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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의 시대에서 정리의 시대로"…시험대 오른 '롯데 DNA'
[경제일보] 롯데는 한국 재계에서 가장 독특한 출발점을 가진 그룹이다. 창업자 신격호 명예회장은 1948년 일본 도쿄에서 껌 사업으로 롯데를 시작했다. 이후 1967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세우며 국내 사업을 본격화했다. 롯데의 첫 DNA는 소비자의 입맛과 생활 반경을 파고드는 데 있었다. 껌과 과자, 음료, 햄과 우유, 패스트푸드, 백화점과 호텔, 놀이공원까지 롯데는 제조업의 공장보다 소비자의 일상에 가까운 곳에서 몸집을 키웠다. 롯데식 성장은 ‘생활의 점유율’을 높이는 방식이었다. 삼성과 현대차가 반도체와 자동차, 중후장대 제조업을 앞세웠다면 롯데는 먹고, 마시고, 사고, 쉬고, 노는 공간을 장악했다.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음료, 롯데리아, 롯데백화점, 롯데호텔, 롯데월드가 쌓아 올린 것은 단순한 계열사 목록이 아니었다. 한국인의 소비 동선 속에 롯데라는 이름을 심는 과정이었다. 1970년대 이후 롯데는 식품을 넘어 유통과 관광, 석유화학으로 사업을 넓혔다. 롯데 공식 연혁에 따르면 롯데는 1976년 호남석유화학을 인수했고, 1979년 롯데쇼핑을 세웠다. 식품과 유통에서 번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호텔, 백화점, 마트, 화학, 건설까지 넓히는 방식이었다. 롯데 DNA의 핵심은 ‘크게 한 번 베팅하는 승부수’보다 ‘될 만한 영역을 넓게 깔고, 오래 버티며, 전국망으로 키우는 확장력’이었다. 확장의 DNA, 소비 동선을 장악하다 롯데의 확장 방식은 시대와 잘 맞았다. 한국 경제가 고성장하던 시기, 소비자는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샀다. 도심에는 백화점이 들어섰고, 외곽에는 마트가 생겼다. 해외여행과 관광 수요가 커지면서 호텔과 면세점도 성장했다. 롯데는 이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식품에서 시작해 유통과 관광으로, 다시 석유화학과 건설로 이어지는 확장은 내수 성장기의 성공 공식이었다. 롯데의 강점은 안정성이었다. 백화점과 마트, 편의점, 호텔, 식품은 경기 변동을 타더라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수요를 품고 있다. 롯데는 이와 같은 안정성을 바탕으로 재계 상위권에 올라섰다. 신 명예회장 시대의 롯데는 과감한 기술 승부보다 치밀한 입지, 브랜드, 유통망, 현금흐름으로 성장한 그룹이었다. 하지만 성장의 기반이던 내수 확장 공식은 지금 시험대에 올라 있다. 쿠팡과 네이버, 전문몰과 해외 직구가 소비 동선을 바꿨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은 여전히 강하지만, 성장률은 과거 같지 않다. 롯데온은 그룹의 유통 자산을 온라인으로 묶겠다는 시도였지만, 시장의 판을 뒤집을 만큼의 존재감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석유화학도 더 이상 안정적인 캐시카우가 아니다. 중국과 중동의 증설, 글로벌 수요 둔화, 범용 제품 공급과잉이 겹치면서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구조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롯데케미칼은 한때 롯데의 제조업 확장을 상징했지만, 지금은 그룹 체질 전환의 가장 무거운 숙제가 됐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 롯데 DNA는 변화하고 있다. 과거 롯데는 좋은 입지에 점포를 깔고, 좋은 시장에 설비를 늘리며 성장했다. 지금은 반대로 줄이고, 합치고, 멈추는 능력이 필요해졌다. 성장기의 롯데가 ‘확장형 그룹’이었다면, 저성장기의 롯데는 ‘정리형 그룹’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구조조정의 시대, ‘많이 깔던 롯데’의 반전 과제 신동빈 회장 체제의 과제는 분명하다. 매출 규모보다 수익성, 점포 수보다 효율, 계열사 수보다 포트폴리오 질을 따져야 한다. 올해 초 롯데그룹의 경영 회의에서 신 회장이 수익성 중심 경영과 고강도 구조조정을 주문한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롯데는 더 이상 많이 벌려놓는 방식만으로 버티기 어렵다. 투자자와 시장은 “얼마나 크냐”보다 “얼마나 남기느냐”를 묻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에서도 변화는 드러났다. 공정위는 올해 자산총액 5조원 이상 102개 기업집단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이 과정에서 한화가 처음으로 재계 5위권에 진입했고, 롯데는 포스코와 함께 순위가 밀린 것으로 보도됐다. 순위 자체가 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징성은 작지 않다. 한화가 방산·조선·우주로 체급을 키우는 동안 롯데는 화학 부진과 유통 전환의 숙제를 동시에 안게 됐다. 롯데의 강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식품과 음료, 백화점, 호텔, 면세, 관광, 물류, 화학을 모두 가진 그룹은 드물다. 소비자의 하루를 따라가면 롯데가 여러 번 등장한다. 커피와 과자, 편의점, 마트, 백화점, 호텔, 놀이공원, 면세점, 택배, 카드와 멤버십이 하나의 생활권 안에 있다. 이 자산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흩어진 자산을 하나의 경쟁력으로 묶는 능력이다. 롯데는 오프라인 유통의 강자였지만, 온라인에서는 쿠팡과 네이버 같은 플랫폼 기업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마트와 슈퍼, 백화점과 이커머스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신선식품과 프리미엄 식품, 지역 맞춤형 점포, 오프라인 픽업과 반품, 멤버십 데이터 활용은 롯데가 다시 강점을 찾을 수 있는 영역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계열사별 이해관계를 넘어 고객 경험을 중심으로 조직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화학 부문에서는 범용 제품 의존도를 낮추고 고부가·스페셜티 소재로 이동해야 한다. 롯데케미칼은 올해를 미래 성장을 위한 전환점으로 삼겠다고 밝히며, 사업구조 전환과 재무 건전성 강화, 경쟁력이 낮거나 차별화가 어려운 사업의 합리화를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생존 조건에 가깝다. 석유화학은 더 이상 설비를 많이 가진 기업이 이기는 산업이 아니다.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남기며, 어디에 다시 투자할지를 정하는 산업이 됐다. 롯데 DNA의 본질은 ‘생활산업의 확장’이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DNA는 ‘선택과 집중’이다. 신격호 시대의 롯데가 소비자의 생활 반경을 넓게 장악한 그룹이었다면, 신동빈 시대의 롯데는 그 넓은 반경을 다시 효율적으로 재배치해야 하는 그룹이다. 과거에는 점포와 설비를 늘리는 것이 성장의 언어였다. 지금은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줄이는 것도 성장의 언어가 됐다. 롯데의 시험대는 그래서 냉정하다. 유통에서는 온라인 전환의 속도를 높여야 하고, 화학에서는 구조조정의 고통을 견뎌야 한다. 호텔과 관광은 회복 국면을 살려야 하며, 식품은 글로벌 K푸드 흐름 속에서 새로운 성장 축을 만들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는 점에서 롯데의 과제는 복잡하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롯데에 필요한 것은 더 큰 확장이 아니라 더 정교한 재편”이라며 “롯데 DNA의 다음 장은 ‘확장’이 아니라 ‘정리’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아주경제 2026년 07월 14일자 13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7-14 10:3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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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의 간판에서 도시의 얼굴로…롯데백화점 성장의 서사
[경제일보] 서울 명동 한복판을 걷다 보면 한 시대의 소비 풍경이 겹쳐 보인다. 해외 관광객으로 붐비는 거리와 쇼핑백을 든 사람들, 계절마다 바뀌는 쇼윈도와 불이 꺼지지 않는 식품관까지. 그 중심에는 오랫동안 롯데백화점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첫 정장을 산 곳이고 누군가에게는 가족 외식의 기억이 남은 공간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번화함을 상징하는 장소다. 롯데백화점은 단순한 유통 점포가 아니라 한국 소비문화의 시간을 담아온 이름이다. 그 출발점에는 창업주 신격호가 있다. 그는 전후 혼란기 속에서 일본에서 사업 기반을 일군 뒤 한국에 돌아와 식품과 관광, 유통 산업에 잇따라 뛰어들었다. 당시 한국 경제는 생산 중심 사회에서 소비 중심 사회로 천천히 옮겨가던 시기였다. 사람들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생활 수준이 달라지면 상품을 파는 방식도 바뀔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신격호는 백화점을 단순히 물건을 진열하는 건물이 아니라 새로운 생활 문화를 보여주는 무대로 바라봤다. 이런 구상은 도심 핵심 입지 전략으로 이어졌다. 유동 인구가 많고 상징성이 큰 장소에 점포를 세워 사람을 끌어모으고 그 주변 상권까지 함께 키우는 방식이었다. 롯데백화점 본점이 자리 잡은 명동은 그 전략이 가장 잘 드러난 공간이다. 패션과 식품, 화장품과 리빙, 문화와 외식이 한 건물 안에서 돌아가는 경험은 당시 소비자에게 신선한 변화였다. 필요한 물건을 사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구경하고 머물고 즐기는 소비가 시작됐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곧 브랜드의 무대가 됐다. 국내 기업에는 가장 효과적인 전시장이었고 해외 브랜드에는 한국 시장 진출의 관문이었다. 쇼윈도 하나와 매장 배치 하나가 곧 유행을 만들던 시절이었다. 백화점이 도시의 문화 흐름을 이끄는 공간으로 자리 잡은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롯데백화점은 서울을 넘어 전국으로 보폭을 넓혔다. 부산과 대구, 대전과 광주 등 주요 도시 핵심 상권에 점포를 열며 전국 유통망을 구축했다. 대형 백화점의 등장은 지역 소비의 중심축을 바꾸는 사건에 가까웠다. 주변 상권이 커지고 교통이 정비됐으며 주거 선호도까지 달라졌다. 백화점 하나가 도시의 지도를 바꾸던 시절이었다. 롯데백화점이 경쟁력을 유지한 배경에는 상품 기획력과 운영 노하우가 있다. 해외 명품과 국내 대표 브랜드를 함께 키우고 식품관과 문화센터, 고객 서비스를 유기적으로 엮어 체류 시간을 늘렸다. 계절별 기획전과 팝업 행사, 우수 고객 관리 프로그램은 오랜 기간 업계의 기준으로 통했다. 소비자는 필요한 물건만 사러 오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유행과 정보를 얻기 위해 백화점을 찾았다. 잠실은 롯데백화점 진화의 또 다른 상징이다. 백화점과 호텔, 면세점, 엔터테인먼트 시설, 초고층 랜드마크가 결합한 잠실 일대는 전통적 의미의 점포를 넘어선 공간이 됐다. 쇼핑과 관광, 식음과 여가가 한곳에서 이뤄지는 복합 소비지로 성장했다. 과거 백화점이 상품을 파는 곳이었다면 이제는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성격이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유통업의 환경은 빠르게 바뀌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마다 소비 심리는 먼저 얼어붙었고 온라인 쇼핑의 급성장은 오프라인 유통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게 했다. 가격 비교는 몇 초면 끝나고 배송은 하루 안에 이뤄진다. 넓은 매장과 좋은 입지만으로는 고객을 붙잡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롯데백화점도 변화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매장 면적을 넓히는 방식에서 벗어나 콘텐츠와 체험, 공간 효율과 데이터 활용으로 전략의 무게중심을 옮겼다. 고객이 오래 머물고 다시 찾는 공간, 온라인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간을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대표 사례가 프리미엄 아울렛과 복합몰 확대다. 교외형 소비가 늘고 가족 단위 체류형 쇼핑이 자리 잡으면서 아울렛은 새 성장 동력이 됐다. 합리적 가격과 넓은 공간, 외식과 문화 시설을 함께 갖춘 모델은 기존 백화점과 다른 고객층을 끌어들였다. 유통 기업이 한 가지 형식만으로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 변화에 대응한 결과다. 디지털 전환도 핵심 과제다. 멤버십 데이터 분석과 개인 맞춤형 마케팅, 모바일 앱 연계 서비스, 온라인몰 강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고객은 앱으로 상품을 살펴보고 매장에서 직접 확인한 뒤 다시 온라인으로 구매한다.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흐려진 시장에서 고객 경험 전체를 설계하는 능력이 경쟁력이 되고 있다. 관광 수요 회복 역시 롯데백화점에는 중요한 변수다. 명동 본점과 잠실점 등 핵심 점포는 외국인 방문객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K뷰티와 패션, 식품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백화점은 단순 판매 공간을 넘어 한국 소비문화를 보여주는 창구가 된다. 호텔과 면세점, 관광 인프라와의 연계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롯데백화점의 강점은 오랜 브랜드 신뢰도와 핵심 입지, 전국 점포망, 협력사 네트워크, 축적된 고객 데이터에 있다. 소비 회복 국면이 오면 이런 자산은 빠르게 실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 시간의 자산이다. 과제도 적지 않다. 젊은 소비층은 가격과 속도, 차별화된 콘텐츠에 민감하다. 충성 고객만으로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점포별 수익성 격차와 높은 고정비 부담, 온라인 플랫폼과의 경쟁도 계속된다. 소비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프리미엄 수요와 실속 소비를 함께 잡아야 하는 숙제도 커진다. 롯데백화점이 향하는 곳은 뚜렷하다. 백화점이라는 업태를 지키는 데 머무르지 않고 도시의 소비와 여가를 설계하는 생활 플랫폼 기업으로 넓어지는 길이다. 상품 판매를 넘어 경험을 제공하고 점포 운영을 넘어 상권을 키우며 오프라인 공간을 넘어 데이터 기반 서비스를 강화하는 방향이다. 신격호 창업주의 시대가 근대적 소비 시장의 문을 연 시기였다면 지금 롯데백화점의 과제는 새로운 시대의 소비 가치를 다시 쓰는 일이다. 명동의 간판으로 출발한 이 기업이 앞으로도 한국 유통 산업의 중심에서 같은 무게감을 이어갈지 시장은 다음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2026-04-21 09:5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