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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추경', 퍼주기 아닌 구조 전환의 결단이어야 한다
[경제일보] 정부가 고심 끝에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결정했다. 대통령의 시정 연설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추경 논의가 시작된다. 지금의 상황은 평시가 아니다.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와 전쟁의 여파는 이미 국내 물가와 산업 현장을 동시에 압박하고 있다. 장바구니 물가는 치솟고, 기업의 생산 라인은 원가 부담에 흔들린다. 이번 추경은 단순한 경기 보완이 아니라, 사실상 ‘전시(戰時) 대응’에 준하는 비상 처방이어야 한다. 그러나 위기 국면일수록 재정의 쓰임은 더욱 엄격해야 한다. 추경은 국민의 세금이자 미래 세대의 부담이다. 정치적 고려가 개입된 ‘나눠먹기식 예산’은 단기적 체감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 물가를 자극하고 재정 건전성을 훼손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지금 필요한 것은 넓고 얕은 지원이 아니라, 좁고 깊은 ‘정밀 타격’이다. 무엇보다 이번 추경의 첫 번째 원칙은 ‘핀셋 지원’이어야 한다. 전쟁 여파로 직격탄을 맞은 계층과 산업은 이미 분명하다.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한계 상황에 몰린 중소 제조업, 고금리와 소비 위축에 동시에 짓눌린 자영업자, 그리고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생계가 위협받는 취약계층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형식적인 지원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이다. “모두에게 조금씩”이 아니라 “절박한 곳에 충분히”라는 원칙이 지켜질 때, 비로소 재정의 효율성과 정당성이 확보된다. 동시에 이번 추경은 ‘현재의 위기 대응’을 넘어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두 번째 축을 분명히 해야 한다. 특히 에너지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은 이번 위기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외부 충격에 따라 경제 전반이 흔들리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단순히 유류세를 낮추거나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은 일시적 완화에 불과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체질을 바꾸는 전략적 투자다. 우선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와 전략 비축 확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특정 지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위기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공급을 유지할 수 있는 물류·비축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비용이 아니라 국가 생존을 위한 보험이다. 아울러 신재생 및 대체 에너지에 대한 투자 역시 속도를 내야 한다. 글로벌 에너지 질서는 이미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기술 개발과 인프라 구축에 선제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에너지 종속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 효율 혁신도 빼놓을 수 없다. 공급을 늘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소비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산업 전반의 고효율 설비 전환과 에너지 절감 기술에 대한 지원은 단기 비용을 넘어 장기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결국 에너지 안보는 ‘얼마나 확보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덜 의존하는가’에서 완성된다. 이제 시선은 국회로 향한다. 추경은 타이밍이 생명이다. 여야가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며 시간을 허비하는 순간, 민생의 고통은 더욱 깊어진다. 국회는 예산 항목 하나하나를 정쟁의 도구로 삼기보다, 국민의 삶이라는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불필요한 사업은 과감히 덜어내되, 민생과 에너지 안보에 직결된 예산은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입법부의 책무다. 지금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번 추경이 또 하나의 ‘단기 처방’으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위기를 계기로 경제 구조를 바꾸는 ‘전환의 출발점’이 될 것인지는 전적으로 정책의 방향과 실행에 달려 있다. 위기는 언제나 기회를 동반한다. 그러나 그 기회는 준비된 선택과 결단이 있을 때만 현실이 된다. 정부와 국회는 이번 추경을 통해 분명한 메시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돈의 배분이 아니라, 국가의 우선순위를 재정의하는 일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칙 아래, 민생을 살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추경 그것이 지금 우리가 반드시 만들어내야 할 답이다.
2026-04-01 09: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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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사업의 주인은 주민인데… 공공 인센티브가 압박 수단 되나"
[이코노믹데일리] 정부가 공공정비사업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사업시행자 지정 후 8년 내 준공할 경우 수수료의 15%를 지원하기로 하면서, 정비사업의 핵심 당사자인 주민의 권리가 사업 속도에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인센티브가 속도 경쟁으로 변질되면 주민 협의 과정이 축소되고 재산권 조정 절차가 형식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6일 국회예산정책처가 공개한 국토교통위원회 예산 분석보고서 역시 같은 문제를 짚었다. 보고서는 “최대 지원을 받기 위해 사업기간을 무리하게 단축할 경우 주민 갈등이나 법적 분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공공재개발·재건축 제도는 2021년 도입됐다. 사업성이 낮거나 갈등으로 장기간 정체된 지역에 공공이 직접 참여해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기존 조합 대신 LH·SH 등 공공기관이 시행자가 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공급대책에서 속도 향상을 이유로 사업시행 수수료 중 15%를 정부가 부담하겠다고 발표했다. 준공 시점을 기준으로 8년 이내면 15%, 초과하면 9.5%만 인정된다. 문제는 이 인센티브가 공공이 주민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21년에 사업시행자로 지정된 5개 사업장이 최대 수수료를 받으려면 앞으로 약 5년 안에 사업인가, 착공, 준공까지 모두 마쳐야 한다. 재건축·재개발 절차 특성상 수백 가구의 재산권을 조정하고 이주·보상·설계 변경 등을 결론내려야 하는데, 이 일정을 단축하려면 주민 의견 수렴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실제 공공정비사업은 도입 이후 올해 9월까지 21곳이 지정됐지만, 사업 인가를 받은 곳은 1곳뿐이다. 속도를 높이는 것보다 주민 설득이 어렵다는 의미다. 일정이 촉박해지면 주민 간 이견이 커지고, 주민과 공공 시행자 사이의 갈등도 누적된다. 이러한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채 밀어붙일 경우 행정소송으로 번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결국 사업은 속도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더 늦어지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예산정책처도 “최대 지원 수령을 중심에 둔 준공기간이 적정한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속도에 치우친 제도가 사업 지연과 갈등 심화를 동시에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다. 공공정비사업의 본래 목적은 난개발을 막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인센티브가 과도한 일정 단축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변질될 경우, 공공 참여는 주민 의사를 반영하는 과정이 아니라 일정 압박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정비사업의 주인은 주민이다. 공공이 사업 속도를 이유로 주민을 뒤로 밀어붙이는 순간, 그 사업은 더 이상 ‘공공’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을 유지하기 어렵다.
2025-11-06 11: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