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6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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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의 화려한 성채에 갇힌 민생, '착시의 늪'을 경계한다
[경제일보] 증권시장의 전광판만 보자면 대한민국 경제는 바야흐로 태평성대다. 반도체를 필두로 한 특정 우량주들이 연일 고점을 높이며 장밋빛 전망을 쏟아낸다. 수출 수지는 개선되고, 기업들의 실적 발표는 시장의 기대를 웃돈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골목상권을 보라. 천정부지로 치솟은 물가에 장바구니는 가벼워졌고, 고금리의 파고를 넘지 못한 서민들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지표는 웃고 있는데 국민은 울고 있는 이 기괴한 괴리, 우리는 지금 ‘경제적 호황의 착시’라는 거대한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언론인으로서 40여 년간 한국 경제의 굴곡을 지켜봐 온 필자의 눈에 최근의 상황은 실로 위태롭기 그지없다. 경제의 본질은 결국 '민생'이다. 아무리 코스피 지수가 치솟고 반도체 수출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들, 그 온기가 서민의 식탁까지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숫자의 유희’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 경제는 소수 첨단 산업의 독주가 전체의 부실을 가리는 소위 ‘K자형 양극화’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정부와 정책 당국이 이러한 착시에 취해 현실을 안일하게 진단하는 태도다. 고물가와 고환율은 단순히 대외 여건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민생의 직격탄이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 기업은 환차익을 누릴지 모르나, 원자재를 수입해 내수 시장을 지탱하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도산의 위기로 내몰린다. 물가가 오르면 기업의 매출액은 늘어날지언정 국민의 실질 소득은 깎여 나간다. 증시의 호황은 자산가들에게는 축복일지 모르나, 당장 오늘 한 끼를 걱정해야 하는 서민들에게는 박탈감만을 안겨줄 뿐이다. 경제 원칙은 명확하다. 기초가 부실한 성장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가 멈춘 지 오래된 상황에서 특정 업종의 활황이 경제 전체의 건전성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반도체라는 외풍 차단막에 가려진 채 내수 부진과 가계 부채라는 폭탄이 내부에서 곪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를 방치한다면, 언젠가 반도체 사이클이 꺾이는 순간 우리는 그간 가려져 있던 처참한 민심의 민낯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지표의 화려함 뒤에 숨은 서민들의 고통을 정직하게 직시해야 한다. 경제 지표를 성과로 포장하기보다는, 왜 국민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 경기가 이토록 차가운지를 뼈아프게 자성해야 한다. 시장의 활력을 불어넣는 정책과 함께, 고물가·고금리의 직격탄을 맞는 취약계층에 대한 정교한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민심은 천심이다. 숫자는 속일 수 있어도 사람의 배고픔은 속일 수 없다. 증시의 고공행진에 도취하여 민생의 위기를 외면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화려한 수사(修辭)가 담긴 경제 브리핑이 아니라, 서민들의 밥상물가를 안정시키고 실질적인 구매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상식적인 처방’이다. 착시의 늪에서 벗어나 발을 땅에 딛고 서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 경제가 침몰하지 않기 위한 최후의 보루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26-04-09 07:5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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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반도체 슈퍼사이클 본격화…삼성전자, 분기 영업익 57조 돌파
[경제일보]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급증을 발판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메모리 초호황이 본격화되면서 반도체 사업이 실적을 견인하는 구조가 뚜렷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33조원, 영업이익 57조2천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00조원, 50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실적은 단순한 호실적을 넘어 반도체 산업 구조 변화가 본격화됐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투자가 급증하면서 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중심으로 한 AI용 메모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격 상승이 실적 개선으로 직결되는 구조가 형성됐다. 업계에서는 1분기 D램과 낸드 가격이 전 분기 대비 큰 폭으로 상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반도체 산업에서 경쟁의 중심이 파운드리나 로직 칩에 있었다면, 최근에는 메모리가 성능과 공급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AI 연산 과정에서 데이터 처리와 이동이 중요해지면서 메모리 성능이 전체 시스템 효율을 좌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삼성전자는 메모리, 파운드리, 패키징을 모두 보유한 ‘종합 반도체’ 구조를 바탕으로 수혜를 극대화하고 있다. 특히 차세대 HBM4 양산을 통해 기술 경쟁력 회복 신호를 보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다만 사업부별 온도차는 여전히 존재한다. 반도체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이 실적을 견인하는 반면, 스마트폰과 가전 등 완제품 사업은 원가 부담과 수요 둔화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는 반도체 가격 상승이 완제품 사업에는 비용 부담으로 작용하는 구조적 특성에 따른 것이다. 같은 그룹 내에서도 사업 포트폴리오에 따라 실적 방향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실적을 기점으로 AI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본격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메모리 가격 상승과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가 맞물리며 실적 성장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특히 AI 인프라 투자가 단기적인 수요 증가를 넘어 구조적 성장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메모리 수요 역시 장기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데다, 생성형 AI 서비스 확산으로 연산량과 데이터 처리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클라우드·AI 기업들은 GPU와 함께 HBM 등 고성능 메모리 확보를 핵심 투자 항목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데이터센터 신규 구축뿐 아니라 기존 인프라의 업그레이드 수요도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이는 일회성 설비 투자가 아닌 지속적인 증설과 교체 수요로 이어지는 구조다. 여기에 AI 모델이 고도화될수록 더 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특성상 서버당 메모리 탑재량도 증가하고 있어, 단위 장비 기준 수요까지 확대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인프라 확장과 장비 고도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메모리 수요는 경기 사이클과 무관하게 구조적으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반도체 산업 특유의 변동성과 대규모 설비 투자 부담은 여전히 변수로 남아 있다. 수요 변화에 따라 가격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중심 산업 구조가 강화되면서 반도체 경쟁의 축은 성능을 넘어 ‘데이터 처리 능력’을 좌우하는 메모리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결국 이번 실적은 단순한 호황을 넘어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이 다시 메모리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평가된다.
2026-04-07 09: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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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곧 방산주의 축복이라는 착각
[경제일보] 중동의 전운이 짙어질수록 금융시장은 냉혹해진다. 포성이 커질수록 누가 죽고 누가 다치는가보다, 어느 산업이 수혜를 입고 어느 종목이 더 오를 것인가를 먼저 계산하는 자금이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방산주는 언제나 유력한 수혜주로 호명된다. 실제로 최근 1년간 선진국 무기 제조사 주가는 크게 올랐고, 한국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같은 기업은 2024년 초 이후 기업가치가 10배 이상 뛰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했듯, 지금 방산은 벤처투자 시장에서도 인공지능 못지않게 뜨거운 분야가 됐다. 그러나 여기서 투자자들이 반드시 새겨야 할 사실이 있다. 전쟁이 난다고 해서 방산주가 무조건 오래 오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대사의 교훈은 그 반대에 가깝다. 갈등이 적당한 수준일 때는 군수 주문이 늘고 기업 실적이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이 국가 총력전의 단계로 깊어지면, 정부는 언제든 기업 이익을 공공 목적 아래 회수한다. 초과이윤세를 물리고, 계약 가격을 다시 깎고,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막고, 때로는 경영자 보수까지 제한한다. 이코노미스트가 말한 이른바 ‘골디락스 전쟁’이 아니면 방산주의 고평가는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실제로 역사는 단순하지 않았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동안 영국 정부는 고율의 초과이윤세로 군수업체 이익을 강하게 환수했다. 미국도 제2차 세계대전 본격 참전 뒤에는 이미 체결된 무기 계약 가격을 반복적으로 재협상하며 낮췄고, 이런 관행은 한국전쟁과 냉전기까지 이어졌다. 이코노미스트는 1938년부터 진주만 공습 전까지 미국 항공기 제조업체 주가는 양호했지만, 1941년 말부터 1945년 전쟁 종결까지는 미국 전체 주식 포트폴리오 수익률이 방산주보다 높았다는 연구를 함께 인용했다. 전쟁이 커질수록 국가가 기업의 초과 수익을 용인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오늘의 국제 정세도 이 오래된 패턴을 되살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1월 방산업체들이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내렸고, 방산기업 최고경영자 보수를 연 500만 달러 수준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뜻도 밝혔다. 법적 강제력의 범위와 별개로 메시지는 분명하다. 안보가 걸린 순간, 정부는 “시장 논리”보다 “국가 우선”을 앞세운다. 투자자들이 전쟁 수혜를 꿈꾸는 바로 그 순간, 정치권은 그 수혜를 다시 공공의 이름으로 회수할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방산 산업의 장기 수요 기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NATO는 2025년 회원국들이 '핵심 국방비 3.5%와 안보 관련 투자 1.5%를 합쳐 GDP의 5%'를 목표로 삼는 새 기준에 합의했다. 유럽이 미국 안보 우산의 불확실성에 대비해 재무장에 나서는 흐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역시 곧바로 전차와 미사일, 자주포 대량 발주로만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로이터통신 보도대로 이 목표에는 사이버 안보, 에너지 인프라 보호, 군용 도로·교량 정비 같은 광의의 안보 투자도 포함된다. 즉 국방비 숫자가 커져도 그 전체가 순수 방산업체의 매출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방산업체를 봐야 한다. 한국 기업들은 분명 지난 몇 년간 세계 시장에서 눈부신 성과를 냈다. 2022년 폴란드와 체결한 137억 달러 규모의 대형 계약은 한국 방산 수출사의 전환점이었고, 이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유럽 육상무기 매출을 2027년까지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의 현대로템은 폴란드에 K2 전차 180대를 추가 공급하는 약 65억 달러 규모 계약을 성사시켰고, LIG넥스원은 이라크와 약 3조7100억 원 규모의 중거리 지대공미사일 수출 계약을 따냈다. 한국산 무기의 강점인 빠른 납기, 가격 경쟁력, 기술 이전과 현지 생산의 유연성이 유럽과 중동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지금 한국 방산주의 문제는 '좋은 산업인가'가 아니라, '좋은 산업이 이미 너무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지는 않은가'에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서구 방산업체 주가가 예상 이익의 약 35배에 거래되고 있으며, 이는 인공지능 붐의 상징인 엔비디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라고 짚었다. 전쟁 뉴스가 이어질수록 투자자들은 방산을 영구 성장산업처럼 바라보지만, 방산의 주요 고객은 어디까지나 국가다. 고객이 국가라는 것은 호황기에도 매력적이지만, 위기기에는 가장 위험한 조건이 된다. 국가는 계약 상대이면서 동시에 규제자이고, 필요하면 이익을 제한하는 주권 권력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한국 투자자들 사이에서 특히 퍼져 있는 오해는 이것이다. '큰 전쟁이 나면 한화에어로 같은 종목은 더 크게 오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선적이지 않다. 전쟁이 제한적 충돌에 머물면 무기 수요 기대가 주가를 밀어올릴 수 있다. 반면 전쟁이 장기화하고 총력전화하면 각국 재정은 압박받고, 정부는 예산을 더 세밀하게 통제하며, 가격 협상은 기업보다 국가에 유리하게 바뀐다. 심지어 방산업체가 공급 지연이나 원가 상승으로 제때 납품하지 못하면, 높은 기대를 받던 기업일수록 더 큰 정치적 압박을 받게 된다. 최근 미국이 방산업체의 주주환원 정책에 직접 제동을 건 것도 이 위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고 한국 방산 산업의 미래를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한국은 2023년 기준 세계 10위권 방산 판매국이며, 정부는 세계 4대 방산 강국 도약을 목표로 제시해 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재무장, 중동의 미사일 방어 수요, 인도·태평양의 안보 불안은 한국 기업에 분명한 기회다. 다만 그 기회는 '전쟁의 확대'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공급 능력, 품질, 납기, 현지화, 외교적 신뢰'위에서만 실적으로 연결된다. 방산은 결국 산업이기 전에 국가 전략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은 늘 단순화를 좋아한다. 전쟁이 나면 유가가 오르고, 유가가 오르면 에너지주가 뛰고, 불안이 커지면 방산주가 오른다는 식이다. 그러나 역사는 말한다. 전쟁은 방산업체에 주문서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익의 천장을 씌우는 국가 권력도 함께 데려온다. 전쟁이 클수록 기업의 자유는 줄고, 안보가 앞설수록 주주의 몫은 작아진다. 이것이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냉전이 남긴 냉정한 교훈이다. 결국 방산주를 보는 올바른 시선은 열광이 아니라 절제다. 한국 방산업체들은 분명 세계 시장에서 실력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자는 ‘국가가 더 많은 무기를 원한다’는 사실만 볼 것이 아니라, ‘국가가 그 과정에서 기업 이익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까지 함께 봐야 한다. 전쟁은 매출을 키울 수 있어도, 언제나 주주의 잔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안보 앞에서 기업 이익은 언제든 후순위가 될 수 있다. 지금 방산주 투자자가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장은 바로 그것이다.
2026-03-09 17: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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