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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의 뜨거운 질주, 변동성을 더욱 경계해야 한다
[경제일보] 한국 증시가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한때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상징하던 저평가 시장은 이제 글로벌 투자은행과 국제 금융 언론이 주목하는 가장 뜨거운 시장 가운데 하나가 됐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한국 증시의 상승 속도가 1990년대 말 닷컴버블 시기의 미국 나스닥 상승률마저 앞질렀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한국 코스피는 지난해 초 2400선에서 올해 7200선을 돌파하며 18개월 만에 세 배 이상 급등했다. 이는 미국 나스닥이 닷컴버블 당시 같은 수준까지 상승하는 데 걸렸던 시간보다도 더 빠른 속도다. 이번 랠리의 중심에는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있다. 인공지능(AI) 혁명과 글로벌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 HBM(고대역폭 메모리) 수요 폭증이 두 기업의 실적을 사상 최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올해 들어 130% 안팎 상승했고, SK하이닉스는 170% 가까이 급등했다. 두 기업의 합산 시가총액은 이미 대한민국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섰다. 이는 한국 경제 역사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장면이다. 그러나 시장이 뜨거워질수록 냉정함은 더욱 중요하다. FT가 지적했듯이 이번 랠리는 과거 닷컴버블과는 분명 다른 측면이 있다. 당시 미국 나스닥은 실적보다 미래 기대감과 밸류에이션 확대에 의해 움직였다. 반면 현재 한국 반도체 랠리는 실제 이익 증가가 동반되고 있다. 글로벌 AI 인프라 확장이 메모리 산업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 씨티그룹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코스피 목표치를 계속 상향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과거 메모리 산업이 단순 경기순환 산업이었다면, 이제는 AI라는 거대한 구조적 변화 속에서 장기 성장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문제는 시장의 균형이다. 현재 한국 증시의 상승은 지나치게 소수 종목에 집중돼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상당수 종목은 여전히 부진하다. 중소형 가치주들은 시장 유동성에서 소외되고 있고, 체감 경기 역시 증시의 뜨거운 열기와는 큰 괴리가 있다. 즉 지금의 코스피는 ‘한국 경제 전체의 동반 상승’이라기보다 ‘AI 반도체 중심의 초집중 랠리’에 가깝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시장은 언제나 낙관 속에서 과열되고, 과열 속에서 위험을 잊는다. 특히 한국 시장은 개인 투자자의 비중이 높은 구조다. 이번 상승장 역시 이른바 ‘개미군단’의 귀환이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다. 한동안 미국 증시로 향했던 자금이 다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몰리고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빚투’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광풍이 불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이번에는 다르다”고 말했다. 서울 집값이 끝없이 오를 것이라는 믿음 속에 무리한 대출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시장은 극단적 변동성을 경험했다. 증시도 마찬가지다. 주가는 기업의 미래 가치를 반영하지만, 시장은 언제나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AI 혁명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분명 존재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조정과 변동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한국 시장은 구조적으로 외국인 자금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 외국인은 상승장에서는 강력한 추진력이 되지만, 위험 회피 국면에서는 가장 먼저 빠져나가는 자금이기도 하다. 미국 금리 정책, 글로벌 경기 둔화, 미·중 갈등, 대만해협 리스크, 중동 정세 같은 외부 변수는 언제든 한국 시장 변동성을 증폭시킬 수 있다. 지금처럼 특정 섹터와 특정 종목에 자금이 과도하게 집중된 시장에서는 작은 충격도 훨씬 크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시장이 점점 ‘투자’보다 ‘추격’의 심리로 움직일 가능성이다. 실적과 산업 변화에 대한 냉정한 분석보다는 “지금 안 사면 뒤처진다”는 조급함이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위험 신호가 나타난다. 특히 개인 투자자들이 대출까지 동원해 특정 종목에 몰릴 경우 시장의 건강성은 빠르게 약화될 수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상승장을 단순 거품으로만 볼 수도 없다. 현재 한국 증시는 여전히 미국 시장 대비 밸류에이션이 낮다. FT가 인용한 블룸버그 자료에 따르면 코스피의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8배대 수준으로, 미국 S&P50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상장사의 절반 가까이가 여전히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이다. 이는 한국 시장이 아직도 구조적 저평가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한국 증시가 진정한 선진 자본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의 질주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중소형주와 가치주, 바이오와 로봇, 방산과 조선, 콘텐츠와 소프트웨어 산업까지 시장 전반의 체질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지배구조 개혁과 저PBR 기업 가치 제고 정책 역시 그런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자본시장의 신뢰를 높이고, 시장 전체의 체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냉정한 균형감각이다. AI 혁명은 분명 거대한 산업 전환의 시대를 열고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그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시장의 열광은 언제나 그림자를 동반한다. 투자자는 낙관 속에서도 위험을 계산해야 하고, 정부는 상승장 속에서도 시스템 리스크를 점검해야 하며, 기업은 주가 상승에 취하기보다 미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세계는 지금 한국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 이 뜨거운 상승이 대한민국 산업 혁신의 서막이 될지, 아니면 또 하나의 극단적 변동성으로 기록될지는 지금부터의 선택에 달려있다.
2026-05-23 18:3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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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나서는 중국 지방정부 : 한국도 반도체 초과세수를 생태계 구축에 활용해야 한다
[경제일보] 중국이 무섭게 변하고 있다. 이제 중국은 더 이상 단순한 ‘세계의 공장’이 아니다. 값싼 노동력으로 글로벌 기업의 하청 생산기지 역할을 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지금 중국 지방정부들이 벌이고 있는 가장 치열한 전쟁은 바로 ‘반도체 생태계 전쟁’이다. 최근 중국 장쑤성 소주(蘇州) 장자강(張家港)에서 열린 한·중 경제무역협력 교류회 현장을 둘러보며 새삼 놀란 것은, 중국 지방도시들의 태도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단순히 공장 하나 유치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도시 전체가 반도체 산업단지와 첨단 제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AI 시대의 패권은 결국 반도체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특히 중국 지방정부들은 지금 한국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을 사실상 ‘국가 전략 자산’ 수준으로 대우하고 있다. 한국 안에서는 중소기업 취급을 받는 기업들이 중국에 가면 귀빈이 된다. 지방정부 간부들이 직접 공항 영접을 나오고, 세제 혜택과 공장 부지 제공은 기본이며, 연구개발 자금과 인력 지원까지 패키지로 제안한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가. 반도체 산업은 이제 단순 제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의 첨단 문명 생태계다. AI 반도체, HBM(고대역폭 메모리), 첨단 패키징, 전력반도체, 차량용 반도체, 산업용 센서, 로봇칩, 양자컴퓨팅까지 미래 산업의 핵심은 모두 반도체와 연결된다. 그리고 반도체 산업의 진짜 경쟁력은 단순히 삼성전자나 TSMC 같은 대기업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소재, 화학, 특수가스, 웨이퍼, 정밀가공, 초정밀 부품, 산업용 로봇, 테스트 장비, 패키징, 설계 인력, 대학 연구소, 금융, 물류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 거대한 산업 생태계가 있어야 한다. 중국은 지금 바로 그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중국 지방정부들의 움직임을 보면 놀라울 정도다. 상하이권은 AI 반도체와 설계 생태계 구축에 집중하고 있고, 장쑤성과 저장성은 첨단 제조 및 패키징 분야를 키우고 있다. 광둥성은 화웨이와 BYD를 축으로 차량용 반도체와 AI 기기 생태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쓰촨성과 충칭은 후공정 및 테스트 산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속도다. 중국은 중앙정부가 방향을 정하면 지방정부가 곧바로 움직인다. 산업단지 조성, 세금 감면, 금융 지원, 공장 인허가, 연구소 설립, 대학 협력까지 거의 전시 체제 수준으로 밀어붙인다. 지금 중국 지방도시들 사이에서는 “한국 반도체 기업 하나라도 더 유치하라”는 경쟁이 치열하다. 왜냐하면 한국 기업들이 들어오면 그 도시의 산업 수준 자체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기술과 인재, 공급망과 글로벌 네트워크가 함께 들어온다. 중국은 이미 단순 추격 단계를 넘어섰다. 이제는 생태계 전체를 삼키려 한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시장을 이끌고 있다. HBM 경쟁에서도 앞서 있다. 그러나 정작 국내 산업 구조를 들여다보면 우려되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기업은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소부장 중소기업들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인력난은 심각하고, 지방 산업단지는 비어가고 있으며, 규제와 비용 부담은 계속 커진다. 특히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인해 지역 제조업 생태계가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국가 전략의 부재다. 반도체는 이미 국가 안보 산업이 되었는데도 한국은 아직도 개별 기업의 경쟁력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생태계 전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국가적 비전과 장기 전략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중국은 도시 단위로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는 기업 단위로 버티고 있는 셈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인재 문제다. 이제 반도체 전쟁은 단순 기술 전쟁이 아니다. 인재 전쟁을 넘어 생태계 전쟁으로 넘어가고 있다. 중국은 한국과 대만, 일본의 기술 인력을 공격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대학과 연구소, 기업을 연결한 대규모 지원 체계를 만들고 있다. 주택 제공, 연구비 지원, 세제 혜택은 물론이고 가족 정착까지 지원한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반도체 학과를 늘린다고 하지만 정작 현장 인력은 부족하다. 청년들은 제조업을 기피하고, 지방 대학은 무너지고 있다. 중소 소부장 기업들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지방정부들이 한국 기업들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지금 우리는 역사적 기회를 맞고 있다. 중국은 한국 반도체 생태계를 필요로 한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을 전략 파트너로 본다. 일본 역시 반도체 부활을 위해 한국과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영원하지 않다. “물이 들어왔을 때 배를 띄워야 한다”는 말은 지금 같은 시대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일본은 이미 국가 차원의 생태계 전략에 들어갔다. TSMC 구마모토 공장에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했고, 라피더스(Rapidus)를 통해 차세대 반도체 국산화에 나섰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대학과 기업이 사실상 국가 총동원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은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을 통해 수십조 원 규모의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단순 공장 지원이 아니다. 연구개발, 인재 양성, 공급망 재편, 안보 전략까지 모두 포함된 국가 산업 전략이다. 결국 미국과 일본은 반도체를 단순 기업 산업이 아니라 국가 문명 경쟁력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이제 결단해야 한다. 최근 반도체 호황으로 세수가 크게 늘고 있다면, 그 초과세수를 단순 재정 메우기에 사용할 것이 아니라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전략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첫째, 지방 반도체 클러스터를 강화해야 한다. 수도권 중심 구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충청권, 전북, 경북, 동해안권까지 연결한 국가 반도체 벨트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소부장 기업을 국가 전략산업 수준으로 대우해야 한다. 이 기업들이 무너지면 삼성전자도, SK하이닉스도 혼자 살아남을 수 없다. 셋째, 대학과 연구소를 산업 생태계와 직접 연결해야 한다. 이공계 인재들이 제조업과 지역 산업으로 유입되도록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넷째, 장기 산업 금융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반도체는 단기간 수익 산업이 아니다. 10년, 20년을 보고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적 각오다. 지금 세계는 AI 혁명 시대의 새로운 산업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반도체는 그 중심이다. 반도체를 잃는 국가는 미래 산업 패권을 잃는다. 중국 지방정부들의 움직임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다음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도 이제 단순히 “잘나가는 반도체 기업 몇 개 있는 나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반도체 생태계 국가로 진화해야 한다. 그것이 AI 시대를 살아남는 길이다.
2026-05-23 18: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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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는 한국 경제의 생명선"…에너지·통상 전문가들, 공급망 취약성 경고
[경제일보] “호르무즈는 말 그대로 우리 경제의 중요한 생명선입니다.” 20일 정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서울 여의도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2026 제1차 기후경제통상포럼: 호르무즈 쇼크와 에너지 지정학, 한국의 생존 전략’ 세미나에서 이같이 말했다. 한국국제통상학회와 한국자원경제학회가 공동 주최하고 산업통상자원부가 후원한 이날 행사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위기가 한국 산업 공급망과 에너지 안보에 미칠 영향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고, 중동산 에너지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정 원장은 호르무즈 사태가 단순한 원유 문제가 아니라 산업 공급망 전반의 복합 충격으로 번질 수 있다고 봤다. 특히 나프타와 헬륨 수급 불안이 주요 변수로 거론됐다. 나프타는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이고, 헬륨은 반도체 생산 공정에 쓰인다. 원유 수송 차질이 석유화학과 반도체 등 한국 주력 제조업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도 공급망 구조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정성 산업통상부 통상차관보는 “특정 국가와 특정 운송 경로에 의존하는 데서 오는 리스크는 결국 다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룰 기반 무역 질서가 흔들리는 전환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다. 공급망 재편 과정은 “달리는 자전거를 갈아타는 것”에 비유됐다. 기존 거래망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수입선과 운송 경로를 확보해야 하는 만큼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비용과 위험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호르무즈 리스크가 에너지 가격 상승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는 호르무즈 해협이 원유뿐 아니라 LNG와 석유제품의 주요 운송로라는 점을 강조했다. 전 세계 LNG 물동량의 약 2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만큼 운송 차질이 발생하면 가격 충격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석유화학 업계도 영향권에 들어간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을 생산하는 NCC 중심 구조로 운영된다. 나프타 가격이 오를수록 원가 부담이 커지고,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이미 수익성이 낮아진 화학업계에는 추가 부담으로 이어진다. LNG 가격 상승도 제조업 전반의 전력 비용과 연결된다. LNG는 국내 발전 연료 중 하나로, 수급 불안이 장기화하면 전력 도매가격과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2차·3차 충격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유가 상승은 식량 가격과 물류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해저 케이블 리스크가 현실화할 경우 원유 수송 차질을 넘어 디지털 인프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중 자원 패권 경쟁도 주요 변수로 다뤄졌다. 미국은 셰일 혁명 이후 에너지 수입국에서 순수출국으로 전환했다. 중동 의존도가 낮아지면서 중동 분쟁에 대한 전략적 부담도 과거보다 줄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에 비해 전문가들은 중국이 희토류 공급망을 앞세워 무기화할 수 있는 국가로 부상했다고 입을 모았다. 희토류는 전기차, 풍력터빈, 반도체 장비뿐 아니라 첨단 무기 체계에도 쓰이는 핵심 자원이다. 미국조차 희토류 공급망 탈중국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한국도 높은 대중 의존도를 고려해 공급망 다변화 전략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중국의 수출 통제 방식도 과거보다 정교해졌다는 분석이다. 희토류 통제가 단순한 금지가 아니라 허가제 방식으로 운영되는 만큼 통제를 조였다 풀었다 하며 상대국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포럼에서는 한국의 에너지 안보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제언도 이어졌다. 전략 비축과 수입선 다변화, 자원 확보 체계 정비가 주요 과제로 꼽혔다. 한국은 전략 비축은 비교적 잘하고 있지만, 다른 대응 체계는 아직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평가다. 에너지 안보를 단순한 자원 조달 문제가 아니라 경제 안보와 산업 경쟁력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미 원유와 LNG 공급 불안이 에너지 가격을 흔들고 있고, 나프타와 헬륨 수급 차질은 석유화학·반도체 등 주력 산업의 원가와 생산 안정성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날 포럼에서는 호르무즈 위기가 단기적인 국제 유가 급등 이슈를 넘어 한국 산업 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 △핵심 자원 확보 △비축 체계 강화가 앞으로 한국 경제의 새로운 과제이자 해결해야 할 문제다.
2026-05-20 17: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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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기념이 됐지만, 진실과 배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제일보] 5·18민주화운동이 46주년을 맞았지만 오월의 과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국가기념일로 자리 잡고 기념식은 매년 열리고 있지만 발포명령자 규명, 행방불명자 확인,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온전한 배상, 왜곡·폄훼 대응,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가장 큰 미완의 과제는 진상규명이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2024년 종합보고서를 내고 4년여 활동을 마무리했다. 조사위는 민간인 학살과 희생자 사망 경위, 일부 왜곡 주장의 허구성을 확인하는 성과를 냈지만, 핵심 쟁점인 발포명령자와 행방불명자 문제는 끝내 규명하지 못했다. 활동 종료로 추가 조사는 중단됐고, 조사위는 국가 차원의 후속 조치를 권고하는 데 그쳤다. 발포명령자 규명은 5·18 진실의 마지막 퍼즐로 꼽힌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이뤄졌다는 사실은 여러 조사와 판결을 통해 확인됐지만, 누가 최종적으로 발포를 명령했는지에 대한 법적·역사적 결론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행방불명자와 암매장 의혹 역시 유족들에게는 ‘끝나지 않은 5월’로 남아 있다. 배상 문제도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올해 1월 5·18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본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1990년대 보상금을 받았더라도 국가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별도 위자료 청구 길을 연 판단이다. 이번 판결은 기존 보상 체계의 한계를 드러낸다. 그동안 5·18 피해 보상은 사망·부상·구금 등 물리적 피해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계엄군 폭력과 고문, 가족의 사망과 실종, 오랜 낙인과 침묵이 남긴 정신적 피해는 충분히 평가되지 못했다. 유족과 생존자들은 단순 보상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의 성격을 다시 규정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왜곡과 폄훼 대응도 여전히 난제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으로 허위사실에 근거해 5·18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거나 폄훼하면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도입됐지만, 실제 적용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법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규정하지만, 예술·학문·연구·보도 목적 등에 대한 면책 조항이 넓어 실효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북한군 개입설과 희생자 모욕, 유공자 특혜 주장 같은 허위 정보가 반복적으로 재생산된다. 5·18기념재단 등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댓글 모니터링을 확대하고 삭제 요청에 나서고 있지만, 플랫폼 확산 속도와 익명성을 따라잡기 어렵다. 왜곡은 단순한 표현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2차 가해이자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공격이라는 점에서 제도적 보완 요구가 커지고 있다. 헌법 전문 수록 문제도 올해 다시 쟁점이 됐다.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추진해 온 시민사회단체들은 최근 개헌안 국회 의결이 무산된 데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5·18 46주년을 앞두고 국립5·18민주묘지 앞에서는 헌법 전문 수록 표결 불참과 무산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민사회는 5·18정신의 헌법 수록이 특정 지역의 요구가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헌정사적 정당성을 확인하는 절차라고 주장했다.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단순한 상징 논쟁이 아니다. 1980년 광주의 저항을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 과정의 핵심 가치로 명문화하느냐의 문제다. 4·19혁명과 부마민주항쟁, 6월항쟁과 함께 5·18을 헌법 질서 안에 분명히 새겨야 한다는 요구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그러나 정치권의 합의 부족과 개헌 절차의 난맥 속에 매번 문턱을 넘지 못했다. 46주년을 맞은 광주의 과제는 세 갈래로 압축된다. 첫째, 진상규명은 조사위 보고서로 끝낼 수 없다. 발포명령자와 행방불명자, 암매장 의혹 등 남은 쟁점에 대한 국가 차원의 후속 조사와 자료 공개가 필요하다. 둘째, 배상은 금전 지급을 넘어 국가폭력 피해의 실체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보완돼야 한다. 셋째, 왜곡·폄훼 대응과 헌법 전문 수록은 5·18을 현재의 민주주의 가치로 지켜내는 제도적 장치가 돼야 한다. 5·18은 이미 국가기념일이 됐고 광주는 매년 추모의 광장이 된다. 그러나 기념이 제도화됐다고 해서 진실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누가 명령했고, 누가 사라졌으며, 누가 아직도 고통 속에 있는지에 대한 답은 충분하지 않다. 오월이 광장으로 돌아왔다면 이제 국가는 그 광장 앞에서 남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2026-05-18 1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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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정신은 어떻게 인간과 생명의 종교적 울림으로 승화되었는가
[경제일보] 1980년 5월의 5·18 민주화운동 은 단지 한국 현대사의 정치적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과 자유, 공동체와 양심이 국가 폭력 앞에서 어떻게 저항하고 서로를 지켜내는가를 보여준 하나의 인간 드라마였으며, 더 깊이 들어가면 인류 정신사 속에 반복되어 온 ‘생명 존중의 영성(靈性)’이 광주라는 도시에서 다시 살아난 사건이었다. 처음에는 많은 이들이 5·18을 민주화운동이나 군사정권 저항 운동 정도로 이해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광주는 점차 정치의 영역을 넘어 인간 존재 자체를 묻는 정신적 사건으로 승화되고 있다. 그것은 총칼 앞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 했던 시민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광주 시민들은 계엄군의 총탄 속에서도 서로를 버리지 않았다. 시민들은 주먹밥을 나누었고, 학생들은 피 흘리는 시민을 위해 헌혈차 앞에 줄을 섰다. 택시 기사들은 서로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차량으로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다. 어머니들은 이름 모를 젊은이들의 시신을 붙들고 울었다. 그곳에는 증오보다 더 강한 인간애가 존재했다. 그래서 오늘날의 광주는 단순한 저항의 도시가 아니라 ‘생명 존중의 도시’로 기억되기 시작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5·18은 인류의 오래된 경전들과 만난다. 우리 민족 고유의 경전인 천부경 은 이렇게 시작한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하나는 시작이면서도 시작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뜻이다. 우주와 인간, 생명은 결국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다는 의미다. 광주의 정신 역시 다르지 않았다. 시민들은 서로를 남으로 보지 않았다. 공동의 생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타인을 지키려 했다. 인도의 베다 와 우파니샤드는 인간 안에 우주의 본질이 깃들어 있다고 설명한다. “아트만은 브라만이다”라는 구절은 인간의 영혼과 우주의 근원이 하나라는 뜻이다. 인간 생명을 함부로 훼손하는 것은 결국 우주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가장 크게 무너졌던 것은 단순한 정치 질서만이 아니었다. 국가 권력이 국민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순간, 문명 자체의 질서가 흔들린 것이다. 그래서 광주의 비극은 단순 지역 사건이 아니라 인간 문명의 근본 질문으로 남게 되었다. 논어 에서 공자는 말한다. “인(仁)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정치의 본질 역시 인(仁)에 있다는 뜻이다. 백성을 두려움으로 지배하는 권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조선 500년의 정치철학도 결국 백성을 하늘처럼 여기는 민본(民本)의 정신 위에서 유지되었다. 그러나 1980년 5월의 권력은 국민을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그 순간 국가는 스스로의 도덕적 정당성을 잃었다 . 금강경 은 인간 세상의 모든 권력과 집착이 덧없음을 가르친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마음에서 진정한 자비가 나온다는 뜻이다. 광주의 시민들은 거대한 이념이나 권력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었다. 바로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거리로 나왔다. 그것은 정치 이전의 인간적 양심이었다. 또한 법구경 은 말한다. “원한은 원한으로 갚을 수 없고, 자비로써만 끝난다.” 오늘날 5·18이 진정으로 완성되기 위해 필요한 것도 바로 이 정신일지 모른다. 진실 없는 화해는 위선이지만, 용서 없는 역사 또한 미래로 나아가기 어렵다. 가해 책임 세력의 진정한 참회와 사과, 그리고 희생자 유족들의 대승적 용서가 함께할 때 광주의 정신은 더 높은 단계로 승화될 수 있다. 도덕경 에서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강한 것은 꺾이고, 부드러운 것이 오래간다.” 당시 군사 권력은 총과 탱크를 가졌지만, 결국 역사는 시민들의 편에 섰다. 힘은 순간적으로 사람을 억누를 수는 있어도 인간 정신까지 영원히 지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5·18은 패배한 역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 존엄이 국가 폭력을 넘어선 역사다. 오늘날 광주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성지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중요한 것은 5·18 정신이 이제 정치적 기억을 넘어 종교적·문명적 차원의 울림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특정 종교를 뜻하지 않는다. 인간 생명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인류 공통의 정신세계와 만난다는 의미다. 오늘날 세계는 AI 혁명과 기술문명의 폭주 속에서 다시 인간의 의미를 묻고 있다. 기술은 발전하지만 인간성은 오히려 메말라가고 있다는 불안도 커지고 있다. 이럴수록 광주의 정신은 더욱 중요해진다. 인간은 단순한 숫자나 통계가 아니라 존엄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의 목적은 권력이 아니다. 경제 성장만도 아니다. 인간 생명을 보호하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데 있다. 그것이 무너질 때 문명은 흔들린다. 46년이 지난 지금, 광주는 우리에게 다시 묻고 있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권력은 무엇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인간은 끝내 서로를 살릴 수 있는 존재인가. 광주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이제 민주주의를 넘어 인간과 생명의 경전으로 남아가고 있다.
2026-05-18 11:5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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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을 다시 품은 오월 정신, 이제는 '헌법 전문 수록'으로 응답하라
[경제일보] 1980년 5월, 신군부의 총칼에 맞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외쳤던 광주 5·18민주광장이 다시 한번 뜨거운 연대의 열기로 가득 찼다.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오월, 다시 광장을 품다’를 주제로 초청장 없는 ‘열린 기념식’ 형태로 엄수된 것은 매우 뜻깊다. 옛 전남도청 원형 복원을 기념하는 국기 게양식에서 과거의 오월 영령이 현재의 청년들에게 태극기를 이어주는 모습은, 오월 정신이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인권의 뿌리임을 다시금 일깨웠다. 그러나 광장의 감동 뒤편에 가려진 정치권의 모습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은 크다. 최근 국회에서는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기 위한 개헌안 표결이 끝내 무산됐다. 여야가 선거철마다 한목소리로 약속했던 시대적 과제가 또다시 당리당략과 진영 논리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표결 불참 방침으로 개헌 논의를 무산시킨 야당의 행태는 1980년 신군부의 언론 통제에 맞서다 해직된 언론인들의 외침처럼, 주권자인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한 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여당 역시 거대 의석을 보유하고도 이를 관철하기 위한 정교한 전략과 정치적 설득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다.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단순한 문구 삽입이나 특정 지역·세력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법 체계의 근간인 헌법 전문에 오월의 역사를 새기는 일은 국가폭력의 비극을 성찰하고, 다시는 이 땅에 ‘12·3 비상계엄 사태’와 같은 헌정 질서 훼손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민주공화국의 다짐이다. 동시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가 4·19 혁명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정통성으로 인정하듯, 5·18 정신 역시 헌법적 가치로 확고히 자리 잡아야 비로소 소모적 역사 왜곡과 국론 분열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다. 이제 5·18 정신은 광주라는 지역적 담론을 넘어 부마민주항쟁과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거대한 흐름으로 승화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권의 통렬한 반성과 함께 국민적 공감대를 넓히기 위한 전국적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교육 현장에서도 교사들이 정치적 부담 없이 헌법적 가치에 기반해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미래 세대가 이를 올바르게 배울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 오월의 진실을 기억하는 유족들은 늙어가고 있지만, 그들이 피로써 지켜낸 정의와 공동체 정신만큼은 결코 퇴색돼서는 안 된다. 46년 전 광주 시민들이 고립된 상황 속에서도 주먹밥을 나누며 지켜낸 대동(大同)의 정신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글로벌 K-민주주의의 상징으로 평가받는 원동력이 됐다. 정치권은 더 이상 오월 정신을 정쟁의 도구로 소비하는 기회주의적 행태를 멈춰야 한다. 여야는 후반기 국회 개원에 맞춰 헌법 전문 수록을 위한 초당적 논의를 즉각 재개해야 한다. 그것이 광주의 영령들 앞에 국가가 보여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며, 미래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을 물려주는 길이다.
2026-05-18 11: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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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뒤편의 전력 제국…LS는 왜 '조용한 승자'가 됐나
[경제일보] AI(인공지능) 시대의 승부는 더 이상 반도체 성능 경쟁에만 머물지 않는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산업계의 핵심 과제는 '전력 확보'로 이동하고 있다. LS그룹은 지금 이 거대한 전력 인프라 전환의 중심에서 조용하지만 강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그동안 AI 산업의 주인공은 엔비디아 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초거대 데이터센터였다. 하지만 AI 연산량이 급증할수록 이를 안정적으로 가동할 전력망과 송배전 인프라의 중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확대 과정에서 안정적인 전력 확보를 핵심 과제로 보고 있다. 단순 발전을 넘어 전력을 장거리로 송전하고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전력 인프라 경쟁도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LS그룹의 존재감도 이 같은 전력 인프라 전환 흐름 속에서 빠르게 커지고 있다. 전기를 보내는 전선과 해저케이블의 LS전선, 전력을 제어하는 변압기·배전·자동화 솔루션의 LS일렉트릭, 해외 전력 인프라와 소재 사업을 확대 중인 LS에코에너지까지 그룹 전체 사업 구조가 AI 시대 핵심 인프라인 '전력망'과 맞물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LS전선은 글로벌 해저케이블 시장 확대 흐름의 대표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각국이 해상풍력과 초고압직류송전(HVDC) 확대에 나서면서 장거리 대용량 송전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해저케이블은 기술 장벽과 대규모 생산 능력이 동시에 요구되는 대표적인 고부가 인프라 산업이다. LS전선은 동해 해저케이블 공장을 중심으로 생산 능력을 확대하며 유럽·북미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LS일렉트릭 역시 북미 전력 인프라 교체 사이클과 함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제조시설 확대에 따라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시장이다. 이에 따라 변압기와 배전반, 전력 자동화 시스템 등 전력기기 시장 역시 구조적인 성장 국면에 진입하는 모습이다. LS일렉트릭은 북미 사업 확대와 함께 생산 거점 및 공급망 대응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AI 시대가 열리며 산업계에서는 반도체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결국 전력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데이터센터 한 곳이 도시 하나에 맞먹는 전력을 소비하는 시대가 되면서 안정적인 송배전 인프라 확보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고 있어서다. 실제로 글로벌 전력기기 시장에서는 변압기 공급 부족 현상이 이어지고 있으며 초고압 케이블과 전력 설비 발주도 빠르게 늘어나는 분위기다. LS그룹은 일찍부터 전선과 전력기기, 자동화 솔루션 등 '전기의 흐름' 전반에 걸친 사업 구조를 구축해 왔다.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장거리로 송전하고 산업 현장과 데이터센터, 공장 등에 안정적으로 배분·제어하는 밸류체인 곳곳에 그룹 계열사들이 포진해 있는 구조다. 과거에는 전선과 전력기기 중심의 전통 제조기업 이미지가 강했지만 탄소중립과 전기차, 재생에너지, AI 데이터센터 확산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오히려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시대 변화와 맞물리기 시작했다. 산업 전반이 전기화(Electrification)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 속에서 LS가 구축해온 전력 인프라 밸류체인이 재조명받는 분위기다. 구자은 LS그룹 회장도 올해 신년사에서 이 같은 변화를 직접 언급했다. 구 회장은 "2026년을 LS의 미래가치를 진일보시키는 한 해로 만들자"면서, 재무적 탄력성 확보와 신사업 안정화, AI 기반 혁신 체계 구축을 주요 경영 과제로 제시했다. 무엇보다 향후 5년간 해저케이블·전력기기·소재 분야에 국내 7조원, 해외 5조원 등 총 12조원 규모의 투자를 예고하며 AI 시대 전력 인프라 시장 선점 의지를 드러냈다. 단순한 전선 기업을 넘어 글로벌 전력 인프라 그룹으로 체질을 바꾸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LS 내부에서는 AI를 단순 기술 트렌드가 아니라 제조업 혁신 도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실제로 올해 신년사는 AI가 직접 신년사를 작성하는 과정을 임직원들에게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구 회장은 "부가가치가 낮은 업무는 AI를 활용해 신속히 처리하고 핵심 업무에 역량을 집중하자"고 강조했다. AI를 산업 현장 운영 효율화와 생산성 혁신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다. 다만 과제도 적지 않다. 해저케이블과 전력기기 산업은 대규모 선제 투자가 필요한 대표적인 장치 산업이다. 북미와 유럽 시장 확대 과정에서 생산능력(CAPA) 확보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실제로 LS는 공격적인 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동시에 재무 부담 관리라는 숙제도 안고 있다. 배터리 소재와 전기차 부품, 희토류 등 신사업 역시 아직 안정화 단계라고 보긴 어렵다. 전기차 캐즘과 글로벌 경기 둔화 변수도 여전히 부담 요인이다. 구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재무적 탄력성 확보"를 반복적으로 강조한 것도 이 같은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LS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전통 전선 기업 이미지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AI와 전기화(Electrification) 시대 핵심 인프라 기업으로 재평가받는 분위기다. 화려한 소비재 브랜드 대신 산업 현장 뒤편에서 묵묵히 전기를 연결해온 LS의 B2B DNA가 오히려 AI 시대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AI 혁명의 무대 전면에는 반도체 기업들이 서 있지만 그 뒤편에서는 막대한 전력망과 송배전 인프라가 산업 전체를 떠받치고 있다. LS는 지금 그 보이지 않는 '전기의 혈관'을 구축하며 AI 시대의 조용한 승자로 부상하고 있다.
2026-05-12 15: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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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년 역사의 이란과 250년 역사의 미국, 호르무즈 해협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까
[경제일보] 세계는 다시 호르무즈 해협을 바라보고 있다. 국제 원유 수송의 심장부이자 세계 경제의 혈관인 이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5천년 역사의 페르시아 문명국 이란과 250년 역사의 초강대국 미국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이란의 종전 협상 답변에 대해 “완전히 용납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중동 정세는 다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국면으로 들어섰다. 표면적으로는 핵 협상과 휴전 문제다. 그러나 그 본질은 단순하지 않다. 이번 충돌의 핵심에는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지정학적 목줄과, 그 배후에 놓인 문명과 패권의 충돌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자유 항행과 국제 질서를 이야기한다. 반면 이란은 국가 생존과 역사적 자존을 이야기한다. 서로 바라보는 세계관 자체가 다르다. 미국은 젊고 강한 나라다. 건국 이후 불과 250년 만에 세계 최강국이 됐다. 산업혁명 이후의 자본주의와 군사력, 달러 패권과 해양 패권을 동시에 장악했다. 미국은 문제를 압도적 힘과 속도로 해결하려는 국가적 습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방식은 상대를 극단까지 몰아붙인 뒤 극적인 타결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단기적 압박과 충격 전략에 익숙하다. 그러나 이란은 다르다. 오늘날의 이란은 단순한 중동의 한 국가가 아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기억과 실크로드의 게이트키핑 경험을 몸속 깊이 간직한 나라다. 기원전 다리우스 시대부터 이미 ‘왕의 길’을 통해 동서 교역망을 통제했던 국가다. 수천 년 동안 외세의 침략과 왕조 교체, 종교 혁명과 전쟁을 겪으면서 살아남은 나라다. 이란은 힘의 크기보다 시간의 길이를 믿는 국가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미국은 이란 문제에서 반복적으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미국은 군사력과 경제 제재를 통해 단기간에 상대를 굴복시키려 하지만, 이란은 시간을 길게 끌며 상대의 피로와 내부 균열을 기다린다. 미국 항공모함이 중동 앞바다를 뒤덮을 때 이란은 정면 충돌을 피한다. 대신 대리 세력과 국지전, 비정규전, 해상 교란과 심리전을 활용한다. 약자의 전략이지만, 역설적으로 강자를 가장 지치게 만드는 방식이다. 지금 세계 경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만약 호르무즈 해협이 실제로 봉쇄되거나 충돌이 장기화되면 국제 유가는 급등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이곳을 지나간다. 한국·일본·중국 같은 동아시아 산업국가들은 직접적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단순한 기름값 문제가 아니다. 석유화학과 철강, 반도체와 해운, 전력과 물류 비용 전체가 흔들린다. 환율 불안과 수입물가 상승은 결국 서민 경제까지 압박하게 된다. 특히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다. 중동발 위기는 곧바로 한국 경제의 생산 원가 상승으로 연결된다. 이미 글로벌 공급망은 미·중 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쳐 있다. 여기에 호르무즈 변수까지 더해질 경우 세계 경제는 또 하나의 스태그플레이션 공포를 맞이할 수 있다. 현재 상황은 크게 세 가지 시나리오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첫째는 비관적 시나리오다. 협상이 완전히 결렬되고 군사 충돌이 확대되는 경우다. 이 경우 이란은 직접 봉쇄까지는 아니더라도 유조선 공격과 해상 교란을 통해 국제 유가를 급등시킬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군사 보복에 나설 것이고, 중동 전역은 장기 불안 국면에 들어갈 수 있다. 세계 금융시장은 급격한 조정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중간 시나리오다. 가장 현실적인 그림일 수 있다. 양측이 공개적으로는 강경 발언을 이어가면서도 물밑 협상을 병행하는 형태다. 군사적 긴장은 유지되지만 전면전은 피하는 방식이다. 국제 유가는 높은 수준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시장은 장기 불확실성 속에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중동에서 가장 자주 반복된 패턴이기도 하다. 셋째는 낙관적 시나리오다. 핵 문제와 항행 보장 문제에서 일정 수준의 절충이 이뤄지는 경우다. 미국은 체면을 세우고, 이란은 공개적 굴복 이미지를 피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국제 유가는 안정을 되찾고 금융시장도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강경 기류를 볼 때 단기간에 이런 합의가 도출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이번 사태의 본질은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다. 해양 패권과 문명 전략, 속도의 정치와 시간의 정치가 충돌하는 장면이다.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졌지만, 이란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정학적 생존 감각을 가진 나라 가운데 하나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강한 것은 부러지고, 부드러운 것은 오래 살아남는다(柔弱勝剛强)”고 말했다. 역사를 돌아보면 제국은 언제나 압도적 힘으로 등장했지만, 긴 시간 살아남은 것은 오히려 끈질긴 문명과 기억이었다. 호르무즈 해협의 파도는 단순한 바닷물이 아니다. 그 안에는 석유와 달러, 종교와 문명, 역사와 패권이 함께 흐르고 있다. 지금 세계는 다시 묻고 있다. 과연 이번에는 누가 시간의 편에 서게 될 것인가.
2026-05-11 10:4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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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대 '정권 동력' 굳히기냐, 유정복 '현직' 반전이냐
[경제일보] 6·3 지방선거 인천시장 선거가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후보와 국민의힘 유정복 후보의 양강 대결로 압축됐다. 현재 판세만 놓고 보면 현정부 동력을 활용한 박 후보가 앞서 달리고 유 후보가 현직 시장의 행정 경험과 지역 개발 성과를 앞세워 추격하는 구도다. 그러나 인천 선거는 늘 단순한 정당 대결로만 끝나지 않았다. △신도시와 원도심 △항만과 공항 △수도권 규제와 지역 자존심 △중앙정치 바람과 생활 행정 평가 등이 한꺼번에 부딪히는 게 인천시장 선거의 특성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여당 프리미엄 박찬대 ‘우세’...현직 유정복 남부·강화·옹진권서 ‘추격’ 최근 여론조사 흐름은 박 후보에게 유리하다. 여론조사기관 여론조사꽃이 지난 4월 28~29일 인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무선 가상번호 ARS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인천시장 가상 다자대결에서 박찬대 후보 54.9%, 유정복 후보 29.5% 순으로 나타났다. 응답률은 6.5%,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이 조사는 다자구도 조사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중도층에서도 박 후보가 58.7%를 얻었다는 점은 판세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양강 구도에서도 박 후보 우세 흐름은 확인된다. 인천일보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4월 23~25일 인천 거주 만 18세 이상 8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박찬대 후보 48.1%, 유정복 후보 34.7% 로 집계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4%포인트, 응답률은 6.5%다. 권역별로는 서북권에서 박 후보 52.8%, 유 후보 31.3%, 동부권에서 박 후보 44.8%, 유 후보 34.0%였고, 남부·강화·옹진권에서는 박 후보 47.1%, 유 후보 38.1%로 격차가 한 자릿수로 좁혀졌다. 특히 주목할 곳은 원도심이다. 인천일보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5월 3~4일 제물포구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521명을 대상으로 무선 가상번호 ARS 100% 방식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박 후보 46.8%, 유 후보 41.0%로 나타났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3%포인트, 응답률은 7.3%다. 오차범위 내 결과지만 유 후보의 정치적 기반으로 꼽히는 원도심에서 박 후보가 근소 우위를 보였다는 점은 여당 후보에게 의미 있는 신호로 읽힌다. 박찬대, 현정부·여당 조직 ‘강점’...행정경험 부족 ‘부담’ 박찬대 후보의 강점은 정권 동력과 당 조직이다. 그는 친명계 핵심이자 3선 의원 출신으로 중앙정부와 국회 네트워크를 동시에 내세울 수 있다. 민주당 인천 지역 조직도 ‘원팀 선대위’를 표방하며 송영길 전 시장, 박남춘 전 시장 등 전직 시장급 인사들을 상징 자산으로 결집시키고 있다. 이는 인천 13개 국회의원 선거구를 촘촘히 묶어 투표율과 조직 동원을 끌어올리는 데 강점이 있다는 게 박 후보 캠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박 후보의 약점은 행정 경험이다. 국회와 당내 정치에서는 중량감이 있지만, 광역행정 경험은 유 후보보다 부족하다. 인천은 교통, 항만, 공항, 매립지, 경제자유구역, 원도심 재생이 얽힌 복합 행정 도시다. 박 후보가 중앙정치의 힘을 시정 운영의 실력으로 바꿔 보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유 후보 측이 ‘검증된 일꾼’ 프레임을 반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 후보의 기회는 산업 전환 의제다. 그는 인천의 미래 비전으로 인공지능(AI), 바이오, 콘텐츠, 에너지를 묶은 ‘ABC+E’를 제시했다. 공항·항만·물류단지를 연결한 물류 AI 실증도시, 바이오산업 고도화, 해상풍력 산업 클러스터 등이 핵심이다. 박 후보는 5월 6일 해상풍력 사업자들과 만나 “인천 앞바다의 바람을 이용한 제2의 에너지 개항”을 내세웠고, 해상풍력 기회발전특구와 산업 클러스터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반대로 위협 요인은 기대치다. 여론조사상 앞선 후보에게는 실수가 더 치명적이다. 한 여론조사 관계자는 “박 후보가 말이 앞서고 실행계획이 약하다는 인상을 주면 유 후보의 ‘행정 안정론’이 되살아날 수 있다”며 “특히 제물포구, 중구, 동구, 강화·옹진, 연수 일부 등 보수 성향과 현직 평가가 교차하는 지역에서는 박 후보의 낙관론이 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정복, 현직·행정이력 ‘강점’...시 채무 증가 ‘과제’ 유정복 후보의 강점은 단연 현직 프리미엄과 행정 이력이다. 그는 행정고시 출신으로 김포군수, 인천 서구청장, 김포시장,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인천시장을 거쳤다. 이번에 당선되면 인천 최초의 민선 3선 시장이 된다. 유 후보는 출마 선언에서 인천국제자유특별시, 복지정책인 천원정책확대, 저출생·보육 지원, 원도심 균형발전, 교통혁명, 미래산업 유치 등을 제시했다. 유 후보의 약점은 정당 지형이다. 최근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과 정부지원론이 강하게 나타나는 가운데 국민의힘 후보로 치르는 선거라는 점은 부담이다. 현직 시장은 성과를 설명할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동시에 모든 미완의 과제에 책임을 져야 한다. 재정 논쟁도 그중 하나다. 박 후보 측은 인천시 채무 증가와 경제성장률 하락을 비판했고, 유 후보 측은 예산 규모 확대와 부채비율 15% 수준을 들어 반박했다. 이 공방은 남은 선거기간 ‘현직 평가’의 핵심 전선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유 후보의 기회는 생활 체감형 공약이다. 유 후보는 ‘인천국제자유특별시’를 장기 비전으로, 천원정책과 개발사업을 단기 체감 카드로 내세운다. 5월 7일에는 ‘인천 제3개항’을 선언하며 인천국제자유특별시 특별법, 송도구·논현서창구 신설을 포함한 2차 행정체제 개편, 공공기관 인천 이관을 3대 전략으로 제시했다. 수도권 규제에서 벗어나 싱가포르·두바이와 경쟁하는 도시로 가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유 후보의 위협은 장기 재임 피로감이다. 3선 도전은 경험의 증거이자 피로감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인천시민들이 한 번 더 맡길 시장으로 볼지, 이제 교체할 시점으로 볼지가 선거의 핵심이다. 한 정치 컨설팅 관계자는 “박 후보가 원도심 재생과 미래산업을 동시에 묶어 교체의 효능을 설득한다면 유 후보는 단순한 성과 홍보를 넘어 미완 사업의 시간표와 재원 조달 방식을 더 정교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인천판 미래산업 연합전선’...유 ‘검증된 현직 반전 토론’ 전문가들은 남은 선거 기간 박 후보의 히든카드로 ‘인천판 미래산업 연합전선’을 꼽는다. AI 물류, 바이오, 해상풍력, 콘텐츠를 따로 말할 것이 아니라 공항·항만·송도·청라·영종·원도심을 하나의 경제지도 위에 올려야 한다는 조언이다. 한 인천지역 개발학과 교수는 “인천을 서울의 위성도시가 아니라 대한민국 성장 엔진으로 만들겠다는 메시지가 선명해야 한다”며 “동시에 재정·교통·주거에 대한 100일 실행계획을 제시해 행정 경험 부족 우려를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유 후보의 히든카드는 ‘검증된 현직의 반전 토론’이다. 여론조사 흐름을 뒤집으려면 공약집보다 토론장이 중요하다. 인천경기기자협회 토론회와 선관위 법정토론회 등 최소 4차례의 공개 대결이 예정돼 있다. 한 미디어 관계자는 “유 후보는 토론회라는 무대에서 박 후보의 공약 재원, 인허가 현실성, 중앙정부 의존도를 집요하게 검증해야한다”며 “자신은 인천국제자유특별시와 천원(복지)정책을 바로 실행 가능한 정책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6-05-09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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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승리 후 협상"과 호르무즈의 침묵
[경제일보] 중동의 사막은 늘 뜨거웠지만, 그 뜨거움이 언제나 전쟁만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 사막은 문명의 길이었고, 때로는 세계 경제의 동맥이었다. 오늘날 세계가 다시 이란과 호르무즈 해협을 주목하는 이유도 단순히 미사일과 핵시설 때문만은 아니다. 그곳은 석유의 길이고, 달러의 길이며, 현대 산업문명의 숨길이기 때문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핵무기 포기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일주일 정도면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언뜻 보면 평범한 외교적 발언 같지만, 국제정치의 문법으로 보면 이는 상당히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미 물밑에서 상당한 수준의 조율이 이뤄지고 있으며, 미국과 이란 모두 전면전보다는 관리 가능한 타협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신호에 가깝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번 충돌을 “소규모 충돌(skirmish)”이라고 표현했다. 단어 하나에도 의도가 있다. 그는 이란과의 군사 충돌을 “새로운 중동전쟁”으로 보이게 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강하게 때렸고, 상대를 굴복시켰으며, 결국 협상으로 정리했다”는 서사를 만들고 싶어 한다. 이것은 군사 전략이면서 동시에 미국 국내정치 전략이다. 실제로 트럼프의 정치 스타일은 언제나 “힘을 통한 거래”였다. 상대를 극단까지 몰아붙인 뒤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는 방식이다. 중국과의 관세전쟁도 그랬고, 북한과의 정상회담도 그랬다. 이번 이란 문제 역시 같은 패턴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대가 다르다. 이란은 단순한 중동의 한 국가가 아니다. 5천 년 문명의 기억을 가진 페르시아의 후예이며, 세계 에너지 길목을 움켜쥔 지정학 국가다. 미국이 세계 최강 군사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지나가는 길목이다. 한국, 일본, 중국의 에너지 생명선이기도 하다. 하루 평균 수천 척의 유조선이 이 좁은 바다를 통과한다. 만약 이곳이 봉쇄되면 국제유가는 단기간에 배럴당 150달러 이상으로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 경제는 즉시 충격에 빠진다. 인플레이션은 재폭발하고, 금리는 다시 오르며, AI 산업을 포함한 첨단산업의 전력 비용도 급등한다. 결국 호르무즈는 단순한 바다가 아니다. 현대 문명의 목줄이다. 미국과 이란이 이번 협상에서 논의하는 핵심 역시 바로 이것이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양측은 △이란 핵농축 중단 △고농축 우라늄 반출 △지하 핵시설 가동 중단 △제재 완화 △호르무즈 해협 봉쇄 해제 등을 포함한 양해각서(MOU)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실상 “핵과 석유의 교환”이다. 미국은 핵위협 제거를 원하고, 이란은 경제 제재 해제를 원한다. 서로 필요한 것을 맞바꾸는 셈이다. 여기서 세계 금융시장은 이미 전쟁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시장은 언제나 총성보다 먼저 기대와 공포를 가격에 반영한다. 최근 국제유가가 다소 안정되고 미국 증시와 아시아 증시가 반등한 것도 “호르무즈 봉쇄 가능성이 일단 낮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뉴욕 금융가는 이미 두 개의 시나리오를 동시에 계산하고 있다. 하나는 ‘휴전과 타협의 시나리오’이고, 다른 하나는 ‘지지부진한 장기 대치 시나리오’다. 만약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일정 수준에서 타결되고 사실상의 휴전 국면으로 들어간다면 세계 금융시장은 상당 기간 안도 랠리를 펼칠 가능성이 높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70~80달러 선에서 안정될 수 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기대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동안 중동 리스크 때문에 움츠렸던 글로벌 투자 자금은 다시 미국 기술주와 아시아 반도체 시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국 경제에는 중요한 숨통이 열린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유가 안정 자체가 곧 물가 안정으로 연결된다. 반도체·배터리·AI 데이터센터 산업 역시 전력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다. 원·달러 환율도 안정되면서 외국인 자금 유입 가능성이 커진다. 최근 몇 년 동안 세계 경제는 우크라이나 전쟁, 공급망 붕괴, 고금리, 에너지 충격이 연쇄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시장은 “최소한 더 큰 악재만은 피하고 싶다”는 심리가 강하다. 따라서 중동 긴장 완화는 단순한 지역 문제가 아니라 세계 위험자산 시장 전체에 긍정적 신호가 된다. 반대로 협상이 지지부진해지고, 미국과 이란이 ‘불안한 휴전’ 상태에서 군사적 긴장만 반복할 경우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시장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이다. 전면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정이다. 이 경우 국제유가는 다시 급등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서면 세계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하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된다. 물가가 다시 오르면 금리는 내려가지 못하고, 소비와 투자도 위축된다. 특히 유럽은 이미 에너지 비용 부담에 시달리고 있어 경기 침체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 중국 역시 제조업과 수출 회복에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금융시장에서는 달러 강세와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금값은 상승하고, 미국 국채로 자금이 몰리며, 신흥국 통화는 약세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원화 약세와 외국인 자금 이탈 가능성이 커질 수 있으며, 수입 물가 상승으로 서민 경제 부담도 커진다. 무엇보다 AI 시대의 세계 경제는 과거보다 에너지에 훨씬 민감하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결국 유가와 전력 비용은 곧 AI 산업 경쟁력 문제로 이어진다. 중동의 지정학 리스크가 단순한 국제 뉴스가 아니라 AI 패권 경쟁의 변수로 떠오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이번 협상은 총성과 미사일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경제의 심장 박동수를 조절하는 문제에 가깝다. 월가와 런던 금융가, 도쿄와 서울의 딜링룸은 지금 호르무즈 해협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주시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는 이미 페르시아만의 파도와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가 “우리가 이겼다”고 강조하는 부분이다. 미국 보수층은 대체로 “강한 미국”을 원한다.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미국 사회 내부에는 “미국이 약해졌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트럼프는 이를 뒤집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는 이란을 압박한 뒤 협상으로 끌고 들어오는 과정을 “미국의 승리”로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는 언제나 승자만 있는 게임이 아니다. 이란 역시 내부적으로는 “굴복이 아닌 생존”이라는 논리를 만들고 있다. 혁명수비대(IRGC)와 강경 종교 세력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이란 정권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협상이 체제 붕괴처럼 보이면 안 된다. 따라서 이란은 “핵무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평화적 핵 이용을 유지한 채 긴장을 조절한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결국 양측 모두 자국민을 향해 “우리가 이겼다”고 말해야 하는 기묘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세계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중국이다.중국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 중 하나이며, 이란산 원유의 중요한 구매자다. 동시에 중국은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과 중동 질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 중국 역시 일정 부분 그 혜택을 받는다. 반대로 중동이 불안정해지면 중국 경제 역시 큰 타격을 입는다. 그래서 최근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중동 문제가 핵심 의제로 거론된다. 겉으로는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지만, 에너지 공급망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서로 완전히 등을 돌릴 수 없다. 한국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한국은 세계적인 제조업 국가이지만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한다. 특히 반도체와 AI 산업은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한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AI 고속도로” 전략 역시 안정적 에너지 공급 없이는 불가능하다. 중동발 에너지 충격은 단순한 유가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 전략 전체의 문제다. 고대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는 “왕의 길(Royal Road)”을 건설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물류 시스템이었다. 오늘날 호르무즈 해협은 현대판 왕의 길이다. 석유와 LNG, 달러와 원자재, AI 산업의 전력과 반도체 공급망까지 모두 이 길과 연결돼 있다. 세계는 다시 페르시아를 지나고 있다.
2026-05-07 09:5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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