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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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EDA 회장 조사로 번진 中 산업협회 사정…한중 경제교류 창구도 '투명성 시험대'
한·중 경제교류를 지원해 온 조선족 출신 권순기(權順基·중국명 취안순지) 중국아주경제발전협회(CAEDA) 회장이 기율·법률 위반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이 올해 산업 협회를 반부패 중점 분야로 지정한 이후 전국 단위 업계 협회 수장이 조사 대상에 오른 대표적 사례로, 산업 협회에 대한 고강도 사정이 본격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8일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국가감찰위원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권 회장은 엄중한 기율·법률 위반 혐의로 당국의 기율 심사 및 감찰 조사를 받고 있다. 구체적인 혐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중국에서 '기율·법률 위반'은 부패와 관련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CAEDA는 중국 외교부의 지도 아래 민정부에 등록된 국가급 비영리 사회단체다. 한중 수교 초기인 1993년 '중한(한중) 경제발전협회'로 출범해 이후 2009년 '중일한(한중일) 경제발전협회'로 명칭을 바꿨고 2016년부터 현재의 이름을 쓰고 있다. 그동안 한중 경제인 포럼과 투자유치 행사 등을 개최하며 양국 기업 간 교류 창구 역할을 해왔다. 권 회장은 20년 넘게 CAEDA에서 활동하며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과 투자 협력, 민간 경제 교류를 지원해왔으며, 2019년 협회장에 선출됐다. 2021년엔 조선족 기업인 최초로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다. 중국 현지 언론들은 이번 사건의 배경으로 권 회장 개인의 활동 자체보다 협회의 조직 운영, 임원 구성, 산하기관 관리, 회비 관리 등을 문제점으로 지목하고 있다. 중국신문주간은 권 회장이 협회장으로 선출된 2019년 이사회 회의에서 한꺼번에 부회장 100명을 선출했다며 "감투를 대량으로 나눠줬다"고 꼬집었다. 협회의 방만한 조직 운영도 도마에 올랐다. 산하에만 인공지능업무위원회, 공급망협력업무위원회, 조선족연합발전업무위원회 등 45개 분과를 운영하며 민간 기업인을 책임자로 앉힌 후 이들로부터 법인회원 명목으로 회비를 거둬왔다. 협회 회비 기준에 따르면 법인회원은 연간 10만 위안, 부회장은 4만 위안, 이사는 2만 위안, 일반 개인회원은 1만 위안을 납부한다. 또 협회 임원으로 활동하는 민간 기업인들은 협회 직함을 앞세워 지방정부와 대학 교류 행사에 활발히 참석해 왔다. 권 회장도 한중을 오가며 각종 경제 협력 행사와 세미나, 지방정부 교류, 투자 유치 설명회 등에 참석해 협회의 대외 영향력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중국신문주간은 이러한 과정에서 협회 직함이 개인이나 기업의 비즈니스 활동 수단으로 활용됐다고 지적했다. 최근 중국에서는 CAEDA처럼 사회단체의 영향력이 확대됨에 따라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정책 기조가 강해졌다. 중국 당국은 올해 전국 산업협회와 학회를 반부패 중점 분야로 지정한 데 이어 직함 남발, 분과의 무분별한 설치, 과도한 회비 징수 등을 대표적인 부패 유형으로 규정하고 집중 단속해왔다. 오는 8월 1일부터는 '사회단체 지부(分支)기구 및 대표기구 관리방법'도 시행하는 등 사회단체 관련 규정도 강화할 방침이다. 새 규정은 분과 아래 또 다른 분과 설치를 금지하고, 분과 책임자도 회장·부회장 대신 주임위원 등의 명칭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한·중 경제 협력 자체를 겨냥한 조치로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보고 있다. 다만 중국 정부가 사회단체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국 기업들도 협회 등 민간단체와 협력할 때 운영 투명성과 준법 여부를 더욱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주경제 2026년 07월 09일자 13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7-09 07:5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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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제5차 해외건설진흥계획 수립…기술·금융 앞세워 수주 체질 전환
[경제일보] 국토교통부가 해외건설 산업의 방향을 단순 시공 수주에서 기술·금융 기반의 투자개발형 사업으로 전환한다. 선진 건설사들은 기술력과 금융 조달 능력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중국·튀르키예 등 후발국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점유율을 넓히는 상황에서 기존 방식만으로는 해외 수주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국토부는 오는 2030년까지 해외건설 정책 방향을 담은 ‘제5차 해외건설진흥기본계획’을 수립했다고 6일 밝혔다. 해외건설진흥기본계획은 해외건설촉진법에 따라 마련하는 법정계획이다. 이번 계획은 업계 간담회와 공공기관 협의체,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해외건설진흥위원회 심의로 확정됐다. 국토부가 제시한 핵심 방향은 기술력, 글로벌 금융, 지원 기반 확충이다. 해외건설을 기술과 금융을 결합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새정부 해외건설 정책 방향을 구체화한 것으로 해외 인프라 펀드 확대와 기술선도 성장 기조도 반영됐다. 우선 우리 기업이 강점을 가진 기술을 해외 수주 모델로 연결할 계획이다. 현수교와 초고층 건축, 침매터널 등 기존 경쟁력이 확인된 분야를 바탕으로 설계·조달·시공(EPC)뿐 아니라 운영·유지관리(O&M)까지 포함한 전주기 패키지 사업 진출을 돕는다. 새로운 수주 분야도 발굴한다. 기존 시공 기술을 부유식 해상플랜트(FLNG), 데이터센터, 소형모듈원전(SMR) 등으로 확장하고 철도·공항 등 한국형 인프라를 신호·통신·보안·운영시스템까지 묶은 패키지 상품으로 육성한다. 한국형 도시개발 제도를 먼저 수출해 우리 기업에 유리한 사업 환경을 만들고 도시 기반시설에 AI 서비스를 결합한 ‘AI 시티’ 수출도 지원한다.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바이오매스 등 전략기술 기반의 해외 진출도 추진한다. 시장개척부터 사업화까지 단계별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사업기획과 설계·시공·운영을 총괄하는 프로젝트관리(PM) 기업도 세계적 수준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금융 지원도 확대된다. 국토부는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와 우리 기업이 함께 투자하는 기업매칭펀드, 해외 국부펀드·국책은행과 공동 투자하는 국가별 전략펀드 등 새로운 형태의 해외건설 인프라 펀드를 조성한다. 단순 도급 수주가 아니라 사업 지분에 참여하고 수익을 공유하는 투자개발형 사업을 늘리기 위한 장치다. 이와 함께 맥쿼리, 스미토모 등 대규모 자금을 운용하는 글로벌 개발사와 네트워크를 구축해 양질의 사업을 확보하고 다자개발은행(MDB) 협력 전담팀을 신설해 우리 기업의 MDB 사업 참여를 지원할 방침이다. KIND는 양질의 사업을 직접 발굴하고 구조화하는 글로벌 디벨로퍼로 키운다. 중소·중견기업 지원과 인재 양성도 기본계획에 포함됐다. 정부는 공적개발원조(ODA), MDB 사업과 연계해 중소·중견기업의 첫 해외 진출을 돕고 인프라·금융 전문 학위과정과 PM 전문인력 양성과정을 운영할 방침이다. 정상순방 등 고위급 경제외교와 연계한 ‘팀코리아’ 방식의 수주 지원도 확대한다. 이번 기본계획의 첫 실행 사례는 미국에서 구체화된다. 국토부는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김이탁 제1차관을 단장으로 한미 협력 수주지원단을 워싱턴D.C.에 파견했다. 미국 에너지부와의 장관급 면담에서 발굴한 정부 간 인프라 협력사업을 실제 수주 성과로 연결하기 위한 일정이다. 김 차관은 네바다주 리튬·붕소 플랜트 건설사업 업무협약 체결 행사에 참석해 우리 기업의 수주도 지원한다. 해당 사업은 미국 에너지부의 정책금융 대출이 약정된 프로젝트로 KIND는 지분 투자를 추진하고 현대엔지니어링은 EPC 참여를 준비 중이다. 국토부는 이 사업을 글로벌 금융과 공동 투자하는 모델이 실제로 작동하는 사례로 보고 있다. 이어 미국 에너지부 차관과 신규 정부 간 협력사업 발굴도 논의할 예정이다. 또 미국 인디애나주 블루 암모니아 플랜트 사업과 관련해 미국 농무부 차관을 만나 협력 범위를 넓히고 미국 주택도시개발부와 세계은행 관계자와도 도시개발·교통·에너지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김이탁 국토교통부 제1차관은 “이번 한미 협력 수주지원단 파견은 제5차 해외건설진흥기본계획 수립 이후 추진하는 첫 글로벌 금융 협력사업이다”라며 “양국 장관급 면담에서 다진 협력 기반을 구체적인 수주 성과로 이어가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기업이 양질의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며 해외건설 산업의 체질 전환을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2026-07-06 09:5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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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넘어 글로벌 마케팅 허브로…넷플릭스, K-브랜드 해외 진출 돕는다
[경제일보] 넷플릭스가 K-콘텐츠를 기반으로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는 '수출 플랫폼'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콘텐츠 흥행이 식품과 관광, 뷰티, 자동차 등 연관 산업 소비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넷플릭스 역시 단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넘어 K-브랜드 확산의 핵심 채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23일 넷플릭스는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6 K-엑스포 프랑스'에 참가해 K-콘텐츠와 국내 기업 간 협업 사례를 소개하고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 지원 성과를 공개했다고 밝혔다. K-엑스포 프랑스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한 행사로,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프랑스 파리 '팔레 데 콩그레 드 파리'에서 개최됐다. 드라마와 영화, 음악, 웹툰, 게임 등 K-콘텐츠를 비롯해 식품과 뷰티, 관광 등 연관 산업을 소개하는 행사로 약 3만5000명의 현지 관람객이 방문했다. 넷플릭스는 행사 기간 'K-콘텐츠 파트너십'을 주제로 전시 부스를 운영했다. 이를 통해 K-콘텐츠가 다양한 산업과 결합해 새로운 소비자 접점을 창출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인 사례들을 소개했다. 이번 전시에는 금호타이어와 기아, 네이버, 농심, 삼성, KT, CJ제일제당, 한국관광공사, 데브시스터즈, 아누아, 한샘, 포토이즘 등 국내 기업들이 참여했다. 해당 기업들은 '오징어 게임',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 별에 필요한' 등 넷플릭스 콘텐츠와 연계한 마케팅 및 협업 사례를 선보였다. 최근 K-콘텐츠는 단순 시청을 넘어 소비와 관광, 브랜드 경험으로 이어지는 경제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글로벌 시청자들이 콘텐츠를 통해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식품과 화장품, 관광지, 소비재 등에 대한 수요도 함께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넷플릭스는 이러한 흐름을 바탕으로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소비자와 만날 수 있는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콘텐츠 협업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해외 시장에서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콘텐츠와 산업 간 연계 효과도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넷플릭스는 관람객들이 자사 인기 K-콘텐츠 시청 경험을 확인할 수 있는 'K-콘텐츠 빙고' 이벤트를 진행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행사 첫 이틀 동안 준비된 굿즈 600여 개가 부스 운영 시작 후 1시간 만에 모두 소진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끌었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관람객들은 K-콘텐츠의 매력으로 독창적인 스토리와 높은 몰입감, 뛰어난 재미를 꼽았으며 일부는 한국어로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넷플릭스는 이를 통해 유럽 현지에서도 K-콘텐츠에 대한 관심과 인지도가 꾸준히 확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행사 첫날 진행된 미디어 세션에서는 넷플릭스를 비롯해 농심 유럽법인, 한국관광공사 파리지사,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 등이 참석해 K-콘텐츠가 식품과 관광, 소비재 산업에 미치는 경제적 파급 효과를 논의했다. 넷플릭스는 앞으로도 다양한 국내 기업과 협력해 K-콘텐츠가 문화적 영향력을 넘어 실질적인 산업 성장과 수출 확대에 기여할 수 있도록 협업을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넷플릭스는 콘텐츠를 통해 더 많은 한국 기업들이 국내외 소비자들과 연결될 수 있도록 다양한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파트너들과 협력해 한국 콘텐츠가 더 큰 경제적·문화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026-06-23 17:4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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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기업이 규제 없이 펄펄 날 수 있도록 상생의 새 틀 만들어야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 방문은 의전의 방문이 아니라 산업의 방문이어야 한다. 대통령은 4월 22일 하노이 동포 간담회에서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참으로 특별하다”고 규정하며 양국이 서로의 3대 교역국이고 한국은 베트남의 최대 투자국이라고 밝혔다. 또 2022년 수교 30주년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됐고 이번 방문을 통해 이를 더 미래지향적이고 전략적인 수준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특히 원전, 인프라, 과학기술 등 전략 분야의 협력 확대와 공급망 안정, 지속가능한 성장, 기후변화 대응을 핵심 의제로 제시했다. 이는 이번 한·베트남 정상외교의 무게중심이 단순한 친선이 아니라 산업·에너지·경제안보의 입체 협력에 놓여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베트남은 이제 한국 기업에 있어 선택 가능한 시장이 아니라 반드시 붙들어야 할 전략 공간이다. 이번 순방에서 한국 정부가 원전과 인프라 등 대형 국책사업에 우리 기업 참여를 논의하고, 베트남 국가 서열 1, 2, 3위 지도자와 연쇄 접촉에 나선 것도 그 때문이다. 베트남은 에너지·전력·철도·도시 인프라 수요가 큰 데다, 미·중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생산기지이자 소비시장 동시에 외교·안보적 완충지대의 의미까지 함께 커지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중국과 미국에 대한 경제 의존을 완화하면서도 아세안 중심축을 단단히 세울 수 있는 드문 파트너가 바로 베트남이다. 그러나 외교의 말이 아무리 좋아도 제도와 규제가 뒤따르지 않으면 기업은 날지 못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협력 확대’라는 외교적 수사보다 더 구체적인 제도 혁신이다. 양국 기업이 현지 인허가, 통관, 인증, 투자 승인, 인력 이동, 데이터 이전, 전력·용수 접속, 조세 해석 같은 실무 장벽에 걸려 허우적거린다면 정상회담의 성과는 사진 몇 장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원전 협력도 마찬가지다. 원전은 단순 수출 품목이 아니라 금융, 기술표준, 안전규제, 인력양성, 부품 공급, 장기 운영체계가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는 종합산업이다. 공급망 협력 역시 말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핵심 광물과 중간재, 부품과 장비, 항만과 물류, 통관과 결제의 흐름이 실제로 빨라져야 한다. 결국 양국이 진정한 전략 동반자가 되려면 정부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낡은 규제를 먼저 걷어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생의 새 틀’이다. 첫째, 양국 정부는 원전·에너지·인프라·첨단제조를 포괄하는 한·베트남 경제안보 협의체를 상설화해야 한다. 정상회담이 끝나도 실무가 이어지고, 실무가 쌓여 제도가 되고 제도가 쌓여 투자 확대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규제 정합성을 높여야 한다.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 투자할 때 겪는 행정 불확실성을 줄이고 베트남 기업이 한국과 기술·자본 협력을 할 때도 예측 가능한 기준을 갖도록 해야 한다. 셋째, 공급망 협력은 단순 이전이 아니라 공동 설계 방식으로 진화해야 한다. 생산은 베트남, 기술은 한국이라는 낡은 분업 구도를 넘어 연구개발·부품조달·후공정·물류·판매를 함께 설계하는 공동 생태계로 가야 한다. 넷째, 사람의 길을 넓혀야 한다. 대통령이 언급했듯 약 20만명 규모의 베트남 동포사회와 10만 세대에 이르는 한·베트남 다문화가정은 양국 관계를 잇는 살아 있는 기반이다. 기업 협력의 뿌리도 결국 사람이다. 기술자, 연구자, 관리자, 유학생, 다문화 가정 자녀가 자유롭게 오가며 역량을 키울 수 있어야 경제도 길게 간다. 한·베트남 협력은 단순히 “우리 기업이 많이 진출하자”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제는 양국 기업이 함께 크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베트남은 값싼 생산기지가 아니라 함께 산업을 고도화할 파트너이고 한국은 단순 투자자가 아니라 기술·품질·운영 역량을 공유할 동반자여야 한다. 그래야 반도체와 전자, 배터리와 자동차, 전력과 철도, 원전과 디지털 인프라까지 협력의 스펙트럼이 넓어질 수 있다. 공급망 안정도 마찬가지다. 중동 리스크, 미·중 갈등, 보호무역 강화가 겹친 지금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한·베트남 협력은 단순한 교역 확대가 아니라 불확실성의 시대를 버티는 공동 생존 전략이 되어야 한다. 베트남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한국은 깊은 산업 경험을 갖고 있다. 한쪽은 역동성을, 다른 한쪽은 축적된 기술과 제도 경험을 가졌다. 이 두 힘이 맞물리면 시너지는 크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저절로 현실이 되지 않는다. 정부가 앞에서 길을 터주고 제도를 정비하고 기업이 현장에서 과감히 뛰도록 만들어야 한다. 정상회담의 진짜 성패는 공동성명 문구의 화려함이 아니라 1년 뒤 3년 뒤 양국 기업이 얼마나 더 빠르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되었느냐로 판가름 날 것이다. 외교는 결국 경제를 살리는 쪽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한·베트남 관계가 참으로 특별하다면 그 특별함은 말이 아니라 제도로 증명되어야 한다. 이제 양국 정부는 기업이 규제에 묶여 뛰지 못하는 낡은 질서를 넘어 서로의 산업과 기술과 사람이 자유롭게 오가는 상생의 새 틀을 짜야 한다. 원전도, 공급망도, 인프라도, 미래산업도 그 틀 위에서만 제대로 자란다. 양국 기업이 규제 없이 펄펄 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 그것이 이번 정상회담이 남겨야 할 가장 현실적이고도 가장 큰 성과다.
2026-04-22 16:5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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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마이웨이' 전쟁에 동맹국 줄세우기…한국, 중동 파병 딜레마 빠지나
[경제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전쟁으로 봉쇄된 호르무즈 해협 호위 작전에 한국 등 동맹국의 파병을 거듭 압박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 규모와 원유 수입 의존도 등 사실과 다른 수치까지 동원하며 동맹국들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해, 향후 한미 간 파병 및 방위비 협상에 험로가 예상된다. 17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일본과 한국에 각각 4만5천명의 병력을 두고 있다"며 "우리가 이 나라들을 방어해주고 있는데, 호위 작전 동참을 요구하면 그들은 관여하지 않으려 한다"고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주한미군 규모(4만5천명)는 실제(약 2만8천500명)와 큰 차이가 있다. 주일미군 역시 5만명 수준이다. 또한 그는 "일본은 원유의 95%, 중국은 90%, 한국은 35%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여오지만 미국은 1% 미만"이라고 주장했으나, 실제 한국의 호르무즈 해협 원유 의존도는 60%를 웃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과장된 수치 인용 이면에는 다분히 의도적인 계산이 깔려있다고 분석한다. '미국은 에너지를 자급자족할 수 있고 중동의 원유가 아쉽지 않지만, 동맹국들을 위해 피를 흘리고 있다'는 프레임을 씌워 파병을 강제하거나, 파병을 거부할 경우 향후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등 다른 형태의 비용 청구서로 활용하겠다는 포석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우리에게 감사할 뿐 아니라 도와야 한다"며 동맹국들을 향해 "빠르고 열정적으로 관여할 것"을 촉구했다. 영국, 프랑스 등 나토(NATO) 동맹국들의 미온적인 태도에도 노골적인 실망감을 드러내며 글로벌 동맹 체제를 자국의 이익(America First)에 복무하도록 줄 세우고 있다. ◆ 韓 정부의 깊어지는 딜레마… 파병이냐, 중동 관계 악화냐 한국 정부는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 원유 수입의 생명줄인 만큼 항행의 자유 확보가 절실하다. 하지만 미국의 대(對)이란 '참수 작전'에 군사적으로 동참할 경우, 1962년 수교 이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이란과의 외교적 단절은 물론, 중동 내 반한(反韓) 감정을 자극해 현지 교민과 기업들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 앞서 2020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에도 비슷한 압박이 있었으나, 당시 한국 정부는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청해부대의 작전 반경을 호르무즈 해협으로 한시적으로 넓히는 선에서 절충안을 찾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국이 이란 영토와 지도부를 직접 타격하는 전면전 양상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같은 '우회적 파병'이 통할지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전 17일째를 맞은 이란과의 전쟁 전황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이스라엘과의 합동 공습 당시 표적이 됐던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에 대해 "한쪽 다리를 잃고 심하게 다쳤거나 죽었을 수도 있다"며 "누가 이란의 지도자인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또한 작전 개시 이후 이란의 7000개 이상 목표물을 타격해 이란의 미사일 및 드론 공격 능력이 90% 이상 감소했다고 덧붙였다. 최대 불안 요소인 국제 유가 급등에 대해서는 "이번 작전이 끝나면 유가는 매우 빠르게 내려갈 것이며 인플레이션도 마찬가지"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다르다. 이란의 주요 정유 시설 타격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제3차 오일 쇼크'가 글로벌 경제를 덮칠 것이라는 공포감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결국 트럼프의 '마이웨이' 중동 전쟁은 한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에게 경제적 피해(유가 상승)와 외교·안보적 부담(파병 압박)을 동시에 안겨주는 거대한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의 정교한 외교적 줄타기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2026-03-17 08:1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