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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조 '수퍼 재정', 미래를 위한 투자인가 미래를 담보 잡는 도박인가
[경제일보] 국가 예산은 한 해의 살림살이를 넘어 국가의 철학과 미래를 담는 설계도다. 정부가 내년도 예산을 올해보다 10% 이상 늘어난 800조 원 안팎의 '수퍼 재정'으로 편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경기 회복에 따른 세수 증가를 바탕으로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하고 인공지능(AI), 바이오, 양자기술 등 첨단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겠다는 구상이다.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미래 산업에 대한 선제적 투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세계가 기술 패권 경쟁에 사활을 거는 시대에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방향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재정은 의지만으로 운용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흐름과 재정 원칙 속에서 집행되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시기를 놓치면 독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 경제는 긴 고물가와 고금리의 터널을 겨우 벗어나 거시경제의 안정을 회복하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물가는 아직 완전히 안정되지 않았고, 시중 유동성은 여전히 풍부하다. 수도권 부동산 시장 역시 언제든 다시 과열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정부가 10%를 넘는 초확장 재정을 집행할 경우 물가와 자산 가격을 다시 자극할 가능성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정부의 재정 확대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과도 충돌할 수 있다. 한쪽에서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을 유지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대규모 재정을 풀면 정책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재정과 통화정책은 경제라는 수레의 두 바퀴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결국 국민 경제가 그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재정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명확하다. 경기가 좋을 때는 재정을 비축하고 국가채무를 줄이며, 어려울 때 과감히 사용하는 것이다. 최근 세수 여건이 개선된 것은 반도체 산업의 호조에 힘입은 측면이 크다. 이를 구조적인 세수 증가로 착각해 지출을 대폭 늘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판단이다. 일시적인 호황을 영구적인 성장으로 오인하는 순간 재정 건전성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늘어난 세수는 무엇보다 국가채무를 줄이는 데 우선 활용해야 한다. 국가 부채는 미래 세대가 반드시 갚아야 할 부담이다. 지금 곳간이 조금 채워졌다고 해서 소비부터 늘리는 것은 가계든 국가든 바람직한 재정 운용이 아니다. 미래의 경기 침체가 닥쳤을 때 사용할 재정 여력을 미리 소진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더 큰 우려는 막대한 예산이 정치적 논리에 휘둘릴 가능성이다. 선거를 앞두고 지역 민원성 사업이나 현금성 지원이 확대된다면 재정은 성장의 마중물이 아니라 포퓰리즘의 연료가 된다. 과거에도 선심성 재정은 단기적인 인기만 남겼을 뿐 국가 경쟁력을 높이지 못했다. 특히 경직성 복지와 현금성 지원은 한 번 시작되면 줄이기 어려워 국가 재정을 장기간 압박하는 구조적 부담으로 남는다. 정부가 신설하려는 미래대응기금은 반드시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높이는 분야에 집중되어야 한다. AI와 반도체, 바이오, 양자컴퓨터, 차세대 에너지 등 미래 산업은 물론, 기술 인재 양성과 연구개발 생태계 구축에도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동시에 사업 선정부터 집행, 성과 평가까지 전 과정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철저한 사후 검증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예산은 규모보다 효율이, 속도보다 성과가 더욱 중요하다. 아울러 저출생과 고령화, 노동시장 구조개혁, 지역 균형발전 등 대한민국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재정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단순한 경기부양보다 국가 체질을 개선하는 데 쓰이는 예산만이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오늘의 인기와 정치적 성과를 위해 미래의 부담을 키우는 재정 운용은 결코 책임 있는 국가의 모습이 아니다. 정부는 800조 원이라는 숫자의 화려함보다 그 예산이 가져올 거시경제적 파급 효과를 더욱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재정 건전성을 지키면서 미래 산업에는 과감히 투자하는 균형 감각, 그것이 지금 정부가 보여야 할 진정한 국가 운영의 지혜다. 풍년일수록 흉년을 준비하라는 경제의 기본 원칙을 잊지 않을 때만이 대한민국의 재정은 미래 세대에게 희망이라는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2026-07-14 12: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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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 국회가 된 7월 임시국회, 국민은 또다시 뒷전인가
[경제일보] 7월 임시국회가 또다시 '반쪽 국회'라는 오명을 안은 채 막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거대 여당은 민생 개혁 입법을 신속히 처리하겠다며 속도전을 예고했고, 제1야당은 원 구성 강행에 반발하며 국회 보이콧을 이어가고 있다. 입법부의 양 축인 여야가 출발부터 등을 돌린 채 대치하는 모습은 대한민국 의회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민은 민생을 해결하는 국회를 원했지만, 정치권은 또다시 힘겨루기와 감정싸움으로 응답하고 있다. 의회민주주의는 다수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다수의 결정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수 의견을 경청하고 설득하는 절차가 전제될 때 비로소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최근 국회의 모습은 다수의 힘으로 모든 것을 밀어붙이려는 오만과, 이에 맞서 국회 자체를 거부하는 무책임이 맞부딪치는 최악의 정치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거대 여당은 국민이 부여한 의석을 국정 운영의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책임보다 힘을 앞세운 일방통행식 국회 운영은 결코 민주주의의 모습이 아니다. 원 구성부터 주요 법안 처리까지 협의와 조정 대신 숫자의 우위를 앞세워 밀어붙이는 방식은 국회의 존재 이유인 토론과 합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다. 절차적 정당성을 경시한 입법은 법률의 생명력마저 약화시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뒤집히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만든다. 야당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의회민주주의에서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조직이 아니라 권력을 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책임 있는 정치세력이다. 그러나 국회 보이콧을 상시적인 정치투쟁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국민이 부여한 책무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국회의원이 국회를 떠나는 순간 손해를 보는 것은 여당이 아니라 국민이다. 민생 현안은 방치되고, 경제는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여야 모두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국회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승자독식의 제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하는 정치 시스템이다. 다수는 힘을 절제해야 하고, 소수는 책임 있게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어느 한쪽만 민주주의를 말해서는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 경제는 어느 때보다 어려운 국면에 놓여 있다. 고물가와 고금리의 여파는 여전히 서민의 삶을 짓누르고 있고, 자영업자의 폐업은 이어지고 있으며, 청년들의 취업난과 기업들의 투자 위축도 심화되고 있다. 미국발 관세 정책 변화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저성장 고착화라는 대외 변수까지 겹쳐 민생은 한순간도 지체할 여유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가 정쟁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다뤄야 할 법안들은 대부분 국민의 삶과 직결된 사안들이다. 추가경정예산 후속 입법과 경제 활성화 대책, 소상공인 지원, 첨단산업 경쟁력 강화, 노동시장과 연금 개혁 등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과제들이다. 그러나 여당은 독주하고 야당은 퇴장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법안은 졸속 처리되거나 아예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피해는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에게 돌아간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고 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것이 군자의 정치라는 뜻이다. 노자 역시 『도덕경』에서 "강한 것은 부러지고, 부드러운 것이 오래간다"고 가르쳤다. 상대를 굴복시키는 정치보다 상대를 포용하는 정치가 오래간다는 인류의 지혜를 오늘의 정치권은 되새겨야 한다. 국회는 승패를 겨루는 경기장이 아니다.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헌법기관이다. 여당은 숫자의 우위를 겸손으로 다스려야 하며, 야당은 보이콧보다 정책 경쟁으로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무엇보다 원 구성과 쟁점 법안에 대해서는 여야 원내대표와 상임위원장이 참여하는 상설 협의체를 활성화하고, 일정 기간의 숙의와 공개 토론을 제도화하는 등 협치를 복원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치도, 무조건 거부하는 정치도 이제는 끝내야 한다. 국민은 정치권의 싸움을 구경하기 위해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다. 국회를 구성하라고 표를 준 것도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준비하며, 갈등을 조정하라고 권한을 위임한 것이다. 7월 임시국회가 또 하나의 '반쪽 국회'로 끝난다면 국민의 정치 불신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의석이 아니라 더 큰 책임감이며, 더 높은 목소리가 아니라 더 깊은 경청이다. 국회가 협치를 잃는 순간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는다. 여야는 지금이라도 정쟁의 장막을 걷어내고 국민 앞에 마주 앉아야 한다. 그것이 헌법이 부여한 의회의 책무이며, 국민이 마지막으로 정치에 기대하는 최소한의 상식이다.
2026-07-06 09: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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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을 넘어 국정 협력으로, 지금은 대한민국을 재설계할 때다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오찬은 전·현직 대통령의 예우를 넘어 우리 정치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적 자리다. 여권 내부에서는 당 대표 선출을 앞두고 다양한 의견과 노선이 제기되고 있다. 집권 여당에서는 정책 방향과 국정 운영 방식을 둘러싼 토론이 이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이 마주한 현실을 생각하면 정치의 중심은 내부 경쟁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 강화에 맞춰져야 한다. 세계는 거대한 전환기에 들어섰다. 생성형 AI는 산업과 일자리, 교육과 행정, 국방과 금융까지 국가 시스템 전반을 바꾸고 있다. 여기에 미·중 전략 경쟁, 중동 정세의 불안,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공급망 재편, 저출생과 고령화, 지방 소멸 등 복합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과거의 정치 문법만으로는 이러한 도전에 대응하기 어렵다. 이제 대한민국은 부분적인 보수나 미세한 조정보다는 국가 운영 시스템을 시대 변화에 맞게 다시 설계하는 수준의 혁신을 고민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용어가 아니라 내용이다. 국민이 체감하는 성장 전략을 마련하고, AI를 국가 경쟁력의 핵심 축으로 육성하며, 산업과 교육, 행정과 규제를 미래 환경에 맞게 혁신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다. 집권 세력도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선거를 치르는 정당과 국정을 운영하는 집권 세력은 역할이 다르다. 집권 이후에는 지지층의 기대를 존중하는 동시에 국민 전체의 삶을 책임지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국정 운영은 통합과 협력, 그리고 실용적 해법을 통해 성과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민주개혁 진영의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다. 국정 경험을 가진 전직 대통령의 조언과 협력은 국가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 또한 전임 정부의 성과와 경험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책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정치적 연속성과 시대적 혁신은 상충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추구할 수 있는 목표다. 민주당 역시 내부 경쟁을 미래 비전 경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다양한 의견은 민주주의의 힘이지만, 그것이 소모적 갈등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집권당의 책무는 정권의 성공이 아니라 국민의 성공이며, 국정의 안정이 곧 국민의 안정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AI 시대 국가 경쟁은 더 이상 특정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소프트웨어와 피지컬 AI, 교육 혁신과 규제 개혁, 지역 균형발전과 인재 양성은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제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여당은 물론 사회 각계의 협력이 절실하다. 오늘의 오찬이 단순한 정치 일정으로 끝나지 않기를 기대한다. 국정 운영을 위한 신뢰를 쌓고, 미래를 위한 협력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과거를 둘러싼 논쟁보다 미래를 향한 공동의 비전이다. 정치는 갈등을 확대하는 기술이 아니라 국가의 역량을 하나로 모으는 지혜여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새로운 도약의 문 앞에 서 있다. 정치가 시대의 변화를 읽고 국민을 하나로 모을 때, AI 시대의 국가 경쟁력도 비로소 힘을 얻게 될 것이다.
2026-07-01 15: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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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의료의 저울을 바로잡을 때다
사회가 발전하고 문명이 화려해질수록 우리는 종종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잊곤 한다. 의료 역시 예외가 아니다. 첨단 의료기술과 고가 장비가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지만, 정작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는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다. 화려한 의료산업의 성장 이면에서 산부인과는 사라지고, 소아과 진료 공백은 심화됐으며, 외과와 응급의료 분야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려 왔다. 생명의 최전선을 지켜야 할 의료체계가 오히려 가장 취약한 분야로 전락한 것이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건강보험 수가 구조 개편안은 이런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개편안의 핵심은 CT·MRI 등 고가 영상검사의 수가를 조정하는 대신 20년 가까이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해온 기본 진찰료를 인상하고, 산과·소아과·외과 등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데 있다. 이는 단순한 예산 조정이 아니다.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 곳에 우선 배분하겠다는 정책적 선언이다. 의사의 가장 기본적인 의료행위인 진찰의 가치를 회복하고,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를 살려내겠다는 점에서 상식과 원칙의 회복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의료체계는 지나치게 검사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 환자들은 가벼운 증상에도 고가 검사를 선호했고, 병원 역시 첨단 장비를 활용한 검사 수익에 의존하는 구조를 형성했다. 반면 환자를 직접 만나 상담하고 진찰하며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기본 진료 행위는 상대적으로 낮은 보상을 받아왔다. 그 결과 필수의료 분야는 인력 유출과 적자 누적으로 점차 붕괴의 길을 걸었다. 노자는 《도덕경》 제77장에서 "하늘의 도는 남는 곳에서 덜어 부족한 곳에 보태지만, 사람의 도는 부족한 곳에서 덜어 남는 곳에 바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의료 수가 체계는 안타깝게도 후자에 가까웠다. 검사와 장비 중심의 분야에는 수익이 집중된 반면, 국민 생명을 지키는 필수의료는 상대적으로 소외돼 왔다. 이번 개편은 이런 비정상을 바로잡고 의료 자원을 보다 합리적으로 재배분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진 정책이라도 그 이면에 존재하는 부작용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필자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고가 영상검사가 반드시 필요한 중증 환자와 희귀질환 환자들의 부담 증가 가능성이다. 암 환자나 희귀질환 환자에게 CT와 MRI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수단이다. 과잉진료를 줄이겠다는 취지가 자칫 필요한 검사마저 위축시키거나 환자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면 정책의 정당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공동체의 정의는 가장 약한 사람을 보호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인류의 오랜 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중증 환자와 취약계층에 대한 별도의 보호장치를 마련해 어떠한 의료 사각지대도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다른 과제는 의료계 내부 갈등이다. 이번 개편은 필연적으로 이해관계의 충돌을 수반한다. 검사 수익 비중이 높은 병원과 의원들은 수익 감소를 우려할 수밖에 없고, 필수의료 분야는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게 된다. 정책이 잘못 추진될 경우 의료계의 집단 반발이나 새로운 편법 진료가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도덕경》 제60장에 나오는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는 말은 오늘날 의료개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작은 생선을 자주 뒤집으면 살이 부서지듯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의료체계를 무리하게 흔들 경우 오히려 시스템 전체가 손상될 수 있다. 정부는 일방적인 집행자가 아니라 정교한 조정자가 되어야 한다. 수가 인하의 영향을 받는 의료기관들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충분한 보완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필수의료 종사자들에게는 단순한 경제적 보상뿐 아니라 직업적 자긍심과 지속 가능한 근무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의료진이 사명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개혁이다. 의료는 단순한 산업이 아니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다루는 공공재이자 사회적 안전망이다. 따라서 의료정책은 수익성과 효율성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생명 존중과 형평성, 그리고 공동체적 책임이라는 가치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이번 건강보험 수가 개편은 왜곡된 의료 생태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성공 여부는 단순히 수가를 올리고 내리는 데 달려 있지 않다. 필수의료를 실질적으로 살릴 수 있는 후속 대책, 환자 부담 증가를 막기 위한 세심한 보호장치, 의료계와의 지속적인 소통과 조정 능력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결국 의료개혁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선택해야 할 길은 의료를 다시 생명 중심으로 돌려놓는 일이다. 정부와 의료계, 국민 모두가 당장의 이해관계를 넘어 공동체 전체의 미래를 바라볼 때 비로소 대한민국 의료는 균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뒤틀린 의료의 저울을 바로잡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그 고통을 감내할 때 우리 아이들이 안심하고 태어나고, 아플 때 언제든 치료받을 수 있는 건강한 의료체계가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2026-06-21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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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뒷전, 당권만 좇는 여의도의 씁쓸한 자화상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선장과 항해사는 서로 조타기를 잘못 잡았다며 멱살잡이만 하고 있다. 갑판 아래에서는 승객들이 물이 차오르는 공포에 떨고 있는데도 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의 모습이 꼭 그렇다. 6·3 지방선거가 끝난 지 2주가 지났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선거의 후유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선거의 교훈을 되새기기는커녕 선거 결과를 둘러싼 책임 공방과 당권 투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여의도는 민심을 읽는 공간이 아니라 권력을 계산하는 공간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예외가 아니다.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자 지도부를 향한 사퇴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국민이 진정 묻고 있는 것은 누가 대표직을 유지할 것인가가 아니다. 왜 국민이 등을 돌렸는가, 왜 국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안타깝게도 정치권은 그 질문을 외면한 채 차기 권력의 향배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투표용지 부실 관리 사태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였다. 선거 관리 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났고 국민의 신뢰는 상처를 입었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 속에서 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폐업을 고민하고 청년들은 취업난에 신음하며 노년층은 생활비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 그러나 국회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민생 대책이 아니라 계파 갈등과 권력 재편 이야기뿐이다. 정치가 국민을 위한 것인지, 정치인 자신을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자는 논어에서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도자가 바르면 백성도 자연히 바르게 따른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는 바름보다 유불리를 먼저 따지고 있다. 국민의 고통보다 당내 권력 지형에 더 관심을 보이고, 국가의 미래보다 다음 전당대회와 공천을 더 걱정하는 모습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성인은 자기 자신을 뒤로하고 백성을 앞세운다"고 했다. 또한 "강한 것은 부러지고 부드러운 것이 살아남는다"고 가르쳤다. 지도자는 권력을 움켜쥐려 할수록 결국 그 권력에 갇히게 되고, 백성의 목소리를 낮은 자세로 듣는 자만이 오래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권은 어떠한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는 대신 상대 진영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데 더 익숙해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양당 모두 선거 결과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만 해석한다는 점이다. 국민의 심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보다 이를 내부 권력투쟁의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선거 책임론이 본래의 의미를 잃고 정적 제거의 수단으로 변질되는 순간, 정치의 품격은 무너진다. 국민의 채찍질은 쇄신을 위한 것이지 계파 싸움의 명분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은 책임 정치다. 권한을 가졌다면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잘못이 있다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개선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에서는 책임지는 지도자를 찾기 어렵다. 모두가 남의 탓을 한다. 정부는 야당을 탓하고 야당은 정부를 탓한다. 당 지도부는 전임 지도부를 탓하고 계파는 상대 계파를 탓한다. 국민은 이미 알고 있다. 서로를 향한 비난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성경 잠언에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는 구절이 있다. 지도자가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고 권력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는 순간 몰락은 시작된다는 경고다. 역사를 돌아보면 국민의 경고를 무시한 정권과 정당 가운데 오래 살아남은 사례는 없다.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한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저성장과 고물가, 인구 감소와 청년 실업, 인공지능(AI) 시대의 산업 재편, 국제 질서의 불확실성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문제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이 권력 다툼에만 몰두한다면 국가는 방향을 잃고 국민은 희망을 잃게 된다. 정당은 권력을 얻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다.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존재하는 공적 기관이다. 대표직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당권은 국민을 위한 봉사의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수단이 목적이 되고 봉사가 권력욕으로 변질되면 정치는 본래의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된다. 배가 침몰할 때 필요한 것은 서로의 잘못을 따지는 싸움이 아니다. 승객을 구하기 위한 협력이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에도 필요한 것은 상대를 무너뜨리는 기술이 아니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다. 국민은 더 이상 변명하는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다. 국민은 책임지는 지도자, 듣는 지도자, 행동하는 지도자를 원한다. 여야는 이제 당권이라는 독배를 내려놓아야 한다. 선거 결과에 담긴 국민의 경고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민생이라는 본분으로 돌아와야 한다. 쇄신 없는 권력투쟁의 끝은 공멸이다. 반대로 책임 정치와 협치의 정신을 회복한다면 위기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정치는 권력을 위한 게임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일이다. 그 가장 단순한 진실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오늘 대한민국 정치가 가장 먼저 되찾아야 할 상식이다.
2026-06-18 17: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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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보다 무서운 건 경제 불확실성이다
[경제일보] 전쟁은 끝났다고 해서 곧바로 끝나지 않는다. 총성이 멎은 뒤에도 전쟁은 유가에 남고 환율에 남고 물류비에 남고 기업의 투자계획서와 가계의 장바구니에 남는다. 미국과 이란이 전쟁 종식과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에 합의했다는 소식은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다. 세계 금융시장은 즉각 안도했다. 국제유가는 급락했고 주요 증시는 반등했다. 전쟁 프리미엄이 빠지자 시장은 마치 긴 터널을 빠져나온 듯 환호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환호가 아니라 냉정이다. 전쟁보다 무서운 것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경제 불확실성이다. 휴전문서 한 장이 원유 생산시설을 하루아침에 복구하지 못한다. 해협 재개방 선언이 곧바로 선박 보험료를 낮추지도 않는다. 국제유가가 하루 이틀 떨어졌다고 해서 물가가 곧장 안정되는 것도 아니다. 전쟁은 정치적으로는 합의로 끝나지만 경제적으로는 비용 청구서가 도착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이번 미국·이란 전쟁이 세계경제에 남긴 첫 번째 상처는 에너지 시장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가 지나는 핵심 길목이다. 그 길목이 전쟁의 인질이 되자 세계는 다시 한 번 에너지 안보가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경제 생존의 문제임을 확인했다. 합의 이후 브렌트유 가격은 급락했지만 이것은 위험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기보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일단 뒤로 밀렸기 때문이다. 유가가 내려도 공급망은 즉시 회복되지 않는다. 산유국의 생산설비, 정제시설, 항만, 보험, 선박 운항, 금융결제망은 모두 시간이 필요한 시스템이다. 더 큰 문제는 시장의 기억이다. 한번 흔들린 시장은 쉽게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선사들은 통항이 가능하다는 정치적 선언보다 실제 항로의 안전을 본다. 보험사는 합의문보다 재발 가능성을 계산한다. 정유사와 항공사, 석유화학 기업은 현물가격보다 3개월 뒤, 6개월 뒤의 조달 안정성을 본다. 그래서 전쟁 뒤의 경제는 늘 ‘안정’이 아니라 ‘안정 확인’의 시간을 요구한다. 불확실성은 가격 그 자체보다 더 비싸다. 이번 합의는 세계 중앙은행에도 어려운 숙제를 남겼다. 전쟁 중 급등한 에너지 가격은 물가를 밀어 올렸다. 유가가 떨어지면 물가 압력은 완화되지만 이미 오른 운송비와 원재료비, 기대인플레이션은 시차를 두고 경제 전반에 스며든다. 중앙은행은 금리를 내리고 싶어도 물가가 불안하면 움직이기 어렵다. 금리를 유지하면 경기 회복은 더뎌지고 금리를 내리면 다시 물가와 환율이 흔들릴 수 있다. 전쟁은 끝났지만 통화정책의 안개는 더 짙어질 수 있다. 한국경제에는 이 불확실성이 더 예민하게 작용한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제조업과 수출 비중이 큰 나라다. 원유와 가스 가격이 오르면 기업의 생산비가 먼저 오른다. 정유·화학·철강·항공·해운은 물론이고 전력비 부담이 큰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산업에도 파장이 간다. 유가가 오르면 무역수지가 흔들리고 무역수지가 흔들리면 환율이 불안해진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물가가 뛰고 수입물가가 뛰면 소비자물가가 다시 고개를 든다. 결국 중동의 포성이 서울의 주유소 가격표와 서민 밥상으로 번지는 구조다. 합의 이후 유가가 안정된다면 한국경제에는 분명 숨통이 트인다. 기업의 원가 부담은 줄고 항공·해운·석유화학·자동차 등 에너지 민감 업종은 불확실성을 덜 수 있다. 고유가에 짓눌렸던 소비심리도 일부 회복될 수 있다. 환율 안정은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에도 긍정적이다. 최근 반도체 수출 호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 부담이 낮아지면 한국경제는 다시 회복 궤도에 올라설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것을 경기 반전의 신호로 과대해석해서는 안 된다. 종전 합의가 곧 경기부양책은 아니다. 전쟁은 이미 비용을 남겼다. 기업들은 몇 달 동안 비싼 원료와 물류비를 감당했다. 일부 기업은 납기와 계약조건을 조정했고 일부 가계는 고유가와 고물가 속에서 소비를 줄였다. 한번 미뤄진 투자는 다시 집행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한번 닫힌 소비지갑은 유가가 떨어졌다는 뉴스 하나로 곧바로 열리지 않는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봐야 할 지점도 여기에 있다. 지금 필요한 정책은 ‘전쟁이 끝났으니 정상화됐다’는 낙관론이 아니라, ‘전쟁이 끝났지만 불확실성은 남았다’는 위험관리다. 물가가 완전히 안정되기 전까지 통화정책은 신중해야 한다. 동시에 취약계층과 에너지 다소비 업종에는 선별 지원이 필요하다. 고유가의 부담은 모든 국민에게 같지 않다. 대기업은 헤지와 장기계약으로 버틸 수 있지만 영세 자영업자와 운송업자, 농어민, 저소득층은 유가 변동을 그대로 맞는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 같은 단기 처방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필요할 때 한시적 완충장치는 있어야 하지만 재정 여력이 무한한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 전략비축 체계 점검, 핵심 원자재 공급망 확보, 항만·해운 리스크 관리, 기업의 환율·유가 헤지 역량 강화다. 전쟁이 남긴 교훈은 단순하다. 싸게 사는 것보다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효율만 따지던 공급망의 시대가 저물고, 회복탄력성을 따지는 공급망의 시대가 왔다. 기업도 달라져야 한다. 중동 리스크를 일시적 외부 변수로만 볼 수 없다. 지정학은 이제 재무제표의 바깥에 있는 문제가 아니다. 원가, 환율, 운송, 보험, 재고, 투자, 배당까지 모두 흔드는 변수다. 최고경영자는 매출 목표만이 아니라 지정학적 리스크 시나리오를 들여다봐야 한다. 에너지 가격이 배럴당 70달러일 때와 100달러일 때, 호르무즈 통항이 정상일 때와 부분 제한될 때, 환율이 100원 더 오를 때의 손익을 따져야 한다. 위기 대응은 전쟁이 난 뒤 만드는 문서가 아니라 평시에 쌓아두는 체력이다. 금융시장도 안도 랠리에 취해서는 안 된다. 전쟁 합의 이후 주가가 오르고 유가가 내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종종 정치적 이벤트에 먼저 환호하고 실물경제의 복구 속도를 뒤늦게 확인한다. 유가 하락이 물가 안정으로 이어질지, 물가 안정이 금리 인하로 이어질지, 금리 인하가 소비와 투자 회복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열린 질문이다. 지금의 시장 반등은 ‘평화 배당’이라기보다 ‘공포 할인 해소’에 가깝다. 여기서 고전의 지혜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손자병법은 “용병을 잘하는 자는 다시 징병하지 않고, 군량을 세 번 싣지 않는다”고 했다. 전쟁을 잘하는 장수는 싸움터에서만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보급의 비용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오늘의 경제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실력은 전쟁의 승패보다 전쟁 뒤 비용을 얼마나 줄이느냐에서 드러난다. 에너지, 물류, 금융, 물가, 환율의 보급선을 관리하지 못하면 평화의 이름 아래서도 경제는 계속 흔들린다. 이번 미국·이란 합의는 세계경제에 시간을 벌어줬다. 하지만 시간을 번 것과 문제를 해결한 것은 다르다.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린다고 해도 세계경제는 이미 에너지 안보의 취약성을 봤다. 국제유가가 내려간다고 해도 한국경제는 수입 에너지 의존 구조를 다시 확인했다. 증시가 오른다고 해도 기업과 가계가 체감하는 불확실성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는다. 정책당국은 이제 세 가지를 해야 한다. 첫째, 유가·환율·물류비의 변동이 물가와 산업별 비용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추적해야 한다. 둘째, 에너지와 원자재 공급망을 장기계약·비축·대체선 확보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셋째, 전쟁 이후 완화된 시장 분위기를 구조개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위기가 지나가면 개혁의 긴장도 함께 풀린다. 그러나 다음 위기는 늘 우리가 방심할 때 온다. 전쟁보다 무서운 것은 경제 불확실성이다. 전쟁은 언젠가 끝난다. 그러나 불확실성은 끝났다는 선언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숫자와 가격과 계약과 기대 속에 남아 서서히 비용을 청구한다. 지금 한국경제가 해야 할 일은 평화의 뉴스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남긴 경제의 균열을 차분히 메우는 일이다. 평화는 합의문으로 시작되지만 경제의 안정은 준비된 국가만이 얻을 수 있다.
2026-06-16 15: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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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유소단 촌유소장(尺有所短 寸有所長) — AI 시대, 사람 경영의 근본 원리
[경제일보] 중국 초나라의 시인 굴원이 남긴 「초사(楚辭)」의 한 구절 가운데 오늘날의 경영자들이 가장 깊이 새겨야 할 말이 있다. 바로 "척유소단 촌유소장(尺有所短 寸有所長)"이다. 자에도 짧은 바가 있고 촌에도 긴 바가 있다는 뜻이다. 얼핏 보면 평범한 격언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수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람 경영의 본질을 담고 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도 부족한 점이 있고, 아무리 평범해 보이는 사람도 자신만의 강점과 가치가 있다. 따라서 사람의 능력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우수한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어떤 자리에서 가장 큰 가치를 만들어내느냐는 점이다. 오늘날 세계 경영학의 거장 피터 드러커 역시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경영은 인간의 약점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강점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의 목적은 사람을 바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강점을 조직의 성과로 연결하는 데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훌륭한 기업들은 직원의 약점을 고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지 않는다. 대신 각자가 가진 강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반대로 실패하는 조직은 사람의 부족한 점만 바라본다. 부족함을 지적하고 고치라고 압박하지만 결국 조직 전체의 생산성은 높아지지 않는다.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이러한 원리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인공지능은 이미 계산과 분석, 문서 작성과 정보 검색의 상당 부분을 대신하고 있다. 앞으로는 단순 반복 업무의 상당수가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은 오히려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창의성, 공감 능력, 협업 능력, 리더십, 고객과의 신뢰 구축 같은 영역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따라서 기업은 모든 직원을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는 산업화 시대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각자의 강점을 발견하고 활용하는 방향으로 인사 철학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한국의 대기업들은 이 문제를 더욱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한국 기업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제조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동시에 급격한 세대교체라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과거 산업화 시대 인재들은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MZ세대는 다르다. 이들은 단순히 높은 연봉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인지, 자신의 강점이 인정받는 조직인지, 자신의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과거처럼 일률적인 평가와 통제 중심의 인사 시스템으로는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어렵다. 이제 기업의 경쟁력은 기술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인재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도 뛰어난 연구자가 떠나면 경쟁력을 잃는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 기업도 창의적인 인재를 확보하지 못하면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결국 AI 시대의 경쟁은 기술 경쟁인 동시에 사람 경쟁이다. 그리고 사람 경쟁의 핵심은 용인술(用人術)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위대한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용인의 대가였다.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자신이 모든 분야에서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장량에게는 전략을 맡기고, 한신에게는 군사를 맡기고, 소하에게는 행정을 맡겼다. 조선의 세종대왕 역시 장영실의 재능을 발견했고, 집현전 학자들의 역량을 끌어냈다. 그들은 사람을 평가하는 데 능했던 것이 아니라 사람을 쓰는 데 능했다. 그래서 성공할 수 있었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뛰어난 직원의 약점은 시스템으로 보완해야 한다. 창의적인 연구자가 문서 작성에 약하다면 이를 지원하는 체계를 만들면 된다. 뛰어난 영업사원이 숫자 분석에 약하다면 데이터를 지원하는 조직을 붙여주면 된다. 반대로 평범해 보이는 직원이라도 조직을 안정시키고 고객의 신뢰를 얻는 능력이 있다면 그 강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사람의 약점을 탓하는 조직은 쇠퇴하지만 사람의 강점을 발견하는 조직은 성장한다. 결국 척유소단 촌유소장이 말하는 경영의 본질은 분명하다. 사람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활용의 대상이다. 리더의 역할은 사람을 재단하는 데 있지 않고 사람을 꽃피우는 데 있다. AI 시대에도, MZ세대 시대에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어떤 미래에도 이 원칙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삼성전자도, SK하이닉스도, 현대자동차도,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도 결국 사람으로 성장하고 사람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기술은 따라잡을 수 있어도 사람을 키우는 문화는 쉽게 따라잡을 수 없다. 척유소단 촌유소장. 자에도 짧은 바가 있고 촌에도 긴 바가 있다. 이 짧은 경구는 수천 년 전 고전의 문장이지만 오늘날 AI 시대 대한민국 기업들이 다시 읽어야 할 사람 경영의 근본 원리다. 최고의 경영은 돈을 관리하는 능력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며, 최고의 리더십은 명령하는 능력이 아니라 각자의 강점을 발견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력이다. 결국 용병이사(用兵以師)의 지혜보다 더 높은 경영의 경지는 용인이사(用人以智), 곧 사람을 쓰는 지혜에 있다. 그리고 그것이 경전이 우리에게 남긴 영원한 경영의 가르침이다.
2026-06-10 08: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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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초과이익 배분, 갈등 아닌 '사회적 대타협'의 지혜 모을 때다
[경제일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산업의 역대급 초호황이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인공지능(AI) 혁명의 물결을 타고 기업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지만, 이 ‘달콤한 결실’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둘러싼 노·사·정과 시민사회의 시선은 첨예하게 엇갈린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려던 사회연대임금 긴급토론회마저 연기된 것은 이 문제가 단순한 노사 갈등을 넘어 한국 경제의 구조적 숙제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초과이익 환원을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는 명확하다. 오늘날 반도체 대기업이 거둔 천문학적 성과는 국가의 막대한 세제 혜택과 연구개발(R&D) 투자, 전력·용수 등 사회기반시설 지원이 밑바탕이 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수많은 협력업체와 노동자들의 헌신이 결합된 결과물인 만큼, 이익의 일부를 산업 생태계와 사회 전체로 환원해 원·하청 격차와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충분히 경청할 만하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의 우려 역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미국, 중국, 대만, 일본이 국가의 명운을 걸고 벌이는 총성 없는 전장이다. 수십조 원 단위의 선제적 투자가 멈추는 순간 도태되는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명확한 기준도 없이 정부가 기업의 이익 배분에 개입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칙을 흔들고 미래 투자 의욕을 꺾을 수 있다. 결국 이 문제는 '성장이냐 분배냐'라는 이분법적 이념 논리로 해결할 수 없다. 과거 대기업들이 내놓았던 수많은 상생기금이나 사회공헌 사업이 일회성 생색내기에 그치며 구조적 불평등을 가리는 '면죄부'로 전락했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기업의 선의나 정부의 강제적 개입 모두 답이 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사회적 대타협'이다. 원청과 협력업체, 노사와 정부, 시민사회가 모두 참여하는 공신력 있는 사회적 대화기구를 마련해야 한다. 이 자리에서 초과이익에 대한 합리적 기준을 정립하는 동시에,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 강화, 공정한 조세 체계 확립, 직업훈련 및 산업 전환 지원 등 노동시장의 체질을 바꾸는 구조적 해법을 함께 도출해야 한다. 초과이익은 기업의 미래 투자, 노동자의 정당한 보상, 그리고 사회적 책임이라는 세 가지 가치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은 공멸을 부를 뿐이다. 지금의 논쟁이 소모적 갈등으로 끝난다면 대한민국 경제의 핵심 축인 반도체 산업마저 흔들릴 수 있다. 이번 논의를 성장과 분배, 경쟁력과 상생이 공존하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지혜의 모멘텀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세계적 기술 패권 전쟁 속에서 대한민국이 지속 가능한 번영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2026-06-06 13: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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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초과이익 배분, 갈등 아닌 '사회적 대타협'의 지혜 모을 때다
[경제일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산업의 역대급 초호황이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인공지능(AI) 혁명의 물결을 타고 기업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지만, 이 ‘달콤한 결실’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둘러싼 노·사·정과 시민사회의 시선은 첨예하게 엇갈린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려던 사회연대임금 긴급토론회마저 연기된 것은 이 문제가 단순한 노사 갈등을 넘어 한국 경제의 구조적 숙제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초과이익 환원을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는 명확하다. 오늘날 반도체 대기업이 거둔 천문학적 성과는 국가의 막대한 세제 혜택과 연구개발(R&D) 투자, 전력·용수 등 사회기반시설 지원이 밑바탕이 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수많은 협력업체와 노동자들의 헌신이 결합된 결과물인 만큼, 이익의 일부를 산업 생태계와 사회 전체로 환원해 원·하청 격차와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충분히 경청할 만하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의 우려 역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미국, 중국, 대만, 일본이 국가의 명운을 걸고 벌이는 총성 없는 전장이다. 수십조 원 단위의 선제적 투자가 멈추는 순간 도태되는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명확한 기준도 없이 정부가 기업의 이익 배분에 개입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칙을 흔들고 미래 투자 의욕을 꺾을 수 있다. 결국 이 문제는 '성장이냐 분배냐'라는 이분법적 이념 논리로 해결할 수 없다. 과거 대기업들이 내놓았던 수많은 상생기금이나 사회공헌 사업이 일회성 생색내기에 그치며 구조적 불평등을 가리는 '면죄부'로 전락했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기업의 선의나 정부의 강제적 개입 모두 답이 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사회적 대타협'이다. 원청과 협력업체, 노사와 정부, 시민사회가 모두 참여하는 공신력 있는 사회적 대화기구를 마련해야 한다. 이 자리에서 초과이익에 대한 합리적 기준을 정립하는 동시에,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 강화, 공정한 조세 체계 확립, 직업훈련 및 산업 전환 지원 등 노동시장의 체질을 바꾸는 구조적 해법을 함께 도출해야 한다. 초과이익은 기업의 미래 투자, 노동자의 정당한 보상, 그리고 사회적 책임이라는 세 가지 가치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은 공멸을 부를 뿐이다. 지금의 논쟁이 소모적 갈등으로 끝난다면 대한민국 경제의 핵심 축인 반도체 산업마저 흔들릴 수 있다. 이번 논의를 성장과 분배, 경쟁력과 상생이 공존하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지혜의 모멘텀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세계적 기술 패권 전쟁 속에서 대한민국이 지속 가능한 번영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2026-06-05 07:5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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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보다 강한 것은 소통이다… 미·중, 갈등의 악순환 멈춰야
국제사회의 두 초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또다시 충돌하고 있다. 이번에는 관세도, 반도체도, 군사훈련도 아니다. 상대국 기자의 비자 취소와 체류 제한을 둘러싼 언론 갈등이 양국 관계의 새로운 불씨로 번지고 있다. 중국은 NYT가 대만을 국가로 표현한 점을 문제 삼았고 미국은 중국 기자 비자를 취소하며 맞대응하고 나섰다. 언뜻 보면 외교 현안 가운데 하나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통 창구마저 닫히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무역, 첨단기술, 공급망, 대만 문제, 남중국해 문제 등 수많은 현안을 놓고 경쟁과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여기에 언론인 비자 문제까지 정치적 보복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양국 관계는 더욱 경직될 수밖에 없다. 특히 기자는 정부를 대표하는 외교관이 아니라 사실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관찰자다. 언론인의 취재 활동을 제한하는 것은 상대국 정부를 압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은 자국 국민이 객관적인 정보를 접할 기회를 줄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국제사회는 오랫동안 소통을 통해 위기를 관리해 왔다.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도 핵전쟁 위험 속에서 직통전화를 설치하며 대화 채널만큼은 유지했다. 서로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을 때조차 대화의 문을 닫지 않았던 이유는 분명했다. 소통이 끊어지면 오해가 생기고, 오해는 충돌을 낳으며, 충돌은 결국 누구도 원하지 않는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양의 지혜 역시 같은 교훈을 전한다. 《도덕경》은 강함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 하기보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조화를 추구할 것을 강조한다. 상대를 억누르려는 힘의 논리는 일시적인 승리를 가져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큰 갈등과 반작용을 불러온다. 국가 간 관계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향해 문을 닫을수록 자신 역시 좁은 시야에 갇히게 된다. 오늘날 세계는 어느 때보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경제와 기술, 안보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경제와 국제 질서, 그리고 수많은 국가의 미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한국을 비롯한 중견국들은 미·중 갈등이 격화될 때마다 외교적·경제적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제재나 맞대응이 아니라 냉정한 절제와 대화다. 언론 문제를 외교적 보복 수단으로 활용하는 악순환부터 끊어야 한다. 기자의 펜은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창이다. 그 창을 스스로 깨뜨리는 것은 결국 양국 모두에게 손해다. 미국은 자유와 개방이라는 자신들의 가치가 실제 정책에서도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중국 역시 자신감을 가진 대국이라면 비판적 시각을 포용하는 성숙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진정한 강대국은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다른 목소리를 억누르기보다 관리하고 설득할 줄 안다. 미·중 관계는 앞으로도 경쟁과 협력을 반복할 것이다. 그러나 경쟁이 곧 적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언론과 소통의 영역까지 전쟁터로 만들어서는 더욱 안 된다. 지금 양국이 해야 할 일은 상대를 향해 닫힌 문을 여는 것이다. 갈등의 확대가 아니라 대화의 복원, 보복의 악순환이 아니라 상호 존중의 회복이야말로 세계가 기대하는 책임 있는 강대국의 모습이다. 펜을 꺾는다고 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통의 창구가 막힐수록 오해와 불신은 더욱 커진다. 미·중 양국이 한 걸음씩 물러서서 대화와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양국 국민은 물론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가장 현명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2026-06-03 13: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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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의 말 한마디에 춤추는 한국 경제의 빛과 그림자
국내 증시가 사상 유례없는 폭등세를 기록하며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엔비디아의 수장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의 방한 소식과 그가 던진 말 한마디에 코스피 전체가 요동치며 이른바 ‘9천피’ 고지를 눈앞에 두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대기업들의 시가총액은 천문학적인 숫자로 불어났고, 전 세계는 한국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망에 주목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기 속에서, 대한민국이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은 것은 분명 자부할 만한 성과다. 그러나 이 화려한 잔치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마음은 편치 않다. 글로벌 빅테크 권력자 한 명의 행보에 한 국가의 경제 체계 전체가 이토록 쉽게 흔들리는 현상은 결코 정상적이라 할 수 없다. 시장을 지배하는 ‘AI 포모(FOMO·소외 불안 증후군)’ 붐은 투자자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자원의 극단적인 편중을 낳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특정 인물과 산업에 명운을 건 한국 경제는 지금 안전한가. 동양 철학의 정수인 《도덕경(道德經)》 제9장에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나온다. “지니고 있으면서 그것을 더 채우려고 하는 것은 그만두는 것만 못하고, 두드려서 날카롭게 만들면 오래 보존할 수 없다(持而盈之, 不如其已. 揣而銳之, 不可長保).” 지금의 한국 경제는 반도체와 AI라는 하나의 칼날만을 극단적으로 날카롭게 벼리고 있는 형국이다. 날카로울수록 쉽게 부러지는 법이며, 가득 찬 잔은 작은 흔들림에도 넘치기 마련이다. 특정 분야의 성과에만 도취해 경제의 다원성과 기초체력을 소홀히 한다면, 그 풍요는 오래 보존될 수 없다. 우리가 처한 또 다른 현실은 국제 정치와 생존의 냉혹함이다. 인류의 오랜 전쟁 지혜를 담은 《인류교전(人類交戰)》의 전략적 원칙을 살펴보면, 승리는 결코 하나의 무기나 단일한 진형에만 의존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적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다각적인 방어선과 보급로를 확보하는 것이 생존의 기본이다. 군사학적 관점에서 볼 때, 현재 한국 경제는 ‘반도체’라는 단 하나의 요새에 모든 병력과 군량을 몰아넣은 것과 다름없다. 만약 글로벌 AI 거품이 꺼지거나 무역 대진동으로 인해 이 요새가 고립된다면, 전체 경제 전선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위험이 크다. 외교와 안보, 그리고 경제는 다변화된 포석을 가질 때 비로소 견고해진다. 상식과 도덕적 관점에서도 작금의 ‘쏠림 현상’은 우려스럽다. 주식 시장으로만 돈이 몰리고 특정 대기업만 비대해지는 현상은 중소기업과 내수 시장의 장기 침체라는 부작용을 심화시킨다. 진정한 국가 경제의 건강함은 낙수효과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다양한 산업 생태계가 골고루 숨 쉴 때 완성된다. 우리는 과거 특정 산업의 붕괴가 국가 전체를 흔들었던 수많은 역사적 경험을 기억해야 한다. 젠슨 황의 찬사에 환호하기 전에, 그가 언제든 다른 대안을 찾아 떠날 수 있는 냉혹한 비즈니스의 세계에 살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승리에 도취한 방심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위기를 감지하는 혜안이다. 성공의 정점에서 멈출 줄 알고, 균형을 잡는 것이 시대를 관통하는 최고의 생존 전략이다. 정부와 기업은 반도체 호황으로 벌어들인 결실을 미래지향적인 신산업 발굴과 기초 과학 육성, 그리고 내수 경제의 생태계 복원에 분산 투자해야 한다. 칼날을 너무 날카롭게 세우지 않고, 잔을 가득 채우려 욕심내지 않는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춤추는 화려한 순간일수록, 땅을 딛고 있는 우리 두 발의 균형 감각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
2026-06-02 10: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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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증의 덫과 침묵의 바다,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그러나 꽃은 향기로 사람을 모으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향기보다 적대와 혐오의 냄새가 더 짙다. 6·3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정책 경쟁보다 진영 결집에 몰두하고 있고, 유권자들은 서로 다른 현실 속에서 각자의 선거를 치르고 있다. 같은 나라, 같은 사건을 바라보면서도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모습은 마치 하나의 대한민국 안에 두 개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40년 가까이 정치 현장을 취재하며 수많은 선거를 지켜봤지만, 지금처럼 국민이 깊이 갈라지고 정치가 극단적 진영 논리에 포획된 시기는 드물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다양성 속의 공존인데, 오늘의 정치 현실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상대방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규정된다. 여당은 정의를 독점한 듯 행동하고, 야당은 저항의 명분을 독점한 듯 주장한다. 그 사이에서 국민은 편을 강요받는다. 이 같은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 심리의 본질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심리학은 오래전부터 인간이 객관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왔다.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 받아들이고, 자신의 생각을 강화하는 자료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이른바 '확증 편향'이다. 문제는 디지털 시대가 이런 인간의 약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와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용자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제공한다. 보수는 보수의 논리만 듣고, 진보는 진보의 주장만 접한다. 서로 다른 정보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국 같은 현실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그 결과는 위험하다.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문제가 발생해도 지지층은 쉽게 등을 돌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결집한다. 자신의 선택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순간 발생하는 심리적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서다. 언론 탓을 하고, 상대 진영을 공격하며, 음모론을 동원해 스스로를 설득한다. 정치적 판단이 이성의 영역에서 감정의 영역으로 이동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더욱 위협하는 것은 확증 편향보다도 '침묵의 나선' 현상이다. 정치권은 늘 여론을 말한다. 하지만 여론이란 과연 무엇인가. 광장의 함성인가, 유튜브 조회 수인가, 댓글 창의 전쟁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진짜 민심은 오히려 조용한 곳에 숨어 있다. 대부분의 시민은 정치에 과도하게 몰입하지 않는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시장에서 하루하루 삶을 꾸려간다. 정치적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관계가 깨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침묵한다. 특히 지금처럼 정치적 낙인과 조롱이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큰 목소리가 다수의 의견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침묵하는 다수가 존재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도 많은 선거 결과가 전문가들의 예측을 뒤집어 왔다. 이유는 단순하다. 조사에 응답하지 않은 사람들, 의견을 드러내지 않은 사람들, 정치적 소음을 외면한 사람들이 투표소에서 비로소 자신의 뜻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상대 진영이 아니다. 바로 자신들의 지지자들만 바라보는 착각이다.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국민 전체의 목소리로 오인하는 순간 정치는 현실 감각을 잃는다. 그리고 현실 감각을 잃은 정치는 반드시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된다. 인류의 고전은 이런 인간의 오만을 오래전부터 경고해 왔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듯하는 것이 가장 높은 경지"라고 했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겸손, 상대방에게도 일리가 있을 수 있다는 인정이야말로 공동체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덕목이라는 의미다. 성경 역시 "남의 눈의 티는 보면서 자신의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고 말한다. 불가에서도 자기 허물을 먼저 돌아보라고 가르친다. 동서양의 모든 지혜가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인간 사회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의 오만이라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승자독식의 게임이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시민들이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선거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당선된 순간부터는 지지자만이 아니라 반대했던 국민까지 품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정신이다. 이번 지방선거 역시 마찬가지다. 유권자들은 진영의 구호보다 후보의 자질과 정책을 살펴야 한다. 정치인들은 혐오와 선동 대신 설득과 통합을 말해야 한다. 언론 또한 클릭 수 경쟁을 넘어 공론장의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확증 편향의 감옥 속에서 서로를 향해 돌을 던질 것인가, 아니면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공존의 길을 찾을 것인가. 그동안 언론 현장에서 확인한 사실이 하나 있다. 권력은 언제나 자신이 민심을 안다고 믿는 순간부터 몰락하기 시작했다. 반대로 국민을 두려워하고, 스스로를 성찰한 정치만이 오래 살아남았다. 선거의 진정한 승자는 개표 결과로 결정되지 않는다. 선거 이후에도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정치가 존재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승리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승리의 환호가 아니라 성찰의 침묵이다. 그 침묵 속에서만 진짜 민심의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2026-05-31 13: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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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착시와 '그들만의 잔치'… 도덕경에서 찾는 경제 정의
[경제일보] 대한민국 경제가 거대한 착시(錯視)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반도체 ‘수퍼 사이클’ 덕에 올해 1분기 수출액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초과 세수가 70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진다. 외견상으로는 유례없는 풍요다. 그러나 이 화려한 지표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한국 경제의 허리는 무섭게 휘어지고 있다. 전체 수출 증가액의 80% 이상을 상위 5대 기업이 독식하는 ‘K자형 수출 양극화’가 심화하는 와중에, 철강·석유화학 등 전통 제조업은 중국의 공세에 밀려 활력을 잃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일시적 호황이 야기한 사회적 박탈감과 갈등이다. 최근 타결된 삼성전자 노사의 특별성과급 합의는 불평등에 신음하던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영업이익의 10% 안팎을 고정해 개인 성과와 무관하게 ‘일괄 지급’하는 방식은 글로벌 기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성인 남녀의 78%가 불공정한 사회구조에 분노하는 시점에서 터져 나온 이 고액 성과급 잔치는, 담장 밖 대다수 노동자와 청년들에게 깊은 허탈감과 소외감을 안겨주고 있다. 바야흐로 반도체가 가린 착시 속에서, 대한민국은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균열하고 있다. 『도덕경(道德經)』 제77장에는 천지도(天之道)와 인지도(人之도)를 대비하는 명언이 나온다. "하늘의 길은 남는 데서 덜어내어 부족한 데를 보태주지만, 사람의 길은 그렇지 아니하여 부족한 데서 취하여 남는 데를 더해준다(天之道 損有餘而補不足 人之道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 지금 대한민국 산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성과급 논란은 정확히 '인지도', 즉 있는 자에게 더 얹어주고 없는 자의 기회를 빼앗는 탐욕의 질서와 닮아있다. 삼성전자의 천문학적인 반도체 이익은 소속 근로자들의 땀방울만으로 일궈낸 것이 아니다. 수많은 중소 협력업체의 단가 희생, 국가적 차원의 인프라 지원, 그리고 온 국민이 감내한 세제 혜택이 융합된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초과 이익을 특정 대기업 노사가 독점적 배타적으로 배분하는 것은 사회적 상식과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 당장 기업 내부에서부터 모순이 폭발하고 있다. 비반도체 부문의 흑자 사업부는 성과급에서 배제된 반면, 정작 적자를 낸 반도체 사업부는 거액을 챙기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노노(勞勞) 갈등'이 법적 소송으로 비화하며 기업의 결속력을 해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경영계의 대응이다. 노란봉투법 등 노사 리스크가 커지고 임금 압박 이 거세지자, 기업들은 단순 생산직부터 석·박사 연구직까지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대체하는 경영계획을 서두르고 있다. 대기업의 성과급 잔치가 청년 세대의 일자리 씨를 말리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형국이다. 고용 유발 효과가 큰 전통 제조업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반도체 홀로 독주하는 구조는 고용 시장의 이중구조를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고착화할 것이다. 성경 구절에도 "지혜 있는 자는 들으라, 공의를 굽게 하는 자는 파멸에 이를 것"이라는 경고가 있다. 주주의 권익을 침해하고, 협력업체의 헌신을 외면한 채, 오직 힘을 가진 거대 노조의 요구에 밀려 퍼주기식 합의를 감행한 경영진 역시 '주주 충실 의무' 위반이라는 법적·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주주는 기업이 어려울 때 자본 손실의 위험을 고스란히 짊어진다. 위험은 주주와 사회가 나누고, 이익은 대기업 노동자만 선취하는 비대칭적 이익 배분 구조는 자본주의의 기본 규칙을 왜곡하는 행위다. 반도체 특수라는 환각에 취해 우리 사회가 미래를 위한 투자와 규제 개혁, 기존 주력 산업의 구조조정 타이밀을 놓친다면 그 대가는 가혹할 것이다. 반도체 호황이 가져온 착시 현상과 이익 배분을 둘러싼 갈등은 이제 막 시작된 대한민국 전체의 숙제다. 이번 수요일 국회에서 열리는 본지(경제일보)의 긴급간담회 ‘삼성반도체 문제, 이제 시작이다’ 역시 이러한 시대적 위기의식에서 출발했다.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특정 집단의 이익 독점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해악을 집중 해부해야 한다. 정부 역시 팔짱만 끼고 있어서는 안 된다. 당장 내년 예산안 수립 과정에서 올해 발생할 초과 세수를 철저히 추계하고, 이를 대기업 중심의 생태계를 넘어 양극화 완화와 신성장동력 확충, 그리고 무너지는 민생을 돌보는 데 어떻게 쓸지 구체적인 계획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유대인의 지혜서인 『탈무드』는 "승자가 되기 위해 타인을 패자로 만들지 말라"고 가르친다. 대기업 노사는 자신들의 풍요가 타인의 허탈감과 청년들의 기회 박탈 위에 서 있지 않은지 성찰해야 한다. 글로벌 기준과 국민적 상식에 부합하는 합리적 보상 원칙을 재정립하고, 독소적인 노동관계법을 손질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착시에서 깨어나 공존의 길을 모색할 때다.
2026-05-25 13:4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