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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전 의원 장남, 8억6700만원 배상 확정…14억원대 투자사기
[경제일보] 태영호 전 국민의힘 의원의 장남 태모씨를 둘러싼 가상자산 투자금 분쟁이 민사와 형사 절차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민사 사건에서는 피해자에게 투자금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확정됐고, 형사 사건에서는 지인들을 상대로 한 14억원대 투자사기 혐의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부장판사 김석범)는 피해자 A씨가 태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태씨는 A씨에게 8억6700여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태씨 측이 항소하지 않으면서 이 판결은 지난달 24일 확정됐다. 민사 사건의 핵심은 A씨가 지난해 5월 태씨의 스테이블코인 환전 사업 제안을 믿고 11억원 상당의 현금과 가상자산을 건넸다는 점이다. 법원이 인정한 배상액은 A씨가 투자금 가운데 일부를 이자 명목 등으로 돌려받은 점을 반영한 금액이다. 재판 과정에서는 태씨가 자신의 가족관계를 투자 권유 과정에서 활용한 정황도 드러났다. 판결문 등에 따르면 태씨는 피해자가 투자 여부를 망설이자 가족관계증명서와 가족사진을 제시하며 자신이 태영호 전 의원의 아들임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경찰 인맥을 언급하며 사업의 안정성을 강조한 정황도 판결문에 적시됐다. 재판부는 이러한 행위가 A씨의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태씨가 자신의 사회적 배경과 인맥을 내세워 신뢰를 형성했고, 그 결과 A씨가 투자금 이체와 가상자산 전송을 했다는 취지다. 별도로 진행 중인 형사 사건의 범위는 더 넓다.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는 지난 5월 태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태씨가 가상자산에 대신 투자해 수익을 내주겠다고 제안한 뒤 지인 7명으로부터 약 14억원을 받아 실제로는 투자하지 않고 편취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는 피해 규모가 16억원대로 거론됐으나 검찰은 보강 수사를 거쳐 약 14억원 규모의 혐의로 기소했다. 한편 이번 사건은 A씨가 제기한 민사 손해배상 사건과 복수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형사 사건으로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민사는 이미 8억6700여만원 배상 판결이 확정됐고, 형사는 태씨의 사기 혐의 성립 여부와 형사 책임을 가리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가상자산 투자 과정에서 투자 대상의 실체나 자금 운용 구조보다 개인의 신분과 인맥에 의존한 투자가 얼마나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고수익 약속이나 사회적 배경만으로 투자 여부를 결정하기보다 계약 구조와 자금 흐름, 실제 사업 내용 등을 면밀히 검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2026-07-05 16:45:00
대법 "아이언메이스 넥슨 영업비밀 침해"... 57억6464만원 배상 확정
[경제일보] 게임 업계를 뒤흔들었던 '다크앤다커' 분쟁이 마침표를 찍었다. 대법원은 개발 과정에서 원저작권자의 영업비밀을 침해한 사실은 분명히 인정했으나 이를 별개의 새로운 저작물로 바라보는 묘한 균형점을 택했다. 기술 유출에 대한 경종을 울리면서도 장르적 유사성이라는 저작권의 좁은 문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판결이다. 대법원 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30일 넥슨코리아(대표 강대현 김정욱)가 아이언메이스(대표 박승주)와 최주현 이사 등을 상대로 낸 영업비밀 및 저작권 침해금지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의 배상 판결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아이언메이스 측은 넥슨에 57억6464만원을 지급해야 한다. 2021년 시작된 양측의 법정 공방은 넥슨의 판정승이자 아이언메이스의 실리 확보라는 복합적인 결과로 귀결됐다. 사건의 발단은 넥슨의 신규 개발 프로젝트였던 'P3'였다. 당시 팀장이었던 최 씨가 소스 코드와 데이터를 개인 서버로 유출했고 이를 기반으로 아이언메이스를 설립해 다크앤다커를 출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법원은 1심부터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최 씨가 넥슨의 유무형 자산을 무단으로 사용해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점을 일관되게 인정했다. 다만 배상액은 1심 85억원에서 2심과 대법원을 거치며 실제 피해 규모를 산정한 57억여원으로 조정됐다. 흥미로운 대목은 저작권 침해에 대한 판단이다. 대법원은 1·2심과 마찬가지로 다크앤다커가 넥슨의 P3와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저작권 침해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게임 산업에서 '아이디어'와 '표현'의 경계를 가르는 사법부의 엄격한 잣대를 재확인한 것이다. 데이터와 개발 로직을 훔친 행위는 불법이지만 그 결과물로 나온 게임의 구체적인 구현 방식이 저작권을 침해할 만큼 똑같지는 않다는 논리다. 이번 판결은 국내 게임 생태계에 중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우선 개발 인력의 이직과 독립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유출'에 대해 사법부가 명확한 배상 책임을 물음으로써 기업 자산 보호의 법적 근거를 강화했다. 반면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장르적 특성이나 게임의 기본 골격에 대한 독점적 권리 주장은 여전히 어렵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넥슨으로서는 자산 탈취의 부당성을 인정받았으나 아이언메이스의 게임 서비스를 원천적으로 막지는 못한 셈이다. 싸움은 끝났지만 상처는 깊다. 창작자의 윤리와 기업의 보안 그리고 장르의 도용을 둘러싼 논쟁은 이제 법정을 넘어 시장의 몫으로 넘어왔다. 이번 대법원 판단은 기술을 훔쳐서라도 성공만 하면 그만이라는 비뚤어진 능력주의가 팽배해질지 영업비밀의 특정과 영업비밀 침해행위의 판단 기준을 제기한 판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2026-04-30 10:49:26
차값 뛰자 보험도 바뀌었다…운전자 절반은 '10억 대물' 선택
[경제일보] 해마다 차량 가격이 오르면서 자동차보험 가입자들이 더 높은 보장 한도를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비대면 채널과 각종 할인 특약을 활용하는 가입도 빠르게 늘고 있다. 22일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전기차와 수입차 비중 확대에 따라 평균 차량 가격이 상승하면서 자동차보험 가입 행태도 달라지고 있다. 신차 기준 개인용 자동차 평균 가액은 2023년 4847만원에서 2024년 5026만원, 지난해 5243만원으로 꾸준히 올랐다. 차량 가격 상승은 사고 발생 시 배상액과 수리비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이에 따라 가입자들은 보장 한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자동차보험 가입자의 85%는 대물배상 한도를 3억원 이상으로 설정했다. 대물배상은 사고로 상대 차량이나 재산에 손해를 입혔을 때 보상하는 담보다. 특히 10억원 이상 고액 구간 가입 비중이 51%를 차지했다. 내 차량 수리비를 보상받는 자기차량손해 담보 가입률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전체 가입률은 85.8%로 집계됐다. 업계는 이런 고보장 선호 현상의 배경으로 수리비 상승을 꼽는다. 관세와 부품비, 정비 공임 인상 등이 겹치면서 사고 한 번의 부담이 커졌고 이를 보험으로 대비하려는 수요가 늘었다는 설명이다. 보험 가입 방식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설계사를 거치지 않고 소비자가 직접 온라인이나 모바일로 가입하는 비대면 채널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대면 채널보다 보험료가 평균 19% 저렴한 CM 채널 가입률은 지난해 51.4%를 기록했다. CM은 사이버마케팅의 약자로 온라인·모바일 중심 비대면 가입 방식을 뜻한다. 2021년 처음 대면 채널을 넘어선 뒤 꾸준히 비중을 키우며 주력 판매 창구가 됐다. 연령별로는 30대의 CM 채널 가입률이 69.1%로 가장 높았다. 60세 이상 고령층도 36.3%를 기록해 기존 대면 채널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비대면 가입 흐름이 특정 세대에 그치지 않고 전 연령대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다만 소비자가 직접 가입하는 만큼 운전자 범위와 보상 한도, 특약 조건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험료를 아끼는 것만큼 필요한 보장을 챙기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할인 특약 활용은 더 활발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상품은 주행거리 특약이다. 연간 주행거리가 짧을수록 사고 위험이 낮다고 보고 보험료 일부를 돌려주는 제도다. 주행거리 특약 가입률은 88.4%에 달했다. 가입자의 66%는 환급 기준을 충족해 1인당 평균 13만3000원을 돌려받았다. 환급 규모는 전체 거수보험료의 10.2% 수준으로 집계됐다. 거수보험료는 보험사가 가입자로부터 받은 전체 보험료를 뜻한다. 첨단안전장치 할인도 확대되고 있다. 긴급제동장치와 충돌경고장치 장착 차량은 지난해보다 17.1% 늘었고 차선 유지 및 경고장치 장착 차량도 15.5% 증가했다. 이 같은 안전장치 확산은 실제 사고율 감소로 이어졌다. 사고율은 2019년 17.4%에서 2020년 14.9%, 지난해 14.5%로 낮아졌다. 사고 이력에 따라 보험료를 조정하는 할인·할증 제도에서도 안전 운전자 비중이 커졌다. 개인용 자동차보험 할인등급자 비중은 89.5%로 전년보다 0.6%포인트 상승했다. 할인·할증 등급이 개선된 가입자는 전체의 60.9%였다. 각종 할인 제도가 확대되면서 실제 보험료 부담은 낮아졌다. 올해 평균 개인용 자동차보험료는 지난해보다 2.3% 하락한 69만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허창언 보험개발원장은 “유가 상승으로 차량 운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주행거리 특약을 활용하면 유류비 절감과 함께 보험료 환급 혜택도 누릴 수 있다”며 “앞으로도 소비자 수요에 맞춘 보장과 비용 효율성을 함께 고려한 상품 개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2026-04-22 15:27:53
스마일게이트, 1000억대 IPO 소송 1심 패소… '로스트아크' 성공이 부메랑으로
[경제일보] ‘로스트아크’의 대성공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던 스마일게이트가 기업공개(IPO)를 둘러싼 1000억원대 민사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은 2일, 라이노스자산운용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스마일게이트가 원고 측에 1000억원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상장 의무 발생 여부’를 두고 벌인 3년간의 법적 공방에서 스마일게이트의 ‘회계적 논리’가 재판부를 설득하지 못한 결과다. 이번 소송의 발단은 2017년 라이노스자산운용이 스마일게이트의 전환사채(CB) 200억 원어치를 매입할 당시 맺은 ‘IPO 추진 조건’이다. 계약에는 “스마일게이트의 직전 사업연도 당기순이익이 120억원을 넘을 경우 상장을 추진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이후 ‘로스트아크’가 글로벌 시장에서 폭발적인 흥행을 거두며 회사의 순이익이 급증하자, 라이노스 측은 당연히 상장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문제는 스마일게이트의 회계 처리 방식이었다. 스마일게이트는 발행했던 CB를 2021년 결산 과정에서 ‘자본’이 아닌 ‘부채’로 재분류했다. 이로 인해 서류상 1426억원의 당기순손실이 발생했고 회사는 “이익 요건(120억원)을 충족하지 못했으니 상장 의무도 소멸했다”고 맞섰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순환 논리에 빠진 억지’라고 일축했다. 재판부는 “실적이 좋아지면 부채 평가손실이 커져 순이익이 줄고 상장 의무가 소멸하면 다시 부채로 잡지 않는 논리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며 스마일게이트의 주장을 기각했다. 2021년 실제 당기순이익은 2289억원으로 상장 요건을 충분히 충족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업계에서는 스마일게이트가 1000억원의 배상금을 물게 되면서까지 상장을 피하려 했던 이유에 주목한다. 스마일게이트는 창업주인 권혁빈 의장의 지배력이 절대적인 기업이다. IPO를 하게 되면 경영 투명성 강화와 더불어 외부 주주들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넷마블, 크래프톤 등 주요 게임사들이 상장 이후 주가 변동성으로 인해 경영진이 곤욕을 치르는 사례를 보면서 스마일게이트는 ‘현금 창출 능력’이 확실한 상황에서 굳이 시장의 평가를 받으며 경영 자율성을 훼손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은 이러한 ‘오너십 중심의 경영’과 ‘투명한 상장 의무’ 사이의 간극이 법적 분쟁으로 폭발한 사례다. 스마일게이트는 즉각 항소 의지를 밝혔다. 법리적 판단을 면밀히 검토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지만 1심 판결에서 ‘상장 의무 소멸 주장이 신의칙에 반한다’는 강력한 문구가 포함된 점은 항소심에서도 부담이다. 만약 항소심에서도 패소할 경우 스마일게이트는 10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해야 하며 이는 그룹 전체의 재무 구조와 향후 신작 개발 투자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신뢰’다. 투자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통해 스마일게이트가 계약을 회피하기 위해 무리한 회계 처리를 했다는 이미지가 고착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는 향후 스마일게이트가 외부 자금을 조달하거나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을 때 ‘리스크 프리미엄’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비상장사들이 성장 단계에서 흔히 겪는 ‘IPO 딜레마’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회사가 급성장하면 과거에 맺은 투자 계약이 ‘경영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한편 스마일게이트는 ‘로스트아크’의 성공으로 글로벌 게임사로 도약했지만 이제는 ‘기업 지배구조와 주주 가치’라는 두 번째 난관에 봉착했다. 1000억원이라는 배상액은 스마일게이트의 전체 규모에 비하면 치명타는 아닐지라도 그들이 잃게 될 ‘시장과의 신뢰’를 어떻게 복구할 것인지는 항소심을 넘어선 장기적인 숙제가 될 전망이다. 향후 법정 공방의 결과에 따라 스마일게이트의 상장 추진 여부가 다시 한번 재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것이다.
2026-04-02 15:48:35
대법, KT 전 경영진에 '감시 의무' 철퇴… "몰랐어도 책임, 반환했어도 유죄"
[경제일보] 황창규 전 KT 회장과 구현모 전 대표가 재임 시절 발생한 이른바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 사건과 관련해 회사에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왔다. 1·2심의 무죄 취지 판결을 뒤집은 이번 파기환송은 기업 경영진의 '감시 의무'를 대폭 강화한 판례로 향후 재계의 컴플라이언스(준법경영) 시스템에 적잖은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2일 KT 소액주주 35명이 황 전 회장 등 전직 경영진 11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작동하도록 배려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이사로서의 임무 해태를 명확히 지적했다. ◆ 1·2심 뒤집은 핵심 법리...'결과적 회수' vs '절차적 위법' 이번 소송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경영진이 실무진의 불법 행위(상품권 깡을 통한 비자금 조성)를 구체적으로 지시하거나 알지 못했더라도 책임을 져야 하는가. 둘째, 조성된 비자금 중 정치자금으로 쓰인 돈이 나중에 회사로 반환됐다면 손해가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는가였다. 1·2심 재판부는 경영진의 손을 들어줬다. 황 전 회장이 구체적으로 지시한 증거가 없고 구 전 대표 역시 정치자금법 위반은 인정되나 해당 금액이 회사로 반환돼 실질적인 손해가 없다고 봤다. 즉 '몰랐거나', '돈을 채워 넣었으면' 면책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대법원의 시각은 달랐다. 대법원은 상법 제393조에 근거한 이사의 '감시 의무'를 엄격하게 해석했다. 재판부는 "대표이사와 이사는 회사의 업무 집행이 적법하게 이뤄지도록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감시할 의무가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황 전 회장과 구 전 대표는 상품권 현금화를 통해 거액의 부외자금(비자금)이 조성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통제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았고 운영 실태를 점검조차 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즉 구체적인 불법 행위를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이를 걸러낼 시스템을 만들지 않고 방치한 것 자체가 '임무 해태'라는 것이다. 또한 손해 범위에 대해서도 정치권에 건네진 후 반환된 돈(약 4억원) 외에 상품권 깡 과정에서 수수료로 증발하거나 용처가 불분명한 나머지 비자금(총 11억원 중 잔여분)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 '무궁화위성·미르재단'은 면책…정치적 판단과 경영 판단의 경계 다만 대법원은 소액주주들이 제기한 다른 의혹들에 대해서는 원심의 기각 판결을 유지했다. 무궁화위성 3호 헐값 매각 논란이나 미르재단 출연금 지원 등은 경영상의 판단이거나 구체적인 임무 해태를 증명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사법부가 경영진의 배임 책임을 물을 때 '명백한 불법 행위(정치자금법 위반)'와 '정책적·경영적 판단'을 구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비자금 조성과 같은 명백한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감시 소홀의 책임을 엄중히 묻되, 경영상 의사결정의 영역은 존중한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사건은 다시 수원고법으로 넘어갔다. 파기환송심의 핵심은 '배상액 산정'이 될 것이다. 대법원이 구 전 대표뿐만 아니라 황 전 회장의 감시 의무 위반까지 인정함에 따라 이들이 연대하여 배상해야 할 금액이 수십억원대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조계는 이번 판결이 '주주 행동주의'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이사의 감시 의무를 좁게 해석해 경영진이 면죄부를 받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번 판결로 소액주주들이 경영진의 부실한 내부통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무기가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한 기업법 전문 변호사는 "과거에는 '실무진이 알아서 했다'는 꼬리 자르기가 통했지만 이제는 대표이사가 시스템 미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시대가 됐다"며 "금융사뿐만 아니라 일반 대기업들도 내부 준법감시 조직의 권한을 대폭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KT 내부적으로도 이번 판결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KT는 차기 대표 선임을 앞두고 지배구조 개선에 한창이다. 과거 경영진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된 만큼 차기 경영진은 투명한 자금 집행과 컴플라이언스 강화라는 무거운 숙제를 안고 출범하게 됐다. 결국 대법원은 "눈을 감고 있는 선장도 침몰의 책임이 있다"는 준엄한 원칙을 확인했다. 이번 판결은 KT를 넘어 대한민국 재계 전체에 '내부통제 리스크'를 다시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2026-03-02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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