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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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롭'이라 부르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나
인공지능(AI)으로 만들어진 자동화 콘텐츠를 두고 요즘 흔히 ‘슬롭(slopp)’이라는 표현이 쓰인다. 대체로 저품질, 대량생산, 무가치라는 부정적 뉘앙스가 뒤섞인 말이다. 물론 무한 복제된 템플릿형 영상, 자극만 남기고 내용은 빈약한 콘텐츠, 클릭을 유도하기 위한 반복물은 분명 문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AI를 활용한 자동화 콘텐츠 전체를 ‘슬롭’이라는 한 단어로 묶어버리는 태도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기술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 무엇을 콘텐츠로 인정할 것인가를 둘러싼 권력의 언어에 가깝다. 과거 콘텐츠 산업은 대규모 자본과 노동력 위에서 움직였다. 방송 한 편, 영화 한 편, 특집 기사 한 꼭지를 만들기 위해 많은 인력과 시간, 비용이 투입됐다. 그렇게 탄생한 고비용 결과물은 자연스럽게 높은 가치와 권위를 부여받았다. 광고가 몰렸고, 산업이 형성됐으며, 그 질서 안에서 ‘좋은 콘텐츠’의 기준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다른 시대다. 콘텐츠는 파편화됐고, 사람들의 관심 역시 파편화됐다.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만들고, 누구나 플랫폼에 올리며, 누구나 특정한 관심 집단 안에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 더 이상 소수의 미디어가 정제된 정보를 대중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구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이런 변화 속에서 AI는 예외적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 흐름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에 있다. 편집 툴이 수작업을 줄였고, 포털이 편집권을 재편했고, 추천 알고리즘이 유통 권력을 바꾸었듯, 이제 AI는 제작과 배포의 비용을 다시 한 번 낮추고 있다. 그런데도 유독 AI를 향해서만 “인간의 손이 덜 갔으니 가치가 낮다”는 식의 판단이 반복된다. 이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냉정한 평가라기보다, 인간 노동에 대한 익숙한 프리미엄을 지키려는 심리일 수 있다. 물론 제작 비용이 사실상 0에 가까운 자동화 콘텐츠가 무한정 쏟아질 경우, 피드는 잡음으로 가득 찰 수 있다. 좋은 정보와 나쁜 정보가 뒤섞이고, 발견 가능성은 무너질 수 있으며, 결국 플랫폼 전체의 신뢰도도 낮아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저품질 반복물과 대량 복제형 콘텐츠를 걸러내려는 시도는 일정 부분 타당하다. 그러나 여기서도 중요한 질문은 남는다. 누가 그 기준을 정하는가. 무엇이 저품질이고 무엇이 새로운 형식인지를 누가 판단하는가. 과거에도 새로운 문화 형식은 늘 저급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중가요가 그랬고, TV 예능이 그랬으며, 인터넷 콘텐츠와 1인 미디어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의 AI 콘텐츠 역시 그 연장선에서 평가받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콘텐츠의 가치는 반드시 제작 과정의 고생과 비례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콘텐츠는 적은 비용과 짧은 시간 안에 대중의 감정과 여론을 움직이고, 새로운 취향과 문법을 만들어낸다. 반대로 막대한 인력과 자본이 투입됐음에도 아무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결국 콘텐츠의 가치를 인간의 노동량으로만 판단하는 태도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인간 창작자의 진짜 경쟁력은 무엇인가. 더 많이 애쓰는 것이 아니라, 더 분명하게 서명하는 것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취재와 경험과 판단이 들어갔는지, 틀렸을 때 누가 책임질 수 있는지, 바로 그 지점이다. 자동화된 자극과 대량 생산의 시대일수록 오히려 희소해지는 것은 ‘노력’ 그 자체가 아니라 ‘책임 있는 이름’이다. 이 점에서 신문 역시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이제 사람들은 콘텐츠를 반드시 신문을 통해 소비하지 않는다. 속보와 자극, 오락과 여론은 포털과 유튜브, 검색 플랫폼을 통해 더 빠르게 퍼진다. 그렇다면 신문의 존재 이유는 과거와 같을 수 없다. 앞으로 신문은 가장 빠른 전달자가 아니라, 가장 책임 있게 확인하고 가장 분명하게 서명하는 매체로 자리 잡아야 한다. 신문이 담보해야 할 가치는 속도가 아니라 신뢰이며, 양이 아니라 검증이다. AI 자동화 콘텐츠를 무조건 ‘슬롭’으로 규정하는 것은 쉬운 판단이다. 그러나 쉬운 판단은 자주 틀린 판단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문제는 AI가 콘텐츠를 만든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어떤 기준으로 그것을 걸러내고, 어떤 권한으로 그것을 평가하며, 누가 가치의 이름을 독점하려 하는가에 있다. AI 시대의 콘텐츠 논쟁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기준의 문제다. 그리고 그 기준을 둘러싼 싸움은 앞으로 더 치열해질 것이다.
2026-03-19 14: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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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이 앞당긴 무인화(無人化)의 역습
산업 현장의 비명, ‘대화’의 강요가 ‘절교’의 선택으로 개정 노동조합법,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지 불과 사흘 만에 대한민국 산업 생태계는 미증유의 대혼란에 직면했다. 하청 노동조합들이 일제히 원청 기업 사장을 상대로 교섭과 면담을 요구하며 들이닥치는 진풍경은, 이제 우리 산업 현장이 생산의 공간이 아닌 소송과 대치의 전장(戰場)으로 변질되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노동계는 이를 ‘실질적 지배력’에 바탕을 둔 정당한 권리 행사라 강변하지만, 경영계가 맞닥뜨린 현실은 ‘업무 마비’라는 생존의 위협이다. 기업의 본질은 이윤 창출과 효율성 제고에 있다. 그러나 지금의 법체계는 원청 사장으로 하여금 본연의 경영 판단 대신, 수백 개 하청 업체의 노사 갈등을 조정하고 면담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게 만들고 있다. 책임은 무한대인데 권한은 모호한 이 모순된 상황에서 자본이 선택할 길은 자명하다. 바로 ‘사람 없는 공장’, 즉 인공지능(AI)과 로봇을 활용한 노동력의 원천적 대체다. 노란봉투법이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오히려 노동자의 일자리를 지우는 ‘기술적 숙청’의 트리거(Trigger)가 되고 있다는 점은 실로 뼈아픈 역설이다. AI와 로봇,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자본의 피난처 경제학의 기본 원칙은 비용과 리스크의 최소화다. 과거 기업들이 해외로 공장을 옮기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을 선택했다면, 이제는 국내 사업장 내부에서 노동력을 기계로 바꾸는 ‘인 테크노쇼어링(In-technoshoreing)’에 열을 올리고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인한 노사 관계의 불확실성은 기업가들에게 인건비 상승보다 더 무서운 ‘예측 불가능한 경영 리스크’로 다가왔다. AI는 파업하지 않는다. 로봇은 원청 사장에게 면담을 요구하며 집무실을 점거하지도, 복잡한 법적 해석을 따지지도 않는다. 고도의 연산 능력과 정밀한 물리 제어 능력을 갖춘 AI 로봇은 이제 단순 반복 업무를 넘어 물류, 조립, 심지어는 현장 관리 업무까지 침투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제 노동력 확보를 위한 채용 공고 대신, 스마트 팩토리 구축을 위한 알고리즘 설계와 로봇 하드웨어 도입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발달의 결과가 아니라, 경직된 노동법이 강요한 ‘생존형 탈출’에 가깝다. 공존(共存)인가, 구축(驅逐)인가: 뒤바뀐 노동의 가치 그렇다면 AI 노동력과 인간의 공존은 가능한가. 노란봉투법이 초래한 현재의 대립 구도 하에서는 공존보다는 ‘구축(Crowding out)’의 속도가 압도적일 수밖에 없다. 인류의 고전 『도덕경』 제29장에는 ‘천하히기 불가위야(天下神器 不可爲也)’라는 구절이 있다. 세상은 신령한 기물이라 억지로 다스리려 하면 망친다는 뜻이다. 노동 시장이라는 유기적인 생태계를 법이라는 잣대로 억지로 옭아매려 할 때, 시장은 기술이라는 방어기제를 통해 인간을 밀어내는 법이다. 상식적 수준에서 볼 때, 노동의 가치는 숙련도와 생산성에 비례해야 한다. 그러나 법적 강제에 의해 원청의 책임만 비대해진 상황에서, 숙련된 인간 노동자는 기업 입장에서 ‘가장 다루기 까다롭고 위험한 비용’으로 전락했다. 반면, AI는 도입 초기에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한계 비용이 제로(0)에 수렴하며 안정성을 제공한다. 결국 노란봉투법은 역설적으로 기술 자본주의의 도래를 수십 년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상생(相生)의 길은 법조문이 아닌 현장의 유연성에 있다 우리는 기술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미래를 꿈꾸지만, 현재의 입법 폭주는 그 가교를 끊어버리고 있다. 진정한 노동 권익 보호는 기업이 지속 가능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공장이 멈추고 사장이 사법 리스크에 매몰된 나라에서 노동자의 자리는 존재할 수 없다. 이제라도 정치권과 노동계는 냉철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AI와 로봇이 인간의 자리를 대체하는 속도는 이미 가속페달을 밟았다. 노란봉투법과 같은 징벌적 규제가 지속된다면, 미래의 노동 시장에는 '보호받아야 할 노동자'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인류 경전의 가르침처럼, 만물은 조화 속에서 성장한다. 기업은 기술을 도입하되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기술 인본주의'를 고민해야 하고, 노동계는 투쟁의 대상이 원청 사장이 아닌 '기술적 경쟁력' 확보여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정부 또한 규제를 통한 강제적 평등이 아니라, 기술 변화에 적응하는 노동 전환 교육과 유연한 노사 관계 구축에 정책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노란봉투법은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경제의 실핏줄인 제조 및 산업 현장을 무인화의 광풍 속으로 밀어 넣는 독약이 될 우려가 크다. AI 노동력과의 건강한 공존을 원한다면, 우선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기업에 부담이 아닌 축복이 되도록 법과 제도를 정상화해야 한다. 법이 시장의 순리를 거스르려 할 때, 시장은 반드시 인간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응징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 경제가 노사 갈등의 늪을 넘어 기술 진보와 인간 노동이 상생하는 진정한 선진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금의 극단적 입법 질주를 멈추고 '상식과 법치의 균형'을 되찾는 것이 시급하다.
2026-03-1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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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품질 발전' 대전환…15차 5개년 계획의 의미
[경제일보] 중국이 3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의 경제성장률 목표(4.5~5.0%)를 제시하며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을 공식화했다. 미·중 전략 경쟁 심화와 내부 구조 문제라는 이중 압박 속에서 중국 지도부가 내놓은 ‘15차 5개년 계획’은 단순한 성장 목표 조정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성장률을 낮추는 대신 산업 구조를 재편하고 미래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이다. 중국이 내세운 ‘고품질 발전’ 기조는 한국 경제와 외교·안보 환경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예고한다. 경제 구조의 변화는 공급망 재편과 기술 경쟁의 방향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본지는 이동규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신봉섭 전 주선양 한국 총영사, 박승찬 중국경영연구소장(용인대 교수) 등 중국 전문가 세 명을 서면을 통해 중국의 중장기 전략과 한중 관계의 향후 해법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고품질 발전’ 선언…성장률보다 체질 개선 전문가들은 이번 양회에서 제시된 성장률 목표가 중국 경제의 현실 인식을 반영한 정책 전환이라고 평가한다. 박승찬 교수는 “지방정부 재정 상황과 부동산 시장 침체로 경제 지표가 악화한 상황에서 과거처럼 높은 성장률을 제시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설정해 정책 신뢰도를 유지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시진핑 주석의 장기 집권 체제 속에서 경제 리스크 관리가 정치 안정과 직결되는 만큼, 무리한 성장 목표보다 안정적 관리가 우선순위로 올라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동규 선임연구위원 역시 이를 중국 경제 전략의 구조적 전환으로 해석했다. 그는 “미·중 경쟁이 장기화하고 기존 국제 질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중국은 더 이상 양적 성장 중심 전략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고품질 발전은 중국 경제가 장기적 체질 개선을 위해 선택한 불가피한 경로”라고 말했다. 신봉섭 전 총영사는 이번 양회의 정책 메시지를 읽는 핵심 단서로 정부 업무보고의 표현 변화를 지목했다. 그는 “‘개혁’과 ‘혁신’이라는 단어가 75회나 반복된 점은 매우 상징적”이라며 “단기 경기 부양보다 제도와 산업 구조를 바꾸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 전 총영사는 이번 양회의 핵심 키워드로 ‘신질 생산력’, ‘발전과 안보의 통합’, ‘현대화 산업체계’를 제시하며 이를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산업 경쟁력을 재편하려는 전략적 선언”으로 평가했다. ‘신질 생산력’…기술굴기의 새로운 단계 중국이 15차 5개년 계획에서 가장 강조하는 개념은 ‘신질 생산력(新質生産力)’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산업 구조 자체를 첨단 기술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전략을 의미한다. 박승찬 교수는 “중국은 이제 인공지능을 단순한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보지 않는다”며 “AI를 제조업과 로봇 산업에 결합하는 ‘AI 플러스 전략’을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과 피지컬 AI 산업을 빠르게 상용화하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전략은 글로벌 산업 경쟁 구도를 바꾸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이 기술 자립을 가속화하면서 기존 공급망의 구조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한국에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신봉섭 전 총영사는 “AI, 양자 기술, 로봇 같은 첨단 산업은 한 국가가 모든 기술을 독자적으로 확보하기 어렵다”며 “한국이 경쟁력을 가진 반도체 패키징, 첨단 소재, 장비 산업은 중국의 산업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단순한 경쟁 구도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공동 혁신을 위한 협력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동규 연구위원 역시 기술 협력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기술 협력이 안보 리스크로 확대되지 않도록 양국이 전략적 자율성을 존중하는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상호 보완적 협력 모델을 찾는 것이 미래 산업 경쟁력 확보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급망 재편과 리스크 관리 이번 양회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부분은 ‘리스크 관리’ 정책의 제도화다. 신봉섭 전 총영사는 “중국은 부동산 시장 침체, 지방정부 부채, 금융 시스템 문제를 각각의 개별 리스크가 아니라 하나의 구조적 위험 체계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단순한 위기 대응을 넘어 경제 구조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충격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전략적 접근이라는 분석이다. 박승찬 교수는 이러한 정책 변화가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일정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불확실성이 높은 시기일수록 정부의 정책 방향성이 명확하게 제시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중국 정부가 질서 있는 부채 관리와 공급 구조 조정을 추진하려는 모습은 시장에 일정한 정책 신뢰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부동산 시장이 연착륙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중국 경제 전반의 금융 안정성이 흔들릴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기술 표준 경쟁…‘기술 주권’ 확보 중국의 전략은 기술 개발을 넘어 글로벌 산업 규범과 표준을 선점하는 단계로 확대되고 있다. 신봉섭 전 총영사는 “중국은 6G 통신, 바이오 제조, 수소 에너지 등 미래 산업 분야에서 중국식 기술 표준을 국제 규범으로 만들기 위한 장기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전략이 현실화될 경우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 기술 생태계를 무시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이동규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한국의 전략적 대응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될수록 한국은 기술 자립성과 국제 협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중국이 주도하는 기술 표준 경쟁 속에서 실리적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 우리 산업의 생존과 직결된다”고 말했다. 인구 변화와 소비 시장의 재편 중국의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새로운 산업 기회를 만들어내고 있다. 박승찬 교수는 “중국 내수 시장은 과거의 양적 팽창 단계에서 벗어나 소비 구조의 질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헬스케어와 스마트 실버 서비스 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과거 저렴한 노동력 중심 경제에서 소비 중심 경제로의 구조적 전환을 의미한다. 신봉섭 전 총영사는 “중국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도 단순한 완제품 수출 전략에서 벗어나 서비스와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중국 시장을 “거대한 혁신 소비 생태계”로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중 협력 모델의 변화 중국이 올해 APEC 의장국으로서 ‘함께 번영하는 아시아 태평양 공동체’를 제안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동규 연구위원은 “디지털 전환과 기후 변화 같은 글로벌 과제는 어느 한 국가가 단독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며 “다자 협력 틀 속에서 실질적인 협력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러한 협력이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진영 논리로 해석되지 않도록 정책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봉섭 전 총영사 역시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 분야에서의 협력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전력망, 수소 에너지, 탄소 감축 기술 분야에서 공동 프로젝트를 확대할 경우 양국 모두에게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중 관계의 ‘리모델링’ 지난 1월 열린 한중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외교 안보 현안에서는 여전히 인식 차이가 존재한다. 이동규 연구위원은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에서 양국 전문가들이 솔직한 대화를 통해 정책 이해를 높이는 것이 신뢰 구축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신봉섭 전 총영사는 이를 ‘관계 리모델링’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제 한중 협력은 단순한 교역 확대 단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공급망 안정, 녹색 전환, 민생 협력이라는 새로운 협력 축을 중심으로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정치적 갈등과 경제 협력을 분리해 관리하는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하다”며 “조건부 재동조화를 통해 상호 의존 구조를 새로운 자산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6년,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전문가들은 2026년이 한중 관계의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동규 연구위원은 “강대국 경쟁 속에서도 실질적인 협력 접점을 찾는 것이 한국 외교의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신봉섭 전 총영사는 민간 교류의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정치 환경이 복잡할수록 청년과 학술, 문화 교류를 통해 신뢰 기반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박승찬 교수는 중국 산업 구조 전환 속에서 한국 기업의 전략적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더 이상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거대한 기술 생태계로 진화하고 있는 만큼, 한국 기업들도 그 생태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가치를 창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중국의 국가 전략과 한국 경제의 대응 전략이 맞물리는 2026년은 갈등과 협력이 동시에 전개되는 한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갈등을 관리하면서도 미래 산업 협력의 가능성을 확대하는 전략적 유연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2026-03-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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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14차 당대회 폐막, 정치 안정 속 '제도 개혁·고품질 성장'
[이코노믹데일리] 베트남 공산당 제14차 전국대표대회가 '민족 도약의 새 시대'를 선포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 대회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베트남의 중장기 발전 전략을 재정립하고 2045년 건국 100주년 선진국 진입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분기점으로 평가받는다. 가장 주목할 점은 지도 체제의 안정성이다. 또 럼(To Lam) 서기장의 연임이 확정되면서 베트남은 기존의 개혁·개방 노선을 흔들림 없이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했다. 이는 한국 기업을 비롯한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는 핵심 시그널이다. 이번 당대회에서 채택된 문건들은 단순한 수적 성장을 넘어 '성장의 질' 향상에 방점을 찍었다. 2026~2030년 높은 GDP 성장률 목표와 함께 총요소생산성(TFP) 기여도 확대, 디지털 경제 비중 강화, 고부가가치 하이테크 산업 육성 등 구체적인 실행 과제들이 제시됐다. 이는 저임금 노동력과 자원에 의존하던 기존 모델을 탈피해 과학기술과 혁신을 중심으로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 제도 개혁과 거버넌스 효율화도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행정 기구 정예화와 권한 이양은 투자 환경을 개선하고 비즈니스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 부 호 대사, "한국은 상호 보완성 가장 높은 파트너" 부 호(Vu Ho) 주한 베트남 대사는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번 당대회의 메시지를 "성장 모델 혁신과 제도 완비를 통한 빠르고 지속 가능한 발전 의지"라고 요약했다. 부 호 대사는 "베트남은 한국을 현재의 경제 협력 규모뿐만 아니라 양국 경제 간의 높은 상호 보완성 때문에 특히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 중 하나로 여긴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보유한 기술적 잠재력과 경영 노하우가 베트남의 우수한 인적 자원과 결합한다면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며 AI, 디지털 전환, 녹색 성장 분야에서의 협력 확대를 기대했다. 발전을 위한 자원과 관련하여 부 호 대사는 당대회에 보고된 정치 보고서의 내용을 인용하며 "우리 재외 베트남 교민은 민족의 뗄 수 없는 일부분이자 중요한 자원"임을 재차 강조했다. 대사에 따르면 규모가 커지고 고숙련된 재한 베트남 교민들은 양국 경제를 잇는 핵심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들은 단순한 노동력이나 지식 자원을 넘어 문화적 차이를 좁히고 상호 이해를 증진하며 양국 관계의 견고한 사회적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향후 발전 방향에 대해 부 호 대사는 제14차 당대회가 성장 모델의 심층적 혁신, 노동 생산성 및 경쟁력 향상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외부 변동에 대한 경제의 자율성과 회복 탄력성을 강화하면서도 빠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 기업들이 기술적 잠재력, 경영 경험 및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가치 사슬 업그레이드, 기술 이전 촉진, 보조 산업 및 신경제 분야 발전에서 베트남의 중요한 파트너 역할을 계속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당대회 결과는 한국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와 과제를 동시에 안겨준다. 베트남이 단순 생산 기지에서 벗어나 첨단 기술과 친환경 산업의 파트너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뿐만 아니라 AI 및 디지털 솔루션을 보유한 중소·중견 기업들에게도 베트남 시장 진출의 문호가 더욱 넓어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베트남의 개혁 약속이 실질적으로 이행된다면 한국과의 파트너십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며 "글로벌 불확실성 속에서 정책 대화를 강화하고 실질적인 협력 모델을 발굴하는 것이 양국 관계 발전의 열쇠"라고 분석했다.
2026-02-04 16:5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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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는 정책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일거리에서 자란다
이재명 대통령은 줄곧 일자리를 국정의 핵심 과제로 강조해 왔다. 고용은 민생이고 민생은 경제의 심장이다.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구조’다. 일자리는 정책 구호로 생기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일자리는 목표가 아니라 결과다. 그 결과를 만들어 내는 출발점은 언제나 일거리다. 냉정하게 보자. 법조인, 언론인, 정치인, 공무원은 일자리를 직접 만들어 내는 집단이 아니다. 이들은 규칙을 만들고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맡는다. 중요하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새로운 수요를 발견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시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따로 있다. 바로 창업가와 기업인이다. 일자리는 사업에서 나온다. 사업은 일거리의 축적이다. 누군가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시장이 반응할 때 일거리는 확장되고 고용은 뒤따른다. 이 단순한 경제의 원리가 정치의 언어 속에서 자주 왜곡된다. 미국과 독일은 이미 잘 알려진 사례다. 정부가 직접 고용을 늘리기보다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 왔다. 그러나 지금 한국이 주목해야 할 사례는 여기에만 있지 않다. 아시아의 변화는 훨씬 더 직접적인 시사점을 던진다. 중국은 지난 30여 년간 세계 최대의 일자리 창출 실험장을 운영해 왔다. 중국 정부는 모든 기업을 자유롭게 방치하지도 모든 고용을 직접 책임지지도 않았다. 대신 명확한 전략 산업을 설정하고 해당 분야에서 민간 기업이 규모를 키울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수많은 중소기업과 민영기업이 제조업과 플랫폼, 유통과 서비스 영역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농촌 인구는 도시로 이동하며 대규모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완벽한 모델은 아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중국의 고용 증가는 ‘공공 일자리 확대’가 아니라 민간의 일거리 폭증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베트남은 더 인상적이다. 베트남 정부는 일자리를 외치기보다 “기업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먼저 물었다. 외국 기업이 투자할 수 있도록 행정 절차를 단순화하고 산업단지를 조성하며 노동력을 체계적으로 교육했다. 그 결과 글로벌 제조 기업과 국내 기업이 함께 성장했고 청년들은 공무원 시험보다 공장과 기업 현장으로 향했다. 베트남의 일자리는 정부 청사에서 생기지 않았다. 공장과 물류 창고, 연구소와 서비스 현장에서 자라났다. 이 두 나라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국가는 일자리를 ‘만들어 주지’ 않았다. 대신 일거리가 만들어질 수 있는 판을 깔았다. 규칙은 강했지만 방향은 분명했고 기업은 그 틀 안에서 속도를 냈다. 기업을 잠재적 범법자로만 보지 않았고 실패를 전면적으로 낙인찍지도 않았다. 한국은 어떠한가. 우리는 여전히 일자리를 숫자로 관리하려는 유혹에 빠져 있다. 단기 고용 지표에 집착하고 공공 부문이 민간의 빈자리를 대신 채우려 한다. 그러나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세금으로 만든 일자리는 세금이 마르면 사라진다. 반면 기업이 만든 일자리는 시장 경쟁 속에서 스스로 생존하며 확장된다. 이재명 대통령의 일자리 정책이 성공하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몇 개의 일자리를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일거리가 생겨나고 있는가”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창업가와 기업인이 지금 이 나라에서 마음 놓고 뛰고 있는가.” 정도 언론의 시선으로 분명히 말한다. 공정과 정의는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다. 그러나 그 가치가 도전을 억누르는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규제는 필요하지만 예측 가능해야 하고, 정책은 일관돼야 한다. 기업이 5년, 10년을 내다보고 투자할 수 없는 나라에서 양질의 일자리는 생기지 않는다. 일자리는 대통령의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거리를 만드는 사람들, 즉 창업가와 기업인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중국과 베트남 그리고 미국과 독일이 보여 준 교훈은 하나다. 국가는 앞에서 끌어주기보다 뒤에서 밀어 주고 옆에서 지켜보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이것이 이재명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성공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그리고 이것이 경제를 말하는 언론이 외면해서는 안 될 기본이자 상식이다.
2025-12-31 15:5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