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3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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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정치, 파탄의 의회주의… '도(道)'를 잃은 국회에 고함
[경제일보] 대한민국 국회가 길을 잃었다. 갈등은 민주주의의 숙명이지만, 지금 국회에서 벌어지는 모습은 건강한 경쟁이 아니라 정치의 자기 파괴에 가깝다. 대화는 실종되고 타협은 조롱받으며, 상대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규정된다. 의회는 민의를 수렴하는 광장이 아니라 다수의 힘과 소수의 저항이 충돌하는 전쟁터로 변질되고 있다. 이는 특정 정당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의회민주주의 전체가 맞닥뜨린 심각한 위기다. 최근 국회 원 구성 과정에서 나타난 다수당의 일방적 강행 처리와 입법 독주, 이에 맞선 소수당의 무기력한 저항은 우리 정치가 의회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인 대화와 절제, 타협을 잃어버렸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수는 숫자의 우위를 절대 권력으로 착각하고, 소수는 국정 운영의 동반자가 아니라 발언권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 협치는 사라지고 힘만 남았다. 숫자가 정의를 대신하고, 권력이 상식을 밀어내는 순간 민주주의는 이미 병들기 시작한다. 특히 필리버스터마저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깊은 우려를 자아낸다. 필리버스터는 단순한 시간 끌기가 아니다. 다수결이 놓칠 수 있는 소수의 목소리를 국민에게 끝까지 전달하기 위한 민주주의의 마지막 안전장치다. 토론이 귀찮다고 토론을 없애고, 반대 의견이 불편하다고 침묵을 강요하는 국회라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다수의 지배일 뿐이다. 효율은 행정의 가치일 수 있지만, 민주주의의 가치는 숙의와 합의에 있다. 역사는 오만한 권력이 오래가지 못했음을 반복해서 증명해 왔다. 성경 잠언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경고한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고 민심은 숫자로 계산되지 않는다. 오늘 절대다수의 의석을 가진 정당도 내일은 국민의 심판 앞에 설 수 있다. 민심은 배를 띄우는 물이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는 거센 파도가 되기도 한다. 노자는 『도덕경』 제9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득 채우고 또 채우는 것은 적당한 때에 멈추는 것만 못하며, 지나치게 날카롭게 갈면 오래 보존할 수 없다." 오늘의 국회는 바로 이 경고를 되새겨야 한다. 다수당은 의석을 끝까지 채우려 하고, 야당은 상대를 겨누는 창끝만 더욱 날카롭게 벼른다. 그러나 지나친 것은 반드시 모자람만 못하다. 힘은 절제될 때 권위가 되고, 권력은 양보할 때 존경을 얻는다. 끝없이 채우려는 욕망은 결국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민주주의는 100 대 0의 승부가 아니다. 서로 다른 이해와 가치를 조정하여 국민 전체의 이익을 찾는 과정이다. 51 대 49로 결정되더라도 나머지 49를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며, 다수는 소수를 품을 때 비로소 정당성을 얻는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원칙이지만, 다수의 횡포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국회의 존재 이유도 법안을 빨리 처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토론하고 설득하며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토론 없는 국회는 거수기에 불과하고, 협치 없는 의회는 민주주의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은 국회가 싸우라고 권력을 준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한을 위임했다. 오늘날 정치권이 가장 크게 잃어버린 것은 상대를 인정하는 마음이다. 정당은 경쟁하지만 국가는 공동체다. 여야는 선거에서는 경쟁자일지라도 국정에서는 동반자여야 한다.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순간 정치의 본질은 사라지고 적대만 남는다. 소수당 역시 국민이 선택한 헌법기관이다. 그들의 권한을 무력화하는 것은 그들을 지지한 국민의 목소리를 지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제 국회는 정치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첫째, 여야가 참여하는 상설 협치협의체를 제도화해 원 구성과 주요 법안은 충분한 협의를 거친 뒤 처리하는 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 둘째, 필리버스터와 상임위원회 토론권 등 소수 의견을 보장하는 제도를 정치적 편의에 따라 훼손해서는 안 된다. 셋째, 다수당은 숫자의 힘보다 책임의 무게를 먼저 생각하고, 소수당 역시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는 책임 있는 야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넷째, 국회의원 개개인은 당리당략보다 헌법과 국민을 우선하는 의회주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국회에 부여한 책무다. 맹자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고 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이 말은 더욱 절실하다. 국민 위에 정당이 있을 수 없고, 국민 위에 국회도 있을 수 없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잠시 위임받은 것일 뿐이다.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대결보다 대화를, 독주보다 협치를, 승리보다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의회주의는 힘이 아니라 절제에서 완성되고,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에서 꽃핀다. 지금 국회가 되찾아야 할 것은 더 많은 권력이 아니라 더 깊은 겸손이며,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넓은 포용이다. 대한민국 정치는 지금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오만과 독선의 길을 계속 걸을 것인가, 아니면 상식과 협치의 길로 돌아갈 것인가. 역사는 언제나 힘보다 품격을 기억했고, 국민은 언제나 권력보다 책임을 선택했다. 국회는 이제라도 '도(道)'를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무너져가는 의회주의를 살리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2026-07-03 16: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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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미국행에 청문회·혁신위까지…월드컵 참사가 흔든 한국 축구
[경제일보]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의 후폭풍이 한국 축구 전체를 흔들고 있다. 대표팀의 성적 부진은 감독 책임론에 머물지 않고 대한축구협회의 의사결정 구조, 감독 선임 과정, 선수단 관리, 유소년 육성 시스템, 축구 행정의 투명성 문제로 번지고 있다. 여기에 홍명보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미국 출국 논란, 국회의 청문회 추진 움직임, 문화체육관광부 주도의 ‘K-축구 혁신위원회’ 출범까지 맞물리면서 한국 축구는 사실상 전면적인 재검증 국면에 들어섰다. 귀국 이틀 만에 미국행…커진 ‘책임 회피’ 논란 가장 먼저 논란에 불을 붙인 것은 홍 전 감독의 출국이다. 홍 전 감독은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뒤 지난달 30일 귀국했지만, 불과 이틀 뒤인 2일 미국으로 떠났다. 홍 전 감독은 인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할 얘기는 있는데 언젠가 이야기가 잘 나올 것”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선수단 내분설에 대해서는 “전체적인 내분은 전혀 없었다”고 부인했고, 귀화 선수 옌스 카스트로프의 규율 위반 의혹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문제는 출국 시점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대한축구협회를 상대로 청문회 추진을 검토하고,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과 홍 전 감독의 증인 출석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이뤄진 출국이기 때문이다. 국회 문체위가 축구협회 청문회를 추진하고 있으며 홍 전 감독과 정 회장 등의 출석이 거론된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홍 전 감독의 미국행을 두고 ‘청문회 회피성 출국 아니냐’는 비판이 확산됐다. 물론 홍 전 감독의 출국을 곧바로 ‘도피성’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아직 공식적인 증인 채택이 이뤄진 단계가 아니고 출국을 제한할 법적 근거도 없다. 가족이 있는 미국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한 개인 일정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축구계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다. 대표팀이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직후 핵심 책임자로 지목된 인물이 충분한 설명 없이 해외로 떠난 것은 공적 책임의 측면에서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축구계 한 관계자는 “법적으로 문제 삼기 어렵다는 점과 별개로 국민적 실망이 큰 상황에서 감독이 직접 설명하고 책임지는 절차가 필요했다”며 “지금의 논란은 출국 자체보다 설명 부재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축구 행정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홍명보 전 감독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대표팀 운영과 협회 의사결정 구조가 얼마나 폐쇄적으로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감독 선임 논란부터 선수단 갈등설까지…쌓였던 불신 폭발 이번 월드컵 부진은 경기력 문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홍명보호는 대회 전부터 감독 선임 절차의 공정성 논란에 시달렸다. 클린스만 전 감독 체제 이후 대표팀 정상화가 시급한 상황이었지만 새 감독 선임 과정은 투명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력강화위원회와 협회 수뇌부가 어떤 기준으로 후보군을 압축했고 왜 홍 전 감독을 최종 선택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지 않았다.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은 그동안 축적된 불신을 한꺼번에 폭발시킨 계기가 됐다. 선수단 내부 갈등설도 논란을 키웠다. 홍 전 감독은 “전체적인 내분은 없었다”고 부인했지만, 팬들의 의문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손흥민 등 핵심 선수 기용 문제, 일부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 귀화 선수 활용과 규율 관리, 전술적 일관성 부재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대표팀 내부 사정을 둘러싼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확산된 것은 그 자체로 대표팀 소통 시스템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성적이 좋았다면 묻혔을 문제가 성적 부진과 결합하면서 감독 리더십과 협회 관리 능력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 셈이다. 국회 청문회 추진…정몽규 체제도 심판대 정치권도 움직이고 있다. 국회 청문회가 현실화될 경우 쟁점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될 전망이다. 먼저 감독 선임 과정의 적정성이다. 또 월드컵 준비와 대표팀 운영의 책임 소재다. 여기에 대한축구협회 거버넌스와 정몽규 회장 체제의 구조적 문제다.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는 대한축구협회의 독선과 무능이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회 차원의 대책을 논의하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축구계에서는 청문회가 단순한 망신주기식 책임 추궁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감독 선임 과정의 회의록 △후보군 평가 기준 △협회 내부 의사결정 라인 △대표팀 지원 체계 △기술위원회 기능 등을 구체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체육계 인사는 “누가 사과하고 물러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왜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라며 “청문회가 열린다면 협회 운영 구조와 대표팀 시스템을 점검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성 앞세운 혁신위 출범…‘보여주기식 쇄신’ 넘을까 문체부도 별도 대응에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휘영 장관과 박지성 FIFA 분과위원회 위원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K-축구 혁신위원회’를 오는 6일 출범시키기로 했다. 혁신위에는 이영표·박주호 해설위원 등 축구인과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김승희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 조연상 프로축구연맹 사무총장, 유영근 변호사, 김대희 부경대 교수 등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혁신위는 축구 거버넌스, 유소년 선수 육성, 첨단 기술 시스템 도입 등 한국 축구의 중장기 과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박지성 공동위원장은 “현장에서 논의된 다양한 고민을 담아 대한민국 축구가 나아갈 방향을 함께 설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휘영 장관도 혁신위가 주요 과제를 종합적으로 논의하고, 신뢰받는 축구인들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축구의 비전이 수립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축구협회 운영 문제를 단순 감사 차원이 아니라 구조개혁 의제로 끌어올리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만 혁신위가 실질적인 개혁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한국 축구는 월드컵 실패 때마다 쇄신을 약속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책임은 흐려지고 제도 개선은 미뤄졌다. 유소년 육성, 기술 철학 정립, 지도자 시스템 개선, 협회 투명성 강화는 오래전부터 제기된 과제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위원회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권한으로 무엇을 바꾸고 언제까지 실행할 것인지를 명확히 하는 일이다. 한국 축구의 상대는 이제 ‘불투명한 시스템’ 스포츠정책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한국 축구의 ‘거버넌스 위기’로 본다. 한 체육계 인사는 “대표팀 감독 선임부터 월드컵 평가까지 모든 과정이 사후적으로 설명되는 구조에서는 국민 신뢰를 얻기 어렵다”며 “협회가 스스로 투명성을 높이지 못하면 국회와 정부의 개입 명분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 축구는 지금 세 개의 심판대 앞에 서 있다. 팬들은 성적 부진의 책임을 묻고 있다. 국회는 협회 운영의 투명성을 따지려 한다. 정부는 혁신위를 통해 구조개혁의 방향을 제시하려 한다. 홍명보 전 감독의 미국 출국 논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지만 더 넓게 보면 책임 있는 설명과 투명한 의사결정이 실종된 한국 축구 행정의 민낯을 드러낸 장면이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월드컵은 끝났지만 한국 축구의 진짜 평가는 이제 시작됐는데 상대는 더 이상 조별리그 상대국이 아니다”라며 “불투명한 감독 선임, 폐쇄적 협회 운영, 책임 없는 리더십, 반복되는 임시방편이 한국 축구가 넘어야 할 진짜 상대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번에도 성적 부진을 몇몇 개인의 사퇴로만 봉합한다면 다음 월드컵에서도 한국 축구는 같은 질문 앞에 다시 서게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2026-07-03 15:3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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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치 실종시킨 여야 대표, 선거 끝나면 책임져야 한다
[경제일보] 6·3 지방선거가 막판으로 치닫고 있다. 선거일은 2026년 6월 3일, 사전투표는 5월 29~30일 진행된다. 지방선거라면 본래 시민의 하루를 묻는 선거여야 한다. 내 집 앞 도로를 누가 고칠 것인가. 지역 산업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청년 일자리와 돌봄, 교통, 주거, 지방재정의 해법은 무엇인가. 그러나 이번 선거판에서 유권자가 가장 자주 들은 말은 정책이 아니라 적대의 언어였다. 여당은 야당을 심판하자고 외쳤고, 야당은 정권을 견제하자고 맞받았다. 지방정부를 뽑는 선거가 중앙정치의 대리전으로 변질됐다. 그 책임의 맨 앞에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있다. 정 대표의 위기는 역설적으로 민주당의 가장 강한 기반에서 터졌다. 전북도지사 선거다. 전북은 오랫동안 민주당의 텃밭으로 불렸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이원택 후보와 민주당 출신 무소속 김관영 후보가 맞붙으면서 선거는 ‘민주당 대 국민의힘’ 구도가 아니라 ‘민주당 내부 분열’의 양상으로 바뀌었다. 실제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선거전이 민주당에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전라일보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2026년 5월 25~26일 전북특별자치도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가상번호 ARS 방식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김관영 후보 51.9%, 이원택 후보 35.3%로 집계됐다. 두 후보 격차는 16.6%포인트로, 표본오차 ±3.1%포인트(신뢰수준 95%)를 넘어섰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또 새전북신문이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5월 21~22일 전북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무선 가상번호 ARS 100% 방식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김관영 후보 47.3%, 이원택 후보 38.7%로 나타났다. 격차는 8.6%포인트로 95% 신뢰수준의 표본오차 ±3.1%포인트를 벗어났다. 이 정도면 단순한 지역 선거의 변수가 아니다. 정청래 지도부의 공천, 통합, 갈등 관리 능력에 대한 심판이다. 김관영 후보가 무소속으로 당선된다면 정 대표는 정치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민주당이 가장 강해야 할 곳에서 민주당 후보가 패한다면 그것은 후보 개인의 패배에 그치지 않는다. 당 대표가 텃밭을 관리하지 못했고, 내부 갈등을 봉합하지 못했으며, 유권자에게 납득 가능한 공천의 명분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선거 막판 전북이 민주당 전체 리더십의 시험대가 된 셈이다. 다만 “이원택 후보가 10%포인트 이상 이기지 않으면 정 대표가 물러나야 한다”거나 “2~3%포인트 차 신승도 책임론을 피하기 어렵다”는 여권 일각의 목소리도 새어나온다. 전북에서 민주당 후보가 압승하지 못하는 상황 자체가 정 대표에게는 치명적이다. 텃밭에서조차 당심과 민심이 갈라졌다면 당 대표는 먼저 자신의 언어와 방식, 공천과 선거 전략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 대표의 더 큰 문제는 선거의 품격을 높이지 못했다는 데 있다. 민주당 대표라면 지방선거를 지역정책 경쟁으로 끌고 갔어야 했다. 전북에서는 새만금, 산업, 농생명, 금융중심지, 인구소멸 대응을 놓고 싸웠어야 한다. 서울에서는 주거와 교통, 재정과 복지를 놓고 경쟁했어야 한다. 그러나 선거판에는 ‘심판’과 ‘응징’의 언어가 앞섰다. 정 대표는 국민의힘 공천을 향해 ‘윤 어게인 공천’ ‘내란 맞춤형 공천’이라는 강한 표현을 썼다. 물론 야당 공천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여당 대표의 언어가 매일같이 전투 구호로 흘러가면, 지방선거는 사라지고 정쟁만 남는다. 장동혁 대표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은 이번 선거에서 정권 견제론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견제론만으로는 중도층을 설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장 대표는 선거 전부터 당내 책임론에 시달렸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지도부 책임론과 선거 전략을 둘러싼 내홍이 커졌고, 일부 후보들이 중앙당과 거리를 두는 흐름까지 나타난 게 사실이다. 장 대표의 방미를 두고도 ‘지방선거에 도움이 되느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선거를 앞둔 당 대표가 지역 민심의 한복판에 있어도 모자랄 때, 당 안팎에서 ‘미국에 지방선거 표가 있느냐’는 비판이 나왔다면 이미 리더십은 상처를 입은 것이다. 장 대표는 보수 결집에는 일정한 효과를 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선거는 결집만으로 이길 수 없다. 특히 지방선거는 중도층, 생활형 유권자, 지역 현안에 민감한 무당층을 설득해야 한다. 정권 견제 구호가 아무리 선명해도 유권자의 밥상과 일자리, 교통과 집값에 대한 답이 약하면 표의 확장성은 막힌다. 장 대표 체제의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 보수 재편, 중도 확장이라는 숙제를 동시에 안고 있었다. 그런데 선거 막판까지 당의 얼굴은 새로움보다 분열에 가까웠고, 메시지는 생활보다 이념에 가까웠다. 한동훈 전 대표의 부산 출마 또는 선전 여부가 장 대표 책임론의 또 다른 뇌관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장 대표의 선거 리더십과 한 전 대표의 독자적 경쟁력이 비교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만약 부산 북구갑 선거에서 한 전 대표가 선전하고, 국민의힘 전체 성적표가 기대에 못 미친다면 장 대표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이 패배한다면 “누가 당의 간판이었느냐”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여야 대표의 공통된 실패는 선거를 ‘국민의 삶’이 아니라 ‘자기 진영의 생존’으로 끌고 갔다는 점이다. 정청래 대표는 민주당의 압도적 기반을 통합의 장으로 만들지 못했고, 장동혁 대표는 보수의 분노를 중도 확장의 언어로 바꾸지 못했다. 한쪽은 텃밭 분열을 방치했고, 다른 한쪽은 외연 확장에 실패했다. 둘 다 선거를 크게 만들었지만, 정작 지역을 크게 만들지는 못했다. 정치는 말로 시작하지만 결과로 심판받는다. 《논어》에 “군자는 말을 어눌하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하려 한다”는 뜻의 구절이 있다. 선거 때마다 정치인은 말이 넘친다. 그러나 유권자가 원하는 것은 거친 말의 승리가 아니라 책임 있는 행동의 결과다. 지역을 살리겠다는 정책, 갈등을 줄이겠다는 태도, 상대 진영 유권자까지 설득하겠다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여야 대표는 그 기본을 놓쳤다. 선거가 끝나면 양당은 변명부터 찾을 것이다. 민주당은 ‘무소속 변수’를 말할 것이고, 국민의힘은 ‘불리한 구도’를 말할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는 유리한 판에서만 책임지는 사람이 아니다. 어려운 판에서 판을 바꾸라고 세운 자리가 당 대표다. 정청래 대표가 전북을 잃거나 신승에 그친다면, 그것은 민주당의 오만과 내분 관리 실패에 대한 경고다. 장동혁 대표가 지방선거에서 패한다면, 그것은 보수가 중도층을 설득할 언어를 잃었다는 판정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망친 책임은 후보들에게만 있지 않다. 정쟁을 키우고 정책을 밀어낸 여야 대표에게 더 크다. 선거가 끝난 뒤 두 대표가 해야 할 일은 남 탓이 아니다. 성적표가 참담하다면 물러나는 것이 책임 정치의 출발이다. 정치는 자리를 지키는 기술이 아니라 책임지는 윤리다. 그 상식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이번 지방선거의 진짜 패자는 어느 당 후보가 아니라 한국 정치 전체가 될 것이다.
2026-05-29 16:3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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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정책 선거, 피해는 시민에게
[경제일보] 6·3 지방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유권자는 지역의 향후 4년을 맡길 시장·도지사·구청장·군수·지방의원·교육감을 골라야 한다. 그런데 정작 선거판에서 시민이 확인해야 할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일자리, 교통, 주거, 교육, 돌봄, 지방재정, 산업전환 같은 의제는 뒤로 밀리고, 상대를 흠집 내는 말싸움과 진영 결집 구호가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방선거는 본래 가장 생활에 가까운 선거다. 대통령 선거가 국가의 방향을 묻는 선거라면, 지방선거는 시민의 하루를 묻는 선거다. 출근길 버스 배차 간격을 줄일 사람은 누구인가. 낡은 원도심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아이를 맡길 학교와 돌봄 인프라는 충분한가. 청년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일할 산업 기반은 있는가. 고령층의 병원 접근성은 어떻게 높일 것인가. 자영업자의 임대료와 골목상권 문제를 누가 풀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이 지방선거의 본질이다. 정책 경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역별로 교통망 확충, 산업단지 조성, 공항·철도·도청 이전, 지방세 활용 방안 등 크고 작은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문제는 공약의 존재가 아니라 공약의 검증이다. 재원은 어디서 마련할 것인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권한은 어떻게 나뉘는지, 이미 추진 중인 사업과 충돌하지 않는지, 임기 안에 실현 가능한지 따지는 장면이 드물다. 선거가 정쟁으로 흐르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숫자다. 예산 총액, 사업 기간, 지방채 부담, 민간투자 조건, 행정 절차, 법적 근거 같은 숫자와 제도가 뒷전으로 밀린다. 그 빈자리를 구호가 채운다. ‘반드시 해내겠다’, ‘심판해야 한다’, ‘정권을 지켜야 한다’,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말은 귀에 잘 들어오지만 시민의 삶을 바꾸는 설계도는 아니다. 지역 행정은 열정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도로 하나, 학교 하나, 병원 하나를 세우는 데도 예산과 인허가, 주민 수용성, 장기 운영비가 따라붙는다. 정쟁은 그 복잡한 문제를 한 줄 구호로 단순화한다. 정쟁 선거의 폐해는 분명하다. 첫째, 행정의 우선순위가 뒤틀린다. 후보는 지역의 구조적 문제보다 상대 후보를 공격하기 쉬운 이슈를 선택한다. 둘째, 공약의 품질이 낮아진다. 재원과 실현 가능성보다 표를 얻기 쉬운 장밋빛 약속이 늘어난다. 셋째, 선거 이후 협치가 어려워진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한 선거는 당선 뒤에도 의회와 집행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력을 가로막는다. 결국 시민은 더 비싼 행정비용을 치른다. 특히 올해 지방선거는 경제 환경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치러지고 있다. 고물가의 기억은 아직 생활비 곳곳에 남아 있고,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와 에너지 가격 불안, 미국의 통상정책 변화, 지역 제조업의 산업전환 압박도 크다.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지만,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역 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바꿀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어떻게 지원할지, 청년층의 주거와 일자리를 어떻게 연결할지, 고령화 지역의 의료·돌봄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에 따라 지역의 생존력이 달라진다. 정당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방선거 때마다 중앙당은 지역 일꾼을 말하지만 실제 선거운동은 중앙 정치 구도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여당은 국정 안정론을, 야당은 견제론을 앞세운다. 물론 지방정부도 중앙정부 정책과 예산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중앙 프레임이 지역 의제를 집어삼키는 순간, 지방선거는 시민의 생활 선거가 아니라 정당의 중간평가 이벤트로 전락한다. 후보들도 달라져야 한다. 상대의 약점을 말할 수 있다. 선거는 경쟁이고 검증은 필요하다. 그러나 검증과 네거티브는 다르다. 검증은 공직 수행 능력, 이해충돌, 재정 운용, 정책 실현 가능성을 따지는 일이다. 네거티브는 시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감정의 소모전이다. 후보가 상대를 공격하는 데 쓴 시간만큼, 시민은 자신의 삶을 바꿀 정책을 들을 기회를 잃는다. 언론 역시 예외가 아니다. 말싸움은 기사화하기 쉽고 강한 표현은 제목이 된다. 그러나 지역 유권자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공약의 비교표와 재원 검증, 후보의 행정 경험, 기존 사업의 연속성과 수정 가능성에 대한 분석이다. 지방선거 보도는 누가 누구를 비판했는지보다, 그 비판이 사실인지, 대안은 있는지, 비용은 얼마인지까지 물어야 한다. 시민에게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래서 우리 동네에는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그 돈은 어디서 마련하겠다는 것인가’, ‘임기 안에 가능한가’, ‘실패하면 무엇을 조정할 것인가’ 등을 물어야 한다. 정쟁의 소음은 큰 목소리로 번지지만 정책의 힘은 구체적인 질문에서 자란다. 유권자가 구호보다 숫자를 요구할 때 후보는 달라진다. 이번 지방선거의 핵심은 어느 정당이 더 크게 이기느냐만이 아니다. 선거 이후 시민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느냐다. 교통난이 줄고, 빈 상가가 채워지고, 지역 병원이 버티고, 학교가 안정되고, 청년이 떠나지 않는 도시를 만들 수 있느냐가 본질이다. 그 일을 하라고 지방권력을 맡기는 것이다. 정책 선거가 실종되면 피해는 추상적인 국민에게 가지 않는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 학원비를 걱정하는 부모, 매출 부진에 버티는 자영업자, 일자리를 찾아 떠날지 고민하는 청년, 병원까지 한 시간을 가야 하는 노인에게 간다. 정쟁의 비용은 늘 생활인의 지갑과 시간과 기회로 청구된다. 6·3 지방선거는 아직 늦지 않았다. 남은 기간만이라도 여야와 후보들은 중앙정치의 칼날을 거두고 지역의 장부를 펼쳐야 한다. 누가 더 세게 공격했는지가 아니라 누가 더 정확히 진단하고, 더 현실적인 해법을 내놓고, 더 책임 있게 실행할 수 있는지를 겨뤄야 한다. 지방선거의 주인은 정당이 아니라 시민이다. 선거판의 언어가 다시 시민의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선거가 끝난 뒤에도 지역이 남고, 행정이 남고, 미래가 남는다.
2026-05-19 16: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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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기념이 됐지만, 진실과 배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제일보] 5·18민주화운동이 46주년을 맞았지만 오월의 과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국가기념일로 자리 잡고 기념식은 매년 열리고 있지만 발포명령자 규명, 행방불명자 확인,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온전한 배상, 왜곡·폄훼 대응,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가장 큰 미완의 과제는 진상규명이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2024년 종합보고서를 내고 4년여 활동을 마무리했다. 조사위는 민간인 학살과 희생자 사망 경위, 일부 왜곡 주장의 허구성을 확인하는 성과를 냈지만, 핵심 쟁점인 발포명령자와 행방불명자 문제는 끝내 규명하지 못했다. 활동 종료로 추가 조사는 중단됐고, 조사위는 국가 차원의 후속 조치를 권고하는 데 그쳤다. 발포명령자 규명은 5·18 진실의 마지막 퍼즐로 꼽힌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이뤄졌다는 사실은 여러 조사와 판결을 통해 확인됐지만, 누가 최종적으로 발포를 명령했는지에 대한 법적·역사적 결론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행방불명자와 암매장 의혹 역시 유족들에게는 ‘끝나지 않은 5월’로 남아 있다. 배상 문제도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올해 1월 5·18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본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1990년대 보상금을 받았더라도 국가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별도 위자료 청구 길을 연 판단이다. 이번 판결은 기존 보상 체계의 한계를 드러낸다. 그동안 5·18 피해 보상은 사망·부상·구금 등 물리적 피해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계엄군 폭력과 고문, 가족의 사망과 실종, 오랜 낙인과 침묵이 남긴 정신적 피해는 충분히 평가되지 못했다. 유족과 생존자들은 단순 보상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의 성격을 다시 규정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왜곡과 폄훼 대응도 여전히 난제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으로 허위사실에 근거해 5·18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거나 폄훼하면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도입됐지만, 실제 적용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법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규정하지만, 예술·학문·연구·보도 목적 등에 대한 면책 조항이 넓어 실효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북한군 개입설과 희생자 모욕, 유공자 특혜 주장 같은 허위 정보가 반복적으로 재생산된다. 5·18기념재단 등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댓글 모니터링을 확대하고 삭제 요청에 나서고 있지만, 플랫폼 확산 속도와 익명성을 따라잡기 어렵다. 왜곡은 단순한 표현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2차 가해이자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공격이라는 점에서 제도적 보완 요구가 커지고 있다. 헌법 전문 수록 문제도 올해 다시 쟁점이 됐다.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추진해 온 시민사회단체들은 최근 개헌안 국회 의결이 무산된 데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5·18 46주년을 앞두고 국립5·18민주묘지 앞에서는 헌법 전문 수록 표결 불참과 무산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민사회는 5·18정신의 헌법 수록이 특정 지역의 요구가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헌정사적 정당성을 확인하는 절차라고 주장했다.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단순한 상징 논쟁이 아니다. 1980년 광주의 저항을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 과정의 핵심 가치로 명문화하느냐의 문제다. 4·19혁명과 부마민주항쟁, 6월항쟁과 함께 5·18을 헌법 질서 안에 분명히 새겨야 한다는 요구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그러나 정치권의 합의 부족과 개헌 절차의 난맥 속에 매번 문턱을 넘지 못했다. 46주년을 맞은 광주의 과제는 세 갈래로 압축된다. 첫째, 진상규명은 조사위 보고서로 끝낼 수 없다. 발포명령자와 행방불명자, 암매장 의혹 등 남은 쟁점에 대한 국가 차원의 후속 조사와 자료 공개가 필요하다. 둘째, 배상은 금전 지급을 넘어 국가폭력 피해의 실체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보완돼야 한다. 셋째, 왜곡·폄훼 대응과 헌법 전문 수록은 5·18을 현재의 민주주의 가치로 지켜내는 제도적 장치가 돼야 한다. 5·18은 이미 국가기념일이 됐고 광주는 매년 추모의 광장이 된다. 그러나 기념이 제도화됐다고 해서 진실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누가 명령했고, 누가 사라졌으며, 누가 아직도 고통 속에 있는지에 대한 답은 충분하지 않다. 오월이 광장으로 돌아왔다면 이제 국가는 그 광장 앞에서 남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2026-05-18 1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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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선 정치, 길 잃은 경제...상식과 원칙의 복원이 시급하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함선이 짙은 안개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거센 파도가 배를 때리고 있지만, 조타실의 키는 고장 났고 엔진은 가열된 채 비명만 지른다. 작금의 현실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자면 '정치는 죽었고, 경제는 멍들었다'는 탄식일 것이다. 경제는 불확실성이라는 늪에 빠져 방향을 잃었으며, 정치는 정쟁이라는 족쇄에 묶여 기능을 상실했다. 더 비극적인 사실은 이 두 축이 서로를 구원하기는커녕 서로의 발목을 잡아채며 동반 침몰의 길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의 부침 속에서도 지금처럼 '기본'과 '상식'이 무너진 적은 드물었다. 인류의 오랜 지혜를 담은 경전들은 공통으로 '화합'과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가르친다.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 '식량을 충분히 하고, 군대를 튼튼히 하며, 백성의 믿음을 얻는 것(足食, 足兵, 民信)'을 꼽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이 중 하나라도 온전한 것이 있는가. 우선, 경제의 맥박이 희미해지고 있다. 내수 침체의 골은 깊어지는데 대외 환경은 흡사 전장(戰場)을 방불케 한다. 글로벌 공급망의 급격한 재편, 격화되는 미·중 패권 경쟁, 그리고 고금리의 장기화는 한국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가는 명확한 나침반을 제시해야 한다. 정책의 일관성과 적기(適期) 대응은 시장의 신뢰를 먹고 산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 정책은 시장에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규제 혁파를 외치면서도 정작 기업의 손발을 묶는 입법은 쏟아지고,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면서도 선거철만 되면 포퓰리즘의 유혹에 흔들린다. 구조개혁이라는 과제는 구호로만 존재할 뿐, 실행의 용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시장이 정책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정책을 의심하고 회피하는 현상은 국가 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신호탄이다. 노동 문제에 이르면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노동은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는 신성한 가치이자 경제 발전의 핵심 동력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노동의 '유연성'과 '안전망'이라는 두 가치를 놓고 극단적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경영계는 생존을 위해 유연화를 외치고, 노동계는 생존권을 위해 보호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는 택일(擇一)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가 쌓아온 보편적 상식에 비추어 볼 때, 생산성이 담보되지 않는 임금 인상은 기업의 파멸을 부르고, 안전망 없는 유연화는 공동체의 붕괴를 초래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균형의 예술'이다. 그러나 작금의 논의는 해법을 찾는 치열한 고민 대신 진영 논리라는 낡은 프레임에 갇혀 있다. 상대방을 타도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순간, 합리적인 대안은 설 자리를 잃는다. 원칙과 상식에 기반한 사회적 대타협은 실종되었고, 그 빈자리를 자극적인 선동과 혐오가 채우고 있다. 정치가 경제의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고 공동체의 비전을 설정하는 고도의 지적 행위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갈등을 먹고 자라는 기생(寄生) 정치가 되어버렸다. 민생은 뒷전이고 정파적 이익을 위한 입법 전쟁에만 몰두한다.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던 과거의 일침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 참담할 따름이다. 이제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류 경전의 가르침대로 순리를 따르고 상식을 회복해야 한다. 경제 정책은 정치가 아닌 '숫자'와 '현장'의 목소리에 기반해야 하며, 노동 개혁은 진영이 아닌 '상생'의 원칙 위에 세워져야 한다. 정치권은 서로를 향한 삿대질을 멈추고 국가의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협치(協治)를 보여줘야 한다. 국민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정치가 경제를 가로막고, 경제가 미래를 보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위기는 기회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지만, 그 기회는 준비된 자, 즉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법이다. 지금 당장 정치는 제자리로 돌아오고, 경제는 다시금 성장의 엔진을 가동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준엄한 책무다.
2026-05-06 16:5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