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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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함정으로 맞붙은 HD현대·한화…'해양 패권' 꿈꾼다
[경제일보] 1970년대 울산 미포만의 휑한 모래사장, 그리고 거제 옥포만의 거친 파도. 이를 기억하는 4060세대에게 조선소는 곧 치열한 땀방울과 눈부신 용접 불꽃의 상징이었다. 안전모를 쓴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거대한 쇳덩어리를 자르고 이어 붙여 초대형 상선을 띄워 올리던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의 현장. 오일쇼크와 외환위기 속에서도 대한민국 경제를 떠받쳤던 아날로그 시대의 낭만은 이제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했다. 현재 대한민국 조선소의 풍경은 그 자체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단순히 배의 덩치를 키우는 경쟁을 넘어 스텔스 기능과 인공지능(AI), 무인 자율운항 기술이 탑재된 첨단 함정을 건조하는 'K-해양 방산'의 심장부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거대한 디지털 전환기에서 HD현대와 한화오션은 글로벌 바다의 패권을 두고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벌이고 있다. ◆ '반세기 조선 제왕' HD현대…수출 영토 확장·디지털 트윈 결합 HD현대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해군력 발전의 산증인이자 글로벌 1위 조선사의 자존심이다. 1975년 한국 최초의 전투함인 울산함을 독자 설계한 것을 시작으로 해군의 첫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 차세대 이지스 구축함 정조대왕함까지 굵직한 해양 안보의 이정표를 세워왔다. 최근 HD현대가 내세우는 가장 큰 무기는 반세기 동안 축적된 '압도적인 함정 건조 기본기'에 더해진 'AI·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이다. 과거 철판의 두께와 함포의 사거리로 방어력을 자랑하던 함정은 다기능 위상배열 레이더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바다 위의 거대한 컴퓨터'로 진화했다. HD현대의 비전 발표 등에 따르면, HD현대는 가상 공간에 똑같은 함정을 구현해 성능을 테스트하고 유지·보수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방산에 적극 도입 중이다. 또한 내수 중심이던 방산의 체질을 수출형으로 완벽히 바꾸고 있다. 필리핀 초계함·호위함 수주 싹쓸이를 비롯해 최근 페루 등 중남미 국가들과의 대규모 함정 현지 건조 공동생산 계약을 따내며 단순한 선박 수출을 넘어 'K-방산 플랫폼' 자체를 수출하는 모델로 진화했다. 가장 완벽한 선체 위에 최첨단 두뇌를 얹어 글로벌 해양 방산 생태계를 주도하겠다는 것이 HD현대의 전략이다. ◆ '육해공 통합 방산 거인' 한화…미래 해양 무인체계 개발 막대한 자금 투입 한화오션의 기세는 재계를 뒤흔들 만큼 매섭다.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며 단숨에 해양 방산의 강자로 떠오른 한화오션은 기존 잠수함 건조 명가(名家)라는 타이틀에 '육해공 무기체계 수직계열화'라는 강력한 엔진을 달았다. 한화오션의 대우조선 인수는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라 '글로벌 종합 방산 기업'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퍼즐이었다. 한화의 전략은 극대화된 그룹 내 시너지다. 배를 만드는 한화오션, 두뇌 역할을 하는 레이더와 전투지휘체계를 담당하는 한화시스템에 더해 함정의 '심장(엔진)'과 '주먹(무장 체계)'을 공급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인다. 이를 바탕으로 한화오션은 최근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조선소(Philly Shipyard)를 전격 인수하며 국내 조선업계 최초로 세계 최대 방산 시장인 미국 본토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아울러 무인 잠수정(UUV)과 무인 수상정(USV) 등 미래 해양 무인체계 개발에도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수상함 시장은 물론 글로벌 방산 탑티어(Top-tier)를 향한 야심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 '7.8조원' KDDX 수주전·글로벌 잠수함 레이스 국내 해양 산업의 두 '거인'의 충돌은 현재 진행형이자 최고조에 달해 있다. 당장 눈앞에 닥친 최대 격전지는 약 7조8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이다. '미니 이지스함'으로 불리는 KDDX 6척의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누가 맡느냐는 단순한 매출 경쟁이 아니다. 100% 국산화 기술로 만들어지는 K-함정의 차세대 표준을 누가 선점하느냐의 문제인 만큼 두 그룹은 사활을 건 신경전과 법적공방까지 불사하며 물러설 수 없는 자존심 대결을 펼치고 있다. 또한 이들의 경쟁 무대는 좁은 국내 바다를 넘어 대양으로 확장되고 있다. 수십조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캐나다의 차세대 순찰 잠수함 프로젝트(CPSP), 호주와 폴란드의 대규모 해군력 증강 사업 등에서 HD현대와 한화는 각각의 기술력과 외교력을 총동원해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두 기업은 글로벌 거대 방산 기업들에 맞서 협력해야 하는 'K-방산 원팀'이기도 하지만, 최종 서류에 도장을 찍기 전까지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맞수'다. 과거 오일쇼크의 파고를 맨몸으로 부딪쳐 극복하며 대한민국 경제의 든든한 방파제가 돼 줬던 조선업. 쇳물과 땀방울이 뒤섞여 있던 그 시절의 거친 조선소는 이제 AI, 스텔스, 무인화 기술이 융합된 가장 스마트한 국가 안보의 최전선으로 진화했다. 과거의 향수와 미래의 기술이 팽팽하게 교차하는 바다 위에서, HD현대와 한화가 뱃고동을 울리며 써 내려갈 'K-해양 제국'의 역사는 이제 막 새로운 장(章)을 열고 있다. 다만, 두 기업의 화려한 부활 이면에는 대한민국 조선업이 반드시 풀어야 할 냉혹한 과제들도 존재한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숙련공의 고령화와 구조적 인력난은 K-조선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라며 "이미 생산 능력과 기자재 생태계 전반에서 매섭게 추격해 온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수주 경쟁을 넘어선 차별화된 전략이 시급하다"고 했다. HD현대와 한화오션이 펼치는 AI 함정 경쟁은 단순히 기술적 과시가 아닌, 인력 부족이라는 현실적 제약을 극복하고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한 생존의 필수 조건인 셈이다. 쇳물과 땀방울로 일궈낸 과거의 영광을 넘어 AI와 자동화 공정이라는 새로운 동력으로 글로벌 패권을 수성해야 하는 엄중한 시험대 위에 서 있다.
2026-05-04 15:5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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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무대 된 조선소…HD현대, 나토 방문 속 '해양 방산 협력' 확장 신호
[경제일보] 세계 최대 군사동맹인 NATO(나토) 회원국 대사단이 HD현대 글로벌R&D센터(GRC)를 찾으면서 국내 조선소가 단순 생산기지를 넘어 방산 외교 플랫폼으로 부상하고 있다. 함정 기술 경쟁력을 기반으로 글로벌 군사 협력의 접점을 넓히려는 흐름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HD현대는 최근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 나토 30개국 주재 대사단이 경기도 판교 GRC를 방문해 함정 기술과 미래 비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고 밝혔다. 대사단은 구축함, 잠수함, 무인수상정 등 다양한 함정 라인업과 AI 기반 자율운항 선박 기술, 디지털트윈 가상 시운전 시스템 등을 직접 확인했다. 이번 방문은 단순 기업 견학을 넘어 방산 협력 가능성을 타진하는 성격이 짙다는 평가다. 나토 주재 대사는 각국의 군사·정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핵심 외교 채널인 만큼 이들의 현장 방문은 기술 검증과 동시에 협력 파트너 탐색의 의미를 갖는다. 배경에는 글로벌 방산 시장 구조 변화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국방비 증액과 해군력 강화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함정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해상 안보 중요성이 커지면서 구축함, 호위함뿐 아니라 무인수상정 등 차세대 해양 전력에 대한 관심도 확대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조선업은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상선 중심 산업 구조에서 벗어나 방산 분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HD현대의 전략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HD현대중공업은 기존 상선 건조 역량에 더해 함정 설계·건조 기술과 AI 기반 자율운항, 전기추진 시스템 등 첨단 기술을 결합하며 해양 방산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트윈 기반 가상 시운전 기술은 개발 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 측면에서 차별화 요소로 꼽힌다. 이는 단순 함정 건조를 넘어 ‘기술 패키지’ 형태로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주목할 점은 외교와 산업의 결합이다. 과거 방산 수출은 정부 간 협상(G2G)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기업의 기술력과 레퍼런스가 협상의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번 나토 대사단 방문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업이 직접 글로벌 고객과 접점을 만드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특히 나토는 다국적 협력 체계를 기반으로 공동 조달과 기술 협력이 이뤄지는 구조인 만큼, 초기 네트워크 구축이 향후 수주 경쟁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연이은 외국 군 관계자 방문도 같은 맥락이다. 앞서 주한 외국무관단이 울산 조선소를 찾은 데 이어 나토 대사단까지 방문하면서 HD현대는 글로벌 방산 네트워크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이는 단순 홍보를 넘어 잠재 고객군과의 관계 구축 단계로 해석된다. 다만 방산 사업은 기술력뿐 아니라 정치·외교 변수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각국의 방산 정책, 동맹 구조, 무기체계 표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만큼 단기간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유럽 현지 조선사와의 경쟁, 기술 이전 요구 등도 주요 변수로 꼽힌다. 조선업의 경쟁 영역이 상선에서 방산으로 확장되면서 '누가 더 많은 배를 만들 수 있느냐'보다 '어떤 기술과 협력 구조를 확보했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 HD현대 조선소를 찾은 나토 대사단의 발걸음은 그 변화를 상징한다. 조선소가 생산 현장을 넘어 외교와 안보, 기술이 만나는 공간으로 변모하는 가운데 한국 조선업의 역할 역시 한 단계 확장되고 있다.
2026-04-15 14:4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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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쟁, 보이는 전쟁과 보이지 않는 전쟁...고립이 아니라 재배치다
전쟁은 언제나 총성과 함께 시작된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진짜 전쟁은 총성이 울리기 훨씬 이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미 결판이 나기 시작한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이란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미사일과 드론, 그리고 긴박한 외교 발언들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훨씬 더 정교한 '전자 병법'과 '심리의 전쟁'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번 국면을 두고 도널드 트럼프의 고립, 혹은 미국의 외교적 실패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전쟁을 그렇게 단순하게 읽는 것은, 전쟁을 평면으로만 보는 오류다. 입체로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드러난다. 손자는 말했다. "병자는 궤도야(兵者, 詭道也)." 전쟁은 속임수라는 뜻이다. 그리고 노자는 도덕경에서 말한다. "대직약굴, 대교약졸(大直若屈, 大巧若拙)." 큰 곧음은 굽은 것 같고, 큰 교묘함은 서툰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이 두 문장을 겹쳐 놓고 지금의 이란 전쟁을 보면, 우리가 보고 있는 '미국의 후퇴'는 실제 후퇴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의도된 '보이는 후퇴', 즉 전략적 재배치일 수 있다. 최근 국제 정세에서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미국이 더 이상 모든 전선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였다면 중동에서의 긴장은 곧 대규모 군사 개입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은 다르다. 동맹에게 역할을 요구하고, 비용을 분담시키며, 자신은 한 발 물러선 위치에서 전체 판을 조율한다. 이를 두고 '고립'이라고 말하는 것은 피상적 해석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지휘 방식의 변화'다. 전면에 서서 싸우는 장수가 아니라, 뒤에서 판을 짜는 장수로의 전환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동맹국들이 주저하는 모습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전쟁은 명분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각국의 이해관계, 에너지 의존도, 국내 정치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호위함 요청에 즉각 응답하지 않는다고 해서 동맹이 붕괴된다고 보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다. 오히려 이는 동맹이 '명령 체계'에서 '협상 체계'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반대로 중국의 움직임을 보자. 겉으로는 조용하다. 군사적 충돌을 피하고, 외교적 언어를 유지하며, 경제적 관계를 관리한다. 많은 분석이 이를 두고 '중국의 미소'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 역시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중국은 웃고 있는 것이 아니라,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중동의 불안은 곧 에너지 가격의 불안으로 이어지고, 이는 중국 경제에 직접적인 부담이 된다. 따라서 중국의 전략은 개입이 아니라 회피, 확대가 아니라 안정 유지다. 이는 공격이 아니라 방어의 전략이다. 여기서 우리는 전자 병법의 개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의 전쟁은 물리적 충돌 이전에 이미 전자기파, 정보, 금융 네트워크에서 시작된다. 위성, 통신, 사이버 공격, 금융 제재가 동시에 작동한다. 미사일이 발사되기 전에 이미 상대의 경제와 정보망이 흔들린다. 이번 이란 전쟁에서도 이러한 양상은 뚜렷하다. 금융 제재는 더욱 정교해졌고, 정보전은 더욱 은밀해졌으며, 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국제 유가는 단순한 가격이 아니라, 전장의 온도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었다. 이 지점에서 "Trump Always Chickens Out"이라는 이른바 TACO 프레임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강하게 밀어붙이다가 일정 부분 후퇴하는 패턴을 두고 '겁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협상의 본질을 오해한 해석이다. 손자는 또 말한다. "이길 수 있을 때 싸우고, 이길 수 없을 때 피한다." 후퇴는 패배가 아니라, 다음 수를 위한 준비일 수 있다. 실제로 현대의 국제정치에서 '전면전 회피'는 능력 부족이 아니라 전략적 선택인 경우가 많다 결국 지금의 이란 전쟁은 두 개의 층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물리적 충돌의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그 아래에서 진행되는 구조의 전쟁이다. 전자는 눈에 보이지만, 후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승패를 가르는 것은 언제나 후자다. 미국은 물러난 것이 아니라 구조를 재배치하고 있고, 중국은 승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관리하고 있다. 이 차이를 읽지 못하면 우리는 전쟁을 오해하게 된다. 노자는 또 말한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했다. 물은 다투지 않으면서도 결국 모든 것을 이긴다. 지금의 국제정치는 바로 그 물과 같은 흐름 속에 있다. 강하게 부딪히는 것보다, 흐르면서 상대를 바꾸는 방식이 더 중요해졌다. 전쟁의 형태가 바뀐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이 변화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에너지 수입 구조, 공급망, 안보 전략 모두가 이 전쟁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어느 한쪽의 입장에만 기대어 상황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고립'이라는 단순한 이야기에도, '중국의 승리'라는 단정적인 이야기에도 경계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구조를 읽는 것이다. 누가 물러났는가가 아니라, 누가 판을 바꾸고 있는가를 봐야 한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방향은 드러나고 있다. 보이는 전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전쟁, 총성이 아니라 구조의 변화,ㄹ 충돌이 아니라 재배치. 이것이 지금 이란 전쟁의 본질이다. 그리고 그 본질을 읽는 자만이, 다음 시대를 준비할 수 있다.
2026-04-05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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