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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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죽음 앞에서 책임 회피한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
[이코노믹데일리]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 이틀 만에 발생한 첫 사망 사고에서 삼표그룹 회장 정도원은 형사 책임을 지지 않았다. 경기 양주 채석장 붕괴로 근로자 세 명이 숨진 사건이다. 법은 시행됐고 사고는 발생했으며 사망자는 셋이었다. 그러나 법원이 확인한 책임의 종착지는 최고 의사결정선이 아니었다. 정 회장은 30년 넘게 채석 산업에 몸담아 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채석 작업은 사면 안정성, 야적 방식, 작업 순서 하나하나가 안전과 직결된다. 사고가 난 양주 채석장은 암반이 아닌 돌가루 지반 위에 토사를 적치한 야적장이었고, 붕괴 위험이 사전에 지적될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 수사 과정에서 거론됐다. 위험의 성격을 인지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 사고 이전의 흐름도 단절돼 있지 않다. 삼표 계열 사업장에서는 끼임, 추락, 낙석 등 사고로 사망 사례가 반복됐고, 고용노동부 특별감독에서는 100건이 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적발됐다. 안전과 관련한 경고와 지적이 누적돼 왔다는 사실은 재판 과정에서도 언급됐다. 다만 이러한 신호들이 최고 의사결정선에서 어떤 판단으로 이어졌는지는 형사 책임 판단의 영역에서는 비껴갔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정 회장의 사내 위치를 문제 삼았다. 정 회장은 사내에서 ‘TM(Top Management)’으로 불리며 안전과 생산, 인사, 재무 전반을 총괄해 온 최고 의사결정권자라는 것이다. 채석장 운영과 직결되는 인허가 현황과 작업 방식 역시 이러한 보고와 판단의 대상에 포함됐다는 취지였다. 채석장 운영의 핵심 사안이 최고 의사결정선까지 보고되고 판단이 이뤄졌다면, 그 판단의 무게가 사고와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선을 그었다. 정 회장이 정례 보고에 참석하고 일부 사안에 관여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그러한 관여가 중대재해처벌법이 요구하는 안전보건 확보 의무의 구체적 이행으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기업 규모와 운영 방식을 고려할 때, 최고 책임자가 현장의 개별 안전조치까지 책임지는 지위에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이어졌다. 최종 승인권자의 존재와 형사 책임 사이에는 거리가 남았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안전경영책임자(CSO)를 선임한 조치도 같은 결론으로 귀결됐다. 법원은 CSO를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 선임이 정 회장의 책임으로 전환되는 근거로도 삼지 않았다. 책임은 특정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최고 의사결정선은 처벌의 범위 밖에 머물렀다. 정 회장은 선고 직후 “유가족의 고통을 생각하면 비통하고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판결의 결론은 달랐다. 세 명의 죽음 앞에서 법원이 인정한 형사 책임은 현장 관계자들에게만 귀속됐다. 책임을 통감한다는 발언과 책임을 지는 판단 사이에는 간극이 남았다. 사고의 경과와 판결 이유를 차례로 놓고 보면, 사내에서 ‘TM’으로 불리며 모든 판단의 정점에 서 있던 정도원 회장은 이 사건에서 형사 책임을 지지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위험을 사전에 멈추기 위해 마련된 법이지만, 이 사건에서 법이 닿은 곳은 사고 이후의 현장이었고 사고 이전의 판단선은 끝내 닿지 않았다. 세 명이 숨졌다. 그러나 사내에서 ‘TM’으로 불리며 안전과 생산, 인사, 재무 전반을 총괄해 온 최고 의사결정권을 가진 정도원 회장은 이 사고와 관련해 형사 책임을 지지 않았다. 반복된 사고와 누적된 경고 속에서도, 최고 의사결정선은 끝내 책임의 지점에 서지 않았다.
2026-02-11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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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奈良)가 던지는 1300년의 질문
외교에서 장소는 배경이 아니다. 장소는 메시지다. 때로는 합의문보다 정직하고 정상(頂上)의 발언보다 깊은 울림을 준다. 13일 한·일 정상회담이 일본의 고도(古都) 나라현(奈良県)에서 열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것은 단순한 의전상의 편의나 지방 활성화를 위한 선택이 아니다. 한·일 관계를 어떤 시간대, 어떤 지층(地層) 위에 올려놓을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의사 표현이다. 나라현은 일본의 한 지방 도시가 아니다. 일본이 '국가'라는 틀을 처음 갖춘 원점이며 동아시아가 충돌하기 이전 문명과 제도를 공유하던 기억이 응축된 공간이다. 이 공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번 회담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를 넘어 동아시아 질서의 복원이라는 거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나라현은 8세기 일본의 수도 헤이조쿄(平城京)가 있던 곳이다. 일본이 율령을 반포하고 중앙집권적 고대 국가의 기틀을 다진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 '출발'은 일본 내부의 자생적 결과물이라기보다 외부 문명을 필사적으로 수용한 선택의 결과였다. 헤이조쿄는 당나라 장안성을 그대로 본뜬 계획도시였다. 도시의 구획부터 관료제, 법률, 의례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대륙의 선진 문명을 이식해 자신들을 '문명국'의 반열에 올리고자 했다. 즉, 나라현은 일본이 처음으로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문법을 학습하고 제도화한 공간이다. 오늘 두 정상이 이곳에 선다는 것은 근현대의 불행한 충돌 이전으로 시선을 돌려보자는 신호다. 100년의 갈등이 아니라 1000년의 교류를 보자는 제안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시선에서 나라는 또 다른 층위의 의미를 갖는다. 일본은 이곳을 자신들의 역사가 시작된 성소(聖所)라 말하지만 그 바닥을 파보면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과 기술, 사상의 흔적이 지층처럼 깔려 있다. 나라 일대에는 지금도 '고려', '백제'라는 지명이 선명하다. 일본의 정사(正史)조차 백제·신라·고구려계 도래인들이 국가 건설의 핵심 엔지니어이자 브레인이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불교와 건축, 토목과 의학, 금속 기술까지 고대 일본을 지탱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한반도를 혈관으로 삼아 유입됐다. 이것은 묵은 국수주의적 감정이 아니다. 차가운 역사적 사실이다. 일본 고대 국가의 성립은 한반도와의 교류 없이는 설명 불가능하다. 나라는 일본만의 시작점이 아니라 한반도가 일본이라는 국가의 설계에 깊숙이 개입했던 '공동의 기억'이 서린 장소다. 왜 하필 지금 나라였는가. 도쿄는 제국주의와 식민 지배, 근현대 정치의 악취가 밴 공간이다. 히로시마는 전쟁의 가해와 피해가 뒤엉킨 복잡한 도시다. 반면 나라는 근대 이전 총칼이 오가기 이전의 기억이 보존된 곳이다. 이곳에서의 만남은 과거사를 덮자는 뜻이 아니다. 과거를 다루는 순서를 바꾸겠다는 전략적 선택이다. 식민과 침략의 시간보다 교류와 공존의 시간을 먼저 소환하고 대립의 기억보다 공동 번영의 기억을 앞에 두겠다는 의지다. 군사 기지도, 현대 정치의 소음도 없는 이곳에서 침묵과 배치가 웅변하는 메시지는 '공존'이다. 이번 회담은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한·일 관계를 어디에 놓을 것인가. 나라현에서의 정상 외교는 한국을 늘 설명하고 사과받아야 하는 '피해자'의 위치에만 가두지 않는다. 문명을 전파하고 국가를 함께 설계했던 '역사적 주체'의 자리로 우리를 다시 불러낸다. 이는 외교적 자존감의 회복이다. 동시에 일본에는 무거운 부담이다. 자신들이 외부 문명을 수용해 성장했다는 사실, 그 성장의 젖줄이 한반도였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용기가 있는지 묻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는 종종 합의문보다 그들이 서 있는 땅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나라현이 건네는 메시지는 명징하다. 갈등의 역사만으로 두 나라를 규정할 수 없으며 우리는 한때 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동아시아라는 세계를 함께 조형(造形)했던 파트너였다는 사실이다. 그 질서를 그대로 복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어디서부터 꼬인 실타래를 풀고 대화를 시작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 나라는 바로 그 '시작의 기억' 위에 서 있다. 오늘 열리는 정상회담은 구체적인 성과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갈등의 시대에도 동아시아는 한때 함께 설계된 질서였다는 사실, 그 엄연한 역사의 무게를 양국 정상이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번 만남의 의미는 충분하다.
2026-01-13 10: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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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그룹 권혁 회장, '한국의 오나시스'라는 비교가 다시 나오는 이유
[이코노믹데일리] 권혁 회장은 국내 해운업계에서 ‘선박왕’으로 불려 왔다. 해상 운송이라는 변동성 큰 산업에서 장기간 사업을 이어오며 선대를 확장했고, 그 과정에서 축적한 자산 규모와 사업 방식은 업계 안팎에서 꾸준히 언급돼 왔다. 동시에 권혁 회장의 이름에는 대규모 조세 분쟁과 형사 절차라는 이력도 함께 따라붙는다. 이 두 가지가 겹치며 권혁 회장은 한국 사회에서 평가가 갈리는 인물로 자리 잡았다. 권혁 회장을 설명할 때 해외 사례가 함께 거론되곤 한다. 20세기 해운업을 상징하는 인물로 알려진 아리스토텔 오나시스다. 오나시스 역시 전후 세계 해운 시장에서 막대한 자산을 축적한 선주였다. 전쟁과 혼란의 시기에 선박을 활용한 물자 수송과 복구에 참여했고, 항공과 해운 인프라 투자에도 나섰다. 이 행보를 두고 위기 국면에서 역할을 수행한 자산가라는 평가와 사업 확장의 연장선이라는 해석이 함께 제기됐다. 오나시스의 이름은 긍정과 비판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자산가의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다. 권혁 회장을 둘러싼 논쟁도 성격이 다르지 않다. 해운업을 통해 자산을 축적한 과정 자체를 문제 삼는 시각은 많지 않다. 관심은 자산 형성 이후 단계에 쏠려 왔다. 축적된 자산이 어떤 경로로 관리되고 이전됐는지, 그 과정이 법과 제도의 범위 안에 있었는지가 논의의 중심이 됐다. 권혁 회장이 대규모 조세 분쟁의 당사자로 거론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권혁 회장을 둘러싼 사회적 관심은 기부나 공익 활동보다 조세 회피와 탈세의 경계, 자본 이동과 과세 기준에 집중돼 왔다. 개인의 자산 운용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법은 어떤 선에서 개입하는지를 두고 논의가 이어졌다. 그 결과 권혁 회장은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규모의 사법 판단을 받은 사례로 기록됐다. 권혁 회장 사건의 특징은 논쟁의 초점이 비교적 이른 시점부터 법적 판단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사회적 기대나 도덕적 평가가 확산되기 전에 사법 절차가 전면에 등장했고, 평가는 공헌 여부가 아니라 법 위반 여부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자산가를 둘러싼 논쟁이 어떤 경로로 수렴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해외 해운업계에서는 법원의 판단 이후에도 추가적인 평가가 이어진 사례들이 확인돼 왔다. 형사 책임과는 별도로, 번 돈을 사고와 재난에 어떻게 쓰는지, 안전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가 함께 거론된 경우들이 있었다. 해상 사고나 재난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집행되는 구호 기금을 미리 마련하고, 그 사용 내역을 정기적으로 공개한 사례가 있었고, 선원 안전 장비와 구조 인프라 개선에 매출의 일정 비율을 연동해 출연하며 외부 감사로 관리한 경우도 전해진다. 이런 선택들은 처벌을 피하기 위한 조치라기보다 시간이 지나며 신뢰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권혁 회장을 둘러싼 논쟁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 법적 판단이 내려진 사안과는 별도로, 이후 어떤 선택이 이어질지에 대한 시선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자산을 어떻게 만들었는가보다, 그 이후 자산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가 또 다른 판단의 기준으로 거론되고 있다. 권혁 회장을 둘러싼 논의는 특정 인물에 대한 평가를 넘어, 자본과 법이 만나는 지점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확장돼 왔다. 이 논쟁이 이어지는 이유 역시 그 지점에 있다. 돈을 번 사람은 적지 않다. 그 이후의 선택으로 평가받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2026-01-09 16:5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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