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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이름의 면죄부, 사법정의는 어디에 있었나
[경제일보] 친족상도례라는 말은 어렵다. 한자로 쓰면 더 멀어진다. 그러나 내용은 어렵지 않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족 사이에서 절도, 사기, 횡령, 배임 같은 재산범죄가 벌어졌을 때 국가가 처벌을 삼가거나, 피해자가 고소해야만 처벌 절차로 갈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법은 오래전부터 가족 안의 돈 문제에 형벌권을 들이대는 일을 조심스러워했다. 가정의 평온을 지키고, 가족 사이의 일을 가족 내부에서 해결하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그 취지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사이의 사소한 금전 다툼까지 모두 경찰서와 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회가 건강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가족이라는 말이 언제나 따뜻한 울타리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신뢰의 이름이지만, 범죄자가 그 신뢰를 이용하면 피해자는 가장 늦게 구조된다. 남이 훔치면 절도이고, 남이 속이면 사기인데, 가족이 훔치고 속이면 “집안일”로 밀려나는 순간이 있었다. 법의 이름으로 그런 일이 가능했다. 친족상도례 논란의 본질은 가족 해체가 아니다. 피해자를 법 밖에 세워 둔 제도의 문제다. 피해자가 가족이라는 이유로 재판절차에서 말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가해자가 가족이라는 이유로 형사책임을 피한다면 사법정의는 출발선에서 멈춘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24년 형법 제328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당시 조항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사이의 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도록 했다. 형법은 절도, 사기, 공갈, 횡령·배임 등 여러 재산범죄에도 제328조를 준용해 왔다. 다시 말해 친족상도례는 권리행사방해죄 한 조항에 머무르지 않고 친족 간 재산범죄 전반에 영향을 미쳐 온 셈이다. 헌재는 해당 조항이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헌재 결정문을 보면 친족상도례가 왜 더 이상 옛 논리로 버틸 수 없게 됐는지 알 수 있다. 청구인 측은 친족상도례가 노인이나 장애인 등 약자를 상대로 한 악질적 재산범죄의 면죄부로 기능한다고 주장했다. 법이 가족 내부의 자율 해결을 기대하는 사이, 현실의 피해자는 고립됐다. 가족 안에서 돈을 빼앗긴 사람은 가족 안에서 침묵을 요구받는다. 가해자는 경찰서 앞에서 가족을 말하고, 법정 앞에서 화해를 말한다. 피해자는 생활비, 주거, 간병, 정서적 의존 때문에 끝까지 싸우기 어렵다. 형사사건 현장에서 자주 보는 장면이다. 친족 간 재산범죄는 폭행처럼 상처가 바로 보이지 않는다. 통장, 인감, 위임장, 법인카드, 가족회사, 명의신탁, 생활비 계좌 같은 이름 뒤로 숨어 있다. 처음에는 부탁처럼 시작된다. “가족인데 믿어라”, “내가 관리해 주겠다”, “나중에 정산하자”는 말이 이어진다. 피해자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계좌가 비어 있거나, 회사 돈이 빠져나갔거나, 명의가 옮겨져 있다. 그때 가해자는 다시 가족을 앞세운다. “고소까지 할 일이냐”는 말이 나온다. 가족의 이름은 한 번은 범행의 도구가 되고, 또 한 번은 책임 회피의 방패가 된다. 방송인 박수홍 씨 사건이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 씨 친형은 2011년부터 2021년까지 매니지먼트 회사를 운영하면서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았고, 2026년 2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 6개월이 확정됐다. 이 사건은 법인 자금 횡령이 중심이어서 친족상도례가 그대로 적용된 전형적 사건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대중이 이 사건을 통해 본 것은 가족회사, 가족 간 신뢰, 돈 관리, 내부 감시 부재가 맞물릴 때 재산범죄가 얼마나 오래 숨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항소심은 피해 회사가 가족회사로서 내부 감시체계가 취약했고 형제 관계의 신뢰가 악용됐다는 점을 특별가중 요소로 봤다. 국회도 헌재 결정 이후 움직였다. 2025년 12월 31일 공포된 형법 개정으로 과거의 형 면제 조항은 삭제됐다. 개정 형법 제328조는 피해자의 친족이 재산범죄를 저지른 경우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도 고소할 수 있도록 형사소송법상 직계존속 고소 제한을 배제했다. 친족 아닌 공범에게는 친족 특례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남겼다. 가까운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형을 면제받던 시대는 끝났다. 아버지 돈을 자식이 훔쳐도, 형제의 돈을 다른 형제가 빼돌려도, 배우자가 상대방 재산을 횡령해도 이제 “가족이니까 처벌하지 않는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고소하면 수사와 재판으로 갈 수 있다. 가족 내부의 자율 해결이라는 이름 아래 피해자의 입을 막던 낡은 문은 닫혔다. 그러나 여기서 칼럼을 끝내면 절반만 본 것이다. 형 면제가 사라졌다고 친족 특례의 문제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개정법은 친족 간 재산범죄를 원칙적으로 친고죄로 정리했다. 친고죄란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검사가 재판에 넘길 수 있는 범죄를 말한다.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장점이 있다. 가족 사이의 일률적 처벌을 피하고, 진정한 화해가 이뤄진 사건까지 국가가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도록 하는 기능도 있다. 하지만 친고죄는 피해자가 자유롭게 고소하고 자유롭게 고소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가족 내부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노부모가 자식에게 생활을 의존하고 있다면 어떠한가. 장애가 있는 피해자가 재산 관리를 친족에게 맡겨 왔다면 어떠한가. 배우자나 형제가 집안 여론을 동원해 “네가 가족을 감옥 보낼 셈이냐”고 몰아붙이면, 피해자의 고소 취소가 정말 자유로운 결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형 면제의 시대에는 법이 피해자를 밀어냈고, 친고죄의 시대에는 가족 내부 압박이 피해자를 다시 밀어낼 수 있다. 대법원의 2026년 4월 판단은 이 대목을 생각하게 한다. 부모의 집에서 금고를 들고 나와 현금, 상품권, 귀금속 등을 훔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피해자인 부모가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하자, 대법원은 개정 형법상 친족 간 절도는 친고죄에 해당하고 1심 판결 선고 전 고소가 취소된 이상 공소기각 판단을 했어야 한다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판단은 현행법 체계상 자연스럽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친고죄 사건에서 법원이 공소를 유지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사건은 개정 이후의 숙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법은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동시에 그 의사가 가족 내부의 압박, 두려움, 생계 의존, 정서적 굴레 속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도 살펴야 한다. 특히 노인과 장애인 피해자는 이 논의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보건복지부의 2024년 장애인학대 현황에 따르면 전국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접수된 장애인학대 신고는 6031건이었다. 학대로 판정된 사례는 1449건이었다. 학대 피해자 중 발달장애인의 비율은 71.1%였고, 학대 유형 중 경제적 착취는 18.6%를 차지했다. 숫자가 말하는 장면은 냉정하다. 가족 안에서 돌봄을 받아야 할 사람이 오히려 돈과 노동력을 빼앗기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노인학대도 가정 안에서 많이 발생한다. 법제처 생활법령정보는 2025년 학대피해노인이 7973명으로 전년보다 11.2% 증가했다고 정리하고 있다. 노인학대는 신체적 학대만을 뜻하지 않는다. 정서적 학대, 경제적 학대, 방임, 유기도 포함된다. 재산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통장을 가져가고, 기초연금이나 예금을 생활비라는 이름으로 빼 쓰고, 부동산 처분 권한을 넘겨받은 뒤 돌려주지 않는 일도 가족 안에서 벌어진다. 가족은 법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그래서 위험할 때 더 무섭다. 타인의 범죄는 경찰에 신고하면 된다. 가족의 범죄는 신고하기 전부터 설명해야 할 것이 많다. 왜 가족을 고소하느냐는 질문을 먼저 받는다. 피해자는 돈을 잃은 사람인데도 가족을 깨뜨린 사람처럼 몰린다. 가해자는 범행을 설명하기보다 관계를 내세운다. “부모 자식 사이”, “형제 사이”, “부부 사이”라는 말이 피해 사실 위에 덮인다. 사법정의가 어려워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형사법의 목적은 국가가 벌을 주고 끝내는 데만 있지 않다. 죄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고, 피해자의 말을 공적 절차 안으로 들여오며,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를 세우는 일도 형사사법의 역할이다. 응보라는 말도 거칠게만 볼 필요가 없다. 응보는 복수가 아니다. 범죄로 무너진 질서에 대해 공동체가 “그 일은 잘못됐다”고 말하는 절차다. 피해자는 그 선언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당한 일이 집안일이나 운명의 문제가 아니라 범죄였다는 확인을 받는다. 가족 안의 재산범죄에서도 그 확인은 필요하다. 친족 특례를 모두 없애자는 말이 아니다. 가족관계에는 회복 가능성이 있고, 형사처벌이 오히려 분쟁을 키우는 사건도 있다. 부모 지갑에서 소액을 가져간 미성년 자녀 사건과, 장애가 있는 친족의 보조금과 예금을 장기간 빼돌린 사건을 같은 눈으로 볼 수는 없다. 술김에 벌어진 일회성 절도와, 가족회사를 이용해 수년간 돈을 빼낸 횡령도 다르다. 법은 차이를 봐야 한다. 과거 친족상도례의 잘못은 그 차이를 보지 않았다는 데 있다. 가까운 친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피해 규모, 범행 기간, 피해자의 처벌 의사, 피해자의 취약성, 가해자의 지배관계, 피해 회복 정도를 뒤로 밀었다. 앞으로의 과제도 그 지점에 있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친족 간 재산범죄에서 고소 취소가 접수됐다고 곧바로 “화해”라고 읽어서는 안 된다. 피해자가 독립된 상태에서 의사를 밝혔는지, 가해자와 주거·생계·돌봄 관계로 묶여 있지는 않은지, 피해 회복이 실제로 이뤄졌는지, 다른 가족의 압박이 있었는지 따져야 한다. 노인, 장애인, 질병이 있는 피해자라면 진술 조력, 국선변호인, 피해자 보호명령, 후견제도, 임시 재산관리 장치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고소권을 법전에 적어 두는 일과 피해자가 그 권리를 실제로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일은 다르다. 입법도 한 번 더 손봐야 한다. 친고죄 일원화는 헌재 결정 이후 급한 불을 끈 절충안에 가깝다. 친족 간 재산범죄를 모두 일률적으로 친고죄로 묶는 방식이 적절한지도 계속 따져야 한다. 피해액이 크거나 범행 기간이 길거나, 피해자가 노인·장애인 등 취약한 지위에 있거나, 가해자가 재산관리 권한을 이용한 사건이라면 고소 취소만으로 절차가 끝나지 않도록 별도의 예외를 둘 필요가 있다. 가족 내부 해결을 존중하더라도, 가족 내부에서 해결될 수 없는 범죄까지 가족에게 되돌려 보내서는 안 된다. 언론도 이 문제를 연예인 가족 분쟁이나 자극적인 집안싸움으로 소비해선 안 된다. 친족상도례 논란은 유명인의 불행담이 아니라 우리 형사사법이 가족 안의 피해자를 어디까지 보호할 수 있는지 묻는 사건이다. 고령화가 빨라지고 1인 가구와 재혼가정, 사실상 돌봄 가족, 가족회사, 가족 간 재산관리 관계가 복잡해지는 시대다. 예전처럼 “가족끼리 알아서 하라”는 말로 덮을 수 있는 사건은 줄어들고 있다. 가족의 형태가 달라졌는데 법의 감각만 오래된 사진첩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친족상도례의 형 면제 조항은 역사 속으로 물러났다. 늦었지만 필요한 변화였다. 그러나 사법정의는 조항 하나를 고쳤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피해자가 고소할 수 있어야 하고, 고소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며, 고소를 취소할 때도 그 결정이 자유로운 의사에서 나온 것인지 확인받을 수 있어야 한다. 가족이라는 말이 피해자의 권리를 지우는 순간, 법은 가장 가까운 곳의 약자를 놓친다. 가족의 평온은 범죄의 침묵 위에 세울 수 없다. 진짜 평온은 가해자의 책임을 덮는 데서 오지 않는다. 피해자가 자신이 당한 일을 말할 수 있고, 국가는 그 말을 절차 안에서 듣고, 법원은 관계가 아니라 행위를 기준으로 판단할 때 가족도 사회도 무너지지 않는다. 친족 특례의 시대가 남긴 교훈은 하나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사법정의보다 앞설 수는 없다.
2026-07-09 07:5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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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법연령은 낮추고, 국가는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경제일보] 소년범죄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나이는 첫 번째 질문이 아니다. 흉기에 다쳤다면 상처가 남고, 집단폭행을 당했다면 학교에 다시 가는 일부터 두려워진다. 성범죄 피해를 입은 아이와 가족에게는 일상이 무너진다. 가해자가 열세 살이라는 사정이 피해의 크기를 줄여주지는 않는다. 현행 형법은 14세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다.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은 소년부 심리를 거쳐 보호관찰이나 소년원 송치 같은 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형사재판을 받는 것과 같은 무게의 책임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와 가족의 눈에는 법이 가해 소년의 나이부터 살피고, 자신들이 겪은 고통은 뒤로 미루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촉법연령은 낮춰야 한다. 살인과 강도, 성폭력, 흉기 사용, 집단폭행처럼 타인의 생명과 신체를 심각하게 침해한 범죄라면 더욱 그렇다. 보호처분을 받고도 폭력과 절도를 반복하는 소년에게도 마찬가지다. 범행의 결과를 알면서도 타인에게 중대한 해악을 입히는 행위까지 나이 하나만으로 형사사법의 바깥에 둘 이유는 약하다. 소년에게 성인과 똑같은 처벌을 하자는 뜻은 아니다. 열세 살의 판단력과 책임 능력을 성인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수사와 재판, 형의 집행도 소년의 발달 단계와 회복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책임의 경계는 분명해야 한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누군가의 삶을 어떻게 훼손했는지, 그 행동에 왜 법적 책임이 따르는지를 가르치지 않는 교화는 훈계에 그치기 쉽다. 형벌에는 재범을 막고 사회를 지키는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응보 역시 형벌의 중요한 목적이다. 응보는 피해자의 분노를 대신 풀어주는 보복이 아니다. 국가가 범죄의 위법성과 피해의 무게를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가해자에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일이다. 법원이 책임을 선언할 때 피해자는 자신이 겪은 일이 사적인 불운이나 아이들 사이의 다툼으로 축소되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소년범죄 논의에서는 가해 소년의 성장 가능성과 교화 필요성이 자주 강조된다. 그 원칙은 필요하다. 그러나 가해 소년의 장래를 살핀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상처와 불안을 주변으로 밀어낼 수는 없다. 피해자 보호는 소년사법의 부수적 과제가 아니다. 소년사법이 시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기준이다. 촉법연령 하향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법의 문턱만 낮춰 놓고 소년을 다시 방치한다면, 제도는 또 다른 실패를 낳는다. 가해 소년은 더 깊은 비행으로 들어가고, 피해자는 계속 늘어난다. 소년분류심사원의 현실은 국가가 소년범죄에 얼마나 임시방편으로 대응해 왔는지를 드러낸다. 지난해 새로 위탁된 소년은 5489명이었다. 4년 전보다 42% 증가했다. 2025년 하루 평균 수용 인원은 460명으로 정원 410명을 넘어섰다. 원칙상 한 달인 위탁 기간도 절반가량이 연장됐다. 심사원은 이미 정원을 넘긴 인원을 안고 돌아가고 있다. 소년분류심사원은 단순히 소년을 머물게 하는 시설이 아니다. 법원이 처분을 정하기 전 가정환경과 학교생활, 또래관계, 정신건강, 중독 문제를 살피고 재비행 위험을 판단하는 기관이다. 심사관이 작성한 분류심사서는 소년의 처분을 정하는 재판부 판단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런데 전국 심사관은 22명에 불과하다. 한 사람이 해마다 250건 안팎을 맡아야 한다. 정신질환과 약물·도박 문제, 가정 해체와 학대 경험, 학교 부적응까지 겹친 소년을 짧은 기간에 파악하고 적절한 처우를 정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심사원에 들어오는 소년 세 명 중 한 명이 정신질환을 안고 있다는 현장 진단까지 나온다. 상담과 치료, 교육을 맡을 인력은 부족하고, 심사관들은 사건 처리와 행정 업무, 야간근무까지 감당해야 한다. 심사원 안에서 달라지는 소년도 적지 않다. 규칙적인 생활을 배우고, 끼니를 챙겨 먹으며, 상담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본다. 밖에서 굶거나 약물에 손댔던 소년이 생활을 회복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평균 44일의 변화는 심사원 문을 나서는 순간 흔들리기 쉽다. 소년은 다시 가출을 반복하던 집으로 돌아간다. 학교에서는 이미 낙오자로 취급받고, 범행을 함께했던 또래는 연락을 기다린다. 도박과 폭력, 성착취와 마약에 닿는 온라인 공간도 그대로 남아 있다. 심사원에서 재비행 위험을 진단해 놓고도 가정과 학교, 보호관찰소와 지역사회가 뒤를 잇지 못하면 심사 결과는 보고서에 머문다. 재위탁률이 40%를 넘는 현실도 같은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심사원에 여러 차례 드나드는 소년이 생기는 이유를 개인의 의지 부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보호관찰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학교 출석이 무너진 소년에게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생활 기반부터 없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돌볼 여력이 없고, 학교는 손을 놓으며, 보호관찰관은 지나치게 많은 사건을 맡는다. 지역사회 상담기관은 도움을 청하는 소년에게만 문을 연다. 가장 먼저 손을 내밀기 어려운 소년에게 스스로 찾아오라고 요구하는 방식이다. 국가의 관리 실패는 결국 새로운 피해로 돌아온다. 재비행은 숫자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두 번째 폭행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처음 겪는 공포다. 가해 소년을 제대로 붙들지 못한 국가는 다음 피해자를 막을 기회도 놓친다. 재범 방지는 가해 소년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가장 현실적인 피해자 보호 정책이다. 촉법연령을 낮춘다면 처벌 뒤의 관리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 중대 범죄나 반복 비행으로 보호처분 또는 형사처분을 받은 소년에게는 전담 사례관리자가 필요하다. 보호관찰소와 학교, 지방자치단체, 상담기관이 각자 공문만 주고받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한 명의 담당자가 소년의 출석과 치료, 가정환경, 또래관계, 직업교육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필요한 기관을 연결해야 한다. 보호자 책임도 분명히 해야 한다. 부모의 방임과 폭력, 중독과 가정 붕괴가 비행의 배경이라면 소년만 교육해서는 달라질 것이 없다. 보호자 상담과 교육, 필요한 경우 가정에 대한 개입이 병행돼야 한다. 아이를 심사원에 맡긴 뒤 집안은 예전과 다름없이 두고 “다시 잘해 보라”고 돌려보내는 방식은 재비행을 막지 못한다. 학교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 재적만 유지한 채 교실에서 사실상 밀려난 소년이 적지 않다. 일반 학교로 돌아가기 어렵다면 대안교육과 직업교육으로 이어져야 한다. 수업을 듣지 않고, 일할 곳도 없으며, 집에서도 돌봄을 받지 못하는 소년에게 보호관찰 준수만 요구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처방이다. 촉법연령 하향은 소년을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다. 더 이른 시점에 책임을 가르치고, 그 책임이 다음 범죄로 이어지지 않도록 국가가 더 오래 관리하자는 요구다. 피해자에게는 “당신이 겪은 피해를 법은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가해 소년에게는 “나이가 책임을 지워주지는 않지만, 국가는 당신을 다시 범죄로 밀어 넣지도 않겠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촉법연령을 낮추는 일은 출발일 뿐이다. 심사원에서 44일을 보낸 뒤에도 국가가 소년의 삶을 붙들 수 있어야 한다. 책임을 묻되 방치하지 않고, 피해자를 보호하되 소년의 재기를 포기하지 않는 제도. 그 두 가지를 함께 해내지 못한다면 촉법소년 논쟁은 언제까지나 같은 자리만 맴돌게 된다.
2026-07-05 14: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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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 잃은 검찰개혁, 당권 경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권에는 선거철이나 전당대회가 다가올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 의제가 있다. 바로 검찰개혁이다.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거대한 명분은 언제나 시대적 과제로 제시되지만, 정작 그 논의가 전개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국민을 위한 제도 개선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앞서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번 역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정부와 여당이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으로 기능을 분리하는 이른바 검찰개혁 로드맵을 제시하자마자 정치권은 곧바로 당권 경쟁의 장으로 끌어들였다. 개혁의 방향과 제도의 실효성을 놓고 차분히 토론하기보다 누가 더 강한 개혁론자인지를 겨루는 선명성 경쟁이 시작됐다. 국가 형사사법 체계의 근간을 바꾸는 중대한 문제마저 정치적 이벤트로 소비되는 현실은 우려스럽다. 검찰개혁은 특정 정권의 정치적 과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형사사법 시스템 전체를 재설계하는 국가적 과제다. 수사와 기소의 권한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국민의 기본권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권한 집중을 어떤 방식으로 견제할 것인지 등은 정파를 초월해 신중하게 논의해야 할 문제다. 무엇보다 그 변화의 결과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최근 여권 내부에서도 검찰개혁을 둘러싼 미묘한 온도 차가 드러나고 있다. 당 지도부와 당권 주자들은 서로 개혁 의지를 강조하면서도 상대를 향해 개혁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국민의 눈에는 국가 제도의 미래를 놓고 토론하는 모습보다 당 대표 선거를 앞둔 정치적 경쟁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검찰개혁이 국민을 위한 제도 개선인지, 아니면 강성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정치적 상징인지 의문을 갖게 되는 이유다. 언론 현장에서 수십 년 동안 권력기관 개혁의 역사를 지켜보며 확인한 사실은 하나다. 원칙보다 정치가 앞선 개혁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개혁은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국민의 불편을 줄이고 법치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여야 한다. 그러나 정치가 개입하는 순간 개혁은 본질을 잃고 진영 대결의 상징으로 변질되기 쉽다. 결국 남는 것은 갈등과 혼란뿐이다.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완전히 폐지하는 문제 역시 충분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보완수사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미진한 부분을 바로잡고 사실관계를 보완하는 기능을 수행해 왔다. 이를 전면 폐지할 경우 사건 처리 과정에서 어떤 공백이 발생할지, 경찰 수사의 오류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피해자 보호는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 수사권 조정 이후 나타난 여러 현실은 이러한 우려를 더욱 크게 만든다. 사건 처리 지연과 수사 적체, 기관 간 책임 공방, 국민이 체감하는 불편은 여전히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제도를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바뀐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일은 훨씬 더 어렵다. 정치권은 과거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개혁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완성도다. 국민은 검찰이라는 조직을 지키기 위해 개혁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검찰을 없애기 위해 개혁을 찬성하는 것도 아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공정하고 신속한 수사, 정치적 외압으로부터 독립된 사법 시스템, 그리고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는 형사사법 체계다. 검찰개혁의 출발점과 종착점은 언제나 국민이어야 한다.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선명성 경쟁을 멈추고 실질적인 제도 논의에 집중해야 한다.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으로의 기능 분리가 국민의 권익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경찰 권한이 확대될 경우 어떤 견제 장치를 마련할 것인지, 사건 처리 지연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은 무엇인지 등을 국민 앞에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찬성과 반대의 이분법적 구호만으로는 국가의 형사사법 체계를 설계할 수 없다. 진정한 개혁은 반대 의견을 적으로 돌리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예상되는 부작용까지 함께 검토하며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간다. 숙의 없는 개혁은 개혁이 아니라 실험이고, 국민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검찰개혁은 특정 정치인의 당권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법치주의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기 위한 국가적 과제다. 눈앞의 전당대회와 선거를 위해 거대한 제도를 정치적 구호로 소비하는 순간 개혁은 신뢰를 잃는다. 대한민국은 지금도 수많은 민생 현안과 경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국민을 편 가르며 개혁 경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안심하고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검찰개혁의 기준은 정치적 유불리가 아니라 국민의 권익이어야 하며, 목적지는 특정 정치인의 당대표 자리가 아니라 대한민국 법치주의의 성숙이어야 한다. 기본과 원칙, 그리고 국민 중심이라는 가장 단순한 상식을 되찾을 때 비로소 검찰개혁은 진정한 개혁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2026-06-27 12: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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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보완수사권, 누구를 위해 폐지하나
[경제일보] 김민석 국무총리가 25일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정부의 최종 입장이라고 밝혔다. 불과 며칠 전 이재명 대통령이 "예외적 경우까지 봉쇄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신중론을 펴던 것과 정반대다. 대통령은 국회의 숙의를 당부했는데, 총리는 그 숙의를 건너뛰고 결론부터 내놓았다. 정부 안의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을 국민이 지켜본 셈이다. 이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의 배경을 짚어보면 사정이 드러난다. 8월 17일로 예정된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다.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를 줄곧 외쳐온 정청래 전 대표가 당권 경쟁의 한 축에 서 있고, 친명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김 총리 역시 그 흐름에서 비켜설 처지가 아니었다. 김 총리의 발표가 나오자 정 전 대표는 곧바로 "환영한다. 국회에서 불가역적으로 완전 폐지할 테니 시행령도 완벽한 폐지로 준비해 달라"고 화답했다. 한 사법 제도의 운명이 정책 토론이 아니라 당내 세력 다툼의 자장 안에서 정해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문제는 이 논쟁이 추상적인 권력 다툼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검찰청 통계를 보면, 올해 3~4월 일선 검찰청 12곳이 처리한 송치사건 5만5174건 가운데 보완수사를 거친 사건이 2만5152건, 45.59%에 달한다. 송치된 사건 절반가량이 보완수사라는 절차를 통해 다시 검토받았다는 뜻이다. 이 수치가 말해주는 건 단순하다. 보완수사권은 정치인이나 대기업 수사 같은 세간의 주목을 받는 사건에만 작동하는 권한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적인 분쟁을 처리하는 데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 사례 하나를 보자. 전주지검은 최근 지인들에게 해산물 대금과 차용금 명목으로 수천만 원을 가로챈 60대 여성을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경찰은 처음에 변제 능력이 인정되고 기망 행위가 불분명하다며 불송치 결정을 내렸던 사건이다. 검찰이 직접 조사에 나서 이 여성이 이미 채무초과 상태였고 사실상 소득 없이 차용금으로 생활해왔다는 점, 사기죄 처벌 전력이 여섯 번이고 불송치로 끝난 사건이 일곱 건이나 된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비로소 상습 사기의 전모가 드러났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 멈췄더라면 피해자들은 끝내 가해자의 죗값을 묻지 못했을 사건이다. 법조계가 우려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한 현직 검사는 "사건을 수사한 당사자가 자신의 수사 결과가 잘못됐다고 인정하고 이를 뒤집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형사 사건을 다뤄온 한 변호사는 보완수사권 폐지를 두고 "경찰 수사에 대한 채점 기능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검찰이 재수사를 요청해도 경찰이 결론을 바꾸지 않은 채 그대로 돌려보내는 사건이 적지 않은 현실에서, 이를 교정할 마지막 장치마저 사라진다는 뜻이다. 이화여대 이창온 교수는 보완수사권이 "기소·불기소에 대한 최종 결정 권한과 책임을 검사에게 두는" 제도적 근거라는 점을 짚으며, 수사 자료를 충실히 살피지 못한 채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은 책임의 원리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물론 폐지론에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 보완수사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실질은 영장 청구와 압수수색, 피의자 조사까지 가능한 수사권이며, 이를 남겨두는 한 검찰의 권한은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는 우려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것이 권력 집중을 막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라는 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이 원칙이 현실의 형사사법 절차에서 어떤 공백을 만들어낼지에 대한 답이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검찰개혁추진단이 검토하던 절충안, 곧 검사에게 참고인 조사와 자료 요청 권한만 주는 '보완조사권'에 대해서도 고려대 장영수 명예교수는 "그 과정에서 확보된 증거를 재판에 쓸 수 있다면 간판만 바꾼 사기이고, 쓸 수 없다면 해봤자 소용없는 제도"라고 잘라 말했다. 오는 10월 검찰청이 폐지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한다. 형사소송법의 핵심 쟁점을 정리할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런데 정부는 정작 정부안조차 내놓지 않은 채 국회에 결론을 떠넘겼고, 그 국회의 논의는 당권 경쟁의 일정에 휘말릴 처지에 놓였다. 검찰 내부에서 "그간의 공청회와 토론은 다 무엇이었느냐"는 반발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제도를 설계하는 책임 있는 주체들이 토론의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형식적 절차만 남겨두려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보완수사권 존폐는 결국 누가 사건 처리의 마지막 책임을 지느냐의 문제로 돌아온다. 그 책임을 어떤 기관에 맡길지는 신중하게 따져볼 일이지만, 적어도 그 논의가 당권을 잡기 위한 셈법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 제도가 바뀌면 사건은 다시 사람을 향한다. '동네 언니들'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처럼, 그 사람들 대부분은 정치적 주목을 받지 못하는 평범한 시민들이다.
2026-06-26 10:3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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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힘 빼려다 국민 사건이 멈춰선다면
[경제일보] 검찰개혁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이번 쟁점은 검찰의 힘을 얼마나 뺄 것인가에 그치지 않는다. 사건을 맡긴 국민이 제때 결론을 받을 수 있느냐의 문제로 이어진다. 국무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회가 검사의 보완수사 기능을 제한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를 할 수 없게 되면 그 불이익은 범죄피해자와 피의자, 피고인을 포함한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취지다. 정부 측은 곧바로 해당 입장이 추진단과 협의된 공식 입장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자문기구의 우려와 정부 추진기구의 설명이 엇갈린 셈이다. 정부가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고 해서 문제의식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검찰개혁 논의가 제도 설계의 핵심 쟁점을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는 신호로 읽힌다. 검찰개혁은 오랫동안 한국 형사사법의 핵심 의제였다.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줄이고 수사와 기소를 나누자는 요구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수사와 기소가 한 기관에 집중될 때 권한 남용의 위험이 커진다는 지적도 타당하다. 정치적 사건과 권력형 사건에서 검찰이 보여온 모습 역시 개혁 요구의 배경이 됐다. 검찰권 남용을 막자는 데 이견을 달기는 어렵다. 그러나 권한을 줄이는 일과 사건을 바로잡을 통로를 없애는 일은 다르다. 형사사법은 권력기관끼리 나눠 갖는 영역이 아니다. 국민이 피해를 호소하고 억울함을 벗어나는 절차다. 검찰의 권한이 줄었다는 사실만으로 개혁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사건 처리는 늦어지고 책임 소재가 흐려진다면 국민 입장에서 그것을 개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보완수사는 바로 이 지점에 놓여 있다. 검사는 현재 송치받은 사건에 관해 사건의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수사할 수 있다. 또 공소제기 여부 결정이나 공소유지에 필요한 경우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 하나는 검사가 직접 부족한 부분을 확인하는 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경찰에 다시 확인을 요구하는 기능이다. 조문상으로는 가까워 보여도 현장에서는 차이가 작지 않다. 경찰이 송치한 사건 기록만으로 기소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는 적지 않다. 피해자 진술이 빠졌거나 핵심 참고인 조사가 부실한 경우가 있다. 계좌 흐름이나 통신자료의 의미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기록이 넘어오는 일도 있다. 증거능력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는데도 수사 단계에서 걸러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때 공소를 책임지는 검사가 아무런 직접 확인도 할 수 없다면 선택지는 좁아진다. 기소를 포기하거나 경찰에 다시 보내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 그 결과가 사건 핑퐁이다. 피해자는 고소장을 냈지만 수사기관 사이에서 사건이 오간다. 피의자는 혐의를 벗을 기회를 기다리지만 결론은 늦어진다. 기록을 넘겨받은 공소기관은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고도 직접 확인하지 못한다. 형사사건에서 시간은 절차의 일부가 아니다. 피해자에게는 회복의 문제이고 피의자에게는 일상이 묶이는 문제다. 보완수사권 폐지론에도 이유는 있다. 검사가 수사를 계속 붙잡고 있으면 기소권과 결합해 권한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보완수사라는 이름 아래 별건수사나 압박수사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경계도 이해할 수 있다. 검찰개혁의 출발점이 권한 남용에 대한 반성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우려를 가볍게 볼 수 없다. 그러나 남용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필요한 기능까지 없애면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긴다. 필요한 것은 전면 금지가 아니라 엄격한 통제다. 보완수사의 범위를 공소제기 여부 판단과 공소유지에 필요한 경우로 한정하고 사유를 기록하게 하면 된다. 동일성 범위를 벗어난 별건수사는 금지하고 보완수사 개시와 종료 기준을 문서화해야 한다. 절차와 기간을 관리하고 피해자와 피의자에게 진행 상황을 알리는 장치도 둘 수 있다. 보완수사권을 없애려면 그에 맞는 대체 장치가 있어야 한다. 검사가 직접 확인할 수 없고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방식만 남긴다면 그 요구가 제대로 이행될 수 있어야 한다. 경찰이 언제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해야 한다. 요구를 이행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 처리했을 때 어떤 책임이 따르는지도 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도는 단순해 보이지만 현장은 더 복잡해진다. 전건송치 문제도 같은 선상에서 봐야 한다. 경찰이 모든 사건을 검찰에 보내던 과거 방식은 비효율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검사의 보완수사를 전면 금지한다면 공소기관이 사건 흐름을 점검할 통로는 다시 따져봐야 한다. 송치되지 않은 사건에 대한 통제 장치가 약해지면 고소인과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할 창구는 줄어든다. 수사기관의 판단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절차가 사라질수록 국민의 불복권도 함께 약해질 수 있다. 특별사법경찰 사건도 마찬가지다. 환경, 노동, 식품, 의료, 건설안전 사건은 전문 사실관계와 법률 판단이 함께 움직인다. 공소유지를 염두에 둔 점검 장치가 약해지면 사건의 완성도는 기관별 역량에 따라 크게 흔들릴 수 있다. 검찰개혁 논의가 일반 형사사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검찰개혁의 어려움은 여기에 있다. 검찰권 남용은 막아야 하지만 범죄 대응 역량도 유지해야 한다. 수사와 기소는 나누어야 하지만 수사와 공소유지가 완전히 끊어져서는 안 된다. 경찰의 책임수사는 존중해야 하지만 부실수사를 견제할 통로도 필요하다. 어느 한쪽 구호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치권은 검찰개혁을 너무 자주 상징의 언어로 다뤄왔다. 검찰 힘 빼기, 수사권 박탈, 완전한 분리 같은 표현은 선명하다. 그러나 국민이 형사사법 절차에서 원하는 것은 선명한 구호가 아니다. 내 사건이 제때 처리되는지, 내 억울함이 기록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지, 수사기관이 서로 책임을 미루지 않는지다. 검찰개혁의 기준은 검찰이 아니라 사건 당사자여야 한다. 피해자 입장에서 보완수사 기능은 추상적인 제도가 아니다. 사기 사건에서 계좌추적이 덜 된 채 사건이 넘어갔다면 피해자는 추가 확인을 바란다. 폭행이나 스토킹 사건에서 진술과 증거가 엇갈리면 피해자는 기록을 다시 살펴달라고 요구한다. 산업재해나 건설안전 사건에서 책임 주체가 여러 곳으로 나뉘면 공소기관의 법률적 검토가 중요해진다. 이런 사건에서 보완 기능이 사라지면 피해자는 어느 기관 앞에서 다시 설명해야 하는지부터 막막해질 수 있다. 피의자에게도 마찬가지다. 부실한 수사는 피해자만 괴롭히지 않는다. 혐의가 없는 사람도 오래 끌려다닐 수 있다. 검사가 기록을 보고 부족한 부분을 바로 확인해 불기소 판단을 할 수 있다면 피의자는 더 빨리 절차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반대로 직접 확인이 막히고 사건이 다시 경찰로 넘어가면 결론은 늦어진다. 보완수사는 처벌을 강화하는 수단만이 아니라 무리한 기소를 막는 장치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검찰에 백지수표를 줘서는 안 된다. 과거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주장도 답이 아니다. 검사가 수사기관처럼 움직이고 경찰 수사를 사실상 지휘하는 모양새가 되면 개혁 취지는 흔들린다. 필요한 것은 제한된 보완수사다. 그 필요성과 범위를 기록으로 남기고 기간을 정하며 통계도 공개해야 한다. 반복적으로 남용되는 유형이 있다면 국회와 법원, 시민사회가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형사사법제도는 한 번 바꾸면 현장에 오래 남는다. 법률 조문 몇 줄을 고치는 일처럼 보이지만 경찰서 조사실, 검찰청 기록실, 법정 공판 과정에서 그 영향은 매일 나타난다. 잘못 설계된 제도는 처음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건이 늦어진 뒤에야 체감된다. 그때는 이미 피해자가 지쳤고 피의자가 소모됐고 증거는 흐려진 뒤일 수 있다. 이번 논쟁에서 봐야 할 것은 검찰의 체면이 아니다. 경찰의 권한도 아니다. 정부와 국회의 주도권도 아니다. 국민의 사건이 어느 단계에서 멈추지 않고 흘러갈 수 있는지다. 검찰개혁이 국민을 위한 개혁이라면 보완수사 기능을 없앨지 남길지도 그 기준에서 판단해야 한다. 검찰의 권한은 통제돼야 한다. 그러나 사건을 바로잡는 기능까지 함께 없애서는 안 된다. 권한 남용을 막는 장치와 부실수사를 보완하는 장치는 함께 설계돼야 한다. 한쪽만 남기면 제도는 기울어진다. 검찰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곧 국민을 강하게 만드는 길은 아니다. 검찰개혁은 필요하다. 그러나 개혁의 성패는 검찰청 간판을 내렸는지, 공소청과 중수청을 세웠는지, 보완수사권이라는 단어를 법에서 지웠는지로만 평가될 수 없다. 국민이 고소장을 낸 뒤 덜 기다리게 됐는지, 억울한 피의자가 더 빨리 결론을 받게 됐는지, 부실한 수사가 공판에서 무너지기 전에 보완됐는지로 평가돼야 한다. 검찰 힘을 빼는 일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그 과정에서 국민 사건이 멈춰 선다면 개혁의 이름은 남아도 설득력은 약해진다. 보완수사 논쟁은 검찰을 위한 논쟁이 아니다. 고소장을 낸 사람, 조사를 받는 사람, 재판을 기다리는 사람의 사건을 누가 끝까지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2026-06-10 10: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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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국익은 놓쳐서도 안 된다.
[경제일보] 국가의 품격은 이 두 축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최근 방시혁 HYBE 의장을 둘러싼 자본시장법 위반 의혹은 바로 그 시험대 위에 대한민국을 올려놓고 있다. 검찰은 방 의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반려하고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이는 무죄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구속이라는 강제처분을 정당화할 만큼 범죄 소명과 필요성이 현 단계에서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형사사법의 기본은 불구속 수사다. 특히 경제범죄는 대부분 문서와 계약, 회계자료와 내부 보고 체계 속에 흔적이 남는다. 도주 우려나 명백한 증거인멸 가능성이 없다면 구속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원칙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의혹의 핵심은 상장 이전 기존 주주들에게 기업공개 계획이 없다고 설명하고 특정 사모펀드에 지분을 넘기게 한 뒤, 이후 상장을 통해 거액의 차익을 실현했느냐는 점이다. 사실이라면 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자본시장은 신뢰로 움직인다. 공시와 계약,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이 무너지면 시장은 도박판으로 전락한다. 명성과 성공이 법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누구도 법 위에 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 사건을 단순한 한 기업인의 사법 리스크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방시혁이라는 이름은 개인을 넘어 BTS 라는 세계적 문화 자산의 설계자라는 상징성을 가진다. BTS는 더 이상 하나의 아이돌 그룹이 아니다. 그들은 대한민국 문화 주권의 살아 있는 증거이며, K-팝을 넘어 K-드라마, K-시네마, K-푸드, K-뷰티, K-방산까지 이어지는 K시리즈의 심장부다. 2026년은 특별한 해다. 군 복무를 마친 멤버들이 완전체로 복귀하며 세계는 다시 BTS를 기다리고 있다. 팬덤 아미는 단순한 팬클럽이 아니라 국경을 초월한 거대한 문화 공동체다. 서울의 공연장은 물론이고 멕시코, 미국, 베트남, 유럽, 중동까지 공연 유치 경쟁은 이미 외교의 영역이 됐다. 공연 한 번이 관광과 항공, 호텔, 유통, 화장품, 패션, 플랫폼 산업 전체를 흔든다. 이는 단순한 콘서트가 아니라 국가 경제 이벤트다. 실제로 오늘의 외교는 더 이상 조약과 무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정상회담의 테이블 위에는 반도체와 방산만이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 음악과 음식이 함께 올라가야 한다. 산업은 이해관계를 만들고 문화는 우호를 만든다. 이해관계는 바뀌지만 우호는 오래 남는다. 세계의 많은 정상들이 BTS를 알고,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영화를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미·중 전략경쟁, 공급망 재편, 중동 불안, 고유가와 환율 압박 속에서 한국 경제는 새로운 성장 서사를 요구받고 있다. 제조업만으로는 부족하고, 문화만으로도 부족하다. 기술과 감성, 산업과 서사가 함께 가야 한다. 그 접점에 BTS와 K시리즈가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은 공장만이 아니라 감동을 생산하는 능력에도 달려 있다. 그렇다고 국익을 이유로 법 집행을 멈추자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더 위험하다. 법을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순간 국익도 무너진다. 진짜 국익은 정의 위에 세워질 때만 지속 가능하다. 그러나 반대로 국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법 집행 역시 현명하지 않다. 국가는 처벌 기계가 아니다. 법의 목적은 공동체의 안정과 지속 가능성에 있다. 공자는 군자에게 의를 먼저 보라고 했고, 주역은 후덕재물(厚德載物)이라 했다.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싣는다는 뜻이다. 지도자의 길도, 국가의 길도 마찬가지다. 법을 세우되 나라를 살피고, 원칙을 지키되 미래를 보아야 한다. 보여주기식 강경함은 정의가 아니다. 냉정한 법리와 성숙한 국가 판단이 진짜 정의다. 지금 대한민국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방시혁 개인의 유무죄를 넘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국가의 자산을 지키고 어떤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BTS 완전체의 귀환은 단순한 컴백이 아니다. 그것은 K-시리즈 전체가 다시 세계 중심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법정에서 죄는 끝까지 다투어야 한다. 그러나 구속이 반드시 정의는 아니다. 법의 엄정함과 국가 전략은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라 조화되어야 할 가치다. 감정보다 원칙을, 원칙 속에서도 국익을 함께 보는 것.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진정한 법치이며, 성숙한 국가 운영이다.
2026-04-26 09:4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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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권력의 몰락 , 78년 체제의 붕괴
[경제일보] 올해 10월 2일,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출범한 검찰청이 78년 만에 간판을 내린다. 대통령을 구속하고 재벌 총수를 소환하며 전직 총리와 장관을 법정에 세웠던 조직이다. 권력의 실체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온 기관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수사권은 중대범죄수사청으로 넘어가고, 기소권은 공소청으로 분리된다. 권력을 만들어낸 것도 법이고, 이를 해체한 것도 법이다. 이번 변화는 조직 개편을 넘어선다. 형사사법 체계 전체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 이 흐름은 거꾸로 짚어야 또렷하게 보인다. 한국 검찰은 수사와 기소를 동시에 쥔 드문 체계를 유지해왔다. 사건을 직접 인지해 수사를 시작하고, 기소 여부를 단독으로 판단하며, 공소를 유지하는 전 과정을 장악했다. 경찰이 처리한 사건도 전건 검찰로 넘어갔고, 검사는 그 위에서 지휘권을 행사했다. 이 체계에서는 검찰의 판단 없이는 누구도 법정에 서기 어려웠다. 특수부 검사의 위상은 이 권한 집중에서 비롯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존재만으로 기업을 긴장시키는 조직이었다.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의 수임료는 시장의 일반 기준을 벗어났고, 퇴직 직후 특정 사건이 따라 움직이는 관행도 낯설지 않았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결합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변화는 짧은 시간에 이어졌다. 2021년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으로 경찰이 1차 수사권과 종결권을 확보했다. 검사의 수사 지휘권은 사라졌고, 경찰은 혐의가 인정되는 사건만 검찰에 넘기게 됐다. 혐의 없음 사건은 자체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수십 년 이어진 수직 관계가 이 시점에서 균열을 보였다. 이듬해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는 부패와 경제 범죄로 줄었다. 기존 6개 범죄 영역에서 2개로 축소됐다. 검찰이 사건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통로가 크게 좁아졌다. 이어 정부조직 개편이 추진되면서 검찰청 폐지가 결정됐다. 수사는 중수청으로, 기소는 공소청으로 나뉜다. 5년 사이 형사사법 체계의 축이 이동했다. 제도 변화 속도는 현장을 앞질렀다.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 지연과 처리 편차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보완책이 뒤따랐지만 인력과 조직이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사건이 경찰로 집중되면서 처리 기간이 길어지고, 보완수사 요구가 반복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통계는 변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검찰의 무고사범 처리 인원은 수사권 조정 직후 크게 줄었고 이후 일부 회복됐지만 이전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수사 주체가 바뀌면서 사건 처리 방식도 달라졌다. 중수청 출범을 앞두고 남은 과제도 적지 않다. 공소청 검사에게 어느 수준까지 보완수사 권한을 부여할지, 경찰 권한을 어떻게 통제할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기관 간 관할 충돌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검찰 권력 약화는 정치적 선택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권한 집중에 따른 피로가 누적된 결과다. 수사와 기소가 한 기관에 묶여 있을 때 권력은 빠르게 작동하지만, 통제는 쉽지 않다. 정권 교체 때마다 수사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인식이 반복되면서 신뢰 기반이 흔들렸다. 경찰은 준비를 이어왔다. 조직과 인력을 확충하고 전문 수사 영역을 넓혔다. 경제범죄와 사이버 범죄 대응 역량을 키웠고, 군사경찰 사건과 대공수사권까지 넘겨받으며 관할 범위를 확대했다. 권력 이동은 제도 변화와 맞물려 진행됐다. 다만 권력이 이동했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정보와 수사가 한 기관에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견제 장치가 충분하지 않다면 기존의 문제가 다른 형태로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 검찰청 이후 형사사법 체계는 세 갈래로 나뉜다. 공소청은 기소를 담당하고, 중수청은 중대범죄 수사를 맡는다. 경찰은 일반 사건을 처리한다. 권력의 중심이 어디로 이동할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기소권이 수사를 좌우한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수사권을 쥔 기관이 주도권을 쥘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분명한 변화는 권력이 한 기관에 집중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책임의 경계는 더 흐려질 수 있다. 사건을 맡을 기관이 나뉘면서 혼선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형사사법 체계는 지금 재편 과정에 있다. 권력은 이동했고, 새로운 균형은 아직 자리 잡지 않았다.
2026-04-09 10: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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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과 정의는 왜 사라졌나
[편집자 주] 형사사법 제도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면서, 법조 현장에서 오랫동안 반복돼 온 관행과 판단 기준에 대한 문제 제기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제도의 변화는 눈에 띄지만, 그 제도가 실제로 작동해 온 과정과 그 영향이 충분히 돌아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연재는 개별 제도나 입법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검찰·법원·변호사로 이어지는 법조 시스템 전반에서 축적돼 온 현실을 차분히 따라가고자 한다. 사법 절차가 현장에서 어떻게 체감돼 왔는지를 살펴보는 과정이 제도 변화를 이해하는 데 하나의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코노믹데일리] 형사사법 절차에서 변호사는 피의자와 피고인의 마지막 방패다. 수사 단계에서는 진술과 증거 제출을 조율하고, 재판에서는 사실관계와 법리를 정리해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변호인의 조력은 법으로 보장돼 있다. 다만 그 조력이 어느 정도의 밀도로 제공되는지는 사건마다 다르다.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 제도 도입의 취지는 분명했다. 법률가 수를 늘려 국민의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이후 매년 1500명 안팎의 신규 변호사가 배출되면서 변호사 수는 빠르게 증가했다. 선택지는 늘었지만, 경쟁도 함께 심화됐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사건은 선택의 대상이 된다. 사건의 성격, 난이도, 예상 소요 시간, 수임 조건이 판단 요소가 된다. 전문성과 경험이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사건이 어떤 기준으로 선택되고, 얼마나 깊이 관여되는지는 개별 사무실의 판단에 맡겨진다. 이 과정에서 법률 서비스는 공공성의 영역이면서 동시에 시장의 영역이 된다. 형사 절차는 초반 대응이 중요하다. 진술 방향을 언제 어떻게 정하는지, 구속 여부에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이후 재판의 전개가 달라질 수 있다. 수사 초기부터 충분한 준비가 이뤄진 사건과 그렇지 못한 사건 사이에는 준비 과정에서 차이가 생긴다. 그 차이가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동일한 조건에서 출발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국선변호인 제도는 이러한 차이를 완화하기 위한 장치다. 일정한 요건을 갖춘 피고인에게는 국가가 변호인을 선정한다. 다만 현실에서는 사건 수와 시간의 제약이 존재한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제도의 취지와 현장의 여건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사선 시장에서는 이력과 평판이 곧 경쟁력이 된다. 수사기관이나 법원 근무 경력, 특정 분야에서의 성공 사례는 신뢰의 근거로 제시된다. 사건이 몰리는 곳은 다시 더 많은 사건을 맡는다. 이 과정에서 변호사의 역할은 단순한 방어를 넘어 결과를 기대하게 만드는 영역으로 확장된다. 변호사의 직업윤리는 의뢰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경쟁이 격화된 환경 속에서 사건은 수임 대상이자 업무로 분류된다. 사건을 대하는 태도와 관여의 깊이는 사무실의 여건과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법률가의 직업적 양심이 흔들린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시장의 논리가 판단의 배경에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법률 서비스의 문턱은 낮아졌지만, 방어에 투입되는 조건까지 동일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변호사 수는 늘었지만 방어의 질이 균등해졌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질문이 남는다. 형사사법 절차는 수사와 재판, 그리고 방어가 이어지는 과정이다. 어느 한 단계에서 준비의 깊이가 달라지면 이후 절차에서도 차이가 생길 수 있다. 방어는 권리다. 그 권리가 실제 현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행사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일은 특정 직역을 향한 비난이 아니라, 법조 전체의 신뢰를 되묻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2026-02-19 10:0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