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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노이드 동료와 퇴근하는 저녁, 우리는 준비가 됐나
[경제일보] 휴머노이드 로봇이 더 이상 전시장 무대 위의 묘기가 아니라 공장 라인의 동료가 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영국 로봇기업 휴머노이드는 독일 자동차·산업부품 기업 셰플러의 글로벌 제조 현장에 2032년까지 1000~2000대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투입할 계획이다. 초기 배치는 올해 말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독일 헤르초게나우라흐와 슈바인푸르트에서 시작된다. 현대차그룹도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오는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 공장에 투입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제 질문은 기술이 가능한가가 아니다. 인간의 일자리와 임금, 세금과 안전망은 준비돼 있는가다. 자동차 공장은 산업혁명의 가장 오래된 상징 중 하나다. 컨베이어벨트가 노동을 쪼갰고, 산업용 로봇 팔이 용접과 도장을 바꿨다. 이제 그 라인에 사람의 형태를 닮은 기계가 들어온다. 바퀴가 아니라 두 다리로 움직이고, 고정된 팔이 아니라 사람처럼 공간을 인식하며, 단순 반복이 아니라 상황 판단을 흉내 내는 기계다. 공장 안의 로봇은 더 이상 철제 울타리 안에 갇힌 설비가 아니다. 사람 옆에서 상자를 들고, 부품을 옮기고, 위험한 작업을 대신하는 ‘강철 동료’가 되고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이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한국은 이미 인구절벽 앞에 서 있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15~64세 생산연령인구는 2022년부터 향후 10년간 332만명 감소하고,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22년 71.1%에서 2072년 45.8%로 낮아질 전망이다. 노동의 빈자리는 점점 커지고, 숙련 노동자의 은퇴는 빨라지며, 청년 인력은 제조 현장을 기피한다. 이 구조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은 공상과학의 장난감이 아니라 산업 현장의 생존 수단이 된다. 기업 경영의 관점도 분명하다. 로봇은 피로를 덜 느끼고, 위험한 작업을 대신할 수 있으며,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반복적으로 수행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다만 여기서 단정은 경계해야 한다. 휴머노이드는 아직 완성된 해법이 아니다. 실제 공장 투입에는 안전성, 신뢰성, 유지보수 비용, 작업 전환 속도, 현장 노동자와의 협업 규칙이 필요하다. 현대차가 아틀라스를 2028년 공장에 투입하고 2030년까지 더 복잡한 공정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도, 이 기술이 오늘 당장 전면 대체가 아니라 단계적 검증의 대상임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방향은 분명하다. 인구는 줄고, 제조 경쟁은 치열해지며, 글로벌 기업들은 더 싸고 빠르고 안정적인 생산체계를 요구한다. 한국 자동차·부품·조선·물류·전자 산업이 휴머노이드 도입을 외면할 수는 없다. 문제는 로봇 도입 여부가 아니라 로봇 도입의 질서다. 시장은 이미 움직이는데 법과 제도, 교육과 세금, 노사관계는 아직 과거의 언어에 머물러 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정의를 설명하며 각자가 자기 본성에 맞는 일을 하고 남의 일을 침범하지 않는 질서를 말했다. 이를 오늘의 공장에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통찰은 남는다. 사회는 역할이 새로 나뉠 때 정의를 다시 세워야 한다. 로봇이 위험하고 반복적이며 고강도인 작업을 맡는다면 인간은 설계, 관리, 창의, 공감, 판단, 돌봄의 영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 이동이 가능하려면 교육과 임금, 안전망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기술의 승전보 뒤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있다. 휴머노이드 도입은 어떤 노동자에게는 해방이지만, 어떤 노동자에게는 실직의 예고일 수 있다. 로봇이 허리를 굽혀 무거운 부품을 들 때 인간 노동자의 허리는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까지 대신한다면, 보호받은 것은 노동자의 몸인지 기업의 비용인지 묻게 된다. 기술은 중립적일 수 있어도 기술이 배치되는 시장은 중립적이지 않다. 여기서 ‘로봇세’ 논의가 나온다. 로봇세는 오래된 논쟁이다. 빌 게이츠는 2017년 로봇이 인간 노동을 대체해 기업 비용을 줄인다면,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부과해 돌봄·교육 같은 인간에게 필요한 일자리에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 논리도 만만치 않다. 로봇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어떤 자동화가 과세 대상인지, 혁신 투자를 위축시키지 않을지, 해외 이전을 부추기지 않을지 모두 어려운 문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구호로서의 로봇세가 아니라 설계로서의 사회계약이다. 로봇 한 대마다 단순히 세금을 매기는 방식은 거칠 수 있다. 그러나 로봇과 AI로 늘어난 생산성, 자동화로 절감한 인건비, 자본집약적 생산에서 발생한 초과이익을 어떻게 사회 전체의 전환 비용으로 연결할 것인지는 논의해야 한다. 재교육 기금, 고용 전환 계정, 지역 제조업 훈련센터, 중장년 노동자의 직무 재설계, 협력사 자동화 지원 같은 구체적 장치가 필요하다. 핵심은 혁신을 벌주는 것이 아니다. 혁신이 만든 과실로 혁신에서 밀려나는 사람을 다시 세우자는 것이다. 기업이 휴머노이드 로봇을 도입해 생산성을 높이는 일은 막을 수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다만 그 생산성의 과실이 주주와 경영진, 일부 기술 인력에게만 집중된다면 산업의 정당성은 약해진다. 시장경제가 오래가려면 시장 밖으로 밀려난 사람을 다시 시장 안으로 데려오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유럽도 이 문제를 완전히 풀지는 못했다. 다만 AI 시스템의 투명성, 표시 의무, 이용자 고지 같은 규범은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이 달 AI법 제50조상 특정 AI 시스템의 투명성 의무 이행 지침 초안을 공개했다. 이것이 곧바로 ‘휴머노이드 노동 가이드라인’은 아니다. 그러나 AI와 로봇이 인간의 생활세계로 들어올수록 기술 사용의 투명성, 책임성, 이용자 보호가 제도화되고 있다는 흐름은 분명하다. 한국도 기술 강국이라는 자부심만으로는 부족하다.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고 쓰는 능력만큼, 로봇과 함께 일하는 사회를 설계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로봇이 산업 현장에 들어오면 산업안전 규칙도 바뀌어야 한다. 사람이 로봇 옆에서 일할 때 사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로봇이 학습한 작업 데이터는 누구의 자산인가. 로봇 도입으로 줄어든 인건비 중 일부를 노동 전환에 쓸 수 있는가. 협력사와 중소기업도 자동화 혜택을 누릴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로봇 산업은 기술적으로는 앞서가도 사회적으로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역할도 분명하다. 한쪽으로는 규제를 정비해야 한다. 실증 특례, 안전 인증, 데이터 표준, 로봇 보험, 산업안전 기준을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 다른 한쪽으로는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 로봇 정비사, 로봇 운용 관리자, 공정 데이터 분석가, AI 안전 관리자, 현장 재교육 강사 같은 새 직무를 만들어야 한다. 로봇이 기존 일자리를 없애는 속도보다 사람이 새 일자리로 이동하는 속도가 빨라야 사회가 버틴다. 노동계도 냉정해야 한다. 휴머노이드 도입을 전면 거부하는 방식은 오래가기 어렵다. 인구 구조와 글로벌 경쟁, 원가 압박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노동계는 더 구체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로봇 도입 전 고용영향 평가, 전환 배치 계획, 재교육 시간의 유급 인정, 자동화 이익 공유, 산업안전 공동 점검, 협력사 노동자 보호를 교섭 의제로 올려야 한다. “로봇 반대”가 아니라 “인간을 배제하지 않는 로봇 도입”을 요구해야 한다. 기업도 바뀌어야 한다. 휴머노이드 도입을 단순 비용 절감 프로젝트로만 보면 갈등은 커진다. 로봇은 인간을 대체하는 장비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이기도 하다. 어느 길을 선택할지는 기업의 철학과 제도 설계에 달려 있다. 로봇을 들여오면서 노동자의 숙련을 무시하면 공장은 조용해질지 몰라도 조직의 신뢰는 무너진다. 반대로 로봇을 위험 작업과 반복 작업에 먼저 배치하고, 사람을 더 높은 가치의 업무로 옮기면 자동화는 갈등이 아니라 경쟁력이 된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노동의 종말일 수도 있고, 생산성의 신대륙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될지는 기술이 아니라 제도가 결정한다. 로봇의 성능은 기업이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로봇이 만든 사회의 품격은 정부와 국회, 기업과 노동계가 함께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머지않아 휴머노이드 동료와 같은 공장에서 일하고, 같은 라인을 점검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하는 저녁을 맞게 될 것이다. 그때 인간 노동자의 어깨가 패배감으로 처지지 않게 하려면 지금 준비해야 한다. 로봇이 대신한 노동의 빈자리를 인간의 배움과 이동, 돌봄과 창의의 자리로 바꿔야 한다. 로봇이 만든 부가 인간을 배제하는 자본의 성벽이 아니라 인간을 다시 세우는 사회적 기반이 되게 해야 한다. 결국 모든 혁신의 마침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어야 한다. 기업이 생산성을 높이는 일은 시장경제의 활력이다. 그 과정에서 밀려나는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은 공동체의 의무다. 차가운 금속음 속에 인간의 따뜻한 숨결을 남기는 것, 그것이 휴머노이드 시대 한국 산업이 지켜야 할 기본이고 원칙이며 상식이다.
2026-05-17 09: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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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월스트리트 피치북 쓰고 신용평가하는 시대...한국 금융당국은 대비하고 있는가
[경제일보] 미국 월가의 풍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던 투자은행(IB)의 회의실에서 애널리스트와 회계사, 변호사들이 수백 장의 투자제안서(Pitch Book)를 만들었다. 기업 인수합병(M&A) 자료와 신용평가 메모, 리스크 분석 보고서와 회계 결산서는 오랜 경험을 가진 금융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작업을 인공지능(AI)이 대신하기 시작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AI 개발사인 Anthropic(앤트로픽)은 최근 금융권 전용 AI 에이전트 10종을 공개했다. 투자제안서 작성, 회계 결산, 신용평가 메모 초안 작성 등 금융권 핵심 업무를 자동화하는 기능들이다. 이는 단순한 챗봇 서비스가 아니다. 금융산업의 두뇌 노동 자체를 AI가 대체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이 변화의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 금융은 원래 보수적인 산업으로 알려져 있다. 규제가 많고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AI 도입 속도가 빠른 이유는 명확하다. 데이터 규모가 방대하고 반복 업무가 많으며 비용 절감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AI는 인간처럼 피로하지 않고, 24시간 문서를 읽고 요약하며, 수천 개 데이터를 동시에 분석할 수 있다. 특히 생성형 AI는 단순 계산을 넘어 문서 작성과 논리 구성까지 수행하기 시작했다. 앤트로픽의 행보는 단순한 기술 발표가 아니다. 그것은 AI 산업의 전장이 소비자 서비스에서 기업용(B2B)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 산업 초창기에는 챗GPT와 같은 대중 서비스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이제 핵심은 기업 업무 자동화다. 특히 금융은 AI 기업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시장 중 하나다. 수익 규모가 크고, 고객 충성도가 높으며, 성공 사례가 만들어질 경우 산업 전체로 확산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앤트로픽은 이미 금융 특화 서비스인 ‘클로드 포 파이낸셜 서비스’를 통해 골드만삭스, 씨티그룹, 시타델, AIG 등 대형 금융사를 고객으로 확보했다. 또 금융 IT 기업인 FIS와 협력해 금융범죄 탐지 AI 시스템 개발에 나섰고, 월가 금융회사들과 함께 15억 달러 규모의 합작법인까지 설립했다. AI 기업이 이제 금융 인프라 자체를 장악하려는 단계로 들어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AI의 역할이 ‘보조 도구’에서 ‘업무 대행자’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AI는 이메일 초안 작성이나 간단한 검색 지원 정도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제는 투자은행의 피치북 제작과 신용평가 메모 작성, 회계 결산 등 고난도 업무에 투입되고 있다. 인간 전문가가 하던 핵심 지식 노동을 AI가 대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금융업의 구조 자체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 투자은행의 주니어 애널리스트 수요는 줄어들 수 있다. 회계법인의 단순 감사 업무도 축소될 수 있다. 반면 AI 모델을 검증하고 리스크를 통제하는 새로운 직무는 늘어날 것이다. 금융산업은 이제 사람 중심 조직에서 인간과 AI가 함께 움직이는 하이브리드 조직으로 전환되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AI가 단순 효율화 수준을 넘어 금융 의사결정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용평가와 리스크 분석은 금융의 핵심 권한이다. 누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어떤 기업을 투자 대상으로 판단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만약 AI가 그 판단 과정의 상당 부분을 맡게 된다면 금융의 권력 구조 자체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 미국 금융권은 이미 전면전에 들어갔다. JPMorgan Chase 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은행 내부에 AI 전담 부서를 운영하고 있으며 수백 개 활용 사례가 진행 중”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리스크 관리, 금융사기 탐지, 마케팅, 디자인, 회의 기록, 문서 검토 등 거의 모든 분야에 AI가 투입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단순한 기술 실험이 아니다. 월가는 이미 AI를 차세대 금융 인프라로 보고 있다. 과거 인터넷이 금융산업을 바꿨다면, 이제 AI는 금융업의 사고 체계 자체를 바꾸고 있다. 인간이 데이터를 읽고 판단하던 시대에서 AI가 데이터를 읽고 인간이 최종 승인하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 금융권도 AI 도입을 이야기하고 있다.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들이 생성형 AI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고 일부 챗봇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개념검증(PoC)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조직 전체를 AI 중심으로 재설계하려는 전략은 부족하다. 금융당국 역시 규제와 보안 이슈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AI 금융 시대의 산업 구조 변화에 대한 국가 전략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속도다. 미국은 이미 AI 전담 조직을 만들고 금융업 전체를 재편하고 있는데, 한국은 여전히 시범 사업과 규제 검토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AI 산업은 속도의 게임이다. 초기 시장을 선점한 기업이 데이터와 경험을 축적하며 압도적 우위를 갖게 된다. 한국 금융권이 지금처럼 느리게 대응할 경우 글로벌 금융 경쟁력 자체가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우려되는 부분은 데이터 주권 문제다. 금융 데이터는 국가 경제의 핵심 자산이다. 만약 국내 금융회사들이 해외 AI 플랫폼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한국 금융의 핵심 정보와 의사결정 구조가 외국 기술기업에 종속될 위험도 있다. 단순한 편의성 문제가 아니라 금융 안보의 문제다. 금융당국도 이제는 사고를 바꿔야 한다. AI를 단순히 규제 대상이나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국가 금융 경쟁력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첫째, 금융 AI 전문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둘째, 금융권의 AI 실증 사업을 과감히 허용하는 규제 혁신이 필요하다. 셋째, 국내 AI 기업과 금융회사 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넷째, 금융 데이터 보안과 주권을 지킬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전략 플랫폼도 고민해야 한다. 물론 AI에는 위험도 존재한다. 잘못된 데이터 학습은 금융 사고를 초래할 수 있고, 알고리즘 편향은 신용 차별 문제를 낳을 수 있다. AI 기반 금융사기가 오히려 더 정교해질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낙관도, 막연한 공포도 아니다. 핵심은 통제 가능한 혁신이다. 도덕경에는 “변화에 앞서 움직이는 자가 흐름을 얻는다”는 뜻의 지혜가 담겨 있다. 산업혁명의 역사는 결국 먼저 준비한 자의 역사였다. 인터넷 시대에 뒤처진 기업들이 사라졌듯이, AI 금융 시대에도 대응하지 못한 금융회사는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 월스트리트에서는 AI가 피치북을 만들고 신용평가 문서를 작성하고 있다. 이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시작된 현재의 변화다. 그리고 그 변화는 한국 금융산업의 문 앞까지 와 있다. 문제는 하나다. 한국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과연 이 거대한 변화에 제대로 대비하고 있는가.
2026-05-10 09: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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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훈 '수송보국'부터 조원태 '통합 항공사'까지…대한항공 DNA의 진화
[경제일보]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수송보국’ 전략으로 시작된 대한항공의 경영 DNA가 글로벌 항공동맹과 통합 항공사 체제로 이어지며 세계 항공시장 연결망 확대 중심에 섰다. 국제선 기반 구축에 나선 조중훈 창업주에 이어 조양호 전 회장은 스카이팀 중심 글로벌 네트워크 확대에 집중했고, 현재 조원태 회장 체제에서는 아시아나항공 통합을 통한 메가 캐리어 전략이 추진되고 있다. 대한항공은 세대별 경영 전략 변화 속에서 장거리·환승 노선과 화물 사업 경쟁력을 키우며 글로벌 항공사 체계를 확대해왔다. 최근에는 통합 항공사 체제 구축이 본격화되며 노선 재편과 조직 통합, 서비스 일원화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 ‘수송보국’에서 스카이팀까지…조중훈·조양호 체제가 키운 글로벌 항공망 대한항공의 성장 출발점은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수송보국’ 전략이었다. 조 창업주는 1969년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한 이후 단순 운송 사업이 아니라 국가 기간산업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항공 사업을 키웠다. 당시 국내 항공 산업은 국제선 운영 경험과 정비 체계, 장거리 노선 경쟁력이 모두 부족한 상황이었다. 조 창업주는 국제 노선 확대와 항공 인프라 구축에 집중했다. 미주와 동남아 노선을 중심으로 국제 항공망을 넓혔고, 국적 항공사 체계 안정화에도 속도를 냈다. 당시 한국 경제가 수출 중심 구조로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와 맞물리며 대한항공 역시 국제 물류와 여객 수송 확대 흐름에 올라탔다. 1970~1980년대 대한항공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뉴욕, 유럽 노선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며 장거리 노선 체계를 구축했다. 북미 노선은 기업 출장 수요와 교민 이동 수요, 화물 운송 수요가 동시에 형성되는 시장이었다. 대한항공은 장거리 노선 비중을 확대하며 글로벌 항공사 구조로 체질을 바꿔가기 시작했다. 조 창업주 시기에는 화물 사업 기반도 함께 확대됐다. 대한항공은 반도체와 전자제품, 자동차 부품 등 한국 수출 산업 성장 흐름에 맞춰 화물기 운영과 글로벌 화물 노선 확대에 투자했다. 여객과 화물을 동시에 키우는 양축 전략이 자리 잡은 시기였다. 대한항공의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은 조양호 전 회장 시기 본격적으로 확대됐다. 조 전 회장은 글로벌 항공 산업이 단순 노선 경쟁에서 연결망 중심 경쟁 구조로 이동한다고 판단하고 환승 네트워크와 항공동맹 전략 강화에 집중했다. 대한항공은 2000년 델타항공과 에어프랑스 등과 함께 글로벌 항공동맹체 스카이팀을 공동 창립했다. 공동운항과 환승 연계, 마일리지 통합 체계 구축이 글로벌 항공사 경쟁력 핵심 변수로 떠오르던 시점이었다. 대한항공은 스카이팀 창립을 계기로 글로벌 연결망 확대에 속도를 냈다. 조 전 회장은 인천국제공항을 동북아 환승 허브로 키우는 전략에도 힘을 실었다. 대한항공은 미국과 유럽, 동남아를 연결하는 환승 네트워크를 강화하며 장거리 중심 수익 구조를 확대했다. 프레스티지석과 일등석 경쟁력을 강화한 것도 이 시기다. 단거리 노선보다 수익성이 높은 장거리 노선 중심 체계 구축에 집중한 것이다. 대한항공은 조 전 회장 시기 글로벌 항공사 위상을 빠르게 키웠다. 장거리 노선 확대와 스카이팀 네트워크 구축, 화물 사업 경쟁력 강화가 동시에 이뤄지며 글로벌 항공사 체계를 본격적으로 구축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대한항공의 화물 경쟁력이 다시 부각됐다. 국제 여객 수요가 급감한 상황에서도 항공 화물 운임이 급등하며 대한항공은 화물 중심 운영 체계를 강화했다. 여객기를 화물기로 전환 투입하는 방식까지 활용하며 공급 대응에 나섰고, 글로벌 공급망 차질과 해상 물류 병목 현상 속에서도 수익성을 유지했다. 대한항공의 2021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1조4644억원을 기록했다. 국제선 정상화 이전 상황에서도 화물 사업 수익성이 실적 방어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항공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이 오랜 기간 구축한 글로벌 화물 사업 기반이 위기 대응력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국제선 수요 회복 이후에는 여객 사업도 빠르게 반등했다. 대한항공의 지난해 매출은 16조5019억원으로 전년 대비 2%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조5393억원으로 19% 감소했지만 장거리 국제선 수요 회복과 프리미엄 좌석 판매 확대, 화물 사업 안정화 영향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 아시아나 통합 추진하는 조원태 체제…글로벌 메가 캐리어 전환 본격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체제에서는 대한항공의 경영 DNA가 다시 한 번 변화하고 있다. 핵심은 아시아나항공 통합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메가 캐리어 체제 구축이다. 장거리 노선과 환승 네트워크, 화물 사업 경쟁력을 통합 운영하며 규모의 경제를 키우는 전략이 추진되고 있다. 조 회장은 코로나19 시기 산업은행 지원 아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했다. 항공 수요 급감과 업황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대형 통합 작업을 밀어붙이며 국내 항공시장 재편에 나섰다.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 경쟁당국 심사를 단계적으로 진행했고, 일부 노선 슬롯과 운수권 조정 조건 등을 거쳐 주요 승인 절차는 대부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통합이 완료될 경우 대한항공은 글로벌 메가 캐리어 체제로 재편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국제선 네트워크, 저비용항공사(LCC) 계열 구조까지 포함하면 국내 항공시장 구조 변화 폭도 커질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조 회장이 단순 항공사 규모 확대보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장거리 노선과 환승 체계, 화물 네트워크를 통합 운영할 경우 규모의 경제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제선 공급 조정과 환승 효율 개선, 운영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 요인으로 거론된다. 다만 통합 이후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노선 중복 조정과 조직 통합, 서비스 기준 일원화가 동시에 진행돼야 하고 항공기 기종 운영 체계와 인력 구조 재편 문제도 함께 맞물려 있다. 특히 서비스 품질과 조직 문화 통합은 장기간 검증이 필요한 영역으로 꼽힌다. 항공사는 안전·정비·운항·객실 서비스 등 다수 조직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산업 특성이 강한 만큼 통합 과정에서 운영 효율성과 조직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26-05-07 1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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