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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정책 선거, 피해는 시민에게
[경제일보] 6·3 지방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유권자는 지역의 향후 4년을 맡길 시장·도지사·구청장·군수·지방의원·교육감을 골라야 한다. 그런데 정작 선거판에서 시민이 확인해야 할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일자리, 교통, 주거, 교육, 돌봄, 지방재정, 산업전환 같은 의제는 뒤로 밀리고, 상대를 흠집 내는 말싸움과 진영 결집 구호가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방선거는 본래 가장 생활에 가까운 선거다. 대통령 선거가 국가의 방향을 묻는 선거라면, 지방선거는 시민의 하루를 묻는 선거다. 출근길 버스 배차 간격을 줄일 사람은 누구인가. 낡은 원도심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아이를 맡길 학교와 돌봄 인프라는 충분한가. 청년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일할 산업 기반은 있는가. 고령층의 병원 접근성은 어떻게 높일 것인가. 자영업자의 임대료와 골목상권 문제를 누가 풀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이 지방선거의 본질이다. 정책 경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역별로 교통망 확충, 산업단지 조성, 공항·철도·도청 이전, 지방세 활용 방안 등 크고 작은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문제는 공약의 존재가 아니라 공약의 검증이다. 재원은 어디서 마련할 것인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권한은 어떻게 나뉘는지, 이미 추진 중인 사업과 충돌하지 않는지, 임기 안에 실현 가능한지 따지는 장면이 드물다. 선거가 정쟁으로 흐르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숫자다. 예산 총액, 사업 기간, 지방채 부담, 민간투자 조건, 행정 절차, 법적 근거 같은 숫자와 제도가 뒷전으로 밀린다. 그 빈자리를 구호가 채운다. ‘반드시 해내겠다’, ‘심판해야 한다’, ‘정권을 지켜야 한다’,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말은 귀에 잘 들어오지만 시민의 삶을 바꾸는 설계도는 아니다. 지역 행정은 열정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도로 하나, 학교 하나, 병원 하나를 세우는 데도 예산과 인허가, 주민 수용성, 장기 운영비가 따라붙는다. 정쟁은 그 복잡한 문제를 한 줄 구호로 단순화한다. 정쟁 선거의 폐해는 분명하다. 첫째, 행정의 우선순위가 뒤틀린다. 후보는 지역의 구조적 문제보다 상대 후보를 공격하기 쉬운 이슈를 선택한다. 둘째, 공약의 품질이 낮아진다. 재원과 실현 가능성보다 표를 얻기 쉬운 장밋빛 약속이 늘어난다. 셋째, 선거 이후 협치가 어려워진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한 선거는 당선 뒤에도 의회와 집행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력을 가로막는다. 결국 시민은 더 비싼 행정비용을 치른다. 특히 올해 지방선거는 경제 환경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치러지고 있다. 고물가의 기억은 아직 생활비 곳곳에 남아 있고,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와 에너지 가격 불안, 미국의 통상정책 변화, 지역 제조업의 산업전환 압박도 크다.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지만,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역 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바꿀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어떻게 지원할지, 청년층의 주거와 일자리를 어떻게 연결할지, 고령화 지역의 의료·돌봄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에 따라 지역의 생존력이 달라진다. 정당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방선거 때마다 중앙당은 지역 일꾼을 말하지만 실제 선거운동은 중앙 정치 구도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여당은 국정 안정론을, 야당은 견제론을 앞세운다. 물론 지방정부도 중앙정부 정책과 예산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중앙 프레임이 지역 의제를 집어삼키는 순간, 지방선거는 시민의 생활 선거가 아니라 정당의 중간평가 이벤트로 전락한다. 후보들도 달라져야 한다. 상대의 약점을 말할 수 있다. 선거는 경쟁이고 검증은 필요하다. 그러나 검증과 네거티브는 다르다. 검증은 공직 수행 능력, 이해충돌, 재정 운용, 정책 실현 가능성을 따지는 일이다. 네거티브는 시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감정의 소모전이다. 후보가 상대를 공격하는 데 쓴 시간만큼, 시민은 자신의 삶을 바꿀 정책을 들을 기회를 잃는다. 언론 역시 예외가 아니다. 말싸움은 기사화하기 쉽고 강한 표현은 제목이 된다. 그러나 지역 유권자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공약의 비교표와 재원 검증, 후보의 행정 경험, 기존 사업의 연속성과 수정 가능성에 대한 분석이다. 지방선거 보도는 누가 누구를 비판했는지보다, 그 비판이 사실인지, 대안은 있는지, 비용은 얼마인지까지 물어야 한다. 시민에게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래서 우리 동네에는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그 돈은 어디서 마련하겠다는 것인가’, ‘임기 안에 가능한가’, ‘실패하면 무엇을 조정할 것인가’ 등을 물어야 한다. 정쟁의 소음은 큰 목소리로 번지지만 정책의 힘은 구체적인 질문에서 자란다. 유권자가 구호보다 숫자를 요구할 때 후보는 달라진다. 이번 지방선거의 핵심은 어느 정당이 더 크게 이기느냐만이 아니다. 선거 이후 시민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느냐다. 교통난이 줄고, 빈 상가가 채워지고, 지역 병원이 버티고, 학교가 안정되고, 청년이 떠나지 않는 도시를 만들 수 있느냐가 본질이다. 그 일을 하라고 지방권력을 맡기는 것이다. 정책 선거가 실종되면 피해는 추상적인 국민에게 가지 않는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 학원비를 걱정하는 부모, 매출 부진에 버티는 자영업자, 일자리를 찾아 떠날지 고민하는 청년, 병원까지 한 시간을 가야 하는 노인에게 간다. 정쟁의 비용은 늘 생활인의 지갑과 시간과 기회로 청구된다. 6·3 지방선거는 아직 늦지 않았다. 남은 기간만이라도 여야와 후보들은 중앙정치의 칼날을 거두고 지역의 장부를 펼쳐야 한다. 누가 더 세게 공격했는지가 아니라 누가 더 정확히 진단하고, 더 현실적인 해법을 내놓고, 더 책임 있게 실행할 수 있는지를 겨뤄야 한다. 지방선거의 주인은 정당이 아니라 시민이다. 선거판의 언어가 다시 시민의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선거가 끝난 뒤에도 지역이 남고, 행정이 남고, 미래가 남는다.
2026-05-19 16: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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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기념이 됐지만, 진실과 배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제일보] 5·18민주화운동이 46주년을 맞았지만 오월의 과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국가기념일로 자리 잡고 기념식은 매년 열리고 있지만 발포명령자 규명, 행방불명자 확인,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온전한 배상, 왜곡·폄훼 대응,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가장 큰 미완의 과제는 진상규명이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2024년 종합보고서를 내고 4년여 활동을 마무리했다. 조사위는 민간인 학살과 희생자 사망 경위, 일부 왜곡 주장의 허구성을 확인하는 성과를 냈지만, 핵심 쟁점인 발포명령자와 행방불명자 문제는 끝내 규명하지 못했다. 활동 종료로 추가 조사는 중단됐고, 조사위는 국가 차원의 후속 조치를 권고하는 데 그쳤다. 발포명령자 규명은 5·18 진실의 마지막 퍼즐로 꼽힌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이뤄졌다는 사실은 여러 조사와 판결을 통해 확인됐지만, 누가 최종적으로 발포를 명령했는지에 대한 법적·역사적 결론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행방불명자와 암매장 의혹 역시 유족들에게는 ‘끝나지 않은 5월’로 남아 있다. 배상 문제도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올해 1월 5·18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본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1990년대 보상금을 받았더라도 국가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별도 위자료 청구 길을 연 판단이다. 이번 판결은 기존 보상 체계의 한계를 드러낸다. 그동안 5·18 피해 보상은 사망·부상·구금 등 물리적 피해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계엄군 폭력과 고문, 가족의 사망과 실종, 오랜 낙인과 침묵이 남긴 정신적 피해는 충분히 평가되지 못했다. 유족과 생존자들은 단순 보상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의 성격을 다시 규정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왜곡과 폄훼 대응도 여전히 난제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으로 허위사실에 근거해 5·18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거나 폄훼하면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도입됐지만, 실제 적용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법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규정하지만, 예술·학문·연구·보도 목적 등에 대한 면책 조항이 넓어 실효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북한군 개입설과 희생자 모욕, 유공자 특혜 주장 같은 허위 정보가 반복적으로 재생산된다. 5·18기념재단 등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댓글 모니터링을 확대하고 삭제 요청에 나서고 있지만, 플랫폼 확산 속도와 익명성을 따라잡기 어렵다. 왜곡은 단순한 표현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2차 가해이자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공격이라는 점에서 제도적 보완 요구가 커지고 있다. 헌법 전문 수록 문제도 올해 다시 쟁점이 됐다.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추진해 온 시민사회단체들은 최근 개헌안 국회 의결이 무산된 데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5·18 46주년을 앞두고 국립5·18민주묘지 앞에서는 헌법 전문 수록 표결 불참과 무산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민사회는 5·18정신의 헌법 수록이 특정 지역의 요구가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헌정사적 정당성을 확인하는 절차라고 주장했다.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단순한 상징 논쟁이 아니다. 1980년 광주의 저항을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 과정의 핵심 가치로 명문화하느냐의 문제다. 4·19혁명과 부마민주항쟁, 6월항쟁과 함께 5·18을 헌법 질서 안에 분명히 새겨야 한다는 요구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그러나 정치권의 합의 부족과 개헌 절차의 난맥 속에 매번 문턱을 넘지 못했다. 46주년을 맞은 광주의 과제는 세 갈래로 압축된다. 첫째, 진상규명은 조사위 보고서로 끝낼 수 없다. 발포명령자와 행방불명자, 암매장 의혹 등 남은 쟁점에 대한 국가 차원의 후속 조사와 자료 공개가 필요하다. 둘째, 배상은 금전 지급을 넘어 국가폭력 피해의 실체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보완돼야 한다. 셋째, 왜곡·폄훼 대응과 헌법 전문 수록은 5·18을 현재의 민주주의 가치로 지켜내는 제도적 장치가 돼야 한다. 5·18은 이미 국가기념일이 됐고 광주는 매년 추모의 광장이 된다. 그러나 기념이 제도화됐다고 해서 진실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누가 명령했고, 누가 사라졌으며, 누가 아직도 고통 속에 있는지에 대한 답은 충분하지 않다. 오월이 광장으로 돌아왔다면 이제 국가는 그 광장 앞에서 남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2026-05-18 1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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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선 정치, 길 잃은 경제...상식과 원칙의 복원이 시급하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함선이 짙은 안개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거센 파도가 배를 때리고 있지만, 조타실의 키는 고장 났고 엔진은 가열된 채 비명만 지른다. 작금의 현실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자면 '정치는 죽었고, 경제는 멍들었다'는 탄식일 것이다. 경제는 불확실성이라는 늪에 빠져 방향을 잃었으며, 정치는 정쟁이라는 족쇄에 묶여 기능을 상실했다. 더 비극적인 사실은 이 두 축이 서로를 구원하기는커녕 서로의 발목을 잡아채며 동반 침몰의 길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의 부침 속에서도 지금처럼 '기본'과 '상식'이 무너진 적은 드물었다. 인류의 오랜 지혜를 담은 경전들은 공통으로 '화합'과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가르친다.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 '식량을 충분히 하고, 군대를 튼튼히 하며, 백성의 믿음을 얻는 것(足食, 足兵, 民信)'을 꼽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이 중 하나라도 온전한 것이 있는가. 우선, 경제의 맥박이 희미해지고 있다. 내수 침체의 골은 깊어지는데 대외 환경은 흡사 전장(戰場)을 방불케 한다. 글로벌 공급망의 급격한 재편, 격화되는 미·중 패권 경쟁, 그리고 고금리의 장기화는 한국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가는 명확한 나침반을 제시해야 한다. 정책의 일관성과 적기(適期) 대응은 시장의 신뢰를 먹고 산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 정책은 시장에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규제 혁파를 외치면서도 정작 기업의 손발을 묶는 입법은 쏟아지고,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면서도 선거철만 되면 포퓰리즘의 유혹에 흔들린다. 구조개혁이라는 과제는 구호로만 존재할 뿐, 실행의 용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시장이 정책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정책을 의심하고 회피하는 현상은 국가 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신호탄이다. 노동 문제에 이르면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노동은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는 신성한 가치이자 경제 발전의 핵심 동력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노동의 '유연성'과 '안전망'이라는 두 가치를 놓고 극단적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경영계는 생존을 위해 유연화를 외치고, 노동계는 생존권을 위해 보호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는 택일(擇一)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가 쌓아온 보편적 상식에 비추어 볼 때, 생산성이 담보되지 않는 임금 인상은 기업의 파멸을 부르고, 안전망 없는 유연화는 공동체의 붕괴를 초래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균형의 예술'이다. 그러나 작금의 논의는 해법을 찾는 치열한 고민 대신 진영 논리라는 낡은 프레임에 갇혀 있다. 상대방을 타도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순간, 합리적인 대안은 설 자리를 잃는다. 원칙과 상식에 기반한 사회적 대타협은 실종되었고, 그 빈자리를 자극적인 선동과 혐오가 채우고 있다. 정치가 경제의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고 공동체의 비전을 설정하는 고도의 지적 행위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갈등을 먹고 자라는 기생(寄生) 정치가 되어버렸다. 민생은 뒷전이고 정파적 이익을 위한 입법 전쟁에만 몰두한다.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던 과거의 일침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 참담할 따름이다. 이제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류 경전의 가르침대로 순리를 따르고 상식을 회복해야 한다. 경제 정책은 정치가 아닌 '숫자'와 '현장'의 목소리에 기반해야 하며, 노동 개혁은 진영이 아닌 '상생'의 원칙 위에 세워져야 한다. 정치권은 서로를 향한 삿대질을 멈추고 국가의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협치(協治)를 보여줘야 한다. 국민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정치가 경제를 가로막고, 경제가 미래를 보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위기는 기회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지만, 그 기회는 준비된 자, 즉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법이다. 지금 당장 정치는 제자리로 돌아오고, 경제는 다시금 성장의 엔진을 가동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준엄한 책무다.
2026-05-06 16:5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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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의 실종, 정치의 균형은 어디에 있는가
[경제일보] 정치는 균형이다. 권력은 견제될 때 건강해지고, 국정은 경쟁 속에서 발전한다. 그런 점에서 야당은 단순한 반대 세력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축이다. 그러나 지금의 야당을 바라보면, 과연 그 최소한의 역할조차 수행하고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지우기 어렵다. 최근 국민의힘의 행보는 ‘공당’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과 조직 정비라는 중대한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당 대표가 장기간 해외 일정을 소화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상식 밖이다. 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이를 두고 당내에서 문제 제기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의 방향을 고민하고 바로잡아야 할 지도부가 집단적으로 침묵하고 있다면, 이는 단순한 판단 착오가 아니라 구조적 기능 상실에 가깝다. 더 큰 문제는 그 이후다. 해외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국민과 당원에게 설명할 만한 성과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행보에는 명분과 결과가 있어야 한다. 둘 중 하나라도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 자체로 책임의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현재의 상황은 문제 인식조차 결여된 듯 보인다. 현장에서 드러나는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 각 지역의 후보와 예비 후보들이 중앙당의 지원을 기대하기는 커녕, 오히려 각자도생의 길을 택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중앙당과 후보 간의 유기적 협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지금은 각자가 선거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혼선이 아니라 사실상의 ‘중앙당 해체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당은 조직이다. 조직이란 방향성과 통제, 그리고 책임이 작동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당 대표와 지도부는 존재하지만, 영향력은 보이지 않는다. 형식은 유지되고 있으나 내용은 사라진 상태다. 이와 대조적으로 거대 여당은 압도적 의석을 바탕으로 지방선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권력 집중에 대한 우려는 존재한다. 그러나 최소한 조직과 전략, 실행력이라는 측면에서는 분명한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정치의 균형 자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건전한 민주주의는 강한 여당과 책임 있는 야당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야당은 ‘반대’를 넘어 ‘부재’에 가까운 모습이다. 견제하지 못하는 권력은 결국 스스로 균형을 잃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정치는 명분이 아니라 실행이다. 그리고 공당은 책임으로 평가받는다. 지금 국민의 힘이 직면한 문제는 단순한 리더십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 전체가 방향을 잃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당 지도부는 상황의 심각성을 직시해야 한다. 지방선거는 단순한 지역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당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시험대다. 이 시험에서조차 조직을 정비하지 못한다면, 그 다음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야당이 바로 서지 못하면 정치도 바로 설 수 없다. 지금 국민이 묻고 있는 것은 단순하다. 과연 이 나라에 제대로 된 야당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해야 할 시간은 이미 시작되었다.
2026-04-22 07:5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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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이름의 미궁, 언제까지 죽음의길을 찾을 것인가
경남 진주 CU 물류센터 앞에서 울려 퍼지던 구호가 비명으로 바뀌었다. 원청의 교섭 참여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화물연대 조합원이 대체 차량과 충돌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했다. 지난달 10일,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시행된 이후 현장의 혼란이 비등점으로 치닫더니,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생명의 소실로 이어진 것이다. 노조 측은 이번 사고가 법 시행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긋는다. 이전부터 실질적인 지휘·감독을 받아왔기에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라는 목소리를 높여왔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형용모순이다.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범위를 확장하는 것 자체가 노란봉투법의 골자이자 핵심 쟁점이기 때문이다. 법의 울타리 안에서 권리를 찾으려는 투쟁이 법의 모호함이 만든 균열 사이에서 비극으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노란봉투법 시행 한 달 만에 나타난 지표들은 가히 충격적이다. 하청 노조 소속 14만여 명이 368개 원청 기업을 상대로 동시다발적인 교섭을 요구하고 나섰다. 노동위원회에 접수된 ‘단체교섭 거부 시정 요구’ 건수는 단 한 달 만에 지난해 1년 치에 육박하는 279건을 기록했다. 산업 현장은 그야말로 법적 분쟁과 대립의 화약고가 되었다. 그동안 노란봉투법 시행 전부터 여러 차례 지면을 통해 경고해 왔다.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사회적 합의 없이 밀어붙이는 입법은 노사 모두를 공멸의 길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현장의 불확실성이 물리적 충돌로 비화할 수 있음을 누차 강조했다. 그러나 정치권과 관계 당국은 귀를 닫았다. '입법 성과'라는 전리품에 취해 현장의 비명을 외면한 결과가 지금 우리가 마주한 차가운 주검이다.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이 뒤따라야 우리는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인가. 사태의 근본 원인은 법 조항의 추상성에 있다.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라는 문구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해석을 낳는다. 원청 기업 입장에서는 수많은 하청업체 노조와 일일이 교섭 테이블에 앉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뿐더러, 자칫 경영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를 느낀다. 반면 노동자들은 직접적인 지시를 내리는 진짜 주인을 찾겠다며 거리로 나선다. 이 평행선 같은 대립 사이에는 ‘대화’가 실종되어 있다.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노력 대신 법 조문을 방패 삼고, 집단행동을 창 삼아 맞붙는다. 고대 인류의 지혜를 담은 경전들은 한결같이 가르친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보편적 상식이자 인류 문명을 지탱해 온 기본 원칙이다. 하지만 지금의 노사 관계에는 오직 ‘나의 권리’만 있을 뿐 ‘상대의 사정’은 안중에도 없다. 이제는 멈춰야 한다. 누구 한쪽의 완승으로 끝날 수 없는 싸움이다. 노사 관계는 일방향적인 복종도, 파괴적인 투쟁도 아닌 '상대성'에 기반한 계약 공동체다. 자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상대의 숨통을 조이는 방식은 결국 스스로가 속한 생태계를 파괴하는 자해 행위나 다름없다. 첫째, 정부와 입법부는 즉각적인 법 보완에 착수해야 한다. 사용자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여 현장의 자의적 해석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모호한 법은 정의가 아니라 흉기다. 산업 생태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교섭 체계를 설계하고, 현장의 혼란을 중재할 전문적인 기구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 노동계는 투쟁의 선명성보다 협상의 실효성을 고민해야 한다. 교섭권 쟁취가 곧 생존권 보장이라는 믿음은 이해하나, 그것이 타인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방식이어야 하는지는 자문해봐야 한다. 셋째, 경영계는 변화된 시대 정신을 수용하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복잡해진 고용 구조 속에서 원청의 책임을 전면 부인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갈등을 봉합할 수 없다. 하청 노동자의 처우 개선이 곧 원청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거시적 안목이 필요하다. 진주에서 스러진 노동자의 명복을 빌며, 우리는 이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할 책무가 있다. 죽음으로 쓴 경고장을 읽고도 대화와 타협의 자리에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문명’이라는 이름을 가질 자격이 없다. 자신의 입장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는 '역지사지'의 지혜가 절실하다.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란, 법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의 부족함을 대화로 채우려 노력할 때 완성된다. 빠른 시일 내에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더 이상의 '예견된 인재'를 방치하는 것은 직무유기를 넘어 범죄에 가깝다. 비극의 사슬을 끊어내는 열쇠는 결국 서로를 향한 '열린 마음'과 '책임 있는 자세'에 있다. 오늘 우리가 흘리는 눈물이 내일의 희망이 되려면, 지금 당장 극한의 대립을 멈추고 타협의 테이블로 복귀해야 한다. 그것이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무너진 현장을 바로 세우는 유일한 길이다.
2026-04-21 10: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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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東進)의 깃발과 텃밭의 침식, 6.3 지방선거 엄중한 경고
[경제일보]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 했다. 그러나 작금의 6.3 지방선거를 앞둔 여야의 풍경은 생동하는 생명력보다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질서'와 '혼돈'의 서사시를 써 내려가고 있다. 이번 선거의 본질은 단순한 지역 일꾼 뽑기를 넘어선다. 그것은 '기득권에 안주한 세력의 몰락'과 '외연 확장을 향한 전략적 진격'이 충돌하는 거대한 지각변동의 전초전이다. 여당의 '동진정책'과 김부겸의 상징성 집권 여당은 이번 선거에서 이른바 '동진정책'을 전면에 내걸었다. 단순히 표를 얻겠다는 계산을 넘어,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의 벽을 허물겠다는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챙기겠다는 포석이다. 그 정점에는 김부겸 전 총리의 대구시장 출마 공식화가 있다. 김 전 총리의 대구행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그는 과거 '지역주의 타파'라는 깃발 아래 험지인 대구에서 사투를 벌여 승리했던 경험이 있는 인물이다. 여당이 그를 다시 대구라는 상징적 전장에 세운 것은, 보수의 심장부에서부터 변화의 바람을 일으켜 영남권 전체의 지형도를 바꾸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 놀라운 것은 여론의 반응이다.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으로 분류되던 60대를 넘어 이제는 70대마저 보수 정당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는 단순한 일시적 변심이 아니다. 무능한 기득권 보수 세력에 대한 실망감이 극에 달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정서적 호소만으로는 더 이상 노년층의 냉철한 현실 감각을 붙잡아둘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여당의 동진정책이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점쳐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야당의 자중지란: 텃밭에서 시작된 '사망 선고'의 전조 반면 야당의 모습은 처참하다 못해 비극적이다. 자신들의 안방이자 텃밭이라 자부하던 지역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잡음은 이제 '몸살' 단계를 넘어 조직 전체의 '괴사'를 우려해야 할 수준에 이르렀다. 가장 뼈아픈 실책은 공천 과정의 불투명성과 공정성 상실이다. 경선에서 컷오프된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단독 행보는 야당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진 의원이 당의 결정에 불복하고 독자 노선을 걷는다는 것은 공천 시스템이 무너졌음을 방증한다. 여기에 경선 후보들 간의 진흙탕 싸움은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정책과 비전은 실종된 채, 오로지 상대방을 헐뜯고 비방하는 데에 혈안이 된 모습은 야당이 과연 수권 정당으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유권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텃밭이라는 안일함에 빠져 오만방자하게 굴며 서로의 살점을 뜯어먹는 행태를 목도한 민심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기본과 상식의 붕괴, 그리고 민심의 준엄한 심판 정치의 기본은 민생이며, 상식은 공정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순차적으로 공천을 진행하며 전열을 가다듬는 사이, 야당은 기초적인 상식조차 지키지 못하고 지리멸렬(支離滅裂)하고 있다. 야당이 텃밭에서 겪고 있는 내홍은 단순한 세력 다툼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채 과거의 관성에 매몰된 세력의 필연적인 붕괴 과정이다. 반면 여당의 동진정책은 지역주의 타파라는 대의명분과 함께, 소외되었던 유권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영리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현재의 추세라면 여당의 동진정책은 상당한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야당은 텃밭을 지키기는커녕 안방마저 내어주는 사상 초유의 참패를 맛볼 수도 있다. 민심은 물과 같아서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언제든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야당은 망각하고 있다. 유권자는 '비전'을 선택한다 6.3 지방선거는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다. 여야가 걷는 길은 너무나도 다르다. 한쪽은 확장과 통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다른 한쪽은 고립과 분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결국 승패는 '누가 더 기본에 충실했는가'에서 갈릴 것이다. 상대를 비방하는 낡은 정치가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고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세력만이 선택받을 수 있다. 야당이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자중지란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들이 자랑하던 '텃밭'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여당의 동진정책이 한국 정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지, 아니면 야당이 극적인 반전을 꾀할 수 있을지 전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오만한 권력은 반드시 민심이라는 단두대 위에 서게 된다는 점이다. 결론은 명확하다. 정치는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 준엄한 상식을 잊은 자에게 미래는 없다.
2026-03-31 08: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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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자동차'마저 흔들리면 끝장, 정부는 경제 비상체제로
[경제일보] 중동 전쟁의 포화 속에서 우리 경제의 최후 보루인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마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에 있어 이 두 기둥이 무너진다는 것은 단순히 성장률 몇 퍼센트가 깎이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 시스템 전체가 마비되는 재앙을 의미한다.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7%로 내동댕이친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전쟁이 장기화되어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히 봉쇄될 경우, 우리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전대미문의 ‘동토(凍土)의 시대’에 진입할 수밖에 없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에너지 집약적’ 구조라는 치명적 약점을 노출하고 있다. AI 열풍으로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가 폭증하고 있지만, 반도체 생산 라인을 돌리는 데 드는 막대한 전력은 결국 액화천연가스(LNG)와 원유에 의존한다. 에너지 가격 폭등은 곧장 제조 원가 상승으로 이어져 글로벌 가격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여기에 항공 운송료까지 치솟으며 수출길마저 좁아지는 형국이다. 자동차 산업 역시 설상가상이다. 중동은 현대차·기아 점유율이 10%를 넘는 전략 요충지이자 연간 300만 대 규모의 거대 시장이다. 이란 시장의 증발과 물류 대란은 공들여 쌓아온 수출 탑을 단숨에 무너뜨리고 있다. 이제 정부는 ‘검토 중’이라는 한가한 소리를 거두고, 즉각적이고 파격적인 ‘경제 비상 대책’을 실행해야 한다. 첫째, 에너지 수급의 전면적 국가 관리다. 비축유 방출을 넘어 원전 가동률을 80% 이상으로 극대화하고, 석탄발전 상한제를 일시 해제해서라도 산업용 전력 단가를 동결해야 한다. 기업이 에너지 비용 때문에 공장을 멈추는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 둘째, 중소기업 전용 ‘전쟁 특별 금융’의 가동이다. 최근 중소기업 경기전망지수(SBHI)가 계엄령 사태 이후 최악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민생 경제의 하부 구조가 이미 괴사 직전임을 시사한다. 원자재값 폭등분을 정부가 일부 보전해주고,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를 넘어선 긴급 운영자금 수혈이 즉각 이뤄져야 한다. 셋째, 수출 물류의 국가 책임제다. 민간 선사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국적 선사를 총동원해 수출용 선복을 강제 할당하고, 급격히 오른 물류비의 50% 이상을 정부 예산으로 직접 보조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지금은 경제 관료들이 책상 앞에 앉아 수치만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25조 원 규모의 추경을 신속히 편성하여 고유가 독소(毒素)를 중화시키고, 규제의 빗장을 풀어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생존로를 찾게 해줘야 한다. 정부가 비상한 각오로 경제 방어막을 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란발(發) 오일 쇼크에 무기력하게 침몰하는 ‘성장 실종’의 시대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2026-03-27 10:4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