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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빗은 통과, 두나무는 왜 멈췄나…'금가융합' 첫 문 열렸지만 셈법 달랐다
[경제일보] 과거 17년 말 금융과 가상자산을 분리한 이른바 ‘금가분리’ 기조 이후 처음으로 금융그룹 계열사의 가상자산거래소 인수가 공정거래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미래에셋그룹은 코빗을 품으며 전통 금융과 디지털자산을 연결할 교두보를 확보했다. 그러나 이번 승인을 금융회사의 가상자산업 진출이 전면 허용됐다는 신호로 해석하기는 이르다. 공정위가 결합을 승인한 결정적 배경에는 코빗의 낮은 시장점유율이 있었다. 반대로 국내 최대 가상자산거래소와 대형 플랫폼의 결합인 네이버파이낸셜·두나무 심사는 장기화하고 있다. 가상자산 기업이 포함됐다는 공통점보다 결합 이후 시장을 움직일 힘이 얼마나 커지는지가 심사 속도를 가른 셈이다. 공정위는 지난 9일 미래에셋컨설팅이 코빗 지분 92.06%를 약 1334억원에 취득하는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미래에셋컨설팅은 호텔업을 주력으로 하는 비금융 계열사지만 그룹 내 미래에셋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을 두고 있어 증권·자산운용업과 가상자산거래소 간 혼합결합으로 심사받았다. ◆ 금가분리 9년 만의 변화…공정위가 코빗을 허용한 이유 공정위는 미래에셋 금융 계열사와 코빗이 결합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경쟁 제한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향후 주식과 가상자산을 한곳에서 거래하는 통합 플랫폼이 등장할 때 경쟁 증권사의 시장 진입이 어려워지는지,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허용될 경우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코빗을 활용해 경쟁사보다 유리한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지 등이 검토 대상이었다. 결론은 ‘경쟁 제한 가능성이 크지 않다’였다. 코빗의 국내 원화 가상자산 거래량 기준 점유율이 약 0.5%에 불과하고 거래소 경쟁을 좌우하는 유동성도 시장 판도를 바꿀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미래에셋이 코빗을 인수하더라도 당장 다른 거래소나 금융회사를 배제할 힘을 갖기는 어렵다고 본 것이다. 공정위는 이번 결합을 금융그룹 계열사가 가상자산거래소를 인수한 첫 사례로 규정했다. 디지털금융 시장의 재편과 서비스 혁신을 통해 디지털자산 시장의 경쟁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업계가 이번 승인을 금가융합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금가분리는 2017년 말 가상자산 투기 과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형성됐다. 금융회사가 가상자산을 직접 보유하거나 관련 기업에 지분을 투자하는 데 보수적인 원칙이 적용됐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가상자산 현물 ETF와 스테이블코인, 커스터디, 실물연계자산(RWA) 제도화가 진행되면서 국내 금융회사의 경쟁력이 뒤처질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금융당국도 법인의 가상자산시장 참여를 단계적으로 허용하고 가상자산사업자의 대주주 심사와 자금세탁방지 체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하고 있다. 이번 승인은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나온 상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다만 공정위의 승인은 시장 경쟁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한 결과다. 금융회사의 가상자산업 직접 진출을 전면 허용하거나 금가분리 원칙을 공식 폐기한 결정은 아니다. 가상자산사업자 대주주 적격성과 금융 계열사 간 정보 공유, 이해상충 방지 등 금융당국의 별도 규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 네이버·두나무는 다른 문제…플랫폼과 데이터까지 본다 시장 관심은 네이버파이낸셜과 두나무의 기업결합으로 옮겨가고 있다. 양사는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해 두나무를 네이버파이낸셜의 100% 자회사로 편입할 계획이다. 하지만 기업결합 심사와 관련 인허가가 길어지면서 주주총회와 거래 종결 일정을 두 차례 연기했다. 당초 6월 말로 예정됐던 거래 종결 시점은 12월 말까지 밀렸다. 두 결합의 가장 큰 차이는 시장 지위다. 공정위 제출자료를 기준으로 국내 원화 가상자산거래소 시장점유율은 업비트 69%, 빗썸 28%, 코인원 2%, 코빗 0.5%, 고팍스 0.1% 수준이다. 코빗은 인수 이후에도 시장을 좌우하기 어렵지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이미 압도적인 1위 사업자다. 네이버의 영향력도 증권사 투자 플랫폼과는 성격이 다르다. 네이버는 검색과 커머스, 콘텐츠, 광고, 간편결제를 일상적으로 연결하는 대형 플랫폼이다. 두나무와 결합하면 네이버페이의 결제 기반과 이용자 데이터, 업비트의 가상자산 거래 데이터가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심사 범위도 거래소 간 점유율 비교를 넘어설 수밖에 없다. 네이버가 검색·쇼핑·콘텐츠 이용자를 업비트로 유도하거나 두나무의 거래 정보를 네이버 금융 서비스에 활용할 가능성, 비상장주식과 스테이블코인 사업에서 경쟁사를 배제할 가능성, 결제와 투자 서비스를 묶어 이용자를 특정 플랫폼에 고착시키는 효과 등이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코빗과 두나무의 시장 지위가 크게 다른 만큼 두 기업결합을 동일한 잣대로 보기 어렵다고 분석한다. 코빗은 점유율이 1%에도 미치지 않아 인수 이후 시장 구도를 단기간에 바꿀 가능성이 작다. 반면 두나무는 국내 원화 가상자산 거래시장의 과반을 차지한 1위 사업자다. 여기에 네이버의 이용자 기반과 플랫폼 영향력이 더해질 경우 데이터와 고객 유입 경로가 특정 생태계에 집중될 가능성까지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코빗 인수 승인이 네이버·두나무 결합에 그대로 적용될 선례가 되기는 어렵다. 미래에셋·코빗 심사의 핵심이 금융회사와 중소형 거래소의 결합에 따른 경쟁사 배제 가능성이었다면, 네이버·두나무 심사에서는 대형 플랫폼과 1위 거래소의 결합이 결제·투자 서비스 경쟁과 이용자 선택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더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른다. ◆ 거래소 인수는 출발점…법인 ‘온보딩’이 진짜 승부 기업결합 승인을 받은 미래에셋의 과제도 만만치 않다. 코빗을 인수했다고 해서 업비트·빗썸 중심의 시장 구도가 곧바로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개인 투자자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려면 수수료 인하와 신규 고객 보상, 거래 종목 확대 등 상당한 마케팅 비용이 필요하다. 미래에셋이 노릴 수 있는 차별화 지점은 법인·기관 고객이다. 법인은 개인처럼 계좌를 개설하고 곧바로 가상자산을 거래하지 않는다. 투자 필요성과 적합성 검토, 이사회 등 내부 승인, 투자 한도 설정, 자금 집행 권한, 자산 보관, 가격 산정, 손익 인식, 회계·세무 처리까지 여러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거래소의 주문 체결 기능보다 제도권 금융 수준의 위험관리가 중요해진다. 법인이 투자 대상을 내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리서치와 위험 안내, 감사·보고에 활용할 거래 데이터, 월렛 키와 출금 권한을 통제하는 보안 체계, 사고 발생 시 책임과 보상 기준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미래에셋증권은 리서치와 자산관리, 투자자 보호, 내부통제 경험을 갖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상품 설계와 운용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코빗이 거래·보관 인프라를 맡고 금융 계열사의 역량을 결합한다면 법인 고객을 위한 리서치와 커스터디, 운용지원 플랫폼으로 확장할 여지가 있다. 금융당국이 법인의 가상자산시장 참여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도 기회다. 법인 참여가 본격화하면 거래소 경쟁 기준은 개인 고객 수와 수수료율에서 보관·보안·내부통제·사후관리 역량으로 이동할 수 있다. 시장점유율이 낮은 코빗이 개인 거래량 경쟁을 넘어 기관형 디지털자산 인프라로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한편 법인 시장이 곧바로 수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가상자산의 회계·세무 처리와 투자 한도, 내부통제 기준이 더 구체화돼야 한다. 금융 계열사와 거래소 사이의 고객정보 공유 및 이해상충 방지 원칙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스테이블코인과 RWA, 커스터디 사업 역시 관련 법률의 내용에 따라 사업 범위와 수익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
2026-07-12 13: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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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열렸지만…변함없는 기름값, 언제쯤 내려갈까
[경제일보] 미국과 이란의 종전 합의 이후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재개되면서 국제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으로 안정되고 있다. 한국 선박들도 순차적으로 해협을 빠져나오고 있지만 정작 소비자가 체감하는 국내 기름값은 좀처럼 내려가지 않고 있다. 국제유가 하락이 정유사 공급가격과 주유소 판매가격에 반영되기까지 시차가 있는 데다 호르무즈 해협의 물류 정상화도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2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배럴당 73.14달러로 전쟁 직전인 72.48달러(25일 오전 8시 기준) 수준을 사실상 회복했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69.92달러를 나타내며 70달러선 아래로 내려갔다. 두바이유는 67.29달러를 기록해 오히려 전쟁 전보다 낮아졌다. 반면 국민들이 체감하는 주유소 가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26일 오전 8시 기준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리터당 2006.4원, 경유 평균 판매가격은 1997.72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4월 이후 석 달째 리터당 2000원 안팎의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유가와 국내 주유소 가격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가격 반영 시차다. 통상 국제 석유제품 가격 변동분이 정유사 출고가격에 반영되고, 다시 주유소 판매가격으로 이어지기까지는 2~3주가량 걸린다. 다만 현재 국내 가격 흐름은 평시와 다르다.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하고 있어 정유사 출고가격이 국제 제품가격 흐름보다 정부가 정한 최고가격에 맞춰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제유가가 하락하더라도 소비자가 체감하는 국내 가격 흐름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정부는 지난 3월 중동 전쟁에 따른 유가 급등을 막기 위해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도매가격에 상한선을 설정했다. 현재 최고가격은 휘발유 리터당 1934원, 경유 1923원, 등유 1530원 수준이다. 당초 최고가격제는 국내 유가 급등을 막는 방어선 역할을 했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으로 내려온 지금은 소비자 가격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최고가격 자체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도 국제유가 하락 흐름을 반영해 최고가격 하향 조정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히 정상화되지 않은 점도 변수다. 한국 선박들의 통항은 재개됐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여전히 수백 척의 선박이 해협 안팎에서 대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운송이 평상시 수준으로 회복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석유업계에서는 호르무즈 통항 재개가 시장 심리에는 긍정적 신호지만 실제 원유 수급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석유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통항 재개는 시장에 좋은 신호인 것은 맞지만 가격에는 기대 심리가 먼저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며 "실제 원유 공급과 수요, 선박 보험, 거래 절차까지 정상화되기까지는 추가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평시에는 싱가포르 국제 현물시장의 휘발유와 경유 가격 변동분이 정유사 출고가와 주유소 판매가격에 순차적으로 반영되면서 국내 판매가격까지 약 2주 정도의 시차가 발생한다"며 "다만 현재 국내 가격은 정유사들이 국제 제품가격 변동에 따라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구조라기보다 정부 최고가격제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국내 기름값 안정의 관건은 호르무즈 통항 정상화가 실제 원유 공급 회복으로 이어지는 속도와 정부의 최고가격제 조정 방향이다. 국제유가가 하락세를 이어가더라도 기존 재고와 가격 반영 시차, 환율, 선박 보험료, 운임 부담 등이 남아 있는 만큼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 안정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2026-06-27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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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보다 무서운 건 경제 불확실성이다
[경제일보] 전쟁은 끝났다고 해서 곧바로 끝나지 않는다. 총성이 멎은 뒤에도 전쟁은 유가에 남고 환율에 남고 물류비에 남고 기업의 투자계획서와 가계의 장바구니에 남는다. 미국과 이란이 전쟁 종식과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에 합의했다는 소식은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다. 세계 금융시장은 즉각 안도했다. 국제유가는 급락했고 주요 증시는 반등했다. 전쟁 프리미엄이 빠지자 시장은 마치 긴 터널을 빠져나온 듯 환호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환호가 아니라 냉정이다. 전쟁보다 무서운 것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경제 불확실성이다. 휴전문서 한 장이 원유 생산시설을 하루아침에 복구하지 못한다. 해협 재개방 선언이 곧바로 선박 보험료를 낮추지도 않는다. 국제유가가 하루 이틀 떨어졌다고 해서 물가가 곧장 안정되는 것도 아니다. 전쟁은 정치적으로는 합의로 끝나지만 경제적으로는 비용 청구서가 도착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이번 미국·이란 전쟁이 세계경제에 남긴 첫 번째 상처는 에너지 시장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가 지나는 핵심 길목이다. 그 길목이 전쟁의 인질이 되자 세계는 다시 한 번 에너지 안보가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경제 생존의 문제임을 확인했다. 합의 이후 브렌트유 가격은 급락했지만 이것은 위험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기보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일단 뒤로 밀렸기 때문이다. 유가가 내려도 공급망은 즉시 회복되지 않는다. 산유국의 생산설비, 정제시설, 항만, 보험, 선박 운항, 금융결제망은 모두 시간이 필요한 시스템이다. 더 큰 문제는 시장의 기억이다. 한번 흔들린 시장은 쉽게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선사들은 통항이 가능하다는 정치적 선언보다 실제 항로의 안전을 본다. 보험사는 합의문보다 재발 가능성을 계산한다. 정유사와 항공사, 석유화학 기업은 현물가격보다 3개월 뒤, 6개월 뒤의 조달 안정성을 본다. 그래서 전쟁 뒤의 경제는 늘 ‘안정’이 아니라 ‘안정 확인’의 시간을 요구한다. 불확실성은 가격 그 자체보다 더 비싸다. 이번 합의는 세계 중앙은행에도 어려운 숙제를 남겼다. 전쟁 중 급등한 에너지 가격은 물가를 밀어 올렸다. 유가가 떨어지면 물가 압력은 완화되지만 이미 오른 운송비와 원재료비, 기대인플레이션은 시차를 두고 경제 전반에 스며든다. 중앙은행은 금리를 내리고 싶어도 물가가 불안하면 움직이기 어렵다. 금리를 유지하면 경기 회복은 더뎌지고 금리를 내리면 다시 물가와 환율이 흔들릴 수 있다. 전쟁은 끝났지만 통화정책의 안개는 더 짙어질 수 있다. 한국경제에는 이 불확실성이 더 예민하게 작용한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제조업과 수출 비중이 큰 나라다. 원유와 가스 가격이 오르면 기업의 생산비가 먼저 오른다. 정유·화학·철강·항공·해운은 물론이고 전력비 부담이 큰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산업에도 파장이 간다. 유가가 오르면 무역수지가 흔들리고 무역수지가 흔들리면 환율이 불안해진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물가가 뛰고 수입물가가 뛰면 소비자물가가 다시 고개를 든다. 결국 중동의 포성이 서울의 주유소 가격표와 서민 밥상으로 번지는 구조다. 합의 이후 유가가 안정된다면 한국경제에는 분명 숨통이 트인다. 기업의 원가 부담은 줄고 항공·해운·석유화학·자동차 등 에너지 민감 업종은 불확실성을 덜 수 있다. 고유가에 짓눌렸던 소비심리도 일부 회복될 수 있다. 환율 안정은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에도 긍정적이다. 최근 반도체 수출 호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 부담이 낮아지면 한국경제는 다시 회복 궤도에 올라설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것을 경기 반전의 신호로 과대해석해서는 안 된다. 종전 합의가 곧 경기부양책은 아니다. 전쟁은 이미 비용을 남겼다. 기업들은 몇 달 동안 비싼 원료와 물류비를 감당했다. 일부 기업은 납기와 계약조건을 조정했고 일부 가계는 고유가와 고물가 속에서 소비를 줄였다. 한번 미뤄진 투자는 다시 집행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한번 닫힌 소비지갑은 유가가 떨어졌다는 뉴스 하나로 곧바로 열리지 않는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봐야 할 지점도 여기에 있다. 지금 필요한 정책은 ‘전쟁이 끝났으니 정상화됐다’는 낙관론이 아니라, ‘전쟁이 끝났지만 불확실성은 남았다’는 위험관리다. 물가가 완전히 안정되기 전까지 통화정책은 신중해야 한다. 동시에 취약계층과 에너지 다소비 업종에는 선별 지원이 필요하다. 고유가의 부담은 모든 국민에게 같지 않다. 대기업은 헤지와 장기계약으로 버틸 수 있지만 영세 자영업자와 운송업자, 농어민, 저소득층은 유가 변동을 그대로 맞는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 같은 단기 처방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필요할 때 한시적 완충장치는 있어야 하지만 재정 여력이 무한한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 전략비축 체계 점검, 핵심 원자재 공급망 확보, 항만·해운 리스크 관리, 기업의 환율·유가 헤지 역량 강화다. 전쟁이 남긴 교훈은 단순하다. 싸게 사는 것보다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효율만 따지던 공급망의 시대가 저물고, 회복탄력성을 따지는 공급망의 시대가 왔다. 기업도 달라져야 한다. 중동 리스크를 일시적 외부 변수로만 볼 수 없다. 지정학은 이제 재무제표의 바깥에 있는 문제가 아니다. 원가, 환율, 운송, 보험, 재고, 투자, 배당까지 모두 흔드는 변수다. 최고경영자는 매출 목표만이 아니라 지정학적 리스크 시나리오를 들여다봐야 한다. 에너지 가격이 배럴당 70달러일 때와 100달러일 때, 호르무즈 통항이 정상일 때와 부분 제한될 때, 환율이 100원 더 오를 때의 손익을 따져야 한다. 위기 대응은 전쟁이 난 뒤 만드는 문서가 아니라 평시에 쌓아두는 체력이다. 금융시장도 안도 랠리에 취해서는 안 된다. 전쟁 합의 이후 주가가 오르고 유가가 내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종종 정치적 이벤트에 먼저 환호하고 실물경제의 복구 속도를 뒤늦게 확인한다. 유가 하락이 물가 안정으로 이어질지, 물가 안정이 금리 인하로 이어질지, 금리 인하가 소비와 투자 회복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열린 질문이다. 지금의 시장 반등은 ‘평화 배당’이라기보다 ‘공포 할인 해소’에 가깝다. 여기서 고전의 지혜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손자병법은 “용병을 잘하는 자는 다시 징병하지 않고, 군량을 세 번 싣지 않는다”고 했다. 전쟁을 잘하는 장수는 싸움터에서만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보급의 비용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오늘의 경제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실력은 전쟁의 승패보다 전쟁 뒤 비용을 얼마나 줄이느냐에서 드러난다. 에너지, 물류, 금융, 물가, 환율의 보급선을 관리하지 못하면 평화의 이름 아래서도 경제는 계속 흔들린다. 이번 미국·이란 합의는 세계경제에 시간을 벌어줬다. 하지만 시간을 번 것과 문제를 해결한 것은 다르다.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린다고 해도 세계경제는 이미 에너지 안보의 취약성을 봤다. 국제유가가 내려간다고 해도 한국경제는 수입 에너지 의존 구조를 다시 확인했다. 증시가 오른다고 해도 기업과 가계가 체감하는 불확실성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는다. 정책당국은 이제 세 가지를 해야 한다. 첫째, 유가·환율·물류비의 변동이 물가와 산업별 비용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추적해야 한다. 둘째, 에너지와 원자재 공급망을 장기계약·비축·대체선 확보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셋째, 전쟁 이후 완화된 시장 분위기를 구조개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위기가 지나가면 개혁의 긴장도 함께 풀린다. 그러나 다음 위기는 늘 우리가 방심할 때 온다. 전쟁보다 무서운 것은 경제 불확실성이다. 전쟁은 언젠가 끝난다. 그러나 불확실성은 끝났다는 선언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숫자와 가격과 계약과 기대 속에 남아 서서히 비용을 청구한다. 지금 한국경제가 해야 할 일은 평화의 뉴스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남긴 경제의 균열을 차분히 메우는 일이다. 평화는 합의문으로 시작되지만 경제의 안정은 준비된 국가만이 얻을 수 있다.
2026-06-16 15: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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