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1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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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승리 후 협상"과 호르무즈의 침묵
[경제일보] 중동의 사막은 늘 뜨거웠지만, 그 뜨거움이 언제나 전쟁만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 사막은 문명의 길이었고, 때로는 세계 경제의 동맥이었다. 오늘날 세계가 다시 이란과 호르무즈 해협을 주목하는 이유도 단순히 미사일과 핵시설 때문만은 아니다. 그곳은 석유의 길이고, 달러의 길이며, 현대 산업문명의 숨길이기 때문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핵무기 포기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일주일 정도면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언뜻 보면 평범한 외교적 발언 같지만, 국제정치의 문법으로 보면 이는 상당히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미 물밑에서 상당한 수준의 조율이 이뤄지고 있으며, 미국과 이란 모두 전면전보다는 관리 가능한 타협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신호에 가깝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번 충돌을 “소규모 충돌(skirmish)”이라고 표현했다. 단어 하나에도 의도가 있다. 그는 이란과의 군사 충돌을 “새로운 중동전쟁”으로 보이게 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강하게 때렸고, 상대를 굴복시켰으며, 결국 협상으로 정리했다”는 서사를 만들고 싶어 한다. 이것은 군사 전략이면서 동시에 미국 국내정치 전략이다. 실제로 트럼프의 정치 스타일은 언제나 “힘을 통한 거래”였다. 상대를 극단까지 몰아붙인 뒤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는 방식이다. 중국과의 관세전쟁도 그랬고, 북한과의 정상회담도 그랬다. 이번 이란 문제 역시 같은 패턴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대가 다르다. 이란은 단순한 중동의 한 국가가 아니다. 5천 년 문명의 기억을 가진 페르시아의 후예이며, 세계 에너지 길목을 움켜쥔 지정학 국가다. 미국이 세계 최강 군사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지나가는 길목이다. 한국, 일본, 중국의 에너지 생명선이기도 하다. 하루 평균 수천 척의 유조선이 이 좁은 바다를 통과한다. 만약 이곳이 봉쇄되면 국제유가는 단기간에 배럴당 150달러 이상으로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 경제는 즉시 충격에 빠진다. 인플레이션은 재폭발하고, 금리는 다시 오르며, AI 산업을 포함한 첨단산업의 전력 비용도 급등한다. 결국 호르무즈는 단순한 바다가 아니다. 현대 문명의 목줄이다. 미국과 이란이 이번 협상에서 논의하는 핵심 역시 바로 이것이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양측은 △이란 핵농축 중단 △고농축 우라늄 반출 △지하 핵시설 가동 중단 △제재 완화 △호르무즈 해협 봉쇄 해제 등을 포함한 양해각서(MOU)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실상 “핵과 석유의 교환”이다. 미국은 핵위협 제거를 원하고, 이란은 경제 제재 해제를 원한다. 서로 필요한 것을 맞바꾸는 셈이다. 여기서 세계 금융시장은 이미 전쟁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시장은 언제나 총성보다 먼저 기대와 공포를 가격에 반영한다. 최근 국제유가가 다소 안정되고 미국 증시와 아시아 증시가 반등한 것도 “호르무즈 봉쇄 가능성이 일단 낮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뉴욕 금융가는 이미 두 개의 시나리오를 동시에 계산하고 있다. 하나는 ‘휴전과 타협의 시나리오’이고, 다른 하나는 ‘지지부진한 장기 대치 시나리오’다. 만약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일정 수준에서 타결되고 사실상의 휴전 국면으로 들어간다면 세계 금융시장은 상당 기간 안도 랠리를 펼칠 가능성이 높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70~80달러 선에서 안정될 수 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기대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동안 중동 리스크 때문에 움츠렸던 글로벌 투자 자금은 다시 미국 기술주와 아시아 반도체 시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국 경제에는 중요한 숨통이 열린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유가 안정 자체가 곧 물가 안정으로 연결된다. 반도체·배터리·AI 데이터센터 산업 역시 전력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다. 원·달러 환율도 안정되면서 외국인 자금 유입 가능성이 커진다. 최근 몇 년 동안 세계 경제는 우크라이나 전쟁, 공급망 붕괴, 고금리, 에너지 충격이 연쇄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시장은 “최소한 더 큰 악재만은 피하고 싶다”는 심리가 강하다. 따라서 중동 긴장 완화는 단순한 지역 문제가 아니라 세계 위험자산 시장 전체에 긍정적 신호가 된다. 반대로 협상이 지지부진해지고, 미국과 이란이 ‘불안한 휴전’ 상태에서 군사적 긴장만 반복할 경우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시장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이다. 전면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정이다. 이 경우 국제유가는 다시 급등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서면 세계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하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된다. 물가가 다시 오르면 금리는 내려가지 못하고, 소비와 투자도 위축된다. 특히 유럽은 이미 에너지 비용 부담에 시달리고 있어 경기 침체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 중국 역시 제조업과 수출 회복에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금융시장에서는 달러 강세와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금값은 상승하고, 미국 국채로 자금이 몰리며, 신흥국 통화는 약세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원화 약세와 외국인 자금 이탈 가능성이 커질 수 있으며, 수입 물가 상승으로 서민 경제 부담도 커진다. 무엇보다 AI 시대의 세계 경제는 과거보다 에너지에 훨씬 민감하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결국 유가와 전력 비용은 곧 AI 산업 경쟁력 문제로 이어진다. 중동의 지정학 리스크가 단순한 국제 뉴스가 아니라 AI 패권 경쟁의 변수로 떠오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이번 협상은 총성과 미사일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경제의 심장 박동수를 조절하는 문제에 가깝다. 월가와 런던 금융가, 도쿄와 서울의 딜링룸은 지금 호르무즈 해협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주시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는 이미 페르시아만의 파도와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가 “우리가 이겼다”고 강조하는 부분이다. 미국 보수층은 대체로 “강한 미국”을 원한다.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미국 사회 내부에는 “미국이 약해졌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트럼프는 이를 뒤집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는 이란을 압박한 뒤 협상으로 끌고 들어오는 과정을 “미국의 승리”로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는 언제나 승자만 있는 게임이 아니다. 이란 역시 내부적으로는 “굴복이 아닌 생존”이라는 논리를 만들고 있다. 혁명수비대(IRGC)와 강경 종교 세력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이란 정권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협상이 체제 붕괴처럼 보이면 안 된다. 따라서 이란은 “핵무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평화적 핵 이용을 유지한 채 긴장을 조절한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결국 양측 모두 자국민을 향해 “우리가 이겼다”고 말해야 하는 기묘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세계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중국이다.중국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 중 하나이며, 이란산 원유의 중요한 구매자다. 동시에 중국은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과 중동 질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 중국 역시 일정 부분 그 혜택을 받는다. 반대로 중동이 불안정해지면 중국 경제 역시 큰 타격을 입는다. 그래서 최근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중동 문제가 핵심 의제로 거론된다. 겉으로는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지만, 에너지 공급망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서로 완전히 등을 돌릴 수 없다. 한국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한국은 세계적인 제조업 국가이지만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한다. 특히 반도체와 AI 산업은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한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AI 고속도로” 전략 역시 안정적 에너지 공급 없이는 불가능하다. 중동발 에너지 충격은 단순한 유가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 전략 전체의 문제다. 고대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는 “왕의 길(Royal Road)”을 건설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물류 시스템이었다. 오늘날 호르무즈 해협은 현대판 왕의 길이다. 석유와 LNG, 달러와 원자재, AI 산업의 전력과 반도체 공급망까지 모두 이 길과 연결돼 있다. 세계는 다시 페르시아를 지나고 있다.
2026-05-07 09:5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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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대비되는 중국의 이란전쟁 스탠스 : 한국이 배워야 할 질문은
[경제일보] 이란 전쟁 국면에서 미국과 중국이 보인 태도는 단순한 외교 기법의 차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패권국가의 행동 방식과 문명국가를 자처하는 실용국가의 행동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를 드러낸 장면이었다. 미국은 힘으로 질서를 재편하려 했고, 중국은 말로 판을 관리하려 했다. 미국은 군사력과 제재, 압박과 데드라인의 언어를 앞세웠고, 중국은 휴전과 대화, 항행 안전과 지역 안정의 언어를 반복했다. 최근 중국 외교부는 “관련 당사국들이 평화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밝혔고, 왕이 외교부장이 이란·이스라엘·러시아·걸프 국가들과 26차례 통화를 했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스스로를 전쟁 당사자가 아니라 중재자, 더 정확히 말하면 불길을 더 키우지 않는 관리자처럼 연출하고 있다. 중국의 이런 태도는 도덕적 순수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냉정한 국익 계산의 산물이다. 중국은 이란산 원유의 중요한 수요자이고,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은 곧바로 중국 경제의 에너지 비용과 물류 안정성, 수출 제조업의 채산성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중국은 미국처럼 상대를 끝까지 몰아붙여 체제 변화를 노리기보다, 전쟁을 통제 가능한 수준에서 멈추고 질서를 복원하는 데 더 큰 이해관계를 가진다. 최근 보도들을 보면 중국은 휴전 국면에서 뒤에서 외교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동시에 호르무즈 항행 재개와 에너지 공급 안정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러시아와 함께 호르무즈 재개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도, 미국 주도의 군사적 해법에 제동을 걸고 자신이 선호하는 협상 틀을 지키려는 계산으로 읽힌다. 반면 미국의 방식은 훨씬 직선적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질서를 힘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문제는 그 힘의 과시가 언제나 질서의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번에도 강한 압박과 폭격, 초강경 발언은 단기 충격은 주었을지 몰라도, 중동 전체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유가와 해상 운송비, 금융시장 변동성을 키우는 부작용을 낳았다. 중국은 바로 그 틈을 파고들었다. 스스로 총을 쏘지 않으면서도 평화를 말하고, 실제 보증 부담은 지지 않으면서도 외교적 점수를 챙기는 방식이다. 서방 일각에서 “중국이 이번 국면의 조용한 승자”라는 평가가 나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한국이 중국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친중적 자세가 아니다. 더 본질적인 질문이다. 왜 중국은 전쟁을 곧바로 국익의 언어로 번역하는데, 우리는 자주 진영의 언어부터 앞세우는가. 왜 중국은 도덕과 명분을 말하면서도 에너지, 해운, 결제, 항만, 보험을 한 묶음으로 계산하는데, 우리는 외교는 외교대로, 경제는 경제대로, 안보는 안보대로 따로 보는가.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지만 동시에 에너지 수입국이며 무역국가다. 이런 나라가 중동 전쟁을 볼 때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누가 더 선한가”가 아니라 “우리의 원유선과 가스선, 물가와 환율, 무역금융과 선박 안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여야 한다. 중국의 스탠스가 우리에게 주는 진짜 교훈은 여기에 있다. 첫째, 강대국일수록 원칙보다 국익의 번역 능력이 빠르다는 점이다. 둘째, 전쟁의 승패보다 전후 질서의 설계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셋째, 말의 수위보다 공급망의 안전이 국가를 지킨다는 점이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기둥으로 삼되, 중국처럼 냉정하게 에너지 안보와 항행 자유, 해상보험과 결제 안전망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중동의 불길 앞에서 감정으로 흔들리는 나라는 비용을 치르고, 구조로 준비한 나라는 충격을 줄인다. 결국 이번 이란 전쟁에서 미국은 힘의 한계를, 중국은 실용의 집요함을 보여 주었다. 한국이 배워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미국처럼 강할 수 없다면, 중국처럼 계산할 수는 있는가. 바로 그 질문이 지금 우리의 외교와 경제안보가 함께 답해야 할 과제다.
2026-04-10 1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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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생존 게임, 이제 '원전'이라는 정공법으로 응답하라
[경제일보] 중동발 전쟁의 포화가 다시금 세계 에너지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유가와 가스 가격이 요동칠 때마다 반복되는 “이번엔 무엇이 다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늘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차량 요일제, 실내 온도 제한, 절전 캠페인. 고통 분담이라는 이름 아래 소비를 줄이자는 구호는 요란했지만, 정작 에너지 공급 구조를 바꾸는 근본적인 대책은 번번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에너지 정책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전략’이 되지 못하고 현상을 유지하는 ‘관리’에 머물렀던 결과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세계는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 지정학적 리스크는 이제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었고, 에너지는 더 이상 값싸고 안정적인 공공재가 아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혁명이 가세하며 전력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하나가 중소도시 전체의 전력을 소비하고, 반도체와 전기차, 수소 산업 등 미래를 책임질 모든 전략 산업이 전력을 먹고 자란다. 이제 에너지는 경제의 문제를 넘어 국가의 생존과 직결된 안보의 핵심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여전히 ‘덜 쓰기’라는 소극적 태도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정책이 아니라 방치이자 직무유기다. 지난 수년간 우리 에너지 정책의 중심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쏠려 있었다.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태양광과 풍력은 분명 가야 할 길이다. 하지만 문제는 ‘속도’와 ‘균형’이었다. 자연환경에 의존하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과 저장 기술의 한계를 간과한 채, 기저 전원을 성급하게 줄이려 했던 시도는 전력 수급의 불안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결국 우리는 다시 원자력발전소의 가동을 늘리는 선택지로 돌아왔다. 이념과 구호가 현실의 냉혹한 데이터 앞에 무릎을 꿇은 셈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냉철한 ‘계산기’다. 감정이 아닌 ‘데이터’에 기반해 자문해 보자. 탄소 배출이 적으면서도 대량의 전력을 24시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수단이 무엇인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설계·건설·운영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비용 경쟁력까지 확보된 에너지원이 우리에게 있는가. 답은 자명하다. 바로 원자력이다. 원전은 결코 과거의 산업이 아니다. 소형모듈원전(SMR)과 같은 차세대 기술은 안전성과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며 에너지 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자원 빈국인 대한민국에서 원전만큼 ‘국산 에너지’에 가까운 효율을 내는 자원은 드물다.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에너지 주권이다. 물론 안전성에 대한 우려와 폐기물 처리, 사회적 합의라는 난제가 남아 있다. 그러나 위험을 이유로 선택을 미루는 것은 미래 세대에게 전력 부족과 산업 쇠퇴라는 더 큰 위험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처사다. 기술은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와 극복의 대상이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과학적 근거, 그리고 엄격한 규제를 통해 국민적 신뢰를 쌓아가는 정공법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天下大事 必作於細)”는 말이 있다. 에너지 정책도 마찬가지다. 당장의 여론이나 정치적 일정에 흔들리는 임시방편으로는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세울 수 없다. 장기적인 수급 계획과 일관된 투자, 그리고 현장을 지키는 전문 인력 양성이라는 기본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그 튼튼한 토대 위에서 원전을 중심으로 삼고, 재생에너지와 신기술이 조화를 이루는 믹스(Mix) 구조를 완성해야 한다. 세계 주요 선진국들도 이미 방향을 틀었다. 에너지 위기를 겪으며 원전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원전 생태계 복원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 거대한 흐름을 외면한 채 우리만 다른 길을 고집한다면, 그 대가는 산업 경쟁력 약화와 국부 유출이라는 고통으로 돌아올 뿐이다. 이제는 결단해야 한다. 첫째, 기존 원전의 계속 운전을 통해 당장의 전력 공백을 막아야 한다. 둘째, 차세대 원전(SMR) 기술에 대한 투자를 과감히 늘려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셋째, 에너지 정책을 정치적 프레임에서 해방시켜 과학과 경제의 영역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에너지는 국가 경제의 혈액이다. 혈맥이 막히면 심장이 멈춘다. 중동의 포성은 우리에게 더 이상 임시방편으로는 버틸 수 없음을 경고하고 있다. 우리가 가진 기술력과 역량을 냉정하게 신뢰하고, 가장 현실적이며 강력한 대안인 원전을 정책의 중심에 세워야 한다. 그것만이 대한민국이 글로벌 에너지 전쟁에서 살아남고, 미래 산업의 패권을 거머쥘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2026-04-07 10: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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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정책금융 4사와 '새만금 9조 프로젝트' 본격화
[경제일보] 현대자동차그룹이 정책금융기관과의 협력 체계를 구축하며 전북 새만금을 중심으로 한 미래 산업 투자 프로젝트의 실행 단계에 착수했다. 민관 공동 금융 구조를 기반으로 대규모 투자 계획의 구체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양상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서울 여의도 한국산업은행 본관에서 한국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신용보증기금과 ‘새만금 프로젝트 금융지원 및 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정책금융기관이 참여하는 공동 금융지원 구조를 공식화한 것으로, 대규모 설비 투자와 인프라 구축이 병행되는 사업 특성을 고려한 조치로 해석된다. 이번 협약에서 한국산업은행은 정책금융기관 협의회의 첫 사업으로 현대차그룹 새만금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금융 구조 설계와 자문을 담당한다. 생산적 금융과 기후금융을 결합한 형태로 프로젝트 자금 조달 체계를 구축하는 역할이다. 중소기업은행은 로봇·수소 부품 분야 협력 기업을 대상으로 설비 투자와 운영 자금을 연계 지원하며, 참여 기업의 생산 역량 확대를 지원한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수출 금융과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관련 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한다. 특히 로봇 및 에너지 관련 설비 수출 확대와 연계한 금융 지원이 포함된다. 신용보증기금은 보증 프로그램을 통해 중소·중견기업의 자금 접근성을 높이고 사업 리스크를 분산하는 역할을 맡는다. 정책금융기관별 기능을 분리해 투자·생산·수출 전 단계에 걸친 지원 구조를 구축한 것이 특징이다. 이번 협약은 현대차그룹이 지난 2월 정부 및 전북특별자치도와 체결한 투자협약의 후속 조치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새만금 일대 약 112만4000㎡ 부지에 총 9조원을 투입해 로봇 제조 및 부품 클러스터, 수전해 기반 수소 생산 설비, AI 데이터센터, 1GW급 태양광 발전 설비, AI 기반 수소 도시를 구축하는 계획을 제시한 바 있다. 생산·에너지·데이터 인프라를 결합한 복합 산업 구조다. 새만금 프로젝트는 단일 생산 거점을 넘어 복수 산업을 연결하는 통합형 밸류체인 구축을 목표로 한다. 로봇 생산과 부품 공급망, 수소 생산과 활용 인프라, AI 데이터 처리 기반이 하나의 클러스터 내에서 연동되는 구조다. 전력 공급 측면에서는 재생에너지 기반 발전과 연계해 수소 생산과 데이터센터 운영 효율을 동시에 확보하는 설계가 적용된다. 현대차그룹은 투자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내부 전담 조직을 구성하고 사업 추진 체계를 정비한 상태다. 로보틱스, AI, 수소 에너지 등 핵심 분야별로 조직을 세분화해 투자 일정과 사업 구조를 병행 설계하고 있다. 동시에 정부가 주도하는 ‘새만금·전북 대혁신 태스크포스(TF)’에도 참여해 인허가, 기반시설 구축, 정책 지원 방안을 협의 중이다. 정책금융기관이 초기 단계부터 참여하면서 프로젝트 리스크 관리 구조도 병행 구축되는 모습이다. 대규모 장기 투자 사업의 경우 자금 조달 안정성과 수익 구조 설계가 핵심 변수로 작용하는데, 이번 협약은 금융 설계 단계에서 공공 부문의 역할을 명확히 한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기후금융이 포함되면서 수소 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사업의 금융 조달 여건이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 입지 측면에서는 새만금 지역의 재생에너지 공급 여건과 물류 인프라가 주요 변수로 작용한다. 대규모 태양광 발전과 항만·공항을 결합한 트라이포트 기반은 수출 중심 산업 구조에 유리한 조건으로 꼽힌다. 여기에 계획된 신도시 인프라와 인력 유입이 결합될 경우 산업 클러스터 형성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투자를 통해 기존 완성차 중심 사업 구조에서 로봇, AI, 에너지 솔루션을 포함한 미래 기술 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로보틱스와 수소 에너지는 그룹 차원의 중장기 성장 축으로 설정된 분야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지난 2월 새만금 혁신성장거점 구축 협약 체결 이후 정부 부처 및 관계 기관과 프로젝트 관련 세부 사업 검토 및 투자 구조 설계를 속도감 있게 진행하고 있다”며 “향후 필요한 협의를 이어가며 단계별 추진 방안과 투자 일정을 구체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2026-04-06 17:2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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