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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3주체를 다시 짜라 ①기업·재벌편
[경제일보] 인공지능(AI) 시대는 한국경제에 기술 도입을 넘어선 전방위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은 AI를 비용 절감 수단이 아니라 조직과 사업모델 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소비자는 편리함에 머무르지 않고 데이터 주권과 알고리즘 감시 능력을 갖춰야 한다. 정부는 규제 완화와 산업 지원을 넘어 인프라, 인재, 안전망, 신뢰 체계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이에 본지는 이번 기획을 통해 AI시대 한국경제 3주체의 역할 변화와 개혁 과제를 짚고, 한국경제가 관성의 경제에서 학습의 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해법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한국 대기업들이 인공지능(AI) 전환의 한복판에 섰다. 반도체 기업은 AI 서버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첨단 패키징 경쟁에 뛰어들고 있고, 플랫폼 기업은 초거대 AI와 클라우드 인프라를 강화하고 있다. 자동차·조선·철강·금융권도 생산공정 자동화, 로봇, AI 상담, 리스크 관리 등으로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정부와 기업의 투자 시계도 빨라지고 있다. 최근 한국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을 축으로 대규모 AI·반도체 투자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약 800조원 규모의 신규 반도체 제조시설 투자에 참여하고, 충청권에는 81조원 규모의 반도체 패키징 클러스터가 조성된다. 또 SK·GS·네이버 등이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참여하고 장기적으로 관련 투자가 1000조원 이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구상도 내놨다. 실제 정부는 지난달 29일 SK·GS·네이버와 협력해 1단계로 8.4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SK가 5GW, GS가 2.4GW, 네이버가 1GW 규모로 참여하며 관련 투자 규모는 550조원으로 제시됐다. 투자 규모만 놓고 보면 한국 기업들은 다시 한 번 ‘큰 판’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선 “AI 투자가 곧 AI 경쟁력은 아니다”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대기업 AI 전략 담당자는 “지금은 어느 그룹이나 AI 조직과 태스크포스는 갖추고 있지만 실제 업무에 적용하려면 데이터 접근권, 보안, 법무, 감사, 성과평가가 모두 걸린다”며 “AI 도입보다 어려운 것은 부서 간 칸막이를 허무는 일”이라고 말했다. HBM이 바꾼 증시 서열…AI가 기업가치 기준 흔든다 AI 전환은 이미 국내 증시의 기업가치 평가 기준도 바꾸고 있다. 대표 사례가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수요 확대와 HBM 시장 선점 효과에 힘입어 지난달 22일 코스피 장중 시가총액에서 삼성전자를 앞질렀다. 이는 단순한 주가 순위 변화가 아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무게중심이 범용 메모리 중심에서 AI용 고부가 메모리와 패키징, 고객 맞춤형 공급망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과거에는 생산능력과 원가 경쟁력이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AI 반도체 기업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지, 차세대 HBM을 얼마나 빨리 개발·공급할 수 있는지가 기업가치를 좌우한다. 다만 AI 반도체 호황이 항상 주가 상승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8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미국 반도체주 약세와 AI 붐 지속성에 대한 우려 속에 장중 동반 약세를 보였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AI 반도체가 한국 증시의 핵심 테마가 된 것은 분명하지만 시장은 이제 단순한 실적 증가보다 지속 가능한 가격 결정력과 고객 기반을 본다”며 “AI 사이클이 길어질수록 기업 간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계열사 울타리에 갇힌 데이터, AI 경쟁력의 병목 AI 경쟁력은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같은 하드웨어 투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기업 내부의 데이터 활용 구조가 핵심 변수다. 한국 대기업은 제조, 금융, 유통, 통신, 물류 등 방대한 데이터를 갖고 있다. 그러나 계열사별·부서별로 데이터가 분산돼 있고, 보안과 개인정보, 감사 리스크 때문에 실제 활용은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한 제조업계 관계자는 “공장에는 설비 데이터가 쌓이고, 영업부서에는 고객 데이터가 쌓이며, 구매부서에는 공급망 데이터가 쌓이지만 이를 하나의 모델로 연결하는 일은 쉽지 않다”며 “AI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기술 문제가 아니라 내부 승인 절차에서 시간이 더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재벌 구조의 강점이던 수직계열화도 AI시대에는 양면성을 갖는다. 위기 때 빠르게 자원을 동원하는 데는 유리하지만 데이터와 인재가 계열사 내부에 갇히면 개방형 혁신에는 불리할 수 있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대기업들이 AI 스타트업과 협업을 말하지만 실제 계약 단계에서는 지식재산권, 데이터 소유권, 보안 조항이 지나치게 무겁다”며 “함께 실험하고 성과를 나누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AI 도입보다 어려운 건 일하는 방식의 개혁 기업들이 생성형 AI를 사내 업무에 도입하면서 보고서 초안 작성, 회의록 정리, 시장조사, 고객 응대, 코드 작성, 번역, 계약서 검토 등에서 AI 활용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AI를 업무 도구로 배포하는 것만으로 생산성 향상이 보장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지난 5월 arXiv에 공개된 조원익·김성훈·김근혜의 포지션 페이퍼 ‘Adopting AI in Practice Does Not Guarantee the Productivity Boost’는 AI 도입이 곧바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논문은 인력 구성, 구성원의 기초 역량, 학습곡선, 인센티브 구조, 목표 설정의 유연성 등이 AI 생산성 효과를 좌우한다고 분석했다. 한 경영학 교수는 “AI는 단순히 업무 시간을 줄이는 기술이 아니라 의사결정 방식을 바꾸는 기술”이라며 “기업이 AI를 제대로 쓰려면 어떤 업무를 AI에 맡기고 어떤 판단은 사람이 책임질지 조직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중간관리자의 역할 변화도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중간관리자는 자료를 취합하고 보고서를 다듬고 리스크를 걸러내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생성형 AI가 정보 수집과 문서 작성의 상당 부분을 보조하면서 중간관리자의 경쟁력은 보고서 작성 능력이 아니라 문제 정의, 결과 검증, 부서 간 조정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다. AI 전환은 청년 채용과 인재 육성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반복적 사무 업무와 초급 분석 업무가 AI로 대체되면 신입사원이 조직에서 배우는 첫 단계가 줄어들 수 있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AI 도입 이후 신입사원에게 맡길 수 있는 단순 업무는 줄어드는 반면, 처음부터 문제 해결형 역량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며 “채용 규모를 줄이는 유혹이 생기지만 장기적으로는 인재 풀이 약해질 수 있어 재교육 체계를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AI 거버넌스도 기업 경쟁력 됐다 AI 활용이 확대될수록 기업의 책임도 커진다. 한국은 AI 기본법 시행을 앞두고 있으며, 고영향 AI에 대한 인간 감독과 투명성 확보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특히 금융, 보험, 의료, 채용, 교육처럼 개인의 권리와 직접 연결되는 분야에서는 AI가 어떤 데이터를 사용했고,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으며, 오류가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질지가 중요해진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AI 상담이나 대출심사는 소비자 편의성을 높일 수 있지만 설명 책임이 약하면 민원과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AI를 많이 쓰는 회사보다 AI 판단을 얼마나 투명하게 관리하는지가 앞으로 더 중요한 평판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계에서는 AI 활용이 실제 경쟁력으로 이어지려면 조직 운영 방식의 변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대기업의 성장 방식은 계열사 내부에서 원료 조달, 부품 생산, 완제품 제조, 금융 지원을 묶는 수직계열화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AI 분야에서는 데이터, 클라우드, 알고리즘, 소프트웨어 인재가 기업 안팎에 분산돼 있어 외부 스타트업과 대학, 협력사와의 공동 개발과 실험이 중요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AI 경쟁력이 투자 규모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반도체 설비 확충과 데이터센터 구축은 AI 전환의 기반에 해당하지만 이후에는 내부 인재 재교육, 중간관리자 역할 재정립, AI 활용 책임 체계, 외부 생태계와의 협업 구조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한국 대기업의 AI 경쟁력은 대규모 투자 이후의 실행 구조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며 “총수의 투자 결정을 현장의 실험과 조직 학습으로 연결하고, 계열사 중심의 폐쇄형 운영을 개방형 협력 모델로 전환할 수 있는지가 향후 AI 전환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고 말했다.
2026-07-09 16: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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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서 방산·조선·우주 '산업복합체'로…한화, M&A로 재계 5위 '점프'
[경제일보] 한화는 한국 재계에서 변신의 폭이 가장 큰 그룹 중 하나다. 출발은 화약이었다. 1952년 한국화약으로 시작한 한화는 전후 복구에 필요한 산업용 화약을 국산화하며 성장했다. 도로, 터널, 공장과 항만을 짓던 시대의 뒤편에 한화의 화약이 있었다. 위험한 물질을 다루는 기술, 대형 산업 현장을 뒷받침하는 공급 능력, 국가 기간산업과 맞닿은 제조 감각이 한화의 초기 DNA였다. 약 70년의 시간이 지나 한화의 무대는 크게 달라졌다. 화약은 로켓 추진체와 정밀무기로 이어졌고, 방산은 자주포와 다연장로켓, 항공엔진과 레이더로 넓어졌다. 조선은 액화천연가스 운반선·특수선, 미 해군 정비사업으로 확장됐다. 태양광은 미국 현지 생산망을 통해 에너지 안보 산업으로 바뀌었다. 한화는 이제 방산·조선·우주·에너지를 묶어 산업 플랫폼을 만드는 그룹으로 거듭났다. 올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시대상기업집단을 지정하면서 한화는 재계 순위 7위에서 5위로 올라섰다. 삼성 방산 계열 인수, 대우조선해양 인수, KAI 지분 확대 움직임이 누적된 결과다. 한화는 회사를 사서 덩치만 키우는 방식이 아니라 사들인 회사를 기존 사업과 연결해 새로운 산업 지도를 그리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M&A로 체급 바꾼 한화식 성장법 한화 DNA의 핵심은 인수합병(M&A)을 통한 체급 변화다. 결정적 전환점은 2015년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 인수였다. 당시 삼성그룹이 방산·화학 계열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한화가 이를 받아들였다. 시장에서는 부담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거래는 한화 방산의 판을 바꾼 승부수가 됐다. 삼성테크윈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삼성탈레스는 한화시스템의 축으로 이어졌다. 항공엔진, 방산전자, 레이더, 지휘통제, 정밀무기라는 가치사슬이 한화 안에서 연결되기 시작했다. 2023년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두 번째 체급 변화였다. 한화는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 한화오션으로 새출발시켰다. 한화 계열 5개사는 약 2조원을 투입해 한화오션 지분 49.3%를 확보했다. 조선은 한화에 낯선 산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방산·에너지와 맞닿아 있다. LNG 운반선은 에너지 운송이고, 특수선은 해양 방산이며, 해양플랜트는 대형 엔지니어링이다. 한화는 조선을 별도 산업이 아니라 방산과 에너지를 잇는 플랫폼으로 본 셈이다. 최근 한화가 KAI 지분 확대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화는 올해 말까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지분을 그룹 합산 12% 이상으로 높일 예정이다. KAI는 국내 유일의 완제 항공기 개발·제조 기업이자 위성·항공 전투체계 역량을 가진 기업이다. 이에 한화의 KAI 지분 확대는 항공기, 위성, 엔진, 레이더, 발사체를 묶는 '한국형 항공우주 체계'를 구상하는 포석으로 읽힌다. 한화 방산의 성장세도 이와 같은 전략을 뒷받침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9 자주포와 천무 다연장로켓을 앞세워 유럽과 중동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올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노르웨이에 장거리 포병체계와 로켓을 공급하는 대형 계약을 따냈다. 유럽 안보 불안과 각국의 재무장 흐름은 한국 방산에 기회가 됐고, 한화는 빠른 납기와 검증된 양산체계로 그 기회를 잡고 있다. 방산·조선·우주로 이어지는 산업 플랫폼 한화의 강점은 단품 무기를 넘어 체계를 팔 수 있다는 데 있다. 자주포, 다연장로켓, 항공엔진, 레이더, 함정, 위성, 정비, 금융 조달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면 한화는 한국형 방산 플랫폼 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다. 한화오션은 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상화력과 엔진, 한화시스템은 눈과 두뇌, KAI 지분 확대는 하늘과 우주를 향한 연결고리를 맡는 구조다. 이 조합이 실제 시너지로 이어지면 한화는 한국 재계에서도 드문 산업 복합체가 된다. 태양광 사업도 한화 DNA를 설명하는 또 다른 축이다. 한화큐셀은 미국 조지아주 카터스빌 공장에서 태양광 셀 생산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해당 공장은 잉곳·웨이퍼·셀·모듈을 한곳에서 만드는 미국 내 수직계열화 공장이다. 방산과 태양광은 달라 보이지만, 한화가 읽는 문법은 비슷하다. 공급망을 장악하고, 현지 생산을 깔고, 국가 전략산업의 흐름에 올라타는 방식이다. 방산에서는 안보가, 태양광에서는 에너지 안보가 시장을 움직인다. 한화의 방향은 뚜렷하다. 한화는 소비자에게 친숙한 브랜드라기보다 국가 인프라와 안보, 에너지, 해양, 우주를 잇는 산업재 그룹으로 자신을 다시 규정하고 있다. 삼성은 '초격차', 현대차는 '제조와 공급망', SK는 '포트폴리오 전환'을 말한다면, 한화는 산업의 뼈대를 사들여 다시 조립하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재계 관계자는 "한화 DNA의 본질은 화약 그 자체가 아니라 위험을 통제하고, 큰 산업을 버티며, 필요한 기업을 사들여 새 체계를 만드는 능력"이라며 "지금의 한화는 가장 한화다운 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이어 "화약회사에서 출발한 기업이 방산·조선·우주라는 폭발력 있는 산업으로 돌아왔다"며 "체계와 신뢰, 안전과 기술로 증명돼야 하고, 이는 재계 5위로 올라선 한화가 마주한 다음 시험대"라고 덧붙였다. [아주경제 2026년 07월 02일자 13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7-02 08: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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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렌터카 다음 전장은 중고차…KG·현대차 판 키운다
롯데렌탈 매각 협의 중단으로 국내 렌터카 시장 재편 작업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최근 완성차 업체와 렌터카 업체, 중고차 플랫폼 간 경계가 흐려지면서 시장 경쟁 구도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KG그룹의 케이카 인수와 현대자동차의 인증중고차 사업 확대도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렌터카 패권전쟁]은 거래 무산 이후 달라진 시장 판도와 향후 재편 가능성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경제일보] 렌터카 시장의 경쟁축이 중고차로 옮겨가고 있다. 차량 가격 상승과 시장 성숙으로 계약 종료 이후 중고차 처분 가격이 수익성을 좌우하면서 완성차 업체와 중고차 플랫폼 모두 판매 이후 시장 확보에 나서고 있다. KG그룹은 케이카 인수로 중고차 유통망을 확보했고, 현대자동차는 인증중고차와 차량 구독 사업을 확대하며 판매 이후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 신차보다 큰 중고차 시장…‘잔존가치’ 경쟁 수익성 갈랐다 26일 자동차 시장 조사기관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중고차 거래 대수는 226만7396대로 신차 등록 대수(168만8007대)의 약 1.3배를 기록했다. 시장 규모도 30조원 이상으로 추산되며 자동차 산업에서 중고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중고차 시장 확대는 렌터카 산업의 경쟁 방식도 바꿔놓고 있다. 과거에는 차량 확보 규모와 계약 대수가 성장의 핵심 지표였다면 이제는 계약이 종료된 차량을 얼마에 판매하느냐가 기업 수익성을 좌우하는 구조로 변화했다. 렌터카 사업은 차량을 일정 기간 운용한 뒤 중고차 판매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만큼 차량의 잔존가치가 높을수록 감가상각 부담을 줄이고 처분이익을 높일 수 있다. 잔존가치 경쟁이 강화된 배경에는 국내 렌터카 시장이 성숙 단계에 접어든 영향이 있다. 지난해 렌터카 등록 대수는 처음으로 100만대를 넘어섰다. 장기렌터카와 법인 수요 확대를 바탕으로 외형 성장을 이어왔지만 시장이 일정 규모에 이르면서 단순히 차량을 늘리는 전략만으로는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같은 차량이라도 중고차 가격을 얼마나 유지하느냐에 따라 기업 간 수익성 격차도 커지고 있다. 신차 가격 상승과 금융 비용 증가도 잔존가치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차량 구매 비용이 높아질수록 계약 종료 후 회수하는 금액의 중요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전기차 비중이 확대되면서 배터리 성능과 차량 관리 수준이 중고차 가격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고 있다. 중고차 거래는 계약 종료 차량을 처분하는 기능을 넘어 차량 가치와 브랜드 경쟁력을 관리하는 역할로 확대됐다. 이 같은 변화는 완성차 업체들이 중고차 시장에 직접 뛰어드는 배경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 현대차는 잔존가치·KG는 수직계열화…중고차 전략도 차별화 중고차 시장을 공략하는 방식도 기업마다 차이를 보이고 있다. 차량 생애주기 전반을 직접 관리하는 전략과 제조·유통·금융을 하나의 가치사슬로 연결하는 전략으로 나뉜다.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판매 이후 시장을 직접 확보해 차량 한 대에서 창출하는 수익을 확대하려는 목표는 같다. 현대자동차는 판매 이후 시장을 하나의 사업 구조로 연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 3월 정관에 자동차 대여사업을 사업목적으로 추가했고, 이후 차량 구독 서비스도 도입했다. 소비자가 차량 구독 서비스를 통해 일정 기간 차량을 이용한 뒤 차량을 반납하면 회수 차량은 품질 검사를 거쳐 인증중고차로 다시 판매된다. 신차 판매와 차량 이용, 회수, 재판매를 하나의 체계로 연결해 고객을 브랜드 안에서 지속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과정에서 확보되는 차량 데이터도 중요한 자산이다. 주행거리와 정비 이력, 차량 상태 등을 직접 축적할 수 있고 이를 상품 개발과 서비스 개선에 활용할 수 있다. 제조사가 인증중고차 가격을 직접 관리하면 신차의 잔존가치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어 소비자의 재구매를 유도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신차의 잔존가치와 브랜드 경쟁력을 함께 관리하기 위한 전략이다. 반면 KG그룹은 케이카를 중심으로 제조와 유통, 금융을 하나로 연결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KG모빌리티의 완성차 제조 역량과 케이카의 중고차 유통망, KG이니시스·KG파이낸셜의 결제·금융 서비스를 연계해 신차 제조부터 중고차 유통, 자동차 금융, 결제까지 아우르는 가치사슬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중고차 사업 확대를 넘어 차량 판매 이후 발생하는 유통과 금융 수익을 그룹 내부로 흡수하는 것이 핵심이다. 고객 데이터를 직접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기존 자동차 산업의 분업 구조에서 벗어나 제조·유통·금융을 하나의 사업 구조로 연결해 차량 생애주기 전반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계열사 간 수직계열화를 통해 사업 시너지를 높이고 판매 이후 시장 경쟁력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완성차 업체들이 중고차 시장을 직접 공략하기 시작하면서 기존 중고차 업계의 경쟁 구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차량 판매 이후 가격 형성과 품질 관리, 금융 서비스까지 제조사가 직접 관여하는 비중이 커질 경우 중고차 시장의 경쟁 기준도 단순한 유통 규모에서 브랜드 신뢰도와 차량 관리 역량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산업의 경쟁은 이제 한 번의 판매가 아니라 고객이 차량을 교체하는 시점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차량 교체 수요를 다시 자사 브랜드로 흡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기업일수록 장기적인 경쟁 우위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2026-06-26 08:5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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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인수 승인…공정위 "경쟁 제한성 낮다"
[경제일보] 공정거래위원회가 하림그룹 계열사 엔에스쇼핑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인수를 승인하면서 유통·식품 산업 전반에 걸친 구조 재편 흐름이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온라인 식품 유통의 급성장과 오프라인 채널의 수익성 악화가 맞물린 상황에서 생산 기반을 갖춘 식품기업이 유통망까지 확보하는 ‘수직계열화 확장’이 현실화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엔에스쇼핑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사업부 영업양수 건(1206억원)에 대해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이번 거래는 홈플러스의 회생절차에 포함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공정위는 회생계획 이행 필요성을 고려해 신속 심사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심사의 핵심은 시장 집중도였다. 공정위는 기업형 슈퍼마켓(SSM) 시장에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점유율이 높지 않고 온라인 유통채널과 대형 식자재마트·중대형 슈퍼마켓 등 인접 시장의 경쟁 압력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최근 몇 년간 신선식품을 포함한 온라인 식품 매출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오프라인 SSM의 가격 결정력과 고객 흡인력이 약화된 점도 주요 근거로 작용했다. 이번 결합으로 총 13개의 결합 형태가 발생한다. 우선 하림의 생산·제조 부문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유통망이 결합되는 11개의 수직결합이 형성된다. 대상 품목은 닭고기, 돼지고기, 오리고기 등 신선육을 비롯해 식육가공품, 라면, 즉석밥, 냉동만두, 가정간편식(HMR), 펫푸드 등이다. 또 엔에스쇼핑의 TV홈쇼핑·온라인몰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오프라인 유통망이 결합되는 2개의 혼합결합도 발생한다. 공정위는 이 가운데 닭고기 관련 3개 수직결합을 제외한 나머지 10개 결합은 시장점유율이 낮아 경쟁 제한 가능성이 미미하다고 판단했다. 핵심 쟁점은 하림의 주력 사업인 닭고기(계육) 부문이었다. 생산과 유통이 결합될 경우 경쟁 업체가 판매처를 확보하지 못하거나 반대로 유통업체가 특정 공급자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SSM 시장 내 점유율이 경쟁사 대비 낮고 일반 슈퍼마켓까지 포함한 인접 시장 기준으로는 약 2% 수준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경쟁 계육 업체가 시장에서 배제되거나 경쟁 유통업체가 하림 제품 공급에서 불리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이번 인수로 하림은 식품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수직계열화 구조를 한층 강화하게 됐다. 하림은 곡물 조달과 사료 생산을 시작으로 축산, 도축, 가공, 물류까지 이어지는 공급망을 구축해왔다. 여기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라는 오프라인 유통망이 더해지면서 최종 소비자 접점까지 확보하게 됐다. 또한 엔에스쇼핑이 보유한 TV홈쇼핑과 이커머스 채널을 통해 온·오프라인을 결합한 유통 전략도 가능해졌다. 이는 단순한 유통 확장이 아니라 ‘식품 생산기업의 유통 내재화’라는 점에서 기존 유통 대기업 중심 구조에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공정위는 이번 승인에 대해 “급격한 구조 변화가 진행 중인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사업자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 혁신을 촉진하는 기업결합은 신속히 심사하되 독점적 지위를 강화하거나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경우에는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6-06-12 10: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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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만톤 에틸렌이 온다…한국 석유화학 재편의 'X 변수'
[경제일보] S-OIL의 9조원대 '샤힌 프로젝트(Shaheen Project)'가 막바지 공정에 들어갔다. 원유를 정제해 석유제품을 판매하던 정유사가 석유화학 원료까지 직접 생산하는 구조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한 것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샤힌 프로젝트는 S-OIL이 2022년 11월 이사회에서 최종 투자 결정을 내린 석유화학 2단계 확장 사업이다. 총 투자비는 9조2580억원으로 국내 석유화학 업계 최대 규모다. 완공 시 에틸렌 연산 180만톤을 확보하게 된다. 이는 울산·온산 국가산업단지 기존 전체 에틸렌 생산량 176만톤을 웃도는 규모다. 4월 말 기준 EPC(설계·조달·시공) 공정률은 96.9%로, 6월 말 기계적 완공 이후 올해 말 상업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술의 핵심은 TC2C(Thermal Crude to Chemicals)다. 모회사 사우디 아람코가 개발한 원천 기술로, 원유에서 나프타 등 석유화학 원료를 직접 생산한다. 기존 설비 대비 원료 수율이 3~4배 높고, 에너지 강도 지수 기준 업계 상위 25%(1분위) 수준으로 설계됐다. 파일럿 플랜트 단계부터 수년간 검증을 거쳤으며, 샤힌 프로젝트가 세계 최초 상업 적용 사례가 된다. S-OIL이 대규모 투자를 감행한 배경에는 정유업의 구조적 위기가 있다. 정제마진 변동성이 크고, 전기차 확산으로 장기적인 석유제품 수요 둔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연간 영업이익은 2023년 1조3546억원에서 2024년 4222억원, 2025년 2356억원으로 2년 만에 82% 줄었다. S-OIL 관계자는 "에너지 전환 흐름에 대응하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기 위해 석유화학 사업 확장을 추진해왔다"고 했다. 원가 경쟁력 앞세운 포트폴리오 전환 샤힌 완공 시 전체 매출에서 석유화학 비중은 현재 12%에서 25%로 2배 이상 확대된다. S-OIL은 "'정유사에서 화학사로의 전환'이 아닌 '정유에서 화학으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원가 경쟁력의 핵심은 TC2C와 수직계열화 구조다. 기존 정유시설의 부생가스·중질유 등 저부가가치 원료를 공정에 투입하고, 아람코와의 원유 장기 공급계약을 기반으로 나프타 외부 구매 의존도를 줄인다. 연간 생산 에틸렌 180만톤 가운데 132만톤은 자체 폴리머 설비에서 폴리에틸렌(LLDPE 88만톤·HDPE 44만톤)으로 가공된다. 잔여 약 58만톤과 프로필렌·부타디엔·벤젠 등 기초유분은 울산·온산 산단 내 다운스트림 업체들에 배관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세계 첫 상업 적용에 따른 기술 리스크에 대해 S-OIL 관계자는 "FEED(기본설계)·EPC 단계를 통해 충분한 검증을 마쳤고, 수십 년간 축적한 플랜트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안정적 가동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단기 외부 환경도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올해 1분기 미·이란 충돌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아시아 NCC(납사분해설비) 업체들의 가동률이 최대 20~30%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S-OIL은 아람코 계열사 지위를 활용해 정유설비 가동률 90% 수준을 유지했고, 2026년 1분기 연결 영업이익은 1조2311억원으로 반등했다. 경쟁사들이 원료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사이 샤힌 프로젝트의 초기 시장 진입 여건이 상대적으로 유리해졌다는 평가다. 공급 과잉·재무 부담은 변수 가장 큰 변수는 업황이다. 중국발 에틸렌 공급 과잉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정부 역시 설비 감축을 중심으로 석유화학 산업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여수·대산·울산 산단에서는 기업 간 설비 통폐합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산 180만톤 신규 설비 진입은 부담 요인이다. 잔여 에틸렌 58만톤의 외부 공급을 두고 대한유화·SK지오센트릭 등과의 공급 경쟁도 불가피하다. 재무 부담도 누적됐다. 부채비율은 2023년 말 138.7%에서 2025년 말 198.8%로 단계적으로 올랐고, 2026년 1분기 말에는 201.7%를 기록했다. 순차입금은 6조660억원, 총차입금은 7조5353억원에 달한다. 아람코가 대여금 6억달러·한도대출 5억3800만달러를 지원하고 있으며, 2023년 산업시설자금대출 1조원, 2025년 샤힌 관련 회사채 6800억원도 조달했다.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수익을 내야 재무 부담 완화가 가능하다. S-OIL 관계자는 "시황의 부침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수십 년을 내다본 투자인 만큼 TC2C 기반 원가 경쟁력으로 충분히 대응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샤힌은 2010년대부터 검토해온 투자로, 글로벌 최신 설비와 비교해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국화학산업협회 관계자는 "울산 지역은 기업별 이해관계가 달라 구조조정 논의가 더디다"며 "S-OIL 입장에서는 아직 가동도 하지 않은 신규 설비를 구조조정 대상으로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2026-05-26 17: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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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우주, 다른 승부… 한화 '안보 우주' vs 스페이스X '민간 우주'
[경제일보] 우주는 하나지만, 기업들이 그리는 청사진은 다르다. 특히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와 김동관 부회장이 이끄는 한화그룹의 우주를 미래 성장축으로 한 발 빠른 행보에 관심이 모아진다. 두 기업이 겨냥하는 시장과 축적해 온 산업 자산의 결은 확연히 다르다. 스페이스X가 전 세계 소비자를 겨냥한 ‘민간 우주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면, 한화는 발사체와 위성, 해양안보를 묶는 ‘안보 우주 기업’에 방점을 찍고 있다. 스페이스X가 우주를 통해 시장을 연결한다면, 한화는 안보를 연결하는 셈이다. ‘로켓 회사’ 넘어 거대 통신 플랫폼으로 진화한 스페이스X 최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결정은 스페이스X의 지향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스페이스X는 에코스타의 주파수 매각 승인을 통해 스타링크 단말 간 직접통신 서비스용 65MHz 대역을 170억 달러에 확보했다. 이는 스페이스X가 더 이상 단순한 로켓 발사나 위성 인터넷 사업자에 머물지 않음을 시사한다. 저궤도 위성망과 지상 이동통신망을 결합해, 기지국 없이도 전 세계 휴대전화를 우주망에 직접 연결하는 거대한 통신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파괴력의 원천은 팰컨9 로켓의 1단부 재사용 기술을 통한 획기적인 비용 절감과 사업의 수직계열화에 있다. 우주로 쏘아 올리는 발사체 제조 능력과 우주 공간에서 궤도 위 통신망을 운영하며 서비스를 판매하는 능력을 동시에 갖췄다는 점이 스페이스X의 진정한 경쟁력이다. 발사체 자립과 방산의 융합… 한화의 ‘한국형 안보 우주’ 한화의 길은 다른 궤도를 그린다. 한화그룹은 ‘스페이스허브’를 통해 발사체, 위성, 우주 탐사 역량을 통합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한국판 스페이스X’를 좇는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한화가 보유하고 있는 산업 자산은 민간 소비자를 위한 인터넷망보다는 군 위성통신, 감시정찰, 지상 및 해양 방산 체계와 더 강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전환점은 누리호 4차 발사였다. 한화는 누리호 제작 및 조립을 총괄하며 단순 부품 공급자를 넘어 체계종합기업으로 도약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함께 차세대 발사체(KSLV-Ⅲ) 개발도 주도하고 2032년 달 착륙선 발사를 목표로 하고 있는 등 국가 우주 수송 능력 확보라는 장기 프로젝트의 중심에 섰다. 한화의 강점은 단일 로켓 기술에 국한되지 않는다. 발사체 및 항공엔진 기술(한화에어로스페이스)과 지휘통제·위성통신(한화시스템), 함정·잠수함 등 해양방산(한화오션)이 결합하며 육·해·공을 우주로 잇는 거대한 방산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최근 한화시스템이 프랑스‧영국계 위성사업자 유텔셋 지분 5.4%를 전량 매각한 것 역시, 글로벌 민간 통신 가입자 유치 경쟁에 뛰어들기보다는 자사의 강점인 군 위성통신 및 안보 인프라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인프라가 된 우주, 새롭게 재편되는 글로벌 전장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와 같은 선택의 당위성을 명확히 설명한다. 전쟁 이후 위성통신과 상업 위성영상, 드론 운용, 전장 데이터 연결은 현대전의 핵심 인프라가 됐다. 일례로 지난해 7월 스타링크 장애가 우크라이나 군 통신과 드론 운용에 영향을 준 바 있다. 이는 상업용 위성영상이 병사, 드론, 지휘소를 실시간으로 잇는 핵심 전장 인프라로 격상됐고, 민간 위성망조차 전쟁이 발발하면 정찰과 타격을 위한 안보 인프라로 전환되는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독일 연방군은 오는 2029년까지 자체 위성망 구축을 검토 중이고, 중국은 저궤도 위성망을 차세대 6G 통신의 핵심 인프라로 삼고 대규모 주파수 및 궤도 자원 선점에 나서는 등 주요 국가들의 발걸음도 한층 빨라지고 있다. 한화의 승부처, K-방산과 해양 안보의 결합 우주 산업 전문가들은 한화가 단기간에 스페이스X의 길을 그대로 걷는 것은 무리라고 입을 모은다. 발사 빈도나 민간 위성 수요, 글로벌 가입자 기반 등에서 한국은 아직 후발 주자이기 때문이다. 한화가 주력해야 할 승부처는 막연한 ‘한국판 스타링크’가 아닌 ‘한국형 안보 우주 생태계’의 구축이다. 우리 군과 동맹국이 필요로 하는 저궤도 군 통신, 정찰위성, 발사체 자립, 장거리 정밀타격 체계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전략이 유효하다. 특히 해상에서 움직이는 전력을 위성으로 감시하고 표적 정보를 갱신하는 현대전의 양상을 고려할 때, 안보 우주와 해양 방산의 시너지는 필수적이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 수주에 나선 한화오션의 행보 역시 이 같은 큰 그림의 연장선에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우주 경쟁이 단순한 발사체 기술 경쟁을 넘어 주파수, 통신 주권, 전장 데이터 지배력을 다투는 싸움으로 확전된 양상”이라며 “스페이스X가 거대한 내수 시장과 벤처 자본을 바탕으로 민간 우주 플랫폼의 글로벌 표준을 만들고 있다면, 한화는 K-방산 특유의 빠른 제조 역량과 동맹국의 안보 수요를 결합해 ‘안보 우주의 표준’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2026-05-21 10: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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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풍 탄 K-조선… 몸집 키우고, 글로벌 영토 넓히고, 플랜트 특화
[경제일보]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온 대한민국 조선업계에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 하지만 순풍을 맞이한 ‘조선 빅3(HD현대중공업·한화오션·삼성중공업)’가 향하는 목적지는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압도적인 ‘규모의 경제’, 한화오션은 ‘글로벌 거점 확장’, 삼성중공업은 ‘고부가가치 해양 설비 특화’를 미래 생존 전략으로 낙점했다. 2026년 1분기 실적 발표는 세 회사가 앞으로 어떤 시장에 무게를 둘지 보여 주는 예고편과 같다. 올해 1분기 한국 조선 3사의 영업이익률은 9.4~15.3%를 기록하며 일반 제조업 평균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는 통상 2~3년이 걸리는 조선업의 수익 인식 구조 덕분이다. 2022~2023년 고선가 시기에 수주한 일감이 올해 손익계산서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수직계열화 vs 밸류체인 확장 vs 초격차 기술…3사가 택한 미래 생존법 HD현대중공업의 핵심 무기는 ‘규모’와 ‘수직계열화’다. 1분기 매출은 5조9163억원, 영업이익률은 15.3%로 3사 중 가장 높았다. 지난해 말 중형선 전문 계열사인 HD현대미포를 흡수 합병하며 덩치를 키운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수익성을 견인한 또 다른 축은 ‘자체 엔진 사업’이다. 선박과 엔진을 함께 만드는 수직계열화 구조 덕분에 엔진기계 부문 영업이익률은 조선 부문을 웃도는 21.1%를 기록했다. 현재 약 3년 치 수주잔량을 확보한 이 부문은 국내 조선업계의 ‘공통 엔진 공급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해외 확장에 가장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1분기 매출 3조2099억원으로 2위에 오른 한화오션은 단순한 선박 건조를 넘어 ‘LNG 밸류체인’ 전반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난 2024년 12월 미국 필리조선소(약 1435억원) 인수를 시작으로 싱가포르 해양플랜트 상부 구조물 전문기업 다이나맥(약 8800억원)을 연이어 품었다. 가장 눈에 띄는 행보는 미국 LNG 수출 터미널 운영사인 ‘넥스트데케이드’ 지분 6.8%(1803억원) 확보다. 이는 단순히 배를 파는 데서 그치지 않고, LNG 밸류 체인 안으로 들어가려는 한화오션의 전략으로 읽힌다. 다만, 에너지플랜트 부문에서 발생한 1분기 739억원 적자는 아쉬운 대목이다. 대규모 해외 거점 및 에너지 투자가 실제 수익으로 돌아오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삼성중공업은 철저하게 ‘고부가가치 영역’에 집중했다. 1분기 매출은 2조9023억원으로 3사 중 가장 적었지만, 재무 체력은 가장 극적으로 회복됐다. 1분기 말 기준 5000억원의 순현금을 기록하며 2012년 1분기 이후 14년 만에 순현금 체제로 전환했다. 핵심 동력은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다. 한 기당 3조~4조원에 달하는 대형 FLNG를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는 전 세계적으로 극소수다. 삼성중공업은 현재까지 대형 FLNG 5기를 수주해 3기를 인도했다. 또한 올해 ‘코랄 노르트’와 ‘델핀 LNG’ 프로젝트 등 최대 4기(약 12조~16조원 규모)의 수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LNG운반선 중심 포트폴리오를 해양플랜트로 분산하려는 전략이다. 미래 신사업으로는 부유식 데이터센터(FDC)를 꼽는다. 최근 미국(ABS)과 영국(LR) 선급으로부터 국내 최초로 개념 설계 인증을 받았고, 오픈AI(OpenAI) 등과의 협력도 모색 중이다. 장밋빛 전망 이면의 과제… ‘지속가능성’ 증명해야 할 시간 조선 3사가 각기 다른 해법을 내놨지만, 넘어야 할 공통의 파도도 존재한다. 우선 올해 1분기 조선 3사 모두 환율 변동으로 인한 손실을 겪었고, 미국 무역 정책의 변화와 고부가 선종(LNG선 등) 시장까지 노리는 중국 조선소의 맹추격은 상당한 위협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아울러 최근 노르웨이 선급 DNV가 “IMO의 넷제로(Net-Zero) 프레임워크 채택이 1년 지연됐다”고 밝힌 점도 변수다. 기후 규제 지연으로 암모니아·메탄올 등 차세대 친환경 연료 선박 프로젝트의 불확실성이 일시적으로 커졌다. 다만,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친환경 선박으로 가는 큰 흐름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 시각”이라면서, “조선업이 다시 한국 경제의 효자가 됐고, 10년 뒤에도 이 호황이 이어질 때 이른바 빅3 중 누가 가장 멀리 도달할 수 있느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했다. 조선 3사는 각자 다른 생존 전략을 꺼내 들었지만, 장밋빛 전망 이면에는 풀어야 할 뚜렷한 과제들이 자리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의 당면 과제는 ‘합병 효과 그 이후’를 증명하는 것이다. 2분기부터 도크 운영 효율 개선과 원가 절감 등 본연의 체질 개선 결과가 실제 숫자로 확인돼야만 진정한 ‘규모의 경제’를 입증할 수 있다. 가장 과감한 미래 베팅에 나선 한화오션은 투자 회수(ROI)라는 긴 호흡의 싸움을 견뎌야 한다. 미국 필리조선소와 싱가포르 다이나맥 인수, 넥스트데케이드 지분 투자는 미국 LNG 밸류체인을 선점하겠다는 명확한 청사진이다. 그 사이 견뎌야 할 에너지플랜트 부문의 적자와 특수선 사업의 실적 변동성은 경영진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FLNG 명가’로 거듭난 삼성중공업은 수주 변동성 극복이 핵심 과제다. FLNG는 초고부가가치 시장임이 명확하지만, 발주 건수 자체가 적어 프로젝트 일정에 따라 회사 전체의 실적이 크게 출렁일 수 있는 좁은 선택지다. 삼성중공업이 LNG 운반선에 집중된 포트폴리오를 해양플랜트 전반으로 분산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차세대 먹거리로 추진 중인 부유식 데이터센터(FDC) 역시 아직은 개념 설계 인증 단계에 머물러 있어 실제 수주와 매출 창출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아주경제 2026년 05월 21일자 13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5-21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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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함정으로 맞붙은 HD현대·한화…'해양 패권' 꿈꾼다
[경제일보] 1970년대 울산 미포만의 휑한 모래사장, 그리고 거제 옥포만의 거친 파도. 이를 기억하는 4060세대에게 조선소는 곧 치열한 땀방울과 눈부신 용접 불꽃의 상징이었다. 안전모를 쓴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거대한 쇳덩어리를 자르고 이어 붙여 초대형 상선을 띄워 올리던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의 현장. 오일쇼크와 외환위기 속에서도 대한민국 경제를 떠받쳤던 아날로그 시대의 낭만은 이제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했다. 현재 대한민국 조선소의 풍경은 그 자체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단순히 배의 덩치를 키우는 경쟁을 넘어 스텔스 기능과 인공지능(AI), 무인 자율운항 기술이 탑재된 첨단 함정을 건조하는 'K-해양 방산'의 심장부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거대한 디지털 전환기에서 HD현대와 한화오션은 글로벌 바다의 패권을 두고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벌이고 있다. ◆ '반세기 조선 제왕' HD현대…수출 영토 확장·디지털 트윈 결합 HD현대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해군력 발전의 산증인이자 글로벌 1위 조선사의 자존심이다. 1975년 한국 최초의 전투함인 울산함을 독자 설계한 것을 시작으로 해군의 첫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 차세대 이지스 구축함 정조대왕함까지 굵직한 해양 안보의 이정표를 세워왔다. 최근 HD현대가 내세우는 가장 큰 무기는 반세기 동안 축적된 '압도적인 함정 건조 기본기'에 더해진 'AI·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이다. 과거 철판의 두께와 함포의 사거리로 방어력을 자랑하던 함정은 다기능 위상배열 레이더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바다 위의 거대한 컴퓨터'로 진화했다. HD현대의 비전 발표 등에 따르면, HD현대는 가상 공간에 똑같은 함정을 구현해 성능을 테스트하고 유지·보수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방산에 적극 도입 중이다. 또한 내수 중심이던 방산의 체질을 수출형으로 완벽히 바꾸고 있다. 필리핀 초계함·호위함 수주 싹쓸이를 비롯해 최근 페루 등 중남미 국가들과의 대규모 함정 현지 건조 공동생산 계약을 따내며 단순한 선박 수출을 넘어 'K-방산 플랫폼' 자체를 수출하는 모델로 진화했다. 가장 완벽한 선체 위에 최첨단 두뇌를 얹어 글로벌 해양 방산 생태계를 주도하겠다는 것이 HD현대의 전략이다. ◆ '육해공 통합 방산 거인' 한화…미래 해양 무인체계 개발 막대한 자금 투입 한화오션의 기세는 재계를 뒤흔들 만큼 매섭다.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며 단숨에 해양 방산의 강자로 떠오른 한화오션은 기존 잠수함 건조 명가(名家)라는 타이틀에 '육해공 무기체계 수직계열화'라는 강력한 엔진을 달았다. 한화오션의 대우조선 인수는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라 '글로벌 종합 방산 기업'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퍼즐이었다. 한화의 전략은 극대화된 그룹 내 시너지다. 배를 만드는 한화오션, 두뇌 역할을 하는 레이더와 전투지휘체계를 담당하는 한화시스템에 더해 함정의 '심장(엔진)'과 '주먹(무장 체계)'을 공급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인다. 이를 바탕으로 한화오션은 최근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조선소(Philly Shipyard)를 전격 인수하며 국내 조선업계 최초로 세계 최대 방산 시장인 미국 본토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아울러 무인 잠수정(UUV)과 무인 수상정(USV) 등 미래 해양 무인체계 개발에도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수상함 시장은 물론 글로벌 방산 탑티어(Top-tier)를 향한 야심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 '7.8조원' KDDX 수주전·글로벌 잠수함 레이스 국내 해양 산업의 두 '거인'의 충돌은 현재 진행형이자 최고조에 달해 있다. 당장 눈앞에 닥친 최대 격전지는 약 7조8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이다. '미니 이지스함'으로 불리는 KDDX 6척의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누가 맡느냐는 단순한 매출 경쟁이 아니다. 100% 국산화 기술로 만들어지는 K-함정의 차세대 표준을 누가 선점하느냐의 문제인 만큼 두 그룹은 사활을 건 신경전과 법적공방까지 불사하며 물러설 수 없는 자존심 대결을 펼치고 있다. 또한 이들의 경쟁 무대는 좁은 국내 바다를 넘어 대양으로 확장되고 있다. 수십조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캐나다의 차세대 순찰 잠수함 프로젝트(CPSP), 호주와 폴란드의 대규모 해군력 증강 사업 등에서 HD현대와 한화는 각각의 기술력과 외교력을 총동원해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두 기업은 글로벌 거대 방산 기업들에 맞서 협력해야 하는 'K-방산 원팀'이기도 하지만, 최종 서류에 도장을 찍기 전까지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맞수'다. 과거 오일쇼크의 파고를 맨몸으로 부딪쳐 극복하며 대한민국 경제의 든든한 방파제가 돼 줬던 조선업. 쇳물과 땀방울이 뒤섞여 있던 그 시절의 거친 조선소는 이제 AI, 스텔스, 무인화 기술이 융합된 가장 스마트한 국가 안보의 최전선으로 진화했다. 과거의 향수와 미래의 기술이 팽팽하게 교차하는 바다 위에서, HD현대와 한화가 뱃고동을 울리며 써 내려갈 'K-해양 제국'의 역사는 이제 막 새로운 장(章)을 열고 있다. 다만, 두 기업의 화려한 부활 이면에는 대한민국 조선업이 반드시 풀어야 할 냉혹한 과제들도 존재한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숙련공의 고령화와 구조적 인력난은 K-조선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라며 "이미 생산 능력과 기자재 생태계 전반에서 매섭게 추격해 온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수주 경쟁을 넘어선 차별화된 전략이 시급하다"고 했다. HD현대와 한화오션이 펼치는 AI 함정 경쟁은 단순히 기술적 과시가 아닌, 인력 부족이라는 현실적 제약을 극복하고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한 생존의 필수 조건인 셈이다. 쇳물과 땀방울로 일궈낸 과거의 영광을 넘어 AI와 자동화 공정이라는 새로운 동력으로 글로벌 패권을 수성해야 하는 엄중한 시험대 위에 서 있다.
2026-05-04 15:5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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