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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뒤편의 전력 제국…LS는 왜 '조용한 승자'가 됐나
[경제일보] AI(인공지능) 시대의 승부는 더 이상 반도체 성능 경쟁에만 머물지 않는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산업계의 핵심 과제는 '전력 확보'로 이동하고 있다. LS그룹은 지금 이 거대한 전력 인프라 전환의 중심에서 조용하지만 강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그동안 AI 산업의 주인공은 엔비디아 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초거대 데이터센터였다. 하지만 AI 연산량이 급증할수록 이를 안정적으로 가동할 전력망과 송배전 인프라의 중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확대 과정에서 안정적인 전력 확보를 핵심 과제로 보고 있다. 단순 발전을 넘어 전력을 장거리로 송전하고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전력 인프라 경쟁도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LS그룹의 존재감도 이 같은 전력 인프라 전환 흐름 속에서 빠르게 커지고 있다. 전기를 보내는 전선과 해저케이블의 LS전선, 전력을 제어하는 변압기·배전·자동화 솔루션의 LS일렉트릭, 해외 전력 인프라와 소재 사업을 확대 중인 LS에코에너지까지 그룹 전체 사업 구조가 AI 시대 핵심 인프라인 '전력망'과 맞물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LS전선은 글로벌 해저케이블 시장 확대 흐름의 대표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각국이 해상풍력과 초고압직류송전(HVDC) 확대에 나서면서 장거리 대용량 송전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해저케이블은 기술 장벽과 대규모 생산 능력이 동시에 요구되는 대표적인 고부가 인프라 산업이다. LS전선은 동해 해저케이블 공장을 중심으로 생산 능력을 확대하며 유럽·북미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LS일렉트릭 역시 북미 전력 인프라 교체 사이클과 함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제조시설 확대에 따라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시장이다. 이에 따라 변압기와 배전반, 전력 자동화 시스템 등 전력기기 시장 역시 구조적인 성장 국면에 진입하는 모습이다. LS일렉트릭은 북미 사업 확대와 함께 생산 거점 및 공급망 대응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AI 시대가 열리며 산업계에서는 반도체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결국 전력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데이터센터 한 곳이 도시 하나에 맞먹는 전력을 소비하는 시대가 되면서 안정적인 송배전 인프라 확보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고 있어서다. 실제로 글로벌 전력기기 시장에서는 변압기 공급 부족 현상이 이어지고 있으며 초고압 케이블과 전력 설비 발주도 빠르게 늘어나는 분위기다. LS그룹은 일찍부터 전선과 전력기기, 자동화 솔루션 등 '전기의 흐름' 전반에 걸친 사업 구조를 구축해 왔다.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장거리로 송전하고 산업 현장과 데이터센터, 공장 등에 안정적으로 배분·제어하는 밸류체인 곳곳에 그룹 계열사들이 포진해 있는 구조다. 과거에는 전선과 전력기기 중심의 전통 제조기업 이미지가 강했지만 탄소중립과 전기차, 재생에너지, AI 데이터센터 확산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오히려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시대 변화와 맞물리기 시작했다. 산업 전반이 전기화(Electrification)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 속에서 LS가 구축해온 전력 인프라 밸류체인이 재조명받는 분위기다. 구자은 LS그룹 회장도 올해 신년사에서 이 같은 변화를 직접 언급했다. 구 회장은 "2026년을 LS의 미래가치를 진일보시키는 한 해로 만들자"면서, 재무적 탄력성 확보와 신사업 안정화, AI 기반 혁신 체계 구축을 주요 경영 과제로 제시했다. 무엇보다 향후 5년간 해저케이블·전력기기·소재 분야에 국내 7조원, 해외 5조원 등 총 12조원 규모의 투자를 예고하며 AI 시대 전력 인프라 시장 선점 의지를 드러냈다. 단순한 전선 기업을 넘어 글로벌 전력 인프라 그룹으로 체질을 바꾸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LS 내부에서는 AI를 단순 기술 트렌드가 아니라 제조업 혁신 도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실제로 올해 신년사는 AI가 직접 신년사를 작성하는 과정을 임직원들에게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구 회장은 "부가가치가 낮은 업무는 AI를 활용해 신속히 처리하고 핵심 업무에 역량을 집중하자"고 강조했다. AI를 산업 현장 운영 효율화와 생산성 혁신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다. 다만 과제도 적지 않다. 해저케이블과 전력기기 산업은 대규모 선제 투자가 필요한 대표적인 장치 산업이다. 북미와 유럽 시장 확대 과정에서 생산능력(CAPA) 확보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실제로 LS는 공격적인 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동시에 재무 부담 관리라는 숙제도 안고 있다. 배터리 소재와 전기차 부품, 희토류 등 신사업 역시 아직 안정화 단계라고 보긴 어렵다. 전기차 캐즘과 글로벌 경기 둔화 변수도 여전히 부담 요인이다. 구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재무적 탄력성 확보"를 반복적으로 강조한 것도 이 같은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LS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전통 전선 기업 이미지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AI와 전기화(Electrification) 시대 핵심 인프라 기업으로 재평가받는 분위기다. 화려한 소비재 브랜드 대신 산업 현장 뒤편에서 묵묵히 전기를 연결해온 LS의 B2B DNA가 오히려 AI 시대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AI 혁명의 무대 전면에는 반도체 기업들이 서 있지만 그 뒤편에서는 막대한 전력망과 송배전 인프라가 산업 전체를 떠받치고 있다. LS는 지금 그 보이지 않는 '전기의 혈관'을 구축하며 AI 시대의 조용한 승자로 부상하고 있다.
2026-05-12 15: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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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7000시대, 지금 담을 종목 따로 있다
[경제일보] 코스피가 사상 처음 7000선을 넘어선 뒤 투자자들의 관심이 ‘얼마나 더 오를까’에서 ‘무엇을 담아야 하나’로 옮겨가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인공지능(AI) 반도체가 여전히 시장의 중심축이지만, 전력기기·원전·자동차·로봇·증권주 등도 상승세를 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코스피는 지난 6일 전 거래일보다 6.45% 오른 7384.56에 마감하며 사상 처음 7000선을 돌파했다. 장중에는 7426.60까지 치솟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14.4%, 10.6% 급등하며 지수 상승을 이끌었고, 두 종목은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의 44%를 차지할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 외국인은 이날 국내 주식을 3조1000억원가량 순매수했다. 이번 랠리는 단순한 유동성 장세라기보다 AI 산업 재편에 따른 기업 이익 전망 상향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되면서 HBM과 서버용 D램 수요가 급증했고, 한국 반도체 대형주가 그 수혜의 중심에 섰다. 증권가의 눈높이도 높아지고 있다. 주요 증권사들은 코스피 상단 전망을 잇달아 올리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올해 코스피 예상 범위를 6000~8600으로 제시했고, 하나증권은 8470, 삼성증권은 8400을 상단으로 봤다. 해외 투자은행 중에서는 JP모건이 8500, 골드만삭스와 노무라증권이 8000 안팎을 제시했다. 일부에서는 코스피 1만선 가능성도 거론된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한국 증시는 올해 예상 이익 기준 약 9배 수준에서 거래돼 역사적 밸류에이션과 비교하면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며 “AI 칩 수요가 현재 수준으로 이어진다면 코스피는 연말까지 1만선에 도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그는 “이란 전쟁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성장 둔화 우려 속에 AI 수요가 무너지면 4500선까지 급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코스피 상승세가 이같이 전망되는 상황에서 어떤 종목에 투자해야 할까. 우선 거론되는 투자 축은 여전히 반도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 HBM, 서버용 D램 수요 증가의 직접 수혜주다. 주가가 급등했음에도 두 회사의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과거 메모리 슈퍼사이클 당시보다 낮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반도체 대형주만 추격하는 전략에는 부담도 있다. 코스피가 급등한 지난 6일 전체 거래 종목 가운데 상승 종목은 200개에 그친 반면 하락 종목은 679개에 달했다. 지수는 폭등했지만 상승의 상당 부분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집중됐다는 의미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 관계자는 “반도체 대형주는 여전히 장세의 본류지만, 지금부터는 대장주 추격보다 AI 밸류체인의 확산 여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두 번째 축은 전력기기와 원전이다. AI 데이터센터는 반도체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막대한 전력, 변압기, 송배전 설비, 냉각 시스템이 함께 필요하다. 이 때문에 증권가에서는 AI 투자 경쟁이 확대될수록 전력 인프라와 원전 관련 기업이 구조적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LS·삼성SDI·OCI홀딩스 등 에너지 밸류체인 관련 종목도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의 관심 대상이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AI 투자는 칩 구매에서 끝나지 않고 데이터센터 전력 확보와 송배전 설비 투자로 이어진다”며 “전력기기와 원전주는 단기 테마가 아니라 수주와 설비투자가 실적으로 확인되는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세 번째 축은 자동차와 로봇 등 ‘피지컬 AI’ 관련주다. AI가 데이터센터 안에 머물지 않고 자율주행, 로봇, 스마트팩토리, 전장 부품으로 확산되면 자동차와 부품주도 재평가될 수 있다. 증권가에서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등 로보틱스·전장 관련 종목도 코스피 7000시대의 상승 잠재력이 큰 후보군으로 보고 있다. 네 번째 축은 증권주다. 증시 활황은 거래대금 증가, 신용공여 확대, 자산관리 수요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코스피 7000 돌파 당일 증권업종은 13% 넘게 급등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코스피 7000 이후 개인 자금이 다시 증시로 들어오면 브로커리지와 자산관리 부문이 동시에 좋아질 수 있다”며 “다만 주가가 급락할 경우 신용공여와 미수금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코스피를 견인할 이런 새로운 주도주가 나타날 가능성이 나오지만 무차별적으로 관련 업종의 종목을 담아선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주문한다. 반도체, 전력기기·원전, 자동차·로봇, 증권주는 모두 AI 인프라 확장과 증시 재평가라는 큰 흐름에 닿아 있지만 개별 기업의 실적 가시성, 수주 잔고, 밸류에이션, 재무 안정성은 각각 다르다. 때문에 개별 기업의 상태를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 과열 신호도 뚜렷하다. 지난 4일 기준 코스피·코스닥 합산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35조839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29일에는 사상 처음 36조원을 넘어섰다. 유가증권시장 공매도 순보유잔고도 20조원 선을 돌파했다.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6일 장 마감 기준 63.36까지 뛰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빚투는 상승장에서 지수 탄력을 키우지만 지수가 급락하면 반대매매 물량으로 돌아와 하락 압력을 키우게 된다”며 “불장일수록 레버리지 자금이 함께 불어나면서 수급 변동성에 대한 경계감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6-05-07 08: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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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가 만든 성장, 나라 경제의 착시가 되어선 안 된다
[경제일보] 한국 경제가 모처럼 의미 있는 성장 지표를 받아 들었다.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1.7%, 전년 동기 대비 3.6% 성장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정보기술(IT) 수출 증가와 설비투자 확대가 성장을 이끌었다. 장기간 이어진 경기 둔화 속에서 반가운 소식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경제는 숫자 하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성장률은 높아졌지만 시장의 체감 온도는 여전히 낮다. 대기업 실적은 개선됐지만 중소 제조업 현장은 여전히 어렵다. 수출은 늘었지만 청년 취업난은 계속되고 지방 산업단지는 일감 부족과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 간극을 설명하지 못한다면 이번 성장률은 경제 회복이 아니라 ‘통계의 위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성장의 핵심 동력은 단연 반도체다. 글로벌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와 함께 메모리 및 첨단 반도체 수요가 급증했고 한국 기업들은 그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반도체가 없었다면 올해 1분기 성장률은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반도체의 호조가 곧 한국 제조업 전체의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제조업 생산은 증가했지만 반도체를 제외하면 상당수 업종은 사실상 정체 상태에 가깝다. 거대한 엔진 하나가 경제 전체를 끌어올린 셈이다. 엔진이 강한 것은 다행이지만 차체 곳곳이 흔들리는데 속도계 숫자만 보고 안심할 수는 없다. 한국 경제는 오랫동안 제조업 생태계의 힘으로 성장해 왔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기계, 전자, 소재·부품 산업이 서로 맞물려 국가 경쟁력을 만들어냈다. 그 아래에는 수많은 중소기업과 협력업체, 지역 산업단지, 숙련 기술자들이 존재했다. 대기업 혼자 만든 성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그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첨단 반도체와 AI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는 반면 전통 제조업과 중소기업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일부 대기업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지만 협력업체들은 원가 상승과 인건비, 고금리 부담에 시달린다. 수도권 첨단 클러스터에는 자금과 인재가 몰리지만 지방 산업단지는 노후 설비와 인력 유출로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경제 회복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도체는 분명 한국의 핵심 전략산업이다. 정부가 전력과 용수, 세제, 연구개발(R&D), 인력 양성 등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도 명확하다. 반도체 산업은 더 이상 기업만의 경쟁이 아니라 국가 대 국가의 경쟁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 대만, 유럽 모두 국가 차원의 지원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지원이 산업정책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반도체는 고부가가치 산업이지만 고용 창출 효과는 제한적이다. 자동화 수준이 높고 생산 효율 중심 구조이기 때문이다. 수출액은 커도 그 효과가 모든 지역과 가계로 곧장 확산되지는 않는다. 반도체 호황만으로 민생 회복을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더 위험한 것은 착시다. 성장률이 좋다는 이유로 경제 전반이 안정됐다고 판단하는 순간 정책은 느슨해질 수 있다. 반도체가 버텨주고 있다는 이유로 다른 산업의 침체를 과소평가하게 되고 수출 지표 개선에 가려 내수 부진과 자영업 위기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 위기는 눈에 보이지만 착시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반도체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경제 변동성도 커진다. AI 투자 확대가 이어지면 성장세는 지속될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수요 둔화나 공급 과잉, 미·중 기술 갈등 심화, 대만해협과 중동 정세 불안 같은 변수들이 현실화되면 충격은 곧바로 한국 경제로 전이된다. 특정 산업 하나가 경제 전체의 방파제이자 동시에 급소가 되는 구조는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지금 한국 경제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반도체의 성공을 산업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것이다. AI 시대의 수혜가 메모리 반도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데이터센터, 전력기기, 냉각장비, 로봇, 제조 자동화, 통신장비, 보안, 소프트웨어, 소재·부품 산업까지 연결돼야 한다. 반도체가 앞에서 끌고 다른 산업이 뒤따라야 진짜 산업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중소·중견 제조업의 생산성 강화도 시급하다. 한국 산업의 가장 약한 고리는 대기업이 아니라 산업의 ‘허리’다. 스마트공장과 공정 자동화, 에너지 효율 개선, 기술 인력 재교육, 수출 판로 확대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해야 한다. 단순한 보조금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 금융과 기술, 인력 정책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 지역 산업 생태계도 살펴야 한다. 반도체 클러스터 하나가 전국 산업의 미래를 대신할 수는 없다. 조선과 자동차 부품, 철강, 화학, 기계, 뿌리산업 등 지역마다 필요한 전략은 다르다. 지방 산업단지가 쇠퇴하는데 수도권 첨단산업만 성장한다면 국가 경제의 균형은 더욱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인력 문제 역시 심각하다. 반도체 인력만 부족한 것이 아니다. 용접공과 정밀가공 기술자, 배터리 공정 엔지니어, AI 기반 제조 소프트웨어 인력까지 산업 전반에서 숙련 인력이 부족하다. 대학 정원 확대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마이스터고와 전문대, 지역대학, 기업 훈련체계가 산업 현장과 직접 연결돼야 한다. 내수 회복도 중요하다. 수출이 경제의 엔진이라면 내수는 국민 생활의 체감 온도다. 성장률이 높아도 소비가 살아나지 않으면 국민은 경기 회복을 실감하지 못한다. 물가와 금리, 주거비, 가계부채, 자영업 침체가 여전히 소비를 짓누르고 있다. 반도체 수출이 좋아도 동네 상권이 무너지면 경제 회복은 공허한 말이 된다. 정부의 메시지도 정직해야 한다. 좋은 지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되 한계 역시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반도체는 강하지만 제조업 전반은 아직 불안하다. 수출은 회복되고 있지만 내수는 충분히 살아나지 않았다. 대기업은 선전하지만 중소기업과 자영업은 여전히 어렵다. 이 현실을 숨기지 않는 것이 정책 신뢰의 출발점이다. 정치권 역시 경제를 정쟁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여당은 성장률만 내세워 자화자찬하고 야당은 체감 경기만 부각해 경제 전체를 부정한다면 둘 다 무책임하다. 산업 현장은 정치 구호보다 전기료와 금리, 인력난, 해외 주문 상황을 더 절박하게 체감하고 있다. 지금 한국 경제는 중요한 기회를 맞고 있다. 반도체 호황은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어디에 쓰느냐다. 단기적인 성과 홍보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산업 구조를 재정비하고 경제 체질을 강화하는 데 활용할 것인가. 한 산업의 호황을 국가 경제 전체의 건강으로 착각하면 다음 위기는 더 깊어진다. 반대로 지금 제조업의 허리를 보강하고 산업 생태계를 넓히며 내수와 고용의 약한 고리를 보완한다면 반도체 호황은 진짜 성장의 기반이 될 수 있다. 경제의 기본 원리는 단순하다. 한 산업만 강한 경제보다 여러 산업이 함께 버티는 경제가 더 강하다. 대기업 몇 곳만 좋은 경제보다 중소기업과 지역 산업이 함께 살아나는 경제가 오래간다. 성장률 숫자보다 국민이 일자리와 소득으로 체감하는 경제가 진짜 건강한 경제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하나의 산업에 국가 경제의 미래를 모두 걸 수는 없다. 산업의 뿌리가 깊고 생태계가 넓어야 경제는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반도체 호황에 대한 환호가 아니라 그 이면에 존재하는 구조적 격차와 취약성을 함께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이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은 분명 의미 있는 성적표다. 그러나 한 과목 점수가 높다고 학생 전체가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반도체가 만든 성장의 빛이 강할수록 그 그늘 또한 더 냉정하게 봐야 한다. 지금 그것을 놓친다면 우리는 호황 속에서 다음 위기의 씨앗을 키우게 될 것이다.
2026-05-06 0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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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독주 끝?…AI주 수혜, 전력·부품으로 번진다
[경제일보] 인공지능(AI) 투자 확대로 증시 자금이 반도체 대형주에서 전력기기·기판 등 인프라·부품 기업으로 이동하며 국내 산업 지형이 재편되고 있다. 4일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증시에서는 인공지능(AI) 투자 확대 흐름을 타고 전력기기와 정보기술(IT) 부품 종목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기존에 시장을 주도하던 반도체 대형주 중심의 흐름에서 벗어나 전력 인프라와 부품 기업으로 수혜 축이 확장되는 양상이다. 실제 코스피가 6000선을 재돌파한 이후 상승 구간에서 기계장비 업종이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고 IT와 반도체 업종이 뒤를 이었다. 특히 LS일렉트릭, HD현대일렉트릭, 효성중공업 등 전력기기 기업은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을 크게 웃도는 주가 상승을 나타냈다. IT 업종 내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투톱보다 LG이노텍, 삼성전기 등 기판·부품 기업의 상승폭이 더 크게 나타나며 투자심리가 후공정 영역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확인된다. 이 같은 변화는 AI 산업 구조 자체가 확장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구축이 급증하면서 전력 소비가 폭증하고 이에 따라 변압기·전력제어장치 등 전력 인프라 수요가 동반 확대되고 있다. 동시에 고성능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기판·패키징 등 부품 수요도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AI 산업의 성장 제약 요인이 반도체에서 전력과 부품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성능 칩 확보 경쟁에 이어 이를 실제로 구동할 전력망과 시스템을 구축하는 능력이 AI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 실적 역시 이러한 흐름을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다. LS일렉트릭은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조3766억원, 영업이익 1266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3%와 45% 증가한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특히 북미 매출이 약 3000억원으로 1년 새 80% 급증하며 성장세를 견인했다. 효성중공업도 같은 기간 매출 1조3582억원, 영업이익 1523억원을 기록해 각각 26%, 48% 증가했으며 분기 기준 최대 신규 수주(4조1745억원)를 확보하며 중장기 성장 기반을 확대했다. HD현대일렉트릭은 1분기 매출 1조365억원, 영업이익 2583억원으로 각각 2.1%, 18.4% 증가하며 실적 개선 흐름을 이어갔다. 특히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수준인 약 2조6500억원 규모의 신규 수주를 기록하고 수주잔고도 11조원대로 확대되며 향후 실적 가시성을 높였다. 이들 전력기기 빅3는 북미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투자 확대에 힘입어 수주잔고가 수조원 단위로 쌓이며 중장기 성장 동력을 확보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빅테크의 AI 인프라 투자 확대와 맞물려 초고압 변압기 등 전력 설비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IT 부품 업종 역시 실적 개선 기대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기 등 주요 기판·부품 기업은 AI 서버용 고부가 제품 비중 확대를 기반으로 두 자릿수 이익 성장세가 예상되며 2분기 이후 본격적인 수요 반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에서는 2분기 이후가 '실적 검증 국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주가가 이미 기대를 선반영한 만큼 실제 수주와 실적이 이를 뒷받침할지가 향후 흐름을 가를 관건으로 꼽힌다. 이상현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29일 발표한 기업분석 리포트에서 "빅테크 기업들의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따라 전력 인프라 수요가 급증하며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수주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AI 관련 설비 투자 규모 확대에 힘입어 전력기기 수요 강세가 중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수요 증가 속도에 비해 생산능력이 제한적인 만큼 공급 제약 요인도 함께 부각되고 있다"고 했다. 이민희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30일 발표한 기업분석 리포트에서 "AI 서버와 전장 수요 확대에 따라 MLCC와 FC-BGA 등 고부가 부품의 수익성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FC-BGA는 가격 인상이 반영되기 시작했고 하반기 추가 상승도 예상되는 등 수요 확대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국면에 진입했다며 이번 사이클에서 과거 최고 수준의 수익성 회복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덧붙였다.
2026-05-04 15:5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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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기기도 '경험' 경쟁…LS일렉트릭, 디자인으로 산업 경쟁력 확장
[경제일보] 전력기기 기업 LS일렉트릭이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 수상을 계기로 산업용 제품 경쟁의 축이 기능에서 ‘사용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단순 기술 경쟁을 넘어 직관성·사용성·디지털 경험까지 포함하는 ‘산업 디자인’이 새로운 차별화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LS일렉트릭은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2026'에서 제품·서비스 디자인 부문 등 총 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스마트 차단기 'Compact ACB', 자동화 솔루션 'XGT Integrated Safety PLC', 에너지 컨설팅 플랫폼 'Beyond X - Enable'이 각각 본상을 받았다. 이번 수상은 단순 디자인 성과를 넘어 산업용 전력기기와 플랫폼 전반에서 사용자 중심 설계 역량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과거 산업용 기기 시장은 성능이 경쟁의 핵심이었다. 전력 설비와 자동화 장비는 안정성과 내구성, 제어 성능이 최우선 가치였고 디자인은 부차적인 요소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구매 의사결정 역시 기술 스펙과 가격, 납기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최근 산업 환경이 변화하면서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핵심은 사용자 경험이다. 스마트팩토리와 디지털 전환이 확산되면서 산업 현장의 작업자는 더 많은 데이터를 다루고 복잡한 시스템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환경에 놓였다. 이에 따라 장비 조작의 직관성, 유지보수 편의성, 데이터 접근성 등이 생산성과 직결되는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LS일렉트릭이 수상한 제품들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NFC·블루투스를 통해 원격 설정과 모니터링이 가능한 차단기, 설치와 배선 효율을 높인 모듈형 PLC, 대시보드 기반 의사결정 지원 플랫폼 등은 모두 ‘사용 편의성’과 ‘데이터 활용’을 중심에 둔 설계다. 특히 주목되는 지점은 디지털 플랫폼 디자인이다. Beyond X - Enable은 AI와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에너지 사용 데이터를 분석하고 탄소 관리까지 지원하는 플랫폼이다. 단순 장비 판매를 넘어 데이터 기반 서비스까지 사업 영역이 확장되는 흐름 속에서, 사용자 인터페이스(UI)와 경험 설계가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전력기기 기업이 하드웨어 공급자에서 에너지 관리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배경에는 산업 구조 변화가 있다. AI 데이터센터, 스마트팩토리, 탄소중립 정책 등으로 전력과 자동화 시스템의 복잡성이 크게 증가하면서, 기술 성능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려워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누가 더 쉽게 쓰게 만드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는 안전 규제와 표준이 강화되면서, 사용자의 오류를 최소화하는 직관적 설계가 필수 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전력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과거에는 전력 설비가 ‘보이지 않는 인프라’였다면, 이제는 운영 효율과 비용 절감을 직접적으로 좌우하는 핵심 시스템으로 인식되면서 사용자 경험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전력기기 기업들이 디자인 역량을 전략 요소로 끌어올리는 배경이다. 다만 과제도 존재한다. 산업용 제품은 안전성과 신뢰성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디자인 혁신이 기능적 안정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또한 다양한 산업 환경과 국가별 규제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만큼 표준화와 차별화 사이의 균형도 중요하다. 산업용 기기 역시 소비재처럼 사용 경험 경쟁에 들어섰다. LS일렉트릭의 이번 수상은 기술 중심 산업에서도 디자인이 전략적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LS일렉트릭 관계자는 "산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안전성, 직관성, 사용성을 디자인적으로 정교하게 구현한 결과가 이번 수상으로 이어졌다"며 "앞으로도 전력과 자동화 사업 전반에서 스마트그리드 · 스마트팩토리 시대에 부합하는 제품 · 서비스 디자인 혁신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2026-04-15 13:3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