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3건
-
공시지가, 집값보다 더 오른 이유는
[경제일보] 서울의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올해 큰 폭으로 올랐다. 일부 지역에서는 상승률이 두 자릿수를 훌쩍 넘는다. 시장에서 체감하는 집값의 움직임과는 결이 다르다. 거래가 뜸해졌다는 이야기가 이어지는 와중에 공시가격만 가파르게 올라간 듯 보이는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낯설다. 같은 부동산을 두고도 ‘가격’이 둘로 갈라진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 괴리는 우선 시간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공시가격은 시장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따라가지 않는다. 일정 시점을 기준으로 수집된 거래 사례와 평가 자료를 토대로 산정된다. 그 사이 시장은 이미 방향을 틀기도 한다. 지난해 특정 지역에서 나타났던 상승 흐름이 뒤늦게 반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시장이 숨을 고르는 구간에서도 공시가격은 과거의 상승분을 품은 채 올라오는 이유다. 체감과 수치 사이에 간극이 생기는 배경이다. 가격의 분포가 달라진 점도 빼놓기 어렵다. 최근 부동산 시장은 전반적 상승이라기보다 특정 지역과 자산으로 수요가 쏠리는 모습에 가깝다. 이른바 ‘상급지’로 불리는 지역의 가격은 크게 움직이고, 외곽이나 수요가 약한 곳은 정체되거나 미미한 변동에 그친다. 문제는 공시가격이 이런 차이를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일정한 기준 아래 묶어내려는 성격을 가진다는 데 있다. 일부 지역의 급등이 전체 수치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나타나고, 상대적으로 변화가 적은 지역까지 상승 흐름 속에 포함된 것처럼 보이게 된다. 산정 방식의 특성도 영향을 준다. 공시가격은 개별 거래를 하나하나 따라가기보다 대표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례를 중심으로 평가된다. 이 과정에서 가격이 빠르게 오른 지역의 사례가 기준점 역할을 하게 되면, 그 영향이 주변으로 확산된다. 시장은 점점 더 나뉘고 있는데, 공시가격은 이를 한 틀 안에 담으려 하면서 체감과의 거리가 벌어진다. 여기에 제도적 성격도 겹친다. 공시가격은 단순한 참고 수치에 그치지 않는다. 보유세를 비롯한 각종 부담의 기준이 된다. 세제와 연결되는 순간, 공시가격은 시장의 결과를 반영하는 수치이면서 동시에 정책의 도구가 된다. 같은 숫자라도 어떤 기준을 택하고 어떤 속도로 반영하느냐에 따라 납세자가 느끼는 부담은 달라진다. 이 지점에서 공시가격은 ‘시장 가격’과는 다른 성격을 띠게 된다. 결국 공시가격이 집값보다 더 오른 것처럼 보이는 현상은 단일한 원인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시간의 간극, 가격 상승의 편중, 평가 방식의 특성, 그리고 정책과의 연결이 겹쳐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 시장은 이미 여러 갈래로 나뉘어 움직이고 있는데, 이를 하나의 지표로 담아내는 과정에서 균열이 드러난 셈이다. 문제는 이 괴리가 반복될수록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공시가격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국민 다수의 부담과 직결된 기준이다. 시장과 동떨어졌다는 인식이 쌓이면 제도 전반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숫자를 둘러싼 논쟁이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승률을 둘러싼 공방이 아니다. 어떤 기준으로 가격을 읽어낼 것인지, 그 결과를 어떻게 부담으로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설계다. 시장은 계속 변하고, 가격은 그 변화의 결과다. 이를 담아내는 방식이 현실과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조정하는 일은 정책의 몫이다. 공시가격을 둘러싼 논란은 그 출발점에 서 있다.
2026-03-18 07:48:16
-
-
기본과 원칙을 상식이 지켜지는 리더십이 필요한 때
[이코노믹데일리] 올겨울 금융권 CEO 선출 과정은 다시 한 번 한국 금융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신한·우리금융이 비교적 안정적 승계를 택하며 시장 신뢰를 지킨 반면, 농협금융· 새마을금고에서는 또다시 “떠날 사람은 떠나지 않고, 나서선 안 될 사람이 다시 나오는” 혼탁한 구도가 반복되고 있다. 특히 성과 부족이나 윤리 논란을 안고 있는 인사들이 재도전 의지를 보이는 현실은 금융기관 자리를 개인의 사유물로 보느냐는 의문을 넘어 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 불신을 불러온다. 고전은 이런 상황을 오래전부터 경계해 왔다. 『논어』는 “其身正 不令而行(몸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해진다)”고 했다.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격은 능력보다 앞서는 도덕적 정직성이라는 뜻이다. 지금 금융권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은 이 당연한 명제를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 성과 미흡한 리더십의 ‘자리 지키기’는 가장 위험하다. 농협금융은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 1조 6287억원 냈다. 그러나 이는 구조적 체질 개선으로 얻은 성적표라기보다 고금리 국면에서 운 좋게 얻은 이자 장사 덕이 컸다. 그럼에도 일부 인사들은 “성과를 냈다”며 자리를 지키려 하고 있다. 올해 2분기 기준 전체 금융권 PF 익스포저(위험노출) 규모는 약 186.6조원으로 그중 농협금융이 자치하는 부분은 상당하다. 이 같은 ‘버티기 인사’는 조직의 위험을 키우는 불씨가 된다. 새마을금고는 더 심각하다. 최근 몇 년간 전국 곳곳에서 부실 대출·횡령 사건이 잇달아 터졌고, 지난 10년간 118건의 비위 행위가 있었다는 수치도 존재하고 있다. 『대학』이 말한 “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순서처럼, 내부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어떤 외부 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 그러나 새마을금고는 내부통제 실패가 누적된 상황에서도 조직 쇄신이 아니라 ‘현 체제 유지’를 선택하려 하고 있다. 이는 예금자·조합원·납세자의 위험을 키우는 선택일 뿐이다. 리더십의 도덕적 실패는 조직 전체에 번지는 ‘전염병’이다. 금융기관 CEO는 단순한 경영자가 아니다. 윤리 기준을 설정하고 조직문화의 최상층을 만드는 존재다. 그 자리에 문제가 있는 인물이 앉는 순간, 조직은 곧바로 부패의 길로 접어든다. 『중용』은 “君子之道 謹其獨也(군자는 홀로 있을 때 더욱 삼간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도덕성을 지키지 못하는 자는 공적 조직의 수장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농협금융과 새마을금고에서 반복되는 문제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내부 비리, 채용 잡음, 부적절한 의사결정이 있는 인물이 다시 리더 자리에 오르려 한다면, 이는 “사고가 다시 터질까”의 문제가 아니라“언제 터지느냐”의 문제로 바뀐다. 금융기관은 정치적 안배나 조직 내 파벌 균형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맹자』의 말처럼 “無恒産者 無恒心(지속 가능한 기반이 없는 곳엔 지속 가능한 마음도 없다)”는 교훈은 금융조직에 더욱 무겁게 적용된다. 이번 인선의 원칙은 단 하나다. “도덕성과 능력 없는 자는 절대 안 된다” 한국 금융은 지금 전환점에 서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빠르게 움직이고, 디지털 전환·리스크 관리·ESG 규범 등은 잠시라도 뒤처지면 곧바로 부실로 이어진다. 금융 CEO는 수십조 원의 자산을 관리하고 국가 금융안정과 직결된 결정을 내리는 위기관리 전문가여야 한다. 『한비자』가 “任人唯賢(사람을 등용할 때는 오직 능력으로 한다)”고 강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이번 회장 선출에서 지켜야 할 원칙은 명확하다. 성과가 부족한 자, 도덕성 논란이 있는 자, 조직을 사유화하려는 자는. 그 어떤 이유로도 금융기관의 수장이 될 수 없다. 이 원칙을 세우지 못하고 또다시 ‘버티기 인사’가 반복된다면, 해당 조직은 시장의 신뢰를 잃고 그 비용은 결국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다. 기본·원칙·상식에 입각한 인사, 그것이 한국 금융을 다시 세우는 최소한의 출발점이다. 고전의 지혜 역시 같은 말을 반복해 왔다. “正名而天下定(이름을 바로잡으면 세상이 바로 선다)”는 『논어』의 가르침처럼,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개혁이 아니라 리더십의 ‘이름’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한국 금융은 더 이상 무능과 비도덕을 감당할 여유가 없다.
2025-12-08 10:1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