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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에서 탄 것은 배 한 척이 아니다
[경제일보] 지난 4일 저녁, 호르무즈 해협에서 대한민국 선사 HMM이 운항하는 벌크선 ‘나무호’가 폭발과 함께 화염에 휩싸였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고, 선박은 두바이항으로 예인되며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즉각 이란의 소행이라 단정했고, 우리 외교부는 신중한 태도로 현장 감식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 긴박한 뉴스들 사이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읽어내야 할 것은 범인의 정체나 파공의 크기가 아니다. 그것은 서울에서 비행기로 아홉 시간이나 떨어진 저 머나먼 이국의 좁은 바다가 사실은 우리 경제의 심장과 실핏줄로 연결된 ‘대동맥’이라는 서늘한 자각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지도 위에서는 인색하게 그어진 한 줄기 가느다란 물길에 불과하다. 하지만 산업의 눈으로 그곳을 투시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곳은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석유화학 원료와 선박 보험료, 해상 운임과 환율, 그리고 우리네 거실의 전기요금과 시장 바구니 물가가 한데 엉켜 지나가는 거대한 에너지의 통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하루 평균 2000만 배럴의 원유가 이곳을 통과한다. 세계 석유 소비량의 5분의 1이 이 좁은 목구멍을 지나며, 그중 80% 이상의 목적지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제조 국가들이다. ‘호르무즈가 기침을 하면 한국 경제는 독감을 앓는다’는 비유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제조 강국’이라는 자부심 아래 눈부신 성장을 일궈왔다. 세계 시장을 호령하는 반도체 공장은 평택과 용인에 위용을 자랑하고, 자동차 공장은 울산과 광주에서 쉼 없이 돌아가며, 거대한 조선소들은 거제와 영암의 바다를 메우고 있다. 하지만 이 거대한 기계 장치들을 돌리는 근원적인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가. 반도체 라인을 움직이는 전기의 연료, 화학 공장의 젖줄인 나프타, 철강 용광로를 달구는 에너지는 모두 저 위태로운 바닷길을 타고 들어온다. 여기서 우리는 뼈아픈 역설을 마주한다. 제조 강국은 필연적으로 ‘수입 강국’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수출품은 화려하게 포장돼 항만을 떠나지만, 한국의 생산 능력은 그보다 훨씬 앞서 항만으로 들어오는 거대한 원자재의 물결 위에 서 있다. 바닷길이 흔들리면 공장도 흔들린다. HMM 나무호의 화재를 단순히 해운사 한 곳의 불운으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약점을 비추는 섬뜩한 조명탄이다. 정부가 이번 사고에 대해 신중을 기하는 것은 타당하다. 안보 위기일수록 국가는 비명보다 사실을 먼저 붙들어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에 편승해 말을 앞세우면 선박의 화재는 외교적 난제로 번지고, 이는 곧 통상 압력과 에너지 비용 상승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특히 호르무즈 같은 예민한 바다에서는 말 한마디가 보험료가 되고, 그 보험료는 즉시 물류비용과 물가로 전이된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해상 리스크를 평소 산업 정책의 본류(Mainstream)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우리가 산업 정책을 논할 때 떠올리는 단어들은 대개 세액 공제, 보조금, 규제 완화, 인력 양성 같은 것들이다. 물론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공장이 아무리 훌륭하고 기술이 초격차를 유지한다 한들, 그 공장으로 향하는 항로가 불안하면 모든 공정은 무너진다. 원료는 늦어지고, 에너지는 비싸지며, 제품의 납기는 흔들린다. 진정한 의미의 공급망은 공장 담장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해협과 항만의 안전, 보험 시장의 안정성, 해군력의 투사 범위, 그리고 세련된 외교와 비축 시스템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묶여 있을 때 비로소 안전한 공급망이라 부를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경고하듯 호르무즈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에너지 병목’이다. 이 숫자의 무게 앞에서 ‘중동 리스크’라는 말은 너무 가볍다. 이것은 정유사나 해운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와 철강이 한배를 탄 공동체의 운명이다. 손자는 손자병법 첫머리에서 “전쟁은 나라의 큰일이며, 생사와 존망이 달린 길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오늘날의 산업 국가에 있어 바닷길 또한 그와 같다. 항로는 단순한 물류 통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생산과 물가와 일자리가 흐르는 혈맥이다. 혈맥이 막히면 장기가 괴사하듯, 항로가 흔들리면 민생이 흔들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에너지와 핵심 원자재의 비축 체계를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 비축은 평상시에는 불필요한 비용처럼 보이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국가의 생존 시간을 벌어주는 유일한 장치다. 아울러 특정 지역과 항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조달 다변화 전략을 더 치밀하게 짜야 한다. 원가가 조금 더 들더라도 ‘안전한 대안’을 확보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가장 저렴한 비용이다. 마지막으로 해운, 보험, 금융, 국방, 외교를 하나로 묶는 ‘범정부 해상 공급망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산업 정책의 범주에 해군력과 해상 보험 정책이 포함돼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권도 이 사건을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정쟁의 소재로 삼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선박이 바다에서 어떤 보호를 받을 수 있는가’, ‘비상시 대체 항로는 준비되어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 실질적인 시스템이 없는 구호는 공허할 뿐이다. HMM 나무호의 불은 꺼졌지만, 그 불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여전히 뜨겁게 살아있다. 우리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라는 화려한 성적표를 자랑해왔다. 그러나 제조 강국의 진정한 실력은 공장 안의 효율성만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위기의 바다를 통과해 원료를 들여오고, 거친 파도를 뚫고 제품을 내보내며, 예기치 못한 비용 충격을 견뎌내는 맷집까지가 진짜 산업 경쟁력이다. 호르무즈에서 탄 것은 선박 한 척만이 아니다.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누려온 ‘안전한 바닷길’이라는 안일한 환상도 함께 그을렸다. 이제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산업 정책은 공장 부지를 닦고 세금을 깎아주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물과 전기, 사람과 원료,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오가는 바닷길을 지키는 일, 그것이 바로 국가가 해야 할 산업 정책의 본질이다. 한국 경제의 목줄이 바다에 걸려 있다면, 그 바다를 지키는 일 또한 엄중한 ‘산업의 이름’으로 명명돼야 마땅하다.
2026-05-07 09: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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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항공 이용객 불편, 어디서 가장 많이 발생하나
[이코노믹데일리] 설 연휴에는 항공 수요가 단기간에 집중되며 운항과 공항 운영 전반에서 병목 현상이 반복된다. 출발 지연과 결항, 수하물 처리 지연, 좌석 배정 관련 민원 등 불편 유형이 매년 유사하게 나타난다. 항공사와 공항 운영 주체가 일정 수준의 수요 증가를 예상하고 대응에 나서지만, 연휴 특유의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이용객 불편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연휴 기간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불편은 출발 지연과 결항이다. 표면적으로는 기상 악화가 원인으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공항 혼잡과 운항 회전율 저하가 함께 작용하는 구조다. 설 연휴에는 특정 날짜와 시간대에 출발 편이 집중돼 활주로와 주기장, 관제 처리 용량이 빠르게 한계에 도달한다. 이 과정에서 한두 편의 지연이 발생할 경우 이후 편성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미치기 쉽다. 이 같은 구조는 김포·제주, 김해 등 혼잡도가 높은 공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연휴 기간에는 기상 변수와 무관하게 공항 자체의 처리 능력 부족으로 지연이 확대되는 사례도 반복된다. 특히 단거리 노선 비중이 높은 항공사의 경우 기재 회전이 촘촘하게 편성돼 있어 초기 지연이 하루 전체 운항 일정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수하물 지연과 분실 문제도 설 연휴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성수기에는 항공기 화물칸 적재 용량이 승객 수하물로 빠르게 채워지며, 연결편이나 환승 일정이 포함된 경우 처리 리스크가 커진다. 국제선은 출발 공항뿐 아니라 환승 공항의 수하물 처리 시스템과 인력 운영 상황에 따라 지연 가능성이 좌우된다. 연휴 기간 다수 공항에서 수하물 분류·적재 인력이 한계치에 근접하면서 처리 시간이 길어지는 양상이 나타난다. 좌석 배정과 오버부킹 관련 민원 역시 연휴 수요 집중 구간에서 반복된다. 항공사는 설 연휴 수요를 반영해 좌석 판매율을 높이는 전략을 취하지만, 실제 탑승률이 예측치를 초과할 경우 탑승 거부나 좌석 재배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가족 단위나 단체 승객의 경우 좌석 분리 배정에 대한 민원이 늘어나는 경향도 확인된다. 이는 항공권 구매 시점, 체크인 순서, 항공사별 좌석 운영 정책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공항 보안 검색과 탑승 대기 시간 증가도 연휴 기간 대표적인 불편 요인으로 꼽힌다. 설 연휴에는 오전과 이른 오후 시간대에 출발 수요가 집중되는 경향이 있으며, 이로 인해 보안 검색대와 출국 심사 대기열이 길어지는 양상이 반복된다. 국제선의 경우 노선별 보안 절차 차이와 추가 검색이 병목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공항 측이 임시 검색대 확대와 인력 증원을 통해 대응하고 있지만, 수요 집중 자체를 완전히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2026-02-18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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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동남아 다시 몰린다…설 연휴 앞둔 항공업계, 실적 기대감 고조
[이코노믹데일리] 설 연휴를 앞두고 단거리 국제선 수요가 집중되면서 항공업계의 1분기 실적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높은 예약률과 탑승률이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비용 구조와 운임 환경에 따라 항공사별로 차이를 보일 전망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이스타항공은 설 연휴 전후 성수기 운영 구간인 2월 14~22일 기준 일본 노선 운항 편수가 386편, 동남아 노선은 198편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설 연휴 핵심 수요가 집중되는 16~18일 기준으로는 일본 노선이 128편, 동남아 노선이 66편 편성돼 일본 노선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티웨이항공 역시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설 연휴 핵심 기간인 2월 14~18일 기준 일본 노선 운항 편수는 왕복 324편, 동남아 노선은 왕복 197편으로 집계됐다. 2월 9일 기준 평균 예약률은 일본 노선이 95%, 동남아 노선은 85% 수준이다. 인천발 오사카·삿포로·오키나와·후쿠오카 노선에서 예약률이 높게 형성됐으며, 연휴가 가까워질수록 예약률은 추가 상승하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제주항공의 예약 지표도 단거리 국제선 강세를 뒷받침한다. 2월 7일 기준 설 연휴 핵심 기간(2월 14~18일) 사전 예약률은 국내선이 80% 초반대, 국제선은 90% 초반대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설 연휴 핵심 기간(2025년 1월 25~30일) 기준, 일주일 전 예약률인 국내선 80% 중반대, 국제선 80% 초반대와 비교해 국제선 예약 강도가 높아진 수치다. 최근 2월 1~7일 기준 평균 탑승률 역시 국내선은 90% 중반대, 국제선은 90% 초반대를 기록했다. 설 연휴를 앞둔 현재 예약·편성 상황은 일본과 동남아로의 수요 집중이 뚜렷한 모습이다. 단거리 노선에서 예약률과 탑승률이 동시에 높게 형성되면서 항공사들의 1분기 여객 실적에 대한 기대도 함께 확대되는 모습이다. 이 같은 흐름은 과거 설 연휴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2024년 설 연휴(2월 9~12일)에는 인터파크·트리플 여행 예약 플랫폼의 항공권 예약 데이터에서 일본 노선이 전체 해외 예약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베트남과 태국 등 동남아 노선이 뒤를 이었다. 이어 지난해 설 연휴(1월 25~30일)에는 트립닷컴의 설 연휴 여행 수요 분석에서 동남아가 약 40%, 일본이 20% 수준을 차지했고, 중국 노선 회복까지 더해지며 단거리 지역 비중이 70% 중반까지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대별 이동 패턴 역시 단거리 구조를 선호해왔다. 일본 노선은 20~30대 비중이 높고, 동남아 노선은 30~40대와 가족 단위 수요 비중이 상대적으로 컸다. 중국 노선은 회복 국면에서 40~50대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설 연휴 기간 동반 여행 비중이 확대되면서 이동 부담이 적은 노선에 수요가 집중되는 흐름이 이어졌다. 다만 높은 예약률과 탑승률이 수익성 개선으로 직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과거 1분기 실적을 살펴보면 여객 수요가 확대된 국면에서도 환율과 유류비 변동, 정비·인건비 증가가 동시에 반영되며 실적 흐름은 항공사별로 달라졌다. 특히 단거리 노선은 경쟁 강도가 높아 수요 확대 국면에서 좌석 공급이 빠르게 늘어나고, 이에 따라 운임 하방 압력이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수요 자체보다 비용 흡수 능력과 가격 방어 여부가 실적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업계 관계자는 “설 연휴 수요는 분기 실적의 급격한 악화를 막아주는 완충 장치로 작용한다”며 “다만 연휴 이후까지 고려한 운임 운용과 공급 속도 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단기 성과가 중장기 실적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2026-02-09 17:3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