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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지는 한 달이면 정한다는데…반도체 공장은 언제 돌아가나
[경제일보] 정부가 반도체 첨단산업단지 지정 요청이 들어오면 한 달 안에 후보지를 정하기로 했다. 통상 10년 이상 걸리는 산업단지 조성 기간을 기업 투자 일정에 맞춰 대폭 줄이겠다는 것이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의 전체 조성 일정도 당초 2047년에서 2040년으로 최대 7년 앞당길 방침이다. 그러나 후보지 지정은 공장이 가동되기까지 거쳐야 할 긴 절차의 출발점일 뿐이다. 반도체 산업은 시간 싸움이다. 미국과 일본, 대만은 생산시설을 자국에 끌어들이기 위해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앞세우고 있다. 기술이 있어도 공장 건설과 양산이 늦어지면 시장을 선점하기 어렵다. 기업의 투자를 느린 행정절차가 붙잡아서는 안 된다는 정부의 문제의식은 타당하다. 문제는 정부가 내세운 ‘한 달’이 전체 산단 조성기간 가운데 극히 일부라는 점이다. 후보지 선정 이후 산업단지계획 수립과 관계기관 협의, 주민 의견 수렴, 환경영향평가, 토지보상, 이주대책, 부지 조성공사가 이어진다. 전력과 용수, 도로와 철도까지 제때 갖춰져야 생산라인을 돌릴 수 있다. 후보지를 빨리 정해도 나머지 절차가 뒤따르지 못하면 기업이 체감하는 투자 시계는 달라지지 않는다. 산업단지 인허가를 줄이기 위한 제도도 이미 있다.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 특례법은 관계기관 협의를 동시에 진행하고 일정한 기간 안에 의견을 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다시 패스트트랙을 꺼내 들었다면 기존 제도가 현장에서 기대만큼 작동하지 않은 원인부터 밝혀야 한다. 법을 하나 더 만들고 전담 조직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처 간 이견과 주민 갈등을 해소하기 어렵다. 용인 국가산단은 정부가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정부는 2023년 3월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과 남사읍 일대를 국가산단 후보지로 선정했고 2024년 12월 산업단지계획을 승인했다. 후보지 선정에서 산단 승인까지 1년9개월이 걸렸다. 통상적인 국가산단 사업과 비교하면 빠른 편이지만 정작 사업 현장에서는 토지보상이 다음 관문으로 남아 있다. 용인 국가산단 예정지 727만4000㎡ 가운데 지난달 말까지 토지 보상 협의가 끝난 면적은 274만1000㎡로 37.7% 수준이다. 상당수 토지 소유자가 보상액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수용재결 절차도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연내 보상을 마무리한 뒤 부지 조성공사에 들어가겠다고 했지만 보상과 이주가 계획대로 끝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사업기간을 줄인다는 이유로 보상과 주민 의견 수렴을 형식적으로 처리해서도 안 된다. 보상 기준과 이주대책을 둘러싼 갈등이 길어지면 공사 지연과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 주민을 설득하는 데 드는 시간을 행정 낭비로 볼 것이 아니라 전체 사업기간을 줄이기 위한 과정으로 봐야 한다. 초기 단계부터 보상 기준과 생활대책을 공개하고 이견을 조정하는 편이 결과적으로 더 빠르다. 토지보상보다 더 까다로운 문제는 전력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장기적으로 10GW가 넘는 전력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발전소와 변전소를 산단 안에 짓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외부 전력을 끌어오기 위한 장거리 송전망도 새로 설치해야 한다. 송전선로의 노선 선정과 부지 확보, 환경 검토, 주민 협의를 감안하면 산단 승인과는 다른 차원의 난제다. 산단 부지 조성만 7년 앞당기고 송전망이 뒤따르지 못하면 공장 가동 시점은 앞당겨지지 않는다. 어느 지역에서 전기를 가져오고 송전선로가 어느 지방자치단체를 지나며 변전소를 어디에 설치할 것인지가 먼저 확정돼야 한다. 첫 번째 생산라인이 필요로 하는 전력을 언제부터 공급할 수 있는지도 공개해야 한다. ‘전력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는 원론적인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용수 문제도 다르지 않다. 정부가 추진하는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통합용수공급 사업은 하루 107만2000t의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대형 사업이다. 팔당댐에서 용인까지 46.9㎞에 이르는 전용 관로와 가압시설을 새로 설치해야 하고 사업비도 2조원을 웃돈다. 1단계 용수 공급 목표 시점은 2031년이다. 용인 국가산단과 인근 일반산단의 전체 용수 수요는 하루 약 133만t으로 예상된다. 기존 댐의 여유 물량만으로는 부족해 하수 재이용수와 발전용 댐의 물까지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물을 확보하는 것과 수십㎞의 관로를 제때 설치하는 일은 별개 문제다. 관로가 지나는 지역과의 협의가 늦어지면 공장 완공 이후에도 용수 공급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정부는 용인 국가산단의 최종 완공 시점을 2040년으로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업에 중요한 시점은 마지막 공장이 들어서는 2040년이 아니라 첫 번째 생산라인을 언제 착공하고 가동할 수 있느냐다. 첫 팹에 필요한 토지를 언제 넘기고 공사용 도로를 언제 개통하며 전력과 용수를 어느 시점부터 얼마나 공급할 것인지가 투자 판단을 좌우한다. 배후 교통망도 산단 공사와 따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이동 공공주택지구 인허가를 내년 초까지 마치고 국도 45호선 확장사업도 오는 8월 발주할 계획이다. 주택과 도로 건설이 산단보다 늦으면 출퇴근 혼잡과 주거난이 불가피하다. 공장만 먼저 지어 놓고 근로자에게 장거리 출퇴근을 감수하라고 할 수는 없다. 호남권에 새로 조성하겠다는 반도체 국가산단은 용인보다 불확실성이 더 크다. 정부는 광주 군공항 이전 부지를 중심으로 팹 4기가 들어서는 국가산단과 연구·창업·주거 기능을 갖춘 첨단도시를 조성하겠다고 했다. 기업 투자 규모로 800조원을 제시했지만 투자 주체와 투자 시기, 공장별 착공 일정은 아직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산단 부지로 거론된 광주 군공항 이전 부지는 군공항 이전과 종전부지 개발, 재원 조달 문제가 먼저 풀려야 한다. 군공항 이전이 늦어지면 산단 부지 확보도 늦어진다. 후보지 지정만 한 달 안에 마치겠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군공항 이전부터 토지 인도와 산단 조성, 기반시설 공급까지 하나의 일정으로 관리해야 한다. 정부가 내세운 ‘출퇴근 30분, 수출입 물류 1시간’이라는 목표도 구체성이 부족하다. 도로와 철도의 노선, 사업비, 착공과 개통 시점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 무안국제공항의 기반시설과 기능을 강화한다는 계획도 어떤 물류를 얼마나 처리할 것인지가 나와야 한다. 반도체 물류에 필요한 보안과 온습도 관리, 신속한 통관 체계를 어떻게 갖출 것인지도 설명해야 한다. 산업단지 조성기간을 줄이는 방법이 환경영향평가를 건너뛰거나 주민 권리를 축소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개발계획 수립과 환경조사, 기반시설 설계를 사업 초기부터 동시에 진행하고 부처 간 이견을 신속히 조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관계부처 회의를 여는 방식으로는 기업 시간표를 맞출 수 없다. 단계별 책임 기관과 최종 결정권자를 정해 둬야 한다. 정부가 내놓아야 할 것은 ‘한 달 안에 후보지 지정’이라는 숫자보다 공장 가동일까지 이어지는 전체 공정표다. 후보지 선정과 산단 승인, 토지보상, 부지 조성, 송전망과 용수관로, 도로와 철도 건설을 하나의 일정표에 담아야 한다. 각 단계의 완료 시점과 책임 부처를 공개하고 일정이 늦어질 경우의 대응책도 마련해야 한다. 반도체 공장은 산업단지 지정 고시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땅과 전기, 물, 도로가 필요한 시점에 함께 준비돼야 생산라인이 움직인다. 후보지를 한 달 안에 정하는 것은 의미 있는 출발이다. 정부의 속도전이 성과를 내려면 그다음 10년을 어디에서 어떻게 줄일 것인지부터 보여줘야 한다.
2026-07-13 16: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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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이름의 면죄부, 사법정의는 어디에 있었나
[경제일보] 친족상도례라는 말은 어렵다. 한자로 쓰면 더 멀어진다. 그러나 내용은 어렵지 않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족 사이에서 절도, 사기, 횡령, 배임 같은 재산범죄가 벌어졌을 때 국가가 처벌을 삼가거나, 피해자가 고소해야만 처벌 절차로 갈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법은 오래전부터 가족 안의 돈 문제에 형벌권을 들이대는 일을 조심스러워했다. 가정의 평온을 지키고, 가족 사이의 일을 가족 내부에서 해결하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그 취지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사이의 사소한 금전 다툼까지 모두 경찰서와 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회가 건강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가족이라는 말이 언제나 따뜻한 울타리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신뢰의 이름이지만, 범죄자가 그 신뢰를 이용하면 피해자는 가장 늦게 구조된다. 남이 훔치면 절도이고, 남이 속이면 사기인데, 가족이 훔치고 속이면 “집안일”로 밀려나는 순간이 있었다. 법의 이름으로 그런 일이 가능했다. 친족상도례 논란의 본질은 가족 해체가 아니다. 피해자를 법 밖에 세워 둔 제도의 문제다. 피해자가 가족이라는 이유로 재판절차에서 말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가해자가 가족이라는 이유로 형사책임을 피한다면 사법정의는 출발선에서 멈춘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24년 형법 제328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당시 조항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사이의 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도록 했다. 형법은 절도, 사기, 공갈, 횡령·배임 등 여러 재산범죄에도 제328조를 준용해 왔다. 다시 말해 친족상도례는 권리행사방해죄 한 조항에 머무르지 않고 친족 간 재산범죄 전반에 영향을 미쳐 온 셈이다. 헌재는 해당 조항이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헌재 결정문을 보면 친족상도례가 왜 더 이상 옛 논리로 버틸 수 없게 됐는지 알 수 있다. 청구인 측은 친족상도례가 노인이나 장애인 등 약자를 상대로 한 악질적 재산범죄의 면죄부로 기능한다고 주장했다. 법이 가족 내부의 자율 해결을 기대하는 사이, 현실의 피해자는 고립됐다. 가족 안에서 돈을 빼앗긴 사람은 가족 안에서 침묵을 요구받는다. 가해자는 경찰서 앞에서 가족을 말하고, 법정 앞에서 화해를 말한다. 피해자는 생활비, 주거, 간병, 정서적 의존 때문에 끝까지 싸우기 어렵다. 형사사건 현장에서 자주 보는 장면이다. 친족 간 재산범죄는 폭행처럼 상처가 바로 보이지 않는다. 통장, 인감, 위임장, 법인카드, 가족회사, 명의신탁, 생활비 계좌 같은 이름 뒤로 숨어 있다. 처음에는 부탁처럼 시작된다. “가족인데 믿어라”, “내가 관리해 주겠다”, “나중에 정산하자”는 말이 이어진다. 피해자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계좌가 비어 있거나, 회사 돈이 빠져나갔거나, 명의가 옮겨져 있다. 그때 가해자는 다시 가족을 앞세운다. “고소까지 할 일이냐”는 말이 나온다. 가족의 이름은 한 번은 범행의 도구가 되고, 또 한 번은 책임 회피의 방패가 된다. 방송인 박수홍 씨 사건이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 씨 친형은 2011년부터 2021년까지 매니지먼트 회사를 운영하면서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았고, 2026년 2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 6개월이 확정됐다. 이 사건은 법인 자금 횡령이 중심이어서 친족상도례가 그대로 적용된 전형적 사건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대중이 이 사건을 통해 본 것은 가족회사, 가족 간 신뢰, 돈 관리, 내부 감시 부재가 맞물릴 때 재산범죄가 얼마나 오래 숨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항소심은 피해 회사가 가족회사로서 내부 감시체계가 취약했고 형제 관계의 신뢰가 악용됐다는 점을 특별가중 요소로 봤다. 국회도 헌재 결정 이후 움직였다. 2025년 12월 31일 공포된 형법 개정으로 과거의 형 면제 조항은 삭제됐다. 개정 형법 제328조는 피해자의 친족이 재산범죄를 저지른 경우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도 고소할 수 있도록 형사소송법상 직계존속 고소 제한을 배제했다. 친족 아닌 공범에게는 친족 특례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남겼다. 가까운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형을 면제받던 시대는 끝났다. 아버지 돈을 자식이 훔쳐도, 형제의 돈을 다른 형제가 빼돌려도, 배우자가 상대방 재산을 횡령해도 이제 “가족이니까 처벌하지 않는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고소하면 수사와 재판으로 갈 수 있다. 가족 내부의 자율 해결이라는 이름 아래 피해자의 입을 막던 낡은 문은 닫혔다. 그러나 여기서 칼럼을 끝내면 절반만 본 것이다. 형 면제가 사라졌다고 친족 특례의 문제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개정법은 친족 간 재산범죄를 원칙적으로 친고죄로 정리했다. 친고죄란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검사가 재판에 넘길 수 있는 범죄를 말한다.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장점이 있다. 가족 사이의 일률적 처벌을 피하고, 진정한 화해가 이뤄진 사건까지 국가가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도록 하는 기능도 있다. 하지만 친고죄는 피해자가 자유롭게 고소하고 자유롭게 고소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가족 내부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노부모가 자식에게 생활을 의존하고 있다면 어떠한가. 장애가 있는 피해자가 재산 관리를 친족에게 맡겨 왔다면 어떠한가. 배우자나 형제가 집안 여론을 동원해 “네가 가족을 감옥 보낼 셈이냐”고 몰아붙이면, 피해자의 고소 취소가 정말 자유로운 결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형 면제의 시대에는 법이 피해자를 밀어냈고, 친고죄의 시대에는 가족 내부 압박이 피해자를 다시 밀어낼 수 있다. 대법원의 2026년 4월 판단은 이 대목을 생각하게 한다. 부모의 집에서 금고를 들고 나와 현금, 상품권, 귀금속 등을 훔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피해자인 부모가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하자, 대법원은 개정 형법상 친족 간 절도는 친고죄에 해당하고 1심 판결 선고 전 고소가 취소된 이상 공소기각 판단을 했어야 한다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판단은 현행법 체계상 자연스럽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친고죄 사건에서 법원이 공소를 유지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사건은 개정 이후의 숙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법은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동시에 그 의사가 가족 내부의 압박, 두려움, 생계 의존, 정서적 굴레 속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도 살펴야 한다. 특히 노인과 장애인 피해자는 이 논의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보건복지부의 2024년 장애인학대 현황에 따르면 전국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접수된 장애인학대 신고는 6031건이었다. 학대로 판정된 사례는 1449건이었다. 학대 피해자 중 발달장애인의 비율은 71.1%였고, 학대 유형 중 경제적 착취는 18.6%를 차지했다. 숫자가 말하는 장면은 냉정하다. 가족 안에서 돌봄을 받아야 할 사람이 오히려 돈과 노동력을 빼앗기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노인학대도 가정 안에서 많이 발생한다. 법제처 생활법령정보는 2025년 학대피해노인이 7973명으로 전년보다 11.2% 증가했다고 정리하고 있다. 노인학대는 신체적 학대만을 뜻하지 않는다. 정서적 학대, 경제적 학대, 방임, 유기도 포함된다. 재산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통장을 가져가고, 기초연금이나 예금을 생활비라는 이름으로 빼 쓰고, 부동산 처분 권한을 넘겨받은 뒤 돌려주지 않는 일도 가족 안에서 벌어진다. 가족은 법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그래서 위험할 때 더 무섭다. 타인의 범죄는 경찰에 신고하면 된다. 가족의 범죄는 신고하기 전부터 설명해야 할 것이 많다. 왜 가족을 고소하느냐는 질문을 먼저 받는다. 피해자는 돈을 잃은 사람인데도 가족을 깨뜨린 사람처럼 몰린다. 가해자는 범행을 설명하기보다 관계를 내세운다. “부모 자식 사이”, “형제 사이”, “부부 사이”라는 말이 피해 사실 위에 덮인다. 사법정의가 어려워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형사법의 목적은 국가가 벌을 주고 끝내는 데만 있지 않다. 죄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고, 피해자의 말을 공적 절차 안으로 들여오며,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를 세우는 일도 형사사법의 역할이다. 응보라는 말도 거칠게만 볼 필요가 없다. 응보는 복수가 아니다. 범죄로 무너진 질서에 대해 공동체가 “그 일은 잘못됐다”고 말하는 절차다. 피해자는 그 선언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당한 일이 집안일이나 운명의 문제가 아니라 범죄였다는 확인을 받는다. 가족 안의 재산범죄에서도 그 확인은 필요하다. 친족 특례를 모두 없애자는 말이 아니다. 가족관계에는 회복 가능성이 있고, 형사처벌이 오히려 분쟁을 키우는 사건도 있다. 부모 지갑에서 소액을 가져간 미성년 자녀 사건과, 장애가 있는 친족의 보조금과 예금을 장기간 빼돌린 사건을 같은 눈으로 볼 수는 없다. 술김에 벌어진 일회성 절도와, 가족회사를 이용해 수년간 돈을 빼낸 횡령도 다르다. 법은 차이를 봐야 한다. 과거 친족상도례의 잘못은 그 차이를 보지 않았다는 데 있다. 가까운 친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피해 규모, 범행 기간, 피해자의 처벌 의사, 피해자의 취약성, 가해자의 지배관계, 피해 회복 정도를 뒤로 밀었다. 앞으로의 과제도 그 지점에 있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친족 간 재산범죄에서 고소 취소가 접수됐다고 곧바로 “화해”라고 읽어서는 안 된다. 피해자가 독립된 상태에서 의사를 밝혔는지, 가해자와 주거·생계·돌봄 관계로 묶여 있지는 않은지, 피해 회복이 실제로 이뤄졌는지, 다른 가족의 압박이 있었는지 따져야 한다. 노인, 장애인, 질병이 있는 피해자라면 진술 조력, 국선변호인, 피해자 보호명령, 후견제도, 임시 재산관리 장치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고소권을 법전에 적어 두는 일과 피해자가 그 권리를 실제로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일은 다르다. 입법도 한 번 더 손봐야 한다. 친고죄 일원화는 헌재 결정 이후 급한 불을 끈 절충안에 가깝다. 친족 간 재산범죄를 모두 일률적으로 친고죄로 묶는 방식이 적절한지도 계속 따져야 한다. 피해액이 크거나 범행 기간이 길거나, 피해자가 노인·장애인 등 취약한 지위에 있거나, 가해자가 재산관리 권한을 이용한 사건이라면 고소 취소만으로 절차가 끝나지 않도록 별도의 예외를 둘 필요가 있다. 가족 내부 해결을 존중하더라도, 가족 내부에서 해결될 수 없는 범죄까지 가족에게 되돌려 보내서는 안 된다. 언론도 이 문제를 연예인 가족 분쟁이나 자극적인 집안싸움으로 소비해선 안 된다. 친족상도례 논란은 유명인의 불행담이 아니라 우리 형사사법이 가족 안의 피해자를 어디까지 보호할 수 있는지 묻는 사건이다. 고령화가 빨라지고 1인 가구와 재혼가정, 사실상 돌봄 가족, 가족회사, 가족 간 재산관리 관계가 복잡해지는 시대다. 예전처럼 “가족끼리 알아서 하라”는 말로 덮을 수 있는 사건은 줄어들고 있다. 가족의 형태가 달라졌는데 법의 감각만 오래된 사진첩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친족상도례의 형 면제 조항은 역사 속으로 물러났다. 늦었지만 필요한 변화였다. 그러나 사법정의는 조항 하나를 고쳤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피해자가 고소할 수 있어야 하고, 고소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며, 고소를 취소할 때도 그 결정이 자유로운 의사에서 나온 것인지 확인받을 수 있어야 한다. 가족이라는 말이 피해자의 권리를 지우는 순간, 법은 가장 가까운 곳의 약자를 놓친다. 가족의 평온은 범죄의 침묵 위에 세울 수 없다. 진짜 평온은 가해자의 책임을 덮는 데서 오지 않는다. 피해자가 자신이 당한 일을 말할 수 있고, 국가는 그 말을 절차 안에서 듣고, 법원은 관계가 아니라 행위를 기준으로 판단할 때 가족도 사회도 무너지지 않는다. 친족 특례의 시대가 남긴 교훈은 하나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사법정의보다 앞설 수는 없다.
2026-07-09 07:5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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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D 773% 질주, 테슬라는 수성…하반기 신차 경쟁 본격화
[경제일보] 국내 전기차 시장의 경쟁 구도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BYD가 수입 전기차 시장을 파고들고, 테슬라는 상품성으로 1위 자리를 지켜냈다. 반면 현대자동차는 주력 차종 판매가 주춤한 사이 기아는 전기차 신차 효과를 앞세워 성장세를 이어갔다. 하반기 시장 주도권은 신차 경쟁력과 가격 전략이 가를 전망이다. 7일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신차 등록 대수는 85만3969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 증가했다. 국산차 등록은 66만7159대로 4.8% 감소한 반면 수입차는 18만6810대로 31.7% 늘었다. 전기차 등록은 19만8969대로 112.6% 증가하며 전체 시장 성장을 이끌었다. 상반기 시장에서 가장 큰 변화는 중국 전기차 브랜드 BYD의 급부상이다. BYD는 상반기 1만1675대를 등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773.2% 성장했다. 수입 승용차 브랜드 가운데 테슬라와 BMW, 메르세데스-벤츠에 이어 4위에 올랐고, 불과 1년 만에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의 주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BYD의 급성장 배경에는 가격 경쟁력이 있었다. 국내 판매 모델은 돌핀(2450만원), 아토3(3350만원), 씰(3990만~4190만원), 씨라이언7(4490만~4690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상반기에는 국고·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을 적용하면 돌핀은 2000만원대 초중반, 아토3는 2000만원대 후반, 씰은 3000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소비자를 끌어들였다. 브랜드 인지도보다 가격과 상품성을 우선 고려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점도 판매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반면 국내 완성차 시장에서는 현대차와 기아의 성적이 엇갈렸다. 현대차 승용차 등록 대수는 21만7962대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8.0% 감소한 반면 기아는 26만8868대로 2.6% 증가하며 국산 승용차 브랜드 1위를 유지했다. 제네시스도 24.0% 감소하며 부진을 면치 못했다. 현대차는 주력 차종 판매 감소가 실적에 직격탄이 됐다는 분석이다. 싼타페는 전년 동기 대비 38.8%, 팰리세이드는 33.5%, 아반떼는 27.0%, 투싼은 25.0% 각각 줄었다. 아이오닉5와 아이오닉6, 아이오닉9 등 전기차 판매는 증가했지만 판매 비중이 아직 크지 않아 내연기관 감소분을 상쇄하기에는 부족했다. 반면 기아는 주력 스포츠유틸리티차(SUV)와 전기차를 앞세워 성장세를 이어갔다. 쏘렌토는 5만6367대로 상반기 국산 승용차 판매 1위를 차지했고, EV3는 1만8009대가 등록되며 전기차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올해 출시한 EV5도 1만5411대를 기록하며 빠르게 시장에 안착했고, EV4 역시 판매를 늘리며 전기차 라인업 확대에 힘을 보탰다. 하반기에는 현대차그룹의 반격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현대차는 전기 세단 EV4를 비롯한 신차 판매를 확대하고 아이오닉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기아도 EV4와 EV5 판매를 본격화하는 한편 쏘렌토와 카니발 등 기존 주력 차종의 판매 기반을 유지하며 내수와 전기차 시장을 동시에 공략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하반기에도 상반기와 같은 경쟁 구도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BYD는 일부 차종이 정부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상반기와 같은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테슬라도 이달부터 모델3와 모델Y 등 주요 차종 가격을 최대 700만원 인상하면서 가격 메리트가 약해졌다. 현대차와 기아는 신차 효과가 실제 판매 확대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은 신차가 나오면 소비자 수요가 빠르게 이동하는 특성이 있다”며 “하반기에는 배터리 성능과 충전 편의성, 사후서비스까지 소비자가 체감하는 상품 경쟁력을 얼마나 끌어올리느냐가 브랜드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2026-07-07 16: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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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구호가 아니라 인프라 전쟁이다
[경제일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가 이재명 정부의 첫 대형 산업 승부수로 떠올랐다. 정부는 반도체 수요 폭증과 지역균형발전을 동시에 겨냥해 서남권을 제2의 반도체 생산기지로 키우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이에 호응했다. 지난 6월 30일 광주에서 열린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삼성은 호남에 총 425조원을 투자하고, 광주에 약 400조원을 들여 신규 반도체 팹 2기를 짓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SK하이닉스도 서남권에 400조원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구상을 제시했다. 양사의 투자 규모를 합치면 825조원에 이른다. 정부가 내건 명분은 분명하다. AI(인공지능) 시대가 열리면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기존 용인·평택·이천 중심의 수도권 반도체 축만으로는 미래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호남을 새로운 생산기지로 개발해야 한다며 전력과 용수, 용지 여건을 언급했고, 청와대 안에 3대 메가프로젝트 직할 담당관을 두겠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도 3S+1F 전략을 통해 속도전, 거점전, 선도전, 총력지원체계를 제시했다. 그러나 반도체 클러스터는 발표문으로 지어지지 않는다. 반도체 공장은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전력, 물, 땅, 인재, 협력업체, 물류, 정주 여건이 동시에 맞물려야 돌아가는 초정밀 산업 생태계다. 호남 클러스터의 성패도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 정부와 기업이 ‘825조원’이라는 숫자를 꺼내 든 순간, 국민이 물어야 할 질문은 하나다. 과연 호남은 반도체를 감당할 인프라를 갖췄느냐다. 첫째는 전력이다. 반도체 팹은 전기를 먹고 산다. AI 데이터센터까지 결합되면 전력 수요는 더 커진다. 단순히 발전량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안정적이고 끊김 없는 전력망, 초고압 송전망, 변전 설비, 전력 품질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반도체 라인은 순간 정전이나 전압 불안에도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전력 공급계획이 지역 민원과 송전망 지연에 막히면 400조원짜리 팹은 착공 전부터 병목에 걸린다. 둘째는 용수다. 반도체 생산에는 대량의 초순수가 필요하다. 정부는 전력과 용수 공급에 문제가 없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물은 행정명령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취수원, 정수·폐수처리 시설, 재이용 시스템, 지역 농업·생활용수와의 조정까지 함께 설계돼야 한다. 셋째는 사람이다. 반도체 클러스터의 진짜 경쟁력은 공장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일할 엔지니어와 기술자다. 수도권에 집중된 고급 인력이 호남으로 이동하려면 좋은 일자리만으로는 부족하다. 교육, 의료, 주거, 문화, 교통이 함께 따라와야 한다. 가족이 옮겨 살 수 있는 도시가 돼야 인재가 온다. 지방에 공장을 짓고 인재는 수도권에서 출퇴근시키는 방식으로는 첨단산업 생태계를 만들 수 없다. 넷째는 기업의 자율성과 정책의 일관성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큰 틀의 투자 계획을 밝혔지만 구체적 입지와 세부 일정은 여전히 신중히 검토 중이다. 대규모 반도체 투자는 한 번 삽을 뜨면 수십 년을 간다. 정치 일정에 맞춰 서두를 일이 아니다. 기업이 투자 논리로 판단하고 정부는 인프라와 규제를 책임지는 구조가 돼야 한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균형발전 정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한국 첨단산업의 지도는 수도권과 일부 충청권에 지나치게 기울어 있었다. 호남이 농업과 전통 제조업의 이미지에 갇혀 있는 동안 청년은 떠났고 지역경제는 노쇠했다. 반도체 클러스터가 제대로 추진된다면 호남은 단순한 생산기지가 아니라 AI 데이터센터, 첨단 패키징, 미래 에너지, 소부장 기업이 결합된 남부권 산업축으로 도약할 수 있다. 하지만 균형발전은 지역 배분이 아니다. 산업 경쟁력을 해치면서까지 지도를 나누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반도체는 세계와 싸우는 산업이다. 미국, 대만, 일본, 중국은 국가 차원의 보조금과 인프라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이 호남 클러스터를 추진하려면 수도권 클러스터를 약화시키는 ‘분산’이 아니라, 수도권·충청·호남을 연결하는 ‘확장’이어야 한다. 용인과 평택이 흔들리고 호남이 뜨는 구조가 아니라 기존 거점은 더 빨라지고 새 거점은 더 넓어지는 구조여야 한다. 《논어》에 ‘공욕선기사 필선리기기(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라는 말이 있다. 장인이 일을 잘하려면 먼저 연장을 날카롭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연장은 전력망이고, 용수망이고, 도로·철도·항만이고, 대학과 연구소이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도시 환경이다. 연장이 무딘데 공장부터 세우면 산업은 오래가지 못한다. 정부는 이제 숫자의 정치에서 실행의 행정으로 넘어가야 한다. 825조원이라는 투자 규모는 국민의 기대를 키우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 숫자가 실제 공장, 실제 고용, 실제 수출, 실제 지역소득으로 바뀌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전력·용수·부지 인허가 일정을 공개하고 책임 주체를 분명히 해야 한다. 둘째, 지역 대학과 기업을 묶은 반도체 인력 양성 로드맵을 즉시 제시해야 한다. 셋째, 기업 투자 결정이 정치적 압박으로 비치지 않도록 세제·규제·인센티브 기준을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성공하면 한국 산업 지도를 바꿀 수 있다. 실패하면 또 하나의 거대한 지역 공약으로 남을 수 있다. 차이는 말이 아니라 인프라에서 갈린다. 반도체는 균형발전의 깃발만 보고 오지 않는다. 전기와 물과 사람과 시간이 있어야 온다. 정부가 정말 호남을 대한민국 산업의 새 심장으로 만들고 싶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구호가 아니라 더 촘촘한 실행표다.
2026-07-03 12:5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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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가장 싼 날?…테슬라가 깎아먹는 소비자 신뢰
[경제일보] 테슬라코리아가 정부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 지원 유지 결정 하루 만에 모델3와 모델Y 판매 가격을 최대 700만원 인상했다. 회사는 환율과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예고 없이 이뤄진 가격 인상은 소비자가 선택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단순히 시점이 겹친 것으로 봐야 할지, 보조금 지원 유지 결정 직후 가격 인상이 이뤄진 배경에 의문이 남는다. 테슬라코리아는 7월 1일부터 모델3 프리미엄 롱레인지 RWD 가격을 기존 5299만원에서 5999만원으로 700만원 인상했다. 모델3 RWD와 모델3 퍼포먼스는 각각 500만원 오른 4699만원, 6999만원으로 조정했고, 모델Y 프리미엄 롱레인지 AWD와 모델Y L도 각각 300만원 오른 6699만원, 7299만원으로 가격을 변경했다. 가격 인상은 정부가 하루 전인 6월 30일 테슬라를 포함한 27개 전기차 제작·수입사에 대해 구매 보조금 지원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직후 이뤄졌다. 문제는 가격 인상 자체가 아니다. 환율과 원자재 가격 상승은 자동차 업계가 공통으로 겪는 부담이다. 기업이 이를 판매 가격에 반영하는 것 역시 경영 판단의 영역이다. 하지만 소비자는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안내를 미리 받지 못했다. 테슬라코리아는 7월 1일 가격 변경 내용을 공지하고 같은 날부터 인상된 가격을 적용했다. 정부가 구매 부담 완화를 위해 보조금 지원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지만, 소비자는 하루 만에 달라진 가격을 기준으로 다시 구매 여부를 판단해야 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테슬라는 올해 들어 가격 조정을 반복했다. 1월에는 주요 모델 가격을 대폭 인하했고, 4월에는 모델3 퍼포먼스와 모델Y 일부 트림 가격을 최대 500만원 인상했다. 이번 가격 조정까지 더하면 올해 들어 인하 한 차례, 인상 두 차례가 이어졌다. 자동차는 수천만원이 오가는 소비재다. 차량 가격만 비교해 구매를 결정하는 상품도 아니다. 보조금과 금융 조건, 계약 시기, 출고 일정까지 함께 고려한 뒤 계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가격 정책은 소비자의 구매 계획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 가격을 조정하는 것은 기업의 권한이지만, 가격이 바뀌는 과정에서 소비자가 준비할 시간까지 사라져서는 안 된다. 가격 인상을 검토했다면 일정 기간 사전 안내를 하거나 기존 가격으로 계약할 수 있는 유예기간을 두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전기차 보조금은 소비자의 구매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정책이다. 정부도 보조금 정책이 소비자에게 온전히 전달될 수 있도록 가격 인상 시기와 적용 방식 등을 포함한 제도 보완에 나서야 한다. 소비자를 위한 보조금이 기업의 가격 정책에 따라 효과를 잃는다면 정책 취지도 퇴색할 수밖에 없다. 정부와 기업 모두 소비자가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구매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2026-07-02 16:4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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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D 전기차 보조금 끊긴다…정부 평가 탈락에 국내 지원 중단
[경제일보] 중국 전기차 업체 BYD(비야디)의 국내 전기차 구매 보조금 지원이 오는 7월부터 중단된다. 정부가 올해 처음 도입한 전기차 보급사업 수행자 평가에서 유일하게 탈락하면서 국내 시장 공략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30일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전기차 보급사업 수행자 선정 평가에는 총 35개 업체가 참여해 27개 업체가 선정됐다. 선정되지 않은 제작·수입사의 전기차는 7월 1일부터 신규 구매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전기승용차 부문에는 현대자동차, 기아, 르노코리아, KG모빌리티,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BMW코리아, 볼보자동차코리아, 폭스바겐그룹코리아, 테슬라코리아, 폴스타오토모티브코리아 등이 이름을 올렸다. 전기화물차는 현대차와 기아를 비롯해 타타대우모빌리티, 오텍, 디피코 등이, 전기승합차는 현대차와 범한자동차, 우진산전, 케이지모빌리티커머셜 등이 수행자로 선정됐다. 반면 BYD는 무공해차 통합누리집에 등록된 올해 전기승용차 구매 보조금 지급 대상 제작·수입사 가운데 유일하게 수행자 명단에서 제외됐다. 다만 이날까지 구매 보조금을 신청한 차량은 기존 기준이 적용된다. 보급사업 수행자로 선정되지 않은 제작·수입사의 차량이라도 30일까지 보조금을 신청한 경우에는 이후 지원 대상자로 확정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이번 평가는 정부가 국내 전기차 산업 생태계에 기여하는 기업을 중심으로 보조금을 지급하기 위해 올해 처음 도입했다. 차량 성능뿐 아니라 국내 투자와 공급망, 사후관리 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수행자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업계에서는 BYD가 국내 공급망과 사업 기반을 평가하는 항목에서 충분한 점수를 확보하지 못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번 평가는 차량 성능뿐 아니라 국내 산업 기여도와 공급망, 사후관리 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BYD는 국내 생산시설 없이 중국에서 생산한 차량을 수입·판매하는 사업 구조여서 국내 생산과 공급망 기여도 평가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조금 지원 중단은 BYD의 국내 판매 확대 전략에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 전기차 시장은 국비와 지방비 보조금이 실제 구매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소비자의 체감 가격 경쟁력이 이전보다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BYD가 국내 시장 확대 기조를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BYD는 지난해 국내 판매량 6107대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판매 목표를 1만대로 제시했다. 올해 4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1만75대로 국내 고객 인도 11개월 만에 1만대를 넘어섰다. 지난 3월에는 수입차 브랜드 판매 4위에 올랐고, 4월에는 월간 판매량이 처음으로 2000대를 돌파하는 등 판매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BYD는 올해 말까지 국내 전시장을 35곳, 서비스센터를 26곳으로 확대하고 신차 출시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보조금 지원이 중단되더라도 판매망 확대와 서비스 경쟁력 강화로 국내 시장 안착을 이어가려는 전략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2026-06-30 14:4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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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산업 배치, 정치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문제다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첨단 산업의 입지가 정치적 셈법에 따라 흔들려서는 안 된다. 최근 정부와 대기업 총수들의 잇따른 회동 이후 호남권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론이 급부상하면서 지역 사회의 기대와 함께 적지 않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수도권에 집중된 산업 구조를 완화하고 지방 경제를 살리겠다는 취지에는 누구도 이견을 제기하기 어렵다. 수도권 과밀과 지방 소멸이라는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성장축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 역시 시대적 과제다. 그러나 아무리 명분이 선하더라도 과정과 기준이 흔들리면 정책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반도체는 단순한 지역 개발 사업이 아니다. 국가 경제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 산업이며,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를 결정하는 핵심 자산이다. 따라서 입지 선정은 정치적 고려나 지역 안배가 아니라 철저한 경제성과 기술 경쟁력을 기준으로 이뤄져야 한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 충분한 산업용수, 우수한 연구 인력 확보, 대학과 연구기관의 집적도, 협력 기업과의 연계성, 항만과 공항을 포함한 물류 인프라 등 수많은 요소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런 객관적 기준을 무시한 채 정치적 필요에 따라 산업 지도를 다시 그린다면 그 부담은 결국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세계는 지금 반도체를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대규모 보조금을 앞세워 생산기지를 자국으로 끌어들이고 있으며, 중국은 국가 차원의 막대한 투자로 기술 자립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역시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첨단 반도체 생태계 복원에 사활을 걸고 있다. 글로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정치적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느 지역이 더 많은 혜택을 받느냐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어떻게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냉철한 전략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특정 지역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정치적 논란으로 비칠 경우 다른 지역의 상대적 박탈감과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대구·경북을 비롯한 영남권은 AI 산업과 신공항 조성 등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 왔다. 충청권과 강원권, 동남권 역시 저마다의 산업 기반과 발전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객관적인 설명과 충분한 공감대 없이 특정 지역에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가 집중된다면 균형발전이라는 정책 목표는 오히려 지역 갈등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국민 통합을 위한 정책이 지역 간 경쟁과 대립의 불씨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경험도 이를 잘 보여준다. 정치적 논리로 추진된 일부 국책사업은 충분한 수요와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막대한 예산만 투입하고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활용도가 낮은 공항과 산업단지, 운영난을 겪는 각종 공공시설은 국가 재정에 적지 않은 부담을 안기고 있다. 첨단 산업은 한 번 잘못된 판단이 수십 년간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신중해야 한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전력과 용수, 공급망, 전문 인력이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하는 산업인 만큼 정치적 타협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정책 추진의 원칙과 기준을 국민 앞에 투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왜 그 지역이 최적의 입지인지, 어떤 경제적 효과와 국가적 이익이 있는지, 다른 지역과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이뤄질 것인지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설명해야 한다. 정치적 구호나 선언만으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공정한 절차와 합리적인 기준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정책은 신뢰를 얻는다. 균형발전 역시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균형발전은 모든 지역에 똑같은 산업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다. 각 지역이 가진 산업적 강점과 지리적 특성, 연구 역량을 최대한 살려 가장 경쟁력 있는 분야를 육성하는 것이 진정한 균형발전이다. 호남은 반도체와 신재생에너지, 영남은 AI와 미래 모빌리티, 충청은 바이오와 첨단 소재 등 지역별 특성을 고려한 전략적 분업이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정치적 안배보다 산업 생태계의 효율성과 미래 성장 가능성을 우선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의 관계 역시 달라져야 한다. 과거처럼 정부가 기업을 불러 투자 지역을 정하고 사업 방향을 사실상 결정하는 방식은 글로벌 경쟁 시대에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주체이며, 투자 결정 역시 시장성과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방향을 제시하고 인프라를 지원하되, 기업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존중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첨단 산업의 입지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할 것인지, 아니면 국가 경쟁력과 미래 세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눈앞의 선거보다 앞으로의 50년을 바라보는 정책이 필요하다. 정치가 산업을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산업이 국가의 미래를 이끄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국토공간 대전환은 특정 지역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위한 국가 전략이어야 한다. 지역을 나누는 정치가 아니라 지역의 강점을 연결하는 정책, 인기보다 원칙을 선택하는 국정 운영, 정치적 시혜보다 객관적 기준을 존중하는 산업 정책만이 대한민국을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길로 이끌 것이다. 첨단 산업의 지도는 정치인의 계산기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이라는 나침반으로 그려져야 한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며,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이다.
2026-06-28 14: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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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은 AI 시대의 마지막 현장인가
[경제일보] 농촌은 오래전부터 늙고 있었다. 도시가 그것을 외면했을 뿐이다. 농번기마다 일손이 없다고 했다.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부족하다고 했다. 인건비가 올랐다고 했다. 비가 오면 사람이 없고 해가 뜨면 사람이 더 없다고 했다. 우리는 그것을 해마다 반복되는 농촌의 어려움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말로 넘길 수 없는 지점에 와 있다. 농촌 고령화는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다. 식량의 문제이고 지역의 문제이며 국가 산업의 문제다. 농민이 사라지면 농업도 사라진다. 농업이 흔들리면 식탁과 물가, 지역경제와 식량 안보가 함께 흔들린다. 쌀과 과일, 채소와 축산물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누군가는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병충해를 막고 수확해야 한다. 그 일을 할 사람이 빠르게 줄고 있다. 정부와 민간이 농업용 로봇·드론 협의체를 출범시킨 것은 그런 점에서 늦었지만 필요한 일이다. 자율주행 농기계, 농업용 로봇, 농작업 드론, 지능형 의사결정 기술을 함께 개발하겠다는 방향은 농업의 현실을 정면으로 보는 출발점이다. 이제 농업은 사람의 허리와 손끝에만 기대서는 버틸 수 없다. 사람을 기다릴 시간이 농촌에는 많지 않다. 하지만 이 문제를 단순히 로봇 몇 대, 드론 몇 대를 보급하는 일로 봐서는 안 된다. 농촌의 진짜 질문은 더 크다. 농업에 인공지능과 피지컬 AI를 결합해 차세대 농업 시대를 열 수 있는가. 농업을 고령화에 밀려나는 사양 산업이 아니라 데이터와 로봇, 센서와 자동화가 결합된 미래 산업으로 다시 세울 수 있는가. 핵심은 여기에 있다. AI는 지금까지 주로 화면 속에서 이야기됐다. 질문에 답하고 문서를 쓰고 이미지를 만들고 코드를 짜는 기술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농업이 요구하는 AI는 다르다. 흙을 읽어야 하고 날씨를 견뎌야 하며 작물의 상태를 판단해야 한다. 물과 비료, 방제 시점까지 결정해야 한다. 드론은 하늘에서 농지를 살피고 로봇은 땅 위에서 움직이며 AI는 그 데이터를 분석해 다음 작업을 지시해야 한다. 이것이 피지컬 AI다. 화면 안의 지능이 현실의 땅과 기계, 작물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농업은 피지컬 AI가 가장 절실한 현장이다. 공장 자동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됐다. 물류센터에도 로봇이 들어갔다. 항만과 창고도 자동화되고 있다. 그러나 논밭은 여전히 사람의 노동에 크게 기대고 있다. 잡초를 뽑고 농약을 치고 과일을 따고 박스를 나르는 일은 여전히 고된 노동이다. 고령 농민에게 하루하루는 체력과의 싸움이다. 이런 현실을 그대로 두고 농업의 미래를 말하는 것은 공허하다. 드론은 방제와 파종, 생육 관찰을 바꿀 수 있다. 자율주행 농기계는 반복 작업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수확 로봇과 운반 로봇은 고령 농민의 가장 무거운 노동을 덜어줄 수 있다. AI는 토양과 기상, 병해충 데이터를 분석해 언제 물을 주고 언제 약을 치고 언제 수확할지를 판단할 수 있다. 농업이 경험과 감에만 의존하던 시대에서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함께 판단하는 시대로 넘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변화가 성공하면 농업의 성격도 달라진다. 농업은 더 이상 노동집약 산업에만 머물지 않는다. 데이터 산업이 되고 로봇 산업이 되며 정밀기계 산업이 된다. 지역 기반 AI 서비스 산업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 농민은 단순 노동자가 아니라 데이터와 장비를 다루는 현장 운영자가 된다. 청년 세대에게도 농업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다. 물론 현실의 벽도 높다. 농업 현장은 실험실과 다르다. 논은 평평하지 않고 밭은 제각각이며 날씨는 통제되지 않는다. 도시의 시연장에서 잘 움직인 로봇이 농촌의 진흙과 경사, 습도와 먼지 속에서도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농업용 AI는 발표장에서 똑똑한 것보다 현장에서 고장 나지 않는 것이 먼저다. 가격 역시 넘어야 할 과제다. 농가의 상당수는 규모가 작다. 고가의 로봇과 자율주행 농기계를 농민 개인이 모두 구입하기는 어렵다. 기술이 좋아도 감당할 수 없으면 혁신이 아니라 전시품에 불과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장비 보조금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공동 이용센터와 임대형 로봇 서비스, 지역 정비 인력 양성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AI 농업은 장비 판매 사업이 아니라 현장 운영 인프라 사업에 가깝다. 데이터의 주인도 분명해야 한다. 농업 AI가 작동하려면 토양과 기상, 병해충, 생육, 수확량, 농기계 운행 데이터가 축적돼야 한다. 그 데이터는 누가 모으고 누가 활용하며 누가 이익을 얻는가. 농민의 작업 기록과 생산 정보가 기업 서버에만 쌓이고 농민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면 또 다른 종속이 생길 수 있다. AI 농업은 농민을 단순한 데이터 제공자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더 나은 판단과 더 높은 소득으로 이어져야 한다. 농업의 AI 전환은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적 기회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농업용 로봇과 드론은 단순한 농기계 시장이 아니다. 센서와 배터리, 통신과 자율주행, 정밀제어와 클라우드, AI 모델과 정비 서비스가 결합된 종합 산업이다. 한국이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을 농업 현장과 제대로 연결한다면 새로운 수출 산업으로 키울 수 있다. 고령화와 농업 인력난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과 유럽, 중국과 동남아 역시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한국 농촌에서 검증된 AI 농업 모델은 해외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을 수 있다. 다만 농촌을 기술의 실험장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농민은 신기술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실패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조심한다. 한 해 농사를 망치면 다시 기회를 얻기 어렵다. 로봇이 멈추고 드론이 사고를 내고 AI 판단이 빗나가면 피해는 농민이 떠안게 된다. 그래서 AI 농업에는 성능 검증과 보험, 사고 책임, 사후관리, 교육 체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기술이 농민을 설득하려면 먼저 농민의 위험을 줄여줘야 한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협의체를 만들고 연구개발비를 지원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표준을 만들고 중소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시장을 열어야 한다. 작은 농가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보급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 대학과 연구기관은 논문보다 현장 성과로 평가받아야 하고, 기업은 시연 영상보다 농민의 노동을 얼마나 줄였는지로 평가받아야 한다. AI 농업의 성패는 행사장의 박수가 아니라 논밭의 변화로 판단해야 한다. 농촌 고령화는 더 이상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다. 식량 안보와 지역경제, 국가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 문제다. 그런 점에서 농업용 로봇·드론 협의체 출범은 단순한 기술 개발 사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중요한 것은 협의체의 이름이 아니다. 실제 농민의 노동을 얼마나 덜어줄 수 있는지, 소규모 농가도 부담 없이 활용할 수 있는지, 고장이 나면 즉시 지원받을 수 있는 체계를 갖출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기술은 결국 현장에서 증명돼야 한다. AI와 로봇은 농민을 대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더 오래, 더 안전하게, 더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다. 농업의 미래 역시 사람을 지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한계를 보완하는 데 있다. 농촌은 피지컬 AI가 가장 먼저 가치를 입증해야 할 현장이다. 흙 위에서 검증되지 못한 기술은 산업이 될 수 없다. 농업의 미래는 흙을 떠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흙 위에 지능을 더하는 데 있다.
2026-06-23 13: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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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정비사업 동의서부터 총회까지 전자화…사업기간 단축 추진
[경제일보] 서울시가 재개발·재건축 사업 절차를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해 정비사업 기간 단축에 나선다. 그동안 현장에서 직접 진행하거나 서면으로 처리하던 동의서 징구와 총회 의결 절차를 전자서명, 전자투표, 온라인총회로 확대해 조합의 비용 부담과 사업 지연 요인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서울시는 올해 재개발·재건축 조합의 전자투표·온라인총회 비용 지원을 확대하고 사업 초기 단계에서 동의서를 전자방식으로 받는 ‘전자서명동의 지원사업’을 새롭게 추진한다고 22일 밝혔다. 시는 이날부터 ‘2026 정비사업 전자투표·온라인총회 활성화 사업’에 참여할 조합을 모집한다. 이 사업은 재개발·재건축 조합이 총회 과정에서 전자투표와 온라인총회를 도입할 수 있도록 시행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다. 지난해에는 시행 비용의 최대 50%, 구역당 최대 1000만원을 지원했다. 올해는 3년 내 착공이 가능한 사업장을 중심으로 지원 범위를 넓힌다. 서울시가 선정한 핵심공급 전략사업 85곳 가운데 조합이 구성된 70곳과 시·구 공정촉진회의를 통해 2026~2028년 사이 착공이 가능한 곳으로 관리 중인 조합에는 전자총회 보조금을 전액 지원할 예정이다. 앞서 시는 2031년까지 31만호 착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난 2월 3년 내 착공 가능한 85개 구역, 8만5000호 규모를 핵심공급 전략사업지로 선정해 관리하고 있다. 전자총회 지원을 이들 사업장에 집중해 공급 효과가 큰 구역의 절차 지연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핵심공급 전략사업이 아닌 조합도 기본적으로 시행 비용의 50%를 지원받을 수 있다. 전자방식을 처음 활용하거나 중요 안건을 처리하는 경우, 참석수당을 지급하지 않거나 홍보요원(OS)을 활용하지 않는 등 비용 절감 노력이 인정되면 지원 비율은 최대 100%까지 올라간다. 전자투표와 온라인총회를 함께 활용하면 조합원 1000명 기준 최대 176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전자투표·온라인총회 지원사업에 참여한 조합에서 비용 절감 효과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총회 비용이 최대 53% 줄었고 총회 사전투표 기간은 기존 약 4주에서 평균 13일로 단축됐다는 것이다. 전자투표 참여율은 평균 56.3%를 기록해 조합원 절반 이상이 전자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면결의서 제출 비율도 크게 낮아졌다. 기존 평균 64.5%였던 서면결의서 제출 비율은 15.8%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등기우편 발송과 서류 접수, 개표 등에 필요한 인력과 시간이 줄어 조합 운영 부담도 낮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사업 초기 단계의 동의서 징구 절차도 전자화된다. 서울시는 ‘정비사업 전자서명동의 지원사업’을 새로 추진해 추진주체가 입안요청 또는 입안제안 동의서를 전자서명 방식으로 받을 수 있도록 추진한다. 선정된 대상지는 전자서명동의 시스템 구축과 운영, 토지등소유자 전자명부 구축, 동의서 제출·집계·보관, 실시간 동의율 모니터링 서비스를 제공 받는다. 지원 대상은 신속통합기획 재개발·재건축과 공공재개발·재건축 추진 지역이다. 서울시는 자치구 추천을 받은 대상지 가운데 총 8개 구역을 선착순으로 선정할 계획이다. 추진주체가 별도로 신청하는 방식은 아니며 자치구가 추진주체의 참여 의사를 확인한 뒤 선정기준을 충족하는 대상지를 시에 추천한다. 최진석 서울시 주택실장은 “올해 전자서명동의와 전자투표·온라인총회 지원을 확대하겠다”며 “전자방식으로 동의서 확보부터 총회 의결까지 소요되는 기간을 단축하고 3년 내 착공 가능 조합을 중심으로 사업 추진 속도를 높여 안정적인 주택 공급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2026-06-22 09: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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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금리 인상, 한국 경제에 던진 세 가지 경고
[경제일보] 일본은행이 움직였다. 16일 일본은행은 단기 정책금리를 0.75%에서 1.0%로 0.25%포인트 올렸다. 1995년 이후 31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결정 배경은 분명하다. 미국·이란 전쟁이 남긴 에너지 가격 충격, 호르무즈 해협 불안, 공급망 훼손, 그리고 기업 간 가격 전가가 소비자물가로 번질 가능성이다. 일본은행이 중동발 인플레이션 위험과 엔화 약세를 금리 인상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전쟁은 총성과 함께만 오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유조선 항로로 오고 해상보험료로 오고 원유 선물 가격으로 오며 중앙은행 회의장 의사봉 소리로 온다.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완화되고 유가가 하락했다는 소식도 있지만 그것이 곧 물가 위험의 종료를 뜻하지는 않는다. 실제 브렌트유가 배럴당 78.96달러까지 떨어졌지만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공급 정상화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문제는 일본의 금리 인상이 일본만의 선택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에는 적어도 세 가지 경고가 담겨 있다. 첫째는 환율 경고다. 둘째는 물가 경고다. 셋째는 금리 경고다. 그동안 한국은 미국 금리와 달러 흐름에 주로 신경을 써왔다. 그러나 일본이 저금리 시대의 끝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동아시아 자금 흐름도 달라진다. 엔화 금리가 오르면 엔 캐리 트레이드의 매력은 약해진다. 낮은 금리의 엔화를 빌려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던 돈의 일부는 되돌아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신흥시장 통화와 주식, 채권은 변동성을 맞는다. 원화도 예외가 아니다. 물론 일본 금리 1.0%는 여전히 미국이나 한국보다 낮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절대 수준보다 방향이다. 일본은행이 “더 이상 무제한 완화의 시대에 머물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낸 순간, 시장은 일본 자금의 귀환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한다. 한국 채권시장에는 장기금리 상승 압력으로, 주식시장에는 외국인 수급 불안으로, 외환시장에는 원·엔, 원·달러 변동성 확대로 나타날 수 있다. 물가에도 경고음을 울렸다. 한국은 일본보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낮다고 말하기 어렵다. 원유와 LNG, 석유제품 가격이 오르면 기업 원가가 먼저 오른다. 이어 전기요금, 운송비, 항공료, 식품 가격, 외식 가격으로 번진다. 이미 한국의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1%로 2년여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석유류 가격과 국제항공료 상승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한국은행이 올해 물가 전망을 2.2%에서 2.7%로 올렸고 향후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물가가 무서운 것은 한 번 오르면 제자리로 쉽게 돌아오지 않는 데 있다. 원유 가격이 내려도 물류비와 인건비, 가공비를 거쳐 소비자가격에 붙은 인상분은 남는다. 일본은행이 우려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기업 간 거래에서 시작된 가격 전가가 소비자 단계의 광범위한 품목으로 번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일본은행 결정을 보면 원유 가격 상승이 기업 간 가격 전가를 빠르게 만들고 이것이 소비자물가로 파급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국은행도 같은 길목에 서 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2일 “물가안정에 중점을 두고 늦지 않게 금리를 인상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주요 중앙은행의 긴축 전환은 한국은행의 하반기 금리 결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경고는 정책의 착시다. 유가가 하루 이틀 떨어졌다고 해서 물가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전쟁 프리미엄이 빠지는 속도보다 공급망의 상처가 아무는 속도는 느리다. 에너지 인프라가 손상됐고 보험료와 운임, 재고 확보 비용은 이미 기업 장부에 반영됐다. 유럽중앙은행 인사들도 중동 긴장이 완화된 뒤에도 에너지 가격 압력이 남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경제의 딜레마는 여기서 깊어진다. 금리를 올리면 가계부채와 내수에 부담이 간다. 금리를 묶어두면 물가와 환율이 흔들린다. 한국은 가계부채가 크고 자영업 경기의 회복력도 약하다. 그렇다고 물가를 방치할 수도 없다. 중앙은행이 물가 기대를 놓치면 훗날 더 큰 금리 인상으로 되갚아야 한다. 지금의 0.25%포인트는 고통스럽지만 뒤늦은 1%포인트는 더 잔인하다. 기업에도 메시지는 분명하다. 일본 금리 인상은 단순한 금융 뉴스가 아니다. 에너지 조달, 원자재 재고, 환헤지, 차입 구조, 해외 생산망을 다시 점검하라는 경고장이다. 특히 반도체,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항공, 해운 등 에너지와 환율에 민감한 업종은 ‘전쟁 이후’가 아니라 ‘전쟁의 비용이 장부에 남는 시간’을 봐야 한다. 원가 상승분을 가격에 전가할 수 있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실적 격차도 커질 것이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심성 보조금 경쟁이 아니다. 에너지 취약계층과 물류·운송·중소 제조업에 대한 정밀 지원, 전략 비축, 수입선 다변화, 전력망 투자, 환율 급변 대응 장치가 필요하다. 통화정책이 물가 기대를 붙잡는다면 재정정책은 충격이 가장 약한 곳으로 몰리지 않도록 완충해야 한다. 중앙은행은 브레이크를 밟고 정부는 안전벨트를 채워야 한다. 동양 고전 <춘추좌씨전>에는 ‘안거위사(安居危思)’라는 말이 있다.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지금 한국 경제에 필요한 말이 바로 이것이다. 유가가 조금 내렸다고 안심할 때가 아니다. 일본이 금리를 올렸다는 것은 이웃 나라 중앙은행이 위험을 먼저 본 것이다. 한국이 그 경고를 남의 일로 흘려듣는다면 다음 차례는 원화와 물가와 가계 이자 부담이 될 수 있다. 일본의 금리 인상은 한국 경제에 묻고 있다. 우리는 전쟁이 남긴 비용을 제대로 계산하고 있는가.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는 충분한가. 환율과 자본시장 변동성에 대비하고 있는가. 답은 어렵지 않다. 지금은 낙관보다 대비가 필요한 시간이다. 전쟁보다 무서운 것은 전쟁이 끝났다고 믿는 착각이다.
2026-06-17 17: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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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년 이재명 정부, 이제 청사진은 숫자로 증명해야 한다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내놓은 국정 2년 차 화두는 ‘대체불가 대한민국’이었다.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를 넘어 세계가 꼭 필요로 하는 나라가 되겠다는 선언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현재 한국이 처한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패권 경쟁, 미국발 통상 압박, 중동발 에너지 불안, 저출생과 지역소멸, 부동산 불안, 재정 부담이 한꺼번에 밀려오고 있다. 대통령의 구호가 수사가 아니라 국정의 좌표가 되려면 이제부터는 청사진을 숫자와 실행으로 증명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 1년을 민주주의 위기, 통상·안보 위기, 민생 위기를 헤쳐온 시간으로 규정했다. 국정 2년 차 목표로는 초격차 산업강국, 글로벌 외교·안보 강국, 규범과 규칙이 지켜지는 정상사회, 국민의 목숨을 살리는 정부를 제시했다.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다. 특히 경제정책의 중심을 첨단산업, 국가투자, 에너지 전환, 지역균형, 민생 안정에 두겠다는 구상은 지금 한국 경제가 피할 수 없는 과제와 맞닿아 있다. 문제는 우선순위다. 모든 것을 동시에 하겠다는 정부는 대개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정부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성장의 엔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반도체, AI, 조선, 방산, 배터리, 원전, 전력망, 바이오 등 한국이 비교우위를 가진 분야에 자본과 인재와 규제를 집중해야 한다. 초격차 산업강국은 보조금 구호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세제, 전력과 용수, 인허가 속도, 노동 유연성, 연구개발 인력 공급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이 대목에서 이재명 정부는 중도 실용의 길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성장의 과실을 나누려면 먼저 성장해야 한다. 기업을 압박해 단기 성과를 끌어내는 방식으로는 미래산업 투자가 지속될 수 없다. 반대로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태도도 무책임하다. 정부는 길을 내고, 민간은 달리게 해야 한다. 국가는 전력망과 항만, 데이터센터, 첨단산단,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과감히 투자하되, 민간의 의사결정을 정치 논리로 흔들어서는 안 된다. 민생경제도 마찬가지다. 고물가와 고금리의 상흔은 아직 가계에 남아 있다. 자영업자는 매출보다 비용을 먼저 걱정하고 청년은 일자리보다 주거비에 먼저 눌린다. 이럴 때 정부가 재정을 써야 할 곳은 분명하다. 전 국민을 향한 일회성 지원보다 취약계층, 영세 자영업자, 주거 약자, 저출생 대응, 직업 전환 교육에 정밀하게 써야 한다. 재정은 따뜻해야 하지만 동시에 엄격해야 한다. 빚으로 인기를 사는 정책은 결국 다음 세대의 세금으로 돌아온다. 부동산 정책은 더 냉정해야 한다. 시장을 향해 ‘투기와 전쟁’만 외치면 공급은 얼어붙고, 공급만 외치면 불평등은 커진다. 서울과 수도권의 주거 불안, 지방의 빈집과 소멸 위기는 다른 처방을 요구한다. 핵심은 예측 가능성이다. 세제와 대출, 공급 정책이 정권의 정치 일정에 따라 흔들리면 시장은 정부를 믿지 않는다. 정부가 시장을 이기려 하기보다 시장이 합리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규칙을 세워야 한다. 금융·자본시장 개혁도 국정 2년 차의 중요한 시험대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이려면 말뿐인 밸류업이 아니라 지배구조 개선, 주주권 보호, 불공정거래 엄단, 장기투자 세제 지원이 필요하다. 주가조작과 부동산 범죄를 뿌리 뽑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옳다. 다만 처벌 강화만으로 시장 신뢰가 생기지는 않는다. 예측 가능한 감독, 일관된 법 집행, 기업의 자율과 책임을 함께 세워야 한다. 정치의 정상화도 경제정책의 일부다. 기업은 금리와 환율만 보지 않는다. 정권의 말, 국회의 분위기, 규제기관의 태도, 노사관계의 방향을 함께 본다. 국정이 매일 전쟁처럼 흘러가면 투자는 늦춰진다. 야당과 언론을 설득하지 못하는 경제정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대통령이 말한 ‘정상사회’는 법과 원칙이 상대 진영에만 적용되는 사회가 아니라, 내 편에게도 같은 잣대가 적용되는 사회여야 한다. 동양 고전 <논어>에는 “민무신불립”, 곧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취임 1년을 넘긴 정부에 필요한 것도 결국 신뢰다. 국민은 더 이상 거창한 청사진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물가가 안정되는지, 집값이 예측 가능한지, 일자리가 생기는지, 기업이 투자하는지,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는지를 본다. 국정의 성패는 연설문이 아니라 생활의 체감으로 결정된다. 이재명 정부는 이제 출범기의 명분을 넘어 집권 2년 차의 성과로 평가받는다. ‘대체불가 대한민국’은 좋은 구호다. 그러나 구호는 출발점일 뿐이다. 초격차 산업은 규제개혁과 인재정책으로, 민생 안정은 정밀한 재정과 물가 관리로, 자본시장 개혁은 공정한 룰과 주주 보호로, 정상사회는 법치와 통합의 실천으로 증명돼야 한다. 대통령에게 남은 4년은 길어 보이지만 국정 시간표로는 짧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말이 아니라 더 정확한 실행이다. 이재명 정부가 성공하려면 성장과 분배, 시장과 국가, 개혁과 안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대체불가의 잠재력을 이미 갖고 있다. 정부의 책무는 그 잠재력을 정치의 구호로 소비하지 않고 국민의 삶과 기업의 투자, 국가의 경쟁력으로 바꾸는 일이다.
2026-06-10 17: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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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자산 EV충전소, 블록체인으로 관리한다…LS E-Link·클레버스 실증 추진
[경제일보] 국가자산연구원과 LS E-Link, 클레버스(알만컴퍼니 주식회사)가 국유자산을 활용한 전기차 충전 인프라 운영 데이터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3자 협의체 구성을 추진한다. 공공 자산에 설치된 충전 인프라의 운영 데이터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검증해 향후 보조금 심사와 민간 투자 유치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신뢰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클레버스는 이번 협의체는 LS E-Link 충전 인프라를 대상으로 한 개념검증(PoC)에서 출발한다고 9일 밝혔다. LS E-Link는 실증 대상 충전 인프라와 운영 데이터를 제공하고 충전 디바이스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해시값 기반 구조로 전환해 블록체인과 연계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를 통해 충전량, 운영 이력, 설비 상태 등 주요 데이터의 변경 여부와 정합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검증 체계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개별 시스템에 분산돼 있던 운영 데이터를 단순 수집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시값 기반 검증 구조와 API 연동 체계를 통해 보다 신뢰도 높은 형태로 관리하겠다는 설명이다. 국가자산연구원은 해당 데이터를 통합 백오피스에서 일관된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할 계획이다. 특히 프로젝트별 API를 국가자산연구원이 각각 제공받는 방식이 아니라 클레버스가 프로젝트별 API를 통합 플랫폼에 표준화해 연동하는 구조로 설계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국가자산연구원은 이번 협업을 통해 국유자산 활용 사업의 관리 기반을 고도화한다는 방침이다. 충전 인프라 운영 데이터가 검증 가능한 형태로 축적될 경우 지자체 지원금, 공공 보조 사업 심사, 민간 투자 유치 과정에서 보다 공신력 있는 근거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LS E-Link 입장에서는 검증된 운영 데이터 기반의 충전 인프라 레퍼런스를 확보하는 의미가 있다. 전기차 충전 사업은 설치 규모뿐 아니라 운영 안정성과 데이터 신뢰성이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공공 부지와 국유자산을 활용한 충전 인프라는 투명한 관리 체계가 사업 확장의 전제 조건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클레버스는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블록체인 기반 물리 인프라 데이터 검증 모델을 전기차 충전 분야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회사 측은 향후 IC칩과 NFC칩 기반 물리 자산 관리 기술까지 연계해 실제 설비와 디지털 데이터가 연결되는 분산형 물리 인프라 네트워크, 이른바 DePIN 영역으로의 확장 가능성도 검토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 시장은 양적 보급을 넘어 운영 품질과 데이터 신뢰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 충전기가 얼마나 많이 설치됐는지뿐 아니라 실제 얼마나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어떤 데이터로 성과를 입증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지는 단계다. 공공 자산을 활용한 사업일수록 데이터의 투명성은 보조금과 투자, 이용자 신뢰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김수욱 국가자산연구원 원장은 “이번 협의체 구성은 자산의 디지털화와 효율적 활용을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라며 “그동안 개별적으로 관리되던 자산 활용 데이터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함으로써 민간 협력 사업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자산 가치를 정밀하게 모니터링할 수 있는 표준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신뢰도 높은 공신력 있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향후 공공 보조 사업이나 민간 투자 유치 등 다방면에서 국가자산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실증의 성패는 기술 적용 자체보다 현장에서 검증 가능한 데이터 체계가 실제 행정과 투자 판단에 쓰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국유자산은 국민 모두의 자산이고, 그 위에서 만들어지는 민간 사업의 성과 역시 투명하게 설명돼야 한다. 충전 인프라 데이터가 신뢰의 언어로 정리될 때 공공 자산 활용 사업도 단순 임대와 설치를 넘어 새로운 국가 자산 경영의 영역으로 들어설 수 있다.
2026-06-09 19:5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