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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곡물 생산 늘리고 재사용 로켓 회수…AI 데이터 시장도 키운다
[경제일보] 중국이 식량 생산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재사용 로켓과 인공지능(AI) 기반 데이터 산업을 키우고 있다. 먹거리 공급부터 우주항공, 디지털 기술까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는 모습이다. 10일 중국 국가통계국은 올해 여름 곡물 생산량이 1억5074만6000t으로 지난해보다 100만t 늘었다고 10일 밝혔다. 증가율은 0.7%다. 중국 통계로는 3014억9000만근이다. 중국에서 사용하는 1근은 500g으로, 한국의 1근 600g과 차이가 있다. 여름 곡물은 한 해 동안 중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곡물을 뜻하지 않는다. 주로 전년도 가을이나 겨울에 심어 이듬해 여름에 거두는 밀과 보리 등을 가리킨다. 중국인의 주요 식재료인 밀가루와 면류의 공급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중요하게 관리하는 농업 지표 가운데 하나다. 올해 여름 곡물을 재배한 면적은 지난해보다 0.2% 줄었다. 그러나 같은 면적에서 거둔 수확량이 0.8% 증가하면서 전체 생산량은 오히려 늘었다. 여름 곡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밀 생산량은 1억3895만2000t으로 지난해보다 0.6% 증가했다. 밀의 단위면적당 생산량도 0.9% 늘었다. 농사를 지은 땅은 줄었지만 품종과 재배기술 개선 등을 통해 생산성을 높인 결과로 풀이된다. 중국은 세계 최대 수준의 곡물 소비국이다. 기후변화와 국제분쟁, 수출 통제 등으로 해외 식량 공급이 흔들릴 가능성에 대비하려면 일정 수준의 생산량을 자국 안에서 유지해야 한다. 중국 정부가 농업을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국가안보의 문제로 다루는 이유다. 우주항공 분야에서는 재사용 로켓 기술이 한 단계 진전됐다. 창정 10호B 로켓은 10일 낮 12시15분 하이난 상업우주 발사장에서 발사돼 위성을 예정된 궤도에 올려놓았다. 발사 약 6분 뒤 분리된 1단 로켓은 다시 지상 방향으로 내려와 해상 회수 플랫폼에 설치된 그물에 포획됐다. 1단 로켓은 발사 초기에 가장 큰 추진력을 내는 부분이다. 지금까지는 위성을 우주로 보낸 뒤 바다로 떨어뜨리거나 폐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1단 로켓을 온전하게 회수해 정비한 뒤 다시 사용하면 새 로켓을 제작하는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중국이 발사체 1단을 통제된 상태로 회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로켓을 해상 플랫폼의 그물로 받아낸 것도 세계 첫 사례라고 중국항천과기집단은 밝혔다. 착륙 장치를 이용해 로켓을 지면에 세우는 방식과 달리, 플랫폼의 그물이 내려오는 로켓을 붙잡는 방식이다. 창정 10호B는 재사용하는 조건에서도 지구 저궤도에 최대 16t의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다. 지구 저궤도는 지상과 비교적 가까운 우주 공간으로, 통신위성과 지구관측위성 등이 주로 운용되는 곳이다. 중국은 창정 10호B를 위성 인터넷망 구축과 대형 상업위성 발사에 활용할 계획이다. 수많은 소형 통신위성을 잇달아 발사해 전 세계에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발사 횟수를 늘리고 비용을 낮춰야 한다. 재사용 로켓은 이런 위성 사업의 경제성을 높이는 핵심 기술로 꼽힌다. AI 산업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베이스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9일 발표된 ‘데이터베이스 발전 연구보고서 2026’은 중국 데이터베이스 시장 규모가 2028년 979억7400만위안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2025년부터 2028년까지 연평균 13.06%씩 성장한다는 예상이다. 데이터베이스는 은행 거래 내역이나 인터넷 쇼핑몰의 주문 정보처럼 방대한 자료를 저장하고, 필요할 때 빠르게 찾아주는 전산 시스템이다. 스마트폰 앱에서 회원 정보를 확인하거나 카드 결제를 처리하는 과정에도 데이터베이스가 사용된다. AI가 확산되면서 데이터베이스의 역할은 더 커지고 있다. AI가 답변을 만들고 업무를 수행하려면 수많은 자료를 신속하게 불러와 분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자료를 보관하는 창고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AI 서비스를 움직이는 기반 시설로 바뀌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세계 데이터베이스 시장 규모는 1316억달러였다. 중국 시장은 94억9000만달러로 세계 시장의 7.2%를 차지했다. 중국에서 판매되는 상용 데이터베이스 가운데 자국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70%를 넘어섰다. 식량과 로켓, 데이터베이스는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중국의 산업정책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식량은 해외 공급망의 충격에 대비하고, 재사용 로켓은 우주 진출 비용을 낮추며, 데이터베이스는 AI 시대의 핵심 기술을 자국 안에서 확보하려는 것이다. 중국이 전통적인 농업 생산과 첨단산업을 동시에 육성하는 배경에는 외부 환경이 달라져도 흔들리지 않는 산업 기반을 만들겠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2026-07-10 17:5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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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는 웃는데 장바구니는 운다… 체감물가부터 잡아야 민생이 산다
[경제일보] 정부는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주요 선진국에 비해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전체 물가상승률만 놓고 보면 한국은 OECD 평균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숫자만 보면 물가 관리가 성공한 듯 보인다. 그러나 국민이 시장과 마트에서 느끼는 현실은 전혀 다르다. 통계는 안정이라 말하지만, 장바구니는 연일 비명을 지르고 있다. 국민이 매일 사 먹는 우유와 빵, 육류를 비롯한 식음료 가격은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로 높다는 조사 결과는 이러한 괴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부가 말하는 지표물가와 국민이 체감하는 생활물가 사이에 깊은 골이 존재하는 것이다. 경제에서 물가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국민의 삶을 직접 규정하는 생활의 척도다. 아무리 전체 물가가 안정됐다고 발표해도 식탁에 오르는 기본 식재료 가격이 오르면 국민은 물가가 안정됐다고 느끼지 않는다. 하루 세끼를 해결해야 하는 서민에게는 국제유가보다 계란값이 중요하고, 소비자물가지수보다 우유와 빵값이 더 절실하다. 물가정책의 성패는 통계청의 그래프가 아니라 국민의 장바구니에서 평가받는다는 사실을 정부는 잊어서는 안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이 일시적인 공급 부족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식품산업과 유통 구조 전반에 누적된 구조적 모순이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생산자는 제값을 받지 못한다고 호소하지만 소비자는 지나치게 비싼 값을 지불한다. 그 사이에는 복잡한 유통 단계와 높은 물류비, 비효율적인 거래 구조, 과도한 마진이 자리하고 있다. 생산자도 웃지 못하고 소비자도 울상인 기형적인 시장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우유 가격만 보더라도 낙농 원유 가격 인상은 소비자가격에 즉각 반영되지만 원가가 하락할 때는 가격 인하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빵 역시 국제 밀 가격이 하락했음에도 소비자가격은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육류도 사료 가격이 안정되고 국제 곡물가격이 떨어졌지만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가격은 오를 때는 빠르고 내릴 때는 느린 이른바 '로켓 인상·깃털 인하'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시장의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비합리적인 구조다. 정부의 대응도 미흡하다. 농축산물 할인쿠폰을 지급하거나 일시적으로 수입을 확대하는 대책은 단기 처방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명절이나 특정 시기에 할인행사를 확대하는 방식은 잠시 체감물가를 낮출 수는 있지만 시장 구조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결국 할인행사가 끝나면 소비자는 다시 높은 가격을 감당해야 한다. 물가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가리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다. 이제는 정책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생산에서 소비까지 이어지는 유통 구조를 전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중간 유통 단계의 비효율을 줄이고, 물류 시스템을 현대화하며, 가격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독과점적 시장 구조가 존재하는 분야는 공정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원가가 하락하면 소비자가격에도 신속히 반영되는 합리적인 가격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것이 정부의 중요한 책무다. 동시에 국내 농축산업의 경쟁력 강화도 병행해야 한다. 생산비 절감과 스마트 농업 확대, 물류 혁신, 계약재배 활성화 등을 통해 안정적인 공급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해외 공급망 변화에 지나치게 흔들리는 구조를 개선하고 식량안보 차원의 장기 전략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식품산업을 단순한 소비재 산업이 아니라 국가 경제와 민생을 떠받치는 핵심 기반 산업으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물가정책 역시 소비자물가지수 중심에서 생활밀착형 체감물가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국민이 자주 구매하는 식료품과 생필품의 가격 흐름을 정책의 핵심 지표로 삼고, 생활물가 안정 성과를 정부 정책의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국민이 체감하지 못하는 물가 안정은 절반의 성공도 아니다. 경제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삶을 위해 존재한다. 통계가 아무리 안정적이라도 국민이 장을 보며 한숨을 쉬고, 식탁 앞에서 부담을 느낀다면 그것은 결코 성공한 물가정책이라 할 수 없다. 정부가 진정 민생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화려한 통계가 아니라 장바구니를 가볍게 만드는 실질적인 대책이다. 국민은 더 이상 지표 속의 안정이 아니라 식탁 위의 안정을 원하고 있다. 민생경제의 출발점은 바로 체감물가를 잡는 데 있으며, 그 책임은 결국 정부와 시장 모두에게 있다.
2026-07-10 14:5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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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은 AI 시대의 마지막 현장인가
[경제일보] 농촌은 오래전부터 늙고 있었다. 도시가 그것을 외면했을 뿐이다. 농번기마다 일손이 없다고 했다.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부족하다고 했다. 인건비가 올랐다고 했다. 비가 오면 사람이 없고 해가 뜨면 사람이 더 없다고 했다. 우리는 그것을 해마다 반복되는 농촌의 어려움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말로 넘길 수 없는 지점에 와 있다. 농촌 고령화는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다. 식량의 문제이고 지역의 문제이며 국가 산업의 문제다. 농민이 사라지면 농업도 사라진다. 농업이 흔들리면 식탁과 물가, 지역경제와 식량 안보가 함께 흔들린다. 쌀과 과일, 채소와 축산물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누군가는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병충해를 막고 수확해야 한다. 그 일을 할 사람이 빠르게 줄고 있다. 정부와 민간이 농업용 로봇·드론 협의체를 출범시킨 것은 그런 점에서 늦었지만 필요한 일이다. 자율주행 농기계, 농업용 로봇, 농작업 드론, 지능형 의사결정 기술을 함께 개발하겠다는 방향은 농업의 현실을 정면으로 보는 출발점이다. 이제 농업은 사람의 허리와 손끝에만 기대서는 버틸 수 없다. 사람을 기다릴 시간이 농촌에는 많지 않다. 하지만 이 문제를 단순히 로봇 몇 대, 드론 몇 대를 보급하는 일로 봐서는 안 된다. 농촌의 진짜 질문은 더 크다. 농업에 인공지능과 피지컬 AI를 결합해 차세대 농업 시대를 열 수 있는가. 농업을 고령화에 밀려나는 사양 산업이 아니라 데이터와 로봇, 센서와 자동화가 결합된 미래 산업으로 다시 세울 수 있는가. 핵심은 여기에 있다. AI는 지금까지 주로 화면 속에서 이야기됐다. 질문에 답하고 문서를 쓰고 이미지를 만들고 코드를 짜는 기술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농업이 요구하는 AI는 다르다. 흙을 읽어야 하고 날씨를 견뎌야 하며 작물의 상태를 판단해야 한다. 물과 비료, 방제 시점까지 결정해야 한다. 드론은 하늘에서 농지를 살피고 로봇은 땅 위에서 움직이며 AI는 그 데이터를 분석해 다음 작업을 지시해야 한다. 이것이 피지컬 AI다. 화면 안의 지능이 현실의 땅과 기계, 작물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농업은 피지컬 AI가 가장 절실한 현장이다. 공장 자동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됐다. 물류센터에도 로봇이 들어갔다. 항만과 창고도 자동화되고 있다. 그러나 논밭은 여전히 사람의 노동에 크게 기대고 있다. 잡초를 뽑고 농약을 치고 과일을 따고 박스를 나르는 일은 여전히 고된 노동이다. 고령 농민에게 하루하루는 체력과의 싸움이다. 이런 현실을 그대로 두고 농업의 미래를 말하는 것은 공허하다. 드론은 방제와 파종, 생육 관찰을 바꿀 수 있다. 자율주행 농기계는 반복 작업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수확 로봇과 운반 로봇은 고령 농민의 가장 무거운 노동을 덜어줄 수 있다. AI는 토양과 기상, 병해충 데이터를 분석해 언제 물을 주고 언제 약을 치고 언제 수확할지를 판단할 수 있다. 농업이 경험과 감에만 의존하던 시대에서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함께 판단하는 시대로 넘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변화가 성공하면 농업의 성격도 달라진다. 농업은 더 이상 노동집약 산업에만 머물지 않는다. 데이터 산업이 되고 로봇 산업이 되며 정밀기계 산업이 된다. 지역 기반 AI 서비스 산업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 농민은 단순 노동자가 아니라 데이터와 장비를 다루는 현장 운영자가 된다. 청년 세대에게도 농업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다. 물론 현실의 벽도 높다. 농업 현장은 실험실과 다르다. 논은 평평하지 않고 밭은 제각각이며 날씨는 통제되지 않는다. 도시의 시연장에서 잘 움직인 로봇이 농촌의 진흙과 경사, 습도와 먼지 속에서도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농업용 AI는 발표장에서 똑똑한 것보다 현장에서 고장 나지 않는 것이 먼저다. 가격 역시 넘어야 할 과제다. 농가의 상당수는 규모가 작다. 고가의 로봇과 자율주행 농기계를 농민 개인이 모두 구입하기는 어렵다. 기술이 좋아도 감당할 수 없으면 혁신이 아니라 전시품에 불과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장비 보조금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공동 이용센터와 임대형 로봇 서비스, 지역 정비 인력 양성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AI 농업은 장비 판매 사업이 아니라 현장 운영 인프라 사업에 가깝다. 데이터의 주인도 분명해야 한다. 농업 AI가 작동하려면 토양과 기상, 병해충, 생육, 수확량, 농기계 운행 데이터가 축적돼야 한다. 그 데이터는 누가 모으고 누가 활용하며 누가 이익을 얻는가. 농민의 작업 기록과 생산 정보가 기업 서버에만 쌓이고 농민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면 또 다른 종속이 생길 수 있다. AI 농업은 농민을 단순한 데이터 제공자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더 나은 판단과 더 높은 소득으로 이어져야 한다. 농업의 AI 전환은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적 기회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농업용 로봇과 드론은 단순한 농기계 시장이 아니다. 센서와 배터리, 통신과 자율주행, 정밀제어와 클라우드, AI 모델과 정비 서비스가 결합된 종합 산업이다. 한국이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을 농업 현장과 제대로 연결한다면 새로운 수출 산업으로 키울 수 있다. 고령화와 농업 인력난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과 유럽, 중국과 동남아 역시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한국 농촌에서 검증된 AI 농업 모델은 해외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을 수 있다. 다만 농촌을 기술의 실험장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농민은 신기술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실패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조심한다. 한 해 농사를 망치면 다시 기회를 얻기 어렵다. 로봇이 멈추고 드론이 사고를 내고 AI 판단이 빗나가면 피해는 농민이 떠안게 된다. 그래서 AI 농업에는 성능 검증과 보험, 사고 책임, 사후관리, 교육 체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기술이 농민을 설득하려면 먼저 농민의 위험을 줄여줘야 한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협의체를 만들고 연구개발비를 지원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표준을 만들고 중소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시장을 열어야 한다. 작은 농가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보급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 대학과 연구기관은 논문보다 현장 성과로 평가받아야 하고, 기업은 시연 영상보다 농민의 노동을 얼마나 줄였는지로 평가받아야 한다. AI 농업의 성패는 행사장의 박수가 아니라 논밭의 변화로 판단해야 한다. 농촌 고령화는 더 이상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다. 식량 안보와 지역경제, 국가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 문제다. 그런 점에서 농업용 로봇·드론 협의체 출범은 단순한 기술 개발 사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중요한 것은 협의체의 이름이 아니다. 실제 농민의 노동을 얼마나 덜어줄 수 있는지, 소규모 농가도 부담 없이 활용할 수 있는지, 고장이 나면 즉시 지원받을 수 있는 체계를 갖출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기술은 결국 현장에서 증명돼야 한다. AI와 로봇은 농민을 대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더 오래, 더 안전하게, 더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다. 농업의 미래 역시 사람을 지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한계를 보완하는 데 있다. 농촌은 피지컬 AI가 가장 먼저 가치를 입증해야 할 현장이다. 흙 위에서 검증되지 못한 기술은 산업이 될 수 없다. 농업의 미래는 흙을 떠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흙 위에 지능을 더하는 데 있다.
2026-06-23 13: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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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농협금융 65년 역사…농업은행 뿌리서 600조 종합금융그룹으로
NH농협금융그룹의 역사는 한국 농업금융과 지역금융의 성장사와 맞닿아 있다. 법인으로서의 NH농협금융지주는 2012년 3월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이 분리되면서 출범했다. 그러나 뿌리는 1961년 8월 농업은행과 구 농업협동조합이 통합되며 만들어진 종합농협 체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한국 경제에서 농업은 국민 생계와 식량안보를 떠받치는 기반이었다. 그러나 제도권 금융은 도시와 기업에 가까웠고, 농민의 금융 접근성은 제한적이었다. 농협 신용사업은 이 빈틈에서 시작됐다. 영농자금과 생활자금을 공급하고, 농민의 저축을 모으고, 농산물 유통과 구매사업을 금융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초기 농협 금융의 역할이었다. 농협금융의 DNA는 그래서 일반 금융그룹과 다르다. 수익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공공성, 대도시보다 농촌과 지역에 먼저 뿌리내린 현장성, 고객을 단순한 예금자나 차주가 아니라 조합원과 지역 공동체의 일원으로 보는 협동조합 정신이 출발점이었다. ◆농업금융에서 생활금융으로…전국망이 만든 기초체력 1961년 농업은행과 구 농협이 통합되면서 농협은 단순한 금융기관을 넘어 농업 생산, 유통, 구매, 지도, 공제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 시기 농협 금융의 핵심은 접근성이었다. 도시의 대형 은행 점포가 닿지 않는 곳에서도 농협은 예금, 대출, 송금, 공제 업무를 맡았다. 봄에는 영농자금, 가을에는 수확과 출하대금, 겨울에는 생활자금과 다음 해 준비자금이 농협 창구를 거쳐 갔다. 2000년 통합농협 출범은 또 하나의 변곡점이었다. 농협중앙회, 축협중앙회, 인삼협중앙회가 통합되면서 농업·축산·인삼 부문을 아우르는 통합 조직이 만들어졌다. 이는 농협 금융의 고객 기반과 사업 영역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농업금융이라는 뿌리는 유지하되 축산, 식품, 유통, 지역경제와 연결된 종합 금융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2012년 금융지주 출범…순익 4514억에서 시작한 그룹화 결정적 전환점은 2012년이었다.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이 분리되면서 NH농협금융지주가 공식 출범했다. 협동조합 금융이 본격적인 금융그룹 체제로 들어선 사건이었다. 과거 종합농협 체제에서 금융은 농업·경제사업을 뒷받침하는 축이었다면, 2012년 이후 농협금융은 은행·증권·보험·자산운용을 아우르는 독립 금융그룹으로 경쟁력을 증명해야 했다. 출범 당시 체급은 지금과 달랐다. 2012년 농협금융의 총자산은 약 240조원, 연결 당기순이익은 4514억원 수준이었다. 농협은행과 보험 계열이 중심이었고, 자본시장과 비은행 포트폴리오는 지금처럼 두텁지 않았다. 이후 NH농협금융은 NH농협은행을 중심으로 NH투자증권, NH농협생명, NH농협손해보험, NH-Amundi자산운용, NH농협캐피탈, NH저축은행, NH벤처투자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혔다. 특히 2014년 우리투자증권 인수는 체질을 바꾼 사건이었다. 은행·보험 중심이던 포트폴리오에 대형 증권사가 더해지면서 농협금융은 자본시장 역량을 확보했다. ◆순익 5.6배·자산 2.5배 성장…숫자로 드러난 변화 농협금융의 성장은 숫자로 보면 더 분명하다. 2012년 출범 직후 4514억원이던 연결 당기순이익은 2025년 2조5112억원으로 늘었다. 단순 비교하면 13년 만에 약 5.6배 성장한 셈이다. 총자산도 출범 당시 약 240조원에서 2025년 말 602조8000억원으로 불어났다. 규모는 약 2.5배 커졌다. 이는 단순한 외형 성장만은 아니다. 출범 초기 농협금융은 은행과 보험 의존도가 컸다. 현재는 은행이 중심을 잡되 증권, 보험, 캐피탈, 자산운용이 그룹 실적을 함께 떠받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2025년 실적은 이 변화를 잘 보여준다. NH농협금융은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 2조5112억원을 기록했다. 계열사별로는 NH농협은행이 1조8140억원의 순이익을 내며 여전히 그룹의 중심축 역할을 했다. NH투자증권은 1조316억원의 순이익을 올리며 연간 순이익 1조원대에 올라섰다. 은행이 기초체력을 맡고, 증권이 성장성을 보태는 구조가 강화된 것이다. 수익 구조도 달라지고 있다. 2025년 농협금융의 비이자이익은 전년보다 26.4% 증가했다. 시장금리 하락과 순이자마진 압박 속에서 유가증권 운용손익, 인수자문, 위탁중개수수료 등 비은행·비이자 부문이 실적을 방어했다. 농협금융을 다른 금융지주와 구별하는 대목은 농업·농촌에 대한 환원 구조다. NH농협금융은 2025년 농업지원사업비 6503억원을 부담했고, 사회공헌금액도 2762억원을 집행했다. 일반 금융지주의 사회공헌이 선택적 활동에 가깝다면, 농협금융의 농업지원은 정체성의 문제다. 농협금융의 이익은 주주와 고객만이 아니라 농업·농촌과도 연결돼 있다. ◆생산적 금융·AI·지역금융이 다음 성장판 농협금융의 다음 성장전략은 세 갈래로 압축된다. 먼저 생산적 금융이다. 농협금융은 농업·농식품 산업, 지역 중소기업, 신성장 산업, 청년 창업, 지역 인프라에 자금을 공급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둘째는 디지털·AI 전환이다. 금융 경쟁은 점포망의 싸움에서 데이터와 플랫폼의 싸움으로 이동했다. 농협금융도 은행의 모바일 플랫폼, 증권의 디지털 자산관리, 보험의 비대면 보장분석, 캐피탈의 자동심사, 자산운용의 투자 솔루션을 하나의 고객 경험으로 묶어야 한다. 셋째는 지역금융의 재정의다. 지방소멸과 농촌 고령화는 농협금융에 위기이자 기회다. 전통적 고객 기반은 약해질 수 있지만 지역 재생, 스마트농업, 농식품 수출, 귀농·귀촌, 로컬 창업, 에너지 전환과 결합한 금융 수요는 새롭게 생긴다. 농협금융이 지역을 단순한 영업권역이 아니라 성장 생태계로 바라본다면 지방금융의 새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농협금융은 농업과 지역, 협동조합의 DNA를 갖고 있다”며 “과거 농촌의 금융 울타리였던 농협금융이 앞으로 대한민국 지역경제와 미래 산업의 성장판을 여는 금융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느냐가 NH농협금융 앞에 놓인 과제다”라고 말했다. [아주경제 2026년 06월 16일자 15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6-16 08:5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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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포용금융 15조+α 확대…'농업금융 DNA'로 이재명 정부 금융기조 화답
[경제일보] 농협이 이재명 정부의 포용금융·생산적금융 확대 기조에 발맞춰 대규모 금융지원에 나선다. 올해 총 8876억원 규모의 장기연체채권을 소각·감면하고, 향후 5년간 15조원 이상을 서민·농업인·취약계층에 공급하기로 했다. 단순한 일회성 채무조정이 아니라 은행, 증권, 캐피탈, 저축은행, 전국 농축협, 농협자산관리까지 참여하는 ‘범농협 포용금융’ 체제로 확대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농협중앙회가 이번에 내놓은 방안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오랜 기간 채무 부담에 묶여 있던 취약계층의 재기를 돕는 장기연체채권 소각·감면이다. 다른 하나는 앞으로 5년간 서민금융과 농업인 금융지원을 대폭 늘리는 포용금융 공급 확대다. 농협은 이를 통해 금융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동시에, 농협금융의 다음 성장동력으로 포용금융과 생산적금융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15일 “장기연체채권 소각과 감면을 통해 오랜 기간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온 취약계층에게 재기의 희망을 전하는 포용금융을 실천하겠다”며 “앞으로도 범농협 차원의 포용금융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농협의 공익적 역할을 강화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8876억 연체채권 정리…취약계층 9만명 재기 지원 이날 업계에 따르면 농협은 올해 총 8876억원 규모의 장기연체채권을 소각하거나 감면한다. 이를 통해 약 9만명의 취약계층이 추심 부담을 덜고 정상적인 금융 활동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우선 장기연체채권 6870억원을 소각한다. 대상자는 약 6만4000명이다. 채권 소각은 단순한 회계상 정리가 아니다. 장기간 상환 능력을 잃은 차주에게 계속 추심이 이어질 경우 경제적 재기는 더 어려워진다. 농협은 회수 가능성이 낮은 장기연체채권을 정리해 취약계층의 추심 부담을 면제하고 신용회복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계열별 소각 규모도 구체화했다. NH농협은행이 2870억원, 농축협 상호금융이 1500억원, 농협자산관리가 2500억원 규모의 연체채권을 소각한다. 중앙회와 금융지주 계열사, 지역 농축협이 함께 움직인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농협 특유의 조직망을 활용한 포용금융 모델로 볼 수 있다. 이와 별도로 고령자,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적 배려 대상자가 보유한 3년 경과 연체채권에 대해서는 2006억원 규모의 원금과 이자를 감면한다. 원금은 최대 90%까지 감면하고, 미수이자는 전액 면제한다. 감면 프로그램은 오는 7월부터 1년간 운영된다. 농협은 약 2만6000명의 취약계층이 금융 부담을 덜 것으로 보고 있다. ◆5년간 15조3000억 공급…서민·농업인 금융지원 확대 이와 함께 농협은 향후 5년간 15조3000억원 규모의 포용금융 지원계획도 추진한다. 은행, 캐피탈, 저축은행 등 농협금융 계열사를 중심으로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 8조5000억원, 서민금융·취약계층 대출 6조8000억원을 공급하는 내용이다. 이 대목은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포용금융 기조와 맞닿아 있다. 고금리와 내수 부진, 자영업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서민과 취약차주의 금융 부담은 커졌다. 특히 제2금융권과 대부업권으로 밀려난 차주, 코로나19 이후 매출 회복이 더딘 자영업자, 고령층과 저신용자에게 금융 안전망은 생계의 문제다. 금융회사가 건전성만 앞세워 문턱을 높이면 취약차주는 더 비싼 금리의 사금융으로 밀려날 수 있다. 농협의 포용금융 확대는 이런 악순환을 끊는 데 목적이 있다.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필요한 운영자금과 재기자금을 공급하고, 저신용·취약계층에는 정책서민금융과 연계한 금융 접근성을 넓히는 방식이다. 농업인과 농촌 지역 차주에게는 농협이 가진 현장 정보와 지역 네트워크가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농협금융 입장에서도 포용금융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다. 농협의 뿌리인 농업금융과 지역금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전략이다. 과거 농협이 영농자금과 생활자금을 통해 농촌 경제를 지탱했다면, 앞으로는 서민·자영업자·농업인·지역기업의 재기를 돕는 금융 플랫폼으로 역할을 넓히겠다는 의미다. ◆포용금융 넘어 생산적금융으로…농협금융 새 성장판 주목할 부분은 농협의 전략이 포용금융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농협금융은 최근 금융권 전반의 생산적금융 확대 흐름 속에서 농업·농식품 산업, 지역 중소기업, 신성장 산업, 청년 창업, 지역 인프라 투자를 새로운 성장판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생산적금융은 단순히 대출을 많이 늘리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 담보와 가계대출에 쏠렸던 금융 자금을 산업, 기술, 지역, 일자리로 돌리는 일이다. 이재명 정부가 금융권에 요구하는 방향도 여기에 있다. 금융이 이자 장사에 머물지 말고 기업의 투자와 산업 전환, 서민의 재기와 지역경제 회복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협금융은 이 분야에서 다른 금융그룹과 다른 위치에 있다. 전국 농축협과 농협은행 점포망, 농협경제지주와 연결된 농식품 밸류체인, 농업인과 지역 중소기업에 대한 현장 접근성은 농협만의 자산이다. 스마트팜, 푸드테크, 농식품 수출, 농촌 관광, 로컬 브랜드, 지역 에너지 전환 등은 농협금융이 생산적금융을 접목할 수 있는 대표 영역이다. NH투자증권과 NH-Amundi자산운용, NH벤처투자 등 비은행 계열사의 역할도 커질 수 있다. 은행이 대출과 보증, 정책자금 연계를 맡는다면 증권과 운용사는 펀드, 채권, 프로젝트금융, 벤처투자를 통해 자본시장 방식의 생산적금융을 설계할 수 있다. 캐피탈과 저축은행은 은행권 문턱을 넘기 어려운 소상공인과 중소사업자 금융을 보완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공익성과 수익성의 균형이 관건 다만 포용금융과 생산적금융 확대가 성공하려면 두 가지 균형이 필요하다. 먼저 공익성과 건전성의 균형이다. 취약계층 지원은 필요하지만, 무분별한 대출 확대는 금융회사 건전성을 훼손할 수 있다. 장기연체채권 소각·감면 역시 도덕적 해이 논란을 피하려면 대상 선정, 상환 능력 평가, 성실상환 유도 장치가 정교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또 하나는 정책 호응과 독자 전략의 균형이다. 이재명 정부의 금융정책 기조에 발맞추는 것은 필요하지만, 농협금융의 포용·생산금융은 정부 방침에 대한 단순한 ‘화답’에 그쳐서는 안 된다. 농협이 가장 잘 아는 농업, 농촌, 지역경제, 서민금융 영역에서 지속 가능한 수익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포용금융이 비용이 아니라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농협금융은 이미 2012년 금융지주 출범 이후 은행·증권·보험·캐피탈·자산운용을 아우르는 종합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이제 다음 과제는 외형 확장이 아니라 금융의 방향 전환이다. 고령화와 지방소멸, 자영업 위기, 농업의 산업화, 기후위기와 식량안보라는 구조적 변화 속에서 농협금융이 어디에 자금을 공급할 것인지가 중요해졌다. 농협의 이번 포용금융 확대는 그래서 단순한 취약계층 지원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장기연체채권 8876억원 소각·감면은 과거의 부실을 정리하는 일이다. 5년간 15조3000억원 규모의 포용금융 공급은 현재의 금융 안전망을 넓히는 일이다. 여기에 생산적금융을 결합하는 것은 미래의 성장 기반을 만드는 일이다. 농협금융의 역사는 농업과 지역에서 시작됐다. 앞으로의 경쟁력도 그곳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정부의 포용금융·생산적금융 기조는 농협금융에 부담이면서 동시에 기회다. 금융의 공공성을 요구받는 압박이지만, 농협의 정체성을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농협의 채무조정은 재기로 이어져야 하고 서민금융은 자립으로 연결돼야 하며, 생산적금융은 산업과 일자리로 증명돼야 한다”며 “농협이 농업금융의 DNA를 바탕으로 포용과 생산의 두 축을 제대로 세운다면 농협금융은 단순한 5대 금융그룹의 한 축을 넘어 지역경제와 미래 산업을 잇는 독자적 금융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2026-06-15 13: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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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는 한국 경제의 생명선"…에너지·통상 전문가들, 공급망 취약성 경고
[경제일보] “호르무즈는 말 그대로 우리 경제의 중요한 생명선입니다.” 20일 정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서울 여의도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2026 제1차 기후경제통상포럼: 호르무즈 쇼크와 에너지 지정학, 한국의 생존 전략’ 세미나에서 이같이 말했다. 한국국제통상학회와 한국자원경제학회가 공동 주최하고 산업통상자원부가 후원한 이날 행사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위기가 한국 산업 공급망과 에너지 안보에 미칠 영향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고, 중동산 에너지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정 원장은 호르무즈 사태가 단순한 원유 문제가 아니라 산업 공급망 전반의 복합 충격으로 번질 수 있다고 봤다. 특히 나프타와 헬륨 수급 불안이 주요 변수로 거론됐다. 나프타는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이고, 헬륨은 반도체 생산 공정에 쓰인다. 원유 수송 차질이 석유화학과 반도체 등 한국 주력 제조업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도 공급망 구조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정성 산업통상부 통상차관보는 “특정 국가와 특정 운송 경로에 의존하는 데서 오는 리스크는 결국 다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룰 기반 무역 질서가 흔들리는 전환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다. 공급망 재편 과정은 “달리는 자전거를 갈아타는 것”에 비유됐다. 기존 거래망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수입선과 운송 경로를 확보해야 하는 만큼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비용과 위험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호르무즈 리스크가 에너지 가격 상승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는 호르무즈 해협이 원유뿐 아니라 LNG와 석유제품의 주요 운송로라는 점을 강조했다. 전 세계 LNG 물동량의 약 2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만큼 운송 차질이 발생하면 가격 충격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석유화학 업계도 영향권에 들어간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을 생산하는 NCC 중심 구조로 운영된다. 나프타 가격이 오를수록 원가 부담이 커지고,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이미 수익성이 낮아진 화학업계에는 추가 부담으로 이어진다. LNG 가격 상승도 제조업 전반의 전력 비용과 연결된다. LNG는 국내 발전 연료 중 하나로, 수급 불안이 장기화하면 전력 도매가격과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2차·3차 충격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유가 상승은 식량 가격과 물류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해저 케이블 리스크가 현실화할 경우 원유 수송 차질을 넘어 디지털 인프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중 자원 패권 경쟁도 주요 변수로 다뤄졌다. 미국은 셰일 혁명 이후 에너지 수입국에서 순수출국으로 전환했다. 중동 의존도가 낮아지면서 중동 분쟁에 대한 전략적 부담도 과거보다 줄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에 비해 전문가들은 중국이 희토류 공급망을 앞세워 무기화할 수 있는 국가로 부상했다고 입을 모았다. 희토류는 전기차, 풍력터빈, 반도체 장비뿐 아니라 첨단 무기 체계에도 쓰이는 핵심 자원이다. 미국조차 희토류 공급망 탈중국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한국도 높은 대중 의존도를 고려해 공급망 다변화 전략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중국의 수출 통제 방식도 과거보다 정교해졌다는 분석이다. 희토류 통제가 단순한 금지가 아니라 허가제 방식으로 운영되는 만큼 통제를 조였다 풀었다 하며 상대국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포럼에서는 한국의 에너지 안보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제언도 이어졌다. 전략 비축과 수입선 다변화, 자원 확보 체계 정비가 주요 과제로 꼽혔다. 한국은 전략 비축은 비교적 잘하고 있지만, 다른 대응 체계는 아직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평가다. 에너지 안보를 단순한 자원 조달 문제가 아니라 경제 안보와 산업 경쟁력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미 원유와 LNG 공급 불안이 에너지 가격을 흔들고 있고, 나프타와 헬륨 수급 차질은 석유화학·반도체 등 주력 산업의 원가와 생산 안정성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날 포럼에서는 호르무즈 위기가 단기적인 국제 유가 급등 이슈를 넘어 한국 산업 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 △핵심 자원 확보 △비축 체계 강화가 앞으로 한국 경제의 새로운 과제이자 해결해야 할 문제다.
2026-05-20 17: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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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시작해 식탁으로 이어졌다…동원그룹, 한국 식문화 흐름을 바꾸다
[경제일보] 한때 참치캔은 명절 선물세트 한쪽에 들어 있는 상품에 가까웠다. 지금은 집 냉장고와 캠핑 가방, 편의점 삼각김밥 속까지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다. 동원그룹은 이 흐름을 만든 기업 가운데 하나다. 원양어업 회사로 출발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한국 식문화와 소비 흐름 자체를 바꾸는 기업으로 영역을 넓혀 왔다. 동원그룹의 출발은 바다였다. 창업주 김재철 회장은 원양어업 사업에 뛰어들며 회사를 키우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 경제는 산업화 초기 단계였고 해외 자원 확보와 식량 산업 확대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던 시기였다. 원양어업은 단순 어업이 아니었다. 먼 바다로 나가 장기간 조업을 이어 가야 했고 냉동과 물류 시스템까지 함께 구축해야 했다. 동원은 이 과정에서 수산업 기반과 유통 경험을 함께 축적했다. 회사의 흐름을 크게 바꾼 장면은 참치캔 사업 확대였다. 동원참치는 단순 가공식품을 넘어 한국 가정 식문화 안으로 들어갔다. 보관이 쉽고 조리가 간편하다는 장점은 빠르게 소비자 생활과 연결됐다. 특히 1990년대 이후 맞벌이 가구 증가와 간편식 수요 확대 흐름 속에서 참치캔 소비는 더 빠르게 늘어났다. 김치찌개와 김밥, 샐러드와 삼각김밥까지 활용 범위도 넓어졌다. 동원참치는 어느새 특정 제품보다 식재료 이름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동원그룹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양반 브랜드를 중심으로 죽과 국, HMR(가정간편식) 시장까지 확대했다. 과거에는 집에서 직접 만들던 음식들이 점차 간편식 형태로 이동하면서 식품업계 흐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양반죽은 이 변화의 상징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환자식이나 비상식 정도로 여겨졌던 죽 시장을 일상식 영역까지 넓혔다. 이후 국내 HMR 시장 자체가 빠르게 성장하는 흐름과도 연결됐다. 동원그룹을 설명할 때 빼놓기 어려운 또 하나의 축은 물류다. 동원산업과 동원로엑스를 중심으로 냉장·냉동 물류와 항만 물류 경험을 키워 왔다. 식품 기업에 물류 경쟁력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식품 산업은 결국 물류와 연결된다. 특히 냉장·냉동 유통은 안정적인 운송 시스템이 핵심이다. 동원은 원양어업 시절부터 축적된 냉동·물류 경험을 식품 유통과 연결해 왔다. 해외 시장 확대 역시 중요한 흐름이었다. 미국 참치 브랜드 스타키스트 인수는 동원그룹 역사에서 큰 전환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국내 식품 기업이 글로벌 수산 브랜드를 인수한 사례로 당시 업계 관심도 컸다. 스타키스트는 미국 참치 시장 점유율 상위권 브랜드다. 동원은 이를 통해 해외 시장 기반과 글로벌 유통 경험을 함께 확보하게 됐다. 한국 식품 기업이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식품 기업으로 이동하려는 흐름과 맞닿아 있었다. 동원그룹은 수산업 기반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 사업 흐름은 훨씬 넓어졌다. 식품 제조와 포장, 냉장·냉동 물류, 유통까지 연결되는 흐름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단순 가공식품 회사와는 결이 다르다. 최근 흐름은 건강식과 단백질 식품, 친환경 포장과 ESG 경영 확대 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령화와 건강 관리 관심 증가, 간편식 소비 확대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동원F&B 역시 단순 참치캔 기업보다 종합 식품기업 이미지 강화에 힘을 싣고 있다. 펫푸드와 건강기능식품 시장 확대 흐름도 이어지고 있다. 동원그룹의 강점은 비교적 뚜렷한 흐름 안에 모여 있다. 원재료 확보와 가공, 물류와 유통 경험이 하나로 이어진다. 바다에서 잡은 수산물이 소비자 식탁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을 오랫동안 경험해 온 셈이다. 반면 시장 환경은 과거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식품 소비 트렌드 변화 속도가 빨라졌고 글로벌 원자재 가격과 환율 변동 영향도 커졌다. 온라인 유통 확대와 간편식 경쟁 역시 더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 동원그룹 흐름을 보면 방향은 비교적 일정하다. 단순 수산기업보다 종합 식품·물류 기업 쪽으로 무게가 이동하고 있다. 식품 제조와 유통, 물류 흐름이 함께 연결되는 모습이다. 동원그룹은 한국 산업화 시기 바다에서 출발한 기업이다. 그리고 지금은 식탁과 냉장고, 편의점과 물류센터까지 이어지는 생활 소비 흐름 안에 들어와 있다. 참치 한 캔으로 시작된 익숙한 이름은 어느새 한국 식문화 변화 자체를 설명하는 브랜드 가운데 하나가 됐다. 동원그룹 역시 그 흐름 안에서 계속 다음 장면을 만들고 있다.
2026-05-08 09: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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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선 정치, 길 잃은 경제...상식과 원칙의 복원이 시급하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함선이 짙은 안개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거센 파도가 배를 때리고 있지만, 조타실의 키는 고장 났고 엔진은 가열된 채 비명만 지른다. 작금의 현실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자면 '정치는 죽었고, 경제는 멍들었다'는 탄식일 것이다. 경제는 불확실성이라는 늪에 빠져 방향을 잃었으며, 정치는 정쟁이라는 족쇄에 묶여 기능을 상실했다. 더 비극적인 사실은 이 두 축이 서로를 구원하기는커녕 서로의 발목을 잡아채며 동반 침몰의 길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의 부침 속에서도 지금처럼 '기본'과 '상식'이 무너진 적은 드물었다. 인류의 오랜 지혜를 담은 경전들은 공통으로 '화합'과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가르친다.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 '식량을 충분히 하고, 군대를 튼튼히 하며, 백성의 믿음을 얻는 것(足食, 足兵, 民信)'을 꼽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이 중 하나라도 온전한 것이 있는가. 우선, 경제의 맥박이 희미해지고 있다. 내수 침체의 골은 깊어지는데 대외 환경은 흡사 전장(戰場)을 방불케 한다. 글로벌 공급망의 급격한 재편, 격화되는 미·중 패권 경쟁, 그리고 고금리의 장기화는 한국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가는 명확한 나침반을 제시해야 한다. 정책의 일관성과 적기(適期) 대응은 시장의 신뢰를 먹고 산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 정책은 시장에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규제 혁파를 외치면서도 정작 기업의 손발을 묶는 입법은 쏟아지고,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면서도 선거철만 되면 포퓰리즘의 유혹에 흔들린다. 구조개혁이라는 과제는 구호로만 존재할 뿐, 실행의 용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시장이 정책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정책을 의심하고 회피하는 현상은 국가 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신호탄이다. 노동 문제에 이르면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노동은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는 신성한 가치이자 경제 발전의 핵심 동력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노동의 '유연성'과 '안전망'이라는 두 가치를 놓고 극단적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경영계는 생존을 위해 유연화를 외치고, 노동계는 생존권을 위해 보호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는 택일(擇一)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가 쌓아온 보편적 상식에 비추어 볼 때, 생산성이 담보되지 않는 임금 인상은 기업의 파멸을 부르고, 안전망 없는 유연화는 공동체의 붕괴를 초래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균형의 예술'이다. 그러나 작금의 논의는 해법을 찾는 치열한 고민 대신 진영 논리라는 낡은 프레임에 갇혀 있다. 상대방을 타도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순간, 합리적인 대안은 설 자리를 잃는다. 원칙과 상식에 기반한 사회적 대타협은 실종되었고, 그 빈자리를 자극적인 선동과 혐오가 채우고 있다. 정치가 경제의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고 공동체의 비전을 설정하는 고도의 지적 행위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갈등을 먹고 자라는 기생(寄生) 정치가 되어버렸다. 민생은 뒷전이고 정파적 이익을 위한 입법 전쟁에만 몰두한다.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던 과거의 일침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 참담할 따름이다. 이제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류 경전의 가르침대로 순리를 따르고 상식을 회복해야 한다. 경제 정책은 정치가 아닌 '숫자'와 '현장'의 목소리에 기반해야 하며, 노동 개혁은 진영이 아닌 '상생'의 원칙 위에 세워져야 한다. 정치권은 서로를 향한 삿대질을 멈추고 국가의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협치(協治)를 보여줘야 한다. 국민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정치가 경제를 가로막고, 경제가 미래를 보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위기는 기회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지만, 그 기회는 준비된 자, 즉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법이다. 지금 당장 정치는 제자리로 돌아오고, 경제는 다시금 성장의 엔진을 가동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준엄한 책무다.
2026-05-06 16:5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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