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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착시와 '그들만의 잔치'… 도덕경에서 찾는 경제 정의
[경제일보] 대한민국 경제가 거대한 착시(錯視)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반도체 ‘수퍼 사이클’ 덕에 올해 1분기 수출액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초과 세수가 70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진다. 외견상으로는 유례없는 풍요다. 그러나 이 화려한 지표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한국 경제의 허리는 무섭게 휘어지고 있다. 전체 수출 증가액의 80% 이상을 상위 5대 기업이 독식하는 ‘K자형 수출 양극화’가 심화하는 와중에, 철강·석유화학 등 전통 제조업은 중국의 공세에 밀려 활력을 잃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일시적 호황이 야기한 사회적 박탈감과 갈등이다. 최근 타결된 삼성전자 노사의 특별성과급 합의는 불평등에 신음하던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영업이익의 10% 안팎을 고정해 개인 성과와 무관하게 ‘일괄 지급’하는 방식은 글로벌 기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성인 남녀의 78%가 불공정한 사회구조에 분노하는 시점에서 터져 나온 이 고액 성과급 잔치는, 담장 밖 대다수 노동자와 청년들에게 깊은 허탈감과 소외감을 안겨주고 있다. 바야흐로 반도체가 가린 착시 속에서, 대한민국은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균열하고 있다. 『도덕경(道德經)』 제77장에는 천지도(天之道)와 인지도(人之도)를 대비하는 명언이 나온다. "하늘의 길은 남는 데서 덜어내어 부족한 데를 보태주지만, 사람의 길은 그렇지 아니하여 부족한 데서 취하여 남는 데를 더해준다(天之道 損有餘而補不足 人之道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 지금 대한민국 산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성과급 논란은 정확히 '인지도', 즉 있는 자에게 더 얹어주고 없는 자의 기회를 빼앗는 탐욕의 질서와 닮아있다. 삼성전자의 천문학적인 반도체 이익은 소속 근로자들의 땀방울만으로 일궈낸 것이 아니다. 수많은 중소 협력업체의 단가 희생, 국가적 차원의 인프라 지원, 그리고 온 국민이 감내한 세제 혜택이 융합된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초과 이익을 특정 대기업 노사가 독점적 배타적으로 배분하는 것은 사회적 상식과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 당장 기업 내부에서부터 모순이 폭발하고 있다. 비반도체 부문의 흑자 사업부는 성과급에서 배제된 반면, 정작 적자를 낸 반도체 사업부는 거액을 챙기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노노(勞勞) 갈등'이 법적 소송으로 비화하며 기업의 결속력을 해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경영계의 대응이다. 노란봉투법 등 노사 리스크가 커지고 임금 압박 이 거세지자, 기업들은 단순 생산직부터 석·박사 연구직까지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대체하는 경영계획을 서두르고 있다. 대기업의 성과급 잔치가 청년 세대의 일자리 씨를 말리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형국이다. 고용 유발 효과가 큰 전통 제조업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반도체 홀로 독주하는 구조는 고용 시장의 이중구조를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고착화할 것이다. 성경 구절에도 "지혜 있는 자는 들으라, 공의를 굽게 하는 자는 파멸에 이를 것"이라는 경고가 있다. 주주의 권익을 침해하고, 협력업체의 헌신을 외면한 채, 오직 힘을 가진 거대 노조의 요구에 밀려 퍼주기식 합의를 감행한 경영진 역시 '주주 충실 의무' 위반이라는 법적·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주주는 기업이 어려울 때 자본 손실의 위험을 고스란히 짊어진다. 위험은 주주와 사회가 나누고, 이익은 대기업 노동자만 선취하는 비대칭적 이익 배분 구조는 자본주의의 기본 규칙을 왜곡하는 행위다. 반도체 특수라는 환각에 취해 우리 사회가 미래를 위한 투자와 규제 개혁, 기존 주력 산업의 구조조정 타이밀을 놓친다면 그 대가는 가혹할 것이다. 반도체 호황이 가져온 착시 현상과 이익 배분을 둘러싼 갈등은 이제 막 시작된 대한민국 전체의 숙제다. 이번 수요일 국회에서 열리는 본지(경제일보)의 긴급간담회 ‘삼성반도체 문제, 이제 시작이다’ 역시 이러한 시대적 위기의식에서 출발했다.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특정 집단의 이익 독점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해악을 집중 해부해야 한다. 정부 역시 팔짱만 끼고 있어서는 안 된다. 당장 내년 예산안 수립 과정에서 올해 발생할 초과 세수를 철저히 추계하고, 이를 대기업 중심의 생태계를 넘어 양극화 완화와 신성장동력 확충, 그리고 무너지는 민생을 돌보는 데 어떻게 쓸지 구체적인 계획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유대인의 지혜서인 『탈무드』는 "승자가 되기 위해 타인을 패자로 만들지 말라"고 가르친다. 대기업 노사는 자신들의 풍요가 타인의 허탈감과 청년들의 기회 박탈 위에 서 있지 않은지 성찰해야 한다. 글로벌 기준과 국민적 상식에 부합하는 합리적 보상 원칙을 재정립하고, 독소적인 노동관계법을 손질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착시에서 깨어나 공존의 길을 모색할 때다.
2026-05-25 13:4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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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은 파업 후 무엇을 잃었나
[경제일보] 노동은 신성하고, 연대는 자유로운 인간의 권리다. 자신의 땀방울에 합당한 몫을 요구하는 것은 시장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보편적 ‘정의(Justice)’에 부합한다. 노조가 정당한 보상과 투명한 기준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내는 행위는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자, 기업이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 치러야 할 민주적 과정이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이라는 거대한 그물망 속에서 단행되는 굵직한 파업은 결코 회사 내부의 좁은 울타리 안에 갇힌 고립된 섬으로 남지 않는다. 최근 삼성전자 노조의 총파업 예고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얄팍한 이분법에 갇혀 있다. 한쪽에서는 노조의 정당한 요구를 전적인 ‘탐욕’이나 ‘귀족 노조의 몽니’로 매도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파업이 초래할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그저 ‘사측의 뻔한 엄살’로 치부해 버린다. 이와 같은 두 가지 극단적 시각은 모두 ‘진리(Truth)’에서 빗겨나 있다. 진실은 그보다 훨씬 더 무겁고 복잡하다. 반도체라는 현대 문명의 쌀을 생산하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멈춰 설 때, 그 파장은 일개 기업의 노사 갈등을 넘어 생태계 전체에 잔혹한 청구서를 내민다. 자동차, 항공, 엔터테인먼트 등 최근 해외에서 벌어진 대형 파업의 궤적은 강한 노조일수록 자신들의 ‘자유(Freedom)’가 수반하는 막대한 비용에 대해 사회와 정직하게 대화해야 한다는 서늘한 경고를 던지고 있다. ◆ UAW·할리우드 파업이 남긴 공급망 붕괴의 경고 기계음이 멎은 공장은 적막하지만, 그 적막이 파생시키는 파음은 국경을 넘어 요동친다. 지난 2023년 미국 전미자동차노조(UAW)가 포드, GM, 스텔란티스 등 이른바 자동차 ‘빅3’를 상대로 벌인 ‘스탠드업 파업(Stand-up Strike)’은 현대 산업 생태계가 얼마나 촘촘하고도 연약하게 얽혀 있는지를 여실히 증명한 바 있다. 미국 AP통신과 로이터(Reuters) 통신이 인용한 경제컨설팅업체 ‘앤더슨이코노믹그룹’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파업 6주 차를 기준으로 발생한 직접적인 경제 손실만 무려 104억 달러(한화 약 14조원)를 넘어섰다. 더욱 뼈아픈 진실은 타격의 영점이 완성차 업체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데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심층 보도에 따르면, 파업 4주 차에 이미 리어, 마그나 등 주요 부품업체와 영세한 2·3차 협력사가 입은 임금·수익 손실만 약 26억7000만 달러에 달했다. 노조가 사측의 항복을 받아내는 동안 방파제 없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생계의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같은 해 발생한 미국 할리우드 작가 및 배우 노동조합(WGA·SAG-AFTRA)의 동반 파업 역시 궤를 같이한다. 인공지능(AI)의 무분별한 활용에 반대하고 정당한 보상 구조를 요구한 그들의 명분은 시대적 정의에 부합했다. 하지만 미국 CNN 방송과 영국의 가디언(The Guardian)이 전한 파업의 후폭풍은 참혹했다. 영화와 TV 제작이 전면 중단되면서 캘리포니아와 조지아 등 제작 중심 지역의 일일 촬영 스태프, 소규모 외주 제작사, 심지어 촬영장 인근의 식당과 세탁소 등 지역 상권이 떠안은 경제적 손실은 6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됐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밖의 평범한 이웃들이 파업의 가장 무거운 비용을 대신 치른 셈이다. 이들 사례들은 삼성전자에 매우 뚜렷한 시사점을 남긴다. 평택과 화성의 반도체 라인이 멈추면 단순히 삼성전자라는 거대 기업의 영업이익 감소로 끝나지 않는다. 수많은 장비·소재·부품 협력사는 물론이고, 삼성의 메모리에 의존하는 전 세계 AI 서버·데이터센터 공급망 전체가 짙은 불확실성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 보잉·루프트한자가 경험한 ‘신뢰 상실’의 청구서 파업의 가장 무서운 비용은 공장의 가동이 멈춘 물리적 시간이나 미지급 임금만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2024년 약 3만3000명이 참여한 미국 보잉(Boeing) 노조의 파업은 737 MAX, 777 등 핵심 상업용 제트기 생산을 완전히 중단시켰다. 7주간의 지난한 줄다리기 끝에 38% 임금 인상이라는 노조 측의 승리로 타결됐지만, 회사가 치른 대가는 혹독했다. 보잉은 전체 직원의 약 10%에 해당하는 1만7000명 감원이라는 뼈아픈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어야 했고, 3분기에만 50억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글로벌 항공사들에게 생명과도 같은 ‘납기 지연’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는 점이다. 보잉의 위기는 반도체 납기 신뢰가 핵심 경쟁력인 삼성전자와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다. 글로벌 B2B 시장에서 공급자가 한 번 신뢰를 잃으면, 고객은 다음 계약에서 단가보다 ‘안정성’을 최우선 가치로 따지게 된다. 이는 독일의 국적 항공사 루프트한자(Lufthansa) 사례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독일 제1공영방송 ARD와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2024년 연이은 노조 파업으로 루프트한자가 입은 누적 비용 2억5000만 유로 중 운항 취소 등으로 인한 직접 비용은 1억 유로에 불과했다. 나머지 1억5000만 유로는 파업의 불확실성을 피하기 위해 고객들이 선제적으로 경쟁 항공사로 예약을 돌리면서 발생한 ‘장부 밖의 손실’이었다. 반도체 시장의 큰손 고객들 역시 공급망 리스크가 감지되는 순간, 언제든 대만 TSMC나 미국 마이크론 등 경쟁사로 발길을 돌릴 수 있다. 한 번 떠난 고객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 ‘18일의 멈춤’보다 치명적인 ‘내일의 상실’ 삼성전자가 직면한 위험은 기우가 아니라 가시화된 현실이다. 삼성전자 노조는 기본급 7% 인상과 연간 영업이익의 15% 성과급 배정 등을 요구하며 평택 반도체 단지 생산량의 절반에 타격을 줄 수 있는 ‘18일간의 총파업’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신제윤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사내 메시지를 통해 “고객 이탈과 경쟁력 하락, 나아가 자본 유출과 세수 감소 등 국가 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을 우려한 것은 사측의 방어적 엄살로만 폄하할 수 없는 냉혹한 진리다. 노조가 경쟁사와의 보상 격차를 지적하고, 경영진의 불투명한 성과급 산정 기준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타당한 문제 제기다. 그들은 수만 명을 운집시킨 압도적 동원력을 통해 노동조합의 존재 가치를 충분히 증명했다. 다만, 수만명의 결속력이 곧바로 산업 생태계 전체를 뒤흔들 명분까지 무조건적으로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국가의 명운을 짊어진 핵심 전략 산업의 노조일수록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몫’과 함께 ‘우리가 라인을 멈췄을 때 이름 없는 협력사와 고객이 치러야 할 비용’을 조합원과 국민에게 정직하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글로벌 반도체 전장(戰場)에서 고객은 기다려주지 않고, 경쟁사는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삼성전자 노조가 진정 조합원들의 장기적 이익과 일자리의 안녕을 원한다면, 단기적인 보상 획득과 장기적 경쟁력 훼손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잠시 멈추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파업은 언젠가 타결의 순간을 맞이하고 라인은 다시 돌아가겠지만, 한 번 훼손된 고객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며 “글로벌 초일류 기업과 구성원들이 함께 치러야 할 가장 비싸고 고통스러운 청구서는 매출 손실이 아니라 영영 사라져 버릴지 모르는 고객의 신뢰”라고 했다. 이어 “사측과 노조 모두가 공멸의 청구서를 찢어버릴 상생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2026-05-08 16: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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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틱스 흡수한 AVP…현대차, '차량·로봇' 시너지 시험대
[경제일보] 현대자동차그룹 로보틱스랩이 첨단차플랫폼 본부 산하로 이관되면서 차량·로봇 통합을 통한 기술 시너지 확보에 나섰다. 자율주행과 인공지능 중심 조직으로 재편되며 개발 효율과 데이터 활용 확대가 기대되는 가운데, 이러한 변화가 실제 사업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그룹은 로보틱스랩을 기존 연구개발 본부에서 첨단차플랫폼 본부 산하로 이관할 예정이다. 첨단차플랫폼 본부는 자율주행과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 개발을 담당하는 조직이다. 이번 이관으로 로보틱스 기술이 차량 플랫폼 개발 체계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로보틱스랩은 그동안 서비스 로봇과 물류 자동화 중심으로 운영됐다. 조직 이관 이후에는 센서 인식, 경로 계획, 제어 알고리즘 등 자율주행 기술과 공통 기반을 중심으로 개발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차량과 로봇이 동일한 인공지능 모델과 소프트웨어 구조를 활용하는 형태로 개발 체계가 정리되는 흐름이다. 기술 통합이 본격화될 경우 연구개발 효율성 개선이 예상된다. 로보틱스와 자율주행은 핵심 기술 영역이 겹치는 만큼 개별 조직으로 운영될 때 중복 투자와 개발 지연 가능성이 있다. 하나의 조직에서 공통 기술을 통합 개발할 경우 데이터 축적과 알고리즘 고도화에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리더십 구조도 변경된다. 첨단차플랫폼 본부장인 박민우 사장이 로보틱스랩장을 겸임한다. 박 사장은 엔비디아와 테슬라에서 자율주행과 인공지능 개발을 담당한 이력이 있다. 이에 따라 로보틱스 개발에서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기반 접근 방식이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대차는 통합 전략 실행을 위해 제조 영역에서도 인력 확보에 나섰다. 다음 달 1일부터 17일까지 제조 소프트웨어 및 인공지능 분야 경력직 채용을 진행하며, 모집 분야는 소프트웨어 정의 공장, 제조 인공지능, 제조 로보틱스, 제조 물류 지능화 등이다. 생산 공정과 물류 운영에 데이터 기반 제어 체계를 적용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차량과 로봇 통합 구조는 물류와 생산 영역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목적기반차와 물류 로봇, 스마트팩토리 자동화 기술을 연계할 경우 차량과 로봇이 동일한 운영 체계에서 작동하는 환경이 구축될 수 있다. 운송과 생산, 서비스 영역을 연결하는 통합 운영 구조 형성이 검토된다. 다만 기술 통합이 곧바로 사업 성과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로보틱스 사업은 아직 수익 구조가 제한적인 상태이며 연구개발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자율주행과 인공지능 개발 역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영역으로, 동시에 추진될 경우 비용 부담이 확대될 수 있다. 조직 운영 측면에서도 변수는 남아 있다. 첨단차플랫폼 본부는 자율주행과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 인공지능 개발을 동시에 담당하고 있어 프로젝트 간 우선순위 조정이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로보틱스 영역이 핵심 축으로 자리 잡지 못할 경우 자원 배분에서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로보틱스를 자율주행 조직 안으로 넣은 것은 단순 조직 이동이 아니라 기술 적용 범위를 넓히겠다는 신호"라며 "동일한 기술을 여러 산업에 적용할 수 있어 개발 효율과 사업 확장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2026-04-30 17: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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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판에 매물로 나온 공공기관, '정의(正義)'는 어디에 있는가
[경제일보]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산하가 다시금 ‘이전 공약’의 현수막으로 뒤덮이고 있다. 수도권 공공기관을 자기 지역으로 가져오겠다는 여야 후보들의 외침은 사자후(獅子吼)를 넘어 비이성적인 광기마저 느껴진다. 하반기 예정된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이전 로드맵’을 앞두고, 유권자의 표심을 낚기 위해 기관의 존립 근거와 효율성은 안중에도 없는 ‘묻지 마 유치’가 횡행하고 있다. 필자의 눈에 비친 작금의 풍경은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가 아니라, 국가의 근간을 떼어 파는 ‘표 도둑들의 장터’와 다를 바 없다. 공자의 가르침을 담은 『논어(論語)』 「안연 편」에는 정치의 근본을 묻는 제자 자공에게 공자가 답한 유명한 구절이 있다. 바로 ‘족식(足食), 족병(足兵), 민신(民信)’이다. 경제를 풍요롭게 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되,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의 신뢰라는 뜻이다. 공자는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民無信不立)고 단언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치권이 보여주는 공공기관 이전 공약은 ‘민신’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민심’을 기만하여 사익(표)을 취하려는 술책에 가깝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건의한 40여 개의 기관 명단과,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의 광주 이전 법안 발의는 그 정점이다. 예술 교육의 특수성과 인프라, 강사진의 접근성을 완전히 무시한 채 오직 ‘지역구 챙기기’식 법안을 던져놓고 보는 행태는 전문 예술인 양성이라는 국가적 백년대계를 흔드는 처사다. 학생들과 교수진이 거리로 나와 반대 성명을 내는 것은 집단 이기주의가 아니라, 본질을 잃어버린 정치에 대한 처절한 저항이다. 대구의 상황은 더 점입가경이다. 기업은행 본점 유치를 넘어 이제는 국가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까지 대구로 옮기겠다고 한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일부 의원이 발의한 대법원 이전 법안은 사법 서비스의 접근성이나 법치주의의 상징성보다는 오로지 ‘지역 민심 달래기용’ 매물로 전락했다. 『맹자(孟子)』는 “어질지 못한 자가 높은 지위에 있으면, 그 악을 대중에게 퍼뜨리게 된다(不仁者在高位 是播其惡於衆也)”고 경고했다. 국가 기구의 효율적 배치는 고도의 통치 행위이자 전문적인 행정의 영역이다. 이를 선거철의 단기 수익 모델로 삼는 것은 정치의 ‘불인(不仁)’함이 대중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재명 대통령은 일찌감치 2차 공공기관 이전을 ‘국가 생존의 문제’로 규정하며 효율적인 배치를 강조해 왔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1차 이전이 ‘뿌리기식 분산’으로 인해 지역 성장 거점을 만드는 데 한계를 보였다는 뼈저린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공기관은 지역에 떨어지는 ‘떡고물’이 아니다. 관련 산업과의 시너지를 내어 국가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전략적 요충지가 되어야 한다. 서양의 고전인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통치자의 덕목으로 ‘지혜’와 ‘절제’를 꼽았다. 자신의 욕망(재선과 당선)을 절제하지 못하고 국가의 자원을 사적으로 유용하려 드는 후보자는 이미 통치자의 자격이 없다. 특히 최근에는 공공기관을 넘어 민간 기업까지 이전시키겠다는 공약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는 자유시장 경제의 기본 원칙마저 망각한 오만한 발상이다. 기업이 어디에 둥지를 틀지는 시장의 논리와 인프라가 결정할 문제지, 정치인의 펜 끝이 결정할 일이 아니다. 정부는 현재 추진 중인 행정통합특별법이 특정 지역에만 혜택이 집중되지 않도록 형평성을 기해야 한다. 전남·광주뿐만 아니라 대구·경북, 충남·대전의 통합 논의에도 속도를 내어 균형 잡힌 국토 발전의 틀을 짜야 한다. 정치권은 당장의 표를 위해 국가의 미래를 가불(假拂)해 쓰는 행태를 즉각 중단하라. 유권자들 역시 깨어있어야 한다. 감언이설로 무장한 공약이 우리 지역에 당장 이익이 될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준비 없는 이전이 가져올 행정 비용의 낭비와 비효율은 결국 우리 자녀 세대가 짊어져야 할 부채다. 『도덕경』에 이르기를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治大國若烹小鮮)”고 했다. 너무 자주 뒤집고 휘저으면 생선살은 으깨지고 만다. 국가 기관의 배치는 신중하고도 일관된 원칙 아래 진행되어야 한다. 유권자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공공기관 이전을 ‘로또 당첨권’처럼 휘두르는 후보들을 엄격히 심판해야 한다. 정치적 포퓰리즘이라는 독배(毒杯)를 마시고 국가의 미래를 망치는 우(愚)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갈구하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모습이다.
2026-04-30 16: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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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국익은 놓쳐서도 안 된다.
[경제일보] 국가의 품격은 이 두 축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최근 방시혁 HYBE 의장을 둘러싼 자본시장법 위반 의혹은 바로 그 시험대 위에 대한민국을 올려놓고 있다. 검찰은 방 의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반려하고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이는 무죄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구속이라는 강제처분을 정당화할 만큼 범죄 소명과 필요성이 현 단계에서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형사사법의 기본은 불구속 수사다. 특히 경제범죄는 대부분 문서와 계약, 회계자료와 내부 보고 체계 속에 흔적이 남는다. 도주 우려나 명백한 증거인멸 가능성이 없다면 구속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원칙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의혹의 핵심은 상장 이전 기존 주주들에게 기업공개 계획이 없다고 설명하고 특정 사모펀드에 지분을 넘기게 한 뒤, 이후 상장을 통해 거액의 차익을 실현했느냐는 점이다. 사실이라면 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자본시장은 신뢰로 움직인다. 공시와 계약,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이 무너지면 시장은 도박판으로 전락한다. 명성과 성공이 법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누구도 법 위에 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 사건을 단순한 한 기업인의 사법 리스크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방시혁이라는 이름은 개인을 넘어 BTS 라는 세계적 문화 자산의 설계자라는 상징성을 가진다. BTS는 더 이상 하나의 아이돌 그룹이 아니다. 그들은 대한민국 문화 주권의 살아 있는 증거이며, K-팝을 넘어 K-드라마, K-시네마, K-푸드, K-뷰티, K-방산까지 이어지는 K시리즈의 심장부다. 2026년은 특별한 해다. 군 복무를 마친 멤버들이 완전체로 복귀하며 세계는 다시 BTS를 기다리고 있다. 팬덤 아미는 단순한 팬클럽이 아니라 국경을 초월한 거대한 문화 공동체다. 서울의 공연장은 물론이고 멕시코, 미국, 베트남, 유럽, 중동까지 공연 유치 경쟁은 이미 외교의 영역이 됐다. 공연 한 번이 관광과 항공, 호텔, 유통, 화장품, 패션, 플랫폼 산업 전체를 흔든다. 이는 단순한 콘서트가 아니라 국가 경제 이벤트다. 실제로 오늘의 외교는 더 이상 조약과 무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정상회담의 테이블 위에는 반도체와 방산만이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 음악과 음식이 함께 올라가야 한다. 산업은 이해관계를 만들고 문화는 우호를 만든다. 이해관계는 바뀌지만 우호는 오래 남는다. 세계의 많은 정상들이 BTS를 알고,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영화를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미·중 전략경쟁, 공급망 재편, 중동 불안, 고유가와 환율 압박 속에서 한국 경제는 새로운 성장 서사를 요구받고 있다. 제조업만으로는 부족하고, 문화만으로도 부족하다. 기술과 감성, 산업과 서사가 함께 가야 한다. 그 접점에 BTS와 K시리즈가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은 공장만이 아니라 감동을 생산하는 능력에도 달려 있다. 그렇다고 국익을 이유로 법 집행을 멈추자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더 위험하다. 법을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순간 국익도 무너진다. 진짜 국익은 정의 위에 세워질 때만 지속 가능하다. 그러나 반대로 국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법 집행 역시 현명하지 않다. 국가는 처벌 기계가 아니다. 법의 목적은 공동체의 안정과 지속 가능성에 있다. 공자는 군자에게 의를 먼저 보라고 했고, 주역은 후덕재물(厚德載物)이라 했다.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싣는다는 뜻이다. 지도자의 길도, 국가의 길도 마찬가지다. 법을 세우되 나라를 살피고, 원칙을 지키되 미래를 보아야 한다. 보여주기식 강경함은 정의가 아니다. 냉정한 법리와 성숙한 국가 판단이 진짜 정의다. 지금 대한민국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방시혁 개인의 유무죄를 넘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국가의 자산을 지키고 어떤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BTS 완전체의 귀환은 단순한 컴백이 아니다. 그것은 K-시리즈 전체가 다시 세계 중심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법정에서 죄는 끝까지 다투어야 한다. 그러나 구속이 반드시 정의는 아니다. 법의 엄정함과 국가 전략은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라 조화되어야 할 가치다. 감정보다 원칙을, 원칙 속에서도 국익을 함께 보는 것.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진정한 법치이며, 성숙한 국가 운영이다.
2026-04-26 09:4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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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훈 현대차 부회장 "중국 다시 재기할 것…아이오닉 브랜드 강화"
[경제일보] 현대자동차가 중국 시장 판매 회복을 목표로 전기차 중심 재공략에 나섰다. 아이오닉 브랜드를 앞세워 신차 투입과 현지화 전략을 동시에 추진하며 5년 내 연간 50만대 판매 체제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장재훈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은 24일 오토차이나 2026 현장에서 열린 보도 발표회에서 “중국은 가장 어려운 시장이지만 다시 재기해 성과를 만들어내겠다”고 밝혔다. 장 부회장은 “중국은 많이 배우고 많이 얻어야 할 시장”이라며 “기술적으로 전동화, 스마트화는 이미 (세계적으로) 보편화됐는데 그 안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기술적 포인트를 살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오닉 브랜드를 중국에 어떻게 전개할지, 또 어떻게 달라질지에 집중하겠다”고 덧붙였다. 현대차는 이번 모터쇼에서 중국 사업 구조를 내연기관 중심에서 친환경차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동시에 아이오닉 V를 처음 선보이며 전기차 라인업 확대의 출발점을 제시했다. 회사는 향후 5년간 20종 이상의 신차를 출시하고 연간 판매를 50만대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날 장 부회장은 쩡위친 CATL 회장, 장젠용 베이징자동차 동사장과 만나 배터리 및 완성차 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현지 공급망과 파트너십 확대가 향후 사업 전략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발표 연사로 나선 호세 무뇨스 사장은 중국 시장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중국은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 분야에서 가장 앞선 생태계를 갖춘 시장”이라며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뇨스 사장은 향후 전략을 현지 생산 확대, 신에너지차 개발, 딜러 네트워크 강화, 공급망 현지화, 생산 구조 최적화 등 다섯 가지 축으로 제시했다.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 현지 완결형 체계로 전환하겠다는 의미다. 제품 계획도 단계별로 제시됐다. 2027년까지 인공지능 기반 기능과 레벨 2++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600km 수준 주행거리를 갖춘 소형 및 중형 SUV를 추가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이후에는 풀사이즈 SUV와 레벨3 자율주행 MPV, 차세대 차량 지능 시스템을 적용한 모델, 원가 경쟁력을 반영한 대형 세단 등을 순차적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자율주행 전략과 관련해 박민우 현대차·기아 첨단차플랫폼(AVP) 본부장은 “중국 출시 모델에 일부 현지 기술이 적용됐지만 최종 목표는 기술 내재화”라고 설명했다.
2026-04-24 17:5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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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종전협상 앞둔 이란전쟁의 손익계산서...미국이 이익일까, 중국이 이익일까
[경제일보] 중동의 전쟁은 언제나 포성과 화염만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진짜 결산서는 항로에서 작성되고 유조선의 속도와 보험료 그리고 각국의 환율과 금리 속에서 완성된다. 지금 미국과 이란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2차 종전협상을 앞두고 벌이는 힘겨루기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핵 문제와 휴전, 해상봉쇄를 둘러싼 충돌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훨씬 냉정한 계산이 진행되고 있다. 누가 더 오래 버티는가, 누가 더 적은 비용으로 더 큰 전략적 이익을 확보하는가 그리고 전쟁을 끝내더라도 누가 패자로 보이지 않을 수 있는가. 지금의 미·이란 대치는 바로 그 계산서의 마지막 줄을 적어 내려가는 과정이다. 무엇보다 이번 국면은 ‘전쟁 이후 협상’이 아니라 ‘협상을 위한 전쟁의 연장’이라는 점에서 위험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이란 화물선을 저지하고 나포했다는 사실을 공개하며 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동시에 합의에 응하지 않을 경우 발전소와 교량 등 핵심 인프라를 타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란은 이를 곧바로 적대행위로 규정하며 반발했다. 협상장 문은 열려 있으나 그 문 앞에는 이미 군함과 함포가 배치된 상황이다. 외교는 군사력을 배경으로 움직이고 군사행동은 다시 외교의 명분으로 활용된다. 이 구조 속에서는 단 한 번의 충돌도 협상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 ◆ 1차 협상의 허와 실—신뢰의 간극과 좁혀지는 쟁점 1차 협상은 표면적으로는 진전을 보인 듯했지만 본질적으로는 각자의 승리 선언을 전제로 한 ‘평행선 협상’이었다. 미국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사실상 장기간 봉쇄하고 농축 능력을 제거하며 해상 교통로를 완전히 개방하는 질서를 원했다. 반면 이란은 체제 안전 보장과 제재 완화, 그리고 제한적 핵 주권을 인정받는 수준에서 타협점을 찾으려 했다. 미국은 “핵을 포기하라”고 요구했고 이란은 “봉쇄부터 풀라”고 맞섰다. 이 간극은 단순한 조건 차이가 아니라 체제 논리의 충돌이었다. 그러나 1차 협상이 전부 실패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협상의 실질적 구조는 이때 드러났다. 핵심은 세 가지였다. 우라늄 농축을 전면 중단할 것인지 제한적으로 허용할 것인지, 기존 핵물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그리고 제재 완화를 어느 시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제공할 것인지였다. 이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양측은 서로의 ‘레드라인’을 확인했다. 이는 협상이 진전되지 못했다기보다 본격적인 거래의 조건이 비로소 명확해졌음을 의미한다. 양측의 입장차는 여전히 크다. 미국은 해상봉쇄를 협상의 지렛대로 유지하려 한다. 봉쇄를 풀지 않고도 협상을 이어가며 압박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반면 이란은 봉쇄 상태에서 협상에 응하는 것은 사실상 굴복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따라서 봉쇄 해제는 협상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선 압박’과 ‘선 완화’가 충돌하는 구조에서는 협상 자체가 신뢰의 시험장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쟁점은 조금씩 좁혀지고 있다. 전면 핵 포기와 현상 유지 사이에서 일정 기간 농축 제한과 검증 체계 구축, 단계적 제재 완화라는 중간 해법이 부상하고 있다. 해상 문제에서도 전면 봉쇄와 완전 개방 사이에서 강도 조절이나 조건부 완화 같은 절충안이 논의될 여지가 있다. 문제는 이 모든 조정이 외교적 설득이 아니라 군사적 압박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압박으로 좁혀진 간극은 언제든 다시 폭발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반응은 이중적이다. 이란 핵 능력이 실질적으로 제한된다면 긍정적이다. 그러나 불완전한 합의로 이란의 군사적 잠재력이 유지된다면 그것은 미래의 더 큰 위협이 된다. 이스라엘은 합의 자체보다 합의의 질을 본다. 따라서 서둘러 만든 타협보다는 확실한 억제 구조를 요구한다. 이 점에서 이스라엘은 협상의 ‘숨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이란과 이스라엘의 손익계산서 이제 보다 냉정한 계산으로 들어가야 한다. 미국은 분명 단기적 전략 이익을 확보하고 있다. 중동 해상 질서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재확인했고, 동맹국들에게 안보 보증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동시에 협상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군사적 지렛대를 확보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외교적 성과와 강경 리더십 이미지를 동시에 구축할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비용 역시 분명하다. 중동의 긴장은 곧바로 에너지 가격과 금융시장으로 전이된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와 가스는 세계 경제의 핵심 동맥이다. 이곳이 흔들리면 글로벌 물가와 산업 전반이 충격을 받는다. 미국은 군사적으로 우세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한 경제적 파장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 중국의 계산은 더욱 복합적이다. 미국이 중동에 집중하는 동안 전략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이익이 있다. 그러나 중국은 동시에 중동 에너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특히 이란산 원유는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중요한 자원이다. 해협이 불안정해지면 중국은 에너지 비용 상승과 공급 불안을 동시에 겪게 된다. 지정학적 이익과 경제적 손실이 충돌하는 구조다. 결국 미국과 중국 모두 완전한 승자가 되기 어렵다. 미국은 ‘지배의 이익’을 얻지만 ‘충격의 비용’을 부담하고, 중국은 ‘전략적 여유’를 얻을 수 있으나 ‘에너지 리스크’를 떠안는다. 이 전쟁은 누가 이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덜 잃느냐의 문제에 가깝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계산은 더욱 직접적이다. 이란은 체제 생존과 핵 주권을 지키려 하고, 이스라엘은 그 핵 능력을 구조적으로 억제하려 한다. 이란은 봉쇄와 제재로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으며, 이스라엘은 불완전한 합의가 가져올 안보 리스크를 우려한다. 양측 모두 평화를 말하지만, 상대가 유지되는 평화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 2차 협상 앞둔 힘겨루기와 전망 이제 시선은 이슬라마바드 2차 협상으로 집중된다. 협상은 열릴 가능성이 높지만, 결과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포괄적 최종 합의보다는 ‘관리 가능한 긴장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휴전 연장, 제한적 봉쇄 조정, 핵 프로그램의 일정 기간 동결과 검증 체계 구축, 그리고 단계적 제재 완화가 교환되는 형태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다. 군사적 압박이 협상의 속도를 높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협상 자체를 붕괴시킬 위험도 크다. 단 한 번의 오판이 전체 판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협상의 본질은 명확하다. 누가 더 많이 얻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나쁘지 않은 조건에서 멈출 수 있느냐의 문제다. 전쟁은 극단으로 치닫지만, 평화는 언제나 불완전한 균형 위에서만 성립한다. 지금 중동은 총과 문서가 같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책상 위에서 쓰이는 한 줄의 문장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세계 경제의 흐름까지 바꿀 수 있다. 완전한 승자는 없다. 다만 더 큰 패배를 피한 쪽이 승자처럼 보일 뿐이다.
2026-04-20 09: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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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대비되는 중국의 이란전쟁 스탠스 : 한국이 배워야 할 질문은
[경제일보] 이란 전쟁 국면에서 미국과 중국이 보인 태도는 단순한 외교 기법의 차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패권국가의 행동 방식과 문명국가를 자처하는 실용국가의 행동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를 드러낸 장면이었다. 미국은 힘으로 질서를 재편하려 했고, 중국은 말로 판을 관리하려 했다. 미국은 군사력과 제재, 압박과 데드라인의 언어를 앞세웠고, 중국은 휴전과 대화, 항행 안전과 지역 안정의 언어를 반복했다. 최근 중국 외교부는 “관련 당사국들이 평화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밝혔고, 왕이 외교부장이 이란·이스라엘·러시아·걸프 국가들과 26차례 통화를 했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스스로를 전쟁 당사자가 아니라 중재자, 더 정확히 말하면 불길을 더 키우지 않는 관리자처럼 연출하고 있다. 중국의 이런 태도는 도덕적 순수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냉정한 국익 계산의 산물이다. 중국은 이란산 원유의 중요한 수요자이고,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은 곧바로 중국 경제의 에너지 비용과 물류 안정성, 수출 제조업의 채산성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중국은 미국처럼 상대를 끝까지 몰아붙여 체제 변화를 노리기보다, 전쟁을 통제 가능한 수준에서 멈추고 질서를 복원하는 데 더 큰 이해관계를 가진다. 최근 보도들을 보면 중국은 휴전 국면에서 뒤에서 외교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동시에 호르무즈 항행 재개와 에너지 공급 안정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러시아와 함께 호르무즈 재개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도, 미국 주도의 군사적 해법에 제동을 걸고 자신이 선호하는 협상 틀을 지키려는 계산으로 읽힌다. 반면 미국의 방식은 훨씬 직선적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질서를 힘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문제는 그 힘의 과시가 언제나 질서의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번에도 강한 압박과 폭격, 초강경 발언은 단기 충격은 주었을지 몰라도, 중동 전체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유가와 해상 운송비, 금융시장 변동성을 키우는 부작용을 낳았다. 중국은 바로 그 틈을 파고들었다. 스스로 총을 쏘지 않으면서도 평화를 말하고, 실제 보증 부담은 지지 않으면서도 외교적 점수를 챙기는 방식이다. 서방 일각에서 “중국이 이번 국면의 조용한 승자”라는 평가가 나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한국이 중국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친중적 자세가 아니다. 더 본질적인 질문이다. 왜 중국은 전쟁을 곧바로 국익의 언어로 번역하는데, 우리는 자주 진영의 언어부터 앞세우는가. 왜 중국은 도덕과 명분을 말하면서도 에너지, 해운, 결제, 항만, 보험을 한 묶음으로 계산하는데, 우리는 외교는 외교대로, 경제는 경제대로, 안보는 안보대로 따로 보는가.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지만 동시에 에너지 수입국이며 무역국가다. 이런 나라가 중동 전쟁을 볼 때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누가 더 선한가”가 아니라 “우리의 원유선과 가스선, 물가와 환율, 무역금융과 선박 안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여야 한다. 중국의 스탠스가 우리에게 주는 진짜 교훈은 여기에 있다. 첫째, 강대국일수록 원칙보다 국익의 번역 능력이 빠르다는 점이다. 둘째, 전쟁의 승패보다 전후 질서의 설계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셋째, 말의 수위보다 공급망의 안전이 국가를 지킨다는 점이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기둥으로 삼되, 중국처럼 냉정하게 에너지 안보와 항행 자유, 해상보험과 결제 안전망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중동의 불길 앞에서 감정으로 흔들리는 나라는 비용을 치르고, 구조로 준비한 나라는 충격을 줄인다. 결국 이번 이란 전쟁에서 미국은 힘의 한계를, 중국은 실용의 집요함을 보여 주었다. 한국이 배워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미국처럼 강할 수 없다면, 중국처럼 계산할 수는 있는가. 바로 그 질문이 지금 우리의 외교와 경제안보가 함께 답해야 할 과제다.
2026-04-10 1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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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가 말하는 전쟁의 본질...군사가 아니라 경제를 겨누는 시대
전쟁은 언제나 총성과 함께 시작되지만, 그 승패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결정된다.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미사일과 전투기의 굉음은 전쟁의 표면일 뿐이며, 그 이면에서는 숫자와 흐름, 자원과 시장이 더 큰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번 이란 전쟁이 바로 그러하다. 겉으로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 충돌처럼 보이지만, 그 내막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전쟁의 무대는 이미 군사에서 경제로 이동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실재를 지배한다”고 말했고, 손자는 병법에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 했다. 이 두 문장은 오늘의 전쟁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언어다. 최근 국제 데이터 분석은 이 전쟁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글로벌 이벤트 데이터 분석 결과, 이스라엘의 공격 강도는 개전 직후 급격히 상승하며 압도적인 수준에 도달했고, 이후에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군사적 주도권이 분명히 이스라엘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반면 이란은 전혀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 직접적인 군사 충돌의 강도를 상대적으로 낮추면서, 전장의 중심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있다. 그것이 바로 경제다. 이란의 전략은 단순하면서도 치명적이다. 걸프 지역의 에너지 시설을 겨냥하고, 해수 담수화 시설을 위협하며,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려는 시도를 반복한다. 나아가 제3국 선박까지 공격하며 전선을 확대한다. 이는 군사적 승리를 목표로 하는 전쟁이 아니다. 세계 경제를 인질로 삼아 상대의 의지를 꺾으려는 전략이다. 손자병법은 “적의 싸울 뜻을 꺾는 것이 최상”이라 했다. 이란은 바로 그 길을 택한 것이다. 전장에서 이길 수 없다면, 전장의 정의 자체를 바꾸는 것이 전략의 본질이다. 이 전쟁이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다. 이곳이 흔들리면 유가는 즉각 반응하고,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며, 금리가 흔들리고, 결국 세계 경제 전체가 충격을 받는다. 이는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라 글로벌 시스템 전체를 겨냥한 공격이다. 전쟁의 대상이 군대에서 시장으로 확장된 것이다. 노자가 말한 “큰 나라는 흐름을 장악하는 데 있다”는 구절처럼, 이란은 힘이 아니라 흐름을 흔드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미국과 이스라엘 역시 단순한 군사 대응에 머물 수 없다. 전쟁을 확대하면 경제 충격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번질 수 있고, 축소하면 억지력이 약화된다. 결국 양측은 ‘통제된 긴장’이라는 미묘한 균형 위에 서게 된다. 이른바 치킨게임이다. 누구도 먼저 물러설 수 없지만, 끝까지 가면 모두가 손해를 보는 구조다. 손자병법은 “싸움은 국가의 중대한 일이며, 생사의 문제이니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의 전쟁은 신중함과 위험이 동시에 공존하는, 그야말로 위험한 균형 위에 놓여 있다. 데이터 분석은 이 전쟁이 일정 시점에서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도 시사한다. 이란은 자금과 자원의 한계를 안고 있으며, 국제사회는 에너지 공급망의 안정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미국 역시 전면전이 아닌 관리 가능한 수준의 충돌을 유지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곧 전쟁의 종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갈등은 형태를 바꾸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군사 충돌이 줄어든다 해도 경제적 긴장은 계속될 것이다. 전쟁은 끝나지 않고, 다만 모습을 바꿀 뿐이다. 이 전쟁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분명하다. 첫째, 현대전은 군사력이 아니라 경제력과 시스템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둘째, 약자는 정면승부 대신 비대칭 전략으로 강자를 흔든다. 셋째, 글로벌 공급망은 더 이상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의 핵심 요소다. 특히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이러한 구조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 전쟁은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해협 하나, 항로 하나가 곧 우리의 경제와 직결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고 했다. 이란의 전략은 바로 이 구절을 현실에서 구현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직접적인 군사 충돌에서는 열세일지라도, 경제의 흐름을 흔들며 상대를 압박하는 방식은 오히려 더 큰 파괴력을 지닌다. 손자 역시 “전쟁은 속임수”라 했다. 눈에 보이는 전장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승부를 가르는 것이 진정한 전략이다. 결국 이번 이란 전쟁은 새로운 시대의 전쟁을 상징한다. 총성과 포연이 아니라 유가와 금리, 공급망과 물류가 전쟁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전쟁의 승패는 더 많은 무기를 가진 쪽이 아니라, 세계 경제를 더 오래 흔들 수 있는 쪽이 결정한다. 그리고 그 순간, 전쟁은 이미 군사의 영역을 넘어 경제의 영역으로 완전히 이동해 있다. 이는 단순한 전쟁의 변화가 아니라 문명의 전환이다. 우리는 지금, 총이 아니라 시장이 지배하는 전쟁의 시대를 살고 있다.
2026-04-03 12: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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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은 결국 사람이다… '딸깍발이 정신'의 복원을 촉구한다
[경제일보] 사법은 국가의 마지막 보루다. 권력이 흔들릴 때도, 시장이 불안할 때도, 사회 갈등이 격화될 때도 최종적으로 기댈 곳은 법이며, 그 법을 운용하는 사법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법에 대한 신뢰는 예전 같지 않다. 오늘의 사법을 둘러싼 불신은 제도의 결함보다 사람의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권력과 이익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양심, 청렴과 절제를 중시하던 이른바 ‘딸깍발이’의 기풍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한때 법관과 검사는 절제된 삶과 엄정한 태도로 존경을 받았고, 그 존재 자체가 사법의 권위를 떠받쳤다. 지금의 현실은 다르다. 법조계 내부의 학연과 인맥, 전관 관행은 형태를 바꿔가며 공정성을 잠식하고 있다. 각종 규제와 제한이 도입됐지만 실효성은 제한적이다. 제도를 정교하게 손보는 일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이 반복해서 확인되고 있다. 사법 인사 제도 역시 양면성을 드러낸다. 안정성을 강화한 연임 중심 체계는 독립성을 지키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긴장과 경쟁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폐쇄성과 안일함이 자리 잡는다면 사법의 신뢰는 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법학전문대학원 도입과 법조일원화 역시 당초 취지와 다른 결과를 낳고 있다. 계층 이동 통로로 기능해야 할 제도는 오히려 진입 장벽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고, 대형 로펌 출신 인사의 사법부 진입은 이해충돌 우려를 키우고 있다. 제도는 바뀌었지만 신뢰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검찰 개혁 역시 본질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권한을 나누고 조직을 재편하는 것만으로는 정의 실현을 담보하기 어렵다. 권한이 분산되더라도 책임이 희석된다면 그 부담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제도에 대한 과신에 있다. 우리는 새로운 장치를 도입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믿어왔다. 그러나 사법은 기계가 아니다. 사법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의 양심과 책임이다. 노자는 “법령이 많아질수록 도적이 늘어난다”고 했다. 규칙이 정교해질수록 그것을 이용하는 방식도 정교해진다는 뜻이다. 지금의 사법 현실은 이 통찰을 되새기게 한다. 제도를 덧붙일수록 문제는 더 복잡해지고, 신뢰는 더 멀어지고 있다. 이제 방향을 바꿔야 한다. 사법 개혁의 중심은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어야 한다. 법률가의 윤리를 실질적으로 강화하고, 공직자로서의 책임을 엄격히 묻는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 법관과 검사가 스스로를 단련하고, 사회가 그에 걸맞은 수준을 요구할 때 비로소 사법의 권위는 회복될 수 있다. 사법은 권력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그 보루가 흔들리면 국가는 중심을 잃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제도가 아니라 오래 검증된 가치다. 결국 사법은 사람이다. 신뢰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온다. 흔들리지 않는 양심, 절제된 태도, 원칙을 지키는 용기. 사법이 되찾아야 할 기준은 이미 오래전에 제시돼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것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2026-03-26 10: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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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자동차, '레벨5 SDV' 첫 획득…"미래 안전·주행 보조 시스템 학습"
[경제일보] 볼보자동차가 글로벌 완성차 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 최고 등급을 확보했다.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와 데이터 기반 개발 체계를 중심으로 차량 성능과 기능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하는 역량이 핵심 평가 요소로 반영됐다. 23일 볼보자동차에 따르면 S&P 글로벌의 계열사인 S&P 글로벌 모빌리티가 실시한 자동차 제조업체 소프트웨어 정의 역량 평가에서 최고 단계인 ‘레벨 5 SDV(Level 5 Software-defined Vehicle)’를 획득했다. 해당 평가에서 최고 등급을 받은 완성차 업체는 현재까지 볼보가 유일하다. 이번 평가는 차량 소프트웨어 구조, 업데이트 역량, 데이터 활용 수준, 전자 아키텍처 통합도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제조사의 SDV 전환 수준을 단계별로 구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레벨5는 차량 수명 주기 전반에서 기능 개선과 성능 업데이트가 지속적으로 가능한 수준을 의미한다. 볼보는 OTA를 기반으로 차량 기능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한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OTA를 통해 안전 기능 추가, 사용자 인터페이스 개선, 충전 성능 및 주행거리 최적화 등 주요 성능을 차량 출고 이후에도 업데이트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것이 핵심 요소로 반영됐다. 또한 실제 주행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차량 성능과 안전 기능 개선에 활용하는 데이터 기반 개발 구조도 평가에 포함됐다. 차량 운행 과정에서 확보되는 데이터를 소프트웨어 개선에 반영함으로써 기능 고도화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이 주요 평가 요소로 작용했다. 볼보가 자체 개발한 차량 통합 시스템 ‘휴긴 코어(Hugin Core)’도 SDV 전환 수준을 뒷받침하는 핵심 구조로 제시됐다. 이 시스템은 전기·전자 아키텍처, 중앙 컴퓨팅 구조, 존 컨트롤러,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통합한 형태로 차량 기능을 중앙에서 제어하고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휴긴 코어는 차세대 전기차 라인업에 적용될 예정이다. EX90, ES90, EX60 등 후속 모델에 순차적으로 적용되며, 차량 간 소프트웨어 구조를 통일해 기능 확장과 업데이트 효율성을 높이는 역할을 수행한다. 볼보는 SDV 전환을 통해 차량을 출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개선 가능한 플랫폼으로 운영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차량 성능과 기능이 고정된 상태로 유지되는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성능이 진화하는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평가 결과가 완성차 업체 간 소프트웨어 경쟁 구도를 보여주는 사례로 보고 있다. 차량 전자 아키텍처와 소프트웨어 통합 수준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부상하면서 OTA와 데이터 기반 개발 역량이 주요 평가 기준으로 자리잡는 흐름이다. 특히 SDV 단계가 높을수록 차량 기능 개선 속도와 서비스 확장성이 동시에 확보된다는 점에서 완성차 업체들의 투자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하칸 사무엘손 볼보자동차 최고경영자는 “최고 수준의 소프트웨어 역량 확보를 위해 수년간 지속적인 투자와 개발을 이어왔다”며 “앞으로도 고객 경험 개선과 개발 속도의 발전을 이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2026-03-23 10: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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