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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1000만 명의 시대, 실버타운 40곳 뿐
숫자는 냉정하다. 2024년 7월 대한민국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의 19%다. 2030년에는 25%인 1300만 명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이 1000만 명을 위한 노인 주거 시설, 이른바 실버타운은 전국에 40곳·9000여 가구에 불과하다. 고령 인구 대비 0.13%다. 미국은 4.8%, 일본은 2%다. 한국은 선진국의 30분의 1 수준이다. 이것은 준비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정책 실패의 문제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 최고라는 사실을 모른 것도 아니고, 예측하지 못한 것도 아니다. 알면서 10년 넘게 규제의 울타리를 치고, 민간의 진입을 막고, 공공 공급은 연간 1000가구 수준에 묶어뒀다. 그 결과가 지금 이 숫자다. 2015년, 정부가 문을 걸어 잠갔다 현재 실버타운의 공급 공백을 이해하려면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정부는 그해 노인복지법을 개정해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을 전면 폐지했다. 명분은 정당했다.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투기에 악용되고, 불법 분양과 부실 운영 사례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 있는 일부 사업자를 규제하는 대신, 정부는 제도 자체를 없앴다. 분양형이 사라지자 임대형 실버타운만 남았다. 운영 경험이 있는 사업자만 진입 가능하도록 장벽을 높였다. 수익성이 낮은 구조에서 신규 공급은 멈췄다. 규제는 투기꾼을 막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평범한 노인들이 갈 곳을 잃었다. 그 문이 닫힌 채 10년이 흘렀다. '분양형 재도입' — 해법인가, 면피인가 2025년 정부는 9년 만에 분양형 실버타운 재도입을 선언했다.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발표의 조건을 들여다보면 달라진다. 분양형 실버타운이 허용되는 지역은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 89곳'에 한정된다. 강원, 전남, 경북의 인구 소멸 위기 지역들이다. 문제는 노인들이 살고 싶어 하는 곳은 그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버타운 수요는 의료·교통·상업시설이 갖춰진 도심에 집중된다. 업계는 한목소리로 "수요가 있는 곳에 짓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부의 답은 "인구 소멸지역부터 시범 운영"이다. 노인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지방 소멸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두 마리 토끼 잡기의 산물이다. '더 클래식 500' 보증금 9억 — 중산층 노인은 갈 곳이 없다 현재 운영 중인 실버타운은 양극화돼 있다. 한쪽 끝에는 보증금 9억 원, 월 생활비 472만 원 이상인 최고급 시설이 있다. 삼성 노블카운티의 임대료는 인근 아파트의 2.19배 수준이다. 다른 한쪽 끝에는 저소득층을 위한 정부 지원 시설이 있다. 그 사이, 중산층 노인을 위한 시설은 사실상 전무하다. 은퇴 후 중소도시 아파트를 보유하고, 국민연금을 받으며, 자녀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고 싶은 노인 — 이 나라 노인의 대다수가 속하는 이 계층을 위한 실버타운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가 말하는 '중산층 위한 실버스테이'는 아직 계획 단계다. 1000만 노인 시대에 정책은 여전히 미래형이다. 규제를 풀어도 안 짓는 이유 — 수익성의 벽 정부가 위탁 운영 경험 요건을 없애고 호텔·보험사·리츠까지 사업자 범위를 넓혔지만, 민간이 선뜻 뛰어들지 않는 이유가 있다. 실버타운은 초기 투자 비용이 크고, 임대료 인상이 연 5% 이내로 제한돼 수익 구조가 취약하다. 의료·돌봄 서비스를 병행해야 하는 운영 부담도 크다. 이 구조에서 민간이 찾는 출구는 두 곳이다. 고급화해서 마진을 높이거나, 서비스 질을 낮춰 비용을 줄이거나. 중산층을 위한 합리적 가격의 실버타운은 규제를 풀어도 시장이 자동으로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것은 공공 투자와 제도 설계가 함께 가야 가능한 영역이다. 정부는 규제 완화로 책임을 시장에 넘겼지만, 시장은 그 빈자리를 채우지 않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 세 가지 방향이 즉각 논의돼야 한다. 첫째, 분양형 실버타운 허용 지역을 인구감소지역에서 수요 집중 지역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수도권 도심 내 역세권, 의료기관 인접 지역을 우선 검토해야 한다. 둘째, 중산층 노인을 위한 공공 주도 공급 모델이 필요하다. LH 고령자복지주택 공급 목표를 연 3000가구에서 대폭 상향하고, 민관 협력 모델을 통해 속도를 내야 한다. 셋째, 서비스 품질 기준을 법제화해야 한다. 분양형 재도입 이후 과거처럼 부실 운영과 투기 악용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얼마에 공급하느냐'보다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대한 구체적 기준 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 노인 1000만 명의 나라에 실버타운이 40곳뿐이라는 사실은, 이 사회가 노인의 주거를 얼마나 오랫동안 정책의 변방에 방치해왔는지를 보여준다. 분양형 재도입은 늦었지만 반가운 출발이다. 그러나 노인들이 살고 싶은 곳에 짓지 못하고, 중산층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라면, 숫자만 바뀔 뿐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2026-05-24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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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현장의 삽에서 미래도시 설계까지…현대건설 79년 도전의 궤적
[경제일보] 대한민국 산업화의 장면마다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도로와 항만, 댐과 발전소, 아파트와 초고층 빌딩까지 국가 기반시설이 세워진 자리에는 늘 현대건설이 있었다. 전후 폐허 속에서 삽과 곡괭이로 출발한 회사가 이제 원전과 데이터센터, 미래 주거와 친환경 에너지 시장을 이끄는 종합 인프라 기업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현대건설의 발자취는 한국 경제 성장사와 맞닿아 있다. 1947년 문을 연 현대건설의 출발은 소박했다. 자본도 장비도 넉넉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주영 창업주의 추진력은 남달랐다. 어려운 일일수록 먼저 맡았고 길이 없으면 직접 길을 냈다. 이후 현대건설을 설명하는 실행 중심 문화도 이 시기에 자리 잡았다. 1960년대와 1970년대 현대건설은 국가 기간시설 건설의 맨 앞줄에 섰다. 경부고속도로와 소양강댐, 울산 공업단지와 각종 항만 공사는 단순한 토목사업이 아니었다. 산업 국가로 넘어가기 위한 토대를 놓는 작업이었다. 당시 현대건설의 공사 현장은 곧 대한민국 성장의 현장이었다. 해외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키웠다. 1970년대 중동 건설 붐 속에서 현대건설은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등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사를 새로 썼다. 낯선 사막에서 축적한 공정 관리 능력과 공기 준수 경험은 이후 글로벌 경쟁력의 밑바탕이 됐다. 국내 시공사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건설사로 체급을 키운 전환기였다. 주택 시장에서도 이름값은 이어졌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한 시대의 주거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힐스테이트 브랜드로 이어진 주택사업은 품질과 브랜드 경쟁력을 앞세워 국내 주택시장의 기준을 높였다. 건설사가 단순 시공을 넘어 생활 방식을 제안하는 기업으로 변하는 흐름도 현대건설이 앞당겼다. 물론 순항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부동산 경기 침체, 원자재 가격 급등, 금리 상승기마다 건설업은 가장 먼저 충격을 받는 업종이었다. 현대건설 역시 해외 현장 손실과 주택 경기 둔화, 대외 변수의 파고를 여러 차례 겪었다. 다만 위기 때마다 사업 구성을 손보고 기술 경쟁력을 높이며 체질을 다져 왔다. 최근 현대건설의 변화는 더 크다. 과거의 중심축이 도로·주택·플랜트였다면 지금은 에너지 전환과 미래 인프라로 무게추가 이동하고 있다. 회사는 2025년 연간 수주 25조5151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건설사 가운데 처음으로 25조원대를 넘어섰다. 전년 대비 39% 증가한 규모다. 외형 확대에 그치지 않고 사업 지형이 바뀌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핵심 축 가운데 하나는 원전 사업이다. 현대건설은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대형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 사업을 함께 넓히고 있다. 미국 홀텍과 추진 중인 팰리세이즈 SMR 프로젝트는 상용화 가능성이 거론되는 대표 사례다. SMR은 공사 기간이 짧고 초기 투자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아 AI 데이터센터와 산업단지 전력원으로 주목받는다. 건설사가 전력 해법까지 사업 범위를 넓히는 셈이다. 데이터센터도 새 성장축으로 꼽힌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글로벌 데이터센터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다. 이제는 건물만 짓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안정적 전력 공급과 냉각 시스템, 보안, 운영 효율까지 함께 갖춰야 한다. 현대건설은 초대형 복합시설 시공 경험에 에너지 인프라 역량을 더해 이 시장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고 있다. 현장 혁신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현대건설은 AI 기반 안전 예측, 로봇 순찰, 공정 데이터 분석, 자동화 장비 도입 등을 통해 생산성과 안전 수준을 함께 끌어올리고 있다. 전통 산업으로 여겨졌던 건설업이 기술 산업으로 옮겨가는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강점은 브랜드 신뢰도와 종합 수행 능력이다. 토목·건축·플랜트·원전을 아우르는 사업 경험, 현대차그룹과의 연계 가능성, 글로벌 대형 프로젝트 수행 이력은 쉽게 따라오기 어려운 자산이다. 로봇·모빌리티·수소·스마트시티와의 접점도 넓다. 과제도 있다. 해외 사업은 환율과 지정학 변수에 민감하다. 원전 사업은 기술 장벽이 높은 대신 정치와 규제 변수도 함께 따라온다. 국내 주택 시장은 금리와 정책 변화에 크게 흔들린다. 공사비 상승과 인력 부족 역시 업계 전반의 부담이다. 미래 사업 확대 과정에서 커지는 투자 비용을 어떻게 수익으로 연결할지도 중요한 숙제다. 결국 현대건설이 향하는 방향은 비교적 또렷하다. 단순 시공회사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와 에너지 체계를 함께 설계하는 기업으로 외연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주택을 넘어 생활 플랫폼으로, 플랜트를 넘어 전력 인프라로, 공사 현장을 넘어 데이터 기반 산업으로 사업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정주영 창업주의 시대가 없던 길을 내던 시기였다면 지금 현대건설의 과제는 다가올 시대의 기반을 먼저 준비하는 일이다. 한국 산업화의 기초를 놓았던 기업이 이제 AI 시대의 도시와 전력망을 설계하려 한다. 과거 성장의 주역이 미래 산업의 중심에서도 같은 존재감을 이어갈지 시장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2026-04-21 09:4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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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도 '손'에서 '알고리즘'으로…포스코, 제조 패러다임 전환
[경제일보] 포스코그룹이 로봇 자동화 기업 투자를 통해 제조 현장의 지능화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생산 효율과 안전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자율 공정’ 경쟁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포스코그룹은 로봇 자동화 솔루션 기업 브릴스에 총 70억원을 투자하며 그룹 차원의 AX(인공지능 전환) 전략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단순 지분 투자에 그치지 않고 제조 현장에 로봇과 AI를 결합한 자동화 시스템을 공동 구축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최근 제조업은 인력 부족과 안전 규제 강화, 생산 효율성 요구가 맞물리며 공정 자동화 필요성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특히 철강과 같은 중후장대 산업은 고위험·고강도 작업 비중이 높아 로봇 도입 효과가 큰 분야로 꼽힌다.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기업들의 경쟁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생산량과 설비 규모가 경쟁력의 핵심이었다면, 최근에는 공정 효율성과 자동화 수준이 수익성을 좌우하는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포스코그룹이 추진하는 '인텔리전트 팩토리' 역시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 전략이다. 사람·AI·로봇이 협업하는 자율형 생산 시스템을 구축해 작업 효율과 품질을 동시에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반복 작업이나 고온·고중량 취급 등 위험도가 높은 공정에 로봇을 우선 적용함으로써 산업재해를 줄이고 생산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철강 공정은 고열과 중장비가 결합된 작업 환경 특성상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데, 로봇 도입을 통해 작업자의 직접 투입을 최소화하면 사고 위험을 구조적으로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로봇 기반 공정은 작업 편차를 줄이고 품질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어 생산 효율성과 공정 안정성 측면에서도 효과가 크다. 돌발 상황에 따른 생산 중단 가능성을 낮추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산업재해 감소와 근로 환경 개선은 ‘사회(S)’ 영역의 핵심 지표로 평가되며, 안전 관리 수준이 투자와 거래 조건에 반영되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제조 현장의 자동화 수준과 안전 관리 역량이 기업 경쟁력을 가르는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포스코그룹은 이미 로봇 분야 투자 포트폴리오를 꾸준히 확대해 왔다. 로봇핸드, 협동로봇, 휴머노이드 등 다양한 기술 영역에 투자하며 제조 자동화 생태계를 선제적으로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번 브릴스 투자는 이러한 전략을 한 단계 확장한 사례로, 로봇 ‘기술’뿐 아니라 실제 생산 현장에 적용 가능한 ‘운영 시스템’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스템 통합(SI) 역량을 갖춘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현장 적용 속도를 높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제조업의 경쟁 구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이 결합되면서 생산 공정 자체가 데이터 기반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화 수준이 높을수록 생산 품질의 일관성과 비용 구조 안정성이 동시에 개선되는 만큼, 공정 지능화 역량이 기업 간 격차를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초기 투자 비용과 시스템 구축 기간, 현장 적용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는 여전히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기존 생산 설비와의 연계, 인력 재배치 등 운영 전반에 걸친 구조 조정도 병행해야 하는 과제로 꼽힌다. 제조업이 고도화될수록 자동화와 지능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단순 생산 중심에서 벗어나 공정이 스스로 판단하고 운영되는 ‘자율형 공장’으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는 흐름이다. 결국 향후 제조 경쟁은 얼마나 많은 제품을 생산하느냐보다, 얼마나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공정을 운영할 수 있느냐로 이동하고 있으며, 로봇과 AI 기반의 자율 공정 구축 능력이 기업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2026-04-07 10: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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