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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이 가장 큰 비용"…노란봉투법 100일에 커진 산업계 우려
[경제일보] "실질적 지배력 기준이 모호하면 누가 사용자인지 사전에 확정할 수 없습니다. 불확실성 자체가 가장 큰 비용입니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24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열린 한국산업연합포럼 제87회 산업발전포럼에서 이같이 말하며 개정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의 최대 문제로 '불확실성 확대'를 꼽았다. 원청 사용자 범위가 넓어지면서 기업들이 교섭 대상과 책임 범위를 예측하기 어려워졌고 이에 따른 법률·노무 대응 비용 증가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포럼은 '개정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산업현장 파급효과와 개선과제'를 주제로 열렸다. 발제자로 나선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와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각각 법률적·경제적 관점에서 개정 노조법 시행 이후 산업 현장의 변화를 진단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송 교수는 노란봉투법의 핵심 쟁점인 사용자 범위 확대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비용과 불확실성의 확산'으로 해석했다. 그는 "원청을 교섭 구조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사내하도급과 아웃소싱 등 글로벌 생산 구조의 유연성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며 "상시적인 법적 분쟁 가능성과 형사처벌 리스크가 경영계획 수립 과정의 유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법 시행 이후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송 교수는 "시행 100일 만에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가 1100건을 넘어섰고 약 430개 원청 기업이 대상이 된 것으로 파악된다"며 "하루 평균 10건 이상 교섭 요구가 발생한 셈으로 결코 적지 않은 규모"라고 평가했다. 기업들이 부담하는 비용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동시다발적인 교섭 요구와 분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법률·노무 비용이 추가로 투입될 수밖에 없다"며 "그 비용은 결국 투자나 임금 인상에 활용될 수 있는 재원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조업 현장에서는 생산 구조 자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송 교수는 현대자동차와 현대제철 등 제조업 사례를 언급하며 "원청과 하청이 같은 공간에서 협업하며 효율성을 높여온 생산 체계가 오히려 사용자성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다"며 "안전 관리, 성과급 배분, 근로시간 조정 등 다양한 사안이 교섭 의제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물류 산업에 대해서는 공급망 차질에 따른 소비자 피해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노사 분쟁이 제조업 내부에 머무르지 않고 물류 플랫폼과 공급망으로 확산될 경우 소비자 후생 감소라는 외부 효과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 시행 이후 현장의 혼란을 보여주는 설문 결과도 공개됐다. 한국산업연합포럼이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18일까지 기업 및 기관 71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들은 사용자성 인정 기준, 교섭 범위, 원청과 협력사 간 책임 경계를 가장 불명확한 제도 요소로 꼽았다. 또 다수의 기업은 법 시행 이후 가장 시급한 애로사항으로 법률·노무 비용 증가를 지목했다. 반면 노사관계 개선 등 긍정적 효과를 체감했다는 응답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정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법률적 측면에서 사용자 범위 확대가 가져올 불확실성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실질적·구체적으로 근로조건을 지배·결정할 수 있다면 사용자로 인정하도록 한 규정은 해석상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산업 현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는 보다 명확한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두 발제자 모두 법 개정 취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하청 노동자 처우 개선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라는 정책 목표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시행 효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한 뒤 사용자성 판단 기준과 형사처벌 연계 문제 등을 보완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026-06-24 15:01:57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의 혼돈…교섭 질서의 공백이 더 큰 문제다
[경제일보]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세월 동안 산업 현장의 갈등과 화해를 지켜보며 기록해 왔지만 오늘처럼 노동의 권리와 기업의 경영이 정면으로 충돌하며 산업 질서 자체가 흔들리는 장면을 마주하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3월10일 본격 시행됐다. 법 시행 첫날부터 대학 청소 노동자, 택배 노동자, 공항 자회사 노동자들이 일제히 “진짜 사장 나와라”를 외치며 원청과의 직접 교섭을 요구하고 나섰다. 노동계는 이를 오랜 숙원이었던 ‘노조 할 권리’의 확대라고 평가하지만 경영계는 교섭 대상의 무한 확장과 파업 리스크 확대를 우려하며 깊은 불안을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법 시행과 동시에 산업 현장에서 나타난 혼란의 속도와 규모다. 제도적 준비와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법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교섭 질서의 공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고유가,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 성장 둔화까지 겹친 상황에서 산업 현장의 갈등이 급격히 확대된다면 그 파장은 단순한 노사 문제를 넘어 국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찬반의 진영 논쟁이 아니라 새로운 교섭 질서를 신속히 세우는 일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사용자 범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 개정법은 사용자를 “근로조건에 실질적이고 구체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로 확대했다.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범위가 모호한 채 현장에 맡겨진다면 분쟁은 결국 법정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교섭 대상이 어디까지인지 불분명하다면 기업은 생산보다 협상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고 산업 현장은 상시적 갈등 구조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법이 새로운 권리를 열어준 만큼 정부는 그 권리가 작동할 제도적 기준을 제시할 책임이 있다. 업종별 계약 구조와 산업 특성을 반영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또 하나 필요한 것은 ‘다층적 교섭 구조’의 제도화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모든 고용 책임을 직접 떠안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고 현재와 같은 단절된 하도급 구조가 유지된다면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원청·하청·노동자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 협의 구조를 통해 임금과 안전, 복지 문제를 단계적으로 논의하는 교섭 체계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다. 특히 공공기관과 대형 플랫폼 산업부터 이러한 협의 모델을 도입해 산업 전반으로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갈등을 거리와 법정이 아니라 제도적 협의 테이블에서 해결하는 노사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노동계 역시 권리 확대에 상응하는 책임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손해배상 청구 제한이 무제한적 투쟁의 면허가 될 수는 없다. 시민의 일상과 산업 활동을 장기간 마비시키는 방식의 투쟁은 결국 사회적 지지를 잃게 된다. 권리는 사회적 신뢰 속에서 유지된다. 감정적 대립이 아니라 데이터와 정책을 중심으로 한 교섭 문화가 자리 잡을 때 노사 관계 역시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다. 노란봉투법은 이미 시행됐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할 질서를 만드는 일이다. 정부는 중재자로서 분명한 기준을 제시해야 하고 기업은 변화된 제도에 맞는 협력 전략을 마련해야 하며 노동계는 책임 있는 권리 행사를 통해 사회적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유지되고 노동자가 안정되어야 경제가 성장한다. 노사 갈등이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소모적 대립으로 흐를지, 새로운 협력 질서를 만드는 계기가 될지는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의 혼란이 산업 갈등의 확산 신호가 아니라 한국 노사 관계가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2026-03-11 08: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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