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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의 파고와 한국경제의 선택
2026년 봄, 세계 에너지 시장의 파장이 한반도의 실물 경제를 정면으로 흔들고 있다. 중동 정세가 격랑 속으로 치닫으면서 국제 유가는 다시 심리적 저항선을 넘어섰고 한국경제의 혈관이라 할 수 있는 에너지 공급망에도 비상이 걸렸다. 중동에서 울린 포성은 멀리 떨어진 사건처럼 보이지만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는 곧바로 물가와 산업 비용 상승이라는 현실로 이어진다. 정부는 공공부문 에너지 사용을 20% 줄이고 필요할 경우 ‘에너지 할당제’까지 검토하는 등 긴급 대응에 나섰다. 위기 상황에서 절약 캠페인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 점심시간 사무실 전등을 끄고 냉방 온도를 몇 도 높이는 식의 대책만으로는 지금의 거대한 구조적 위기를 넘기 어렵다. 오늘의 에너지 충격은 단순한 소비 절약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산업 구조 자체의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는 오랫동안 값싼 중동 원유 위에서 성장해 왔다. 그러나 그 구조는 이제 분명한 한계에 도달했다. 에너지 공급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진 시대에 특정 지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산업 구조는 언제든 경제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위험 요인이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절약의 미덕을 넘어 에너지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국가적 결단이다. 동양 고전에는 위기를 바라보는 지혜가 담겨 있다. 『도덕경』에는 “화는 복이 의지하는 곳이고 복은 화가 숨어 있는 곳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위기는 고통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계기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지금의 에너지 위기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 단순한 비용 상승으로만 본다면 재앙이지만 산업 구조를 혁신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새로운 성장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역사는 이미 그 사례를 보여 준다.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일본은 유가 폭등이라는 충격을 단순한 소비 절약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대신 산업 구조 자체를 에너지 저소비형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 결과 일본 제조업은 에너지 효율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 위기를 계기로 산업의 체질을 바꾼 것이다. 한국 역시 같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에너지 위기 속에서 각 산업은 단순한 절감이 아니라 ‘에너지 구조 혁신’이라는 새로운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특히 석유화학 산업은 고유가 충격을 가장 먼저 받는 분야다. 공정 효율 개선을 넘어 원료 구조 자체를 바꾸는 전략이 요구된다. 폐열 회수 시스템을 극대화해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고 나프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대체 원료 기술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에서도 에너지 문제는 곧 경쟁력의 문제다. 대규모 생산 라인과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앞으로는 인공지능 기반 에너지 관리 시스템을 통해 전력 사용을 정밀하게 조절하는 스마트 공장이 경쟁력의 핵심이 될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저전력 반도체와 전력 효율이 높은 신소재 기술 확보 역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철강 산업 역시 변화가 불가피하다. 세계적으로 탄소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전기로 중심 생산 체계와 친환경 제철 기술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장기적으로는 수소 기반 제철 기술 상용화가 한국 철강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해운과 물류 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국제 유가 변동에 가장 민감한 분야인 만큼 연료 효율을 높이는 기술과 친환경 선박 전환이 속도를 내야 한다. 항로 최적화 기술이나 에너지 효율이 높은 선박 도입은 단순한 환경 정책을 넘어 에너지 안보 전략의 일부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런 변화에는 상당한 비용이 따른다. 에너지 도입선을 다변화하고 산업 구조를 바꾸는 과정에서 기업과 정부 모두 적지 않은 투자와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미루는 것은 더 큰 위험을 미래 세대에 떠넘기는 일일 뿐이다. 에너지 문제는 단순한 자원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핵심 변수다. 한국처럼 자원이 부족한 나라일수록 기술과 산업 구조 혁신을 통해 에너지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장기적으로 경제 안정성과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는 길이다. 지금 한국경제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위기를 일시적인 충격으로 여기고 버틸 것인지 아니면 산업 구조와 에너지 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로 삼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오늘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향후 수십 년간 한국경제의 방향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전등을 끄는 작은 실천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의 에너지 지도를 새롭게 그리는 일이다. 위기를 넘어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국가만이 다음 시대의 경제 강국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2026-03-15 17:48:57
정부, '美무역법 301조 조사'에 "불리하지 않은 대우 받도록 협의"
[경제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과 중국, 일본을 포함한 16개 경제주체를 상대로 ‘무역법 301조’ 조사에 착수하면서 글로벌 통상 질서가 다시 흔들리고 있다. 청와대는 12일 “미국 측과 적극 협의해 우리 기업이 주요국 대비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통상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단순한 조사 단계를 넘어 한국 수출 경제 전반을 압박하는 새로운 통상 갈등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미국 측은 상호관세 위법 판결 이후 무역법 301조를 통해 기존 관세를 복원하겠다는 입장”이라며 “정부는 기존 한미 관세 합의에서 확보한 이익 균형이 훼손되지 않도록 협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11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한국·중국·일본 등 16개 경제주체를 대상으로 추가 관세 부과의 사전 절차인 301조 조사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한 국가별 상호관세 조치를 무효로 판단한 이후 나온 후속 대응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행정부가 기존 관세 정책의 법적 기반이 흔들리자 무역법 301조라는 강력한 통상 수단을 활용해 관세 정책을 재정비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무역법 301조는 미국의 무역을 제한하거나 부담을 주는 외국 정부의 정책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이 직접 조사와 보복 조치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미국 무역대표부가 조사 권한을 행사하며 필요할 경우 고율 관세나 수입 제한 등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다. 1980년대 미국이 일본의 급격한 산업 성장에 대응하기 위해 활용했던 ‘슈퍼 301조’의 연장선상에 있는 통상 압박 수단으로 평가된다. 이번 조사 대상에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주요 제조국이 동시에 포함된 것은 미국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아시아 산업 구조 전반에 압박을 가하려는 전략적 신호로도 해석된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제조업 부활과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을 핵심 정치 의제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301조 조사는 관세 부과뿐 아니라 투자 이전과 생산 구조 재편을 요구하는 협상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경제에 미칠 파장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은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수출 의존 경제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미국은 한국의 핵심 수출 시장 가운데 하나로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 기계 등 주요 산업 대부분이 미국 시장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산업별로 보면 반도체 산업은 직접적인 관세 대상이 아니더라도 장비와 소재, 데이터센터 투자 등 공급망 전반이 미국과 긴밀히 연결돼 있어 정책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 자동차 산업 역시 미국 시장 비중이 높아 추가 관세나 통상 압박이 현실화할 경우 가격 경쟁력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최근 급성장한 전기차 배터리 산업 역시 미국 내 생산 확대 정책과 맞물려 투자 구조 재편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과거 사례를 봐도 301조 조사는 단순한 통상 조사에 그치지 않았다. 1980년대 일본은 미국의 통상 압박 속에서 자동차 수출 물량을 자발적으로 제한하는 ‘자율 규제’를 받아들였고 이후 대미 투자 확대를 통해 갈등을 완화하는 전략을 선택해야 했다. 한국 역시 비슷한 방식의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통적인 자유무역협정 체계가 트럼프식 통상 전략 앞에서 약해질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한국은 이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시장 개방과 교역 규범을 유지하고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기존 통상 질서보다 자국 산업 보호를 우선하는 정책 기조를 보여 왔다. 이 때문에 협상 과정에서 미국 내 투자 확대나 공급망 이전 요구가 동시에 제기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을 단순한 통상 분쟁이 아니라 글로벌 산업 질서 재편의 일부로 보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동맹국까지 포함해 공급망 재편을 압박하는 흐름이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한국 기업들은 관세 부담뿐 아니라 생산 거점 이전이나 투자 전략 수정 등 구조적인 선택을 요구받을 가능성도 있다. 결국 이번 사태는 한국 경제가 대미 수출 중심 구조에 얼마나 크게 의존하고 있는지를 다시 보여주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관세 리스크가 현실화할 경우 기업들은 생산 거점 이전이나 대미 투자 확대라는 전략적 선택을 강요받을 수도 있다. 동시에 정부 차원에서는 동남아와 인도, 유럽 등으로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는 중장기 전략의 필요성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301조 카드는 단순한 통상 분쟁을 넘어 글로벌 산업 질서를 재편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이번 조사가 실제 보복 조치로 이어질 경우 한국 경제는 수출 감소와 투자 구조 변화라는 이중 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전략이 다시 본격화하는 가운데 한국 통상 외교의 대응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6-03-12 11:19:20
'특징주' 기사가 상업적 흉기로 변질된 시대, 언론의 파산을 선언한다
한국경제신문 본사가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했다. 혐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일부 기자들이 특정 종목을 미리 매수한 뒤 호재성 기사를 내보내 주가를 끌어올리고 이를 믿고 따라 들어온 소액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떠넘겨 수십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것이다. 이른바 ‘선행매매’로 불리는 이 행위가 한두 차례가 아니라 수백 건에 걸쳐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정황은 우리 언론의 도덕적 붕괴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언론은 사회의 공기이며 기자는 사실을 전달하는 전령이자 공정한 감시자여야 한다. 특히 자본시장을 다루는 경제 기사는 그 파급력만큼이나 정보의 신뢰성이 생명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행태는 언론인의 양심이 아니라 시세 차익을 노리는 작전 세력의 모습에 가깝다. 기사를 공적 기록이 아닌 사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 행위는 언론 자유를 전제로 작동해온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에 대한 중대한 배반이다. 문제의 핵심인 ‘특징주 기사’는 정보 비대칭성을 노린 전형적인 범죄 방식이었다. 정보에 취약한 개인 투자자들은 경제지가 제공하는 ‘특징주’라는 이름의 기사를 신뢰하고 자산을 맡겼다. 그러나 그 신뢰는 철저히 배신당했다. 기자 윤리 강령이 강조하는 기본 원칙을 외면한 채 독자는 이들에게 그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대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이번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더욱 심각한 것은 조직의 책임이다. 연루된 기자가 다섯 명에 이르고 수백 건의 기사가 범행에 활용되는 동안 데스크와 부서 책임자들은 이를 걸러내지 못했다. 한국경제가 밝힌 “최종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사과한다”는 입장은 책임 회피로 읽힐 수밖에 없다. 이는 개인의 일탈로 축소할 사안이 아니라 조회수와 영향력을 성과로만 평가해온 조직 문화와 내부 통제 실패가 낳은 구조적 문제다. 해외에서는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언론인의 행위에 훨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기자나 분석가가 사적 이익을 위해 시장을 왜곡할 경우 형사 처벌은 물론 부당이득 반환과 업계 퇴출에 준하는 제재를 가한다.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 포스터 위난스 사건에서 드러난 미국 사회의 단호한 대응은 언론 신뢰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우리 사회는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제도 개선과 처벌 강화를 외쳤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다. 문제는 제도의 부재가 아니라 기자 개인의 직업윤리와 이를 지탱해야 할 조직 내부의 비판 문화가 무너졌다는 데 있다. 이번 사태로 대다수의 성실한 기자들까지 불신의 시선에 노출된 현실은 언론 전체의 비극이다. 이제 형식적인 사과와 자체 조사로 넘어갈 단계는 지났다. 수사 당국과 금융 당국은 연루된 기자 개인은 물론 이를 묵인하거나 방조한 조직의 책임까지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법을 벗어난 행위에는 단호한 처벌이 뒤따라야 하며 해당 언론사는 신뢰 회복을 위한 근본적 쇄신안을 내놓아야 한다. 기자는 펜으로 세상을 비추는 존재다. 그 펜을 사적 이익을 위한 무기로 휘두르는 순간, 언론은 존재 이유를 잃는다. 이번 사건은 한국 언론사에 지울 수 없는 오명으로 남을 것이다. 신뢰를 잃은 언론 위에 세워진 사회는 결코 단단할 수 없다.
2026-02-07 12: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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