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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가 남긴 질문, 부산은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경제일보] 세계적인 K팝 그룹 BTS의 부산 공연을 앞두고 뜻밖의 논란이 불거졌다. 공연 자체가 아니라 숙박요금 때문이다. 일부 숙박업소가 평소보다 수배에서 수십 배에 이르는 가격을 책정하고, 기존 예약을 취소한 뒤 더 높은 가격으로 재판매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국내외 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BTS의 리더 RM이 공개 방송에서 "좀 적당히들 하입시다"라고 말하고, 부산 출신인 지민마저 "팬들이 좋은 추억만 가지고 갔으면 좋겠다"고 언급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사실 이번 논란은 단순히 숙박요금 문제가 아니다. 관광도시의 품격과 신뢰, 그리고 도시 브랜드의 지속 가능성에 관한 문제다. 세계 각국의 관광객과 팬들이 부산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공연을 보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그들은 부산이라는 도시가 가진 문화와 사람, 그리고 환대의 가치를 경험하기 위해 방문한다. 그런데 일부 업소의 과도한 상술은 그 기대를 실망으로 바꾸고 있다. 관광산업은 제조업과 다르다. 제품을 한 번 판매하고 끝나는 산업이 아니다. 관광은 경험을 파는 산업이며, 신뢰를 파는 산업이다. 방문객이 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야 다시 찾고 주변에 추천한다. 반대로 한 번의 불쾌한 경험은 수많은 잠재 고객을 잃게 만든다. 당장의 몇십만 원, 몇백만 원의 추가 수익을 얻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도시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번 사태에서 더욱 우려되는 부분은 일부 숙박업소의 오버부킹 의혹이다. 이미 예약된 객실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뒤 더 높은 가격에 다시 판매했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단순한 가격 문제를 넘어 신뢰의 문제다. 계약과 약속이 존중되지 않는 시장은 결국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행스러운 점도 있다. 부산의 종교계와 대학, 공공기관, 시민사회가 나서 공정숙박 챌린지를 시작한 것이다. 사찰의 템플스테이, 교회와 성당의 숙소 제공, 대학 기숙사 개방, 공공기관 시설 활용, 시민 홈스테이까지 이어지는 움직임은 부산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숙박 지원을 넘어 도시 공동체가 함께 손님을 맞이하는 환대의 정신을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부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홈스테이에 참여하는 모습은 주목할 만하다. 세계적인 관광도시는 화려한 건물이나 유명 관광지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결국 도시의 품격은 시민들의 태도와 공동체 의식에서 나온다. 관광객에게 정직한 가격을 제시하고, 따뜻하게 맞이하며, 좋은 추억을 남기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관광 경쟁력이다. BTS는 단순한 대중음악 그룹이 아니다. 오늘날 BTS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 자산이며, 수많은 해외 팬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문화 외교관 역할을 하고 있다. BTS 공연을 보기 위해 부산을 찾는 팬들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손님들이다. 그들에게 바가지요금과 예약 취소라는 기억을 남긴다면 그것은 부산만의 손실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이미지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논란은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형 행사나 축제 때마다 반복되는 바가지요금 논란은 우리 사회가 오래도록 해결하지 못한 고질적 문제다. 이제는 지방자치단체와 업계, 시민사회가 함께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단기적 이익보다 장기적 신뢰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 관광산업도 한 단계 더 성숙할 수 있다. BTS는 부산에 거대한 경제적 기회를 가져왔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도시의 품격을 시험할 기회도 함께 가져왔다는 점이다. 공연은 며칠이면 끝나지만 도시의 평판은 오래 남는다. 부산이 세계인들에게 어떤 도시로 기억될지는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손님을 맞이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 바가지요금으로 얻는 일시적 이익보다 정직한 환대가 가져오는 신뢰의 가치가 훨씬 크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것이다.
2026-06-07 15:2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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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도시락과 5만원 훠궈, MZ의 '쪼개진 지갑'이 던지는 경고
[경제일보] 점심시간, 편의점마다 5000원 남짓한 가성비 도시락을 집어 드는 2030 청년들의 줄이 길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가 만들어낸 이른바 '런치플레이션(Lunchflation)'의 씁쓸한 풍경이다. 10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동선을 꺾고 교통비를 아끼려 알뜰교통카드 앱을 수시로 들여다본다. 이들에게 소비의 제1원칙은 단연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다. 그런데 해가 지고 주말이 오면 이 가성비의 전사들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인다. 1인당 객단가가 최소 4만원에서 6만원을 훌쩍 넘는 중국 훠궈 프랜차이즈 '하이디라오' 매장 앞은 두세 시간의 대기도 마다하지 않는 MZ세대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주머니 사정이 팍팍하다며 지출을 통제하던 그들이 왜 이토록 비싼 외국계 식당 앞에서는 기꺼이 지갑의 빗장을 푸는 것일까. 최근 하이디라오 코리아가 발표한 실적은 이 기현상을 명확한 숫자로 증명했다. 2023년 매출 1177억원. 전년 대비 무려 50% 이상 급증한 수치이며 영업이익은 두 배 가까이 뛰었다. 과거 한국 시장에 진출했던 중국 외식 브랜드들이 주로 '싸고 양 많은' 마라탕이나 탕후루 같은 초저가 시장을 공략했던 것과는 궤를 달리한다. 고가 정책을 고수하면서도 한국 외식 시장에서 단일 브랜드로 1000억원의 벽을 뚫어낸 이면에는 우리가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던 MZ세대의 '달라진 소비 심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기성세대의 시각에서 이들의 소비는 모순 그 자체다. "돈이 없다면서 오마카세와 하이디라오에는 왜 열광하느냐"며 혀를 끌짯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된 '선택적 생존 전략'이다. 오늘날 청년들의 가성비는 단순히 '절대 가격이 싼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가성비란 '내가 지불한 비용(돈과 시간) 대비 얻어내는 총체적 효용'이다. 미래의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시대, 평생을 모아도 내 집 마련이 요원해진 구조적 좌절 속에서 이들은 일상적인 소비를 극단적으로 통제한다(편의점 도시락). 하지만 그렇게 모은 잉여 자본을 자신의 정서적 만족감과 소셜 미디어(SNS)상에서의 자아실현을 확실하게 보장해 주는 '경험'에 집중적으로 투자한다(하이디라오). 이른바 '앰비슈머(Ambisumer·양면적 소비자)'의 탄생이다. 이들에게 하이디라오의 5만원은 비싼 고깃값이 아니다. 5만원이라는 돈을 내고 식사 시간 내내 완벽하게 '주인공'으로 대접받는 심리적 만족감, 눈앞에서 펼쳐지는 수타면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 얻는 사회적 인정 그리고 친구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실패 없이 보장받는 '안전비용'까지 포함된 가격이다. 효용이 확정된 경험에 돈을 지불하는 것, 이것이 바로 2024년 대한민국 MZ세대가 정의하는 '새로운 가성비'다. 그렇다면 왜 수많은 파인 다이닝과 고급 레스토랑을 제치고 하이디라오인가. 해답은 그들이 파는 본질에 있다. 하이디라오의 본업은 훠궈를 파는 요식업이 아니라 '서비스를 파는 엔터테인먼트업'에 가깝다. 대기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들의 서비스 맹폭은 시작된다. 무료 네일아트, 구두닦이 서비스, 다양한 스낵과 음료, 보드게임이 기다리는 시간을 '고통'에서 '즐길 거리'로 치환한다. 자리에 앉으면 머리끈과 안경 닦이, 스마트폰을 보호할 지퍼백이 제공되고 혼자 온 손님 맞은편에는 거대한 인형을 앉혀 외로움조차 차단해 버린다. 직원은 식사 내내 테이블을 전담하며 고기를 구워주고 새우 완자를 빚어주며 생일인 고객에게는 현수막과 함께 떠들썩한 축하 노래를 불러준다. 한국의 외식업이 그동안 '맛'과 '인테리어' 그리고 어떻게든 테이블 회전율을 높여 마진을 남기는 '효율'에 집착해 올 때 하이디라오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고객이 매장에 머무는 모든 시간의 밀도를 높여 문을 나설 때 "돈이 아깝지 않다"는 항복을 받아내는 식이다. 고객은 단순히 맛있는 밥 한 끼를 먹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각박한 현실 속에서 온전히 나만을 위해 돌아가는 '마이크로 테마파크'의 입장권을 사는 셈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극강의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야말로 불황을 뚫고 1000억 매출을 견인한 강력한 무기다. 국내 수많은 외식 기업들도 하이디라오의 성공을 벤치마킹하려 노력했다. 고객에게 인사를 크게 하고 이벤트를 기획하고 친절 교육을 강화했다. 하지만 대부분 흉내 내기에 그치며 쓴맛을 봤다. 왜일까? 서비스의 겉모습은 베낄 수 있어도 그 서비스를 자발적으로 뿜어내게 만드는 '조직의 내면'은 쉽게 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융 하이디라오 창업자의 경영 철학은 명확하다. "고객을 감동시키려면 먼저 직원을 감동시켜라." 하이디라오의 직원들은 동종 업계 대비 파격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기숙사 제공, 부모님 용돈 지원, 자녀 교육비 지원 등 대기업 부럽지 않은 복지를 누린다. 철저한 도제식 시스템(사수-부사수)을 통해 후배를 잘 육성하면 선배에게 그 매장의 수익 일부가 배분되는 파격적인 성과급 구조를 갖추고 있다. 말단 직원에게도 고객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결제 금액을 할인해 주거나 무료로 메뉴를 내어줄 수 있는 막강한 권한(재량권)이 부여된다. 매뉴얼에 억눌려 억지웃음을 짓는 감정노동자가 아니라 자신이 사장처럼 판단하고 행동할 때 즉각적인 보상이 뒤따르는 자율적인 주체가 되는 것이다. 눈앞에서 춤을 추며 면을 뽑고 진심을 다해 고객의 생일을 축하하는 직원들의 에너지는 경영진의 '착취'가 아니라 '존중과 보상'에서 피어난 꽃이다. 한국의 외식업계가 겉핥기식 친절 교육과 최저시급으로 이들의 서비스 퀄리티를 따라잡으려 했던 것은 애초에 승산이 없는 게임이었다. 하이디라오 한국 매출 1000억원 돌파는 단순한 '중국 훠궈의 유행'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이는 극도로 똑똑하고 까다로워진 한국의 젊은 소비자들이 낡은 관행에 젖어 있는 국내 서비스 산업 전체에 던지는 서늘한 경고장이자 뼈아픈 채찍질이다. 지금 우리 시장을 돌아보자. 원재료 값이 올랐다며 꼼수로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프리미엄 딱지를 붙여 가격만 치솟고 정작 서비스 질은 바닥인 일부 식당들, 키오스크만 덩그러니 놓아둔 채 최소한의 인간적 응대마저 비용 절감이라는 명목으로 소거해 버리는 무인화의 역습까지. 우리는 과연 고객에게 지불한 돈을 뛰어넘는 '감동적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소비의 양극화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다. 어설픈 중간 지대의 브랜드들은 도태를 면치 못한다. 압도적으로 싸서 생존 필수재로서 기능하거나 아니면 하이디라오처럼 지갑을 열고 싶을 만큼 확실한 대체 불가의 고객 경험을 제공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MZ세대는 얄팍한 상술에 속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가치 있다고 느끼는 곳에는 기꺼이 줄을 서고 지갑을 털어 열광적인 팬덤이 되어준다. 하이디라오는 그 어려운 것을 증명해 냈다. 이제 한국의 기업들이 대답할 차례다. 가격표의 숫자만 바꿀 것인가 아니면 고객의 경험을 통째로 바꿀 것인가. 5만원짜리 훠궈 국물 속에서 우리가 건져 올려야 할 진정한 화두는 바로 이것이다.
2026-05-05 10: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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