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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안정에 안주할 때 아니다…외환 방어력 키울 골든 타임이다
[경제일보] 반도체 수출 호조가 한국 경제에 모처럼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급증하면서 외화 유입이 늘었고, 한동안 금융시장을 짓눌렀던 원·달러 환율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고환율과 고물가, 고금리의 삼중고에 시달려 온 우리 경제에는 분명 반가운 변화다. 그러나 지금의 환율 안정이 구조적 체질 개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외부 충격에 대비할 시간을 벌었다는 점에서 더욱 냉정한 대응이 요구된다. 한국 경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개방경제다. 수출이 성장의 버팀목인 만큼 국제 금융시장과 지정학적 변수에도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미국의 금리 정책은 여전히 불확실하고, 미·중 전략 경쟁은 장기화하고 있다. 중동과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험도 해소되지 않았다. 글로벌 공급망 역시 정치와 안보 논리에 따라 언제든 재편될 수 있다. 반도체 호황이 이어진다고 해서 대외 리스크까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환율 안정기에 외환 방어력을 한층 높여야 한다. 외환보유액은 국가 경제의 최후 안전판이다. 시장이 불안할 때는 국가 신용을 지키는 버팀목이고, 외환시장의 과도한 변동을 흡수하는 완충 장치다. 외화가 충분히 유입되는 지금이야말로 외환보유액을 확충할 적기다. 시장 왜곡을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외화를 흡수하고, 유동성이 높은 안전자산 비중을 확대하는 등 보유 자산의 질도 함께 높여야 한다. 거시경제 체질 개선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환율이 안정됐다고 가계부채 위험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기업의 생산성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다. 한계기업 구조조정은 여전히 더디고, 부동산 중심의 자금 쏠림도 지속되고 있다. 재정 건전성 역시 안심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경기 부양에 치우친 단기 처방이 아니라 경제의 기초체력을 키우는 구조개혁이다. 노동과 연금, 규제 개혁을 비롯한 생산성 제고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 외환시장의 안정은 정부 정책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시장의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재정 규율을 확립하며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독립성을 존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기적인 환율 수준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예측 가능한 정책 환경을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 외국인 자금을 붙잡는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다. 우리 경제는 이미 여러 차례 방심의 대가를 치렀다. 1997년 외환위기는 외환 유동성 관리 실패가 얼마나 큰 국가적 재앙을 초래하는지를 보여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역시 충분한 대비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사건이었다. 위기는 늘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왔고, 준비된 나라만이 충격을 최소화했다. 반도체 호황과 환율 안정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그것이 경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면허증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외환보유액을 확충하고 재정 건전성을 강화하며 구조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이다. 경제는 호황기에 미래를 준비한 나라가 위기에서도 살아남는다. 오늘의 환율 안정을 내일의 국가 경쟁력으로 연결하는 것, 그것이 정부와 경제 당국이 놓쳐서는 안 될 시대적 책무다.
2026-07-13 09:2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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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는 웃는데 장바구니는 운다… 체감물가부터 잡아야 민생이 산다
[경제일보] 정부는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주요 선진국에 비해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전체 물가상승률만 놓고 보면 한국은 OECD 평균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숫자만 보면 물가 관리가 성공한 듯 보인다. 그러나 국민이 시장과 마트에서 느끼는 현실은 전혀 다르다. 통계는 안정이라 말하지만, 장바구니는 연일 비명을 지르고 있다. 국민이 매일 사 먹는 우유와 빵, 육류를 비롯한 식음료 가격은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로 높다는 조사 결과는 이러한 괴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부가 말하는 지표물가와 국민이 체감하는 생활물가 사이에 깊은 골이 존재하는 것이다. 경제에서 물가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국민의 삶을 직접 규정하는 생활의 척도다. 아무리 전체 물가가 안정됐다고 발표해도 식탁에 오르는 기본 식재료 가격이 오르면 국민은 물가가 안정됐다고 느끼지 않는다. 하루 세끼를 해결해야 하는 서민에게는 국제유가보다 계란값이 중요하고, 소비자물가지수보다 우유와 빵값이 더 절실하다. 물가정책의 성패는 통계청의 그래프가 아니라 국민의 장바구니에서 평가받는다는 사실을 정부는 잊어서는 안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이 일시적인 공급 부족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식품산업과 유통 구조 전반에 누적된 구조적 모순이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생산자는 제값을 받지 못한다고 호소하지만 소비자는 지나치게 비싼 값을 지불한다. 그 사이에는 복잡한 유통 단계와 높은 물류비, 비효율적인 거래 구조, 과도한 마진이 자리하고 있다. 생산자도 웃지 못하고 소비자도 울상인 기형적인 시장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우유 가격만 보더라도 낙농 원유 가격 인상은 소비자가격에 즉각 반영되지만 원가가 하락할 때는 가격 인하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빵 역시 국제 밀 가격이 하락했음에도 소비자가격은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육류도 사료 가격이 안정되고 국제 곡물가격이 떨어졌지만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가격은 오를 때는 빠르고 내릴 때는 느린 이른바 '로켓 인상·깃털 인하'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시장의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비합리적인 구조다. 정부의 대응도 미흡하다. 농축산물 할인쿠폰을 지급하거나 일시적으로 수입을 확대하는 대책은 단기 처방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명절이나 특정 시기에 할인행사를 확대하는 방식은 잠시 체감물가를 낮출 수는 있지만 시장 구조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결국 할인행사가 끝나면 소비자는 다시 높은 가격을 감당해야 한다. 물가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가리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다. 이제는 정책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생산에서 소비까지 이어지는 유통 구조를 전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중간 유통 단계의 비효율을 줄이고, 물류 시스템을 현대화하며, 가격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독과점적 시장 구조가 존재하는 분야는 공정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원가가 하락하면 소비자가격에도 신속히 반영되는 합리적인 가격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것이 정부의 중요한 책무다. 동시에 국내 농축산업의 경쟁력 강화도 병행해야 한다. 생산비 절감과 스마트 농업 확대, 물류 혁신, 계약재배 활성화 등을 통해 안정적인 공급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해외 공급망 변화에 지나치게 흔들리는 구조를 개선하고 식량안보 차원의 장기 전략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식품산업을 단순한 소비재 산업이 아니라 국가 경제와 민생을 떠받치는 핵심 기반 산업으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물가정책 역시 소비자물가지수 중심에서 생활밀착형 체감물가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국민이 자주 구매하는 식료품과 생필품의 가격 흐름을 정책의 핵심 지표로 삼고, 생활물가 안정 성과를 정부 정책의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국민이 체감하지 못하는 물가 안정은 절반의 성공도 아니다. 경제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삶을 위해 존재한다. 통계가 아무리 안정적이라도 국민이 장을 보며 한숨을 쉬고, 식탁 앞에서 부담을 느낀다면 그것은 결코 성공한 물가정책이라 할 수 없다. 정부가 진정 민생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화려한 통계가 아니라 장바구니를 가볍게 만드는 실질적인 대책이다. 국민은 더 이상 지표 속의 안정이 아니라 식탁 위의 안정을 원하고 있다. 민생경제의 출발점은 바로 체감물가를 잡는 데 있으며, 그 책임은 결국 정부와 시장 모두에게 있다.
2026-07-10 14:5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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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물가는 잠잠한데 전기차 수출은 질주
[경제일보] 중국 소비자물가가 완만한 흐름을 이어가는 가운데 신에너지차 수출과 국제선 여객 회복이 중국 경제의 다른 축을 받치고 있다. 물가는 크게 뛰지 않았고, 자동차 산업은 전동화와 수출을 앞세워 성장세를 이어갔다. 항공 여객도 무비자 입국 확대와 국제선 운항 회복에 힘입어 회복 흐름을 보이고 있다. 9일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0% 올랐다. 올해 상반기 평균 상승률도 1.0%였다. 물가 상승 압력이 크지 않은 상태에서 소비와 서비스 가격이 완만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전월과 비교하면 6월 CPI는 0.3% 낮아졌다. 식품 가격 하락의 영향이 컸다. 식품 가격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6% 내렸고, 돼지고기 가격은 15.9% 떨어졌다. 돼지고기는 중국 식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품목인 만큼 가격 하락이 전체 물가를 끌어내리는 효과를 냈다. 반면 계란 가격은 16.0% 올랐다. 품목별 흐름은 엇갈렸지만 전체 물가는 안정된 범위에 머물렀다. 비식품 가격은 1.5% 상승했고, 서비스 가격은 0.8% 올랐다. 교통·통신과 의료보건 등 서비스 관련 품목은 상승세를 유지했다. ◆ 낮은 물가, 회복의 여지를 남겼다 중국의 물가 흐름은 다른 주요국과 차이가 있다. 미국과 유럽은 한동안 높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 인상과 긴축을 이어갔다. 중국은 반대로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아 소비 회복의 강도를 따지는 상황이다. 물가가 낮다는 것은 가계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의미도 있지만, 수요가 충분히 강하지 않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돼지고기와 일부 식품 가격 하락은 소비자에게는 긍정적이지만, 생산자와 유통업체에는 수익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중국 당국이 보는 과제는 물가 억제가 아니라 수요 회복에 가깝다. 소비자가 지갑을 더 열고, 기업이 가격을 무리하게 낮추지 않아도 팔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물가 안정이 경기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신에너지차, 내수 넘어 수출로 성장 자동차 시장에서는 신에너지차가 계속 비중을 키우고 있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 신에너지차 생산은 743만8000대, 판매는 744만6000대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생산은 6.7%, 판매는 7.3% 늘었다. 6월 한 달 신에너지차 판매는 164만3000대였다. 전체 신차 판매에서 신에너지차가 차지한 비중은 58.5%까지 높아졌다.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가 더 이상 일부 소비층의 선택지가 아니라 중국 자동차 시장의 주력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수출 증가세는 더 컸다. 올해 상반기 중국 자동차 수출은 509만6000대였다. 이 가운데 신에너지차 수출은 235만5000대였다. 6월 한 달 자동차 수출은 처음으로 100만대를 넘어섰고, 신에너지차 수출도 52만3000대를 기록했다. 중국 자동차 산업이 신에너지차를 앞세워 해외 시장을 넓히는 배경에는 가격 경쟁력과 배터리 공급망, 다양한 차종 출시가 있다. 비야디(BYD), 지리자동차(Geely), 체리자동차(Chery) 등 중국 업체들은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를 앞세워 아시아와 유럽, 중동, 중남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다만 수출 확대가 곧바로 안정적인 수익을 뜻하지는 않는다. 유럽과 미국은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통상 규제를 강화하고 있고, 일부 국가는 현지 생산과 부품 조달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해외에서 오래 버티려면 판매량뿐 아니라 서비스망, 부품 공급, 브랜드 신뢰까지 갖춰야 한다. ◆ 다싱공항, 무비자 확대 타고 국제 여객 회복 국제 여객 이동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베이징 다싱국제공항의 올해 출입국 이용객은 300만명을 넘어섰다. 상반기 출입국 이용객은 약 288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 증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국인 이용객 비중도 커졌다. 무비자 입국과 경유 무비자 정책이 확대되면서 중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과 비즈니스 방문객이 늘고 있다. 다싱공항을 이용한 외국인 가운데 무비자로 입국한 인원도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선 회복은 항공사 실적만의 문제가 아니다. 관광과 호텔, 면세, 외식, 전시·회의 산업까지 연결된다. 외국인의 중국 방문이 늘면 서비스 소비가 함께 증가하고, 기업 간 교류와 투자 상담도 늘어날 수 있다. 다만 국제 여객 회복 속도는 노선별로 차이가 있다. 항공권 가격, 비자 정책, 중국에 대한 여행 수요, 국제선 공급량이 함께 영향을 준다.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했는지는 공항별·노선별로 따져봐야 한다. ◆ 물가 안정과 수출, 항공 회복의 온도차 최근 중국 경제 지표는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소비자물가는 안정적이지만 수요가 강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신에너지차는 내수와 수출에서 모두 비중을 키우고 있지만 가격 경쟁과 해외 규제가 부담이다. 국제 여객은 회복되고 있지만 항공과 관광 소비가 경제 전반을 끌어올릴 만큼 강한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그래도 세 지표가 보여주는 흐름은 있다. 중국은 낮은 물가 환경에서 소비 회복을 기다리고, 제조업에서는 신에너지차 수출을 통해 해외 시장을 넓히고 있다. 서비스 부문에서는 국제선 회복과 무비자 정책을 통해 사람의 이동을 늘리려 한다. 중국 경제가 힘을 받으려면 이 세 흐름이 서로 이어져야 한다. 물가 안정이 소비 여력으로 이어지고, 전기차 수출이 기업 이익과 고용을 늘리며, 국제 여객 회복이 관광과 비즈니스 교류를 키워야 한다. 지금 중국 경제는 그 연결고리를 확인하는 단계에 있다.
2026-07-09 18: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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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 국회가 된 7월 임시국회, 국민은 또다시 뒷전인가
[경제일보] 7월 임시국회가 또다시 '반쪽 국회'라는 오명을 안은 채 막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거대 여당은 민생 개혁 입법을 신속히 처리하겠다며 속도전을 예고했고, 제1야당은 원 구성 강행에 반발하며 국회 보이콧을 이어가고 있다. 입법부의 양 축인 여야가 출발부터 등을 돌린 채 대치하는 모습은 대한민국 의회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민은 민생을 해결하는 국회를 원했지만, 정치권은 또다시 힘겨루기와 감정싸움으로 응답하고 있다. 의회민주주의는 다수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다수의 결정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수 의견을 경청하고 설득하는 절차가 전제될 때 비로소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최근 국회의 모습은 다수의 힘으로 모든 것을 밀어붙이려는 오만과, 이에 맞서 국회 자체를 거부하는 무책임이 맞부딪치는 최악의 정치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거대 여당은 국민이 부여한 의석을 국정 운영의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책임보다 힘을 앞세운 일방통행식 국회 운영은 결코 민주주의의 모습이 아니다. 원 구성부터 주요 법안 처리까지 협의와 조정 대신 숫자의 우위를 앞세워 밀어붙이는 방식은 국회의 존재 이유인 토론과 합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다. 절차적 정당성을 경시한 입법은 법률의 생명력마저 약화시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뒤집히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만든다. 야당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의회민주주의에서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조직이 아니라 권력을 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책임 있는 정치세력이다. 그러나 국회 보이콧을 상시적인 정치투쟁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국민이 부여한 책무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국회의원이 국회를 떠나는 순간 손해를 보는 것은 여당이 아니라 국민이다. 민생 현안은 방치되고, 경제는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여야 모두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국회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승자독식의 제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하는 정치 시스템이다. 다수는 힘을 절제해야 하고, 소수는 책임 있게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어느 한쪽만 민주주의를 말해서는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 경제는 어느 때보다 어려운 국면에 놓여 있다. 고물가와 고금리의 여파는 여전히 서민의 삶을 짓누르고 있고, 자영업자의 폐업은 이어지고 있으며, 청년들의 취업난과 기업들의 투자 위축도 심화되고 있다. 미국발 관세 정책 변화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저성장 고착화라는 대외 변수까지 겹쳐 민생은 한순간도 지체할 여유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가 정쟁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다뤄야 할 법안들은 대부분 국민의 삶과 직결된 사안들이다. 추가경정예산 후속 입법과 경제 활성화 대책, 소상공인 지원, 첨단산업 경쟁력 강화, 노동시장과 연금 개혁 등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과제들이다. 그러나 여당은 독주하고 야당은 퇴장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법안은 졸속 처리되거나 아예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피해는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에게 돌아간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고 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것이 군자의 정치라는 뜻이다. 노자 역시 『도덕경』에서 "강한 것은 부러지고, 부드러운 것이 오래간다"고 가르쳤다. 상대를 굴복시키는 정치보다 상대를 포용하는 정치가 오래간다는 인류의 지혜를 오늘의 정치권은 되새겨야 한다. 국회는 승패를 겨루는 경기장이 아니다.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헌법기관이다. 여당은 숫자의 우위를 겸손으로 다스려야 하며, 야당은 보이콧보다 정책 경쟁으로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무엇보다 원 구성과 쟁점 법안에 대해서는 여야 원내대표와 상임위원장이 참여하는 상설 협의체를 활성화하고, 일정 기간의 숙의와 공개 토론을 제도화하는 등 협치를 복원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치도, 무조건 거부하는 정치도 이제는 끝내야 한다. 국민은 정치권의 싸움을 구경하기 위해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다. 국회를 구성하라고 표를 준 것도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준비하며, 갈등을 조정하라고 권한을 위임한 것이다. 7월 임시국회가 또 하나의 '반쪽 국회'로 끝난다면 국민의 정치 불신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의석이 아니라 더 큰 책임감이며, 더 높은 목소리가 아니라 더 깊은 경청이다. 국회가 협치를 잃는 순간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는다. 여야는 지금이라도 정쟁의 장막을 걷어내고 국민 앞에 마주 앉아야 한다. 그것이 헌법이 부여한 의회의 책무이며, 국민이 마지막으로 정치에 기대하는 최소한의 상식이다.
2026-07-06 09: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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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1000억 달러의 착시(錯視)와 민생 재정 투입의 엄중한 원칙
[경제일보] 우리 경제가 다시 한번 대기록을 세웠다. 반도체 경기 호황과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의 선전에 힘입어 지난 6월 한 달간 수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1000억 달러 고지를 돌파한 것이다. 단일 월간 수출이 세 자릿수 빌리언(Billion) 달러를 기록한 것은 대한민국 무역사상 전례가 없는 쾌거다. 거시 경제 지표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 역시 일제히 상향 조정되며 숫자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지표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리 썩 좋아할 수만 없다. 수출 전선의 승전고가 들려오는데도, 서민들이 체감하는 골목상권의 체감온도는 여전히 한겨울 한복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수출 대기업이 벌어들인 온기가 내수 시장 전체로 흘러가지 못하는 소위 ‘성장의 동조화 단절’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낙수효과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고물가와 고금리의 장기화로 신음하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그리고 실질소득 감소에 지친 평범한 가정의 한숨뿐이다. 이런 괴리를 메우겠다며 최근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민생회복’을 내걸고 대규모 재정 지원 사업을 쏟아내고 있다. 선심성 현금성 지원부터 지역 화폐 확대, 무분별한 복지성 예산 편성 등 종류도 다양하다. 서민의 어려움을 살피겠다는 취지 자체를 탓할 수는 없으나, 지금 정치권이 보여주는 재정 투입의 속도와 방식은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그 동안 국가 재정과 경제 정책을 지켜보면서 얻은 불변의 상식은 하나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며, 위기일수록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 지표가 좋다는 이유로, 혹은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잡겠다는 계산으로 국가 곳간을 쉽게 열어서는 안 된다. 현재 대한민국 국가 채무는 이미 경계선을 넘어섰고, 지방자치단체들의 재정 자립도 역시 바닥을 기고 있다. 중앙정부의 세수 결손이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지자체마저 빚을 내어 민생회복이라는 단기 처방에 올인한다면, 이는 미래 세대의 자산을 가로채 현재의 고통을 잠시 잊으려는 마약성 처방과 다름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차별적인 재정 살포가 아니라, 현재의 국가 및 지방 재정 상태에 대한 냉정하고 면밀한 현황 점검이다. 가용한 재원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고, 어디에 얼마만큼의 예산을 투입해야 가장 효율적인 정책 효과가 나타날지 송곳처럼 날카로운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돈을 쓰는 일은 언제 해도 늦지 않다. 그러나 한 번 잘못 흘러간 재정은 다시 회수할 수 없으며, 불필요하게 풀린 유동성은 어렵게 잡아두고 있는 물가를 자극해 서민 경제를 더 깊은 도탄에 빠뜨리는 부메랑이 될 뿐이다. 수출 호조라는 착시 효과에 가려진 내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정교하고 구조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단순히 1회성 현금을 쥐여주는 미봉책으로는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근본적으로 되살릴 수 없다. 자영업자의 한계 상황을 유예해 주는 금융 지원의 정밀화, 취약계층을 겨냥한 핀셋형 선별 복지, 그리고 기업들이 국내 소비 유통망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돕는 규제 완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의 펀더멘털을 강화하는 구조 개혁 없이 재정 만능주의에 기대는 것은 정책적 태만이자 직무유기다. 정치권과 행정부는 숫자가 주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수출 1000억 달러는 분명 축하할 일이지만, 그것이 민생의 구원투수가 될 수는 없다.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지키는 것은 나라의 명운이 걸린 마지노선이다. 선심성 정책의 유혹을 과감히 뿌리치고, 상식과 원칙에 기반한 정밀한 경제 정책을 펼칠 때 비로소 진정한 민생회복의 길이 열릴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엄중한 각성과 책임 있는 결단을 촉구한다.
2026-07-02 07:4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