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35건
-
-
바다에서 시작해 식탁으로 이어졌다…동원그룹, 한국 식문화 흐름을 바꾸다
[경제일보] 한때 참치캔은 명절 선물세트 한쪽에 들어 있는 상품에 가까웠다. 지금은 집 냉장고와 캠핑 가방, 편의점 삼각김밥 속까지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다. 동원그룹은 이 흐름을 만든 기업 가운데 하나다. 원양어업 회사로 출발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한국 식문화와 소비 흐름 자체를 바꾸는 기업으로 영역을 넓혀 왔다. 동원그룹의 출발은 바다였다. 창업주 김재철 회장은 원양어업 사업에 뛰어들며 회사를 키우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 경제는 산업화 초기 단계였고 해외 자원 확보와 식량 산업 확대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던 시기였다. 원양어업은 단순 어업이 아니었다. 먼 바다로 나가 장기간 조업을 이어 가야 했고 냉동과 물류 시스템까지 함께 구축해야 했다. 동원은 이 과정에서 수산업 기반과 유통 경험을 함께 축적했다. 회사의 흐름을 크게 바꾼 장면은 참치캔 사업 확대였다. 동원참치는 단순 가공식품을 넘어 한국 가정 식문화 안으로 들어갔다. 보관이 쉽고 조리가 간편하다는 장점은 빠르게 소비자 생활과 연결됐다. 특히 1990년대 이후 맞벌이 가구 증가와 간편식 수요 확대 흐름 속에서 참치캔 소비는 더 빠르게 늘어났다. 김치찌개와 김밥, 샐러드와 삼각김밥까지 활용 범위도 넓어졌다. 동원참치는 어느새 특정 제품보다 식재료 이름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동원그룹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양반 브랜드를 중심으로 죽과 국, HMR(가정간편식) 시장까지 확대했다. 과거에는 집에서 직접 만들던 음식들이 점차 간편식 형태로 이동하면서 식품업계 흐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양반죽은 이 변화의 상징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환자식이나 비상식 정도로 여겨졌던 죽 시장을 일상식 영역까지 넓혔다. 이후 국내 HMR 시장 자체가 빠르게 성장하는 흐름과도 연결됐다. 동원그룹을 설명할 때 빼놓기 어려운 또 하나의 축은 물류다. 동원산업과 동원로엑스를 중심으로 냉장·냉동 물류와 항만 물류 경험을 키워 왔다. 식품 기업에 물류 경쟁력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식품 산업은 결국 물류와 연결된다. 특히 냉장·냉동 유통은 안정적인 운송 시스템이 핵심이다. 동원은 원양어업 시절부터 축적된 냉동·물류 경험을 식품 유통과 연결해 왔다. 해외 시장 확대 역시 중요한 흐름이었다. 미국 참치 브랜드 스타키스트 인수는 동원그룹 역사에서 큰 전환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국내 식품 기업이 글로벌 수산 브랜드를 인수한 사례로 당시 업계 관심도 컸다. 스타키스트는 미국 참치 시장 점유율 상위권 브랜드다. 동원은 이를 통해 해외 시장 기반과 글로벌 유통 경험을 함께 확보하게 됐다. 한국 식품 기업이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식품 기업으로 이동하려는 흐름과 맞닿아 있었다. 동원그룹은 수산업 기반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 사업 흐름은 훨씬 넓어졌다. 식품 제조와 포장, 냉장·냉동 물류, 유통까지 연결되는 흐름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단순 가공식품 회사와는 결이 다르다. 최근 흐름은 건강식과 단백질 식품, 친환경 포장과 ESG 경영 확대 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령화와 건강 관리 관심 증가, 간편식 소비 확대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동원F&B 역시 단순 참치캔 기업보다 종합 식품기업 이미지 강화에 힘을 싣고 있다. 펫푸드와 건강기능식품 시장 확대 흐름도 이어지고 있다. 동원그룹의 강점은 비교적 뚜렷한 흐름 안에 모여 있다. 원재료 확보와 가공, 물류와 유통 경험이 하나로 이어진다. 바다에서 잡은 수산물이 소비자 식탁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을 오랫동안 경험해 온 셈이다. 반면 시장 환경은 과거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식품 소비 트렌드 변화 속도가 빨라졌고 글로벌 원자재 가격과 환율 변동 영향도 커졌다. 온라인 유통 확대와 간편식 경쟁 역시 더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 동원그룹 흐름을 보면 방향은 비교적 일정하다. 단순 수산기업보다 종합 식품·물류 기업 쪽으로 무게가 이동하고 있다. 식품 제조와 유통, 물류 흐름이 함께 연결되는 모습이다. 동원그룹은 한국 산업화 시기 바다에서 출발한 기업이다. 그리고 지금은 식탁과 냉장고, 편의점과 물류센터까지 이어지는 생활 소비 흐름 안에 들어와 있다. 참치 한 캔으로 시작된 익숙한 이름은 어느새 한국 식문화 변화 자체를 설명하는 브랜드 가운데 하나가 됐다. 동원그룹 역시 그 흐름 안에서 계속 다음 장면을 만들고 있다.
2026-05-08 09:13:02
-
조중훈 '수송보국'부터 조원태 '통합 항공사'까지…대한항공 DNA의 진화
[경제일보]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수송보국’ 전략으로 시작된 대한항공의 경영 DNA가 글로벌 항공동맹과 통합 항공사 체제로 이어지며 세계 항공시장 연결망 확대 중심에 섰다. 국제선 기반 구축에 나선 조중훈 창업주에 이어 조양호 전 회장은 스카이팀 중심 글로벌 네트워크 확대에 집중했고, 현재 조원태 회장 체제에서는 아시아나항공 통합을 통한 메가 캐리어 전략이 추진되고 있다. 대한항공은 세대별 경영 전략 변화 속에서 장거리·환승 노선과 화물 사업 경쟁력을 키우며 글로벌 항공사 체계를 확대해왔다. 최근에는 통합 항공사 체제 구축이 본격화되며 노선 재편과 조직 통합, 서비스 일원화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 ‘수송보국’에서 스카이팀까지…조중훈·조양호 체제가 키운 글로벌 항공망 대한항공의 성장 출발점은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수송보국’ 전략이었다. 조 창업주는 1969년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한 이후 단순 운송 사업이 아니라 국가 기간산업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항공 사업을 키웠다. 당시 국내 항공 산업은 국제선 운영 경험과 정비 체계, 장거리 노선 경쟁력이 모두 부족한 상황이었다. 조 창업주는 국제 노선 확대와 항공 인프라 구축에 집중했다. 미주와 동남아 노선을 중심으로 국제 항공망을 넓혔고, 국적 항공사 체계 안정화에도 속도를 냈다. 당시 한국 경제가 수출 중심 구조로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와 맞물리며 대한항공 역시 국제 물류와 여객 수송 확대 흐름에 올라탔다. 1970~1980년대 대한항공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뉴욕, 유럽 노선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며 장거리 노선 체계를 구축했다. 북미 노선은 기업 출장 수요와 교민 이동 수요, 화물 운송 수요가 동시에 형성되는 시장이었다. 대한항공은 장거리 노선 비중을 확대하며 글로벌 항공사 구조로 체질을 바꿔가기 시작했다. 조 창업주 시기에는 화물 사업 기반도 함께 확대됐다. 대한항공은 반도체와 전자제품, 자동차 부품 등 한국 수출 산업 성장 흐름에 맞춰 화물기 운영과 글로벌 화물 노선 확대에 투자했다. 여객과 화물을 동시에 키우는 양축 전략이 자리 잡은 시기였다. 대한항공의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은 조양호 전 회장 시기 본격적으로 확대됐다. 조 전 회장은 글로벌 항공 산업이 단순 노선 경쟁에서 연결망 중심 경쟁 구조로 이동한다고 판단하고 환승 네트워크와 항공동맹 전략 강화에 집중했다. 대한항공은 2000년 델타항공과 에어프랑스 등과 함께 글로벌 항공동맹체 스카이팀을 공동 창립했다. 공동운항과 환승 연계, 마일리지 통합 체계 구축이 글로벌 항공사 경쟁력 핵심 변수로 떠오르던 시점이었다. 대한항공은 스카이팀 창립을 계기로 글로벌 연결망 확대에 속도를 냈다. 조 전 회장은 인천국제공항을 동북아 환승 허브로 키우는 전략에도 힘을 실었다. 대한항공은 미국과 유럽, 동남아를 연결하는 환승 네트워크를 강화하며 장거리 중심 수익 구조를 확대했다. 프레스티지석과 일등석 경쟁력을 강화한 것도 이 시기다. 단거리 노선보다 수익성이 높은 장거리 노선 중심 체계 구축에 집중한 것이다. 대한항공은 조 전 회장 시기 글로벌 항공사 위상을 빠르게 키웠다. 장거리 노선 확대와 스카이팀 네트워크 구축, 화물 사업 경쟁력 강화가 동시에 이뤄지며 글로벌 항공사 체계를 본격적으로 구축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대한항공의 화물 경쟁력이 다시 부각됐다. 국제 여객 수요가 급감한 상황에서도 항공 화물 운임이 급등하며 대한항공은 화물 중심 운영 체계를 강화했다. 여객기를 화물기로 전환 투입하는 방식까지 활용하며 공급 대응에 나섰고, 글로벌 공급망 차질과 해상 물류 병목 현상 속에서도 수익성을 유지했다. 대한항공의 2021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1조4644억원을 기록했다. 국제선 정상화 이전 상황에서도 화물 사업 수익성이 실적 방어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항공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이 오랜 기간 구축한 글로벌 화물 사업 기반이 위기 대응력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국제선 수요 회복 이후에는 여객 사업도 빠르게 반등했다. 대한항공의 지난해 매출은 16조5019억원으로 전년 대비 2%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조5393억원으로 19% 감소했지만 장거리 국제선 수요 회복과 프리미엄 좌석 판매 확대, 화물 사업 안정화 영향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 아시아나 통합 추진하는 조원태 체제…글로벌 메가 캐리어 전환 본격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체제에서는 대한항공의 경영 DNA가 다시 한 번 변화하고 있다. 핵심은 아시아나항공 통합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메가 캐리어 체제 구축이다. 장거리 노선과 환승 네트워크, 화물 사업 경쟁력을 통합 운영하며 규모의 경제를 키우는 전략이 추진되고 있다. 조 회장은 코로나19 시기 산업은행 지원 아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했다. 항공 수요 급감과 업황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대형 통합 작업을 밀어붙이며 국내 항공시장 재편에 나섰다.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 경쟁당국 심사를 단계적으로 진행했고, 일부 노선 슬롯과 운수권 조정 조건 등을 거쳐 주요 승인 절차는 대부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통합이 완료될 경우 대한항공은 글로벌 메가 캐리어 체제로 재편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국제선 네트워크, 저비용항공사(LCC) 계열 구조까지 포함하면 국내 항공시장 구조 변화 폭도 커질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조 회장이 단순 항공사 규모 확대보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장거리 노선과 환승 체계, 화물 네트워크를 통합 운영할 경우 규모의 경제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제선 공급 조정과 환승 효율 개선, 운영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 요인으로 거론된다. 다만 통합 이후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노선 중복 조정과 조직 통합, 서비스 기준 일원화가 동시에 진행돼야 하고 항공기 기종 운영 체계와 인력 구조 재편 문제도 함께 맞물려 있다. 특히 서비스 품질과 조직 문화 통합은 장기간 검증이 필요한 영역으로 꼽힌다. 항공사는 안전·정비·운항·객실 서비스 등 다수 조직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산업 특성이 강한 만큼 통합 과정에서 운영 효율성과 조직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26-05-07 16:10:05
-
-
연구실의 집념에서 글로벌 혁신 무대로…한미약품 성장과 도전의 역사
[경제일보] 늦은 밤까지 연구소 불이 꺼지지 않는 회사. 한미약품을 두고 업계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 국내 제약사 다수가 복제약 판매와 영업 경쟁에 힘을 쏟던 시절, 한미약품은 연구개발에 매출의 상당 부분을 다시 투입하는 길을 택했다. 당장 숫자만 보면 부담이 큰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 결정은 한미약품을 한국 제약 산업에서 연구개발 중심 기업의 상징으로 올려놓았다. 한미약품의 역사는 ‘잘 팔리는 약’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약’을 만들겠다는 고집의 기록이다. 출발점에는 창업주 임성기 회장이 있다. 그는 제약 산업이 단순 제조업에 머물러서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고 봤다. 남이 만든 약을 따라 생산하는 방식만으로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기술을 직접 만들고 특허를 확보해야 기업의 미래가 열린다는 생각은 당시 업계 분위기와는 결이 달랐다. 초기의 한미약품은 생산과 영업 기반을 다지는 동시에 연구 조직을 꾸준히 키웠다. 연구개발 투자는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사는 자금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후 한미약품은 개량신약과 복합제, 자체 기술을 앞세워 국내 시장에서 빠르게 입지를 넓혔다. 단순히 기존 의약품을 판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환자의 복용 편의성과 처방 효율성을 높이는 제품을 내놓으며 존재감을 키웠다. 국내 처방 시장에서 한미약품을 대표하는 제품군도 적지 않다. 고혈압 치료제 ‘아모잘탄 패밀리’, 이상지질혈증 치료제 ‘로수젯’ 등은 오랜 기간 안정적인 매출 기반 역할을 해 왔다. 특정 품목 하나에 기대기보다 여러 전문의약품이 고르게 실적을 떠받치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은 한미약품의 체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에도 주력 처방 제품군이 실적을 지탱하고 있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한미약품이 업계 안팎에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대형 기술수출 계약이었다.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업 계약은 국내 제약사도 세계 시장에서 기술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키웠다. 일부 계약은 조정과 반환 과정을 겪었지만, 한국 제약 산업 전체에 남긴 메시지는 분명했다. 국내 연구소에서 나온 기술이 글로벌 빅파마의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한미약품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키워드는 플랫폼 기술이다. 약효 지속 시간을 늘리거나 투약 편의성을 높이는 기술은 신약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한미약품은 장기 지속형 기술 등 자체 플랫폼을 바탕으로 다양한 치료 영역으로 연구 범위를 넓혀 왔다. 하나의 후보물질에만 기대지 않고 기술 기반 회사로 체질을 키워 온 셈이다. 최근 시장의 관심은 비만치료제와 대사질환 파이프라인으로 향한다. 글로벌 제약 시장은 GLP-1 계열 치료제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비만 치료가 단순 체중 감량을 넘어 심혈관·당뇨·지방간 등 대사질환 전반으로 확장되면서 시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한미약품 역시 이 흐름에 맞춰 관련 후보물질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에페글레나타이드는 국내 임상 3상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확보했고, 출시 시점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장에서는 한미약품이 국산 비만치료제 상용화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에피노페그듀타이드 역시 글로벌 임상이 진행 중이며 향후 데이터 공개가 중요한 분기점으로 꼽힌다. 차세대 후보물질도 이어지고 있다. 삼중작용 기전을 활용한 후속 파이프라인은 기존 치료제 대비 효능과 편의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발되고 있다. 한미약품이 단기 유행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비만·대사질환 시장을 장기 성장 축으로 보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항암 분야도 중요한 축이다. 제약 산업에서 항암제 시장은 기술 장벽이 높지만 성공 시 파급력이 크다. 한미약품은 표적항암제와 면역항암 영역에서도 연구를 이어 왔다. 파이프라인을 다변화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특정 분야 실패 위험을 줄이고 중장기 성장 동력을 여러 갈래로 확보하기 위해서다. 오픈이노베이션 전략도 한미약품의 특징이다. 모든 기술을 내부에서 해결하기보다 바이오벤처와 대학, 연구기관, 글로벌 기업과 협력하며 속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기술 변화 속도가 빨라질수록 외부와 손잡는 능력 역시 경쟁력이 된다. 실적 측면에서도 최근 흐름은 나쁘지 않다. 북경한미 회복세와 기술이전 수익, 주력 전문의약품 판매가 맞물리며 수익성 개선 기대가 나오고 있다. 연구개발비 지출이 늘어나는 가운데서도 본업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시장이 주목하는 부분이다. 한미약품의 경쟁력은 여러 층위에서 나온다. 연구개발 중심 문화, 축적된 임상 경험, 플랫폼 기술, 빠른 의사결정 구조, 안정적인 전문의약품 매출 기반이 맞물려 있다. 국내 제약사 가운데 ‘기술로 평가받는 회사’라는 인식이 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창업주 시절부터 이어진 색채가 지금까지 기업 전반에 남아 있다는 평가다. 과제도 만만치 않다. 신약 개발은 긴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사업이다. 임상 실패 가능성은 늘 존재하고 글로벌 빅파마와 경쟁해야 하는 시장에서는 자본력과 네트워크 격차도 있다. 기술수출 계약이 실제 상업화 성과로 이어지는지, 후속 파이프라인이 꾸준히 이어지는지도 냉정한 검증 대상이 된다. 한미약품은 지금 전통 제약사의 안정적 수익 모델 위에 혁신 기업의 성장성을 더하려는 전환기에 서 있다. 기존 전문의약품 사업에서 현금을 창출하고 이를 미래 파이프라인에 다시 투자하는 선순환을 강화하는 과정이다. 국내 시장 중심 회사에서 글로벌 연구개발 기업으로 보폭을 넓히는 길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임성기 회장의 시대가 한국 제약업계에 연구개발의 필요성을 각인시킨 시기였다면, 지금 한미약품의 과제는 축적된 기술력을 세계 시장의 성과로 연결하는 일이다. 늦은 밤 연구소의 불빛이 글로벌 혁신 신약이라는 결실로 이어질 수 있을지 업계의 눈길이 모이고 있다.
2026-04-23 07:46:55
-
민족기업의 꿈에서 글로벌 신약 무대로…유한양행 성장과 도전의 역사
[경제일보] 대한민국 제약 산업을 말할 때 유한양행은 늘 첫머리에 놓인다. 단순히 오래된 회사여서가 아니다. 기업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제약사가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 이익과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함께 추구할 수 있는지를 오랜 시간 보여준 기업이기 때문이다. 유한양행의 역사는 한국 제약 산업의 성장사이자 기업 윤리의 한 장면으로 읽힌다. 출발점에는 창업주 유일한 박사가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격변의 시대를 거치며 기업의 역할을 남다르게 바라봤다. 산업을 일으켜 나라를 키우고, 번 이익은 사회와 다시 나눠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유한양행은 이런 철학 위에서 세워졌다. 단순히 약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국민 건강과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기업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출발부터 결이 달랐다. 초기의 유한양행은 국내 의약품 생산 기반이 취약하던 시절 국민에게 필요한 약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힘을 쏟았다. 수입 의존도가 높고 생산 기술이 부족하던 환경에서 품질 기준을 세우고 제조 역량을 키우는 일은 산업적 의미가 컸다.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의료 체계가 확대되면서 제약 산업이 본격 성장하자 유한양행도 생산 기업을 넘어 연구개발 기업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한양행을 상징하는 가장 큰 자산은 창업주의 철학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일한 박사는 보유 지분 상당 부분을 사회에 환원했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뿌리내렸다. 국내 대기업 다수가 오너 중심 경영 체제를 유지하는 것과 다른 길이었다.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공기라는 인식은 유한양행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 국내 시장에서 유한양행은 오랜 기간 안정적인 사업 기반을 다져 왔다.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 생활건강 제품까지 고른 포트폴리오를 갖췄고 전국 단위 영업망과 브랜드 신뢰도도 확보했다. 특정 품목 하나에 기대기보다 여러 사업 축을 통해 안정성을 높여 온 전략이 돋보인다. 대중에게 친숙한 브랜드도 적지 않다. 가정상비약과 건강 관련 제품, 생활밀착형 브랜드를 통해 유한양행은 병원 밖 소비자와도 꾸준히 접점을 넓혀 왔다. 제약사가 처방 시장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국민 생활 가까이에서 신뢰를 쌓아 온 사례다. 최근 유한양행의 변화를 이끄는 중심축은 연구개발이다. 과거 국내 제약사의 경쟁력이 생산 능력과 영업력에 있었다면 이제 기업 가치를 좌우하는 기준은 신약 파이프라인과 기술력으로 옮겨갔다. 유한양행도 이 흐름에 맞춰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고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혁신 신약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대표 사례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다. 국산 항암 신약 가운데 상징성이 큰 성과로 평가받는다. 렉라자는 기술수출과 글로벌 임상, 해외 시장 진출 가능성을 통해 국내 제약 산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사례로 꼽힌다. 국내에서 개발한 신약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기대를 키웠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유한양행은 자체 연구만으로 승부하지 않는다. 외부 바이오벤처와 대학, 연구기관과 협력하는 오픈이노베이션 전략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기술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연구 분야가 세분화될수록 모든 역량을 내부에서 해결하기는 어렵다. 필요한 기술은 함께 개발하고 유망 후보물질은 과감히 도입하는 방식이 글로벌 제약업계의 흐름이기도 하다. 해외 시장 확대 역시 중요한 과제다. 국내 제약 시장은 인구 구조 변화와 건강보험 재정 통제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반면 글로벌 시장은 규모가 크고 성공 신약의 파급력도 훨씬 크다. 유한양행이 기술수출과 해외 파트너십 확대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한양행의 경쟁력은 여러 층위에서 나온다. 오랜 업력에서 비롯된 신뢰도, 전문경영인 체제의 안정성, 탄탄한 기존 사업 기반, 연구개발 투자 여력,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기업 문화는 쉽게 따라 만들기 어렵다. 창업주의 정신이 기업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경영 체계에 녹아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평가된다. 과제도 있다. 신약 개발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성공 확률은 높지 않다. 글로벌 빅파마와 경쟁해야 하는 시장에서는 자본력과 임상 경험의 격차도 존재한다. 국내 시장 성장세 둔화, 우수 연구 인력 확보 경쟁, 규제 환경 변화 역시 꾸준히 관리해야 할 변수다. 유한양행은 전통 제약사의 안정성과 연구개발 기업의 성장성을 함께 갖추려는 길을 걷고 있다. 기존 사업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고 이를 혁신 신약과 미래 파이프라인에 재투자하는 방식이다. 국내 시장 중심 회사에서 글로벌 기술 기업으로 체질을 바꾸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유일한 박사의 시대가 의약품 보급과 기업 윤리의 기초를 세운 시기였다면 지금 유한양행의 과제는 한국 제약 기술의 경쟁력을 세계 시장에서 증명하는 일이다. 민족기업의 꿈에서 출발한 이 회사가 글로벌 신약 무대에서 어떤 다음 장면을 만들어낼지 업계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2026-04-22 16:43:52
-
한국 최초 백화점에서 프리미엄 유통의 상징까지…신세계 성장의 역사
[경제일보] 서울 도심의 소비 지도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강남의 랜드마크 강남점과 본점이 자리한 명동, 지역 핵심 상권마다 자리 잡은 대형 점포까지 신세계백화점은 오랜 시간 한국 소비 문화의 중심을 지켜온 브랜드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유행이 시작되고 생활 수준의 변화가 드러나며 도시의 흐름이 읽히는 장소였다. 신세계백화점의 역사는 곧 한국 근대 유통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신세계의 출발은 다른 유통 기업과 결이 다르다. 뿌리는 1930년 국내 최초의 근대식 백화점으로 문을 연 미쓰코시 경성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복 이후 동화백화점을 거쳐 삼성그룹 산하에서 신세계백화점으로 재편됐고 이후 독립 경영 체제를 갖추며 오늘의 신세계로 이어졌다. 한국 백화점 산업의 시작과 성장 과정이 한 기업 안에 압축돼 있는 셈이다. 창업기의 방향을 잡은 인물로는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이명희 총괄회장을 빼놓기 어렵다. 삼성그룹 시절 신세계는 제조 중심 대기업 안에서 소비와 유통의 가능성을 시험한 사업이었다. 이후 이명희 총괄회장은 신세계를 독자 기업으로 키우며 백화점과 할인점, 패션과 식품, 복합쇼핑몰로 사업 지형을 넓혔다. 유통은 제조의 보조 산업이 아니라 생활 산업의 중심이라는 판단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신세계백화점이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운 시기는 소비 고급화 흐름과 맞물린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며 소비자는 단순히 필요한 물건을 사는 데서 벗어나 더 나은 브랜드와 서비스, 쾌적한 공간 경험을 찾기 시작했다. 신세계는 이 변화를 빠르게 읽고 프리미엄 브랜드 유치와 점포 고급화, 식품관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았다. 대표 사례가 강남점이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상권과 맞물린 강남점은 단순 점포를 넘어 전국 최고 수준 매출을 올리는 핵심 거점으로 성장했다. 패션과 명품, 식품과 문화 콘텐츠가 결합한 강남점은 백화점이 지역 대표 상권의 중심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본점 역시 상징성이 크다. 서울 중구 도심에 자리한 본점은 오랜 역사와 함께 외국인 관광객 수요까지 흡수하며 서울 쇼핑의 대표 공간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전통성과 현대적 리뉴얼이 공존하는 공간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쟁력은 상품 구성 능력에서 나온다. 명품 브랜드 유치 경쟁에서 강점을 보여 왔고 식품관과 디저트, 미식 콘텐츠 강화에도 공을 들였다. 백화점 식품관이 단순한 장보기 공간이 아니라 ‘찾아가는 목적지’가 된 배경에도 신세계의 기획력이 자리하고 있다. 소비자가 백화점을 찾는 이유를 상품 구매에서 경험 소비로 넓힌 것이다. 물론 유통 환경은 빠르게 바뀌었다. 온라인 쇼핑이 일상이 되면서 백화점 업태의 미래를 두고 회의론도 적지 않았다. 가격 비교는 쉬워졌고 배송 속도는 빨라졌다. 오프라인 매장이 가진 넓은 공간과 입지 만으로 고객을 붙잡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신세계는 오히려 공간 경쟁력 강화로 대응했다. 스타필드와 복합쇼핑몰, 프리미엄 아울렛 확대는 그 연장선에 있다. 단순 판매 공간이 아니라 하루를 보내는 체류형 공간, 가족 단위 여가 공간, 쇼핑과 외식·문화가 결합된 장소로 소비 트렌드 변화에 대응한 것이다. 디지털 전환도 주요 과제다. 온라인몰 강화와 멤버십 데이터 활용, 맞춤형 마케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고객은 모바일에서 상품을 확인하고 매장에서 체험한 뒤 다시 온라인에서 구매한다. 유통 채널의 경계가 사라지는 시장에서 고객 경험 전체를 설계하는 능력이 경쟁력을 좌우하게 됐다. 관광 수요 회복도 신세계백화점에는 중요한 변수다. 명동 본점과 강남점, 주요 도심 점포는 외국인 방문객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K뷰티와 패션, 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백화점은 한국 소비문화를 보여주는 창구 역할을 하게 된다. 신세계백화점이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입지와 브랜드, 콘텐츠 경쟁력을 두루 갖췄기 때문이다. 프리미엄 이미지와 핵심 입지, 강한 식품관 경쟁력, 충성 고객층, 콘텐츠 기획 능력은 쉽게 따라 하기 어렵다. 계열사와의 시너지 역시 강점으로 꼽힌다. 패션과 면세점, 호텔, 복합쇼핑몰 사업과의 연계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과제도 있다. 고정비 부담이 큰 오프라인 점포 운영 특성상 소비 둔화기에는 실적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젊은 소비층은 가격과 재미, 새로운 콘텐츠에 민감하다. 점포별 경쟁력 격차를 줄이고 온라인 플랫폼과의 경쟁 속에서 새로운 고객을 확보해야 하는 숙제도 남아 있다. 신세계백화점이 향하는 길은 단순한 백화점 운영을 넘어 도시형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의 확장에 가깝다. 상품 판매를 넘어 경험을 제공하고 점포를 넘어 상권을 키우며 오프라인 공간을 넘어 데이터 기반 서비스를 강화하는 방향이다. 한국 최초 백화점의 계보를 잇는 신세계가 앞으로도 국내 유통 산업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지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26-04-22 10:39:33
-
국토 개발의 현장에서 글로벌 랜드마크까지…삼성 건설의 성장사
[경제일보] 대한민국 산업화의 굵직한 장면마다 삼성의 건설 사업은 빠지지 않았다. 공장과 도로, 주택과 발전소, 초고층 빌딩과 첨단 산업시설까지 나라의 성장 과정에서 필요한 공간과 기반시설이 세워질 때마다 삼성의 이름이 따라붙었다. 오늘날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단순 시공사를 넘어 글로벌 복합개발과 첨단 생산시설, 에너지 인프라를 수행하는 종합 건설 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삼성 건설의 역사는 한국 산업 발전의 또 다른 단면이다. 삼성 건설의 뿌리는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사업 철학과 맞닿아 있다. 그는 제조와 무역, 금융에 머무르지 않고 산업 전반을 떠받칠 기반 사업의 중요성을 일찍이 주목했다. 산업이 커질수록 공장과 물류시설, 도시 인프라 수요도 함께 늘어난다는 판단이었다. 생산과 유통, 소비가 커지면 이를 담아낼 공간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삼성 건설 사업의 출발점이 됐다. 초기의 삼성 건설은 그룹 내부 수요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공장과 업무시설, 물류 거점 등을 직접 짓고 운영하며 공정 관리와 원가 통제, 품질 관리 역량을 축적했다. 이는 훗날 외부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밑거름이 됐다. 삼성 특유의 관리 체계와 실행 속도가 건설 현장에 이식된 것도 이 시기다. 국내 성장기에는 주택과 도시 개발 분야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래미안 브랜드는 국내 아파트 시장의 고급화 흐름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단순히 집을 짓는 데서 벗어나 설계와 커뮤니티, 조경과 서비스 수준을 끌어올리며 주거 상품의 기준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브랜드 경쟁이 본격화된 국내 주택 시장에서 래미안은 오랜 기간 선호도 상위권을 지켜 왔다. 삼성 건설의 위상을 세계에 알린 장면은 초고층 프로젝트였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는 대표 사례다. 세계 최고층 빌딩 시공 경험은 단순한 수주 실적을 넘어 기술력과 공정 관리 능력을 입증한 상징적 성과로 꼽힌다. 복잡한 설계와 난도 높은 시공, 글로벌 협업 체계를 완수하며 삼성 건설은 세계 시장에서 이름값을 높였다. 최근 삼성 건설의 핵심 경쟁력은 첨단 산업시설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반도체 공장과 연구시설, 바이오 생산기지, 데이터센터 등 정밀성과 안정성이 요구되는 시설은 일반 건축과 다른 역량이 필요하다. 공정 오차를 최소화해야 하고 고도의 설비 이해도와 빠른 일정 대응이 뒤따라야 한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그룹 내 반도체와 바이오 투자 확대 과정에서 이런 분야의 경험을 빠르게 축적해 왔다. 다른 건설사와 구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주택이나 일반 토목 중심 회사와 달리 삼성 건설은 첨단 제조시설이라는 고부가가치 시장에서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세계적으로 AI 확산과 반도체 투자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이러한 역량의 가치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물론 건설업 특유의 부침도 피해 가지는 않았다. 국내 부동산 경기 변동, 해외 프로젝트 손익 변동성, 원자재 가격 상승, 금리 변화는 삼성 건설에도 부담 요인이다. 대형 프로젝트일수록 공기 지연과 비용 증가 위험이 크고 해외 사업은 환율과 지정학 변수에도 민감하다. 안정적 관리 역량만으로 모든 위험을 없앨 수는 없다. 최근 사업 지형은 다시 바뀌고 있다. 과거의 중심축이 주택과 일반 건축, 플랜트였다면 지금은 첨단 산업 인프라와 친환경 에너지, 복합개발 사업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반도체 생산기지와 바이오 캠퍼스, 데이터센터, 소형모듈원전(SMR), 신재생에너지 관련 인프라가 새로운 기회로 떠오른다. 특히 반도체 시설은 삼성 건설의 대표 성장축으로 꼽힌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AI 투자 확대로 세계 각국이 반도체 생산 능력 확보에 나서면서 대형 팹 건설 수요도 이어지고 있다. 클린룸과 진동 제어, 초정밀 시공 경험은 진입 장벽이 높아 후발 주자가 단기간에 따라오기 쉽지 않다. 친환경 에너지 시장도 주목할 분야다. 탄소중립 기조 아래 태양광과 수소, 차세대 발전 인프라 투자가 늘고 있다. 건설사는 단순 시공사가 아니라 에너지 전환을 현실화하는 실행 주체가 되고 있다. 삼성 건설 역시 글로벌 네트워크와 자금 조달 역량을 활용해 관련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 도시 개발 분야에서도 역할은 커지고 있다. 대형 복합개발 사업은 주거와 업무, 상업과 문화 기능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단순 시공 능력보다 금융과 운영, 설계 조정 역량까지 요구된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가진 브랜드와 사업관리 경험은 이런 시장에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삼성 건설의 경쟁 우위는 여러 축에서 나온다. 삼성 브랜드가 주는 신뢰도, 우수한 재무 기반, 글로벌 프로젝트 수행 경험, 첨단 산업시설 노하우, 래미안으로 대표되는 주택 브랜드 경쟁력은 쉽게 대체되기 어렵다. 그룹 계열사와의 시너지 역시 다른 회사가 갖기 어려운 자산이다. 과제도 적지 않다. 국내 주택 시장 의존도를 어떻게 조절할지, 해외 대형 사업의 수익성을 어떻게 관리할지, 친환경과 디지털 전환에 얼마나 빠르게 대응할지가 향후 성과를 좌우할 전망이다. 기술 인력 확보 경쟁과 공사비 상승 부담도 계속된다. 삼성 건설은 단순 시공 회사를 넘어 미래 산업과 도시의 기반을 만드는 기업으로 체질 변화를 서두르고 있다. 단순 시공 회사가 아니라 미래 산업과 도시의 기반을 설계하는 고부가가치 인프라 기업으로 외연을 넓히는 길이다. 아파트를 넘어 스마트 주거로, 공장을 넘어 첨단 생산 생태계로, 건물을 넘어 도시 전체의 가치 창출로 사업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이병철 창업주의 시대가 산업화 기반을 닦던 시기였다면 지금 삼성 건설의 과제는 기술 패권 경쟁과 에너지 전환 시대에 맞는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국내 성장의 현장에서 출발한 삼성 건설이 앞으로도 세계 건설 시장에서 같은 존재감을 이어갈지 업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2026-04-22 10:26:51
-
-
실험실의 불빛에서 글로벌 신약 무대로…종근당 성장과 도전의 역사
[경제일보] 대한민국 제약 산업의 흐름을 짚어보면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전쟁의 상흔이 짙던 시절 필수 의약품을 공급하던 기업에서 출발해 오늘날 연구개발형 제약사로 자리 잡은 종근당이다. 치료제가 부족하던 시대에는 공급 책임을 맡았고 산업이 성장하던 시기에는 국산 기술 축적에 힘을 보탰으며 경쟁 무대가 세계로 넓어진 지금은 신약 개발과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종근당의 발자취는 한국 제약 산업의 성장 과정과 함께 이어져 왔다. 출발점에는 창업주 이종근 회장이 있다. 그는 해방 직후 열악한 의료 환경 속에서 국민 건강을 지키려면 안정적인 의약품 생산 기반부터 갖춰야 한다고 봤다. 수입 의존도가 높고 생산 시설도 부족하던 시절 국내에서 직접 약을 만들고 기술을 쌓아야 한다는 판단은 단순한 사업 계획을 넘어 시대적 요구에 가까웠다. 종근당이라는 이름에도 사람의 건강을 받든다는 뜻이 담겼다. 초기의 종근당은 생산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 곧 경쟁력이던 시절을 지나야 했다. 원료와 설비, 기술이 모두 부족했지만 공장을 세우고 품질 기준을 높이며 국산 제약 산업의 토대를 다졌다. 국민 소득이 늘고 의료 서비스가 확장되면서 제약 산업도 단순 제조업에서 기술 산업으로 성격이 바뀌기 시작했고 종근당 역시 그 변화에 맞춰 방향을 바꿨다. 전환점은 연구개발 투자 확대였다. 복제약 중심 시장에 안주해서는 지속 성장이 어렵다는 판단 아래 연구소 기능을 키우고 전문 인력을 확보했다. 단기 실적만 놓고 보면 부담이 큰 결정이었지만 장기 경쟁력은 기술에서 나온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이후 종근당은 개량신약과 퍼스트제네릭, 전문의약품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 입지를 넓혀 갔다. 국내 시장에서 종근당의 강점은 고른 제품군에 있다. 순환기와 당뇨,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 치료제를 비롯해 항생제와 소화기, 면역 분야까지 폭넓은 처방 시장을 확보했다. 특정 품목 하나에 기대지 않고 여러 치료 영역에서 매출 기반을 갖춘 점은 제약 산업 특유의 정책 변수와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힘이 됐다. 의약분업 이후 전문의약품 시장이 커지는 과정에서도 종근당은 영업력과 제품 경쟁력을 앞세워 외형을 키웠다. 대중에게 익숙한 기업 이미지 역시 종근당의 자산이다. 오랜 기간 이어진 광고와 브랜드 마케팅은 제약사가 병원 안에서만 존재하는 기업이 아니라 생활 가까이에 있는 산업이라는 인식을 넓혔다. 전문성과 친숙함을 함께 가져간 전략이었다. 물론 제약 산업의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약가 인하 정책과 리베이트 규제 강화, 특허 분쟁, 글로벌 경쟁 심화는 업계 전반의 부담으로 이어졌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긴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성공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임상 실패 한 번이 수년간의 투자를 흔들 수 있는 산업이기도 하다. 종근당 역시 수익성과 연구개발 투자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최근 종근당의 행보는 한층 적극적이다. 단순한 국내 매출 경쟁을 넘어 연구개발 중심 제약사로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합성신약과 바이오의약품, 항체 기술, 희귀질환 치료제 등 성장성이 큰 분야에 자원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기존 전문의약품 사업에서 확보한 수익을 미래 파이프라인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체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핵심은 신약 개발이다. 글로벌 제약 시장에서 기업 가치를 좌우하는 기준은 생산 규모보다 독자 기술과 파이프라인이다. 종근당은 항암·면역·대사질환 등 고부가가치 영역에서 후보물질을 확보하고 기술수출과 공동개발 기회를 넓히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국내 시장만으로는 성장 폭에 한계가 있는 만큼 세계 시장을 겨냥한 연구개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바이오 분야도 중요한 축이다. 합성의약품 중심 시장에서 바이오의약품 비중이 커지면서 생산 기술과 임상 역량, 글로벌 파트너십의 가치도 높아지고 있다. 종근당은 바이오시밀러와 바이오신약 등 중장기 과제를 통해 사업 외연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전통 제약사의 경험에 새로운 기술 역량을 더하는 과정이다. 해외 시장 확대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국내 제약 시장은 인구 구조와 건강보험 재정 통제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반면 글로벌 시장은 규모가 크고 성장 기회도 넓다. 종근당은 완제의약품 수출과 기술 이전, 현지 파트너십 확대를 통해 해외 매출 비중을 높이려 하고 있다. 연구개발 성과가 해외 시장에서 평가받을수록 기업 가치 역시 달라질 수 있다. 종근당의 강점은 오랜 업력에서 비롯된 신뢰도와 안정적인 전문의약품 매출 기반, 축적된 연구개발 경험, 전국 단위 영업망에 있다. 꾸준한 현금 창출력은 장기 투자가 필요한 제약 산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자산이다. 오랜 시간 쌓아온 품질 관리 체계와 브랜드 인지도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경쟁력으로 꼽힌다. 과제도 적지 않다. 글로벌 빅파마와 경쟁해야 하는 신약 시장은 진입 장벽이 높고 연구개발 비용은 계속 커지고 있다. 국내 약가 규제와 시장 포화, 연구 인력 확보 경쟁도 부담이다. 기술 변화 속도가 빨라질수록 과거의 성공 공식만으로는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 종근당이 향하는 방향은 기존 사업의 안정성을 바탕으로 혁신 성과를 더해 글로벌 연구개발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맞춰져 있다. 단순 제조를 넘어 기술 기업으로, 국내 중심 사업에서 세계 시장형 기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과정이다. 이종근 창업주의 시대가 의약품 국산화의 문을 연 시기였다면 지금 종근당의 과제는 한국 제약 기술의 수준을 세계 시장에서 입증하는 일이다. 실험실의 작은 불빛에서 시작된 도전이 글로벌 신약 무대에서 어떤 성과로 이어질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26-04-21 09:59:25
-
명동의 간판에서 도시의 얼굴로…롯데백화점 성장의 서사
[경제일보] 서울 명동 한복판을 걷다 보면 한 시대의 소비 풍경이 겹쳐 보인다. 해외 관광객으로 붐비는 거리와 쇼핑백을 든 사람들, 계절마다 바뀌는 쇼윈도와 불이 꺼지지 않는 식품관까지. 그 중심에는 오랫동안 롯데백화점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첫 정장을 산 곳이고 누군가에게는 가족 외식의 기억이 남은 공간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번화함을 상징하는 장소다. 롯데백화점은 단순한 유통 점포가 아니라 한국 소비문화의 시간을 담아온 이름이다. 그 출발점에는 창업주 신격호가 있다. 그는 전후 혼란기 속에서 일본에서 사업 기반을 일군 뒤 한국에 돌아와 식품과 관광, 유통 산업에 잇따라 뛰어들었다. 당시 한국 경제는 생산 중심 사회에서 소비 중심 사회로 천천히 옮겨가던 시기였다. 사람들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생활 수준이 달라지면 상품을 파는 방식도 바뀔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신격호는 백화점을 단순히 물건을 진열하는 건물이 아니라 새로운 생활 문화를 보여주는 무대로 바라봤다. 이런 구상은 도심 핵심 입지 전략으로 이어졌다. 유동 인구가 많고 상징성이 큰 장소에 점포를 세워 사람을 끌어모으고 그 주변 상권까지 함께 키우는 방식이었다. 롯데백화점 본점이 자리 잡은 명동은 그 전략이 가장 잘 드러난 공간이다. 패션과 식품, 화장품과 리빙, 문화와 외식이 한 건물 안에서 돌아가는 경험은 당시 소비자에게 신선한 변화였다. 필요한 물건을 사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구경하고 머물고 즐기는 소비가 시작됐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곧 브랜드의 무대가 됐다. 국내 기업에는 가장 효과적인 전시장이었고 해외 브랜드에는 한국 시장 진출의 관문이었다. 쇼윈도 하나와 매장 배치 하나가 곧 유행을 만들던 시절이었다. 백화점이 도시의 문화 흐름을 이끄는 공간으로 자리 잡은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롯데백화점은 서울을 넘어 전국으로 보폭을 넓혔다. 부산과 대구, 대전과 광주 등 주요 도시 핵심 상권에 점포를 열며 전국 유통망을 구축했다. 대형 백화점의 등장은 지역 소비의 중심축을 바꾸는 사건에 가까웠다. 주변 상권이 커지고 교통이 정비됐으며 주거 선호도까지 달라졌다. 백화점 하나가 도시의 지도를 바꾸던 시절이었다. 롯데백화점이 경쟁력을 유지한 배경에는 상품 기획력과 운영 노하우가 있다. 해외 명품과 국내 대표 브랜드를 함께 키우고 식품관과 문화센터, 고객 서비스를 유기적으로 엮어 체류 시간을 늘렸다. 계절별 기획전과 팝업 행사, 우수 고객 관리 프로그램은 오랜 기간 업계의 기준으로 통했다. 소비자는 필요한 물건만 사러 오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유행과 정보를 얻기 위해 백화점을 찾았다. 잠실은 롯데백화점 진화의 또 다른 상징이다. 백화점과 호텔, 면세점, 엔터테인먼트 시설, 초고층 랜드마크가 결합한 잠실 일대는 전통적 의미의 점포를 넘어선 공간이 됐다. 쇼핑과 관광, 식음과 여가가 한곳에서 이뤄지는 복합 소비지로 성장했다. 과거 백화점이 상품을 파는 곳이었다면 이제는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성격이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유통업의 환경은 빠르게 바뀌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마다 소비 심리는 먼저 얼어붙었고 온라인 쇼핑의 급성장은 오프라인 유통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게 했다. 가격 비교는 몇 초면 끝나고 배송은 하루 안에 이뤄진다. 넓은 매장과 좋은 입지만으로는 고객을 붙잡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롯데백화점도 변화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매장 면적을 넓히는 방식에서 벗어나 콘텐츠와 체험, 공간 효율과 데이터 활용으로 전략의 무게중심을 옮겼다. 고객이 오래 머물고 다시 찾는 공간, 온라인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간을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대표 사례가 프리미엄 아울렛과 복합몰 확대다. 교외형 소비가 늘고 가족 단위 체류형 쇼핑이 자리 잡으면서 아울렛은 새 성장 동력이 됐다. 합리적 가격과 넓은 공간, 외식과 문화 시설을 함께 갖춘 모델은 기존 백화점과 다른 고객층을 끌어들였다. 유통 기업이 한 가지 형식만으로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 변화에 대응한 결과다. 디지털 전환도 핵심 과제다. 멤버십 데이터 분석과 개인 맞춤형 마케팅, 모바일 앱 연계 서비스, 온라인몰 강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고객은 앱으로 상품을 살펴보고 매장에서 직접 확인한 뒤 다시 온라인으로 구매한다.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흐려진 시장에서 고객 경험 전체를 설계하는 능력이 경쟁력이 되고 있다. 관광 수요 회복 역시 롯데백화점에는 중요한 변수다. 명동 본점과 잠실점 등 핵심 점포는 외국인 방문객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K뷰티와 패션, 식품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백화점은 단순 판매 공간을 넘어 한국 소비문화를 보여주는 창구가 된다. 호텔과 면세점, 관광 인프라와의 연계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롯데백화점의 강점은 오랜 브랜드 신뢰도와 핵심 입지, 전국 점포망, 협력사 네트워크, 축적된 고객 데이터에 있다. 소비 회복 국면이 오면 이런 자산은 빠르게 실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 시간의 자산이다. 과제도 적지 않다. 젊은 소비층은 가격과 속도, 차별화된 콘텐츠에 민감하다. 충성 고객만으로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점포별 수익성 격차와 높은 고정비 부담, 온라인 플랫폼과의 경쟁도 계속된다. 소비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프리미엄 수요와 실속 소비를 함께 잡아야 하는 숙제도 커진다. 롯데백화점이 향하는 곳은 뚜렷하다. 백화점이라는 업태를 지키는 데 머무르지 않고 도시의 소비와 여가를 설계하는 생활 플랫폼 기업으로 넓어지는 길이다. 상품 판매를 넘어 경험을 제공하고 점포 운영을 넘어 상권을 키우며 오프라인 공간을 넘어 데이터 기반 서비스를 강화하는 방향이다. 신격호 창업주의 시대가 근대적 소비 시장의 문을 연 시기였다면 지금 롯데백화점의 과제는 새로운 시대의 소비 가치를 다시 쓰는 일이다. 명동의 간판으로 출발한 이 기업이 앞으로도 한국 유통 산업의 중심에서 같은 무게감을 이어갈지 시장은 다음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2026-04-21 09:54:32
-
-
-
창업주 경영 철학도 데이터가 학습…SK그룹, AI로 '기업 DNA' 재현한다
[경제일보] SK그룹이 창업세대의 경영 철학과 경험을 인공지능(AI)으로 재현하며 '기업 DNA의 디지털화'에 나섰다. 단순 기념 콘텐츠를 넘어 조직의 가치와 의사결정 기준까지 데이터화하려는 시도로 AI 활용 범위가 경영 문화 영역까지 확장되는 흐름을 보여준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은 고(故) 최종건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의 어록과 경영 일화를 기반으로 제작한 5분 분량의 AI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은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미디어월과 사내 방송을 통해 상영되며 구성원 누구나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영상은 6·25 전쟁 이후 폐허가 된 선경직물 재건부터 석유·통신·반도체로 이어지는 SK그룹 성장사를 담았다. 특히 나일론 사업 진출, 워커힐 인수, 이동통신 사업 진입 등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창업세대 메시지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방식이다. SK그룹은 기존처럼 컴퓨터그래픽(CG)이나 배우를 활용한 재연이 아니라 AI가 사료를 학습해 영상과 스토리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콘텐츠를 제작했다. 과거 사사(社史), 저서, 음성 기록 등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AI가 창업주를 재현했다는 점에서 단순 영상 제작을 넘어 지식 자산의 데이터화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기업이 축적해온 역사와 철학을 디지털 자산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시도로 볼 수 있다. 최근 기업 경영 환경은 기술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장기 전략과 조직 문화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특히 AI, 반도체, 에너지 등 산업 구조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과거의 성공 경험과 의사결정 원칙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창업 정신은 단순 상징이 아니라 조직을 움직이는 기준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AI가 그 매개로 등장한 것이다. 과거에는 창업주 어록이나 사내 교육을 통해 가치가 전달됐다면 이제는 AI를 활용해 실제 음성과 영상 형태로 재현하고 이를 반복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이는 조직 구성원들이 창업세대의 사고방식과 판단 기준을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접근이다. 이렇듯 AI는 단순 업무 자동화 도구를 넘어 조직의 기억까지 저장하고 재생하는 플랫폼으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이번 사례는 AI 활용 범위의 확장을 보여준다. 그동안 기업의 AI 도입은 생산, 마케팅, 고객 서비스 등 효율 개선 영역에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SK그룹의 시도는 기업 문화와 정체성, 즉 '보이지 않는 자산'까지 AI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향후 기업들이 AI를 활용해 △의사결정 지원 △리더십 교육 △조직 문화 전파까지 영역을 넓힐 가능성을 시사한다. 주의할 점은 AI가 재현한 콘텐츠의 해석과 정확성, 특정 메시지 선택과 강조 과정에서 생기는 왜곡 가능성이다. 또한 창업주의 발언을 현재 경영 환경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쟁도 남아 있다. 기술적으로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활용 방안에 대한 기준과 균형이 필요한 영역이다. 기업 경쟁력은 기술과 자본을 넘어 정체성에서 나온다. SK그룹의 이번 시도는 과거를 복원하는 작업이 아니라 그 정체성을 현재와 미래에 맞게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AI가 사람의 일을 대체하는 시대를 넘어 이제는 기업의 역사와 철학까지 재현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조직의 기억을 데이터로 남기고 이를 다시 활용하는 흐름 속에서 기업의 경영 방식도 점점 달라지고 있다.
2026-04-14 11:22:07
-
30주년 맞은 '바람의나라', 살아있는 역사를 넘어 '미래'를 향한 항해
[경제일보] 1996년 4월 5일, 넥슨의 첫 개발작이자 대한민국 온라인 게임의 서막을 연 ‘바람의나라’가 서비스 30주년을 맞았다. 한때 ‘미르의 전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 최장수 상용화 그래픽 MMORPG’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이 게임은 이제 단순한 과거의 영광을 넘어 대규모 업데이트와 IP 확장을 통해 ‘넥슨의 현재이자 미래’임을 증명하고 있다. ‘바람의나라’가 30년간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지속적인 혁신’과 ‘이용자와의 소통’에 있다. 넥슨은 이번 30주년을 맞아 신규 지역 ‘신라’와 신규 직업 ‘흑화랑’을 포함한 대규모 업데이트를 단행했다. 이는 단순히 신규 콘텐츠를 추가하는 것을 넘어 게임의 세계관을 고구려, 부여에서 삼국시대까지 확장하며 역사적 서사를 심화시키는 작업이다. 이러한 ‘세계관의 확장’은 장수 게임이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인 ‘콘텐츠 고갈’을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넥슨은 2005년 전면 무료화 선언, 2014년 1996년 초기 버전 복원 등 시대의 흐름에 맞춰 과감한 변화를 시도해왔다. 최고 동시 접속자 수 13만 명, 누적 가입자 수 2600만 명이라는 기록은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번 30주년 기념 행사의 또 다른 특징은 IP(지식재산권)의 다각화다. 넥슨은 공식 온라인 스토어 ‘도토리샵’을 통해 장패드, 키링, 티셔츠 등 다양한 굿즈를 선보였다. 특히 화투 세트, 필름 카메라, 액막이 인형 등 한국적 개성과 레트로 감성을 결합한 굿즈들은 게임을 즐기지 않는 대중에게도 ‘바람의나라’라는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또한 자사의 다른 인기 타이틀과 연계한 ‘크로스 이벤트’는 넥슨의 강력한 IP 생태계를 보여준다. 이는 ‘바람의나라’의 올드 팬들에게는 추억을, 신규 게임 이용자들에게는 ‘바람의나라’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며 IP의 생명력을 확장하는 전략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바람의나라’가 향후 넥슨의 ‘메타버스’ 전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30년간 축적된 방대한 세계관과 커뮤니티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가상 세계다. 최근 넥슨이 집중하고 있는 블록체인 기술과 결합될 경우 게임 내 아이템이나 캐릭터가 NFT(대체불가토큰)화되어 이용자 간에 자유롭게 거래되는 ‘웹3.0’ 게임으로 진화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바람의나라’의 장기 흥행은 국내 게임 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기적인 매출에 급급해 ‘리니지 라이크’ 게임을 양산하는 시장 풍토 속에서, ‘바람의나라’는 꾸준한 업데이트와 이용자와의 소통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서비스 모델’을 증명해 냈다. ◆ 30년의 유산, 그리고 넥슨의 책임감 ‘바람의나라’는 故 김정주 창업주가 꿈꿨던 ‘차세대 온라인 서비스(NEXt generation ONline service)’의 첫 결과물이었다. 1996년 서비스 첫날 접속자는 단 한 명이었지만 그 작은 시작이 30년 후 누적 가입자 2600만 명이라는 거대한 역사가 되었다. 30주년 기념 일러스트와 영상에서 한국적 개성과 역사를 강조한 것은 넥슨이 ‘바람의나라’를 단순한 게임이 아닌 ‘문화유산’으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규 레이드 ‘하칸’과 ‘브리트라’를 추가하고 9차 승급을 통해 성장의 재미를 강화하는 것은 과거의 이용자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대의 이용자까지 품겠다는 의지다. ‘바람의나라’의 30년은 대한민국 온라인 게임의 역사 그 자체다. 넥슨이 앞으로 이 소중한 유산을 어떻게 가꾸고 발전시켜 나갈지, 그리고 ‘바람의나라’가 또 다른 30년의 역사를 써내려갈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넥슨의 혁신 의지와 이용자와의 소통 방식에 달려 있다. 30억 규모의 ‘바람포인트’ 이벤트로 시작된 이번 축제가 한국 게임 산업의 건강한 미래를 여는 또 다른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
2026-04-07 07:5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