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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의 화려한 성채에 갇힌 민생, '착시의 늪'을 경계한다
[경제일보] 증권시장의 전광판만 보자면 대한민국 경제는 바야흐로 태평성대다. 반도체를 필두로 한 특정 우량주들이 연일 고점을 높이며 장밋빛 전망을 쏟아낸다. 수출 수지는 개선되고, 기업들의 실적 발표는 시장의 기대를 웃돈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골목상권을 보라. 천정부지로 치솟은 물가에 장바구니는 가벼워졌고, 고금리의 파고를 넘지 못한 서민들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지표는 웃고 있는데 국민은 울고 있는 이 기괴한 괴리, 우리는 지금 ‘경제적 호황의 착시’라는 거대한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언론인으로서 40여 년간 한국 경제의 굴곡을 지켜봐 온 필자의 눈에 최근의 상황은 실로 위태롭기 그지없다. 경제의 본질은 결국 '민생'이다. 아무리 코스피 지수가 치솟고 반도체 수출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들, 그 온기가 서민의 식탁까지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숫자의 유희’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 경제는 소수 첨단 산업의 독주가 전체의 부실을 가리는 소위 ‘K자형 양극화’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정부와 정책 당국이 이러한 착시에 취해 현실을 안일하게 진단하는 태도다. 고물가와 고환율은 단순히 대외 여건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민생의 직격탄이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 기업은 환차익을 누릴지 모르나, 원자재를 수입해 내수 시장을 지탱하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도산의 위기로 내몰린다. 물가가 오르면 기업의 매출액은 늘어날지언정 국민의 실질 소득은 깎여 나간다. 증시의 호황은 자산가들에게는 축복일지 모르나, 당장 오늘 한 끼를 걱정해야 하는 서민들에게는 박탈감만을 안겨줄 뿐이다. 경제 원칙은 명확하다. 기초가 부실한 성장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가 멈춘 지 오래된 상황에서 특정 업종의 활황이 경제 전체의 건전성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반도체라는 외풍 차단막에 가려진 채 내수 부진과 가계 부채라는 폭탄이 내부에서 곪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를 방치한다면, 언젠가 반도체 사이클이 꺾이는 순간 우리는 그간 가려져 있던 처참한 민심의 민낯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지표의 화려함 뒤에 숨은 서민들의 고통을 정직하게 직시해야 한다. 경제 지표를 성과로 포장하기보다는, 왜 국민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 경기가 이토록 차가운지를 뼈아프게 자성해야 한다. 시장의 활력을 불어넣는 정책과 함께, 고물가·고금리의 직격탄을 맞는 취약계층에 대한 정교한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민심은 천심이다. 숫자는 속일 수 있어도 사람의 배고픔은 속일 수 없다. 증시의 고공행진에 도취하여 민생의 위기를 외면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화려한 수사(修辭)가 담긴 경제 브리핑이 아니라, 서민들의 밥상물가를 안정시키고 실질적인 구매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상식적인 처방’이다. 착시의 늪에서 벗어나 발을 땅에 딛고 서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 경제가 침몰하지 않기 위한 최후의 보루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26-04-09 07:5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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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후 17년 만에 환율 1500원 돌파…식품업계, 수입 원자재가 '직격탄'
[경제일보]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전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는 가운데, 국내 식품업계가 유가 상승과 고환율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하며 수익성에 비상이 걸렸다.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선을 넘나들면서 해외에서 원재료를 들여와 가공하는 식품 기업들의 원가 부담이 한계치에 도달했다는 분석이다. 1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00원을 돌파하며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환율이 장중 1500원을 넘어선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쳤던 2009년 이후 약 17년 만의 일이다. 이란-이스라엘 전쟁 여파로 안전 자산인 달러 선호 현상이 짙어지면서 원화 가치가 곤두박질친 결과다. 식품업계는 즉각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국내 식품 산업 구조상 밀가루(소맥), 설탕(원당), 대두유 등 핵심 원재료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율이 오르면 같은 양의 원재료를 들여오더라도 지불해야 하는 원화 금액이 늘어나게 되고 이는 곧바로 제조원가 상승으로 직결된다. 단순히 원재료 값만 오르는 것이 아니다. 이란발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식품 생산과 유통 전 과정에 비용 부하가 걸렸다. 유가가 오르면 제품을 포장하는 플라스틱 용기나 비닐 포장재의 원료가 되는 석유화학 제품 가격이 상승한다. 여기에 공장 가동을 위한 에너지 비용과 제품을 전국 점포로 나르는 물류비용까지 일제히 치솟고 있다. 가공식품의 경우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 과자의 주성분인 유지류와 견과류, 향료 등 수입 품목이 워낙 다양해 고환율과 고유가의 타격 범위가 광범위하다. 원가 압박은 극심해졌지만 기업들이 이를 소비자 가격에 전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내수 침체로 소비 심리가 얼어붙은 데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전방위적인 가격 압박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버거킹, 한국맥도날드, KFC 등 프랜차이즈 업계는 인건비와 임대료 상승을 이유로 일부 가격 인상을 단행했으나 라면과 제과 등 일반 가공식품 업계는 오히려 가격을 내리거나 동결하고 있다. 해태제과는 정부 기조에 맞춰 계란과자, 베베핀, 롤리폴리 등 주요 비스킷 제품의 가격을 낮추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K-푸드 열풍으로 수출 비중이 커진 라면이나 스낵 기업의 경우 고환율이 오히려 이득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해외에서 달러로 벌어들인 매출을 원화로 환산할 때 이익이 커지는 ‘환차익’ 효과 때문이다. 하지만 업계의 시각은 냉정하다. 수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지 않은 이상 원자재 수입 비용 상승분이 환차익으로 얻는 이득보다 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환율 변동성이 지나치게 크면 해외 거래처와의 장기 계약이나 가격 정책 수립에 차질이 생겨 경영 불확실성만 증폭된다는 지적이다. 유통업계는 고환율·고유가 기조가 장기화될 경우 식품업계의 체력이 급격히 저하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자본력이 약한 중소 식품사들부터 도산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26-03-16 15: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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