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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노이드 동료와 퇴근하는 저녁, 우리는 준비가 됐나
[경제일보] 휴머노이드 로봇이 더 이상 전시장 무대 위의 묘기가 아니라 공장 라인의 동료가 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영국 로봇기업 휴머노이드는 독일 자동차·산업부품 기업 셰플러의 글로벌 제조 현장에 2032년까지 1000~2000대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투입할 계획이다. 초기 배치는 올해 말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독일 헤르초게나우라흐와 슈바인푸르트에서 시작된다. 현대차그룹도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오는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 공장에 투입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제 질문은 기술이 가능한가가 아니다. 인간의 일자리와 임금, 세금과 안전망은 준비돼 있는가다. 자동차 공장은 산업혁명의 가장 오래된 상징 중 하나다. 컨베이어벨트가 노동을 쪼갰고, 산업용 로봇 팔이 용접과 도장을 바꿨다. 이제 그 라인에 사람의 형태를 닮은 기계가 들어온다. 바퀴가 아니라 두 다리로 움직이고, 고정된 팔이 아니라 사람처럼 공간을 인식하며, 단순 반복이 아니라 상황 판단을 흉내 내는 기계다. 공장 안의 로봇은 더 이상 철제 울타리 안에 갇힌 설비가 아니다. 사람 옆에서 상자를 들고, 부품을 옮기고, 위험한 작업을 대신하는 ‘강철 동료’가 되고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이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한국은 이미 인구절벽 앞에 서 있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15~64세 생산연령인구는 2022년부터 향후 10년간 332만명 감소하고,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22년 71.1%에서 2072년 45.8%로 낮아질 전망이다. 노동의 빈자리는 점점 커지고, 숙련 노동자의 은퇴는 빨라지며, 청년 인력은 제조 현장을 기피한다. 이 구조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은 공상과학의 장난감이 아니라 산업 현장의 생존 수단이 된다. 기업 경영의 관점도 분명하다. 로봇은 피로를 덜 느끼고, 위험한 작업을 대신할 수 있으며,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반복적으로 수행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다만 여기서 단정은 경계해야 한다. 휴머노이드는 아직 완성된 해법이 아니다. 실제 공장 투입에는 안전성, 신뢰성, 유지보수 비용, 작업 전환 속도, 현장 노동자와의 협업 규칙이 필요하다. 현대차가 아틀라스를 2028년 공장에 투입하고 2030년까지 더 복잡한 공정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도, 이 기술이 오늘 당장 전면 대체가 아니라 단계적 검증의 대상임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방향은 분명하다. 인구는 줄고, 제조 경쟁은 치열해지며, 글로벌 기업들은 더 싸고 빠르고 안정적인 생산체계를 요구한다. 한국 자동차·부품·조선·물류·전자 산업이 휴머노이드 도입을 외면할 수는 없다. 문제는 로봇 도입 여부가 아니라 로봇 도입의 질서다. 시장은 이미 움직이는데 법과 제도, 교육과 세금, 노사관계는 아직 과거의 언어에 머물러 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정의를 설명하며 각자가 자기 본성에 맞는 일을 하고 남의 일을 침범하지 않는 질서를 말했다. 이를 오늘의 공장에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통찰은 남는다. 사회는 역할이 새로 나뉠 때 정의를 다시 세워야 한다. 로봇이 위험하고 반복적이며 고강도인 작업을 맡는다면 인간은 설계, 관리, 창의, 공감, 판단, 돌봄의 영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 이동이 가능하려면 교육과 임금, 안전망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기술의 승전보 뒤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있다. 휴머노이드 도입은 어떤 노동자에게는 해방이지만, 어떤 노동자에게는 실직의 예고일 수 있다. 로봇이 허리를 굽혀 무거운 부품을 들 때 인간 노동자의 허리는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까지 대신한다면, 보호받은 것은 노동자의 몸인지 기업의 비용인지 묻게 된다. 기술은 중립적일 수 있어도 기술이 배치되는 시장은 중립적이지 않다. 여기서 ‘로봇세’ 논의가 나온다. 로봇세는 오래된 논쟁이다. 빌 게이츠는 2017년 로봇이 인간 노동을 대체해 기업 비용을 줄인다면,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부과해 돌봄·교육 같은 인간에게 필요한 일자리에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 논리도 만만치 않다. 로봇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어떤 자동화가 과세 대상인지, 혁신 투자를 위축시키지 않을지, 해외 이전을 부추기지 않을지 모두 어려운 문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구호로서의 로봇세가 아니라 설계로서의 사회계약이다. 로봇 한 대마다 단순히 세금을 매기는 방식은 거칠 수 있다. 그러나 로봇과 AI로 늘어난 생산성, 자동화로 절감한 인건비, 자본집약적 생산에서 발생한 초과이익을 어떻게 사회 전체의 전환 비용으로 연결할 것인지는 논의해야 한다. 재교육 기금, 고용 전환 계정, 지역 제조업 훈련센터, 중장년 노동자의 직무 재설계, 협력사 자동화 지원 같은 구체적 장치가 필요하다. 핵심은 혁신을 벌주는 것이 아니다. 혁신이 만든 과실로 혁신에서 밀려나는 사람을 다시 세우자는 것이다. 기업이 휴머노이드 로봇을 도입해 생산성을 높이는 일은 막을 수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다만 그 생산성의 과실이 주주와 경영진, 일부 기술 인력에게만 집중된다면 산업의 정당성은 약해진다. 시장경제가 오래가려면 시장 밖으로 밀려난 사람을 다시 시장 안으로 데려오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유럽도 이 문제를 완전히 풀지는 못했다. 다만 AI 시스템의 투명성, 표시 의무, 이용자 고지 같은 규범은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이 달 AI법 제50조상 특정 AI 시스템의 투명성 의무 이행 지침 초안을 공개했다. 이것이 곧바로 ‘휴머노이드 노동 가이드라인’은 아니다. 그러나 AI와 로봇이 인간의 생활세계로 들어올수록 기술 사용의 투명성, 책임성, 이용자 보호가 제도화되고 있다는 흐름은 분명하다. 한국도 기술 강국이라는 자부심만으로는 부족하다.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고 쓰는 능력만큼, 로봇과 함께 일하는 사회를 설계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로봇이 산업 현장에 들어오면 산업안전 규칙도 바뀌어야 한다. 사람이 로봇 옆에서 일할 때 사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로봇이 학습한 작업 데이터는 누구의 자산인가. 로봇 도입으로 줄어든 인건비 중 일부를 노동 전환에 쓸 수 있는가. 협력사와 중소기업도 자동화 혜택을 누릴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로봇 산업은 기술적으로는 앞서가도 사회적으로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역할도 분명하다. 한쪽으로는 규제를 정비해야 한다. 실증 특례, 안전 인증, 데이터 표준, 로봇 보험, 산업안전 기준을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 다른 한쪽으로는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 로봇 정비사, 로봇 운용 관리자, 공정 데이터 분석가, AI 안전 관리자, 현장 재교육 강사 같은 새 직무를 만들어야 한다. 로봇이 기존 일자리를 없애는 속도보다 사람이 새 일자리로 이동하는 속도가 빨라야 사회가 버틴다. 노동계도 냉정해야 한다. 휴머노이드 도입을 전면 거부하는 방식은 오래가기 어렵다. 인구 구조와 글로벌 경쟁, 원가 압박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노동계는 더 구체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로봇 도입 전 고용영향 평가, 전환 배치 계획, 재교육 시간의 유급 인정, 자동화 이익 공유, 산업안전 공동 점검, 협력사 노동자 보호를 교섭 의제로 올려야 한다. “로봇 반대”가 아니라 “인간을 배제하지 않는 로봇 도입”을 요구해야 한다. 기업도 바뀌어야 한다. 휴머노이드 도입을 단순 비용 절감 프로젝트로만 보면 갈등은 커진다. 로봇은 인간을 대체하는 장비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이기도 하다. 어느 길을 선택할지는 기업의 철학과 제도 설계에 달려 있다. 로봇을 들여오면서 노동자의 숙련을 무시하면 공장은 조용해질지 몰라도 조직의 신뢰는 무너진다. 반대로 로봇을 위험 작업과 반복 작업에 먼저 배치하고, 사람을 더 높은 가치의 업무로 옮기면 자동화는 갈등이 아니라 경쟁력이 된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노동의 종말일 수도 있고, 생산성의 신대륙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될지는 기술이 아니라 제도가 결정한다. 로봇의 성능은 기업이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로봇이 만든 사회의 품격은 정부와 국회, 기업과 노동계가 함께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머지않아 휴머노이드 동료와 같은 공장에서 일하고, 같은 라인을 점검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하는 저녁을 맞게 될 것이다. 그때 인간 노동자의 어깨가 패배감으로 처지지 않게 하려면 지금 준비해야 한다. 로봇이 대신한 노동의 빈자리를 인간의 배움과 이동, 돌봄과 창의의 자리로 바꿔야 한다. 로봇이 만든 부가 인간을 배제하는 자본의 성벽이 아니라 인간을 다시 세우는 사회적 기반이 되게 해야 한다. 결국 모든 혁신의 마침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어야 한다. 기업이 생산성을 높이는 일은 시장경제의 활력이다. 그 과정에서 밀려나는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은 공동체의 의무다. 차가운 금속음 속에 인간의 따뜻한 숨결을 남기는 것, 그것이 휴머노이드 시대 한국 산업이 지켜야 할 기본이고 원칙이며 상식이다.
2026-05-17 09: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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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계·대치·이촌 줄줄이 심의 통과…서울 한강·역세권 개발 가속
[경제일보] 강남권과 용산, 노원 일대 주요 사업장이 잇따라 도시계획 심의를 통과했다. 신속통합기획과 공공재건축, 용적률 완화 정책 등이 맞물리며 장기간 정체됐던 사업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모습이다. 서울시는 전날 열린 도시계획위원회와 정비사업 특별분과위원회 심의를 통해 대치선경아파트와 신반포7차, 이촌1구역, 상계한신3차 재건축 계획안을 잇따라 수정 가결했다고 15일 밝혔다. 강남권에서는 대치동 선경아파트 재건축 정비계획안이 수정가결됐다. 대치역 사거리에 위치한 대치선경은 1983년 준공된 노후 단지로 이번 정비계획 확정을 통해 최고 49층, 1571세대 규모의 대단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지난해 8월 신속통합기획 자문회의를 시작한 이후 약 9개월 만에 정비계획이 결정됐다. 서울시는 양재천 수변 입지를 살린 고급 주거단지 조성을 목표로 대치초등학교 인근에 선형 문화공원을 배치하고 개방형 공동시설도 함께 계획했다. 대치역 일대 침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약 3만6000㎥ 규모 저류조 설치 계획도 포함됐다. 잠원동 신반포7차 역시 공공재건축을 통해 대규모 단지로 재편된다. 기존 320세대 규모였던 노후 단지는 최고 49층, 총 965세대 규모로 확대된다. 공공분양 117세대와 공공임대 185세대도 함께 공급된다. 신반포7차는 잠원역 역세권 용적률 특례를 적용받아 용적률이 359.97% 이하까지 완화된다. 서울시는 문화시설과 노인여가복지시설, 데이케어센터 등을 기부채납 방식으로 확보해 지역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단지 내 공공보행통로도 조성해 반포아파트지구와 연결되는 통학·보행 동선을 확보하기로 했다. 용산에서는 이촌1구역 재건축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촌동 203-5번지 일대는 2006년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사업성 부족 등으로 약 20년간 사업이 지연됐던 곳이다. 서울시는 신속통합기획을 통해 용도지역 상향과 공공기여 방안을 적용해 사업성을 확보했고 최고 49층, 806세대 규모 재건축 계획을 확정했다. 이촌1구역은 한강과 용산국제업무지구를 연결하는 핵심 입지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서울시는 준주거지역 상향과 법적상한용적률 500% 적용을 통해 사업성을 높였으며 공공임대 176세대와 공공지원시설, 공공청사 부지 등을 함께 확보하기로 했다. 특히 단지 내부에는 한강 조망이 가능한 스카이커뮤니티와 공공 개방공간을 계획했다. 이촌로18길도 기존 8m에서 12m로 확폭해 보행환경을 개선할 예정이다. 용산국제업무지구와 연계한 행정·지원시설 수요까지 함께 반영했다는 점도 특징으로 꼽힌다. 노원구 상계동에서는 상계한신3차아파트가 최고 35층, 464세대 규모로 재건축된다. 서울시는 사업성 보정계수 2.0과 용적률 완화를 적용해 사업성을 높였다. 상계한신3차는 인근 상계5동 재개발과 상계보람아파트 재건축, 상계한신1·2차 재건축과 연계해 통합적인 도시경관 계획을 반영했다. 수락산 조망이 가능한 통경축을 확보하고 개방형 보행동선을 구축해 지역과 연결되는 단지로 조성될 예정이다.
2026-05-15 17: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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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AI 융합 법제화…정부, 양자보안·영향평가 의무화
[경제일보] 정부가 양자컴퓨팅과 슈퍼컴퓨팅, 인공지능(AI)을 결합한 차세대 융합 기술을 법적으로 지원한다. 양자보안체계 구축과 양자기술 영향평가도 의무화해 연구개발 중심이던 양자 정책을 산업화·보안·국방 활용 단계로 넓히는 것이 핵심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2일 ‘양자과학기술 및 양자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양자기술 지원 범위를 연구개발에서 산업화 공급망 보안 국방 적용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법은 공포 후 6개월 뒤 시행된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양자컴퓨팅·슈퍼컴퓨팅·AI 융합 분야에 대한 지원 근거가 신설된 점이다. 양자컴퓨팅의 계산 우위와 슈퍼컴퓨팅의 고속 연산, AI의 학습·추론 능력을 결합해 신약 개발 소재 설계 최적화 문제 등 기존 기술로 풀기 어려웠던 난제를 해결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따라 관련 연구개발과 실증, 인력 양성 지원도 가능해졌다. 양자 종합계획에는 양자 AI 활용 촉진과 안전·신뢰성 확보 방안도 포함해야 한다. AI와 양자 기술이 결합할 경우 계산 성능은 높아지지만 보안과 신뢰성 문제가 함께 커질 수 있다는 점을 반영한 조치다. 산업화 지원 장치도 강화됐다. 양자기술 상용화 과정에서 규제가 걸림돌이 될 경우 기업 대학 연구기관 등이 정부에 규제 개선을 신청할 수 있다. 정부는 관련 규제를 정비하거나 규제 특례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양자 분야 소재·부품·장비 공급망 취약 요소 진단과 국내 공급망 확보, 국제 공급망 협력을 위한 사업 지원 근거도 새로 마련됐다. 양자클러스터 지정 기준도 구체화된다. 교통망 등 입지 기준을 명확히 해 양자 산업 거점 조성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내용이 포함됐다. 규제 개선과 상용화 지원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에게는 경미한 과실에 대한 적극행정 면책 특례도 적용된다. 보안 분야에서는 양자보안체계 구축 의무가 핵심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은 양자내성암호와 양자키분배 등 양자보안기술을 확보하고 적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양자컴퓨터가 고도화될 경우 현행 공개키 암호체계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최근 고성능 AI 모델을 활용한 사이버 공격 가능성이 커진 점도 배경으로 작용한다. AI가 취약점 탐지와 공격 자동화를 빠르게 고도화하고, 양자컴퓨팅이 기존 암호 해독 능력을 키울 경우 국가 핵심 인프라의 보안 체계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된다. 양자내성암호는 양자컴퓨터로도 풀기 어려운 수학적 난제를 기반으로 하고, 양자키분배는 양자역학 특성을 활용해 암호키 탈취를 탐지·차단하는 방식이다. 국방 분야 활용 근거도 마련됐다. 과기정통부는 국방부 등 관계기관과 협력해 도·감청 방지 통신체계, 스텔스기 탐지가 가능한 양자레이더, 양자항법체계 등을 개발·실증할 수 있게 된다. 양자기술이 통신 보안과 정밀 탐지, 위치·항법 분야의 군사적 경쟁력으로 확장되는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양자기술 영향평가도 의무화된다. 국가안보나 국민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야에서 양자기술을 활용하는 사업은 추진 전에 영향평가를 거쳐야 한다. 기술 도입이 가져올 보안 위험과 사회적 파급효과를 사전에 점검하겠다는 취지다. 이번 개정안은 양자기술을 연구실 단계에서 산업 현장과 공공 인프라로 옮기기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동안 양자 정책은 원천기술 확보와 연구개발에 무게가 실렸지만, 앞으로는 상용화 규제개선 공급망 보안 국방 실증까지 함께 관리하는 구조로 이동하게 된다. 다만 법 시행 이후 과제도 적지 않다. 양자보안체계 구축 의무가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기관별 적용 대상과 전환 일정, 기술 기준이 구체화돼야 한다. 양자내성암호 전환은 단순히 암호 알고리즘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기존 시스템과 서비스, 인증 인프라를 함께 점검해야 하는 작업이다. 공공기관과 민간 핵심 인프라의 준비 수준을 끌어올리는 세부 로드맵이 필요하다. 양자 AI 융합도 단기 성과보다 장기 투자가 중요한 영역이다. 신약 개발 소재 설계 국방 보안 등 고부가 분야에서 실제 활용 사례를 만들려면 연구개발 지원뿐 아니라 데이터 인프라, 전문 인력, 실증 환경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정부가 하위법령을 통해 세부 기준을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가 제도 안착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은 “양자는 AI의 높은 전력 소모와 연산속도 한계를 극복하고 AI 혁신을 한 차원 더 진전시킬 수 있는 핵심 전략기술”이라며 “정부는 대한민국이 AI 이후 시대를 선도할 수 있도록 양자 전 주기에 걸쳐 정책 지원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2026-05-12 16:5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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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 피해지원금 2차 기준 내일 공개…부동산 보유 가구 제외되나
[경제일보] 정부가 고유가 피해지원금 2차 지급 대상 선별 기준을 11일 공개한다. 전체 국민 가운데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지원금을 지급하되, 고액 금융자산이나 부동산을 보유한 가구는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고유가 장기화로 교통비와 물류비 부담이 커진 가운데, 정부는 취약계층과 중산층 이하 가구의 생활비 부담을 덜기 위한 선별 지원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10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정부는 11일 고유가 피해지원금 2차 지급 대상 기준과 신청 방식을 발표한 뒤 오는 18일부터 7월 3일까지 신청을 받을 예정이다. 2차 지급 대상은 전체 국민 중 소득 하위 70%다. 지급 금액은 거주 지역에 따라 차등 적용된다. 수도권 거주자는 1인당 10만원, 비수도권 거주자는 15만원을 받는다. 정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 중 우대지원지역 주민은 20만원, 특별지원지역 주민은 25만원을 각각 지급받는다. 정부는 지급 대상 선별에 건강보험료 기준을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당시와 유사하게 가구별 건강보험료 본인부담금 합산액을 기준으로 소득 수준을 판정하는 방식이다. 건강보험료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소득·재산 정보를 일정 부분 반영한다는 점에서 단기간에 대규모 지원 대상을 가려내는 행정 기준으로 활용돼 왔다. 다만 이번 지원금은 지난해 소비쿠폰보다 선별 기준이 더 엄격해질 전망이다. 지난해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소득 하위 90%를 대상으로 했지만 이번 고유가 피해지원금 2차 지급은 소득 하위 70%로 대상이 좁아졌다. 그만큼 건강보험료 기준선도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중상위 소득층 일부는 지난해 소비쿠폰을 받았더라도 이번 지원 대상에서는 제외될 수 있다. 고액 자산가 배제 기준도 마련된다. 정부는 단순히 건강보험료만으로 지급 대상을 정할 경우 소득은 낮게 잡히지만 금융자산이나 부동산을 많이 보유한 가구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을 감안해 별도의 컷오프 기준을 적용할 계획이다. 지난해 소비쿠폰 지급 때는 재산세 과세표준 합계액이 12억원을 초과하거나 금융소득 합계액이 2000만원을 넘는 경우 가구원 전체가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번에도 이와 유사한 방식의 고액 자산가 제외 기준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에 대한 특례도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1인 가구는 청년층과 고령층 비중이 높아 소득 구조가 일반 다인 가구와 다르다. 건강보험료만으로 일률 판정할 경우 실제 생활 여건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정부는 이를 고려해 1인 가구에 별도 기준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맞벌이 가구에는 가구원 수를 추가 인정하는 방식의 특례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소비쿠폰 지급 당시에는 2인 맞벌이 가구를 사실상 3인 가구 기준으로 판정하는 방식이 활용됐다. 맞벌이 가구는 소득이 상대적으로 높게 산정되지만, 보육·교통·주거비 부담도 함께 크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다. 이번 지원금은 고유가 부담이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도 반영했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좋은 수도권은 1인당 10만원을 지급하는 반면, 비수도권은 15만원으로 지원액이 더 크다. 자동차 의존도가 높고 이동 거리가 긴 지역일수록 유류비 부담이 크게 작용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인구감소지역에는 최대 25만원까지 차등 지급해 지역 균형 지원 성격도 더했다. 앞서 정부는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족 등을 대상으로 1차 지원금을 지급했다. 1차 지원금 신청은 지난 8일 마감됐으며, 지급률은 91.2%로 집계됐다. 행안부는 1차 신청 기간에 접수하지 못한 취약계층도 2차 지급 기간에 추가 신청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정부가 11일 공개할 세부 기준에는 건강보험료 기준액, 가구원 수 산정 방식, 맞벌이·1인 가구 특례, 고액 자산가 제외 기준, 신청 절차와 지급 방식 등이 담길 전망이다. 지원 대상 여부는 가구 단위로 판정될 가능성이 높고 신청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창구를 병행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2026-05-10 17: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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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형배 '통합 주도론' 굳히기냐, 이정현 '호남 견제론' 반격이냐
[경제일보] 6·3 지방선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선거는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이정현 국민의힘 후보의 양강 구도로 압축되고 있다. 민 후보는 민주당 경선 승리의 탄력과 호남 변화론을 앞세워 상승 흐름을 타고 있고 이 후보는 민주당 독점 견제와 균형론을 내세워 반격에 나서고 있다. 최근 정치권 분위기는 ‘민형배 우세·이정현 추격’으로 요약된다. 다만 광주·전남 행정통합이라는 초유의 변수와 군공항 이전, 산업 재편, 지역 균형발전 문제가 동시에 얽혀 있는 만큼 선거 막판까지 긴장감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선거는 기존 광주시장이나 전남지사 선거와 성격 자체가 다르다. 국회는 지난 3월 전남·광주 행정통합특별법을 통과시켰고 통합특별시는 오는 7월 1일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위상과 특례가 부여되는 만큼 초대 통합시장은 단순 지방자치단체장을 넘어 새로운 광역 권력의 상징성을 갖게 된다. 정치권이 이번 선거를 호남 권력지형 재편의 출발점으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론조사 흐름은 민주당 후보인 민 후보에게 비교적 우호적이다. KBS광주방송총국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 3월 22일부터 23일까지 광주·전남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6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선호도는 민형배 25%, 김영록 23%로 나타났다. 조사는 무선전화면접 방식으로 진행됐고 응답률은 14.9%,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4%포인트다. 이후 뉴시스 광주전남본부·무등일보·광주MBC가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에 의뢰해 6~7일 이틀간 광주·전남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 통합특별시장 후보 적합도에서 민형배 42%, 김영록 30% 흐름이 나타났다. 민주당 경선 막판으로 갈수록 민 후보 쪽으로 권리당원과 강성 지지층 결집이 이뤄졌다는 분석이 정치권에서 나왔다. 이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민 후보는 결국 민주당 경선을 뚫고 후보로 선출됐다.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진행된 민주당 결선 투표에서 민 후보는 김영록 전남지사를 꺾고 민주당 후보로 확정됐다. 본경선 과정에서는 신정훈 의원과 강기정 광주시장이 신 의원으로 단일화했고 민 후보는 주철현 의원과 단일화했다. 결선 과정에서는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 등이 김 지사 지지를 선언하며 민 후보 견제 흐름이 형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민주당 핵심 지지층 표심은 민 후보 쪽으로 움직였다. 정치권에서는 현재 흐름을 ‘민형배 우세·견제론 추격’ 구도로 보는 시각이 많다. 민주당 지지세가 워낙 강한 지역이라는 점에서 민 후보가 유리한 출발선에 섰다는 평가가 우세하지만 통합특별시라는 새로운 체제가 실제 시민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민형배, 통합 상징성과 변화론은 ‘강점’…통합 후폭풍은 ‘부담’ 민 후보의 가장 큰 강점은 변화 이미지와 민주당 경선 돌파 과정 자체다. 그는 광주 광산구청장을 두 차례 지냈고 문재인 정부 청와대 자치발전비서관과 사회정책비서관을 거쳐 재선 의원이 됐다. 지방행정과 중앙정치 경험을 동시에 갖췄다는 점은 초대 통합시장 선거에서 적지 않은 자산으로 평가된다. 특히 현직 전남지사와 광주시장까지 경쟁했던 민주당 경선을 통과했다는 점은 민 후보에게 정치적 상징성이 크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호남 권력의 세대교체 흐름이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민 후보는 통합특별시 출범을 ‘호남 재도약’ 프레임으로 연결하고 있다. AI와 미래차, 에너지, 농생명, 문화산업을 하나의 광역 경제권으로 묶겠다는 구상이다. 향후 4년간 모두 20조원 규모의 지원 재정을 전략산업에 투입하겠다는 청사진도 내놓고 있다. 단순 보조금 지원이 아니라 통합특별시가 직접 전략산업 투자자로 나서겠다는 메시지다. 다만 부담도 적지 않다. 첫 번째는 통합 이후 갈등 관리다. 광주와 전남은 생활권이 연결돼 있지만 이해관계는 다르다. 광주는 도시 인프라와 첨단산업 중심이고 전남은 에너지·농수산·관광 산업 비중이 크다. 예산 배분과 청사 문제, 조직 개편, 인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 가능성도 적지 않다. 두 번째는 민주당 내부 후유증이다. 이번 경선은 현직 광주시장과 전남지사까지 뛰어든 고강도 경쟁이었다. 민 후보 입장에서는 김영록·강기정 지지층을 얼마나 빠르게 흡수하느냐가 본선 안정성과 향후 시정 운영 기반까지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이정현, 민주당 견제론은 ‘무기’…지역 기반 한계는 ‘과제’ 국민의힘 후보인 이정현 전 의원은 쉽지 않은 싸움에 나서고 있다. 광주와 전남은 전국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지역이다. 국민의힘 조직력과 정당 지지율만 놓고 보면 불리한 출발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이 후보 역시 분명한 정치적 자산이 있다. 그는 보수 정당 소속으로 순천·곡성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경험이 있다. 호남에서 보기 드문 보수 정치 성공 사례로 여전히 상징성이 크다. 이 후보는 민주당 독점 견제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통합특별시는 막대한 재정과 권한이 집중되는 광역 권력이다. 이 후보는 이 지점을 파고들며 “견제 없는 통합 권력은 위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군공항 이전과 통합 재정 배분 문제는 이 후보가 집중 공략할 가능성이 높은 분야다. 통합 이후 광주 중심 체제로 흐를 경우 전남 지역이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를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현실적 한계 역시 존재한다. 민주당 강세 지역이라는 점 자체가 높은 장벽이다. 결국 이 후보 입장에서는 단순 정권 견제론을 넘어 통합특별시 운영 청사진과 재정 운용 계획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제시하느냐가 핵심 과제로 꼽힌다. AI·군공항·광역교통…결국 통합 이후 삶이 승부처 이번 선거 핵심 의제는 통합 이후 실제 삶의 변화다. 민 후보는 AI와 미래차, 에너지 산업을 중심으로 한 광역 산업벨트를 강조하고 있다. 광주 AI산업과 전남 에너지 산업을 연결해 호남 전체를 첨단산업 중심지로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반면 이 후보는 “대형 구상보다 현실 검증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20조원 재정지원 계획의 실현 가능성과 산업 투자 우선순위를 집중적으로 따질 가능성이 크다. 광주 군공항 이전 문제 역시 최대 변수 가운데 하나다. 광주는 이전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전남 일부 지역에서는 수용 부담 우려가 여전히 크다. 통합특별시 출범 이후 이 문제가 본격 충돌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광역교통과 생활권 통합 문제도 중요한 변수다. 행정구역이 합쳐져도 교통망과 산업 인프라가 연결되지 않으면 통합 체감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광주와 목포·순천·여수·나주를 연결하는 광역교통망 공약 역시 선거 후반으로 갈수록 중요성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민, ‘통합 실행력’ 부각…이, ‘견제와 균형’ 총력전 아직 선거는 끝나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초대 통합시장 선거라는 상징성 때문에 막판까지 예상 밖 변수들이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한다. 민 후보의 핵심 카드는 민주당 경선 승리의 탄력과 통합 실행력이다. 현직 전남지사와 광주시장을 모두 넘어섰다는 점 자체가 변화와 세대교체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 조직이 빠르게 결집할 경우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있다. 반면 이 후보는 견제론과 균형론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통합 이후 광주와 전남 사이 갈등 가능성과 재정 집중 문제를 생활 문제와 연결해 파고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 호남권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선거는 누가 시장이 되느냐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광주·전남 통합 이후 어느 지역이 주도권을 잡고 어떤 방식으로 성장할지를 결정하는 선거”라고 말했다. 광주와 전남 민심은 지금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통합특별시라는 거대한 실험에 기대감이 커진 만큼 그 이후 삶이 실제로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한 검증 요구 역시 함께 커지고 있다.
2026-05-09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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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강국의 첫 조건은 구호가 아니라 전기다
[경제일보] AI 데이터센터 특별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를 국가 핵심사업으로 규정하고 입지 규제와 인허가 절차를 완화하며 세제 지원의 길을 여는 내용이다. 늦었지만 필요한 입법이다. 인공지능 경쟁은 더 이상 연구실의 알고리즘 경쟁만이 아니다. 누가 더 많은 데이터를 더 빠르게 학습시키고 누가 더 안정적으로 추론 서비스를 돌리며 누가 더 싼 비용으로 컴퓨팅 자원을 확보하느냐의 싸움이다. 그 중심에 AI 데이터센터가 있다. 그러나 이번 법안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 전력 직접구매계약, 이른바 PPA 특례가 제외됐다. 당초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한 안에는 관련 특례가 포함됐지만 법사위 논의 과정에서 빠졌다. 정부는 비수도권 전력계통영향평가 면제, 인허가 절차 단축, 규제 완화 등은 남겼다. 그러나 데이터센터 산업의 심장에 해당하는 전력 조달 문제는 미완으로 남았다. 법안은 통과됐지만 핵심 병목은 그대로인 셈이다. AI 데이터센터는 이름만 데이터센터일 뿐 실상은 전기를 먹고 연산을 생산하는 공장이다. 과거의 데이터센터가 정보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창고에 가까웠다면, AI 데이터센터는 24시간 GPU와 서버가 돌아가는 산업 설비다. 전통적인 인터넷데이터센터보다 훨씬 높은 전력 밀도와 냉각 능력, 안정적 송전망, 예비 전원 체계를 요구한다. 대형 AI 데이터센터 하나가 중소도시 규모의 전력을 요구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기반은 데이터이지만 그 데이터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전기다. 이 상식을 외면한 채 “AI 3강”을 말하는 것은 허공에 성을 짓는 일이다. 반도체도 전기가 없으면 멈추고 배터리도 전기가 없으면 생산할 수 없으며 AI도 전기가 없으면 학습하지 못한다. 산업정책의 언어는 그럴듯해졌지만 전력정책의 현실은 여전히 더디다. 데이터센터를 유치하겠다고 말하면서 송전망은 누가 깔 것인지, 발전원은 무엇으로 할 것인지, 지역 주민의 수용성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전기요금 체계는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흐릿하다. 물론 PPA 특례를 무조건 밀어붙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기후에너지부가 전력망 부담을 우려한 데는 이유가 있다. 특정 대형 사업자에게 전력 조달 특례를 열어줄 경우 전력계통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 값싼 전기를 대기업과 빅테크가 먼저 가져가고 그 부담이 일반 국민과 중소기업 전기요금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걱정도 가볍게 볼 수 없다. AI 산업을 키우자고 전력시장 질서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 특례는 산업을 살릴 수도 있지만 잘못 설계하면 새로운 특권이 된다. 그렇다고 전력 문제를 뒤로 미룬 채 법안 통과만 서두르는 것도 책임 있는 태도는 아니다. 산업계가 원하는 것은 무제한 특혜가 아니다. 예측 가능한 전력 조달 체계다. 어느 지역에 들어가면 얼마의 전력을 언제부터 쓸 수 있는지, 어떤 조건으로 재생에너지나 LNG 발전과 연계할 수 있는지, 송전망 증설 비용은 누가 어떻게 부담하는지, 전기요금은 어떤 원칙으로 적용되는지 알아야 투자를 결정할 수 있다. 불확실성이 크면 기업은 한국을 기다리지 않는다. 데이터센터는 전기가 있는 곳으로 간다. 세계는 이미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전력 인프라와 AI 클러스터를 묶어 투자한다. 중동은 풍부한 에너지와 자본을 앞세워 AI 컴퓨팅 허브를 꿈꾼다. 일본은 지방 거점과 전력망을 연결해 데이터센터 유치에 나섰다. 유럽은 친환경 전력과 데이터 주권을 결합한다. 이 경쟁에서 한국이 내세울 것은 반도체 제조 능력, 통신 인프라, 우수한 엔지니어, 빠른 산업 실행력이다. 여기에 안정적 전력 공급이 빠지면 경쟁력은 절반이 된다. AI 데이터센터 정책은 산업정책이면서 에너지정책이고, 지역정책이며, 안보정책이다. 국가 AI 모델을 만들고 금융·의료·제조·국방 데이터를 처리하며 기업의 AI 전환을 떠받치는 인프라가 외국 클라우드와 해외 데이터센터에만 의존한다면 그것은 기술 주권의 공백이다. 소버린 AI를 말하려면 소버린 컴퓨팅이 있어야 하고 소버린 컴퓨팅을 말하려면 소버린 전력 전략이 있어야 한다. 전기는 AI 주권의 하부 구조다. 이번 법안이 비수도권 입지를 강조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수도권에 데이터센터가 몰리면 전력망과 부동산, 냉각수, 주민 수용성 문제가 한꺼번에 터진다. 지역으로 분산해야 한다. 그러나 지역 이전은 구호만으로 되지 않는다. 지방에 땅이 있다고 데이터센터가 서는 것이 아니다. 전력이 있어야 하고, 송전망이 있어야 하며, 통신망과 냉각 조건, 전문 인력, 지방정부의 행정 역량이 있어야 한다.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전력 없는 지역에 깃발만 꽂으면 또 하나의 보여주기 사업이 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AI 데이터센터를 어디에 얼마나 지을 것인지부터 국가 전력수급계획과 맞춰야 한다. 발전소와 송전망, 변전소, 냉각 인프라, 통신망, 산업단지를 따로따로 볼 일이 아니다. AI 클러스터는 전력 클러스터와 함께 설계돼야 한다. 산업부처는 유치 실적을 말하고 에너지 부처는 부담을 말하며 지자체는 기대만 말하는 식으로는 안 된다. 국가 차원의 조정자가 필요하다. 전기요금 원칙도 세워야 한다. AI 데이터센터가 국가 전략산업이라고 해서 값싼 전기를 무한정 보장할 수는 없다. 전력망 증설 비용과 안정성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분명히 해야 한다. 대형 사업자는 필요한 비용을 정당하게 부담하고 국가는 그 대신 인허가와 계통 접속의 예측 가능성을 보장해야 한다. 국민 부담으로 기업 투자비를 보조하는 방식은 오래가지 못한다. 반대로 모든 부담을 기업에 떠넘기고 행정 절차만 복잡하게 두는 것도 투자를 막는다. 원칙은 간단하다. 혜택을 받는 자가 비용을 나누어 부담하고 국가는 공정한 룰을 제공해야 한다. 환경 문제도 피할 수 없다.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기와 물을 쓴다. 탄소 배출과 냉각수 문제를 외면하면 지역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환경 논리만 앞세워 모든 투자를 막을 수도 없다. 재생에너지, 고효율 냉각, 폐열 활용, 분산형 전원, LNG와 저장장치의 조합을 현실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탄소중립과 AI 경쟁력은 서로를 부정하는 목표가 아니다. 기술과 비용을 놓고 냉정하게 조합해야 할 국가 과제다. 정치권도 책임을 나눠야 한다. AI 산업을 키운다며 법안을 만들고 사진을 찍는 일은 쉽다. 어려운 일은 전력망을 깔고, 주민을 설득하고, 비용 분담의 원칙을 세우고, 부처 간 이해를 조정하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첨단산업 유치 공약은 넘치지만 정작 변전소와 송전선로 이야기가 나오면 모두 뒤로 물러선다. 그 결과 한국의 산업정책은 화려한 비전과 낡은 인프라 사이에서 비틀거린다. AI 데이터센터 특별법은 출발점이다. 그러나 전력 해법 없는 특별법은 반쪽짜리다. 인허가를 빠르게 해도 전기가 없으면 서버는 돌지 않는다. 세제를 깎아줘도 송전망이 없으면 투자는 오지 않는다. 국가 핵심사업으로 지정해도 전력 조달이 불확실하면 기업은 해외로 간다. 이것이 기본이고 상식이다. 한국은 반도체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제 AI 시대에는 반도체를 넘어 컴퓨팅 인프라를 가져야 한다. 칩을 잘 만드는 나라에서 칩을 가장 잘 쓰는 나라로 가야 한다. 그러려면 전기, 냉각, 통신, 보안, 데이터, 인재가 한 묶음으로 움직여야 한다. 어느 하나가 빠지면 AI 강국론은 슬로건이 된다. 정부와 국회는 이번 법안 통과를 성과로 포장하기보다 빠진 부분을 직시해야 한다. 전력 특례를 다시 넣느냐 빼느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AI 시대에 맞는 전력시장, 송전망 투자, 지역 입지, 비용 분담, 환경 기준, 데이터 주권의 전체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 법 하나로 끝낼 문제가 아니라 국가 운영의 기본 체계를 바꾸는 일이다. AI 강국의 첫 조건은 말이 아니다. 전기다. 전기가 있어야 데이터가 돌고, 데이터가 돌아야 모델이 크고, 모델이 커야 산업이 바뀐다. 전력 없는 AI 전략은 모래 위의 전략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구호가 아니라 더 단단한 기반이다. 국회와 정부가 그 상식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2026-05-07 15:2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