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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독일도 축구협회 수사…월드컵 뒤 불거진 '운영 비리 의혹'
[경제일보] 월드컵이 한창인 시기에 한국과 독일 축구협회가 나란히 수사 문제로 뉴스에 올랐다. 한국에서는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을 둘러싼 고발 사건이 서울경찰청으로 넘어갔다. 독일에서는 유로2024 개최도시 공무원들에게 티켓과 숙박 혜택이 제공됐다는 의혹으로 수사당국이 독일축구협회(DFB) 본부와 지방 행정기관을 압수수색했다. 두 사건은 성격이 다르다. 한국은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과 홍명보 전 감독 선임 과정에서 협회 내부 절차와 권한 배분이 제대로 지켜졌는지가 쟁점이다. 독일은 국제대회 운영 과정에서 개최도시 관계자들이 직무와 관련해 부당한 혜택을 받았는지를 들여다보는 수사다. 그러나 축구협회가 대표팀 운영과 국제대회 개최를 맡는 공적 조직이라는 점에서, 두 사건 모두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 문제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 ◆ 한국은 감독 선임 과정이 수사 대상 서울 종로경찰서는 1일 대한축구협회 관련 고발 사건 8건을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금융범죄수사대로 이송했다. 종로서는 2024년 7월부터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과 이임생 전 기술총괄이사 등을 상대로 제기된 고발 사건을 맡아 왔다. 고발인들은 클린스만 감독과 홍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협회 고위 관계자들이 부당하게 개입했다며 업무방해와 업무상 배임, 강요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홍 감독은 고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수사보다 먼저 행정 절차에서 논란이 커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4년 특정감사에서 감독 선임 과정에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서울행정법원도 지난 4월 축구협회가 문체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협회 패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홍 감독 선임 과정에서 후보 선별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고 봤다. 축구협회는 항소했다. 다만 행정법원의 판단이 형사책임으로 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찰은 전력강화위원회와 이사회가 실제로 정해진 권한에 따라 운영됐는지, 특정 인사가 내부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는지, 감독 계약과 예산 집행 과정에서 협회에 손해가 발생했는지를 따로 살펴야 한다. 서울청은 종로서가 확보한 관계자 진술과 협회 회의 자료, 문체부 감사 기록, 행정소송 자료를 검토한 뒤 추가 조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 독일은 유로2024 티켓·숙박 혜택 수사 독일에서는 유로2024 대회 운영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범죄수사국과 보훔 검찰청은 1일 프랑크푸르트의 DFB 본부와 겔젠키르헨 등 유로2024 개최도시 행정기관을 압수수색했다. 수사당국은 유로2024 대회운영사인 ‘유로2024 GmbH’ 관계자가 개최도시 공무원들에게 국가대표 경기 티켓과 호텔 숙박 혜택을 제공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개최도시 공무원이 대회 운영과 관련한 업무를 맡은 상태에서 이런 혜택을 받았다면 직무 관련성이 쟁점이 될 수 있다. 압수수색 대상에는 베를린·뮌헨·함부르크·슈투트가르트·도르트문트·뒤셀도르프 등 유로2024 경기가 열린 도시의 행정기관도 포함됐다. 수사당국은 혜택이 누구에게 어떤 절차로 제공됐는지, 대회운영사 내부에서 이를 승인한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DFB 본부가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지만, DFB 자체나 소속 임직원이 직접 피의자로 지목된 것은 아니다. DFB는 대회운영사 관련 자료 확보를 위해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독일 대표팀은 월드컵 32강에서 탈락한 직후여서 수사 소식이 더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대표팀 경기력과 유로2024 운영 의혹은 별개의 사안이다. 하나는 감독·선수·전술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대회 운영과 공무원 윤리의 문제다. ◆ 성적과 수사는 별개지만, 신뢰는 함께 흔들린다 한국과 독일 모두 대표팀 성적 논란이 협회 운영 문제와 겹쳤다. 한국에서는 감독 선임 과정이 오랫동안 논란이 됐고, 독일에서는 월드컵 조기 탈락 뒤 유로2024 수사가 시작됐다. 경기 결과가 수사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감독 선임 절차가 문제가 됐다고 해서 경기 성적이 자동으로 설명되는 것도 아니고, 월드컵에서 졌다고 해서 대회 운영 비리가 입증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팬들은 대표팀과 협회를 따로 보지 않는다. 대표팀이 부진한데 협회 운영을 둘러싼 의혹까지 나오면, 경기력에 대한 불만은 조직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기 쉽다. 한국 수사는 감독 후보를 누가 어떤 절차로 추천했는지, 전력강화위원회와 이사회가 실제로 권한을 행사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독일 수사는 개최도시 관계자들이 받은 티켓과 숙박 혜택이 공식 업무 범위를 벗어난 것이었는지, 대회운영사와 행정기관 사이에 부당한 거래가 있었는지를 가리는 과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독일의 수사는 출발점도, 적용 법리도 다르다. 그러나 축구협회가 공적 책임을 가진 조직이라는 점은 같다. 대표팀 감독을 뽑는 절차와 국제대회를 운영하는 기준이 불투명하면, 경기장 밖의 문제가 경기장 안의 성과만큼 오래 남는다.
2026-07-02 10:4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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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보완수사권, 누구를 위해 폐지하나
[경제일보] 김민석 국무총리가 25일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정부의 최종 입장이라고 밝혔다. 불과 며칠 전 이재명 대통령이 "예외적 경우까지 봉쇄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신중론을 펴던 것과 정반대다. 대통령은 국회의 숙의를 당부했는데, 총리는 그 숙의를 건너뛰고 결론부터 내놓았다. 정부 안의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을 국민이 지켜본 셈이다. 이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의 배경을 짚어보면 사정이 드러난다. 8월 17일로 예정된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다.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를 줄곧 외쳐온 정청래 전 대표가 당권 경쟁의 한 축에 서 있고, 친명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김 총리 역시 그 흐름에서 비켜설 처지가 아니었다. 김 총리의 발표가 나오자 정 전 대표는 곧바로 "환영한다. 국회에서 불가역적으로 완전 폐지할 테니 시행령도 완벽한 폐지로 준비해 달라"고 화답했다. 한 사법 제도의 운명이 정책 토론이 아니라 당내 세력 다툼의 자장 안에서 정해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문제는 이 논쟁이 추상적인 권력 다툼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검찰청 통계를 보면, 올해 3~4월 일선 검찰청 12곳이 처리한 송치사건 5만5174건 가운데 보완수사를 거친 사건이 2만5152건, 45.59%에 달한다. 송치된 사건 절반가량이 보완수사라는 절차를 통해 다시 검토받았다는 뜻이다. 이 수치가 말해주는 건 단순하다. 보완수사권은 정치인이나 대기업 수사 같은 세간의 주목을 받는 사건에만 작동하는 권한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적인 분쟁을 처리하는 데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 사례 하나를 보자. 전주지검은 최근 지인들에게 해산물 대금과 차용금 명목으로 수천만 원을 가로챈 60대 여성을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경찰은 처음에 변제 능력이 인정되고 기망 행위가 불분명하다며 불송치 결정을 내렸던 사건이다. 검찰이 직접 조사에 나서 이 여성이 이미 채무초과 상태였고 사실상 소득 없이 차용금으로 생활해왔다는 점, 사기죄 처벌 전력이 여섯 번이고 불송치로 끝난 사건이 일곱 건이나 된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비로소 상습 사기의 전모가 드러났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 멈췄더라면 피해자들은 끝내 가해자의 죗값을 묻지 못했을 사건이다. 법조계가 우려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한 현직 검사는 "사건을 수사한 당사자가 자신의 수사 결과가 잘못됐다고 인정하고 이를 뒤집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형사 사건을 다뤄온 한 변호사는 보완수사권 폐지를 두고 "경찰 수사에 대한 채점 기능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검찰이 재수사를 요청해도 경찰이 결론을 바꾸지 않은 채 그대로 돌려보내는 사건이 적지 않은 현실에서, 이를 교정할 마지막 장치마저 사라진다는 뜻이다. 이화여대 이창온 교수는 보완수사권이 "기소·불기소에 대한 최종 결정 권한과 책임을 검사에게 두는" 제도적 근거라는 점을 짚으며, 수사 자료를 충실히 살피지 못한 채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은 책임의 원리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물론 폐지론에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 보완수사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실질은 영장 청구와 압수수색, 피의자 조사까지 가능한 수사권이며, 이를 남겨두는 한 검찰의 권한은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는 우려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것이 권력 집중을 막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라는 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이 원칙이 현실의 형사사법 절차에서 어떤 공백을 만들어낼지에 대한 답이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검찰개혁추진단이 검토하던 절충안, 곧 검사에게 참고인 조사와 자료 요청 권한만 주는 '보완조사권'에 대해서도 고려대 장영수 명예교수는 "그 과정에서 확보된 증거를 재판에 쓸 수 있다면 간판만 바꾼 사기이고, 쓸 수 없다면 해봤자 소용없는 제도"라고 잘라 말했다. 오는 10월 검찰청이 폐지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한다. 형사소송법의 핵심 쟁점을 정리할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런데 정부는 정작 정부안조차 내놓지 않은 채 국회에 결론을 떠넘겼고, 그 국회의 논의는 당권 경쟁의 일정에 휘말릴 처지에 놓였다. 검찰 내부에서 "그간의 공청회와 토론은 다 무엇이었느냐"는 반발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제도를 설계하는 책임 있는 주체들이 토론의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형식적 절차만 남겨두려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보완수사권 존폐는 결국 누가 사건 처리의 마지막 책임을 지느냐의 문제로 돌아온다. 그 책임을 어떤 기관에 맡길지는 신중하게 따져볼 일이지만, 적어도 그 논의가 당권을 잡기 위한 셈법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 제도가 바뀌면 사건은 다시 사람을 향한다. '동네 언니들'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처럼, 그 사람들 대부분은 정치적 주목을 받지 못하는 평범한 시민들이다.
2026-06-26 10:3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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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디브 선거는 배우고, 국내 투표용지는 못 챙긴 선관위
[경제일보]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신뢰를 정면으로 흔든 사건이다. 선거 당일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에게 투표용지를 제때 내주지 못했다. 선거 절차에서 투표용지는 가장 기초적인 준비물이다. 참관인 배치, 개표 관리, 선거운동 단속, 투표함 이송도 중요하지만 유권자에게 건넬 투표용지가 없으면 선거는 그 자리에서 멈춘다. 이번 일을 현장 착오나 일시적 혼선으로 넘길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의 사퇴는 뒤늦은 수습의 시작일 뿐이다. 이번 사태는 한 위원장의 사의 표명으로 덮을 수 있는 행정 사고가 아니라 중앙선관위 운영 전반의 책임을 묻는 사건으로 번지고 있다.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다. 그러나 독립성은 정치권으로부터 선거관리를 지키기 위한 장치이지 국민 앞의 설명 책임을 덜어주는 방패가 아니다. 선관위가 정치권의 영향에서 벗어나 선거를 관리하려면 먼저 국민 앞에 설명 가능한 조직이어야 한다. 선거관리의 기본이 무너졌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 본투표 과정에서 전국 91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7194장이 부족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중단된 곳도 26곳에 달했다. 중앙선관위가 애초 밝힌 부족 규모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선관위가 선거 직후 사태의 전모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거나 적어도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선거관리의 실패가 투표소 현장에서 그쳤는지, 보고와 대응 과정까지 이어졌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노 전 위원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허철훈 전 사무총장도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사퇴만으로 매듭지을 사안으로 보기 어렵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노 전 위원장과 허 전 사무총장 등 선관위 관계자들을 출국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선관위와 서울시선관위,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일부 구 선관위 등에 대한 압수수색도 진행됐다. 수사는 수사대로 진행돼야 하고, 조직 책임은 조직 책임대로 규명돼야 한다. 형사책임 성립 여부와 별개로 선관위가 선거관리의 기본 의무를 다했는지는 반드시 확인돼야 한다. 과로론으로 덮을 수 없는 중앙선관위 책임 선관위 내부 게시판에는 현장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글도 올라왔다. 한 직원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선관위가 잘못한 건 인정하더라도 선거 시스템이 과부하된 현 상황은 알려야 한다”며 “근본적 원인은 살인적 업무량과 적은 인원”이라고 썼다. 또 다른 직원은 “1명이 100곳 이상의 투표소를 관리하는데, 용지가 부족하다는 연락이 동시다발적으로 오면 혼자 처리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서울 송파구 선관위의 경우 직원 13명 중 3~4명 정도가 관할 투표소 146곳의 투표 상황 관리와 개표 준비까지 맡아 비상 상황에 대응하기 어려웠다는 설명도 나왔다. 현장 직원의 고충은 가볍게 볼 수 없다. 선거 때마다 구·시·군 선관위 직원들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린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1명이 100곳 넘는 투표소를 관리해야 했다면 정상적인 인력 운용으로 보기 어렵다. 다만 바로 그 사정 때문에 중앙선관위의 책임은 더 무거워진다. 인력이 부족했다면 선거 전에 보강 방안을 마련했어야 한다. 업무량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면 위험 지점을 미리 점검했어야 한다. 투표용지 배부량 산정, 예비분 확보, 긴급 수송 체계, 보고 라인, 현장 대응 매뉴얼은 선거가 끝난 뒤 내부 게시판에 호소할 문제가 아니라 선거 전에 갖춰야 할 선거관리의 기본 장치다. 유권자 입장에서 따질 대목은 하나다. 왜 투표소에 투표용지가 부족했느냐는 것이다. 업무가 많았다는 말은 설명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 선거관리기관이 선거 당일 투표용지를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면 먼저 국민 앞에 책임을 설명해야 한다. 그다음에 인력과 제도 문제를 말해야 한다. 순서가 바뀌면 내부 사정은 국민 눈에 책임 회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몰디브 출장이 부른 국민의 냉소 이번 사태가 더 큰 분노를 부른 데에는 선관위의 기존 논란도 영향을 미쳤다. 성과급, 휴직, 해외 출장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몰디브 대통령 선거 참관 출장은 상징성이 크다. 2023년 9월 선관위 직원 5명은 7박 9일 일정으로 몰디브 대통령 선거를 참관했다. 보고서에는 후보자 선거사무소 방문, 선거운동 참관, 투·개표 참관, 공식 만찬 참석 등이 담겼다. 출장 목적은 ‘변화된 외국 선거환경 파악 및 선거법제 비교 연구’였다. 문구만 놓고 보면 그럴듯하다. 그러나 이번 사태 이후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몰디브에서 선거 제도를 배우고 왔다는 기관이 정작 국내 지방선거에서는 투표용지를 못 챙겼다. 보고서에 해변 깃발 사진과 섬 지역 선거운동 설명이 실렸다는 대목까지 알려지면서 국민의 냉소는 더 커졌다. 선거 제도를 배우러 몰디브까지 갔다는 설명은 지금 상황에서 희대의 코미디처럼 들린다. 외국 선거제도 연구 자체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해외 선거 참관도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출장은 성과로 설명돼야 한다. 몰디브 출장 보고서가 국내 선거관리 개선에 어떤 도움을 줬는지는 이번 사태 앞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해변의 깃발과 섬 지역 선거운동을 보고 온 기관이 정작 국내 투표소의 용지 부족을 막지 못했다면, 제도 연구라는 설명보다 방만한 조직문화라는 비판이 먼저 나올 수밖에 없다. 선관위는 2024년 총선을 앞두고도 몰디브를 포함해 1년간 33차례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스위스, 스페인 등 유럽을 중심으로 선거 신뢰성 제고 등을 이유로 한 출장도 이어졌다고 한다. 해외의 선거 신뢰성을 살피러 다니는 동안 국내 선거관리의 신뢰는 어디서 새고 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선거 신뢰성은 보고서 제목이 아니라 투표소 현장에서 쌓인다. 유권자가 줄을 서고, 신분을 확인받고,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소로 들어가는 과정이 막힘없이 작동해야 신뢰가 생긴다. 독립성은 책임 회피의 방패가 아니다 선관위가 그동안 누려온 독립성과 권한은 작지 않다. 선거를 관리하고 정당·정치자금 업무를 다루며 위법 선거운동을 조사한다. 정치권도 선관위 판단을 무겁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 기관일수록 내부 통제와 외부 검증은 더 엄격해야 한다. 그런데 선관위는 독립기관이라는 이유로 감사와 인사, 예산, 조직 운영 전반에서 느슨한 감시를 받아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독립기관이라는 지위가 성역처럼 굳어졌다면 이번 사태는 그 벽을 다시 세울지, 허물지 가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국회가 선관위 개혁 법안을 내놓는 흐름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 외부감사를 가능하게 하는 감사원법 개정과 전국 선거 기간 선관위 직원들의 휴가·휴직 사용을 제한하는 입법을 예고했다. 선거가 없는 시기와 전국 단위 선거가 있는 시기의 휴직자 수 차이를 들어 선관위 조직 운영 문제도 지적했다. 여야 원내지도부 역시 이번 사태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 큰 틀에서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위원회 설치, 선관위원 연임 제한 등도 논의되고 있다. 선관위 개혁은 정치적 보복이나 특정 진영의 이해관계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선거관리기관을 정권의 하부기관처럼 만드는 일은 더 큰 위험을 낳을 수 있다. 그렇다고 현 체제를 그대로 두자는 결론으로 갈 수도 없다. 독립성과 책임성은 함께 가야 한다. 책임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독립성은 국민에게 특권으로 보인다. 국민이 신뢰하지 않는 독립기관은 제도적 권위도 유지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는 선관위 직원 몇 명의 실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투표용지 수요 예측, 인쇄·배부 계획, 예비 물량 확보, 현장 보고 체계, 비상 대응, 사후 설명까지 선거관리 전 과정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살펴야 한다. 노태악 체제의 중앙선관위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사의를 표명했다고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 수사 대상이 됐다고 정치적 논란으로만 몰고 갈 일도 아니다. 선거관리 실패의 원인과 책임자를 구체적으로 가려야 한다. 선관위 내부 직원들이 과로를 호소했다면 그 부분도 함께 조사해야 한다. 누가 그런 인력 배치를 결정했는지, 선거 전 위험 보고는 있었는지, 중앙선관위는 현장 부담을 알고 있었는지, 알고도 방치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현장 직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동시에 현장 고충을 앞세워 조직 책임을 흐려서도 안 된다. 선거관리기관의 책임은 가장 윗선에서 시작된다. 노태악 전 위원장과 중앙선관위 수뇌부가 책임 규명의 중심에 서야 한다. 민주주의의 신뢰는 선거 당일 투표소에서 확인된다. 투표용지가 충분히 놓여 있어야 하고, 유권자가 정해진 절차에 따라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즉시 해결돼야 한다. 사후에는 정확한 설명과 책임 추궁이 따라야 한다. 선관위가 이 기본을 놓쳤다면 그동안 내세워온 선거관리 전문성도 다시 검증받을 수밖에 없다. 몰디브 선거는 배우고, 국내 투표용지는 못 챙겼다는 비판은 거칠지만 지금 민심의 방향을 잘 보여준다. 선관위가 국민의 분노를 억울하게만 여긴다면 사태의 무게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국민이 선관위에 요구한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선거 당일 투표용지가 부족하지 않게 하라는 요구였다. 그 요구조차 충족하지 못한다면 선관위의 권위도 유지되기 어렵다. 선관위 개혁은 더 미루기 어렵다. 외부감사, 인사 검증, 예산 통제, 해외출장 심사, 휴직 관리, 선거 비상 대응 체계까지 다시 봐야 한다. 독립성이라는 이름 아래 방만함이 방치됐다면 걷어내야 한다. 정치권도 이 문제를 정쟁의 도구로만 삼아서는 안 된다. 선거관리기관을 바로 세우는 일은 어느 정당의 유불리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참정권 문제다. 유권자의 한 표를 관리하라고 만든 기관이 유권자에게 줄 종이 한 장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노태악 전 위원장의 사퇴는 출발점에 가깝다. 책임 규명과 제도 개혁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이번 사태는 선관위 역사에 가장 부끄러운 장면으로 남게 될 것이다.
2026-06-15 09: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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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악은 그 자리에 무엇을 하러 갔나
[경제일보] 대법관까지 지낸 전직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출국금지됐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수사하는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과 허철훈 전 사무총장 등 선관위 관계자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했다. 합수본은 중앙선관위와 서울시선관위, 송파·서초·강남·광진·동작구선관위 등 7곳을 압수수색했다. 투표용지 인쇄 계획서, 회의록, 예산서, 투표록 등 선거 준비와 당일 대응을 보여줄 자료들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출국금지는 유죄 판단이 아니다. 압수수색 역시 혐의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다. 그러나 이 사태가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선관위의 공적 권위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선거관리의 최종 책임자였던 인물이 대법관 출신 노태악이라는 점은 이 사안을 더 무겁게 만든다. 국민이 묻는 것은 단순하다. 노태악은 그 자리에 무엇을 하러 갔나. 투표용지가 모자랐다는 말은 사소한 행정 실수가 아니다. 유권자가 투표소에 갔는데 국가가 표를 줄 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선거관리에서 가장 기초적인 물적 준비가 무너진 것이다. 선거는 추상적인 민주주의 의식이 아니다. 유권자 명부, 투표소, 기표대, 투표함, 투표용지가 있어야 작동하는 국가 절차다. 그중 투표용지는 선거의 시작점이다. 그것이 부족했다면 선거관리 기관은 가장 낮은 문턱도 넘지 못한 셈이다. 더 심각한 것은 규모다. 처음에는 일부 투표소의 돌발 상황처럼 알려졌다. 그러나 선관위 자체 조사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전국 50곳으로 늘어났다. 일부 지역에서는 투표가 중단됐다가 재개됐다. 유권자는 줄을 서서 기다렸고, 선거관리 직원들은 현장에서 혼란을 수습했다. 투표소 현장의 실무자만 탓할 일이 아니다. 이런 사태가 선거 당일 전국 곳곳에서 발생했다면 중앙선관위의 준비, 점검, 보고, 대응 체계 전반이 허술했다는 뜻이다. 공직선거법은 투표용지와 투표함 작성·송부의 실무 주체를 구·시·군선관위로 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앙선관위원장이 지역 실무 뒤에 숨을 수는 없다. 중앙선관위는 전국 선거관리 기준을 세우고, 위험 요인을 점검하고, 선거 당일 돌발 상황에 대응할 체계를 갖춰야 하는 기관이다. 선거관리의 독립성은 책임을 피하라는 방패가 아니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해 공정한 선거를 관리하라는 헌법적 신뢰다. 그 신뢰가 투표소 앞에서 무너졌다. 노 전 위원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법원 주요 보직을 거쳤고, 법원장을 지냈고, 대법관까지 올랐다. 이후 중앙선관위원장에 취임했다. 사법부 엘리트가 밟을 수 있는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마지막 공직의 장면으로 남긴 것이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출국금지라면, 국민은 그의 공직 생활 전체를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는 법정에서, 법원에서, 선관위에서 어떤 긴장감으로 일했는가. 물론 이번 사태만으로 과거 판결까지 싸잡아 의심할 수는 없다. 판결은 기록과 법리에 따라 평가돼야 한다. 그러나 최고 법관 출신에게 기대했던 공적 자세와 관리 능력이 이번 사태에서 너무 초라하게 드러난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대법관이라는 이력은 단순한 명예가 아니다. 국가 의사결정의 최상층에서 법과 절차의 무게를 다뤄본 경력이다. 그런 사람이 선거관리 기관의 수장이 됐다면 적어도 선거의 기본 절차만큼은 누구보다 엄격하게 챙겼어야 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선관위는 유권자가 투표소에 온 뒤에야 투표용지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선거 전에 예상 투표율을 어떻게 계산했는지, 인쇄 매수를 어떻게 정했는지, 지역 선관위의 준비 상황을 중앙선관위가 어떻게 점검했는지, 부족 가능성을 보고받고도 묵살한 정황은 없었는지 수사가 밝혀야 한다. 그러나 법적 책임과 별개로 행정적 책임은 이미 분명하다. 선거 당일 투표용지가 모자랐다. 중앙선관위원장은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노 전 위원장에게 이번 일이 처음 맞은 위기는 아니었다. 그는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 이후 중앙선관위원장에 취임했다. 사전투표 부실 관리로 선관위 신뢰가 흔들린 뒤 조직을 바로 세우라는 요구 속에서 자리에 올랐다. 그 뒤 선관위 고위직 자녀 특혜채용 의혹이 터졌고, 선관위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다. 사과는 반복됐고 쇄신 약속도 있었다. 그러나 국민이 본 것은 바뀐 선관위가 아니라 또 무너진 선관위였다. 이쯤 되면 문제는 한 번의 실수가 아니다. 책임지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책임지지 않는 조직 문화, 독립성을 말하면서 내부 통제를 미루는 관행, 선거가 끝나면 논란도 지나간다는 안이함이 누적된 결과로 봐야 한다. 중앙선관위는 헌법기관이라는 지위에 기대어 외부 감시에는 예민하게 반응해왔다. 그러나 독립성은 무능을 덮어주는 명분이 될 수 없다. 헌법기관일수록 책임의 기준은 더 높아야 한다. 노 전 위원장의 사퇴도 충분하지 않다. 물러나는 것은 정치적·도의적 책임의 시작일 뿐이다. 사퇴했다고 해서 선거 당일 투표권 행사에 차질을 빚은 유권자의 문제 제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선관위 내부에서 어떤 판단이 있었는지, 누가 보고했고 누가 승인했는지, 어떤 지침이 내려갔는지, 예산과 인쇄 물량 산정에 어떤 오류가 있었는지 끝까지 확인해야 한다. 책임선이 실무자 몇 명에서 끊겨서도 안 된다. 실무자는 지시와 기준에 따라 움직인다. 기준을 세운 사람, 점검하지 않은 사람, 위험 신호를 놓친 사람이 함께 드러나야 한다. 대법관 출신이라는 경력은 이번 사태에서 오히려 더 무거운 질문을 부른다. 법관은 절차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직업이다. 작은 송달 하자 하나, 증거조사 절차 하나, 기일 통지 하나가 재판 전체의 적법성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매일 다루는 사람이 법관이다. 그런 법관 출신이 선거관리 기관의 정점에 있었다면 투표 절차의 작은 허점이 얼마나 큰 불신으로 번지는지 몰랐다고 할 수 없다.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면서도 막지 못했다면 더 큰 책임이다. 국민은 선관위원장에게 선거 당일 투표소마다 서 있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국 선거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점검하고, 실패 가능성을 줄이라고 요구한다. 그 자리는 명예직이 아니다. 선거가 끝난 뒤 사과문을 읽는 자리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 절차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도록 책임지는 자리다. 노 전 위원장은 그 책임을 다했는가. 이번 사태가 던지는 질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수사는 차분하게 진행돼야 한다. 정치권도 이 사안을 정파적 공방으로만 소비해서는 안 된다. 선거관리 실패를 이유로 근거 없는 음모론을 키우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정쟁화를 걱정한다는 이유로 책임 규명을 흐려서도 안 된다. 투표용지 부족은 실제로 발생했다. 선관위가 자체 조사로도 전국 50곳의 문제를 확인했다. 이 정도 사안이라면 조직 내부 감사나 위원장 사퇴만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노태악 개인의 불명예로만 볼 사안도 아니다. 이번 사태는 우리 공직사회 엘리트 시스템의 취약한 단면을 보여준다. 높은 자리에 오른 경력과 실제 관리 능력은 같지 않다. 법복의 권위가 행정 능력을 보증하지 않는다. 요직을 두루 거쳤다는 사실이 현장의 위험을 읽는 감각까지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높이 올라간 사람일수록 조직의 보고서와 의전 뒤에 숨어 현장의 균열을 놓치기 쉽다. 그 균열이 선거 당일 투표소 앞에서 터졌다. 국민이 느끼는 허탈감은 여기에 있다. 선관위는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이다. 도로 포장도, 재난 구조도, 산업 정책도 아니다. 선거가 본업이다. 그런데 본업의 가장 기본인 투표용지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국가기관이 자신의 존재 이유에 해당하는 일을 실패한 것이다. 그 실패의 정점에 있던 사람이 대법관 출신 중앙선관위원장이었다. 이것이 이번 사태를 더 부끄럽게 만든다. 노 전 위원장은 사과했고 물러났다. 그러나 사과와 사퇴만으로 끝낼 수 없는 공적 실패가 있다. 이번 일이 그렇다. 합수본 수사는 누가 어떤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 가려야 한다. 동시에 중앙선관위는 선거관리 시스템을 처음부터 다시 열어야 한다. 투표율 예측, 투표용지 인쇄 기준, 예비 물량 관리, 지역 선관위 보고 체계, 선거 당일 비상 대응, 중앙의 지휘 권한과 책임 구조를 모두 공개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거창한 구호로만 지켜지지 않는다. 투표소 문이 열리고, 유권자가 신분을 확인받고,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하고, 투표함에 넣는 절차가 차질 없이 이어질 때 지켜진다. 그 기본 절차가 멈추면 국민은 선거 결과 이전에 선거관리 자체를 의심하게 된다. 선관위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일은 특정 정당의 비판이 아니라 유권자의 신뢰 상실이다. 노태악은 그 자리에 무엇을 하러 갔나. 이 질문은 한 사람을 겨냥한 분노에 그치지 않는다. 헌법기관의 독립성이 책임 공백으로 변질되지 않았는지, 사법 엘리트의 권위가 실제 행정 실패를 가리고 있지는 않았는지, 선관위가 국민 앞에 충분히 낮은 자세로 일해왔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투표용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선관위라면 국민에게 신뢰를 요구할 자격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이번 사태의 결론은 수사기관의 판단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법적 처벌 여부와 별개로 노태악이라는 이름은 선거관리 실패의 책임자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대법관에서 중앙선관위원장으로 이어진 화려한 경력의 끝이 왜 이런 모습이어야 했는지, 그 답은 노 전 위원장과 선관위가 스스로 내놓아야 한다. 국민은 이미 묻고 있다. 그 자리가 그렇게 가벼운 자리였느냐고.
2026-06-13 12: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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