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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정치, 파탄의 의회주의… '도(道)'를 잃은 국회에 고함
[경제일보] 대한민국 국회가 길을 잃었다. 갈등은 민주주의의 숙명이지만, 지금 국회에서 벌어지는 모습은 건강한 경쟁이 아니라 정치의 자기 파괴에 가깝다. 대화는 실종되고 타협은 조롱받으며, 상대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규정된다. 의회는 민의를 수렴하는 광장이 아니라 다수의 힘과 소수의 저항이 충돌하는 전쟁터로 변질되고 있다. 이는 특정 정당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의회민주주의 전체가 맞닥뜨린 심각한 위기다. 최근 국회 원 구성 과정에서 나타난 다수당의 일방적 강행 처리와 입법 독주, 이에 맞선 소수당의 무기력한 저항은 우리 정치가 의회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인 대화와 절제, 타협을 잃어버렸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수는 숫자의 우위를 절대 권력으로 착각하고, 소수는 국정 운영의 동반자가 아니라 발언권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 협치는 사라지고 힘만 남았다. 숫자가 정의를 대신하고, 권력이 상식을 밀어내는 순간 민주주의는 이미 병들기 시작한다. 특히 필리버스터마저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깊은 우려를 자아낸다. 필리버스터는 단순한 시간 끌기가 아니다. 다수결이 놓칠 수 있는 소수의 목소리를 국민에게 끝까지 전달하기 위한 민주주의의 마지막 안전장치다. 토론이 귀찮다고 토론을 없애고, 반대 의견이 불편하다고 침묵을 강요하는 국회라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다수의 지배일 뿐이다. 효율은 행정의 가치일 수 있지만, 민주주의의 가치는 숙의와 합의에 있다. 역사는 오만한 권력이 오래가지 못했음을 반복해서 증명해 왔다. 성경 잠언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경고한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고 민심은 숫자로 계산되지 않는다. 오늘 절대다수의 의석을 가진 정당도 내일은 국민의 심판 앞에 설 수 있다. 민심은 배를 띄우는 물이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는 거센 파도가 되기도 한다. 노자는 『도덕경』 제9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득 채우고 또 채우는 것은 적당한 때에 멈추는 것만 못하며, 지나치게 날카롭게 갈면 오래 보존할 수 없다." 오늘의 국회는 바로 이 경고를 되새겨야 한다. 다수당은 의석을 끝까지 채우려 하고, 야당은 상대를 겨누는 창끝만 더욱 날카롭게 벼른다. 그러나 지나친 것은 반드시 모자람만 못하다. 힘은 절제될 때 권위가 되고, 권력은 양보할 때 존경을 얻는다. 끝없이 채우려는 욕망은 결국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민주주의는 100 대 0의 승부가 아니다. 서로 다른 이해와 가치를 조정하여 국민 전체의 이익을 찾는 과정이다. 51 대 49로 결정되더라도 나머지 49를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며, 다수는 소수를 품을 때 비로소 정당성을 얻는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원칙이지만, 다수의 횡포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국회의 존재 이유도 법안을 빨리 처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토론하고 설득하며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토론 없는 국회는 거수기에 불과하고, 협치 없는 의회는 민주주의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은 국회가 싸우라고 권력을 준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한을 위임했다. 오늘날 정치권이 가장 크게 잃어버린 것은 상대를 인정하는 마음이다. 정당은 경쟁하지만 국가는 공동체다. 여야는 선거에서는 경쟁자일지라도 국정에서는 동반자여야 한다.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순간 정치의 본질은 사라지고 적대만 남는다. 소수당 역시 국민이 선택한 헌법기관이다. 그들의 권한을 무력화하는 것은 그들을 지지한 국민의 목소리를 지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제 국회는 정치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첫째, 여야가 참여하는 상설 협치협의체를 제도화해 원 구성과 주요 법안은 충분한 협의를 거친 뒤 처리하는 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 둘째, 필리버스터와 상임위원회 토론권 등 소수 의견을 보장하는 제도를 정치적 편의에 따라 훼손해서는 안 된다. 셋째, 다수당은 숫자의 힘보다 책임의 무게를 먼저 생각하고, 소수당 역시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는 책임 있는 야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넷째, 국회의원 개개인은 당리당략보다 헌법과 국민을 우선하는 의회주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국회에 부여한 책무다. 맹자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고 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이 말은 더욱 절실하다. 국민 위에 정당이 있을 수 없고, 국민 위에 국회도 있을 수 없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잠시 위임받은 것일 뿐이다.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대결보다 대화를, 독주보다 협치를, 승리보다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의회주의는 힘이 아니라 절제에서 완성되고,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에서 꽃핀다. 지금 국회가 되찾아야 할 것은 더 많은 권력이 아니라 더 깊은 겸손이며,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넓은 포용이다. 대한민국 정치는 지금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오만과 독선의 길을 계속 걸을 것인가, 아니면 상식과 협치의 길로 돌아갈 것인가. 역사는 언제나 힘보다 품격을 기억했고, 국민은 언제나 권력보다 책임을 선택했다. 국회는 이제라도 '도(道)'를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무너져가는 의회주의를 살리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2026-07-03 16: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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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의 잔인한 48시간, '책임'에 분노하고 '헌신'에 눈물짓다
[경제일보]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은 한국 스포츠의 영욕(榮辱)이 가장 날것의 형태로 교차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거대한 환호와 꽃다발이 쏟아지는 날이 있는가 하면, 날 선 비판과 엿사탕이 바닥을 뒹구는 잔인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2026 북중미 월드컵 32강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아 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순차적으로 입국한 지난 이틀이 그랬다. 월요일 새벽의 공항은 날 선 분노로 가득 찬 ‘아수라장’이었고, 이튿날인 화요일 새벽은 눈물 어린 위로가 감싼 ‘치유의 장’이었다. 단 24시간의 시차를 두고 벌어진 이 극명한 반전은, 지금 한국 축구 팬들이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을 갈망하는지를 보여주는 엄중한 메시지다. 월요일의 아수라장은‘과정의 불통’과 ‘실패의 책임’에 던진 야유 지난 월요일(6월 30일) 새벽 3시 40분,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입국 게이트의 공기는 얼어붙어 있었다. 현지에서 전격 사퇴를 발표한 홍명보 감독과 박항서 국가대표 지원단장, 그리고 일부 선수단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고성과 야유가 입국장을 사정없이 때렸다. 새벽 시간임에도 현장을 찾은 수백 명의 팬들은 "홍명보 나가라!", "축협 해체"를 연호했다. 일부 팬들은 비난의 문구가 적힌 팻말을 흔들며 분통을 터뜨렸고, 공항 경비 인력들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몸으로 방어벽을 쳐야 할 만큼 현장은 난장판 그 자체였다. 별도의 귀국 행사도 없이, 홍 감독은 쫓기듯 공항을 빠져나갔다. 2002 한일 월드컵의 영웅이자 한국 축구의 굵직한 궤적을 함께해 온 거장이 마주하기엔 너무나도 잔인한 귀국길이었다. 팬들이 홍명보 감독과 대한축구협회 수뇌부를 향해 이토록 격렬한 분노를 쏟아낸 이유는 단지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결과 때문만은 아니다. 선임 과정에서부터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 논란, 소통 없는 독단적 운영, 그리고 본선 무대에서 보여준 무기력한 전술적 졸전까지, 그동안 누적되어 온 ‘불통의 리더십’에 대한 총체적 심판이었다. 팬들은 실패 그 자체보다, 그 실패를 초래한 과정과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던 축구 행정의 오만에 대해 가장 강력한 언어로 항의한 것이다. 화요일의 반전은 고개 숙인 ‘캡틴’을 품어 안은 팬들의 품격 그러나 불과 하루 뒤인 화요일(7월 1일) 새벽,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 풍경은 180도 달랐다.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캡틴인 손흥민을 비롯한 후발대 선수 9명이 입국장에 들어섰을 때, 공항을 채운 것은 야유가 아닌 따뜻한 박수와 격려의 함성이었다. 게이트 주변을 지킨 팬들의 손에는 "평생 가자 손흥민", "고개 숙이지 말아요" 같은 문구가 들려 있었다. 태극마크의 무거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걸어 나오는 선수들을 향해 팬들은 목이 터져라 응원을 보냈다. "고생하셨어요!", "괜찮습니다, 파이팅!" 취재진의 질문에 손흥민은 "죄송하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섰지만, 그의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 묵묵히 팬들에게 사인을 건넨 배준호 등 막내급 선수들의 눈에도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하루 전 홍명보 감독이 마주했던 서슬 퍼런 공기가, 하루 만에 선수들을 위로하는 온기로 바뀐 순간이었다. 팬들은 '실패'가 아닌 '태도'를 본다 상반된 두 장면은 한국 축구 팬들의 성숙함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동시에 무서운 경고장으로 읽힌다. 과거의 팬들은 성적이 나쁘면 감독과 선수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팬들은 ‘책임져야 할 자’와 ‘그라운드에서 피땀을 흘린 자’를 명확히 구분할 줄 안다. 전술 부재와 행정적 과오로 비판받아야 마땅한 수뇌부에게는 가차 없는 회초리를 들지만,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마지막 순간까지 쥐가 나도록 달린 선수들의 ‘헌신’에는 아낌없는 위로를 보낼 줄 아는 품격을 갖춘 것이다. 손흥민은 이번 대회 직후 SNS를 통해 "현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팬들이 나를 필요로 하실 때까지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며 책임감 있는 자세를 보였다. 팬들이 바란 것은 바로 이러한 ‘진정성’과 ‘태도’였다. 인천공항이 보여준 잔인하고도 따뜻했던 48시간의 온도 차는 우리 축구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축구가 이 무서운 민심(民心)을 엄중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적·구조적 인적 쇄신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다음 귀국길에 마주할 분노의 크기는 이번보다 훨씬 더 파괴적일 것이다. 팬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지만, 그들의 인내심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축구협회와 지도자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2026-07-02 10: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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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를 여는 두 바퀴, 지방의 자치와 내각의 협치
7월 1일,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정치적 전환점 앞에 섰다. 전국에서는 민선 9기 지방정부가 일제히 출범했고, 중앙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한성숙 신임 국무총리 임명안을 재가하며 역대 두 번째 여성 총리 체제가 문을 열었다. 지방정부의 출범은 권력의 공간적 분산을 뜻하고, 새 총리의 등장은 행정부 운영의 내실을 다지는 출발점이다. 이 두 흐름은 따로 움직이는 수레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두 바퀴다. 새 출발의 순간에 가장 먼저 새겨야 할 가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기본과 원칙, 그리고 상식이다. 《도덕경》은 “강과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되는 것은 스스로를 낮추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도자의 권위는 높은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흐르는 자세에서 비롯된다. 민선 9기 단체장들과 신임 총리가 가장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권력은 군림의 도구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받드는 책임의 자리다. 지방정부의 과제는 분명하다. 보여주기식 개발과 축제성 행정에서 벗어나 지방자치의 내실을 다지는 일이다. 그동안 적지 않은 지자체가 화려한 공약과 대형 사업을 앞세웠지만, 주민에게 돌아온 것은 늘어난 부채와 인구 소멸의 그림자였다. 《대학》은 “근본이 어지러운데 끝이 다스려지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지방자치의 근본은 주민의 안전, 일자리, 복지, 교육, 의료 같은 생활 행정에 있다. 도로 하나 더 놓는 것보다 청년이 머물 수 있는 일자리 하나를 만드는 일이 더 절실하다. 지역 경제 역시 중앙정부의 지원만 바라보는 의존형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각 지역이 가진 문화, 산업, 지리적 특성을 살려 스스로 먹고사는 힘을 길러야 한다. 농어촌은 미래 식품과 관광 산업으로, 산업도시는 첨단 제조와 연구개발 거점으로, 역사와 문화가 있는 도시는 콘텐츠 산업으로 길을 찾아야 한다. 임기 안에 치적을 남기겠다는 조급증은 경계해야 한다. 한성숙 총리 체제에 대한 기대도 작지 않다. 지금 대한민국은 환율 불안, 고물가, 고금리, 가계부채, 산업 경쟁력 약화라는 복합 위기 속에 있다. 이런 난제는 어느 한 정파의 힘만으로 풀 수 없다. 새 내각이 먼저 보여줘야 할 태도는 협치의 상식이다. 야당과 대화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전문가의 경고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데 그치지 않고 행정 각부를 조율하며 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소통의 창구가 되어야 한다. 특히 한 총리는 여성 총리라는 상징성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자영업자, 청년, 취약계층, 지역 주민의 절박한 목소리를 국정의 중심에 올려놓는 ‘민심의 총리’가 되어야 한다. 강성 지지층이나 정파적 이해에 흔들리지 않고 국민 전체의 상식과 국익을 기준으로 정책을 조율해야 한다. 정치의 본령은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데 있다. 공자는 정치를 두고 “정자정야”, 곧 바르게 하는 일이라고 했다. 바름을 잃은 정치는 권력투쟁으로 전락하고, 상식을 잃은 행정은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 중앙은 지방에 권한을 과감히 이양하되 책임 행정을 요구해야 하고, 지방은 자율성을 남용하지 말고 성과와 투명성으로 답해야 한다. 중앙과 지방은 경쟁자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함께 떠받치는 동반자다. 새로운 시작은 늘 희망과 책임을 동시에 품고 있다. 민선 9기 지방정부와 한성숙 내각이 다투지 않고 오직 민생을 이롭게 하는 정치로 국민 앞에 서기를 바란다. 《도덕경》의 마지막 구절처럼 “하늘의 도는 이롭게만 하고 해치지 않으며, 성인의 도는 행하되 다투지 않는다.” 오늘의 지도자들이 이 말을 가슴에 품고 낮은 곳에서 국민을 섬긴다면, 지방의 자치와 내각의 협치는 대한민국 새 시대를 여는 든든한 두 바퀴가 될 것이다.
2026-07-01 18: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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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김민석, 워크숍서 맞붙은 '원팀론' VS '대통령 중심론'…민주당 전대 전초전 막 올랐다
[경제일보] 더불어민주당 6·3 지방선거 단체장 당선자 워크숍이 차기 당권 경쟁의 전초전으로 변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와 김민석 국무총리가 21일 같은 무대에 올라 이재명 정부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한목소리로 말했지만 메시지의 결은 뚜렷하게 달랐다. 정 대표는 ‘당정청 원팀’과 민심을 앞세웠고, 김 총리는 ‘대통령 중심’과 강한 민주당 재건을 강조했다. 겉으로는 축사였지만 내용상으로는 8·17 전당대회를 겨냥한 노선 경쟁이었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정 대표의 키워드는 안정이었다. 그는 “우리의 목표는 하나”라며 이재명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어 “당정청이 원팀으로 똘똘 뭉쳐 남은 민생·개혁 과제들을 완수하겠다”고 했다. 현 지도부가 지방선거 승리를 이끌었고 이제는 정부와 보조를 맞춰 국정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다. 사실상 연임 도전을 앞둔 대표가 당내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다. ‘지금은 지도부 교체보다 안정적 연속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동시에 몸을 낮췄다. “민심이 천심이고 국민은 언제나 옳다”고 했다. 민주당이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다수 지역을 가져왔지만 서울시장 선거 등 핵심 승부처에서 아쉬움을 남긴 만큼, 승리에 취하기보다 민심의 경고를 읽어야 한다는 태도다. 이는 연임론의 약점을 의식한 발언으로도 읽힌다. 지방선거 전체 판세에선 이겼지만 수도권 핵심 지역과 일부 재보궐 패배는 정 대표 리더십에 대한 평가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반면 김 총리의 메시지는 더 공격적이었다. 그는 현 시점을 “당의 역사적 분기점”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중앙정부가 흔들리면, 대통령이 흔들리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이 발언은 단순한 원팀론을 넘어선다. 민주당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더 강하게 정렬돼야 하며, 당 역시 다시 이기는 체질로 재편돼야 한다는 뜻이다. 당권 경쟁 구도로 옮겨놓으면 김 총리는 ‘관리형 대표’가 아니라 ‘재정비형 대표’의 필요성을 부각한 셈이다. 두 사람의 차이는 지방선거 평가에서도 드러났다. 정 대표는 강원 동해시장 선거 등 민주당의 상징적 승리를 거론하며 “눈부신 선전”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국민이 보내주신 매서운 질책과 비판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승리의 성과를 강조했다. 반면 김 총리는 “좋은 결과를 냈지만 완벽한 승리라고 선언하기 어려운 결과가 있었다”고 했다. 같은 성적표를 두고 정 대표는 ‘성과 속 성찰’을, 김 총리는 ‘승리 속 경고’를 더 크게 본 것이다. 이 차이는 차기 전당대회의 핵심 쟁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이 6·3 지방선거에서 얻은 성과를 현 지도부의 공로로 평가할 것인지, 아니면 서울 등 상징 지역 패배를 계기로 당의 체질 개선을 요구할 것인지가 당권 경쟁의 첫 번째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정 대표가 연임 안정론을 앞세운다면 김 총리는 대통령 중심의 확장·실용·개혁 노선을 내세워 맞설 가능성이 크다. 정 대표에게는 조직과 현직 프리미엄이 있다. 그는 당 대표로서 지방선거를 지휘했고 당내 강성 지지층과 개혁 성향 당원 기반도 탄탄하다. 당정청 원팀론은 현 정부 초기 국정 동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명분과 맞닿아 있다. 다만 대표 연임론에는 피로감과 책임론이 뒤따를 수 있다. 특히 서울시장 패배와 일부 재보선 결과는 “이긴 선거였지만 완승은 아니었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김 총리에게는 대통령과의 호흡, 국정 운영 경험, 확장성이라는 카드가 있다. 그는 이날도 “대통령을 중심으로 당정이 완벽하게 하나 되고 개혁의 DNA를 확고하게 가져야 한다”고 했다. 총리직에서 당으로 복귀할 경우 김 총리는 단순한 도전자가 아니라 이재명 정부의 국정 운영을 가까이서 경험한 ‘국정형 당권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다만 총리 인준 절차와 당 복귀 시점, 당내 조직 기반 확보가 변수다. 이번 워크숍은 민주당 내부 경쟁이 친명 주류 안에서 벌어지는 복합 구도라는 점도 보여줬다. 과거처럼 친명 대 비명, 주류 대 비주류의 단순한 대결이 아니다. 정 대표와 김 총리 모두 이재명 정부 성공을 전면에 내건다. 차이는 ‘누가 더 대통령과 정부를 잘 뒷받침할 수 있느냐’에 있다. 정 대표는 당의 연속성과 현장 조직을, 김 총리는 국정 안정과 당 재정비를 각각 앞세우고 있다. 당권 경쟁이 본격화하면 민주당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집권여당 대표는 단순히 당내 권력의 정점이 아니다. 대통령실과 정부를 뒷받침하면서도, 민심이 어긋날 때는 쓴소리를 해야 한다. 개혁 입법을 밀어붙이되, 시장과 중도층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조율해야 한다. 지방선거 승리 이후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승리의 흥분이 아니라 권력 운영의 절제다. 정 대표와 김 총리의 첫 신경전은 그래서 더 상징적이다. 한쪽은 “민심이 천심”이라며 낮은 자세를 말했다. 다른 한쪽은 “대통령이 흔들리면 안 된다”며 강한 당을 말했다. 두 문장은 모두 맞다. 그러나 집권여당의 다음 대표는 두 문장 중 하나만 선택해서는 안 된다. 민심을 잃은 원팀은 오만이 되고, 대통령만 바라보는 단단함은 폐쇄성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대통령과 따로 가는 당은 국정 동력을 약화시키고, 성찰만 반복하는 당은 집권 능력을 의심받는다. 한 정치컨설팅 전문가는 “8·17 전당대회는 민주당의 내부 권력 경쟁을 넘어 이재명 정부 2년 차 국정 운영의 방향을 가를 무대가 될 전망”이라며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느냐가 아니라 누가 민심과 권력 사이의 균형을 더 잘 잡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2026-06-21 17: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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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국정 2년차 수석급 참모진 개편…지지율 경고등에 칼 빼들어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이 국정 2년 차를 맞아 청와대 수석급 참모진을 대폭 교체하며 국정 쇄신과 개혁 드라이브 강화에 나섰다. 최근 지방선거 결과와 지지율 하락세를 계기로 국정 운영 기조를 재정비하는 동시에 인공지능(AI)·에너지 전환, 노동 개혁, 공급망 대응 등 핵심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홍보소통수석, 민정수석, 사회수석과 국가안보실 1·3차장을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향후 임명될 AI미래기획수석까지 포함하면 전체 수석급 참모 11명 가운데 6명이 바뀌는 중폭 이상의 개편이다. 대통령실은 이번 인사에 대해 국정 2년 차를 맞아 소통과 개혁 동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브리핑에서 "좀 더 개혁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밝혔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홍보·민정 라인 교체다. 홍보소통수석에는 성기홍 전 연합뉴스 사장이, 민정수석에는 한찬식 변호사가 각각 임명됐다. 최근 지방선거 이후 나타난 민심 변화와 지지율 하락 흐름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국민 체감형 정책 성과를 높이겠다는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이 대통령은 지난 19일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당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라며 "냉정한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정책 추진 체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한찬식 신임 민정수석은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설치와 형사소송법 개정 등 검찰개혁 후속 과제를 맡게 된다. 강건작 국가안보실 1차장은 군 구조개혁과 자주국방 역량 강화 작업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 정책 라인도 한층 강화됐다. 문진영 전 사회수석 후임으로 약사이자 노동운동가 출신인 김경자 수석이 임명됐다. 앞서 민주노총 출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한국노총 출신 이옥남 노동비서관이 합류한 데 이어 노동계 출신 인사들이 정책 전면에 배치되는 모습이다. 경제·산업 정책 측면에서는 공급망과 경제안보 대응 역량 강화가 주목된다. 송기호 경제안보비서관을 국가안보실 3차장으로 승진 발탁한 것은 미국의 관세 정책과 중동 리스크 등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평가된다. 외교·안보와 경제가 긴밀하게 연결되는 환경 속에서 경제안보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반면 경제성장수석과 재정기획보좌관 등 경제 라인은 유임됐다. 지난 1년간 추진해 온 경제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 AI와 에너지 전환, 자본시장 활성화, 부동산 안정화, 국토 균형발전 등 핵심 과제의 성과 창출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하정우 전 수석의 출마로 공석이 된 AI미래기획수석 인선은 이번 발표에서 제외됐다. AI 국가전략을 총괄할 적임자 물색에 시간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2026-06-21 14: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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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뒷전, 당권만 좇는 여의도의 씁쓸한 자화상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선장과 항해사는 서로 조타기를 잘못 잡았다며 멱살잡이만 하고 있다. 갑판 아래에서는 승객들이 물이 차오르는 공포에 떨고 있는데도 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의 모습이 꼭 그렇다. 6·3 지방선거가 끝난 지 2주가 지났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선거의 후유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선거의 교훈을 되새기기는커녕 선거 결과를 둘러싼 책임 공방과 당권 투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여의도는 민심을 읽는 공간이 아니라 권력을 계산하는 공간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예외가 아니다.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자 지도부를 향한 사퇴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국민이 진정 묻고 있는 것은 누가 대표직을 유지할 것인가가 아니다. 왜 국민이 등을 돌렸는가, 왜 국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안타깝게도 정치권은 그 질문을 외면한 채 차기 권력의 향배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투표용지 부실 관리 사태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였다. 선거 관리 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났고 국민의 신뢰는 상처를 입었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 속에서 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폐업을 고민하고 청년들은 취업난에 신음하며 노년층은 생활비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 그러나 국회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민생 대책이 아니라 계파 갈등과 권력 재편 이야기뿐이다. 정치가 국민을 위한 것인지, 정치인 자신을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자는 논어에서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도자가 바르면 백성도 자연히 바르게 따른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는 바름보다 유불리를 먼저 따지고 있다. 국민의 고통보다 당내 권력 지형에 더 관심을 보이고, 국가의 미래보다 다음 전당대회와 공천을 더 걱정하는 모습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성인은 자기 자신을 뒤로하고 백성을 앞세운다"고 했다. 또한 "강한 것은 부러지고 부드러운 것이 살아남는다"고 가르쳤다. 지도자는 권력을 움켜쥐려 할수록 결국 그 권력에 갇히게 되고, 백성의 목소리를 낮은 자세로 듣는 자만이 오래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권은 어떠한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는 대신 상대 진영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데 더 익숙해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양당 모두 선거 결과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만 해석한다는 점이다. 국민의 심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보다 이를 내부 권력투쟁의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선거 책임론이 본래의 의미를 잃고 정적 제거의 수단으로 변질되는 순간, 정치의 품격은 무너진다. 국민의 채찍질은 쇄신을 위한 것이지 계파 싸움의 명분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은 책임 정치다. 권한을 가졌다면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잘못이 있다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개선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에서는 책임지는 지도자를 찾기 어렵다. 모두가 남의 탓을 한다. 정부는 야당을 탓하고 야당은 정부를 탓한다. 당 지도부는 전임 지도부를 탓하고 계파는 상대 계파를 탓한다. 국민은 이미 알고 있다. 서로를 향한 비난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성경 잠언에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는 구절이 있다. 지도자가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고 권력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는 순간 몰락은 시작된다는 경고다. 역사를 돌아보면 국민의 경고를 무시한 정권과 정당 가운데 오래 살아남은 사례는 없다.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한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저성장과 고물가, 인구 감소와 청년 실업, 인공지능(AI) 시대의 산업 재편, 국제 질서의 불확실성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문제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이 권력 다툼에만 몰두한다면 국가는 방향을 잃고 국민은 희망을 잃게 된다. 정당은 권력을 얻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다.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존재하는 공적 기관이다. 대표직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당권은 국민을 위한 봉사의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수단이 목적이 되고 봉사가 권력욕으로 변질되면 정치는 본래의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된다. 배가 침몰할 때 필요한 것은 서로의 잘못을 따지는 싸움이 아니다. 승객을 구하기 위한 협력이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에도 필요한 것은 상대를 무너뜨리는 기술이 아니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다. 국민은 더 이상 변명하는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다. 국민은 책임지는 지도자, 듣는 지도자, 행동하는 지도자를 원한다. 여야는 이제 당권이라는 독배를 내려놓아야 한다. 선거 결과에 담긴 국민의 경고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민생이라는 본분으로 돌아와야 한다. 쇄신 없는 권력투쟁의 끝은 공멸이다. 반대로 책임 정치와 협치의 정신을 회복한다면 위기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정치는 권력을 위한 게임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일이다. 그 가장 단순한 진실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오늘 대한민국 정치가 가장 먼저 되찾아야 할 상식이다.
2026-06-18 17: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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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데드크로스 맞은 이재명 대통령, SNS 정치 접고 국정 기조 쇄신해야
[경제일보] 정권 출범 초기 대통령 지지율은 국정 동력의 바로미터다. 국민은 선거 결과를 통해 새로운 정부에 기대와 희망을 보내고, 대통령은 그 기대를 국정 성과로 연결해야 한다. 그러나 취임 후 비교적 높은 지지율을 유지해 오던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처음으로 '데드크로스'를 맞았다. 긍정 평가보다 부정 평가가 높게 나타난 것이다. 수치 자체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안에 담긴 민심의 경고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단순한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국가 운영의 최고 책임자를 기대한다. 특히 경제 불안과 민생 침체,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국민은 안정감 있는 리더십과 통합의 정치를 원한다. 그런데 최근 대통령의 행보는 이런 기대와 다소 거리가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이 대통령은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 등 외교 무대에서 일정한 존재감을 보였다. 국제 사회와의 협력 강화, 대한민국의 위상 제고라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외교 성과가 국내 민심의 냉랭한 평가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를 대통령 스스로 깊이 성찰해야 한다. 정치의 중심은 해외가 아니라 국민의 삶에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외교 성과보다 물가와 일자리, 주거와 교육, 그리고 정치적 안정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최근 대통령 주변을 둘러싼 각종 논란과 여당 내 갈등은 국민에게 피로감을 안겨주고 있다. 더욱이 대통령이 이를 조율하고 정리하는 국정 최고 책임자의 모습보다 SNS를 통해 직접 메시지를 내고 정치 현안에 개입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면서 오히려 혼선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일반 정치인의 발언과 무게가 다르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곧 정부의 방향으로 해석되고 시장과 국민은 이를 정책 신호로 받아들인다. 그런 점에서 SNS를 통한 즉흥적 소통이나 특정 정치 현안에 대한 직접 개입은 자칫 국정 운영의 중심을 흐릴 수 있다. 더욱이 여당 내부 문제나 정치적 갈등에 대통령이 지나치게 관여할 경우 당정 관계마저 왜곡될 수 있다. 역대 정부의 경험은 이를 잘 보여준다. 대통령이 여당 운영에 깊숙이 개입할수록 당의 자율성은 약화되고, 반대로 여당 지도부와 대통령실이 충돌할 경우 이를 조정할 장치가 사라지게 된다. 결국 갈등은 증폭되고 국정 동력은 약화된다. 만약 향후 여당 대표와 대통령 간에 정책 노선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대치 국면이 형성된다면 누가 이를 중재하고 조율할 수 있겠는가. 대통령이 심판과 선수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순간 정치의 균형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정부는 정책 추진력을 잃고, 여당은 분열하며, 국회는 정쟁에 빠진다. 경제와 민생은 뒷전으로 밀리고 국민은 또다시 정치의 혼란을 감내해야 한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한은 당내 권력 다툼을 관리하라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라는 데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정 기조의 전면적인 쇄신이다. 대통령은 정파의 수장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정치적 지지층만 바라보는 메시지에서 벗어나 중도층과 무당층, 그리고 비판적 국민의 목소리까지 경청해야 한다. 민심은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정의 방향을 바로잡기 위한 나침반이다. 공자는 "군자는 화합하되 같아지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도자는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하면서도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국민이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갈등의 중심이 아니라 조정의 중심에 서라는 것이다. SNS 정치로 박수를 받는 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국정 운영의 성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번 데드크로스는 단순한 여론조사 수치의 변화가 아니다. 국민이 보내는 경고장이자 국정 쇄신의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대통령이 이를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한다면 지지율 하락은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그러나 겸허하게 민심을 수용하고 국정 운영 방식을 재정비한다면 위기는 오히려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더 많은 정치가 아니라 더 나은 국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이재명 대통령은 SNS 정치에서 벗어나 민생과 통합, 그리고 책임 있는 국정 운영으로 답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빠른 길이며,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는 유일한 길이다.
2026-06-18 08: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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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디브 선거는 배우고, 국내 투표용지는 못 챙긴 선관위
[경제일보]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신뢰를 정면으로 흔든 사건이다. 선거 당일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에게 투표용지를 제때 내주지 못했다. 선거 절차에서 투표용지는 가장 기초적인 준비물이다. 참관인 배치, 개표 관리, 선거운동 단속, 투표함 이송도 중요하지만 유권자에게 건넬 투표용지가 없으면 선거는 그 자리에서 멈춘다. 이번 일을 현장 착오나 일시적 혼선으로 넘길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의 사퇴는 뒤늦은 수습의 시작일 뿐이다. 이번 사태는 한 위원장의 사의 표명으로 덮을 수 있는 행정 사고가 아니라 중앙선관위 운영 전반의 책임을 묻는 사건으로 번지고 있다.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다. 그러나 독립성은 정치권으로부터 선거관리를 지키기 위한 장치이지 국민 앞의 설명 책임을 덜어주는 방패가 아니다. 선관위가 정치권의 영향에서 벗어나 선거를 관리하려면 먼저 국민 앞에 설명 가능한 조직이어야 한다. 선거관리의 기본이 무너졌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 본투표 과정에서 전국 91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7194장이 부족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중단된 곳도 26곳에 달했다. 중앙선관위가 애초 밝힌 부족 규모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선관위가 선거 직후 사태의 전모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거나 적어도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선거관리의 실패가 투표소 현장에서 그쳤는지, 보고와 대응 과정까지 이어졌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노 전 위원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허철훈 전 사무총장도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사퇴만으로 매듭지을 사안으로 보기 어렵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노 전 위원장과 허 전 사무총장 등 선관위 관계자들을 출국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선관위와 서울시선관위,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일부 구 선관위 등에 대한 압수수색도 진행됐다. 수사는 수사대로 진행돼야 하고, 조직 책임은 조직 책임대로 규명돼야 한다. 형사책임 성립 여부와 별개로 선관위가 선거관리의 기본 의무를 다했는지는 반드시 확인돼야 한다. 과로론으로 덮을 수 없는 중앙선관위 책임 선관위 내부 게시판에는 현장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글도 올라왔다. 한 직원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선관위가 잘못한 건 인정하더라도 선거 시스템이 과부하된 현 상황은 알려야 한다”며 “근본적 원인은 살인적 업무량과 적은 인원”이라고 썼다. 또 다른 직원은 “1명이 100곳 이상의 투표소를 관리하는데, 용지가 부족하다는 연락이 동시다발적으로 오면 혼자 처리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서울 송파구 선관위의 경우 직원 13명 중 3~4명 정도가 관할 투표소 146곳의 투표 상황 관리와 개표 준비까지 맡아 비상 상황에 대응하기 어려웠다는 설명도 나왔다. 현장 직원의 고충은 가볍게 볼 수 없다. 선거 때마다 구·시·군 선관위 직원들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린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1명이 100곳 넘는 투표소를 관리해야 했다면 정상적인 인력 운용으로 보기 어렵다. 다만 바로 그 사정 때문에 중앙선관위의 책임은 더 무거워진다. 인력이 부족했다면 선거 전에 보강 방안을 마련했어야 한다. 업무량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면 위험 지점을 미리 점검했어야 한다. 투표용지 배부량 산정, 예비분 확보, 긴급 수송 체계, 보고 라인, 현장 대응 매뉴얼은 선거가 끝난 뒤 내부 게시판에 호소할 문제가 아니라 선거 전에 갖춰야 할 선거관리의 기본 장치다. 유권자 입장에서 따질 대목은 하나다. 왜 투표소에 투표용지가 부족했느냐는 것이다. 업무가 많았다는 말은 설명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 선거관리기관이 선거 당일 투표용지를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면 먼저 국민 앞에 책임을 설명해야 한다. 그다음에 인력과 제도 문제를 말해야 한다. 순서가 바뀌면 내부 사정은 국민 눈에 책임 회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몰디브 출장이 부른 국민의 냉소 이번 사태가 더 큰 분노를 부른 데에는 선관위의 기존 논란도 영향을 미쳤다. 성과급, 휴직, 해외 출장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몰디브 대통령 선거 참관 출장은 상징성이 크다. 2023년 9월 선관위 직원 5명은 7박 9일 일정으로 몰디브 대통령 선거를 참관했다. 보고서에는 후보자 선거사무소 방문, 선거운동 참관, 투·개표 참관, 공식 만찬 참석 등이 담겼다. 출장 목적은 ‘변화된 외국 선거환경 파악 및 선거법제 비교 연구’였다. 문구만 놓고 보면 그럴듯하다. 그러나 이번 사태 이후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몰디브에서 선거 제도를 배우고 왔다는 기관이 정작 국내 지방선거에서는 투표용지를 못 챙겼다. 보고서에 해변 깃발 사진과 섬 지역 선거운동 설명이 실렸다는 대목까지 알려지면서 국민의 냉소는 더 커졌다. 선거 제도를 배우러 몰디브까지 갔다는 설명은 지금 상황에서 희대의 코미디처럼 들린다. 외국 선거제도 연구 자체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해외 선거 참관도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출장은 성과로 설명돼야 한다. 몰디브 출장 보고서가 국내 선거관리 개선에 어떤 도움을 줬는지는 이번 사태 앞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해변의 깃발과 섬 지역 선거운동을 보고 온 기관이 정작 국내 투표소의 용지 부족을 막지 못했다면, 제도 연구라는 설명보다 방만한 조직문화라는 비판이 먼저 나올 수밖에 없다. 선관위는 2024년 총선을 앞두고도 몰디브를 포함해 1년간 33차례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스위스, 스페인 등 유럽을 중심으로 선거 신뢰성 제고 등을 이유로 한 출장도 이어졌다고 한다. 해외의 선거 신뢰성을 살피러 다니는 동안 국내 선거관리의 신뢰는 어디서 새고 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선거 신뢰성은 보고서 제목이 아니라 투표소 현장에서 쌓인다. 유권자가 줄을 서고, 신분을 확인받고,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소로 들어가는 과정이 막힘없이 작동해야 신뢰가 생긴다. 독립성은 책임 회피의 방패가 아니다 선관위가 그동안 누려온 독립성과 권한은 작지 않다. 선거를 관리하고 정당·정치자금 업무를 다루며 위법 선거운동을 조사한다. 정치권도 선관위 판단을 무겁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 기관일수록 내부 통제와 외부 검증은 더 엄격해야 한다. 그런데 선관위는 독립기관이라는 이유로 감사와 인사, 예산, 조직 운영 전반에서 느슨한 감시를 받아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독립기관이라는 지위가 성역처럼 굳어졌다면 이번 사태는 그 벽을 다시 세울지, 허물지 가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국회가 선관위 개혁 법안을 내놓는 흐름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 외부감사를 가능하게 하는 감사원법 개정과 전국 선거 기간 선관위 직원들의 휴가·휴직 사용을 제한하는 입법을 예고했다. 선거가 없는 시기와 전국 단위 선거가 있는 시기의 휴직자 수 차이를 들어 선관위 조직 운영 문제도 지적했다. 여야 원내지도부 역시 이번 사태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 큰 틀에서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위원회 설치, 선관위원 연임 제한 등도 논의되고 있다. 선관위 개혁은 정치적 보복이나 특정 진영의 이해관계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선거관리기관을 정권의 하부기관처럼 만드는 일은 더 큰 위험을 낳을 수 있다. 그렇다고 현 체제를 그대로 두자는 결론으로 갈 수도 없다. 독립성과 책임성은 함께 가야 한다. 책임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독립성은 국민에게 특권으로 보인다. 국민이 신뢰하지 않는 독립기관은 제도적 권위도 유지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는 선관위 직원 몇 명의 실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투표용지 수요 예측, 인쇄·배부 계획, 예비 물량 확보, 현장 보고 체계, 비상 대응, 사후 설명까지 선거관리 전 과정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살펴야 한다. 노태악 체제의 중앙선관위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사의를 표명했다고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 수사 대상이 됐다고 정치적 논란으로만 몰고 갈 일도 아니다. 선거관리 실패의 원인과 책임자를 구체적으로 가려야 한다. 선관위 내부 직원들이 과로를 호소했다면 그 부분도 함께 조사해야 한다. 누가 그런 인력 배치를 결정했는지, 선거 전 위험 보고는 있었는지, 중앙선관위는 현장 부담을 알고 있었는지, 알고도 방치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현장 직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동시에 현장 고충을 앞세워 조직 책임을 흐려서도 안 된다. 선거관리기관의 책임은 가장 윗선에서 시작된다. 노태악 전 위원장과 중앙선관위 수뇌부가 책임 규명의 중심에 서야 한다. 민주주의의 신뢰는 선거 당일 투표소에서 확인된다. 투표용지가 충분히 놓여 있어야 하고, 유권자가 정해진 절차에 따라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즉시 해결돼야 한다. 사후에는 정확한 설명과 책임 추궁이 따라야 한다. 선관위가 이 기본을 놓쳤다면 그동안 내세워온 선거관리 전문성도 다시 검증받을 수밖에 없다. 몰디브 선거는 배우고, 국내 투표용지는 못 챙겼다는 비판은 거칠지만 지금 민심의 방향을 잘 보여준다. 선관위가 국민의 분노를 억울하게만 여긴다면 사태의 무게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국민이 선관위에 요구한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선거 당일 투표용지가 부족하지 않게 하라는 요구였다. 그 요구조차 충족하지 못한다면 선관위의 권위도 유지되기 어렵다. 선관위 개혁은 더 미루기 어렵다. 외부감사, 인사 검증, 예산 통제, 해외출장 심사, 휴직 관리, 선거 비상 대응 체계까지 다시 봐야 한다. 독립성이라는 이름 아래 방만함이 방치됐다면 걷어내야 한다. 정치권도 이 문제를 정쟁의 도구로만 삼아서는 안 된다. 선거관리기관을 바로 세우는 일은 어느 정당의 유불리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참정권 문제다. 유권자의 한 표를 관리하라고 만든 기관이 유권자에게 줄 종이 한 장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노태악 전 위원장의 사퇴는 출발점에 가깝다. 책임 규명과 제도 개혁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이번 사태는 선관위 역사에 가장 부끄러운 장면으로 남게 될 것이다.
2026-06-15 09: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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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끝났지만 민심은 끝나지 않았다
지방선거는 막을 내렸지만 국민의 평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투표함이 닫히는 순간 민심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선거는 국민이 정치권에 보내는 가장 분명한 명령이며, 정치는 그 명령을 실천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선거 이후 여야의 모습을 보면 국민이 던진 준엄한 경고보다 당권 경쟁과 책임 공방에 더 몰두하는 모습이다. 승자는 승리의 이유를 자화자찬으로 포장하고, 패자는 패배의 책임을 내부 갈등과 특정 인물에게 돌리기에 급급하다. 정작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민주주의의 주인은 정당이 아니라 국민이다. 정당은 국민의 뜻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선거가 끝나기가 무섭게 당권을 둘러싼 세력 다툼과 계파 갈등에 빠져들고 있다.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언론을 장식하는 것은 오직 사퇴 요구와 책임론, 내부 분란뿐이다. 국민의 삶보다 정치인의 자리가 더 중요한 것처럼 비치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다. 노자는 《도덕경》 제66장에서 “강과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스스로를 낮추기 때문이다(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라고 말했다.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이 결국 모든 것을 품듯이, 정치도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아래에서 섬겨야 한다는 뜻이다. 권력은 높이 오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을 향해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은 민심이라는 바다를 바라보기보다 당권이라는 작은 언덕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밀어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대통령이 “집권 여당은 진영이 아니라 국민을 향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당은 특정 계파나 지지층만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위한 공적 기관이어야 한다. 여당은 국정을 책임지는 자세로 국민을 바라봐야 하고, 야당 역시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는 책임 있는 견제 세력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책임 정치의 본령이며 의회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유교 경전 《서경》은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며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평안하다(民惟邦本 本固邦寧)”고 가르친다. 정치의 모든 출발점은 백성이고, 모든 종착점 또한 백성이다. 선거 역시 국민이 권력을 위임하는 절차일 뿐 권력을 사유화하는 면허증이 아니다. 국민이 맡긴 권한으로 국민을 외면한다면 그 정치의 정당성은 이미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당 대표가 누가 되느냐가 아니다. 치솟는 물가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 청년들의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자영업자의 빚 부담을 어떻게 덜어줄 것인지,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답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여전히 계파 계산과 차기 권력 구도에만 시선을 빼앗기고 있다. 국민의 고통은 정치 일정에 밀려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민주주의는 승자독식의 게임이 아니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함께 국가를 운영해야 하는 공동체의 약속이다. 여당은 책임 있는 국정 운영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하고, 야당은 합리적 견제와 대안 제시를 통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정쟁보다 협력이, 권력투쟁보다 민생이 우선될 때 비로소 정치의 존재 이유가 살아난다. 역사는 민심을 거스른 권력이 오래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증명해 왔다. 국민은 침묵하는 것처럼 보여도 모든 것을 기억하며, 결정적인 순간에는 가장 냉정한 심판자가 된다. 선거에서 드러난 유권자의 뜻은 진영 논리가 아니라 합리와 실리, 갈등이 아니라 협력, 권력 다툼이 아니라 책임 정치였다. 이를 외면한다면 다음 심판은 더욱 엄중할 수밖에 없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이지 정당을 위한 것이 아니다. 주권자는 여야가 아니라 국민이다. 이제 정치권은 당권이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국민이라는 넓은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 민심을 두려워하고 민생을 최우선에 두는 정치,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본이며 국가를 바로 세우는 유일한 길이다. 선거는 끝났지만 민심은 아직도 정치권을 향해 말하고 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자만이 미래를 얻을 수 있다.
2026-06-14 17: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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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권이라는 신기루, 민생이라는 대지
선거는 끝났지만 국민의 삶은 끝나지 않았다. 지방선거의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정치권은 또다시 당권 경쟁과 책임 공방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승자는 겸허하지 않고 패자는 성찰하지 않는다. 여야를 막론하고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사퇴를 요구하고, 공천을 탓하고, 계파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 보낸 메시지를 철저히 외면한 결과다. 민생은 뒷전이고 권력만 앞세우는 정치의 민낯이 다시 드러나고 있다. 수십 년간 정치를 지켜본 경험으로 보더라도 선거 직후 이처럼 민심을 왜곡하고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다. 국민은 고물가와 경기 침체, 일자리 부족과 주거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데 정치권은 국민이 맡긴 권한을 민생이 아닌 당내 권력투쟁에 허비하고 있다. 민심은 생존을 말하는데 정치권은 자리만 말하고 있다. 노자는 《도덕경》 제66장에서 “강과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스스로를 낮추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스스로를 낮추고 민심 속으로 들어가는 정치만이 정당성을 얻는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권은 민심이라는 바다를 향해 나아가기보다 당권이라는 성벽 안에서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지를 놓고 싸우고 있다. 국민이 요구한 것은 권력 재편이 아니라 민생 회복인데, 정치인들은 그 준엄한 명령을 자신들의 유불리에 맞게 왜곡하고 있다. 유교 경전인 《서경》에는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며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는 말이 있다. 정치의 존재 이유는 오직 국민의 삶을 지키는 데 있다. 이것이 정치의 기본이며 원칙이고 상식이다. 선거 역시 국민이 정치인에게 임시로 권한을 맡기며 평가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렇다면 선거가 끝난 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승패를 떠나 국민의 삶을 돌보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야의 시선은 당 대표 선거와 계파 이해관계, 다음 총선 전략에만 머물러 있다. 국민의 고통보다 권력의 향배에 더 관심이 많은 정치가 과연 국민을 위한 정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여당은 선거 결과를 야당의 발목 잡기나 내부 공천 문제로 돌리고 있고, 야당은 지도부 책임론과 계파 갈등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모두가 남 탓만 할 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책임의 정치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정치는 결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상대를 비난하는 데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는지부터 성찰해야 한다. 여당은 국정을 책임지는 자세로 협치를 제안해야 하고, 야당 역시 무조건적인 반대를 넘어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정쟁이 아니라 협력이 국민이 원하는 정치다. 정치권이 외면하는 사이 민생의 현실은 더욱 절박해지고 있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미래를 포기하고, 소상공인들은 늘어난 부채와 소비 침체 속에서 폐업을 고민한다. 직장인들은 치솟는 물가와 금리 부담에 허덕이고, 서민들은 주거비와 교육비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국민이 체감하는 위기는 이미 삶의 현장 깊숙이 들어와 있다. 정치가 바라봐야 할 곳은 국회의 당 대표실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민생의 최전선이다. 당권은 결국 한때의 권력이다. 오늘의 승자가 내일도 승자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민생은 국가를 지탱하는 토대이며 국민의 삶 자체다. 토대가 무너지면 권력도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다. 역사는 민심을 외면한 권력이 오래가지 못했음을 수없이 증명해 왔다. 국민은 침묵하는 듯 보여도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으며, 결정적인 순간에는 가장 냉정한 심판자가 된다. 이제 정치는 본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당권 경쟁이라는 신기루를 좇는 대신 민생이라는 대지 위에 굳건히 서야 한다. 물가 안정과 일자리 창출, 청년과 서민의 삶을 살리는 정책을 놓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국민은 누가 당권을 차지하는지에 관심이 없다. 누가 자신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게 만드는지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정치의 기본은 국민이고, 원칙은 책임이며, 상식은 협력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잊는 순간 정치는 존재 이유를 잃는다. 이번 선거가 정치권에 남긴 가장 큰 교훈도 바로 여기에 있다. 눈을 들어 당권이라는 신기루가 아니라 민생이라는 대지를 바라보라. 그것이 국민이 내린 명령이며, 대한민국 정치가 다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이를 또다시 외면한다면 다음 심판은 지금보다 훨씬 더 냉혹하고 준엄할 것임을 정치권은 명심해야 한다.
2026-06-12 10: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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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부동산 시계, 속도보다 설득의 시간이 왔다
[경제일보] 서울 유권자는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5선을 허락했지만 서울시의회 권력은 더불어민주당에 넘겼다. 시장은 국민의힘이 지켰고 예산과 조례의 문은 민주당이 쥐게 됐다. 이번 선거 결과는 서울시정 전반의 변화이기도 하지만 건설부동산 시장에는 더 직접적인 신호로 읽힌다. 앞으로 4년 서울의 재개발·재건축과 도심 개발, 청년 주거정책은 속도보다 설득을 먼저 요구받게 됐다. 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민주당은 6·3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시의회 118석 가운데 80석을 확보했다. 지역구 73석과 비례대표 7석이다. 전체 의석의 67.8%에 이른다. 국민의힘은 지역구 30석과 비례대표 8석을 합쳐 38석을 얻었다. 2022년 지방선거 이후 국민의힘이 주도했던 서울시의회 권력 지형이 4년 만에 뒤집혔다. 오 시장 입장에서는 복잡한 결과다. 개인적으로는 5선에 성공했다. 서울시장 선거만 놓고 보면 정치적 생명력을 다시 입증했다. 그러나 시정을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예산과 조례의 관문은 야당 다수 의회가 쥐게 됐다. 시장 선거의 승리와 시정 운영의 안정성이 반드시 같은 말은 아니라는 점을 이번 선거가 보여줬다. 서울 부동산 정책은 시장의 의지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서울시장은 도시계획과 인허가의 큰 방향을 쥐고 있다. 그러나 실제 사업은 예산과 조례, 도시계획 관련 의회 논의와 맞물려 간다. 정비사업 규제 완화, 역세권 개발, 공공기여, 임대주택 비율, 청년 주거 지원, 기반시설 부담 같은 사안은 어느 하나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 어렵다. 시장의 추진력과 의회의 동의가 맞물려야 정책은 현장에서 작동한다. 오 시장은 그동안 서울의 개발 시계를 다시 빠르게 돌리겠다는 메시지를 내왔다. 재개발·재건축 정상화, 한강변 도시경쟁력 강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세운지구 정비, 청년안심주택 확대 등이 그 흐름 안에 있다. 국민의힘이 다수를 차지했던 제11대 서울시의회는 오 시장의 역점 사업 추진에 비교적 우호적인 의회 환경이었다. 그러나 새 시의회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사업의 필요성과 속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재정 부담, 공공성, 주민 수용성, 도시 경관, 공급 효과를 함께 설명해야 한다. 이미 비슷한 장면은 있었다. 오 시장은 2021년 보궐선거로 서울시에 복귀한 뒤 민주당이 우위였던 시의회와 여러 차례 충돌했다. 지천르네상스 사업 예산은 대폭 삭감됐다. 서울의 지천을 생활권 수변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구상이었지만 당시 시의회는 기본 구상과 시급성을 문제 삼았다. 상생주택 사업도 예산 삭감 논란을 겪었다. 민간 토지를 활용해 장기전세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취지였지만 당시 시의회는 사업 절차와 재정 투입의 적정성을 문제 삼았다. 의회 문턱을 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갈등은 앞으로의 예고편에 가깝다. 서울 부동산 정책은 언제나 개발과 보존, 공급과 공공성, 속도와 절차 사이에서 움직인다. 시장은 공급 확대와 도시 경쟁력을 앞세우고 의회는 예산과 절차, 공공성을 따진다. 어느 한쪽만 옳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대형 개발사업일수록 정치적 동의 없이 오래 가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하다. 사업성이 높아도 설명이 부족하면 논란이 커지고 공공성이 강조돼도 현실성이 떨어지면 현장은 움직이지 않는다. 새 시의회 출범 이후 가장 먼저 주목할 곳은 세운4구역이다. 종묘 인근 세운4구역 개발은 서울 도심 재편의 상징적 사업이다. 낡은 도심을 정비하고 업무·상업 기능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크다. 반면 종묘 경관과 역사문화 보전 문제도 가볍게 다룰 수 없다. 이 사안은 개발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도심의 노후 공간을 어떻게 바꾸되 역사적 경관을 어디까지 지킬 것인가의 문제다. 새 시의회가 이 문제를 정쟁으로 끌고 가면 해법은 멀어진다. 서울시도 사업성만 앞세우는 방식으로는 동의를 얻기 어렵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역시 서울 부동산 시장의 핵심 변수다. 용산은 서울의 마지막 대규모 개발지로 불린다. 국제업무 기능과 주택 공급, 교통 인프라, 공공기여가 한꺼번에 얽혀 있다. 공급 물량을 얼마나 늘릴 것인지, 학교와 도로 등 기반시설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개발 이익을 어디까지 공공에 환원할 것인지가 쟁점이다. 숫자 경쟁으로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서울시가 도시 경쟁력을 말한다면 시의회는 생활 기반과 공공성을 따질 것이다. 이 둘을 조정하지 못하면 용산 개발은 다시 정치적 논란의 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재개발·재건축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 주택 공급의 핵심은 결국 정비사업이다. 노후 주거지를 정비하지 않고 서울의 주택난을 풀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비사업에는 집값 상승 기대와 세입자 보호, 임대주택 확보, 공사비 부담, 조합 갈등이 동시에 따라붙는다. 오 시장이 정비사업 활성화를 강조할수록 민주당 시의회는 공공성과 주거 안정 장치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이 생산적인 견제가 되면 정책은 정교해진다. 반대로 정치적 충돌로 흐르면 공급 일정만 늦어진다. 청년안심주택도 새 시의회의 검증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취지는 부정하기 어렵다. 문제는 재원과 공급 방식, 보증금 지원의 안전성이다. 주거 취약층을 위한 정책일수록 더 정밀해야 한다. 실제 수혜자가 누구인지, 임대료 부담은 얼마나 낮아지는지, 민간사업자와 공공의 부담은 어떻게 나뉘는지 따져야 한다. 청년 주거정책은 선의만으로 평가받기 어렵다. 지속 가능한 재원과 집행의 투명성이 따라야 한다. 민주당 시의회의 책임도 작지 않다. 의석이 많다는 것은 제동을 걸 권한이 커졌다는 뜻만은 아니다. 대안을 제시해야 할 책임도 함께 커졌다는 의미다. 서울의 주택 공급 부족은 이미 시민 생활의 압박으로 돌아오고 있다. 전세와 월세 부담, 청년 주거 불안, 노후 주거지의 안전 문제는 정당의 유불리보다 앞선다. 다수 의회가 견제라는 이름으로 모든 개발사업을 막아선다면 시민은 이를 균형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삭감과 반대만으로는 다수당의 존재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오 시장도 달라져야 한다. 5선 시장의 경험은 강점이지만 동시에 부담이다. 오래 시정을 이끌었다는 것은 더 많은 성과를 요구받는다는 뜻이다. 서울 부동산 정책은 구호가 아니라 일정과 숫자, 재원과 인허가로 평가된다. 재건축 규제 완화와 도심 개발은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공공성의 언어가 빠지면 의회의 벽을 넘기 어렵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발표가 아니라 설득이고 속도전이 아니라 조율이다. 서울 부동산 시장은 정치적 신호에 민감하다. 시의회 구도가 바뀌었다고 당장 사업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업 인허가와 예산, 조례 논의가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만으로도 시장은 반응한다. 개발 기대가 큰 지역은 속도 조절 가능성을 따질 것이고 정비사업장은 공공기여와 임대주택 비율, 기반시설 부담 논의를 더 예민하게 볼 것이다. 정치의 변화는 결국 현장의 비용과 시간으로 이어진다. 이번 선거의 서울 민심은 한쪽에 백지위임을 한 것이 아니다. 오 시장에게는 계속 일할 기회를 줬고 민주당 시의회에는 견제의 힘을 실었다. 이 선택은 불편한 동거를 뜻한다. 그러나 지방자치에서 불편한 동거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제대로 작동하면 정책은 더 정교해지고 잘못 작동하면 사업은 늦어지며 시민 부담은 커진다. 서울시정의 첫 시험대는 부동산이다. 세운4구역과 용산국제업무지구, 재개발·재건축, 청년안심주택은 모두 서울의 미래와 시민의 주거비를 동시에 건드리는 사안이다. 시민이 보고 싶은 것은 승자의 목소리나 다수당의 힘자랑이 아니다. 서울의 집값과 주거 안정, 도시 경쟁력을 어떻게 함께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다. 오 시장은 이겼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됐다. 민주당은 이겼지만 반대만으로는 평가받을 수 없게 됐다. 이번 선거가 남긴 메시지는 여기에 있다. 서울 부동산 시계는 이제 속도보다 설득의 시간이 왔다. 협치는 구호로 증명되지 않는다. 예산과 조례, 정비사업의 우선순위에서 증명된다. 서울의 다음 4년은 그 증명의 시간이다.
2026-06-06 13: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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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선택의 날…6·3 지방선거가 바꾼 정치지형
[경제일보] 6·3 지방선거는 이재명 정부 출범 1년 민심을 확인한 첫 전국 단위 선거였다. 결과는 더불어민주당의 지방권력 탈환이었다. 다만 최대 승부처였던 서울을 국민의힘이 지켜내면서 여당의 압승이라기보다는 ‘미완의 승리’에 가까운 성적표가 나왔다. 최종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16곳 중 12곳을 차지했다. 국민의힘은 서울과 대구, 경북, 경남 등 4곳을 지켰다. 민주당은 경기·인천을 포함한 수도권 2곳과 부산·울산, 충청권, 강원, 제주, 전북, 전남·광주를 가져가며 전국적 확장성을 확인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서울을 수성하고 TK와 경남을 방어하면서 전면 붕괴는 피했다. 수도권 결과는 이번 선거의 정치적 성격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서울에서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정원오 민주당 후보와 박빙 승부 끝에 5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경기에서는 추미애 민주당 후보가, 인천에서는 박찬대 민주당 후보가 각각 승리했다. 서울은 부동산과 자산, 도시개발 이슈가 강하게 작동했고 경기·인천은 정권 안정론과 생활 행정 교체 요구가 더 크게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PK 지형 변화도 이번 선거의 핵심이다. 부산에서는 전재수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며 8년 만에 민주당이 부산시정을 되찾았다. 울산에서도 김상욱 민주당 후보가 승리했다. 다만 경남은 박완수 국민의힘 후보가 김경수 민주당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따라서 PK 전체가 민주당으로 넘어간 것이 아니라 부산·울산은 변화, 경남은 보수 방어로 정교하게 봐야 한다. 충청권과 강원은 민주당이 국정 동력 확보의 기반을 넓힌 지역이다. 대전 허태정, 세종 조상호, 충남 박수현, 충북 신용한, 강원 우상호 후보가 승리하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정책 연계가 한층 쉬워졌다. 지역 산업 재편, 교통망, 균형발전 사업에서도 여당 주도력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결과로 이재명 정부는 부동산, 복지, 지역산업, 균형발전 정책을 지방정부와 함께 추진할 여지를 확보했다. 광역단체장이 같은 정치적 방향을 공유할 경우 국비 사업 유치, 지역 산업단지 조성, 공공주택 공급, 돌봄·복지 정책 집행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반대로 서울처럼 시장과 시의회 다수당이 다른 지역에서는 협치가 핵심 변수가 된다. 지방의회 권력 구도도 주목된다. 특히 서울에서는 오세훈 시장이 당선됐지만 서울시의회 다수당은 민주당으로 바뀌었다. 앞으로 주택 공급, 도시개발, 교통, 복지 예산을 둘러싼 시와 의회의 힘겨루기가 불가피하다. 이는 지방권력이 단순히 단체장 승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교육감 선거에서는 진보 성향 후보가 10곳, 보수 성향 후보가 6곳에서 승리했다. 교육정책의 무게추는 다시 진보 쪽으로 기울었다. 인공지능 시대 교육과정, 대입 평가, 기초학력, 교권 회복, 교육격차 해소를 둘러싼 논쟁이 각 시·도 교육청에서 본격화할 전망이다. 국민의힘에는 책임론이 불가피하다. 서울과 TK·경남을 지켰지만 지방권력 전체 구도에서는 밀렸다. 민주당 역시 서울 탈환 실패라는 숙제를 안게 됐다. 이번 선거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라기보다 지역별 민심이 세밀하게 갈라진 선거였다. 지방권력은 재편됐고 여야 모두 다음 총선과 대선을 향한 정치 지형 재설계에 들어가게 됐다.
2026-06-06 13: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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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왜 정원오가 아니라 오세훈을 택했나
[경제일보] 6·3 지방선거 최대 승부처는 결국 서울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전국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12곳을 차지하는 흐름 속에서도 서울만은 달랐다.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정원오 후보를 개표 막판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서울시장 사상 첫 5선 고지에 올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오 후보는 49.22%의 득표를 얻어 정 후보(48.07%) 1.15%포인트, 6만259표 차로 이겼다. 지상파 출구조사에서 정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예측됐던 흐름을 뒤집은 ‘대역전극’이었다. 서울은 민주당이 ‘이겼어야 할 선거’였고, 국민의힘이 ‘반드시 지켜야 할 선거’였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전국 단위 선거에서 수도 서울까지 가져와야 정권 안정론을 완성할 수 있었다. 반대로 국민의힘에는 서울이 마지막 수도권 교두보였다. 경기와 인천이 민주당 쪽으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서울마저 내주면 보수 정당의 전국 확장성은 사실상 붕괴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오 후보의 승리는 단순한 서울시장 1석의 승리가 아니라 보수 진영이 간신히 붙잡은 정치적 생명줄이었다. 전국은 민주당, 서울은 국민의힘…수도 표심은 달랐다 이번 지방선거의 큰 흐름은 민주당 우세였다. 민주당은 16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12곳을 차지했고, 국민의힘은 서울·대구·경북·경남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다만 민주당은 최대 승부처인 서울시장 탈환에 실패하면서 ‘미완의 승리’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 서울 유권자는 전국적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았다. 정당 구도보다 후보의 시정 경험, 부동산 기대, 도시 운영 능력을 따로 떼어 판단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서울 선거는 정권에 힘을 실어주느냐, 야당에 견제력을 주느냐의 선거이기도 했지만, 막판에는 ‘내 집값과 내 동네 개발을 누가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좁혀졌다”며 “전국 선거의 바람이 서울의 생활경제 계산을 완전히 덮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전국 승리 흐름에 기대 서울에서도 정권 안정론이 먹힐 것으로 봤다. 그러나 서울은 한국 정치의 상징 공간인 동시에 가장 예민한 생활경제의 현장이다. 부동산 가격, 재건축 속도, 교통망 확충, 세금 부담, 도시개발 방향이 유권자의 일상과 자산에 직접 연결된다. 정권에 대한 호감과 지지는 있었지만, 그것이 곧바로 서울시장 교체 요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정원오의 생활행정, 서울 전체 시장감으로 확장 못 했다 정원오 후보는 성동구청장 3선 경험을 바탕으로 ‘생활행정형 후보’ 이미지를 내세웠다. 성수동 변화, 지역 행정 경험, 젊고 실용적인 행정가 이미지는 분명 강점이었다. 실제 선거 초중반 정 후보는 민주당 지지층뿐 아니라 일부 중도층에서도 신선한 후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구청장 성공 모델을 서울 전역의 시장감으로 확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서울은 25개 자치구의 단순한 합이 아니다. 부동산·교통·재건축·재개발·도시계획·복지·일자리·안전이 동시에 작동하는 초대형 생활권이다. 정 후보의 생활행정 이미지는 호감도는 만들었지만, 막판 초박빙 승부에서 “서울 전체를 맡겨도 되느냐”는 질문을 완전히 넘어서지는 못했다. 특히 TV토론을 둘러싼 소극적 대응 논란은 정 후보의 확장성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정 후보는 서울시 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TV토론에는 참석했지만, 오세훈 후보 측이 요구한 추가 토론에는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서울신문은 선거 기간 중 오 후보가 정 후보의 토론 회피를 비판했고, 정 후보가 과거 발언 등을 거론하며 맞받았다고 보도했다. 이후 5월 28일 열린 서울시장 후보 TV토론은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 TV토론이 됐다. 경향신문은 해당 토론에서 후보들이 안전 문제와 부동산 정책 등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고 전했다. 정 후보 입장에서는 앞선 판세를 지키기 위한 ‘리스크 관리’였을 수 있다. 그러나 서울시장 선거는 인지도와 시정 경험을 검증받는 무대다. 도전자에게 TV토론은 현직의 실정과 자신의 대안을 동시에 부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정 후보가 추가 토론 공방에서 보다 공세적으로 나섰다면 성동구청장 이미지를 넘어 서울시 전체를 이끌 후보라는 인상을 강화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정 후보는 생활행정 이미지를 통해 호감도를 높였지만, 막판에는 서울 전체의 비전과 위기 대응 능력을 보여주는 장면이 더 필요했다”며 “TV토론 추가 개최 논란에서 방어적으로 비친 점은 ‘검증을 피한다’는 프레임을 국민의힘에 허용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사정에 밝은 한 인사도 “정 후보가 성동구에서 보여준 성과는 분명 경쟁력이 있었지만, 선거 막판에는 ‘성동구청장 정원오’와 ‘서울시장 정원오’ 사이의 간극을 국민의힘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며 “민주당이 서울 전체의 도시 비전을 더 압축적이고 선명하게 보여줬어야 했다”고 평가했다. 정 후보의 패인은 후보 개인의 문제만으로 좁혀볼 수 없다. 민주당은 서울에서 ‘왜 바꿔야 하는가’는 설명했지만, ‘바꾸면 무엇이 달라지는가’를 충분히 각인시키지 못했다. 생활행정의 성과는 강조했지만 서울시 전체의 재건축·교통·도시경쟁력 구상에서는 오 후보의 경험론을 압도하지 못했다. 여기에 TV토론 추가 공방에서 적극적 검증 무대를 넓히지 못한 점까지 겹치면서, 정 후보는 마지막 국면에서 ‘참신한 구청장’ 이미지를 ‘준비된 서울시장’ 이미지로 완전히 전환하지 못했다. 오세훈의 승부수는 새로움이 아니라 안정감이었다 오세훈 후보에게 새로움은 없었다. 장기 재임 피로감도 분명했다. 그러나 서울 유권자 일부는 바로 그 점을 장점으로 받아들였다. 재건축·재개발, 한강벨트 개발, 교통망 확충, 주택 공급, 도시계획 연속성 같은 의제에서는 실험보다 연속성을 택한 셈이다. 오 후보는 ‘시작된 변화, 압도적 완성’을 내걸고 “4년만 더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서울에서 오세훈 후보가 이긴 것은 당의 승리라기보다 후보 경쟁력과 부동산 민심의 결합에 가까웠다”며 “서울 유권자는 정권 심판이나 정권 지원이라는 큰 구호보다 당장 눈앞의 도시 운영 안정성을 더 따졌다”고 말했다. 이 대목은 국민의힘에도 착시를 경계하게 한다. 오 후보의 승리는 국민의힘 전체의 회복이라기보다 서울에서 작동한 특수한 조합의 결과였다. 오 후보 개인의 인지도, 서울시정 경험, 부동산·도시개발 이슈에서의 비교우위, 그리고 민주당의 전국 승리에 대한 견제 심리가 한꺼번에 맞물렸다. 강남3구·마용성·한강벨트…승부 가른 자산투표 이번 서울시장 선거를 해석하는 핵심 열쇠는 ‘자산투표’다. 서울의 표심은 단순히 보수냐 진보냐로 갈라지지 않았다. 내 집값이 어떻게 될 것인가, 재건축 규제는 풀릴 것인가, 교통망은 빨라질 것인가, 세금 부담은 늘어날 것인가, 도시개발은 멈추지 않을 것인가가 유권자의 선택을 움직였다. 정권에 힘을 실어주자는 구호보다 내 생활과 자산을 지키겠다는 심리가 더 강했던 것이다. 정치컨설팅 업계의 한 전문가는 “서울은 이미 계층·자산·주거 형태에 따라 정치적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는 도시가 됐다”며 “강남3구와 마용성, 한강벨트, 재건축 기대지역에서는 정당 호감도보다 자산 방어 심리가 더 강하게 작동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반대로 민주당이 강점을 기대했던 지역에서도 투표율과 막판 결집이 충분하지 않으면 서울 전체 승부를 가져가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강남3구와 마용성, 한강벨트, 재건축 기대지역의 표심을 따로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울의 선거는 더 이상 단일한 수도권 민심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같은 서울 안에서도 강남권과 강북권, 아파트 밀집지역과 다세대·임대주택 밀집지역, 재건축 기대지역과 주거 불안 지역의 투표 동기는 다르다. 민주당은 서울 전체의 정권 안정론을 기대했지만, 국민의힘은 부동산과 도시개발의 불안을 파고들었다. 민주당엔 서울형 민심, 오세훈엔 5선 책임 남았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출구조사와 실제 개표 흐름의 차이도 컸다.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는 정 후보가 오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예측됐지만, 실제 개표 과정에서는 16시간에 걸친 초접전 끝에 오 후보가 역전했다. 막판 보수층 결집과 지역별 개표 순서, 사전투표와 본투표 간 표심 차이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 선거는 마지막 1%의 조직력과 위기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 사례”라며 “국민의힘 지지층 입장에서는 경기·인천·부산·충남까지 흔들리는 상황에서 서울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컸고, 그 절박감이 본투표와 막판 결집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서울 패배는 뼈아프다. 전국적으로 승리했지만, 수도 서울을 내줬다는 사실은 향후 국정 운영과 정치 구도에서 계속 부담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서울은 단순한 광역단체 하나가 아니다. 정치적 상징성, 언론 집중도, 부동산 시장 파급력, 중산층 민심의 방향을 동시에 보여주는 공간이다. 민주당이 서울에서 다시 승리하려면 정권 안정론만으로는 부족하다. 부동산과 세금, 교통과 재건축, 일자리와 도시경쟁력에 대해 더 정교한 답을 내놔야 한다. 서울 유권자에게 “정권을 도와달라”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당신의 집, 당신의 출근길, 당신의 세금, 당신의 동네가 어떻게 나아질 것인가”를 설득해야 한다. 오 후보의 승리도 압승은 아니었다. 0.6%포인트 차 승리는 승자의 자신감보다 경고장을 먼저 읽어야 할 결과다. 서울 유권자는 오 후보를 다시 선택했지만, 무조건적 지지를 보낸 것은 아니다. 장기 재임 피로감, 시정의 관성, 약자 주거와 교통 격차, 강남·비강남 간 불균형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오 시장은 서울시장 사상 첫 5선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기록은 정치적 훈장이면서 동시에 무거운 책임이다. 서울 시민은 오 후보에게 다시 기회를 줬지만, 그 기회는 무한정한 신뢰가 아니다. 재건축과 개발의 속도를 높이되 주거 약자를 배제하지 않는 균형, 한강벨트와 강남권의 경쟁력을 키우되 강북과 외곽의 박탈감을 줄이는 조정 능력이 필요하다. 이번 선거는 서울이 정권의 바람만으로 이길 수 없는 도시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켰다. 서울 유권자는 정권보다 집값, 후보보다 생활의 안정, 구호보다 도시 운영 능력을 먼저 따졌다. 민주당에는 서울형 민심을 다시 읽으라는 숙제를 남겼고, 국민의힘에는 서울 승리를 전국 승리로 착각하지 말라는 경고를 남겼다. 한 여권 관계자는 “서울의 선택은 명료했는데 전국의 정치 바람보다 내 동네의 집값과 교통, 개발과 세금이 더 가까웠다”며 “이것이 0.6%포인트 역전극의 본질이다. 서울을 얻으려는 정당은 거대한 구호보다 생활의 계산서를 먼저 읽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2026-06-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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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막고 세금 올리고 규제 묶고… 카드 다 꺼냈는데 서울 집값은 참여정부 이후 최대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 취임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수도권 아파트 가격 오름폭은 2000년대 이후 역대 정권 집권 첫 1년 기준으로 노무현 참여정부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대출을 막았다. 공급 계획을 발표했다. 규제지역으로 묶었다. 세금 중과를 재시행했다. 통상적인 부동산 정책 수단을 집권 첫해 안에 사실상 모두 꺼냈다. 그런데도 시장은 굴하지 않았다. 수치 자체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집값이 정책 변수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 역시 부동산 시장을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면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두 가지 사실을 함께 놓는다고 해서 정책 선택의 책임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수치에는 불편한 선례가 있다. 참여정부가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참여정부의 기시감 참여정부(2003~2008)를 기억하는 세대라면 지금의 상황에서 묘한 데자뷔를 느낄 것이다. 당시에도 부동산 불로소득 근절이라는 강한 이념적 지향을 가진 정권이 들어섰고, 10·29 대책(2003년)과 8·31 대책(2005년) 등 굵직한 수요 억제 패키지가 잇달았다. 종합부동산세가 도입된 것도 그 시기였다. 그 모든 조치에도 서울 강남 아파트값은 참여정부 5년 내내 상승 곡선을 그었다. 임기 종료 시점까지 서울 아파트 가격은 집권 초 대비 두 배 가까이 오른 지역이 적지 않았다. 그 정치적 상처는 2007년 대선 패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정치적 유산과 맥이 닿아 있는 인물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하겠다는 소신은 취임 이전부터 공개적으로 밝혀온 것이다. 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이 참여정부의 문법을 여러 지점에서 닮아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소신이 정책으로 구현되는 과정을 1년치 데이터와 함께 들여다보면, 어떤 카드가 어떤 순서로 소진됐는지, 그리고 시장은 그때마다 어떻게 응답했는지가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난다. 물려받은 조건 카드를 꺼내기 전에 판세부터 따져야 한다. 윤석열 정부 임기 중 주택 인허가와 착공 물량이 예년에 비해 크게 부진했고, 그 여파로 2025~2026년 서울·수도권의 입주 물량 감소가 이미 예고된 상태였다. 공급 절벽 우려는 정권 교체 훨씬 전부터 시장 가격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결정적 선행 변수가 더해졌다. 새 정부 출범 직전 강남3구와 용산구에 대한 토지거래허가구역이 해제됐다. 이 결정은 수요 억제의 빗장이 일부 풀린다는 신호로 시장에 읽혔고, 집값은 정권 교체와 함께 상승 기대가 더욱 커지는 방향으로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 새 정부 입장에서는 준비 기간도, 인수위도 없는 상태에서 이 상황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판은 기울어진 채로 게임이 시작됐다. 첫 번째 카드: 대출을 막다 이 대통령은 취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첫 번째 카드를 꺼냈다. 가계부채 관리방안이었다. 정책 기반을 다지는 데 통상 수개월이 소요되는 새 정부 초기 일정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빠른 행보였다. 다주택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하고 대출 최대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했으며, 갭투자 차단을 위해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도 봉쇄했다.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및 관련 감독 규정을 동원한 6·27 대책은 기술적 완성도 면에서 빈틈 없이 짜인 대출 억제 패키지였다. 시장의 응답은 달랐다. 6·27 대책 이후에도 서울 주요 지역 아파트 호가는 내려오지 않았다. 이미 수억원대 현금을 보유한 고자산층의 매수를 대출 규제가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반응이 시장에서 나왔다. 강남권 일부 단지에서는 오히려 희소성이 부각되며 신고가 거래가 이어졌다. 첫 번째 카드는 시장에 긁힌 자국을 남겼지만, 방향을 바꾸지는 못했다. 두 번째 카드: 공급을 내걸다 대출 규제가 시장에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하자 두 달여 뒤 정부는 두 번째 카드를 꺼냈다. 9·7 주택 공급 확대방안에서 2030년까지 수도권에 총 135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수요 억제 일변도에서 벗어나 공급을 병행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읽혔고, 방향성 자체는 비판받기 어려운 전환이었다. 그러나 대책의 속살을 들여다본 시장 참여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공공 주도의 고밀 개발과 도심 복합사업 중심의 공급 방식이 문재인 정부 시절 이미 내놓았다가 시장의 외면을 받은 방안들과 본질적으로 달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수요자들이 원하는 것은 강남·마포·용산 같은 선호 입지의 아파트다. 공공분양이나 도심 복합사업을 통해 공급되는 주거 상품이 그 수요를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았다. 9·7 대책 발표 이후에도 서울 주요 지역 호가는 내려오지 않았고,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대책 전후 수 주간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두 번째 카드 역시 시장을 움직이지 못했다. 세 번째 카드: 규제로 묶다 공급 계획이 시장에 먹히지 않자 정부는 세 번째 카드를 꺼냈다. 서울 전역과 과천·광명 등 12개 인접 지역을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일괄 묶는 전방위 규제 지정이었다. 이미 6억원으로 제한된 주담대 한도 위에 추가 상한까지 얹었다. 주택 가격이 25억원을 초과할 경우 대출 상한을 2억원으로, 15억~25억원 구간은 4억원으로 더 낮췄다. 고가 주택을 대출에 기대어 매수하는 경로를 사실상 봉쇄하는 설계였다. 출범 후 네 달여 만에 초강도 대출 규제, 공급 계획 발표, 규제지역 전방위 지정이라는 세 가지 카드를 모두 소진한 셈이었다. 참여정부가 집권 2~3년차에 걸쳐 순차적으로 꺼냈던 카드들을 이재명 정부는 집권 첫해 안에 집중적으로 투입했다. 네 번째 카드: 세금을 올리다 수요 억제 대책들이 잇따르는 가운데 정부는 역대 정권이 번번이 미뤄온 숙제 하나를 정면으로 끌어안았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조치의 재시행이다. 「소득세법」 제104조에 근거한 이 조치는 윤석열 정부에서 4년 연속 1년 단위 시행령 유예라는 방식으로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다. 법률에 명시된 세율 조항이 행정부 시행령을 통해 해마다 유예되는 이 방식은 조세 법률주의의 원칙과 긴장 관계에 있다는 지적이 법조계 일부에서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추가 유예는 없다"고 못 박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 법 규정의 본래적 효력 회복이라는 의미도 함께 지닌다. 역대 정권이 기득권의 저항 앞에 번번이 물러섰던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양도세 중과 시행의 시장 효과는 단방향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다주택자들이 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매도를 미루고 보유를 이어가거나 매매 대신 임대로 전환할 경우, 매매 시장의 매물 감소와 전월세 시장의 물량 축소가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 네 번째 카드가 불러온 부작용은 엉뚱한 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완: 1·29 공급 신속화 방안 9·7 대책에 대해 "공급 청사진이 추상적이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정부는 올해 1월 후속 공급 계획을 내놨다. 1·29 도심 주택 공급 신속화 방안은 용산국제업무지구, 과천 경마장 부지, 군부대 이전지, 태릉CC 등 구체적 사업지와 공급 시기를 명시해 전작의 추상성을 상당 부분 보완했다. 공급 계획으로서의 구체성은 높아졌다. 그러나 실행 경로는 여전히 검증이 필요하다. 사업지 대부분이 지방자치단체의 협조와 주민 동의를 전제로 한다. 태릉CC는 과거 여러 정부에서 개발 구상이 제기됐다가 주민 반발과 환경 논란으로 번번이 제동이 걸렸던 전례가 있다. 이해당사자와의 충분한 사전 교감 없이 청사진부터 공개하는 방식이 9·7 대책에 이어 1·29 대책에서도 반복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책의 속도와 설득의 절차 사이에서 어느 쪽을 택하느냐는 결국 실행 결과로 판가름 날 것이다. 임대차 시장에 켜진 경고등 네 장의 카드가 순서대로 소진되는 동안, 압력은 엉뚱한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매매 수요를 억누를수록 임대차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이다. 여기에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실거주 의무 강화로 임대 매물 자체가 줄어드는 압력까지 겹쳤다. 양도세 중과 재시행으로 매물을 거둬들인 다주택자들이 임대를 통해 수익을 유지하려 할 경우에도 시장에는 반대 효과가 작용한다. 최근 서울 강남권과 마포·용산 일대에서 전세 물량이 줄고 전셋값이 가파르게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이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계 대부분에게 전·월세 부담은 매매 가격보다 훨씬 즉각적이고 절박한 생계 문제다. 강남 아파트 가격이 오른다는 뉴스가 체감되려면 상당한 자산이 있어야 하지만, 전세금이 수천만원 오르거나 월세로 전환되는 것은 중산층 세입자에게 당장의 위기로 작용한다. 정책이 막아선 매매 시장의 압력이 임대차 시장으로 고스란히 흘러드는 형국이다. 그리고 이 흐름의 이면에는 정책 결정 방식 자체의 문제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의사결정 방식에 대한 비판 부동산 정책의 내용 못지않게 결정 방식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전문가 집단 사이에 적지 않다. 정책의 방향이 대통령 수준에서 사실상 확정된 뒤 아래로 내려오는 방식이 빈번했다는 것이다. 한 부동산 정책 전문가는 "양도세 중과 재시행이나 토지거래허가구역 보완책을 마련하는 과정을 보면 전문가 집단의 검토나 이해당사자 협의가 사후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며 "상황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의사결정 방식이 누적되면 결국 시장은 정책보다 빨리 움직인다"고 말했다. 반론도 있다. 부동산 정책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충분한 협의를 거치다 보면 결국 기득권의 저항에 밀려 무력화되는 일이 역대 정부에서 반복됐다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종합부동산세가 초기 설계와 달리 헌법재판소 결정과 정치적 타협 과정을 거치며 점차 약화된 사례는 이 논거를 뒷받침한다.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으면 결국 후퇴한다는 학습 효과가 현 정부 내에 축적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 어느 쪽이 더 맞는 진단인지는 앞으로 나올 정책의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남은 변수들 네 장의 카드를 소진한 이재명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시장을 움직일 수단은 사실상 세제 개편과 공급 입법으로 좁아졌다. 올 하반기 나올 세제 개편안에서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를 어떤 방향으로 손보느냐에 따라 시장 반응이 달라질 것이다. 세율 인상이나 과세 기준 강화 쪽으로 무게가 실릴 경우 투기 억제 신호로 읽히겠지만, 동시에 매물 잠김과 임대차 시장 압박이 심화되는 부작용도 함께 나타날 수 있다. 기준금리 인상이 속도를 높일 경우 가계 부채 부담 증가와 함께 매수 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금리 인상은 전세 대출 시장에도 영향을 미쳐 임대차 시장의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동전의 양면을 지닌다. 1·29 대책에 포함된 공급 사업들이 현실화되려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을 비롯한 관련 입법 과제가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국회의 정치 지형이 협력적이냐 아니냐에 따라 공급 계획의 실현 속도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참여정부는 가용한 카드를 모두 꺼냈지만 끝내 서울 집값을 잡지 못했고, 그 대가를 임기 말 민심으로 치렀다. 이재명 정부는 그 카드들을 더 짧은 시간 안에 더 강하게 썼다. 참여정부와 같은 결말을 맞을 것인지, 아니면 세제와 입법이라는 마지막 수단으로 다른 결말을 써낼 것인지 그 답을 쓸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
2026-06-05 15:1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