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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 60% 시대'의 경고, 얄팍한 '예산 만능주의'를 경계한다
[경제일보] 대한민국 국가채무의 시계가 가파르게 돌고 있다. 최근 발표된 2025 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국가채무(D1)는 1천304조 5천억 원을 기록했다. 1년 새 무려 129조 원이 늘어난 수치로, 이는 건국 이래 최대 폭의 증가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30년 우리나라의 일반정부부채(D2) 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64.3%에 달할 것이라 경고했다. 불과 반년 전 전망치를 5%포인트 이상 끌어올린 수치다. 일본이나 독일 등 주요 선진국들이 부채 비율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는 것과 대조를 이루며, 우리 재정의 ‘나 홀로 악화’가 현실화되고 있다. 언론인으로서 40여년 우리 경제의 영욕을 지켜본 필자는 현재의 상황을 단순히 ‘숫자의 위기’로만 보지 않는다. 진짜 위기는 국가 채무를 바라보는 정치권과 당국의 ‘심리적 안이함’에 있다. 중동 전쟁 등 대외적 악재로 인해 나라 경제가 어렵다는 핑계로, 모든 난관을 ‘추가경정예산(추경)’이라는 마약 같은 처방으로 해결하려는 ‘예산 만능주의’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지혜를 담은 서경(書經)》에는 ‘인불상(忍弗祥)’이라는 말이 나온다. 상서롭지 못한 일을 억지로 참지 말고 경계하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정치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뒤에 올 재앙을 참고 넘겨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지금 정치권이 쏟아내는 선심성 예산과 추경론은 당장의 고통을 잊게 하는 진통제일 뿐, 미래 세대의 곳간을 헐어 쓰는 ‘세대 간 도둑질’에 다름 아니다. 재정 건전성은 국가 안보의 마지막 보루다. 국가 부채비율이 60%를 넘어서면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자체의 체급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신용등급 강등은 외자 유출과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민생 경제를 더욱 도탄에 빠뜨리는 악순환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채무의 늪’에서 어떻게 탈출해야 하는가. 첫째, ‘재정준칙’의 법제화가 시급하다.곳간에 자물쇠를 채우지 않고 밥을 짓는 이의 선의(善意)에만 의존하는 정치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하는 재정준칙을 법으로 명시하여, 정권의 성향과 관계없이 나라 살림의 원칙을 지켜내야 한다. 둘째, 지출 구조의 전면적인 ‘제로 베이스(Zero-Base)’ 재검토가 필요하다.관행적으로 집행되던 보조금, 실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복지 포퓰리즘 사업들을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논어(論語)》에 이르기를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지나친 예산 투입은 오히려 시장의 자생력을 해치고 관료주의만 비대하게 만든다. 셋째, 경제난 해결의 해법을 ‘정부 지출’이 아닌 ‘규제 혁파와 민간 활력’에서 찾아야 한다.나라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예산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발상은 낡은 패러다임이다. 정부가 돈을 쓰기보다 민간 기업이 돈을 쓸 수 있도록 규제의 모래주머니를 제거해 주는 것이 진정한 상책(上策)이다. 기업의 설비투자와 R&D 투자가 활성화되면 GDP라는 ‘모수(母數)’가 커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채무 비율은 안정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한다.공짜 점심은 없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추경의 단맛’은 훗날 우리 자식들이 갚아야 할 ‘부채의 쓴맛’으로 돌아올 것이다. 유방의 책사 장량이 말했듯, ‘충언역이(忠言逆耳)’바른말은 귀에 거슬리는 법이다. 재정 파탄의 경고음을 ‘비관론자의 기우’로 치부하지 말라. 40년 전 우리가 겪었던 뼈저린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가 재정이 무너진 나라에는 미래도, 자존심도 없다. 이제는 빚으로 연명하는 ‘채무 국가’의 길을 멈추고, 뼈를 깎는 자강(自强)의 길로 들어서야 할 때다. 정부와 정치권은 ‘쉬운 길’인 추경의 유혹을 뿌리치고, ‘옳은 길’인 재정 정상화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국가채무의 시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2026-04-12 19:5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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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는 원유다…AI 산업, '무상 원료' 끝나면 밸류체인 뒤집힌다
※ '강철부대'는 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 등 첨단 산업 경쟁과 기술 전쟁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코너입니다. 보이지 않는 칩부터 글로벌 공급망까지, 산업의 최전선을 '강철부대원'처럼 직접 뛰어다니며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는 주말, 강철부대와 함께 대한민국 산업의 힘을 느껴보세요! <편집자주> [경제일보] 글로벌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업 OpenAI가 '로봇세' 도입 등 세제 개편을 제안하며 AI 산업의 부 재분배 필요성을 제기한 가운데 시장의 시선은 오히려 AI 산업의 '원가 구조'로 향하고 있다. 그동안 사실상 무상에 가까웠던 데이터 활용 방식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AI 산업이 기술 경쟁을 넘어 자원 산업으로 성격을 바꿔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오픈AI는 최근 '지능 시대의 산업 정책' 제안서를 통해 △자동화된 노동에 대한 과세 △고소득 자본 과세 강화 △공공기금 조성 등을 골자로 한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AI 확산으로 노동 소득은 줄고 자본 소득은 증가하는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표면적으로는 초지능 시대에 대비한 정책 제안이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이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AI를 움직이는 핵심 원료인 데이터가 누구의 것이며, 기업이 이를 어떤 경로로 확보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활용에 대해 정당한 대가가 실제로 지급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다. 특히 뉴스·출판물·이미지·개인정보 등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가 학습 과정에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가운데 데이터 생산 주체와 활용 주체 간 권리·보상 체계가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다는 점이 산업 전반의 구조적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AI 산업은 반도체·전력기기·정유 등 전통 제조업과 달리 명확한 원가 체계를 갖추지 않은 채 성장해왔다. 철강 산업이 철광석 가격에, 정유 산업이 원유 가격에 수익성이 좌우되는 것과 달리 AI 기업들은 뉴스, 출판물, 이미지, 개인 데이터 등 핵심 자원을 사실상 무상에 가깝게 활용해왔다. 이 같은 무상 원료 구조는 AI 산업의 고수익성을 떠받친 핵심 기반이었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연산 인프라에는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정작 모델 성능을 좌우하는 데이터에는 가격이 매겨지지 않는 '밸류체인 비대칭'이 고착화된 셈이다. 하지만 이 구조는 점차 균열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언론사와 출판사들이 AI 기업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고 각국에서 개인정보 보호 규제가 강화되면서 데이터 활용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데이터가 더 이상 공짜가 아닌 가격이 붙는 자원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AI 산업의 수익 구조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데이터 비용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던 만큼 사용료가 제도화되면 기업별 비용 부담과 수익성 격차가 빠르게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데이터 확보 능력과 비용 관리 역량이 곧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구조로 전환되는 셈이다. 최근 논의되는 '로봇세' 역시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지만 업계에서는 방향이 다소 어긋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동화로 인한 이익을 사후적으로 과세해 분배하겠다는 취지이지만 시장에서는 사후 과세 이전에 데이터 제공 주체에 대한 사전 보상 체계가 우선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AI 기업들이 공공기금 조성이나 수익 공유를 제안하고 있지만 이는 미래 분배 구조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현재 발생하고 있는 저작권 침해, 개인정보 활용, 노동 대체 과정에서의 보상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비용 부담 논의는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결국 AI 산업은 현 시점 '기술 경쟁'에서 '자원 경쟁'으로 넘어가는 분기점에 서 있다. 반도체가 연산 능력을, 데이터가 성능과 수익성을 좌우하는 구조에서 데이터는 더 이상 부수적 요소가 아닌 핵심 원료로 자리 잡고 있다. 업계에서는 데이터 사용료 체계가 본격 도입될 경우 AI 기업의 사업 모델과 시장 내 경쟁 구도 전반이 다시 짜일 것으로 보고 있다. 데이터 확보 전략, 비용 설계, 그리고 이를 둘러싼 규칙을 누가 먼저 정립하느냐가 향후 산업 주도권을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강철부대의 시선이 머무는 곳, AI 산업의 경쟁 기준은 이미 바뀌고 있다. 연산 능력과 알고리즘 성능이 시장을 좌우하던 시대를 지나 데이터 확보 방식과 비용 구조 설계가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원가 경쟁' 단계로 전환되는 흐름이다. 더 이상 중요한 것은 연산 속도만이 아니다. 데이터의 출처를 정당하게 확보하고 그 대가를 설계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이를 지속 가능한 비용 구조로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이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기술이 아니라 데이터를 둘러싼 질서를 설계할 수 있는 기업만이 다음 판에서 살아남는다.
2026-04-12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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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正名)' 잃은 노란봉투법, 갈등의 불씨인가 상생의 토대인가
[경제일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입법 취지는 분명하다. 하청·비정규 노동자의 교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는 취지 못지않게 ‘작동 방식’이 중요하다. 최근 사기업 현장에서 하청노조와의 첫 분리교섭이 결정되면서, 법이 의도하지 않았던 혼란이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 “도대체 누구와 교섭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 앞에 서게 된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사용자 개념의 확장과 교섭 구조의 불명확성에 있다. 원청이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이유로 교섭 당사자로 지목될 경우, 법적 책임과 협상 의무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이는 곧 복수의 교섭 창구, 중첩된 책임, 끝나지 않는 협상의 가능성을 낳는다.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 예측 가능성이 크게 훼손되고, 노동조합 역시 협상의 상대가 분산되면서 실질적 성과를 내기 어려워질 수 있다. 『논어』에서 공자는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고 했다. 지금의 혼란은 바로 이 ‘정명(正名)’의 실패에서 비롯된다. 누가 사용자이며, 누가 교섭 당사자인지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가 먼저 달려나가니, 현장은 방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문제는 법 적용의 경계가 지나치게 넓고 추상적이라는 점이다. ‘실질적 지배력’이라는 개념은 해석의 여지가 크다. 이는 결국 개별 사업장마다 다른 기준이 적용될 수 있음을 의미하고, 그 자체로 법적 불확실성을 키운다. 『도덕경』은 “법이 많을수록 도적이 많아진다(法令滋彰 盜賊多有)”고 경고한다. 규제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혼란과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법의 양이 아니라 법의 명확성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첫째, 사용자 범위와 교섭 책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원청의 책임을 인정하되, 그 범위를 계약 구조와 지배력의 정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구분하는 정교한 기준이 필요하다. 둘째, 교섭 창구를 일원화하거나 최소한 조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 복수 교섭이 불가피하다면, 이를 조정하는 중립적 기구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셋째, 분쟁 해결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는 교섭이 곧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노동위원회 등 공적 조정기구의 전문성과 권한을 확대해, 초기 단계에서 갈등을 흡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기업과 노동계 모두 책임 있는 태도가 요구된다. 법의 빈틈을 이용해 극단으로 치닫는 전략은 결국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 맹자는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過猶不及)”고 했다. 노동권 보호라는 명분이 지나치면 시장 질서를 해치고, 반대로 기업의 효율성만 강조하면 노동의 존엄이 훼손된다. 지금의 노란봉투법 논란은 이 균형의 문제를 다시 묻고 있다. 앞으로의 방향은 분명하다. 노동권 보호와 산업 경쟁력은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설계해야 할 ‘이중의 목표’다. 법은 이상을 선언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입법 이후의 ‘정교한 보완’이 필수적이다. 시행령과 가이드라인을 통해 해석의 폭을 줄이고, 이해당사자 간의 사회적 합의를 지속적으로 축적해 나가야 한다. 결국 제도의 성패는 균형과 신뢰에 달려 있다.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갈 것인가의 문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노란봉투법이 갈등의 불씨가 아니라 상생의 토대가 되기 위해서는,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법은 분쟁을 키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질서를 세우기 위해 존재한다는 그 단순한 상식 말이다.
2026-04-11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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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 시장의 재편, '검사 출신'의 시대가 끝났다
[경제일보] 서울 강남의 한 대형 로펌. 2021년 무렵, 익숙하지 않은 회의가 열렸다. 의제는 ‘경찰 출신 변호사 영입’이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 회의실의 관심사는 어느 검사장을 데려오느냐였다. 수사권 조정 직후였다. 경쟁의 출발점이 달라지고 있었다. 경찰이 수사를 끝내는 체계에서 수사 단계에서 사건을 붙들지 못하면 대응의 주도권을 놓친다는 인식이 빠르게 퍼졌다. 전관 시장 재편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검찰 전관의 시대는 권한에서 출발했다. 수사와 기소, 공소 유지까지 한 기관이 맡는 체계에서 검사는 사건의 흐름을 좌우하는 자리에 있었다. 어떤 혐의로 입건할지, 기소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지, 법정에서 어떤 증거를 앞세울지 모두 검사의 손에 달려 있었다. 이 체계에서 ‘아는 검사’는 단순한 인맥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검찰청 내부 관행, 특정 부서의 판단 기준, 사건 처리 방식에 대한 비공식 정보가 전관 프리미엄의 실체였다. 검찰총장 출신이 대형 로펌 고문이나 대표로 옮기고, 특수부장 출신에게 수억원대 착수금이 붙는 시장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그 질서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변화는 대형 로펌에서 먼저 감지됐다. 법무법인 세종은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 출신 변호사들로 구성된 전담팀을 꾸렸다. 이후 주요 로펌들도 잇따라 경찰 출신 인력을 영입했다. 단순히 숫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었다. 일부 로펌은 경찰 재직 경력을 법조 경력에 준해 인정하는 방식까지 도입했다. 전관 시장의 평가표 자체가 바뀌고 있었던 셈이다. 변화는 경찰 출신에 그치지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규제 기관 출신 확보 경쟁도 이어졌다. 기업 규제 환경이 복잡해지면서 행정과 규제 영역을 이해하는 인력의 가치가 커졌기 때문이다. 한때 전관 시장의 중심축이 검찰 출신 일색이었다면, 이제는 수사기관과 규제기관 전반으로 수요가 분산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경찰 출신 변호사들이 독자 로펌을 세우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법무법인 YK가 대표적이다. 수사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하고 초기 대응 전략을 세우는 방식이다. 기존 대형 로펌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장에 들어오는 이들까지 등장하면서 전관 시장은 더 이상 검사 출신만의 무대가 아니게 됐다. 전관 프리미엄이 약해졌는지를 두고 현장의 평가는 엇갈린다. 다만 한 가지는 비교적 분명하다. 전관의 가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전관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 전관의 역할은 제도 변화로 축소됐다. 직접 수사 범위가 줄었고, 앞으로 수사 기능 상당 부분은 다른 기관으로 넘어간다. 과거처럼 수사 창구로 작동하던 힘은 예전 같기 어렵다. 기업 법무팀에서 검찰 전관을 일종의 안전판처럼 활용하던 오랜 관행도 흔들리고 있다. 전관 한 명만 데려오면 된다는 계산이 더는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물론 기소 단계의 영향력은 여전히 남아 있다. 어떤 혐의를 적용할지, 어떤 증거를 중심에 둘지는 재판 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이 때문에 공소 단계에서의 검찰 출신 네트워크는 당분간 가치를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그것이 곧 시장 전체를 지배하던 과거의 위상까지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의 검사 출신은 형사 절차 전반을 아우르는 존재였지만, 이제는 기소 단계라는 한 축의 전문가로 위치가 좁혀지고 있다. 경찰 전관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수사권 조정 이후 수요는 늘었다. 사건의 향방이 경찰 단계에서 상당 부분 갈리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경찰 내부에서는 전관 영향력에 대해 신중한 시각도 있다. 조직 문화와 의사결정 방식이 검찰과 달라 단순한 인맥만으로 결과를 움직이기 어렵다는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오히려 지금의 전관 시장이 과거와 다른 방향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관 프리미엄의 성격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누구를 아느냐’가 힘이었다면, 지금은 ‘어떤 절차를 읽고 대응하느냐’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수사 초기 대응, 불송치 판단에 대한 대응, 이의신청 전략, 압수수색 단계에서의 대응 방식 등 절차 중심 역량이 사건 결과를 좌우하는 경우가 갈수록 늘고 있다. 로펌이 경찰 출신을 영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연락 창구를 넓히려는 것이 아니다. 수사 초기 단계에서 사건을 관리하고, 기소 전에 방향을 조정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형사사건의 주무대가 검찰청 안쪽에서 경찰 수사 단계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도 생긴다. 경찰 출신 인력이 로펌으로 이동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해충돌 가능성이 제기된다. 수사 공정성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과거 검찰 전관 문제를 둘러싸고 제기됐던 질문이 이제는 경찰과 다른 수사기관을 향해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전관 시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이제 그 시장을 움직이는 중심축이 하나가 아니다. 검찰청 폐지를 앞두고 법조 인재 지도도 다시 그려지고 있다. 중수청 출범 이후에는 해당 기관 출신 인력이 새로운 수요를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 공소청 검사 출신은 기소 단계에서 역할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 출신은 일반 형사 사건 영역에서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공정위와 금감원 등 규제 기관 출신은 기업 법무 분야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검사 출신’이 전관 시장의 정점에 서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앞으로의 전관 시장은 한 직역이 독식하는 시장이 아니다. 수사와 기소, 규제와 대응, 각 절차와 기관의 특성을 얼마나 잘 아느냐에 따라 가치가 갈리는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전관의 이름은 남겠지만, 그 중심에 늘 검사 출신이 서 있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2026-04-10 09: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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