함 건조와 개량 사업에서 중요한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KDDX 사업은 한화오션 단독 수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구축함 사업 특성상 선체 건조뿐 아니라 전투체계와 레이더, 무장체계 등 다양한 방산 기술이 집약되기 때문이다. 현재 한화그룹은 함정 플랫폼을 담당하는 한화오션을 비롯해 전투체계와 함정용 레이더를 개발하는 한화시스템, 함포와 유도무기·엔진 등을 생산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보유하고 있다. KDDX는 함정 플랫폼과 전투체계, 무장체계가 동시에 적용되는 사업인 만큼 그룹 내 계열사 간 시너지를 확인할 수 있는 첫 대형 프로젝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한화시스템은 KDDX에 탑재되는 전투체계 개발에 참여하고 있으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역시 함정 무장체계와 추진체계 분야에서 사업 역량을 확보하고 있다. KDDX 사업이 본격화되면 그룹 계열사 간 협업 기회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방산업계에서는 최근 글로벌 함정 시장이 개별 장비보다 함정 플랫폼과 전투체계, 무장체계를 패키지로 제안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미국과 유럽 주요 방산기업들은 함정 건조부터 전투체계, 유지보수까지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며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한화오션 역시 KDDX 사업 수행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해외 함정 수출 사업에서 그룹 차원의 종합 방산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KDDX 사업이 갖는 진짜 의미 KDDX가 갖는 진짜 의미는 글로벌 함정 시장 진출 기반 확보다. 국내 함정 사업은 해군 발주 물량이 제한적인 반면 해외 시장은 중동과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조선사들도 최근 함정 수출과 군함 유지·보수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함정 수출 시장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자국 해군 운용 실적이다. 실제 해군이 운용하는 함정은 성능과 안정성이 검증된 플랫폼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한국 해군의 차세대 주력 구축함으로 채택되는 KDDX는 향후 해외 수주전에서 한화오션의 핵심 레퍼런스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한화오션은 최근 미국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 진출에 나서는 한편 캐나다 잠수함 사업(CPSP) 참여 의사를 밝히는 등 해외 해양방산 시장 공략을 확대하고 있다. KDDX 사업 경험은 향후 해외 수주전에서 기술력과 사업 수행 능력을 입증하는 핵심 레퍼런스로 활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동과 동남아시아 국가들 역시 해군 전력 증강에 나서면서 구축함과 호위함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업계에서는 KDDX 사업을 단순한 국내 함정 수주가 아닌 향후 글로벌 해양방산 시장 경쟁력을 좌우할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선도함 건조 경험과 해군 운용 실적을 확보할 경우 후속 함정 수출과 군함 정비 사업 확대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KDDX가 '7조8000억원 사업'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 이유다. 한화오션은 KDDX 사업을 통해 대한민국 해군 전력 강화와 국내 방산 생태계 육성에 기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화오션은 "KDDX가 핵심 국산화 개발장비 9종이 탑재되는 국산 구축함인 만큼 완벽한 체계통합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과 품질을 구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사업 진행 절차에 따라 방위사업청과 긴밀히 협의해 지연된 사업 일정을 만회하고 해군 전력 유지에 차질이 없도록 함정 설계·건조 역량을 총동원하겠다"고 했다. KDDX는 단순한 차세대 구축함 사업을 넘어 향후 국내 해양방산 산업의 판도를 가를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한화오션이 최종 계약 체결까지 마무리할 경우 국내 구축함 시장 주도권 확보는 물론 해외 함정 수출 확대를 위한 발판도 마련하게 된다.
2026-06-12 16:4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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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클라우드, '국방 AI' 전장으로…KCCS 겨냥한 소버린 AI 승부수
[경제일보] 네이버클라우드가 국방 인공지능 전환(AX)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단순한 AI 모델 공급을 넘어 데이터센터, 폐쇄망 클라우드, 전장 엣지, 현장 엔지니어링을 묶은 ‘풀스택 국방 AI’ 전략을 제시하며 차세대 지휘통제체계 시장을 정조준했다. 네이버클라우드는 지난 10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InLEX 대한민국 국방산업발전대전’에서 ‘소버린 AI 기반 국방 AX 발전 전략 세미나’를 열고 국방 AI 구현 방안을 공개했다. 회사는 텍스트, 음성, 영상, 지도 데이터를 하나의 작전 상황으로 통합 이해하는 옴니모달 AI 모델과 현장 엔지니어를 전진 배치하는 FDE(Forward Deployed Engineer) 체계를 핵심 축으로 제시했다. 이번 발표의 무게는 ‘국방 AI 주권’에 있다. 국방 데이터는 보안과 통제권이 핵심인 만큼 해외 AI 모델이나 외부 클라우드에 그대로 의존하기 어렵다. 네이버클라우드는 자체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인프라, AI 모델, 운영 플랫폼을 결합해 군 내부 데이터가 통제된 환경에서 학습·추론될 수 있는 구조를 내세우고 있다. 유경범 네이버클라우드 상무는 하이퍼클로바X 옴니모달 모델이 다양한 전장 데이터를 통합된 상황으로 이해하고 전장 환경의 변화 가능성을 지휘관이 활용할 수 있는 인텔리전스로 전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국방 AI를 단순 행정 질의응답이나 문서 요약이 아니라 작전 판단을 보조하는 체계로 확장하려는 구상이다. 국방 전용 AI 데이터센터 구상도 핵심이다. 네이버클라우드는 중앙 데이터센터에서 합동참모본부와 육·해·공군 데이터를 학습해 AI 모델을 고도화하고 함정·전방부대·이동형 지휘소 등에는 엣지 데이터센터를 배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통신이 끊기거나 제한되는 상황에서도 현장 단위 AI 운용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정낙수 네이버클라우드 상무는 구축형 클라우드와 온톨로지 기반 지식체계를 강조했다. 육·해·공군과 해병대에 흩어진 데이터를 단순 저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미와 관계를 구조화해야 군사 의사결정 지원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작전명령, 센서 정보, 지리 데이터, 교리와 절차를 AI가 추론 가능한 형태로 연결하는 것이 국방 AI의 실제 경쟁력이 된다는 얘기다. 네이버클라우드의 행보는 국방 AX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 주도권을 잡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국방부는 국방AI센터를 중심으로 AI 과학기술 강군 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국방 생성형 AI ‘GeDAI’와 국방 AI 데이터센터 실증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AI 모델을 실제 군 업무와 작전 체계에 붙이려면 폐쇄망 클라우드, GPU 인프라, 보안 인증, 지휘통제체계 연동이 함께 필요하다. 경쟁도 빨라지고 있다. SK텔레콤은 국방부와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의 국방 분야 활용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국방 특화 AI 모델 개발과 실증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SDS 등 IT서비스 기업들도 지휘통제체계와 클라우드 기반 국방 인프라 수요를 겨냥하고 있다. 국방 AX 시장은 모델 기업, 클라우드 사업자, SI 기업, 방산 기업이 역할을 나누는 컨소시엄형 경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시장 시선은 한국형 합동지휘통제체계(KCCS)와 국방 AI 데이터센터 사업으로 향한다. KCCS는 전장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지휘관의 결심과 작전 수행을 지원하는 핵심 체계로 꼽힌다. 클라우드, AI, 엣지 컴퓨팅, 통신망이 결합되면 감시정찰부터 상황 인식, 표적 식별, 지휘결심 지원까지 전장 데이터 운용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남은 문제는 기술 시연과 실제 전력화 사이의 간극이다. 국방 AI는 민간 서비스처럼 빠르게 배포하고 개선하기 어렵다. 보안성, 설명 가능성, 책임 소재, 교전 규칙과의 정합성, 군 작전 절차와의 연동이 모두 검증돼야 한다. 특히 지휘관의 판단을 보조하는 AI일수록 결과보다 추론 경로와 통제 가능성이 중요하다. 한편 네이버클라우드의 국방 AI 전략은 소버린 AI가 더 이상 산업용 구호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장은 데이터가 가장 민감하고 판단의 대가가 가장 무거운 현장이다. AI가 전장 의사결정을 돕는 시대가 온다면 기술의 우위만으로는 부족하다. 국가가 데이터를 통제하고 군이 신뢰할 수 있으며 현장에서 작동하는 체계로 증명될 때 국방 AX의 무게도 비로소 확인될 것이다.
2026-06-11 17: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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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추천제, 참여민주주의의 실험이 되려면
[경제일보] 정부가 장·차관급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 인사 과정에 국민 참여를 확대하는 이른바 ‘국민추천제’를 추진하면서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 목소리를 인사에 반영하겠다는 취지 자체를 마다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고위 공직 인사가 특정 학연과 지연, 관료 집단과 정치권의 폐쇄적 네트워크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비판을 감안하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선한 취지의 제도라도 국가 운영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국민추천제 역시 예외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국민 주권에 있다. 국민이 국가 운영에 더 많이 참여하고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민주주의 발전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이 직접 인재를 발굴하고 추천하는 제도는 정치와 행정의 문턱을 낮추고, 기존 인사 시스템의 폐쇄성을 완화하는 긍정적 의미를 가진다. 그동안 공직 사회는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진 인사로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아왔다. 특정 집단 출신이 요직을 독점하거나 정권에 대한 충성도가 능력보다 우선시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인사 불신이 깊어진 것도 사실이다. 국민추천제가 숨은 인재를 발굴하고 인재 등용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된다면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곧바로 대중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참여가 확대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잘못 설계된 참여 제도는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낳기도 한다. 국민추천제를 둘러싼 가장 큰 우려는 전문성과 책임성이 희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장관과 차관은 단순한 명예직이 아니다. 국가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며 수십만 명의 공직 조직을 이끄는 자리다. 경제 위기와 외교 갈등, 사회적 재난과 같은 중대한 상황에서 판단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따라서 해당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와 풍부한 경험, 조직 운영 능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국민 추천이 대중적 인지도나 호감도 중심으로 흐를 경우 정책 역량보다 유명세가 우선되는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는 이유만으로 국가 운영을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조직화된 여론의 개입 가능성이다. 오늘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여론 형성의 강력한 도구가 되었지만 동시에 여론 조작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특정 정치 세력이나 이익집단이 조직적으로 후보를 추천하거나 반대하는 일이 벌어질 경우 국민추천제는 민의 수렴이 아니라 세력 경쟁의 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 실제로 온라인 공간에서는 소수의 적극적 참여자가 다수의 의견인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국민추천제가 이런 왜곡된 여론에 휘둘린다면 제도의 신뢰성은 출범과 동시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전문성이 핵심 가치인 분야일수록 더욱 신중해야 한다. 의사와 판사, 검사, 장관 등은 인기보다 역량이 우선되어야 하는 직책이다. 국민의 선호와 전문적 자질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탁월한 능력을 갖춘 인물이 있고, 반대로 높은 인지도를 가졌지만 공직 수행 능력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 국가 시스템은 인기보다 실력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원칙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국민추천제는 최종 인사를 결정하는 절차가 아니라 인재를 발굴하는 통로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은 다양한 후보를 추천하고 정부는 그 가운데서 엄격한 검증을 거쳐 적임자를 선발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추천은 개방적으로 하되 검증은 더욱 엄정하게 해야 한다. 도덕성은 물론 전문성, 리더십, 정책 역량에 대한 다층적 심사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국민추천제는 참여민주주의 확대라는 시대적 요구와 전문 행정의 안정성이라는 현실적 필요가 만나는 지점에 서 있다. 제도의 성공 여부는 국민 참여의 규모가 아니라 검증 시스템의 완성도에 달려 있다. 개방은 필요하지만 무분별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참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책임과 전문성, 그리고 공정성이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건강한 제도가 된다. 정부는 국민추천제가 인기투표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정교한 설계와 철저한 검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 주권을 강화하면서도 국가 역량을 높이는 길이다.
2026-06-11 11:5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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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당한 국민통합위원장의 고언에 귀 기울여야
[경제일보]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이석연 위원장이 청와대 행정관으로부터 경고성 이메일을 받았다며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했다. 국정과제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대통령 보고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중대한 사안임을 엄중히 고지한다”는 표현이 쓰였다는 것이다. 대통령 직속 부총리급 위원장에게 실무 행정관이 이런 문구를 보낸 것은 공직사회 상식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대통령실은 경위를 신속히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물론 대통령 보고와 국정과제 자료 제출은 중요하다. 그러나 행정에도 절차와 품격이 있다. 이 위원장은 최근 국민통합위와 본인의 행보에 불필요하게 관여하고 제동을 거는 움직임이 반복됐다고 주장했다. 행정관 개인의 과잉인지, 윗선의 기류가 반영된 것인지는 확인돼야 한다. 다만 사실이라면 출범 1년을 앞둔 이재명 정부의 공직 기강과 참모 문화에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이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법제처장을 지낸 보수 성향 인사다. 그럼에도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 후보 진영에 합류했고, 현 정부 출범 이후 국민통합위원장을 맡았다. 이는 이재명 정부가 ‘내 편만의 정부’가 아니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목소리까지 듣겠다는 상징적 인사였다. 국민통합은 비슷한 사람끼리 악수하는 행사가 아니다. 불편한 사람의 말을 제도 안으로 들이는 일이다. 그런 이 위원장이 여권의 정책 추진 방식에 쓴소리를 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는 법 왜곡죄와 사법개혁 3법 추진 방식에 대해 위헌 소지와 숙의 부족을 지적했다. 최근 대통령 자문회의·위원회 간담회에서도 “집단사고의 함정을 조심해야 한다”, “토론과 반대 의견 개진 없이 내려진 결정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귀에 거슬릴 수 있지만 정권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한 말이다. 어느 정부든 지지율이 높고 선거 승리가 예상될 때 가장 위험하다. 국정 동력은 강해지지만 내부 견제는 약해진다. 참모들은 대통령의 생각을 앞질러 읽고, 관료들은 반론보다 순응을 택한다. 여당은 속도를 미덕으로 삼고, 반대 의견은 개혁의 발목 잡기로 몰기 쉽다. 그러나 숙의 없는 속도는 개혁이 아니라 독주가 될 수 있다. 국민통합위원회의 존재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대통령이 놓칠 수 있는 민심, 여당이 외면하는 반론, 관료사회가 말하지 못하는 위험을 전달해야 한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반복하는 기관이라면 국민통합위원회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통합의 본질은 동원과 일사불란이 아니라 조정과 경청이다. 이재명 정부가 성공하려면 보수 인사를 장식품처럼 써서는 안 된다. 통합의 상징으로 영입했다가 막상 불편한 말을 하면 거리를 두는 방식은 곤란하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사람은 박수치는 참모만이 아니다. 대통령의 판단이 빗나갈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이번 이메일 논란은 단순한 말투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실이 자문기구를 협력 파트너가 아니라 하급 집행기관처럼 여기는 문화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공직사회에서 절차와 예우는 행정 질서를 지탱하는 기본이다. 그것이 무너지면 권한은 쉽게 오만으로 흐른다. <논어>에는 “군자는 화이부동하고, 소인은 동이불화한다”는 말이 있다. 군자는 서로 다르더라도 조화를 이루지만, 소인은 겉으로 같아 보여도 속으로 화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통합은 모두가 같은 말을 하는 상태가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공통의 규칙 안에서 조화를 찾는 과정이다. 대통령실은 이메일 작성 경위와 지시 라인, 국민통합위와의 소통 과정에 부당한 압박이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단순한 문구 실수라면 사과와 재발 방지로 바로잡아야 하고, 윗선의 의중이 반영됐다면 더 엄중한 조치가 필요하다. 자문기구의 독립성과 직언 기능도 보장해야 한다. 국민통합은 선거 때 필요한 수사가 아니다. 나라를 운영할 때는 지지층의 열광보다 반대편의 우려를 듣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이석연 위원장의 고언은 여권에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야말로 통합의 출발점이다. 이재명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 모두의 정부가 되려 한다면 지금 귀 기울여야 할 말은 칭찬이 아니라 경고다.
2026-05-22 09: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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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우주, 다른 승부… 한화 '안보 우주' vs 스페이스X '민간 우주'
[경제일보] 우주는 하나지만, 기업들이 그리는 청사진은 다르다. 특히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와 김동관 부회장이 이끄는 한화그룹의 우주를 미래 성장축으로 한 발 빠른 행보에 관심이 모아진다. 두 기업이 겨냥하는 시장과 축적해 온 산업 자산의 결은 확연히 다르다. 스페이스X가 전 세계 소비자를 겨냥한 ‘민간 우주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면, 한화는 발사체와 위성, 해양안보를 묶는 ‘안보 우주 기업’에 방점을 찍고 있다. 스페이스X가 우주를 통해 시장을 연결한다면, 한화는 안보를 연결하는 셈이다. ‘로켓 회사’ 넘어 거대 통신 플랫폼으로 진화한 스페이스X 최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결정은 스페이스X의 지향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스페이스X는 에코스타의 주파수 매각 승인을 통해 스타링크 단말 간 직접통신 서비스용 65MHz 대역을 170억 달러에 확보했다. 이는 스페이스X가 더 이상 단순한 로켓 발사나 위성 인터넷 사업자에 머물지 않음을 시사한다. 저궤도 위성망과 지상 이동통신망을 결합해, 기지국 없이도 전 세계 휴대전화를 우주망에 직접 연결하는 거대한 통신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파괴력의 원천은 팰컨9 로켓의 1단부 재사용 기술을 통한 획기적인 비용 절감과 사업의 수직계열화에 있다. 우주로 쏘아 올리는 발사체 제조 능력과 우주 공간에서 궤도 위 통신망을 운영하며 서비스를 판매하는 능력을 동시에 갖췄다는 점이 스페이스X의 진정한 경쟁력이다. 발사체 자립과 방산의 융합… 한화의 ‘한국형 안보 우주’ 한화의 길은 다른 궤도를 그린다. 한화그룹은 ‘스페이스허브’를 통해 발사체, 위성, 우주 탐사 역량을 통합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한국판 스페이스X’를 좇는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한화가 보유하고 있는 산업 자산은 민간 소비자를 위한 인터넷망보다는 군 위성통신, 감시정찰, 지상 및 해양 방산 체계와 더 강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전환점은 누리호 4차 발사였다. 한화는 누리호 제작 및 조립을 총괄하며 단순 부품 공급자를 넘어 체계종합기업으로 도약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함께 차세대 발사체(KSLV-Ⅲ) 개발도 주도하고 2032년 달 착륙선 발사를 목표로 하고 있는 등 국가 우주 수송 능력 확보라는 장기 프로젝트의 중심에 섰다. 한화의 강점은 단일 로켓 기술에 국한되지 않는다. 발사체 및 항공엔진 기술(한화에어로스페이스)과 지휘통제·위성통신(한화시스템), 함정·잠수함 등 해양방산(한화오션)이 결합하며 육·해·공을 우주로 잇는 거대한 방산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최근 한화시스템이 프랑스‧영국계 위성사업자 유텔셋 지분 5.4%를 전량 매각한 것 역시, 글로벌 민간 통신 가입자 유치 경쟁에 뛰어들기보다는 자사의 강점인 군 위성통신 및 안보 인프라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인프라가 된 우주, 새롭게 재편되는 글로벌 전장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와 같은 선택의 당위성을 명확히 설명한다. 전쟁 이후 위성통신과 상업 위성영상, 드론 운용, 전장 데이터 연결은 현대전의 핵심 인프라가 됐다. 일례로 지난해 7월 스타링크 장애가 우크라이나 군 통신과 드론 운용에 영향을 준 바 있다. 이는 상업용 위성영상이 병사, 드론, 지휘소를 실시간으로 잇는 핵심 전장 인프라로 격상됐고, 민간 위성망조차 전쟁이 발발하면 정찰과 타격을 위한 안보 인프라로 전환되는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독일 연방군은 오는 2029년까지 자체 위성망 구축을 검토 중이고, 중국은 저궤도 위성망을 차세대 6G 통신의 핵심 인프라로 삼고 대규모 주파수 및 궤도 자원 선점에 나서는 등 주요 국가들의 발걸음도 한층 빨라지고 있다. 한화의 승부처, K-방산과 해양 안보의 결합 우주 산업 전문가들은 한화가 단기간에 스페이스X의 길을 그대로 걷는 것은 무리라고 입을 모은다. 발사 빈도나 민간 위성 수요, 글로벌 가입자 기반 등에서 한국은 아직 후발 주자이기 때문이다. 한화가 주력해야 할 승부처는 막연한 ‘한국판 스타링크’가 아닌 ‘한국형 안보 우주 생태계’의 구축이다. 우리 군과 동맹국이 필요로 하는 저궤도 군 통신, 정찰위성, 발사체 자립, 장거리 정밀타격 체계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전략이 유효하다. 특히 해상에서 움직이는 전력을 위성으로 감시하고 표적 정보를 갱신하는 현대전의 양상을 고려할 때, 안보 우주와 해양 방산의 시너지는 필수적이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 수주에 나선 한화오션의 행보 역시 이 같은 큰 그림의 연장선에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우주 경쟁이 단순한 발사체 기술 경쟁을 넘어 주파수, 통신 주권, 전장 데이터 지배력을 다투는 싸움으로 확전된 양상”이라며 “스페이스X가 거대한 내수 시장과 벤처 자본을 바탕으로 민간 우주 플랫폼의 글로벌 표준을 만들고 있다면, 한화는 K-방산 특유의 빠른 제조 역량과 동맹국의 안보 수요를 결합해 ‘안보 우주의 표준’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2026-05-21 10: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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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정상회담은 우리에게 이념적 구호가 아닌 국익 중심의 실용적인 국가 전략요구
[경제일보] 미·중 정상회담이 다시 세계 질서의 향방을 흔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번 베이징 회담에서 협력과 공존을 강조했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패권 경쟁의 냉혹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웃으며 손을 맞잡았지만 대만 문제와 기술 패권, 공급망과 군사안보를 둘러싼 충돌의 불씨는 전혀 꺼지지 않았다. 이번 회담은 화해 선언이라기보다 ‘충돌을 관리하기 위한 휴전’에 가깝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외교와 경제 전략의 방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냉정하게 봐야 할 것은 미·중 갈등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계 최강 패권국인 미국과 급부상한 중국의 경쟁은 구조적 충돌이다. 시진핑 주석이 다시 꺼내 든 ‘투키디데스의 함정’ 역시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미국 중심 국제질서 속에서 중국은 더 이상 주변국이 아니라 대등한 강국으로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중국의 기술·군사·경제적 팽창을 견제하지 않을 수 없다. 양국은 갈등하면서도 공존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긴밀히 연결된 대표적인 국가다. 어느 한쪽만 선택하는 단순한 이분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과거처럼 ‘전략적 모호성’만으로 버티기에도 국제 정세는 너무 급변하고 있다. 이제는 원칙 있는 실용외교가 필요하다. 우선 안보의 기본축은 흔들림 없이 유지해야 한다. 북핵 위협과 동북아 안보 현실 속에서 한미동맹은 여전히 대한민국 생존의 핵심 기반이다. 미국과의 안보 협력을 약화시키는 선택은 국가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긴장이 커지는 상황에서 우리 역시 경제와 해상 물류 측면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와 국제 규범이라는 가치 역시 분명히 지켜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며 반도체, 배터리, 화학, 소비재 산업에서 거대한 시장이다. 최근 미·중 갈등 속에서 공급망 재편의 반사이익을 누린 측면도 있지만,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감정적 반중 기조나 정치적 접근만으로는 국익을 지킬 수 없다. 중국과는 경제협력은 확대하되 기술과 안보 분야에서는 철저히 국익 중심으로 대응하는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공급망과 수출 시장 다변화다. 미·중 관계가 잠시 완화됐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된다. 언제든 다시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기업과 정부는 특정 국가 의존도를 줄이고 동남아, 인도, 중동, 유럽 등으로 시장을 넓혀야 한다. 에너지·광물·반도체 소재 공급망 역시 국가 차원의 전략 산업으로 관리해야 한다. 경제안보가 곧 국가안보인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외교 역시 보다 능동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제 한국은 단순히 미·중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국가가 아니라 국제질서 변화 속에서 실리를 만들어내는 전략 국가가 돼야 한다.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협력하고, 위험 요소에는 단호히 대응하는 유연성과 원칙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미·중 정상회담은 세계가 협력과 대립이 공존하는 복합 질서로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강대국들은 자국 이익을 위해 손을 잡기도 하고 등을 돌리기도 한다. 결국 살아남는 국가는 감정이 아니라 냉철한 현실 인식과 전략적 판단을 가진 나라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도 이념적 구호가 아니라 국익 중심의 치밀하고 실용적인 국가 전략이다.
2026-05-15 07:4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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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정상회담, 패권보다 세계 안정과 평화의 지혜 모아야
[경제일보] 9년 만에 성사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은 국제사회에 적지 않은 의미를 남겼다. 135분 동안 이어진 이번 회담은 미·중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대신 일정 수준의 관리와 공존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미·이란 전쟁 이후 국제 유가 급등과 공급망 불안, 세계 경제 침체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두 초강대국 정상이 직접 마주 앉아 대화를 이어갔다는 사실 자체가 세계 시장과 국제사회에는 하나의 안도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중국 시진핑 주석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직접 언급하며 미국과의 공존 필요성을 강조한 점이다. 신흥 강대국과 기존 패권국이 충돌로 치닫는 역사의 악순환을 피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현재 국제 질서가 직면한 가장 현실적인 위기이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은 경제·안보·기술 분야에서 첨예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동시에 세계 경제와 공급망, 에너지 질서의 중심축이라는 점에서 어느 한쪽의 붕괴나 충돌은 곧 세계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전과는 다소 다른 태도를 보였다. 과거처럼 중국을 정면으로 압박하기보다는 협력과 관계 안정에 무게를 두는 모습을 드러냈다. 시 주석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평가하고, 미국 기업인들을 대거 동행시켜 경제 협력 의지를 강조한 것은 미국 역시 중국과의 완전한 대결보다는 관리 가능한 경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특히 미·이란 전쟁의 장기화 가능성과 미국 내 물가 상승, 에너지 가격 불안은 트럼프 행정부로서도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무한정 감당하기 어려운 요인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이 마냥 낙관적인 신호만을 남긴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대만 문제를 둘러싼 중국의 강경한 입장이 다시 한번 분명하게 확인됐다. 시 주석은 대만 문제를 “중·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규정하며, 잘못 처리할 경우 양국 충돌 가능성까지 직접 언급했다. 이는 중국이 대만 문제를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이익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대만해협의 긴장은 여전히 동아시아와 세계 안보의 가장 위험한 화약고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는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아쉬운 점은 세계가 주목했던 미·이란 전쟁과 관련해 구체적인 합의나 공동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양국 정상이 중동 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는 하지만, 휴전이나 종전을 위한 실질적 공조 방안이 제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세계가 가장 절실히 바라는 것은 패권 경쟁의 승패가 아니라 전쟁의 종식과 국제 질서의 안정이다. 중동의 불안은 단순히 한 지역의 분쟁에 그치지 않는다. 에너지 가격 폭등과 물류 차질, 금융시장 불안으로 이어져 전 세계 시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모두 이제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양국은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세계 최강을 다투고 있지만, 동시에 세계 평화와 경제 안정을 책임져야 할 가장 큰 책무도 지니고 있다. 자국의 국익만을 앞세운 무한 경쟁은 결국 세계 경제를 더 깊은 불안 속으로 밀어 넣을 뿐이다. 패권을 향한 과도한 집착은 갈등을 키우고 국제사회의 분열을 심화시킬 위험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절제와 책임의 리더십이다. 미국은 패권 유지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협력 질서를 존중해야 하며, 중국 역시 확대된 영향력에 걸맞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특히 두 나라는 중동 전쟁의 조기 종식과 에너지 시장 안정, 글로벌 공급망 회복을 위해 실질적인 협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세계가 두 초강대국에 기대하는 역할이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분명 갈등 관리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대화만으로 평화가 저절로 오지는 않는다. 진정한 시험대는 앞으로다. 두 나라가 경쟁 속에서도 국제 질서의 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협력 원칙을 지켜낼 수 있을지, 그리고 세계 시민들의 불안과 고통을 덜어줄 책임 있는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 국제사회는 지켜보고 있다. 강대국의 진정한 위대함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힘에 있지 않다. 전쟁의 위험을 줄이고 세계 평화를 지켜내는 지혜에 있다. 미국과 중국이 이번 회담을 계기로 패권 경쟁을 넘어 인류 공동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책임 있는 길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2026-05-14 18:2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