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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조직·긴 투자…미래에셋 10년, 자본시장의 시간을 바꾸다
[경제일보] 국내 증권업계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정부의 증시 부양 정책과 맞물려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면서다. 증권사들이 자본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로 급부상한 순간이다. 위탁매매(브로커리지)에 의존하던 과거의 수익 구조를 넘어 자산관리(WM), 운용, 투자은행(IB) 부문에서 고른 성장을 이뤄내며 체질 개선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시장은 이제 증권업을 보조 금융업이 아닌 종합 금융 플랫폼으로 재정의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단순한 시장 호황을 넘어선 증권사 오너의 혁신 리더십이 자리한다. 오너와 최고경영진이 주도해 온 과감한 사업 재편과 글로벌 확장, 리스크 관리 중심의 경영 전략이 실적 도약의 밑바탕이 됐다는 분석이다. 실제 주요 대형 증권사들은 수년 전부터 수익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해외 투자 확대에 집중해왔다. 이는 최근 실적 급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본지는 이번 기획 시리즈를 통해 증권업계 호실적의 밑바탕인 오너 경영의 혁신적 리더십을 집중 조명한다. 단기 실적 개선을 넘어 중장기 성장 기반을 구축한 전략적 선택과 급변하는 금융 환경 속에서 이들이 제시하는 미래 청사진이 무엇인지 짚어볼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 증권업의 위상 변화와 함께, 자본시장의 새로운 경쟁 질서를 이끄는 리더십의 본질을 들여다 볼 예정이다. <편집자주> 2016년 12월. 국내 자본시장에 하나의 분기점이 만들어졌다.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의 합병은 단순한 ‘대형 증권사 탄생’을 넘어 산업의 지형을 바꿨다. 이후 10년이 흐른 2026년 그 변화는 숫자와 구조 모두에서 현실이 됐다. 합병 이후 미래에셋증권은 자기자본, 고객자산(AUM), 순이익 등 주요 지표에서 두 배 이상의 성장을 이뤄내며 규모의 확장을 넘어 체질의 변화를 증명했다. 하지만 시장은 이 성장의 본질을 단순한 외형 확대가 아닌 하나의 철학‘시간을 다루는 방식’에서 찾고 있다. ‘조직은 빠르게’…‘투자는 길게’ 미래에셋의 조직은 전통 금융회사와 다르다. 보고 단계는 최소화되고 정보는 특정 창구를 거치지 않고 흐른다. 비서실장 중심 구조를 없애고, 임원과 직원이 같은 공간에서 소통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구조의 핵심은 시간 단축이다. 회장실로 보고를 올리는 대신 현장에서 즉시 의사결정을 내리는 ‘움직이는 회장실’이 대표적이다. 필요하면 말단 직원과도 바로 대화한다. 조직 내 불필요한 단계가 줄어들면서 의사결정 속도는 빨라지고 정보 왜곡 가능성도 낮아진다. 공간 역시 같은 철학이 적용됐다. 해외법인 회장실조차 펀드매니저 수준으로 축소해 물리적 거리에서 오는 비효율을 제거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개인적 관계가 의사결정에 개입하지 않도록 설계된 문화다. 최고경영진이 임원과 단독 식사를 하지 않는 원칙 역시 조직의 공정성과 속도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다. 이는 창업자인 박현주 회장이 강조해온 ‘커뮤니케이션이 조직의 윤활유’라는 철학과 맞닿아 있다. 조직은 권위가 아니라 효율을 위한 도구라는 점에서 미래에셋은 금융회사의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했다. 조직에서 시간을 줄인 반면, 투자에서는 오히려 시간을 늘린다. 서울 미래에셋센터원에 설치된 ‘바늘 없는 시계’는 이 철학을 상징한다. 시간의 흐름을 숫자로 재촉하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자산을 바라보라는 메시지다. 실제 글로벌 금융시장은 수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성장해왔다. 금융위기와 팬데믹 같은 충격도 시간이 지나며 회복됐다. 미래에셋은 이런 시장의 본질을 전제로 투자 전략을 설계해왔다. 빠른 조직과 긴 투자라는 상반된 개념은 결국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된다. 빠르게 정보를 확보한 조직이 장기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구조다. 합병 10년, 숫자로 증명된 ‘구조적 성장’ 이 같은 철학은 실적으로 이어졌다. 합병 당시 약 6.7조원이던 자기자본은 2025년 기준 13조원대로 확대됐고, 고객자산은 200조원대에서 600조원 이상으로 증가했다. 순이익 역시 수천억원 수준에서 1조원대 중반까지 성장하며 수익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시가총액 또한 4조원대에서 40조원대로 뛰며 국내 대표 금융투자회사로 자리매김했다. 단순히 큰 회사가 아니라, 글로벌 투자 역량을 갖춘 회사로 체질이 바뀌었다는 평가다. 특히 글로벌 투자 확대, 연금·자산관리 강화, 디지털 플랫폼 구축 등 사업 포트폴리오 전반에서 구조적 전환이 이뤄졌다. 브로커리지 중심에서 벗어나 종합 투자회사로 진화한 것이다. 미래에셋증권의 또 다른 축은 성과 공유다. 회사는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을 통해 수천억 원 규모의 주주환원을 이어오며 주주가치 제고에 집중해왔다. 동시에 임직원에게는 주식보상과 스톡옵션을 확대해 기업 성장과 개인 보상을 연결했다. 특히 AI·디지털 인재 확보를 위해 파격적인 보상 체계를 도입하며 미래 경쟁력 강화에도 나서고 있다. 이는 단순한 보상 정책을 넘어 조직 전체가 성장을 공유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디지털 전환과 ‘미래에셋 3.0’…다음 10년의 방향 10년 사이 조직 구조도 크게 바뀌었다. 모바일 투자 환경 확산으로 지점 수와 인력은 줄었지만 이는 자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다음 단계로 향하고 있다. 미래에셋이 추진하는 ‘미래에셋 3.0’ 전략이다. 이는 글로벌 디지털 월렛을 중심으로 전통자산과 디지털자산을 통합하고 토큰화와 스테이블코인 등 새로운 금융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뮤추얼펀드 중심의 1.0, 글로벌 확장의 2.0을 거쳐 디지털 금융으로 진화하는 3.0 단계에 진입한 셈이다. 미래에셋증권의 지난 10년은 단순한 성장사가 아니다. 조직의 시간은 줄이고, 투자의 시간은 늘리는 ‘시간의 재설계’를 통해 금융회사의 작동 방식을 바꿨다. 이는 결국 자본시장 전체의 기준을 바꾸는 결과로 이어졌다. 2016년의 합병이 규모의 경쟁을 열었다면 앞으로의 10년은 구조와 철학의 경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전히 시간을 다르게 사용하는 한 금융회사가 서 있다.
2026-04-29 14:5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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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의 큰 정치, 한국 정치의 새로운 이정표다
[경제일보]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의 『권노갑 백인평전』 출판기념회는 단순한 출판 행사를 넘어 한국 정치가 다시 돌아보아야 할 한 장면을 보여 주었다. 국회박물관에 모인 인사들의 면면도 예사롭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주목할 대목은 권노갑이라는 인물이 한국 정치사에서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가를 다시 확인하게 했다는 점이다. 그는 오랜 세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곁을 지킨 정치인이자 민주화의 굴곡진 현장을 통과해 온 산증인이다. 그러나 그를 단지 ‘영원한 비서실장’으로만 부르는 것은 부족하다. 권노갑은 한국 정치가 잃지 말아야 할 기본과 원칙, 상식의 가치를 상징하는 인물로 기억될 만하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이날 축사에서 회고한 2000년 청와대 만찬장의 장면은 그 상징성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당시 정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 앞에서 권 고문의 퇴진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정치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매우 냉혹한 장면이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누구라도 격앙되거나 반격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권노갑은 달랐다. 그는 “내가 퇴진함으로써 대통령과 당이 편안해질 수 있다면 그것이 나의 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순명’이라는 두 글자를 남겼다. 세월이 흐른 뒤 자신을 향해 칼을 겨누었던 후배를 다시 품고 “더 큰 정치를 하라”고 말한 대목은 더욱 인상적이다. 이것은 권력의 기술이 아니라 정치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장면이다. 오늘의 한국 정치가 특히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정치는 과도한 진영 대립과 적대적 언어, 그리고 단기적 이해관계에 지나치게 흔들리고 있다. 정치는 본래 공적 책임의 영역인데도 현실에서는 상대를 쓰러뜨리는 기술이나 지지층을 결집하는 선동의 언어로 축소되는 일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권노갑의 삶은 정치의 본령이 무엇인지를 되묻게 한다. 정치는 사람을 소모하는 수단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하는 공적 행위이며 권력은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절제와 책임의 대상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권노갑의 정치가 특별한 까닭은 오랜 세월 권력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권력의 탐욕에 함몰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는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대의를 앞세웠고 직함보다 역할을 중시했으며 사적 이익보다 공적 질서를 소중히 여겼다. 실제로 많은 인사들이 그를 두고 ‘선당후사’의 표상, 사람과 신의를 중심에 둔 정치의 실천자라고 평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관찰의 결과일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이런 평가를 여야를 넘어 함께 받는 인물은 결코 많지 않다. 그는 또한 정치의 가장 근본을 지킨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정치의 근본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사실을 직시하는 진리의 태도, 사적 이해보다 공적 기준을 앞세우는 정의의 감각, 서로 다른 의견과 세력이 공존할 수 있도록 공간을 넓히는 자유의 정신이 정치의 근본이다. 권노갑의 삶에는 이러한 요소가 비교적 분명하게 배어 있다. 그가 한국 민주주의의 질곡 속에서도 끝내 사람을 잃지 않았고 적지 않은 후배 정치인에게 울타리와 버팀목으로 기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출판기념회가 던지는 메시지는 그래서 개인 찬양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정치가 권노갑이라는 한 인물을 통해 무엇을 배울 것인가다. 정치는 결국 기본과 원칙, 그리고 상식 위에 서야 한다. 순간의 유불리에 따라 흔들리는 정치가 아니라 긴 호흡에서 공공성을 지켜내는 정치가 필요하다. 또한 정치적 갈등은 불가피하더라도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 권노갑이 보여 준 절제와 용서, 그리고 대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태도는 지금 정치권 전체가 되새겨야 할 덕목이다. 정치의 역할 역시 과거를 끝없이 응징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를 다시 묶는 데 있어야 한다. 갈등을 넘어 화해와 공존의 길을 찾지 못하는 정치는 결국 사회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데 그치기 쉽다. 권노갑의 삶을 지나치게 미화할 필요는 없다. 정치인은 누구나 시대의 한계와 논란 속에 존재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긴 정치 여정이 오늘의 한국 정치에 하나의 기준점을 제시한다는 사실이다. 권력의 중심에 있을 때보다 권력을 내려놓는 순간 더 크게 보이는 정치인, 자신을 겨눈 후배마저 품어 더 큰 정치를 하라고 말할 수 있는 정치인, 직위보다 도리로 기억되는 정치인은 드물다. 그런 점에서 권노갑의 큰 정치는 과거의 미담이 아니라 오늘의 정치가 다시 세워야 할 이정표라 할 만하다. 한국 정치는 지금 새로운 기준을 필요로 한다. 거친 언어보다 절제된 판단이 진영의 흥분보다 공적 책임이 순간의 승리보다 오래 남는 품격이 절실하다. 권노갑이라는 이름이 다시 호명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백년 인생은 단순한 개인사의 기록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어떤 사람들에 의해 지탱되는가를 보여 주는 한 사례다. 정치가 다시 국민의 신뢰를 얻고자 한다면 권노갑이 남긴 기본과 원칙, 상식의 유산부터 차분히 돌아봐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한국 정치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도 무거운 출발점일 것이다.
2026-03-08 08: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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