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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일보] 위대한 문명은 언제나 두 가지로 완성된다. 뼈대와 혈관. 뼈대 없이는 서지 못하고 혈관 없이는 살지 못한다. 앤드루 카네기(1835~1919). 스코틀랜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소년 직공에서 출발해 미국 역사상 두 번째 부자가 된 사람.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브루클린 브리지와 대륙횡단철도, 뉴욕의 초기 마천루라는 미국 근대화의 물리적 골격을 자신의 철로 완성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출발점은 낮고 좁았다. 열세 살에 스코틀랜드에서 미국 피츠버그로 건너온 이민자 소년은 면직 공장의 실패를 감는 일부터 시작했다. 전신 배달부를 거쳐 철도 회사 전신 기사와 관리직을 거치는 동안 그는 한 가지 진실을 눈과 몸으로 익혀갔다. 인프라의 기반을 장악하는 자가 시대를 지배한다는 사실이었다. 철도가 미국의 혈관을 놓던 시절, 그는 그 혈관의 뼈대가 될 철강에서 다음 시대를 보았다. 손자병법은 말한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카네기가 철강 산업에 뛰어들 때 그는 시장만 본 것이 아니었다. 그는 기술을 보았다. 영국에서 개발된 베세머 공정을 미국 최초로 대규모 도입해 철 생산 속도를 열 배 이상 끌어올렸다. 경쟁자들이 낡은 방식으로 쇳물을 붓는 동안 그는 이미 다른 전장에서 싸우고 있었다. 기술 전환의 흐름을 먼저 읽은 자가 산업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원리를 그는 몸으로 실천했다. 그러나 기술 혁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카네기의 진짜 강점은 수직 통합이었다. 철광석을 캐는 광산에서 석탄 광산, 운반선, 철도 회사까지 생산의 전 과정을 직접 장악했다. 외부에 의존하는 고리를 하나씩 끊어냄으로써 원가를 낮추고 품질을 높였다. 누군가 가격을 올리거나 공급을 끊어도 카네기 스틸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 구조 자체가 곧 경쟁력이었다. 도덕경은 이를 꿰뚫는다. “소즉득 다즉혹(少則得 多則惑).” 적으면 얻고 많으면 오히려 흔들린다. 카네기는 사업의 범위를 철강 하나로 좁혔다. 당시 미국의 거부들이 은행과 부동산, 제조업을 두루 손에 넣으려 할 때 그는 철강에만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리를 시장이 그 개념을 인식하기 훨씬 전에 이미 살아낸 것이다. 그 좁고 깊은 집중이 카네기 스틸을 세계 최대의 철강 회사로 만들었다. 여기에 원가에 대한 집착이 더해졌다. 그는 실시간 원가 계산 시스템을 구축해 공정별 비용을 낱낱이 파악했다. 경쟁자들이 감각으로 경영할 때 그는 숫자로 경영했다. 이 냉철한 계산이 생산 효율을 극대화했고 시장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가격 경쟁력을 만들었다. 논어는 말한다.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헛되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카네기는 현장에서 배운 것을 숫자로 사유했고 그 사유를 다시 구조로 구현했다. 배움과 사유, 실천이 하나의 고리처럼 맞물린 경영이었다. 그의 삶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정점에서의 결단이다. 1901년 카네기는 J.P. 모건에게 카네기 스틸을 4억8000만달러에 매각했다. 당시 미국 연방 예산의 두 배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거대한 부의 대부분을 사회로 돌렸다. “부자로 죽는 것은 수치다.” 이 한 문장이 그의 후반 삶 전체를 압축한다. 미국 전역에 2509개의 도서관을 세웠고 카네기 홀을 지었으며 교육과 평화 사업에 자산의 90%를 쏟아 넣었다. 금강경은 이를 이미 알고 있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머무름 없이 마음을 내라. 카네기는 자신이 쌓아 올린 제국에 집착하지 않았다. 쥐고 있던 손을 열었을 때 그 손에서 흘러나온 것은 한 세기가 넘도록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있다. 머무름 없이 흘려보낸 부가 오히려 더 오래, 더 넓게 남은 셈이다. 성경 마태복음은 말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카네기의 기부 철학은 단순한 시혜가 아니었다. 그는 지식이야말로 가난을 끊는 유일한 사다리라고 믿었다. 그 믿음은 도서관으로 구현됐다. 자신이 어린 시절 책 한 권 마음껏 빌려볼 수 없었던 기억이 수천 개의 도서관이라는 형태로 세상에 돌아왔다. 결핍의 경험이 가장 위대한 유산의 씨앗이 된 것이다. 오늘의 AI 시대는 카네기의 철강이 던진 질문을 다시 꺼내 들고 있다. 반도체라는 새로운 철강, 데이터센터라는 새로운 제철소, 전력 인프라라는 새로운 철도가 시대의 뼈대를 다시 짜고 있다. 누가 그 뼈대의 핵심 기술을 먼저 장악하고 누가 생산의 전 과정을 수직 통합하며 누가 원가의 본질을 꿰뚫는 구조를 먼저 세우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다음 문명의 골격을 결정할 것이다. 카네기의 삶은 그 답의 방향을 이미 제시했다. 기술의 전환점을 먼저 읽고, 구조를 수직으로 통합하며 집중의 힘으로 시장을 재편하라.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반드시 이 질문을 얹어라. 나는 무엇을 위해 이 뼈대를 세우고 있는가. 뼈대는 서기 위해 세우는 것이 아니다. 그 위에 살아갈 사람들을 위해 세우는 것이다. 카네기의 철이 오늘도 가르치는 것은 바로 그 점이다.
2026-05-14 11: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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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물에 매겨진 '탄소 청구서'…포스코·현대제철, 패러다임이 바뀐다
[경제일보] 철강의 ‘가격표’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철광석과 유연탄, 전기료, 인건비로 귀결되던 전통적 원가 방정식에 ‘탄소’라는 무거운 청구서가 추가되면서다. 이제 쇳물 1톤을 뽑아낼 때 이산화탄소를 얼마나 뿜어냈는지가 수출 경쟁력은 물론, 글로벌 고객사의 구매 조건과 자본 시장의 평가를 좌우하는 시대가 열렸다. 올해 1월 1일부터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확정기간이 시작되면서, 철강 등 대상 품목의 내재 배출량은 본격적인 비용 산정 대상이 됐다. EU 수입자는 올해 수입분에 대해 2027년부터 CBAM 인증서를 구매·제출해야 하고, 이 부담은 한국 철강사의 수출 가격과 고객사 구매 조건을 압박하는 새로운 원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한복판에는 한국 철강산업을 이끌어온 두 거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서 있다. 현재 이들이 벌이는 진검승부는 과거처럼 ‘누가 고로(高爐)에서 더 많은 쇳물을 쏟아내느냐’, ‘누가 더 싼 값에 강재를 밀어내느냐’의 1차원적 물량전이 아니다. 앞으로의 철강 패권은 누가 더 탄소를 적게 배출하면서도 고품질의 돈 되는 철을 안정적으로 만들어내느냐에 달렸다. 이를 위해 고로의 절대강자 포스코는 쇳물을 끓이는 공정 자체를 뜯어고치는 험난한 길을 택했고, 현대제철은 범(汎)현대라는 강력한 ‘캡티브 마켓(내부 시장)’을 지렛대 삼아 전기로와 자동차강판을 결합한 차별화된 전환 경로를 구축하고 있다. “기술의 포스코 vs 공급망의 현대제철”…엇갈린 ‘탈탄소’ 해법 12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가 꺼내든 승부수는 ‘공정의 근본적 혁신’이다. 기존 고로 기반의 막대한 생산 규모와 고급강 기술력은 유지하되, 수소환원제철과 전기로, 저탄소 원료 기술을 동시다발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달 28일 미국 기후기술 기업 일렉트라(Electra)와 맺은 저탄소 철 생산 기술 공동개발 협약이 대표적이다. 일렉트라는 전기화학 반응을 통해 철광석에서 불순물을 솎아내고 고체 철을 얻는 기술을 쥔 기업으로 연산 500톤 규모의 시범공장을 올해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포스코는 자사의 직접환원제철 기술에 일렉트라의 전기화학 기법을 접목해 조기 상업 생산의 길을 닦겠다는 복안이다. 궁극적으로 포스코가 닿고자 하는 종착지는 ‘수소환원제철’이다.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쓰는 차세대 공정으로 고로 대비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기술이다. 다만, 실제 탄소 저감 효과는 수소 생산 방식과 전력의 탄소집약도에 좌우된다. 포스코는 포항제철소 내에 전담 개발센터를 꾸리고 연산 30만 톤급 시험 설비(데모플랜트) 구축에 나섰다. 광양제철소에 신설되는 대형 전기로 역시 탄소 저감 강재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핵심 인프라다. 포스코의 저력은 반세기에 걸쳐 축적된 세계 최고 수준의 일관제철 경험과 폭넓은 글로벌 고객망에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거대한 덩치가 탈탄소 시대엔 가장 무거운 짐이다. 철강 산업의 문법 자체를 갈아엎어야 하는 만큼 천문학적인 자본과 긴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혁신의 기회비용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지난한 궤도 수정에 성공한다면, 포스코는 글로벌 철강업계의 새로운 기술 표준(Standard)으로 군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현대제철은 ‘공급망의 진화’로 맞불을 놨다. 고로의 역사와 규모 면에서는 포스코에 한발 비켜서 있지만, 이들에겐 현대자동차그룹이라는 가장 확실하고 든든한 우군이 있다. 현대제철이 앞세운 저탄소 철강 브랜드 ‘하이에코스틸(HyECOsteel)‘은 철스크랩과 HBI 등을 전기로에서 녹인 쇳물을 고로 쇳물과 합탕한 뒤 전로 공정을 거쳐 생산하는 전기로-고로 복합프로세스 제품으로 기존 자사 고로재 대비 탄소배출을 20% 이상 줄인 것이 특징이다. 단기적으로는 주력인 자동차강판에 이를 집중 적용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신(新)전기로와 수소환원제철로 외연을 넓히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제철의 구상은 이미 양산 단계에 진입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2월부터 탄소저감강판 양산에 돌입했고, 연내 강종 인증 범위를 53종까지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부터 탄소저감 철강재를 국내·유럽 생산 차종에 일부 적용하고, 적용 강종과 물량을 점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안방선 혈투·해외선 동맹…‘녹색 쇳물’은 공짜가 아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미국 루이지애나 프로젝트에서 드러난 양사의 묘한 역학관계다. 지난해 말 공시와 국내 주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현대제철·포스코·현대차·기아는 미국 루이지애나 전기로 제철소 프로젝트의 투자 구조를 확정했다. 현대제철은 미국 현지 법인을 통해 총 58억 달러(약 8조원)를 투입, 연산 270만톤 규모의 제철소 건립을 추진 중이다. 현대제철(50%)을 필두로 포스코(20%), 현대차·기아(각 15%)가 한 배를 탔다. 국내 시장에서 이들은 자동차강판과 후판을 두고 치열하게 맞붙는 경쟁자다. 하지만 국경 밖의 사정은 다르다. 높은 관세와 옥죄어오는 탄소 규제, 자국 중심주의라는 거센 파도 앞에서 한국 기업끼리의 소모전은 공멸을 뜻한다. ‘안방에서는 싸우되, 해외에서는 뭉쳐야 산다’는 냉혹한 현실 인식이 탄소 원가전쟁 시대의 새로운 합종연횡을 만들어낸 셈이다. 물론 양사가 가야 할 길은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포스코는 본사 철강 사업에서 환율 상승에 따른 원료비 부담으로 이익이 줄었지만, 해외 철강법인 판매 확대와 원가절감 효과로 철강부문 전체 이익은 개선됐다. 현대제철의 경우 환율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1분기 영업이익이 전분기 대비 크게 감소했다. 탈탄소가 기업의 명운을 건 숭고한 미래 투자라 할지라도 당장 재무제표에 찍히는 막대한 비용의 압박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 철강업계의 얄궂은 현실이다. 전기로 비중을 높인다 한들 천문학적인 전력비와 국내 전력망의 높은 탄소배출계수라는 근본적 한계를 풀어내야 하는 숙제도 남는다. 진정한 그린스틸은 그저 ‘값싼 전기’가 아니라 ‘깨끗한 전기’를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철강 패권 전쟁은 ‘친환경’이라는 매끄러운 수사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며 “비용과 가격, 품질과 납기, 나아가 국가 제조업의 경쟁력이 통째로 걸린 산업 구조의 대수술”이라고 했다. 이어 “녹색 쇳물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라며 “고객사가 저탄소 철강에 기꺼이 프리미엄 지갑을 열 것인지도 미지수다. 철강사의 전환은 단순한 환경 캠페인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기술의 판을 엎으려는 포스코와 공급망의 룰을 바꾸려는 현대제철. 승자의 윤곽은 아직 희미하다. 과거 용광로의 온도와 크기로 군림했던 철강업의 잣대는 이제 무용지물이다. 가장 적은 탄소로, 최고 품질의 철을, 가장 경쟁력 있는 가격에 안정적으로 뽑아내는 자만이 새로운 철의 제국을 지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철강 거인들의 사투를 한낱 기업 간 점유율 경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이는 결국 한국 제조업의 튼튼한 뼈대가 다가올 10년 뒤에도 굳건히 버텨낼 수 있을지를 묻는 가장 엄중한 시험대다.
2026-05-12 07:5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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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거울, 카네기와 록펠러에 길을 묻다
[경제일보] 역사의 변곡점에서 시대정신은 언제나 두 거인의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한 명은 시대의 단단한 뼈대를 세우는 자이며 다른 한 명은 그 뼈마디 사이사이에 뜨거운 피를 돌게 하는 자다. 19세기 후반, 증기기관의 포효와 함께 미국이라는 미완의 대륙이 꿈틀거릴 때 역사는 두 사내를 선택했다. 스코틀랜드의 잿빛 가난을 짊어지고 대서양을 건너온 이민자 소년, 앤드류 카네기. 그리고 불우한 유년의 상처를 신앙과 회계장부로 봉합하며 자라난 청년, 존 D. 록펠러. 오늘 우리는 인공지능(AI)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해일 앞에 서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이 거대한 파도는 이제 인류 문명의 모든 해안선을 재정의하고 있다. 이 현기증 나는 전환의 시대에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화려한 기술의 신기루에 취해 길을 잃지 않으려면 역사의 거울을 들여다봐야 한다. 150년 전 철과 석유라는 문명의 두 기둥으로 세상을 재편했던 카네기와 록펠러의 삶은, 안개 자욱한 AI 시대의 본질과 승리 법칙을 놀라울 만큼 선명하게 투영한다. 이것은 낡은 위인전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생존에 관한 준엄한 질문이다. ◆ 미국의 뼈대를 벼려낸 자, 앤드류 카네기 앤드류 카네기의 삶은 아메리칸드림의 원형 그 자체다. 1848년, 13살의 소년은 증기선 뒷간에 숨어 신대륙에 첫발을 디뎠다. 손에 쥔 것이라곤 희망이라는 이름의 누더기뿐이었다. 방직 공장의 실패 감는 소년에서 전보 배달부, 철도 회사 직원을 거치며 그는 자본주의의 냉혹한 속성을 뼈에 새겼다. 그가 본 것은 멈추지 않는 미국의 팽창 에너지였다. 서부로, 서부로 뻗어 나가는 철도,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르는 마천루, 대륙의 혈맥을 잇는 거대한 교량. 카네기는 이 모든 야망의 근간에 무엇이 꿈틀대고 있는지 보았다. 바로 ‘철(鐵)’이었다. 여기에 그의 위대한 통찰이 번뜩였다. "인프라의 기반을 장악하는 자가 시대를 지배한다." 그는 금광을 찾아 헤매는 투기꾼이 아니었다. 금광으로 가는 길을 깔고 그 길 위를 달릴 기관차를 만들고 금을 캐는 데 쓸 곡괭이를 만드는 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에게 철강은 단순한 금속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의 미래를 떠받칠 단단한 골격이었다. 그의 철강 제국은 광적인 집념으로 쌓아 올린 견고한 성채였다. 결정적 계기는 영국에서 목격한 ‘베세머 공정’의 혁명적 잠재력을 꿰뚫어 본 순간 찾아왔다. 펄펄 끓는 쇳물에 공기를 불어넣어 불순물을 태워버리는 이 신기술은 연금술에 가까웠다. 2주가 꼬박 걸리던 강철 생산 시간은 단 15분으로 줄었고 원가는 폭락했다. 남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때 그는 전 재산을 걸고 이 신기술의 심장을 미국으로 가져왔다. 기술의 급소를 정확히 찌르는 자만이 경쟁의 규칙을 파괴하고 새로 쓸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는 마치 오늘날 AI 기업들이 최신 반도체 공정과 아키텍처에 명운을 거는 모습과 정확히 포개진다. 그의 제국은 단순한 공장이 아니라 스스로 호흡하는 유기체였다. 그는 ‘수직 통합’이라는 개념을 통해 자신만의 생태계를 완성했다. 철강 생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다. 미네소타의 철광석 광산에서부터 펜실베이니아의 석탄 광산, 원료를 실어 나르는 오대호의 증기선과 철도 회사까지. 원료 채굴에서 제품 생산, 운송에 이르는 전 과정을 자신의 제국 안에 편입시켰다. 외부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누구도 원가로 넘볼 수 없는 철옹성을 구축한 것이다. 외부의 기술이나 자원에 의존하는 순간 제국의 고삐를 놓치게 된다는 냉엄한 현실을 그는 간파했다. 이 거대한 제국을 움직이는 피는 ‘원가’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었다. 그는 역사상 최초로 정교한 실시간 원가 회계 시스템을 도입했다. 매일 아침 그의 책상에는 각 공정에서 발생한 비용이 1센트 단위까지 보고되었다. “이익은 알아서 따라오게 하고 비용을 감시하라”는 그의 말은 카네기 제국의 제1계명이었다. 이 서슬 퍼런 숫자에 대한 집착이 그의 용광로에서 나온 쇠를 세계에서 가장 단단하고 값싼 강철로 만들었다. 브루클린 브릿지를 지탱하는 우아하고도 강인한 강철 케이블, 미국 대륙을 동서로 관통한 수만 킬로미터의 철도 레일,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창조한 마천루의 H빔. 그 모든 것이 카네기의 용광로에서 벼려낸 미국의 뼈대였다. 그러나 그는 부를 쌓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부자로 죽는 것은 수치다”라는 그의 신념은 더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그는 자산의 90%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여 미국 전역에 1689개의 도서관을 짓고 카네기 홀을 건립했다. 그는 물리적 인프라를 넘어 지식과 문화라는 정신의 인프라까지 구축하고자 했던 것이다. ◆ 미국의 혈관을 장악한 자, 존 D. 록펠러 카네기가 미국의 단단한 골격을 만들었다면 록펠러는 그 거대한 몸에 검고 뜨거운 피를 돌게 한 인물이다. 그의 무기는 땅속에서 솟아난 검은 황금, 바로 ‘석유’였다. 그의 유년기는 카네기보다 더 어둡고 축축했다. 떠돌이 약장수였던 아버지 밑에서 그는 일찍부터 돈의 비정함과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가 독실한 신자였던 어머니에게 배운 것은 두 가지였다. 모든 수입과 지출을 1페니까지 기록하는 회계장부의 철저함과 수입의 10분의 1을 반드시 헌금하는 신앙의 경건함. 이 두 원칙이 훗날 그의 무자비한 사업 방식과 숭고한 자선 활동이라는 모순적인 삶의 두 축이 된다. 록펠러의 천재성은 남들이 ‘기름’이라는 노다지에 홀려 땅을 팔 때 그는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그림을 보았다는 점이다. 19세기 중반 펜실베이니아에 석유가 터져 나오자 수많은 사람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시추공에 달려들었다. 그러나 록펠러는 그 도박판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는 석유 채굴은 예측 불가능한 행운의 게임이지만 일단 채굴된 원유를 정제하고 운송하여 판매하는 것은 ‘반드시 돈이 되는 사업’임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석유 산업의 혈관, 즉 정제와 유통망을 장악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무기는 회계장부였다. 그는 카네기를 능가하는 비용 통제의 화신이었다. 원유 1갤런을 운반하는 데 쓰는 나무통 가격을 2.5달러에서 1달러 미만으로 낮추기 위해 직접 통 제조 공장을 세웠다. 통을 밀봉하는 데 쓰던 40개의 땜납을 39개로 줄여보라고 지시한 일화는 그의 경영 철학을 상징한다.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이 작은 차이들이 모여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거대한 가격 경쟁력의 성벽을 쌓았다. 그는 이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가장 치명적인 무기를 휘둘렀다. 바로 ‘유통망 장악’이었다. 당시 유일한 운송 수단이던 철도 회사와 비밀리에 리베이트 계약을 맺어 경쟁사보다 훨씬 싼 값에 석유를 운송했다. 심지어 경쟁사가 지불하는 운송비의 일부까지 자신에게 흘러 들어오도록 설계했다. 국가의 대동맥과도 같은 철도망을 자신의 사적인 무기로 만든 것이다. 경쟁사들은 이유도 모른 채 피를 말리며 고사해갔다. 마지막으로 그는 ‘합류가 아니면 파산’이라는 냉혹한 흡수 전략으로 시장을 평정했다. 압도적인 원가 경쟁력과 유통망을 무기로 그는 경쟁 정유사들을 차례로 무릎 꿇렸다. 그는 경쟁사의 장부를 샅샅이 보여주며 스탠더드 오일에 합류할 것을 제안했다. 거부하는 자에게는 무자비한 가격 전쟁을 일으켜 파산의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그는 무질서한 경쟁을 ‘죄악’으로 여겼고 독점을 통한 ‘질서’와 ‘안정’이야말로 산업의 발전이라 믿었다. 결국 그는 미국 정유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는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를 완성했다. 그의 석유는 등유가 되어 인류의 밤을 밝혔고 가솔린이 되어 자동차 시대를 열었다. 스탠더드 오일은 현대 산업을 움직이는 운영 체제(OS) 그 자체였다. 그는 비정한 독점가라는 평생의 멍에를 짊어졌지만 훗날 록펠러 재단을 통해 의학과 교육 발전에 막대한 기여를 하며 부의 의미를 다시 썼다. ◆ AI 시대, 변하지 않는 법칙의 귀환 역사의 거울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카네기의 철과 록펠러의 석유. 이 둘은 2차 산업혁명 시대의 물리적, 에너지적 기반이었다. 오늘날 AI 시대의 철과 석유는 무엇인가. 카네기의 철은 단연코 AI 모델의 두뇌인 ‘반도체’다. 록펠러의 석유는 그 반도체를 깨우는 ‘전력’과 데이터를 실어 나르는 ‘클라우드 인프라’다. 놀랍게도 오늘날 AI 패권 전쟁의 승자들은 150년 전 두 거인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복제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AI 반도체라는 새로운 ‘철’의 생산 방식을 독점하고 있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는 클라우드 서비스라는 ‘석유 유통망’을 장악하고 전 세계 AI 기업들로부터 막대한 ‘통행세’를 거두고 있다. 이들 모두 반도체 설계부터 소프트웨어, 클라우드 서비스까지 모든 것을 장악하는 수직 통합을 추구하며 자신만의 제국을 견고히 쌓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거대한 지각 변동 속에서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뼈대를 만드는 카네기가 될 것인가, 그 뼈대 속을 흐르는 혈액을 공급하는 록펠러가 될 것인가. 혹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인프라 위에서 살아가는 단순한 소비자에 머무를 것인가. 카네기와 록펠러는 웅변한다. 시대의 본질을 꿰뚫고 그 기반이 되는 인프라를 장악해야만 미래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다른 이들이 만들어 놓은 화려한 AI 모델을 가져다 쓰는 수준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우리만의 반도체를, 우리만의 데이터센터를, 우리만의 AI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기술의 급소를 찌르는 혁신, 외부 의존도를 끊는 수직적 장악력, 상대를 질식시키는 원가 통제. 150년 묵은 이 법칙들은 AI 시대에 더욱 서슬 퍼렇게 귀환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그 운율은 반복된다. 철과 석유의 시대가 남긴 거대한 메아리는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준엄한 경고이자 다시없을 기회다. 제2의 카네기, 제2의 록펠러가 될 수 있는 창은 아직 열려 있다. 그 창을 향해 과감히 몸을 던질 것인가, 아니면 그저 창밖의 풍경이 변하는 것을 구경만 할 것인가. 선택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2026-04-27 17: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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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직맹 "경제발전 5개년 계획 달성 총진군"
북한 노동당의 외곽 근로자단체인 조선직업총동맹(직맹)이 전체 근로자들을 향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 달성을 위한 '총진군'을 독려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일 직맹 중앙위원회가 최근 제8기 제15차 전원회의에서 제9차 대회를 5월에 소집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 회의에서 직맹은 제9차 노동당대회, 제15기 최고인민회의 등의 결정사항 관철을 독려하는 내용의 '호소문'을 '전국의 노동계급과 직맹원'들을 대상으로 발표했다. 직맹은 호소문에서 "제9차 대회가 가리킨 승리의 진로 따라 새로운 5개년 계획의 빛나는 완수를 위한 전 인민적 총진군이 시작됐다"면서 "더 과감하고 공세적인 투쟁을 벌려 사회주의 전면적 발전기를 힘 있게 추동하자"고 강조했다. 직맹은 금속공업, 화학공업, 전력·석탄공업, 건설, 철도운수, 경공업, 수산업, 과학·기술자, 군수노동계급 등 각 분야를 거론하면서 "모든 일터와 초소들은 위대한 내 나라를 떠받드는 주추"라며 "누구나 증산으로 애국하고 충성하며 최고의 기록을 향해 분투하라"고 당부했다. 이어 "우리 인민의 이상과 포부는 반드시 실현되며 새로운 5개년 계획의 빛나는 완수는 확정적"이라며 제9차 당대회에서 제시된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완수를 다짐했다. 직맹은 사회주의여성동맹(여맹),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청년동맹), 농업근로자동맹(농근맹)과 함께 '4대 근로단체'로 불린다. 북한은 제9차 당대회를 마무리한 이후 새로운 집행부 구성 등으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각 근로단체마다 새로운 기수 출범을 예고하고 있다.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노동당 9차 대회를 마치고 가장 먼저 찾은 상원시멘트연합기업소 공장을 '본보기'로 내세우며 주민들에게 증산 의지를 독려했다. 김 위원장은 "새로운 증산기적을 창조해 나가고 있는 상원 노동계급처럼 어디서나 새 기준, 새 기록 창조의 기운을 고조시키며 걸음걸음을 부단히 재촉해 당대회 이후 5개년 계획 수행의 첫해부터 괄목할 성과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조선직업총동맹은 북한 조선노동당의 노동자 정치조직이다. 조선노동당에 가입하지 못한 30세 이상의 노동자·기술자·사무원 등 모든 직장인이 가입돼 있다. 1945년 김일성 지시로 '북조선직업총동맹'가 결성됐으며, 1947년 5월에 '세계직업연맹'에 가입했다. 1951년 북한의 '북조선직업총동맹'과 남한의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가 통합해 '조선직업총동맹'으로 개칭했다. 조선직업총동맹은 노동자들의 권익 실현을 위한 순수한 노동자 단체가 아니라 북한 조선노동당의 적화혁명 노선을 노동 분야에서 수행하는 전위대다.
2026-04-01 11: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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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자동차'마저 흔들리면 끝장, 정부는 경제 비상체제로
[경제일보] 중동 전쟁의 포화 속에서 우리 경제의 최후 보루인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마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에 있어 이 두 기둥이 무너진다는 것은 단순히 성장률 몇 퍼센트가 깎이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 시스템 전체가 마비되는 재앙을 의미한다.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7%로 내동댕이친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전쟁이 장기화되어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히 봉쇄될 경우, 우리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전대미문의 ‘동토(凍土)의 시대’에 진입할 수밖에 없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에너지 집약적’ 구조라는 치명적 약점을 노출하고 있다. AI 열풍으로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가 폭증하고 있지만, 반도체 생산 라인을 돌리는 데 드는 막대한 전력은 결국 액화천연가스(LNG)와 원유에 의존한다. 에너지 가격 폭등은 곧장 제조 원가 상승으로 이어져 글로벌 가격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여기에 항공 운송료까지 치솟으며 수출길마저 좁아지는 형국이다. 자동차 산업 역시 설상가상이다. 중동은 현대차·기아 점유율이 10%를 넘는 전략 요충지이자 연간 300만 대 규모의 거대 시장이다. 이란 시장의 증발과 물류 대란은 공들여 쌓아온 수출 탑을 단숨에 무너뜨리고 있다. 이제 정부는 ‘검토 중’이라는 한가한 소리를 거두고, 즉각적이고 파격적인 ‘경제 비상 대책’을 실행해야 한다. 첫째, 에너지 수급의 전면적 국가 관리다. 비축유 방출을 넘어 원전 가동률을 80% 이상으로 극대화하고, 석탄발전 상한제를 일시 해제해서라도 산업용 전력 단가를 동결해야 한다. 기업이 에너지 비용 때문에 공장을 멈추는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 둘째, 중소기업 전용 ‘전쟁 특별 금융’의 가동이다. 최근 중소기업 경기전망지수(SBHI)가 계엄령 사태 이후 최악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민생 경제의 하부 구조가 이미 괴사 직전임을 시사한다. 원자재값 폭등분을 정부가 일부 보전해주고,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를 넘어선 긴급 운영자금 수혈이 즉각 이뤄져야 한다. 셋째, 수출 물류의 국가 책임제다. 민간 선사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국적 선사를 총동원해 수출용 선복을 강제 할당하고, 급격히 오른 물류비의 50% 이상을 정부 예산으로 직접 보조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지금은 경제 관료들이 책상 앞에 앉아 수치만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25조 원 규모의 추경을 신속히 편성하여 고유가 독소(毒素)를 중화시키고, 규제의 빗장을 풀어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생존로를 찾게 해줘야 한다. 정부가 비상한 각오로 경제 방어막을 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란발(發) 오일 쇼크에 무기력하게 침몰하는 ‘성장 실종’의 시대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2026-03-27 10:4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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