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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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산 사람과 배운 세대가 같은 광장에 섰다"
[경제일보] 46년 전 계엄군의 총구 앞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광주 금남로에 올해는 오월을 직접 겪은 세대와 2000년대생 청년들이 함께 섰다. 한쪽은 “잊히지 않는 기억”을 말했고 다른 한쪽은 ‘배워야 할 역사’를 넘어 ‘지켜야 할 현재’를 이야기했다.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는 ‘오월, 다시 광장을 품다’를 주제로 18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과 옛 전남도청 일원에서 열렸다. 국가보훈부가 주관한 정부 기념식에는 5·18민주유공자와 유족, 정부 인사, 각계 대표, 학생 등 3000여 명이 참석했다. 올해 기념식은 초청장 없이도 금남로 방면 대형 전광판을 통해 시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열린 형식으로 진행됐다. 오월의 현장은 하루 전부터 달라진 분위기를 보였다. 지난 16일 금남로에서는 5·18 46주년 민주평화대행진이 열렸다. 1980년 5월 광주역과 전남대 등지에서 시민들이 도청으로 향했던 행진을 재현한 행사에는 학생과 시민 등 약 2000명이 참여했다. 행렬이 금남로에 들어서자 시민들은 박수로 맞았고 학생들은 손수 만든 주먹밥을 참가자들에게 건넸다. 주먹밥은 오월을 설명하는 가장 짧은 언어였다. 1980년 광주 시민들이 서로에게 나눴던 밥은 올해 청년들의 손에서 다시 건네졌다. 총성과 공포의 기억은 더 이상 교과서 속 문장으로만 남지 않았다. “가자, 도청으로”라는 구호와 “오월 정신 헌법에”라는 외침이 금남로를 메웠고 광장은 추모를 넘어 민주주의를 배우는 공간이 됐다. 오월을 겪은 세대에게 광장은 여전히 상처의 장소다. 국립5·18민주묘지에서는 지난 17일 46주년 추모제가 엄수됐다. 유족과 오월어머니, 5·18단체 관계자 등 500여 명이 참석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고 참석자들은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유족들은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이 무산된 데 깊은 유감을 표하며 오월 정신을 민주주의와 공동체 가치로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 세대에게 광장은 새롭게 해석되는 공간이다.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는 올해 슬로건 ‘오월의 꽃, 오늘의 빛’에 대해 “1980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스러져 간 영령들을 기리고 그날의 용기가 오늘의 광장 기억으로 다시 소환됐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위경종 상임행사위원장은 “어느새 50주년이 가까워지는 5·18이 미래 세대에게 이관되기 위한 중요한 전초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말처럼 올해 행사는 청년과 청소년 참여에 무게를 실었다. 전남 지역 기념행사에서는 청춘 서포터즈를 중심으로 5·18 사적지 답사와 민주역사 교육이 추진됐고 K팝 댄스와 학교밴드 공연 등 청소년 참여 무대도 마련됐다. 원주 등 광주 밖 지역에서도 오월사진전과 주먹밥 나눔, 헌법 전문 수록 시민서명 캠페인이 열렸다. 오월은 광주 안의 역사에 머물지 않고 전국의 시민교육과 문화행사로 확장됐다. 세대 간 대화의 핵심은 “기억을 어떻게 넘길 것인가”에 있었다. 오월세대는 당시의 공포와 연대, 침묵을 강요당했던 시간을 증언한다. MZ세대는 그 증언을 듣고 묻는다. 왜 아직 발포 명령자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는지 왜 헌법 전문 수록은 매번 정치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지, 왜 왜곡과 폄훼는 반복되는지다. 올해 기념식이 복원을 마친 옛 전남도청 일원에서 열린 것도 상징적이다. 옛 전남도청은 1980년 5월 시민군이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최후 항쟁지다. 기념식에서는 복원된 도청을 배경으로 국기 게양식이 진행됐고 기념 공연과 특별공연을 통해 오월의 기억을 현재의 언어로 다시 불러냈다. 청년 세대에게 5·18은 더 이상 ‘먼 과거’만은 아니다. 지난 비상계엄 정국 이후 광장의 민주주의가 다시 호출되면서 오월은 한국 민주주의의 현재형 언어로 돌아왔다. 행사위원회가 올해 슬로건에 ‘오늘의 빛’이라는 표현을 담은 것도 이 때문이다. 1980년 광주의 용기가 오늘의 시민들에게 다시 확인됐다는 의미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흐려진다. 그러나 증언은 들을 사람이 있을 때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 올해 광장에 선 오월세대와 MZ세대의 만남은 그 계승의 장면이었다. 한 세대는 “잊지 말라”고 말했고 다른 세대는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물었다. 46년의 시간은 두 세대를 갈라놓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광장에 세웠다. 5·18은 이제 추모의 날을 넘어 시민의 질문이 됐다. 오월을 겪은 세대의 기억이 청년 세대의 언어로 바뀌고 광장의 함성이 학교와 지역, 온라인과 문화행사로 옮겨갈 때 오월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가 된다. 올해 광주가 보여준 달라진 추모 분위기는 그래서 더 조용하지만 선명했다. 오월은 기억의 역사를 넘어 다시 현재와 대화하는 역사로 이어지고 있었다.
2026-05-18 1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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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열린 광장, 달라진 추모…46년 만에 오월은 시민 곁으로 왔다
[경제일보]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8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과 옛 전남도청 일원에서 열렸다. 올해 기념식의 주제는 ‘오월, 다시 광장을 품다’였다. 1980년 5월 시민들이 모여 민주주의를 외쳤던 광장에서 오월 정신을 다시 시민의 일상으로 확장하자는 의미가 담겼다. 올해 기념식의 가장 큰 변화는 장소와 형식이었다. 행사는 5·18민주유공자와 유족, 정부 인사, 각계 대표, 학생 등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국민의례, 주제 영상, 현장 선언, 기념사, 기념 공연, 특별공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순으로 약 50분간 이어졌다. 초청장이 없는 시민들도 금남로 방면 LED 전광판을 통해 함께할 수 있도록 ‘열린 기념식’으로 마련됐다. 무대의 중심에는 복원을 마친 옛 전남도청이 있었다. 옛 전남도청은 1980년 5월 27일 새벽 시민군이 마지막까지 계엄군에 맞섰던 최후항쟁지다. 올해 기념식에서는 복원된 도청을 배경으로 국기 게양식이 진행됐다. 1980년 당시 마지막 가두방송을 맡았던 박영순씨가 국기에 대한 경례문을 낭독하며 그날의 기억을 불러냈다. 기념 공연도 달라진 추모 분위기를 보여줬다. 5·18을 소재로 한 시와 소설, 일기 낭독이 무대에 올랐고, 5·18민주유공자인 고 박효선 열사가 주축이 돼 창단한 극단 ‘토박이’가 참여했다. 특별공연에서는 광주시립발레단의 퍼포먼스와 미디어아트가 결합돼 복원된 옛 전남도청과 광장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재현했다. 기념식 전날부터 광주의 추모 분위기는 고조됐다. 국립5·18민주묘지에는 유가족과 시민들의 참배가 이어졌고,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는 전야제가 열렸다. 추모제에서는 46년 전 국가폭력 앞에서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을 지켜낸 희생자들을 기리는 제문 낭독과 분향이 이어졌다. 묘역의 분위기는 차분하면서도 무거웠다.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이 무산된 데 대한 아쉬움과 최근 금남로 일대 극우 성향 집회에 대한 불편한 시선도 시민들의 표정에 남아 있었다. 대학생 참배객들은 고 윤상원 열사 묘소를 시작으로 항쟁 당시 희생자들의 사연을 들으며 묘역을 돌았다. 그러나 올해 오월의 추모는 침묵에만 머물지 않았다. 광장과 금남로 일대에서는 전시, 공연, 시민 참여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광주시와 5·18기념재단 등에 따르면 이달 말까지 학술대회, 전시, 공연, 시민난장 등 141개 기념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주먹밥 나눔, 민중미술 체험, 청년 오월굿즈 박람회 등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46주년 기념식의 메시지는 ‘기억의 장소’에서 ‘참여의 광장’으로 옮겨가는 데 있었다. 과거 5·18 기념식이 묘역 중심의 엄숙한 추모에 방점을 찍었다면, 올해는 옛 전남도청과 5·18민주광장을 중심으로 시민 누구나 참여하는 형식을 강화했다. 오월을 특정 세대와 지역의 기억에 가두지 않고, 민주주의와 인권, 공동체의 가치로 확장하려는 변화다. 정치권의 시선도 광주로 향했다. 여야 지도부와 정부 인사들이 기념식에 참석하면서 5·18 정신 계승과 국민통합 메시지가 다시 부각됐다. 다만 헌법 전문 수록과 진상규명, 왜곡·폄훼 대응 등 미완의 과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올해 광주의 오월은 더 넓어진 광장으로 돌아왔다. 복원된 도청은 1980년의 마지막 밤을 증언했고,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46년 전의 희생을 오늘의 민주주의 언어로 다시 불렀다. 추모는 엄숙했지만 닫혀 있지 않았다. 5·18은 다시 광장을 품었고, 광장은 다시 시민을 불러 세웠다.
2026-05-18 11:5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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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을 가득 채운 사람들 그날은 무사히 넘어갔다
[경제일보] 2026년 5월 1일 오전, 성수동 골목이 멈춰 섰다. 포켓몬 탄생 30주년을 기념해 열린 ‘포켓몬 메가페스타’였다. 특정 장소를 돌며 스탬프를 찍으면 선착순으로 ‘잉어킹’ 카드를 준다는 공지가 나가자, 연휴 첫날 아침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처음에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줄이 길어지고, 사람들 사이 간격이 조금씩 좁아진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흐름이 끊겼다. 앞은 막히고 뒤는 계속 밀려온다. 빠져나오려다 포기했다는 말이 나오는 지점이다. 통신까지 불안정해졌다는 얘기도 이어졌다. 행사는 점심 무렵 중단됐다. 더 밀리기 전에 끊은 판단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다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은 다른 문제로 남는다. 이 상황을 두고 결국 남는 질문은 하나다. 이 정도로 사람이 몰릴 것을 미리 내다볼 수 있었는지다. 단순히 사람이 많았다는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선착순으로 한정 물량을 특정 장소에서 지급하는 방식은 이미 여러 차례 비슷한 장면을 만들어왔다. 특정 시간과 공간으로 사람이 쏠린다. 여기에 성수동이라는 공간이 겹친다. 골목은 넓지 않고, 한 번 흐름이 막히면 쉽게 풀리지 않는다. 이 정도 조건이라면, 밀집 자체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에 있었다고 보는 쪽이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넘어간다. 피할 방법이 있었는지다. 시간을 나누거나, 인원을 나누거나, 장소를 분산하는 선택지는 특별한 대책이라기보다 기본에 가깝다. 실제로 규모가 큰 행사들은 이런 방식으로 밀집을 나눈다. 선택지가 전혀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같은 방식이 유지됐다면, 그 판단이 적절했는지는 따져볼 문제로 남는다. 다중이 모이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낸 이상, 그에 따른 위험까지 함께 관리해야 하는 범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행정의 역할도 비켜가기 어렵다. 일정 규모 이상의 인파가 예상되는 행사라면 형식과 명칭을 떠나 최소한의 관리 기준이 작동해야 한다. 현실에서는 기업 이벤트가 그 경계에 놓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규모는 커졌지만 관리 방식은 그만큼 따라오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번에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대로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런데 현장에서 나온 말들을 보면, 단순한 혼잡으로만 보기도 어렵다. 사람들이 많았다는 정도가 아니라, 움직이기 쉽지 않은 상태로 쌓였다는 점이 계속 남는다. 결국 남는 것은 방식이다. 사람이 몰린 것이 문제가 아니라, 몰릴 수밖에 없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방식이 어떤 결과를 부르는지는 이미 여러 번 확인된 바 있다. 그날 성수동은 무사히 넘어갔다. 다만 그 결과까지 당연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같은 장면이 다시 만들어진다면, 다음에는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2026-05-02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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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겠다던 약속, 우리는 지키고 있는가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는 오늘, 다시 4월의 바다 앞에 선다. 진도 팽목항과 안산의 추모 공간에는 여전히 노란 리본이 바람에 흔들리고 그날을 기억하려는 발걸음이 이어진다. 우리는 12년 전 그 비극 앞에서 무너졌고 다시는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기억은 점점 옅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당시 우리는 얼마나 깊이 아파했는가. 304명의 이름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그 말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약속이었다. 법적 구속력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였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그 약속을 무겁게 만든다. 크고 작은 안전사고와 인명 피해는 여전히 반복된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분노하고 슬퍼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무뎌진다. 이는 단순한 망각이 아니라 구조적 무감각의 징후다. 안전을 비용으로 여기고, 생명을 효율로 환산하는 인식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고전은 이를 오래전에 경고했다. 『도덕경』은 “輕則失根, 躁則失君(경즉실근, 조즉실군)”이라 했다. 경솔하면 근본을 잃고 조급하면 가장 중요한 것을 잃는다는 뜻이다. 안전을 가볍게 여기고 눈앞의 이익에만 매달린 사회는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을 잃는다. 세월호 참사는 그 ‘잃어버린 근본’이 무엇인지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논어』 또한 말한다.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군자유어의, 소인유어리)”. 공동의 안전과 책임보다 이익을 앞세울 때 그 대가는 결국 사회 전체가 치르게 된다. 세월호는 단순한 해상 사고가 아니라 책임의 부재와 시스템의 붕괴, 그리고 생명을 대하는 왜곡된 인식이 빚어낸 사회적 참사였다. 우리는 그날 이후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질 때에만 의미가 있다. 기억은 행동으로 이어질 때에만 살아 있다. 추모가 의례에 머무른다면 그것은 또 다른 망각일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의 태도다. 안전을 비용이 아닌 기본으로 인식하는 사회, 규정을 형식이 아닌 생명의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문화, 작은 위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민 의식이 그것이다. 국가와 제도의 역할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모두가 ‘안전의 주체’가 될 때 변화는 시작된다. 세월호의 아픔은 끝난 과거가 아니다. 유가족의 시간은 여전히 멈춰 있고 진실을 향한 질문도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지는 선택이다. 12년 전 우리는 약속했다. 잊지 않겠다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그 약속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하다. 오히려 더 절실하다. 반복되는 사고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그 약속을 지키고 있는가. 기억은 책임이고 책임은 행동이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일은 과거를 붙드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더 이상 희생 위에서 배우는 사회여서는 안 된다. 그날의 바다를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이다.
2026-04-16 11:4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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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를 지키려거든, 조희대는 물러가라
[이코노믹데일리] 사법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눈길이 예전 같지 않다. 단순한 불신을 넘어, “이 법원이 정말 공정한가”라는 질문이 일상적인 의문이 됐다. 특정 판결 하나에 대한 반발이 아니다. 절차와 태도, 그리고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이 누적된 결과다. 그 중심에 조희대 대법원장이 있다. 양승태 대법원 시절의 사법농단이 외부 권력과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비롯된 위기였다면, 지금의 문제는 사법 스스로 정치적 오해를 자초한 것 아니냐는 의심에서 비롯됐다. 부산지법 김도균 부장판사가 내부망에 남긴 글은 그 기류를 분명히 드러낸다. 이례적인 절차 운용은 정치적 편향이라는 비판을 부를 수 있고, 이는 법원의 신뢰를 잠식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현직 판사가 최고법원의 재판 방식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한 장면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내부에서조차 납득하지 못하는 절차라면, 국민이 선뜻 신뢰하기는 더 어렵다. 논란의 출발점은 전원합의체 회부 과정이었다. 2025년 4월 22일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소부에 배당하자마자 직권으로 전원합의체에 넘겼다. 그날 바로 첫 합의기일이 열렸고, 이틀 뒤 두 번째 기일이 진행됐다. 회부 9일 만에 선고기일이 지정됐다. 속도만 놓고 보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전원합의체 회부는 대법원장의 권한이다. 문제는 그 권한을 행사한 맥락과 방식이다. 6만여 쪽에 달하는 기록이 두 차례 합의만으로 충분히 검토됐는지, 연구관 보고와 주심 대법관의 검토가 얼마나 충실히 이뤄졌는지에 대해 대법원은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청주지법 송경근 부장판사가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한 것도 이 지점이다. 위법 여부를 다투는 차원이 아니라, 최고법원이 스스로 절차적 신뢰를 충분히 확보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최고 사법기관의 판단은 합법이라는 형식만으로 존중받지 않는다. 납득 가능한 과정이 전제돼야 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왜 그처럼 서둘러야 했는지, 왜 전원합의체라는 중대한 절차를 즉각 가동했는지 국민 앞에서 설명하지 않았다. 침묵은 때로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사법 수장의 침묵은 설명 책임을 다하지 않는 태도로 읽힐 위험이 더 크다. 정치권은 곧바로 움직였다. 더불어민주당 사법개혁특위는 대법관 수를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내놓았다. 개혁안의 타당성과는 별개로, 사법 리더십이 정치적 논쟁의 핵심 변수로 부상한 현실은 사법부에 부담이다.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 아래에서는 의미 있는 개혁이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사법부가 정치적 계산의 대상이 된 상황에서 그 책임을 온전히 외부로만 돌릴 수는 없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재판의 독립을 강조했다. 법관들에게 헌법만을 믿고 당당히 재판하라고 당부했다. 원칙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독립은 선언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지도자의 태도가 스스로 의혹을 차단하지 못한다면, 그 말은 힘을 잃는다. 공자는 말했다. “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기신정 불령이행 기신부정 수령불종)” 몸이 바르면 명하지 않아도 따르고, 몸이 바르지 않으면 명해도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최고 사법기관의 수장이 의심받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독립을 강조해도 설득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5부 요인 오찬 자리에서 사법부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했다. 알고 있다는 인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설명과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지금까지는 원칙의 언어가 앞섰고, 구체적 해명은 보이지 않았다.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에 침묵을 택한 리더십은 결국 책임의 문제로 돌아온다. 대법원장직은 개인의 영예가 아니다. 사법부 전체를 상징하는 자리다. 사법개혁 논의가 인물 공방으로 흐르며 제도 설계 논의가 가려지고 있다면, 그 자체가 사법부의 부담이다. 논란이 계속되는 한 사법부 전체의 신뢰도 함께 소모된다. 맹자는 “民為貴 社稷次之 君為輕(민위귀 사직차지 군위경)”이라 했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나라가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는 뜻이다. 공공의 신뢰가 흔들릴 때 지도자의 자리는 절대적일 수 없다. 사법 신뢰가 최우선 가치라면, 개인의 임기는 그보다 가볍다. 지금 문제는 판결의 결론이 옳았는지 여부를 넘어선다. 최고 사법기관의 수장이 국민적 의문에 충분히 응답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그로 인해 사법부 전체가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됐다는 점이 본질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그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선택이 조희대 대법원장 앞에 놓여 있다. 논란을 끌고 가며 사법부를 계속 소모시키는 길과, 책임을 짊어지고 결단하는 길이다. 사법부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복잡하지 않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물러나야 한다. 그것이 사법부의 신뢰를 되살리는 첫걸음이다.
2026-02-20 09:4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