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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구조조정의 대가, 왜 노동자만 치르나
[경제일보] 홈플러스가 다시 벼랑 끝에 섰다. 서울회생법원은 지난 3일 홈플러스 회생절차를 폐지했다. 법원은 수정 회생계획안을 이행하려면 최소 2000억원의 운영자금이 필요하지만, 구체적인 조달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은 성사됐지만 대형마트 사업부 매각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영업을 계속하는 동안 매출은 줄었고 급여, 물품대금, 조세 등 먼저 지급해야 할 채무는 늘었다. 법원은 회생계획안을 관계인집회에 부치지 않고 절차를 폐지했다. 회생절차 폐지가 곧바로 파산선고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홈플러스는 즉시항고 기간 안에 운영자금을 확보하고 실현 가능한 자금조달 방안을 내놓을 수 있다. 법원도 그 가능성을 닫아두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과를 보면 남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대주주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은 긴급운영자금 부담을 놓고 서로 상대방의 책임을 지적하고 있다. 회사의 존속을 가를 자금 문제는 풀리지 않았고, 현장에서는 폐점과 인력 감축이 먼저 진행됐다. 홈플러스는 전국 37개 점포의 폐점을 결정했다. 이들 점포에서 일하던 직원은 약 3500명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말 1만7986명이던 홈플러스 직원 수는 올해 4월 말 1만5398명으로 줄었다. 넉 달 사이 2588명이 회사를 떠났다. 폐점 대상 점포 직원에게는 인근 점포 전환배치와 희망퇴직 방안이 제시됐지만, 모든 사람이 기존 생활권 안에서 일자리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희망퇴직금과 고용안정지원금도 긴급운영자금 조달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불안은 더 크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해서 모든 점포를 유지할 수는 없다. 수익성이 떨어진 점포를 정리하고 인력을 재배치하는 일도 경영 판단의 영역이다. 다만 그 판단이 노동자의 생계와 퇴직금, 협력업체의 물품대금보다 먼저 집행되는 과정은 따져봐야 한다. 자금 부담을 둘러싼 협상이 길어지는 사이 매장 직원에게는 폐점 통보가 먼저 도착하고, 납품업체에는 거래 중단 가능성이 먼저 닥친다. 회생절차의 비용이 누구에게 먼저 청구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대형마트 한 곳이 문을 닫으면 본사 직원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 납품업체와 산지 생산자, 입점 점주, 물류·청소·주차·보안 인력의 매출과 일감도 함께 줄어든다. 특히 지방 중소도시나 대단지 주거지역에서는 대형마트 폐점이 생활 편의와 지역 소비 기반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법원은 채권자별 회수 가능성과 기업의 계속기업가치를 살펴야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그 과정에서 사라질 일자리와 거래처의 피해도 함께 계산해야 한다. 홈플러스 사태에는 개별 기업의 재무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비가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대형마트의 고정비 부담이 커지는 유통업 전반의 변화가 겹쳐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집계한 올해 5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에서 온라인 비중은 58.6%였다. 대형마트 비중은 8.1%에 머물렀다. 전체 유통업체 매출은 전년 같은 달보다 9.0% 늘었지만 대형마트 매출은 5.1% 감소했다. 백화점과 편의점이 매출 증가를 이끈 것과 달리 대형마트는 소비 변화의 부담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유통업 재편은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재편의 비용이 노동자에게 먼저 돌아가는 방식까지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홈플러스가 자금난에 빠진 배경에는 시장 변화도 있고, 투자와 경영 판단의 결과도 있다. 그 책임을 매장 노동자와 협력업체가 떠안을 이유는 없다. 경영권을 행사해 온 대주주는 위기 국면에서 자금조달 방안과 고용 대책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채권자도 담보권과 회수율만 따질 것이 아니라 청산으로 갈 때 발생할 연쇄 피해를 함께 봐야 한다.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가진 기업의 위기는 더욱 엄격하게 봐야 한다. 투자자는 기업이 성장할 때 그 성과를 공유한다. 반대로 경영이 흔들릴 때는 필요한 자금과 책임을 얼마나 부담할지 설명해야 한다. 법적으로 투자 책임이 제한된다고 해도 경영권을 행사한 대주주의 경제적·사회적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자산 매각과 점포 정리, 인력 효율화로 경영을 이끌어 온 주체라면 위기 때도 고용과 거래처 보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메리츠금융그룹 역시 단순한 채권자라는 위치에만 머물 수는 없다. 홈플러스의 청산은 채권 회수 가능성과도 직결된다. 회생을 위한 추가 자금 지원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그 이유와 조건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MBK와 메리츠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사이 손실이 노동자와 납품업체로 번지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 양측이 감당할 몫을 정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낸다면 회생절차의 실패는 더 큰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정부도 선을 분명히 그어야 한다. 공적 자금이 대주주의 투자 손실을 보전하는 통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임금 체불, 퇴직금 미지급, 납품대금 미정산, 협력업체 연쇄 부실을 막기 위한 지원까지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보호해야 할 대상은 투자자의 손실이 아니라 매장 직원과 협력업체, 입점 점주가 당장 마주한 생계 위기다. 고용노동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폐점 예정 점포별로 임금과 퇴직금 지급 상황, 전환배치 가능 인원, 간접고용 인력의 고용 현황부터 확인해야 한다. 폐점이 끝난 뒤 재취업 창구를 마련하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기 전에 전직 상담과 직업훈련, 지역 일자리 연계를 시작해야 한다. 청소·주차·보안·물류처럼 원청의 위기 때 계약이 먼저 끊기는 인력도 보호 대책에 포함해야 한다. 국회도 대형 유통기업의 회생과 폐점 과정에서 드러난 공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규모 점포 폐점이나 자산 매각이 예정되면 고용, 협력업체, 입점 점주, 지역상권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공개하고 협의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회생계획안에도 채무 조정과 매각 방안만이 아니라 임금·퇴직금 지급, 납품대금 정산, 전환배치와 재취업 지원 계획이 실질적으로 담겨야 한다. 홈플러스 사태는 특정 기업 하나의 부실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면세점, 물류센터 등 오프라인 유통 현장 곳곳이 소비 변화와 비용 부담에 흔들리고 있다. 지금 홈플러스에서 벌어지는 일이 다른 유통기업에서도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책임의 순서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대주주와 채권자가 자금 부담과 고용 대책을 먼저 내놓고, 정부는 임금·퇴직금·납품대금 피해를 막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 순서가 뒤집힌 채 폐점과 퇴직만 앞세워진다면, 유통업 재편은 경쟁력 회복이 아니라 노동자와 협력업체에 손실을 넘기는 과정으로 기억될 것이다.
2026-07-07 07:5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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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20억 CP 1차 부도…JTBC 회생 불씨, 신문 모태까지 번졌다
[경제일보] 중앙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모태 기업인 중앙일보까지 확산됐다. 중앙일보가 워크아웃을 공식 신청한 가운데 220억원 규모 기업어음(CP)이 1차 부도 처리됐다. 회생절차에 들어간 JTBC 역시 360억원 규모 CP가 법적 지급 제한에 따라 1차 부도 처리되면서 중앙그룹 전반의 자금 압박이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앙일보는 220억원 규모 CP가 부도 처리됐다고 공시했다. 중앙일보는 공시를 통해 "당사가 2026년 3월 31일 발행한 기업어음에 대해 기한의 이익 상실이 발생했다"며 "18일 채권자의 어음 지급 제시가 있었으나 예금 부족으로 결제 대금을 변제하지 못해 19일자로 해당 어음이 최종 부도 처리됐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해당 CP는 한양증권이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만기는 2026년 12월 7일 120억원, 2027년 3월 30일 100억원으로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앙그룹 유동성 위기와 신용등급 하락 여파로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하면서 채권자가 만기 전 조기상환을 요구했고, 중앙일보가 이에 응하지 못하면서 최종 부도로 이어졌다. 중앙일보는 특정 채권자에게 개별적으로 조기상환을 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워크아웃 추진 과정에서 채권자 간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다. 현재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에 워크아웃을 공식 신청한 상태다. 워크아웃은 법원이 관리하는 기업회생과 달리 채권단 협의를 통해 채무를 조정하고 경영 정상화를 추진하는 절차다. ◇ 회사채 1370억원 EOD 이어 CP 부도…유동성 위기 심화 중앙일보의 자금 압박은 이미 회사채 시장에서 먼저 드러났다. 중앙일보는 지난 16일 43-2회차 180억원, 46회차 340억원, 47회차 350억원, 51회차 500억원 등 회사채 4개 종목에 대해 기한이익상실 사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규모는 총 1370억원이다. 기한이익상실은 채무자의 신용 위험이 커졌다고 판단될 경우 채권자가 만기 이전 상환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계약상 장치다. 회사채에 이어 CP에서도 EOD와 최종 부도가 발생했다는 점은 중앙일보의 유동성 문제가 단순한 일시적 자금 부족을 넘어 채권시장 신뢰 저하로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용등급 하락도 부담을 키우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중앙일보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기존 B-에서 CCC로 하향 조정하고 부정적 검토 대상에 재편입했다. 신용등급 하락은 추가 조기상환 요구와 신규 자금 조달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앙일보가 워크아웃을 선택한 배경 역시 개별 채권 대응보다는 채권단 전체와의 조정을 통해 정상화 방안을 마련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JTBC는 회생절차 속 1차 부도…"최종 부도와는 달라" JTBC도 같은 날 360억원 규모 CP가 1차 부도 처리됐다고 공시했다. 다만 중앙일보와는 성격이 다르다. JTBC는 지난 15일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으며, 같은 날 재산보전처분과 포괄적 금지명령 결정을 받았다. 이에 따라 법원의 허가 없이 기존 채무를 변제할 수 없는 상태다. JTBC는 19일 우리은행 중앙기업영업본부에 지급 제시된 CP 360억원을 결제하지 못했다. 회사 측은 이번 미이행이 법원의 재산보전처분과 포괄적 금지명령에 따른 법적 지급 제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JTBC는 "어음교환업무규약 시행세칙상 법적으로 가해진 지급 제한 사유에 따른 1차 부도이며, 최종 부도에 따른 거래정지 처분 사유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앞서 JTBC는 지난 12일 206억원 규모 유동화 차입금을 상환하지 못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이후 중앙홀딩스와 JTBC, 콘텐트리중앙, 메가박스중앙, 중앙피앤아이 등 계열사 5곳이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반면 중앙일보는 법원 회생 대신 워크아웃을 통한 채권단 조정을 택했다. ◇ 규제기관도 상황 점검…월드컵 중계 차질 여부 주목 이번 사안은 금융 문제를 넘어 방송 규제 이슈로도 번지고 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JTBC의 재정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종철 방미통위 위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JTBC의 유동성 위기가 당장 방송사업 운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단계는 아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도 향후 재승인 과정에서 재무·기술 분야 평가를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방미통위는 점검반을 구성해 JTBC 회생절차 관련 현안을 상시 점검하고 있으며, JTBC 측과 소통하며 필요한 자료 제출을 요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JTBC가 2026 북중미 월드컵 중계권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국민적 관심이 높은 콘텐츠 제공에 차질이 없도록 상황을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중앙그룹의 유동성 위기는 미디어 산업 환경 변화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디지털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중심으로 미디어 소비가 이동하면서 전통 광고 시장은 위축된 반면 콘텐츠 투자 부담은 커졌다. 여기에 채권시장 신뢰 약화까지 겹치면서 계열사별 대응 방식도 갈라졌다. 중앙일보는 채권단 협의를 통한 워크아웃을, JTBC 등은 법원의 보호 아래 회생 가능성을 모색하는 길을 택했다. 관건은 정상화 여부다. 채무조정 방식이 서로 다르더라도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안정적인 사업 운영 기반을 다시 구축할 수 있느냐가 향후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이번 CP 부도와 회생절차 신청은 중앙그룹 위기의 종착점이라기보다 본격적인 구조조정과 정상화 과정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2026-06-20 13: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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