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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안정에 안주할 때 아니다…외환 방어력 키울 골든 타임이다
[경제일보] 반도체 수출 호조가 한국 경제에 모처럼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급증하면서 외화 유입이 늘었고, 한동안 금융시장을 짓눌렀던 원·달러 환율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고환율과 고물가, 고금리의 삼중고에 시달려 온 우리 경제에는 분명 반가운 변화다. 그러나 지금의 환율 안정이 구조적 체질 개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외부 충격에 대비할 시간을 벌었다는 점에서 더욱 냉정한 대응이 요구된다. 한국 경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개방경제다. 수출이 성장의 버팀목인 만큼 국제 금융시장과 지정학적 변수에도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미국의 금리 정책은 여전히 불확실하고, 미·중 전략 경쟁은 장기화하고 있다. 중동과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험도 해소되지 않았다. 글로벌 공급망 역시 정치와 안보 논리에 따라 언제든 재편될 수 있다. 반도체 호황이 이어진다고 해서 대외 리스크까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환율 안정기에 외환 방어력을 한층 높여야 한다. 외환보유액은 국가 경제의 최후 안전판이다. 시장이 불안할 때는 국가 신용을 지키는 버팀목이고, 외환시장의 과도한 변동을 흡수하는 완충 장치다. 외화가 충분히 유입되는 지금이야말로 외환보유액을 확충할 적기다. 시장 왜곡을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외화를 흡수하고, 유동성이 높은 안전자산 비중을 확대하는 등 보유 자산의 질도 함께 높여야 한다. 거시경제 체질 개선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환율이 안정됐다고 가계부채 위험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기업의 생산성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다. 한계기업 구조조정은 여전히 더디고, 부동산 중심의 자금 쏠림도 지속되고 있다. 재정 건전성 역시 안심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경기 부양에 치우친 단기 처방이 아니라 경제의 기초체력을 키우는 구조개혁이다. 노동과 연금, 규제 개혁을 비롯한 생산성 제고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 외환시장의 안정은 정부 정책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시장의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재정 규율을 확립하며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독립성을 존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기적인 환율 수준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예측 가능한 정책 환경을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 외국인 자금을 붙잡는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다. 우리 경제는 이미 여러 차례 방심의 대가를 치렀다. 1997년 외환위기는 외환 유동성 관리 실패가 얼마나 큰 국가적 재앙을 초래하는지를 보여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역시 충분한 대비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사건이었다. 위기는 늘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왔고, 준비된 나라만이 충격을 최소화했다. 반도체 호황과 환율 안정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그것이 경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면허증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외환보유액을 확충하고 재정 건전성을 강화하며 구조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이다. 경제는 호황기에 미래를 준비한 나라가 위기에서도 살아남는다. 오늘의 환율 안정을 내일의 국가 경쟁력으로 연결하는 것, 그것이 정부와 경제 당국이 놓쳐서는 안 될 시대적 책무다.
2026-07-13 09:2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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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미국행에 청문회·혁신위까지…월드컵 참사가 흔든 한국 축구
[경제일보]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의 후폭풍이 한국 축구 전체를 흔들고 있다. 대표팀의 성적 부진은 감독 책임론에 머물지 않고 대한축구협회의 의사결정 구조, 감독 선임 과정, 선수단 관리, 유소년 육성 시스템, 축구 행정의 투명성 문제로 번지고 있다. 여기에 홍명보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미국 출국 논란, 국회의 청문회 추진 움직임, 문화체육관광부 주도의 ‘K-축구 혁신위원회’ 출범까지 맞물리면서 한국 축구는 사실상 전면적인 재검증 국면에 들어섰다. 귀국 이틀 만에 미국행…커진 ‘책임 회피’ 논란 가장 먼저 논란에 불을 붙인 것은 홍 전 감독의 출국이다. 홍 전 감독은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뒤 지난달 30일 귀국했지만, 불과 이틀 뒤인 2일 미국으로 떠났다. 홍 전 감독은 인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할 얘기는 있는데 언젠가 이야기가 잘 나올 것”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선수단 내분설에 대해서는 “전체적인 내분은 전혀 없었다”고 부인했고, 귀화 선수 옌스 카스트로프의 규율 위반 의혹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문제는 출국 시점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대한축구협회를 상대로 청문회 추진을 검토하고,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과 홍 전 감독의 증인 출석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이뤄진 출국이기 때문이다. 국회 문체위가 축구협회 청문회를 추진하고 있으며 홍 전 감독과 정 회장 등의 출석이 거론된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홍 전 감독의 미국행을 두고 ‘청문회 회피성 출국 아니냐’는 비판이 확산됐다. 물론 홍 전 감독의 출국을 곧바로 ‘도피성’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아직 공식적인 증인 채택이 이뤄진 단계가 아니고 출국을 제한할 법적 근거도 없다. 가족이 있는 미국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한 개인 일정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축구계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다. 대표팀이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직후 핵심 책임자로 지목된 인물이 충분한 설명 없이 해외로 떠난 것은 공적 책임의 측면에서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축구계 한 관계자는 “법적으로 문제 삼기 어렵다는 점과 별개로 국민적 실망이 큰 상황에서 감독이 직접 설명하고 책임지는 절차가 필요했다”며 “지금의 논란은 출국 자체보다 설명 부재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축구 행정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홍명보 전 감독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대표팀 운영과 협회 의사결정 구조가 얼마나 폐쇄적으로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감독 선임 논란부터 선수단 갈등설까지…쌓였던 불신 폭발 이번 월드컵 부진은 경기력 문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홍명보호는 대회 전부터 감독 선임 절차의 공정성 논란에 시달렸다. 클린스만 전 감독 체제 이후 대표팀 정상화가 시급한 상황이었지만 새 감독 선임 과정은 투명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력강화위원회와 협회 수뇌부가 어떤 기준으로 후보군을 압축했고 왜 홍 전 감독을 최종 선택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지 않았다.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은 그동안 축적된 불신을 한꺼번에 폭발시킨 계기가 됐다. 선수단 내부 갈등설도 논란을 키웠다. 홍 전 감독은 “전체적인 내분은 없었다”고 부인했지만, 팬들의 의문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손흥민 등 핵심 선수 기용 문제, 일부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 귀화 선수 활용과 규율 관리, 전술적 일관성 부재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대표팀 내부 사정을 둘러싼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확산된 것은 그 자체로 대표팀 소통 시스템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성적이 좋았다면 묻혔을 문제가 성적 부진과 결합하면서 감독 리더십과 협회 관리 능력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 셈이다. 국회 청문회 추진…정몽규 체제도 심판대 정치권도 움직이고 있다. 국회 청문회가 현실화될 경우 쟁점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될 전망이다. 먼저 감독 선임 과정의 적정성이다. 또 월드컵 준비와 대표팀 운영의 책임 소재다. 여기에 대한축구협회 거버넌스와 정몽규 회장 체제의 구조적 문제다.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는 대한축구협회의 독선과 무능이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회 차원의 대책을 논의하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축구계에서는 청문회가 단순한 망신주기식 책임 추궁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감독 선임 과정의 회의록 △후보군 평가 기준 △협회 내부 의사결정 라인 △대표팀 지원 체계 △기술위원회 기능 등을 구체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체육계 인사는 “누가 사과하고 물러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왜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라며 “청문회가 열린다면 협회 운영 구조와 대표팀 시스템을 점검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성 앞세운 혁신위 출범…‘보여주기식 쇄신’ 넘을까 문체부도 별도 대응에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휘영 장관과 박지성 FIFA 분과위원회 위원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K-축구 혁신위원회’를 오는 6일 출범시키기로 했다. 혁신위에는 이영표·박주호 해설위원 등 축구인과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김승희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 조연상 프로축구연맹 사무총장, 유영근 변호사, 김대희 부경대 교수 등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혁신위는 축구 거버넌스, 유소년 선수 육성, 첨단 기술 시스템 도입 등 한국 축구의 중장기 과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박지성 공동위원장은 “현장에서 논의된 다양한 고민을 담아 대한민국 축구가 나아갈 방향을 함께 설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휘영 장관도 혁신위가 주요 과제를 종합적으로 논의하고, 신뢰받는 축구인들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축구의 비전이 수립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축구협회 운영 문제를 단순 감사 차원이 아니라 구조개혁 의제로 끌어올리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만 혁신위가 실질적인 개혁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한국 축구는 월드컵 실패 때마다 쇄신을 약속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책임은 흐려지고 제도 개선은 미뤄졌다. 유소년 육성, 기술 철학 정립, 지도자 시스템 개선, 협회 투명성 강화는 오래전부터 제기된 과제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위원회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권한으로 무엇을 바꾸고 언제까지 실행할 것인지를 명확히 하는 일이다. 한국 축구의 상대는 이제 ‘불투명한 시스템’ 스포츠정책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한국 축구의 ‘거버넌스 위기’로 본다. 한 체육계 인사는 “대표팀 감독 선임부터 월드컵 평가까지 모든 과정이 사후적으로 설명되는 구조에서는 국민 신뢰를 얻기 어렵다”며 “협회가 스스로 투명성을 높이지 못하면 국회와 정부의 개입 명분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 축구는 지금 세 개의 심판대 앞에 서 있다. 팬들은 성적 부진의 책임을 묻고 있다. 국회는 협회 운영의 투명성을 따지려 한다. 정부는 혁신위를 통해 구조개혁의 방향을 제시하려 한다. 홍명보 전 감독의 미국 출국 논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지만 더 넓게 보면 책임 있는 설명과 투명한 의사결정이 실종된 한국 축구 행정의 민낯을 드러낸 장면이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월드컵은 끝났지만 한국 축구의 진짜 평가는 이제 시작됐는데 상대는 더 이상 조별리그 상대국이 아니다”라며 “불투명한 감독 선임, 폐쇄적 협회 운영, 책임 없는 리더십, 반복되는 임시방편이 한국 축구가 넘어야 할 진짜 상대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번에도 성적 부진을 몇몇 개인의 사퇴로만 봉합한다면 다음 월드컵에서도 한국 축구는 같은 질문 앞에 다시 서게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2026-07-03 15:3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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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1000억 달러의 착시(錯視)와 민생 재정 투입의 엄중한 원칙
[경제일보] 우리 경제가 다시 한번 대기록을 세웠다. 반도체 경기 호황과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의 선전에 힘입어 지난 6월 한 달간 수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1000억 달러 고지를 돌파한 것이다. 단일 월간 수출이 세 자릿수 빌리언(Billion) 달러를 기록한 것은 대한민국 무역사상 전례가 없는 쾌거다. 거시 경제 지표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 역시 일제히 상향 조정되며 숫자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지표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리 썩 좋아할 수만 없다. 수출 전선의 승전고가 들려오는데도, 서민들이 체감하는 골목상권의 체감온도는 여전히 한겨울 한복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수출 대기업이 벌어들인 온기가 내수 시장 전체로 흘러가지 못하는 소위 ‘성장의 동조화 단절’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낙수효과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고물가와 고금리의 장기화로 신음하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그리고 실질소득 감소에 지친 평범한 가정의 한숨뿐이다. 이런 괴리를 메우겠다며 최근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민생회복’을 내걸고 대규모 재정 지원 사업을 쏟아내고 있다. 선심성 현금성 지원부터 지역 화폐 확대, 무분별한 복지성 예산 편성 등 종류도 다양하다. 서민의 어려움을 살피겠다는 취지 자체를 탓할 수는 없으나, 지금 정치권이 보여주는 재정 투입의 속도와 방식은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그 동안 국가 재정과 경제 정책을 지켜보면서 얻은 불변의 상식은 하나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며, 위기일수록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 지표가 좋다는 이유로, 혹은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잡겠다는 계산으로 국가 곳간을 쉽게 열어서는 안 된다. 현재 대한민국 국가 채무는 이미 경계선을 넘어섰고, 지방자치단체들의 재정 자립도 역시 바닥을 기고 있다. 중앙정부의 세수 결손이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지자체마저 빚을 내어 민생회복이라는 단기 처방에 올인한다면, 이는 미래 세대의 자산을 가로채 현재의 고통을 잠시 잊으려는 마약성 처방과 다름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차별적인 재정 살포가 아니라, 현재의 국가 및 지방 재정 상태에 대한 냉정하고 면밀한 현황 점검이다. 가용한 재원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고, 어디에 얼마만큼의 예산을 투입해야 가장 효율적인 정책 효과가 나타날지 송곳처럼 날카로운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돈을 쓰는 일은 언제 해도 늦지 않다. 그러나 한 번 잘못 흘러간 재정은 다시 회수할 수 없으며, 불필요하게 풀린 유동성은 어렵게 잡아두고 있는 물가를 자극해 서민 경제를 더 깊은 도탄에 빠뜨리는 부메랑이 될 뿐이다. 수출 호조라는 착시 효과에 가려진 내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정교하고 구조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단순히 1회성 현금을 쥐여주는 미봉책으로는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근본적으로 되살릴 수 없다. 자영업자의 한계 상황을 유예해 주는 금융 지원의 정밀화, 취약계층을 겨냥한 핀셋형 선별 복지, 그리고 기업들이 국내 소비 유통망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돕는 규제 완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의 펀더멘털을 강화하는 구조 개혁 없이 재정 만능주의에 기대는 것은 정책적 태만이자 직무유기다. 정치권과 행정부는 숫자가 주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수출 1000억 달러는 분명 축하할 일이지만, 그것이 민생의 구원투수가 될 수는 없다.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지키는 것은 나라의 명운이 걸린 마지노선이다. 선심성 정책의 유혹을 과감히 뿌리치고, 상식과 원칙에 기반한 정밀한 경제 정책을 펼칠 때 비로소 진정한 민생회복의 길이 열릴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엄중한 각성과 책임 있는 결단을 촉구한다.
2026-07-02 07: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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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1550원 시대, 시장은 정부의 의지가 아니라 국가의 체력을 묻고 있다
[경제일보] 외환당국이 50조원이 넘는 외환시장 안정 자금을 투입하며 방어에 나섰음에도 원·달러 환율이 끝내 1550원을 돌파했다. 정부는 "과도한 쏠림 현상"이라고 설명하지만, 시장은 이미 다른 판단을 내리고 있다. 환율은 정부의 의지를 반영하는 숫자가 아니라 국가 경제의 체력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아무리 많은 달러를 시장에 풀어도 경제의 기초 체력이 흔들리면 환율은 결국 제 갈 길을 간다. 이번 환율 급등은 단순한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아니라 우리 경제 전반에 누적된 구조적 불안이 한꺼번에 분출되고 있다는 경고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번 환율 상승이 일시적인 외부 충격에만 기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의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와 국채 급증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해지고 있으며, 달러 강세는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국내 증시는 성장 동력을 잃은 채 외국인 자금 이탈이 이어지고 있고, 수출 증가세마저 둔화되면서 원화 가치는 더욱 취약해지고 있다. 외부 악재와 내부 취약성이 동시에 작용하는 복합위기인 것이다. 정부는 시장 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동원하고 있다. 물론 급격한 환율 변동을 완화하기 위한 시장 개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시간을 버는 응급처치일 뿐이다. 병의 원인을 치료하지 않은 채 해열제만 반복해서 투여하는 방식으로는 경제를 정상 궤도로 되돌릴 수 없다. 시장은 외환보유액 규모보다 국가 경제의 성장성과 재정 건전성, 그리고 정책의 신뢰를 더욱 냉정하게 평가한다. 더 큰 문제는 국내 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는 금리와 환율이 동시에 상승하는 상황에서 금융 시스템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시한폭탄이다. 원화 약세가 지속되면 수입 물가가 상승하고 이는 다시 소비자 물가와 금리를 자극한다. 금리가 오르면 가계의 이자 부담은 급증하고 소비는 위축된다. 소비 둔화는 기업 투자 감소로 이어지고, 결국 성장률 하락과 실업 증가라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환율 문제는 외환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생활과 국가 경제 전반을 뒤흔드는 복합 위기인 것이다.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시장 개입 규모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투자자들이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를 신뢰할 수 있도록 경제의 기초 체력을 회복하는 일이다.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생산성과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구조개혁에 속도를 내야 한다. 노동·연금·교육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며, 첨단산업과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산업정책도 일관되게 추진되어야 한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장기 투자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정책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시급하다. 가계부채 관리 역시 보다 정교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대출 억제와 규제 강화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실수요자는 보호하되 투기성 부채는 철저히 관리하고,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높이는 동시에 취약계층의 상환 능력을 지원하는 맞춤형 대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부동산 정책과 금융 정책, 통화 정책이 따로 움직여서는 시장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정책 간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역사는 외환위기가 하루아침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작은 경고를 가볍게 여기고 임시방편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더 큰 대가를 치렀다. 1997년 외환위기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금의 환율 급등 역시 또 하나의 경고장일 수 있다. 시장은 정부의 발표보다 행동을, 구호보다 정책의 일관성을, 단기 처방보다 국가의 경쟁력을 보고 있다. 환율 1550원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우리 경제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냉정한 성적표다. 외환시장 방어라는 미봉책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경제 체질을 근본부터 바꾸는 개혁에 나설 것인가는 이제 정부의 선택에 달려 있다. 국가 경제는 의지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신뢰로 지탱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을 향한 안심 메시지가 아니라, 국민과 세계가 신뢰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정책 전환이다.
2026-07-01 15: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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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원구성 답보…법사위 싸움에 민생경제 볼모 잡혔다
[경제일보] 22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이 또다시 멈춰 섰다. 국회 의장단은 선출됐지만 정작 국회를 굴러가게 할 상임위원장 배분은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에서 막혀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여당으로서 국정과제와 민생입법을 뒷받침하려면 법사위원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의힘은 입법의 최종 관문인 법사위를 야당이 맡아야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다고 맞선다. 여기에 정무위원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 주요 경제 상임위원장 배분까지 얽히면서 협상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국회가 또 자리 싸움에 갇혔다. 여당은 책임정치를 말하고, 야당은 견제정치를 말한다. 말만 놓고 보면 둘 다 그럴듯하다. 그러나 국민 눈에는 다르게 보인다. 법사위원장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는 정치권의 권력 계산일 뿐이다. 국민에게 더 절박한 것은 대출금리, 장바구니 물가, 전기요금, 일자리, 집값, 세금이다. 국회가 상임위원장 명패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는 사이 가계의 이자 부담은 줄지 않고 기업의 투자 결정은 미뤄지며 정부 정책은 국회 문턱에서 멈춰 선다. 법사위는 국회 입법의 수문장이다. 각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은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를 거쳐 본회의로 간다. 그래서 여야가 법사위원장을 놓고 물러서지 않는 것이다. 여당은 법사위를 야당에 넘기면 국정과제 입법이 막힐 수 있다고 본다. 야당은 여당이 법사위까지 장악하면 입법 독주를 막을 장치가 사라진다고 우려한다. 양쪽 모두 나름의 논리는 있다. 그러나 법사위가 입법 품질을 높이는 관문이 아니라 정쟁의 병목으로 변질된다면 그 논리는 국민 앞에서 설 자리를 잃는다. 더 심각한 것은 경제 상임위 공백이다. 정무위는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등 금융시장과 공정거래 질서를 다루는 핵심 상임위다. 재경위는 세제와 재정, 거시경제 정책을 좌우한다. 산자위는 반도체, 에너지, 통상, 산업경쟁력의 최전선이다. 예결위는 정부 예산의 마지막 문턱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구조개혁과 경기 대응이 동시에 필요한 시점이다. 자본시장 밸류업, 가계부채 관리,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 정리, 금융소비자 보호, 소상공인 지원, 반도체·AI·에너지 투자, 세수 관리, 민생 예산 조정이 모두 국회 논의와 맞물려 있다. 국회가 멈추면 경제정책도 멈춘다. 그 피해는 가장 먼저 가계로 간다. 금융 취약계층 지원, 서민금융 보강, 전세사기 피해 지원, 소상공인 채무조정, 통신비·에너지비 부담 완화 같은 민생 법안은 상임위가 열려야 논의된다. 여야가 법사위 명패를 두고 기 싸움을 벌이는 동안 서민은 이자 고지서를 먼저 받는다. 국회의 하루 공전은 정치권에는 협상 전략일지 몰라도 가계에는 생활비 압박이다. 민생을 입에 달고 사는 정치가 정작 민생의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 기업도 피해자다. 기업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 세법이 어떻게 바뀔지, 산업지원 예산이 유지될지, 금융규제가 풀릴지 조여질지, 노동·환경·공정거래 규정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알 수 없으면 투자를 미룬다. 투자가 늦어지면 고용도 늦어진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조선, 방산, AI 데이터센터, 에너지 인프라처럼 대규모 자본 투자가 필요한 산업은 국회와 정부의 정책 신호에 민감하다. 정치권이 상임위 배분을 놓고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해외 경쟁자는 투자 속도를 높인다. 국회의 정쟁은 기업에는 비용이고 국가경제에는 기회 손실이다. 정부도 발목이 잡힌다. 정부는 예산과 법률이라는 두 바퀴로 움직인다. 아무리 좋은 경제정책도 국회 상임위에서 논의되지 않으면 종이 위 계획에 머문다. 경기 대응책을 내놓아도 입법과 예산 뒷받침이 없으면 효과는 반감된다. 정부가 국회를 우회하려 하면 행정 독주 논란이 생기고 국회가 정부를 무조건 막으면 국정 마비가 된다. 여당은 다수의 힘을 절제해야 하고 야당은 견제의 이름으로 국회 정상화를 볼모로 삼아서는 안 된다. 지금의 대치는 어느 한쪽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 양쪽 모두 국민경제 앞에서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논어>에는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는 말이 있다. 국회가 지금 밝아야 할 것은 자리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고통이다. 상임위원장 자리가 권력 배분의 전리품처럼 취급되는 순간 국회는 민의를 대표하는 기관이 아니라 정당 간 점령지가 된다. 법사위가 누구 손에 들어가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법사위가 국민을 위해 작동하느냐다. 정무위가 어느 당 몫이냐보다 중요한 것은 금융시장 안정과 소비자 보호, 공정거래 질서가 제대로 논의되느냐다. 정치권은 원구성 협상이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국민이 보기에는 어렵다기보다 염치가 없어 보인다. 국회는 다수결만으로 움직여서도 안 되지만 소수의 발목잡기로 멈춰서도 안 된다. 다수당은 책임 있게 의제를 추진하되 야당의 견제 공간을 보장해야 한다. 야당은 견제하되 국회 공백을 협상 카드로 써서는 안 된다. 상임위원장 배분은 정치적 협상의 대상일 수 있지만 국회 마비는 협상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권이 계산해야 할 것은 의석수가 아니라 손실이다. 국회가 하루 늦어질 때 민생 법안은 얼마나 밀리는가. 금융시장 불확실성은 얼마나 커지는가. 기업 투자 결정은 얼마나 지연되는가. 정부 예산 심사는 얼마나 압박받는가. 이런 비용표를 국민 앞에 내놓는다면 여야가 지금처럼 쉽게 강대강 대치를 이어갈 수 있겠는가. 국민은 법사위원장 이름보다 자신의 대출금리를 더 걱정한다. 정무위원장 배분보다 금융사고와 불완전판매 방지를 더 원한다. 예결위원장 몫보다 내년 예산이 어디에 쓰일지를 더 궁금해한다. 기업은 어느 당이 상임위를 차지했는지보다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원한다. 정부는 정쟁의 승리가 아니라 실행 가능한 국정 동력을 필요로 한다. 국회는 싸우라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싸움에도 순서가 있다. 먼저 문을 열고 회의를 열고 법안을 올리고 예산을 따져야 한다. 그다음에 치열하게 다투면 된다. 문도 열지 않은 채 열쇠를 누가 쥘지만 다투는 정치는 국민에게 설명할 수 없다. 국회를 열지 않는 정치는 견제가 아니라 직무유기다. 22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 협상은 단순한 자리 싸움이 아니다. 한국 경제가 정치 리스크를 얼마나 더 견딜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다. 여야가 법사위와 경제 상임위를 놓고 끝까지 힘겨루기를 벌인다면 그 비용은 국회가 아니라 국민이 낸다. 가계는 이자로 내고 기업은 투자 지연으로 내며 정부는 정책 실기라는 이름으로 낸다. 경제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국회가 멈춰도 시장은 움직이고 국회가 싸워도 국민의 청구서는 날아온다. 여야가 정말 민생을 말하려면 원구성부터 끝내야 한다. 권한을 나누는 협상보다 책임을 나누는 합의가 먼저다. 국회의 주인은 정당이 아니라 국민이다. 그 상식을 잊는 순간, 원구성 싸움은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의 위험이 된다.
2026-06-29 1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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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국정 2년차 수석급 참모진 개편…지지율 경고등에 칼 빼들어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이 국정 2년 차를 맞아 청와대 수석급 참모진을 대폭 교체하며 국정 쇄신과 개혁 드라이브 강화에 나섰다. 최근 지방선거 결과와 지지율 하락세를 계기로 국정 운영 기조를 재정비하는 동시에 인공지능(AI)·에너지 전환, 노동 개혁, 공급망 대응 등 핵심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홍보소통수석, 민정수석, 사회수석과 국가안보실 1·3차장을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향후 임명될 AI미래기획수석까지 포함하면 전체 수석급 참모 11명 가운데 6명이 바뀌는 중폭 이상의 개편이다. 대통령실은 이번 인사에 대해 국정 2년 차를 맞아 소통과 개혁 동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브리핑에서 "좀 더 개혁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밝혔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홍보·민정 라인 교체다. 홍보소통수석에는 성기홍 전 연합뉴스 사장이, 민정수석에는 한찬식 변호사가 각각 임명됐다. 최근 지방선거 이후 나타난 민심 변화와 지지율 하락 흐름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국민 체감형 정책 성과를 높이겠다는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이 대통령은 지난 19일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당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라며 "냉정한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정책 추진 체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한찬식 신임 민정수석은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설치와 형사소송법 개정 등 검찰개혁 후속 과제를 맡게 된다. 강건작 국가안보실 1차장은 군 구조개혁과 자주국방 역량 강화 작업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 정책 라인도 한층 강화됐다. 문진영 전 사회수석 후임으로 약사이자 노동운동가 출신인 김경자 수석이 임명됐다. 앞서 민주노총 출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한국노총 출신 이옥남 노동비서관이 합류한 데 이어 노동계 출신 인사들이 정책 전면에 배치되는 모습이다. 경제·산업 정책 측면에서는 공급망과 경제안보 대응 역량 강화가 주목된다. 송기호 경제안보비서관을 국가안보실 3차장으로 승진 발탁한 것은 미국의 관세 정책과 중동 리스크 등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평가된다. 외교·안보와 경제가 긴밀하게 연결되는 환경 속에서 경제안보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반면 경제성장수석과 재정기획보좌관 등 경제 라인은 유임됐다. 지난 1년간 추진해 온 경제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 AI와 에너지 전환, 자본시장 활성화, 부동산 안정화, 국토 균형발전 등 핵심 과제의 성과 창출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하정우 전 수석의 출마로 공석이 된 AI미래기획수석 인선은 이번 발표에서 제외됐다. AI 국가전략을 총괄할 적임자 물색에 시간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2026-06-21 14: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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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국정 2년차 참모진 개편…홍보 성기홍·민정 한찬식 발탁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이 국정 2년차를 맞아 청와대 핵심 참모진 개편에 나섰다. 홍보소통, 민정, 사회, 외교안보 라인을 동시에 손보며 집권 2년차 국정 운영의 속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21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신임 홍보소통수석비서관에 성기홍 전 연합뉴스 대표이사, 민정수석비서관에 한찬식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사회수석비서관에 김경자 우석대 객원교수를 임명했다고 밝혔다. 국가안보실 제1차장 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에는 강건작 대통령직속 미래국방전략위원회 위원, 제3차장에는 송기호 국가안보실 경제안보비서관이 발탁됐다. 강 실장은 이번 인사에 대해 “지난 1년간의 성과를 토대로 국정 2년차 비전인 ‘대체불가 대한민국’을 속도감 있게 구현하는 데 중점을 둔 인사”라고 설명했다. 집권 1년차가 국정 정상화와 시스템 정비에 초점을 맞췄다면, 2년차에는 정책 성과를 구체화하고 개혁 과제를 밀어붙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성기홍 신임 홍보소통수석은 30년 경력의 언론인 출신이다. 강 실장은 성 수석에 대해 “취재 현장의 감각과 보도 책임자로서의 균형감, 판단력을 겸비한 인물”이라며 “국민 목소리를 세심하게 살피고 정부의 응답과 성과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대국민 소통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 2년차 정책 드라이브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여론 흐름을 관리할 소통 라인에 정통 언론인을 배치한 셈이다. 한찬식 신임 민정수석은 법무부 인권국장과 일선 검찰청 지휘부를 지낸 법조인이다. 대통령실은 한 수석이 법 집행의 엄정성과 인권 감수성을 함께 갖춘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민정수석실은 공직기강 확립과 검찰개혁 후속 과제 관리에서 핵심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강 실장은 한 수석이 공직사회 책임성을 강화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 신설 등 검찰개혁 과제를 차질 없이 완수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사회수석에는 약사 출신 보건의료 전문가인 김경자 우석대 객원교수가 임명됐다. 김 수석은 노동운동과 시민사회 활동을 거친 인물로 소개됐다. 대통령실은 복지, 노동, 보건의료, 교육 등 사회정책 현안을 조율하고 성장의 혜택에서 소외되는 국민이 없도록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안보실 인선은 국방과 경제안보의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강건작 신임 1차장은 육군 장성 출신으로 군의 정치적 중립, 자주국방 역량 강화, 군 구조개혁에 대해 문제의식과 대안을 제시해 온 안보 전문가로 평가된다. 송기호 신임 3차장은 국가안보실 경제안보비서관으로 미국 관세 정책 변화와 중동발 공급망 리스크 등 경제안보 현안을 다뤄 왔다. 경제와 안보가 결합되는 국제 환경에서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려는 인사로 읽힌다. 이번 개편은 단순한 일부 보직 교체를 넘어 국정 2년차 운영 체제 전환의 신호로 해석된다. 홍보·민정·사회수석과 안보실 1·3차장까지 한꺼번에 교체되면서 청와대 참모진의 상당 부분이 새 얼굴로 채워졌다. 강 실장도 AI수석 후속 인선까지 감안하면 중폭 이상의 개편으로 보는 것이 맞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AI미래기획수석 인선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이기혁 아마존웹서비스(AWS)코리아 스타트업 에코시스템 총괄이 내정됐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강 실장은 “확정된 사실이 없고 일부 보도에 관해 확인해 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AI를 국가 성장전략의 핵심 축으로 내세운 정부 기조를 고려하면 후속 인선 역시 국정 2년차 개편의 주요 변수로 남아 있다. 대통령실은 이번 인사를 통해 민생정부, 일하는 정부의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국정 2년차는 성과를 설명하는 시간인 동시에 책임을 증명해야 하는 시간이다. 참모진 개편은 출발점일 뿐이다. 새 수석들이 국민이 체감할 정책 성과와 공직사회 개혁, 외교안보 대응력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인사의 의미는 오래가지 않는다. 결국 이번 개편의 평가는 이름이 아니라 속도와 실행에서 갈릴 전망이다. ▷성기홍 신임 홍보소통수석비서관 △1968년 7월생 △경남 △창원고△서울대 사회학과 △연합뉴스 정치부장△연합뉴스 논설위원 △연합뉴스TV 보도국장 △연합뉴스TV 대표이사 사장 △연합뉴스 대표이사 사장 ▷한찬식 신임 민정수석비서관 △1968년 7월생 △서울 △서울 성남고 △서울대 사법학과 △미국 펜실베니아대 석사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장 △수원지방검찰청 검사장 △법무부 인권국장 △사법연수원 21기 △현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김경자 신임 사회수석비서관 △1966년 11월생 △전북 임실 △성심여고 △이화여대 제약학과 △가천대 행정학 석사 △경희대 의료경영학 박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수석부위원장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부위원장 △보건복지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위원 △현 우석대 교양대학 객원교수 △현 ESG코리아 이사 ▷강건작 신임 국가안보실 제1차장 △1966년 8월생 △부산 △안산 신성고 △육군사관학교 45기 △육군 제6군단장 △국가안보실 국방개혁비서관 △국가안보실 국가위기관리센터장 △육군 제28보병사단장 △현 대통령직속 미래국방전략위원회 위원 ▷송기호 신임 국가안보실 제3차장 △1963년 9월생 △전남 고흥 △광주제일고 △서울대 무역학과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장 △산업통상부 통상교섭 민간자문위원회 위원 △사법연수원 30기 △현 국가안보실 제3차장실 경제안보비서관
2026-06-21 11: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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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보다 무서운 건 경제 불확실성이다
[경제일보] 전쟁은 끝났다고 해서 곧바로 끝나지 않는다. 총성이 멎은 뒤에도 전쟁은 유가에 남고 환율에 남고 물류비에 남고 기업의 투자계획서와 가계의 장바구니에 남는다. 미국과 이란이 전쟁 종식과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에 합의했다는 소식은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다. 세계 금융시장은 즉각 안도했다. 국제유가는 급락했고 주요 증시는 반등했다. 전쟁 프리미엄이 빠지자 시장은 마치 긴 터널을 빠져나온 듯 환호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환호가 아니라 냉정이다. 전쟁보다 무서운 것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경제 불확실성이다. 휴전문서 한 장이 원유 생산시설을 하루아침에 복구하지 못한다. 해협 재개방 선언이 곧바로 선박 보험료를 낮추지도 않는다. 국제유가가 하루 이틀 떨어졌다고 해서 물가가 곧장 안정되는 것도 아니다. 전쟁은 정치적으로는 합의로 끝나지만 경제적으로는 비용 청구서가 도착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이번 미국·이란 전쟁이 세계경제에 남긴 첫 번째 상처는 에너지 시장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가 지나는 핵심 길목이다. 그 길목이 전쟁의 인질이 되자 세계는 다시 한 번 에너지 안보가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경제 생존의 문제임을 확인했다. 합의 이후 브렌트유 가격은 급락했지만 이것은 위험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기보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일단 뒤로 밀렸기 때문이다. 유가가 내려도 공급망은 즉시 회복되지 않는다. 산유국의 생산설비, 정제시설, 항만, 보험, 선박 운항, 금융결제망은 모두 시간이 필요한 시스템이다. 더 큰 문제는 시장의 기억이다. 한번 흔들린 시장은 쉽게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선사들은 통항이 가능하다는 정치적 선언보다 실제 항로의 안전을 본다. 보험사는 합의문보다 재발 가능성을 계산한다. 정유사와 항공사, 석유화학 기업은 현물가격보다 3개월 뒤, 6개월 뒤의 조달 안정성을 본다. 그래서 전쟁 뒤의 경제는 늘 ‘안정’이 아니라 ‘안정 확인’의 시간을 요구한다. 불확실성은 가격 그 자체보다 더 비싸다. 이번 합의는 세계 중앙은행에도 어려운 숙제를 남겼다. 전쟁 중 급등한 에너지 가격은 물가를 밀어 올렸다. 유가가 떨어지면 물가 압력은 완화되지만 이미 오른 운송비와 원재료비, 기대인플레이션은 시차를 두고 경제 전반에 스며든다. 중앙은행은 금리를 내리고 싶어도 물가가 불안하면 움직이기 어렵다. 금리를 유지하면 경기 회복은 더뎌지고 금리를 내리면 다시 물가와 환율이 흔들릴 수 있다. 전쟁은 끝났지만 통화정책의 안개는 더 짙어질 수 있다. 한국경제에는 이 불확실성이 더 예민하게 작용한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제조업과 수출 비중이 큰 나라다. 원유와 가스 가격이 오르면 기업의 생산비가 먼저 오른다. 정유·화학·철강·항공·해운은 물론이고 전력비 부담이 큰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산업에도 파장이 간다. 유가가 오르면 무역수지가 흔들리고 무역수지가 흔들리면 환율이 불안해진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물가가 뛰고 수입물가가 뛰면 소비자물가가 다시 고개를 든다. 결국 중동의 포성이 서울의 주유소 가격표와 서민 밥상으로 번지는 구조다. 합의 이후 유가가 안정된다면 한국경제에는 분명 숨통이 트인다. 기업의 원가 부담은 줄고 항공·해운·석유화학·자동차 등 에너지 민감 업종은 불확실성을 덜 수 있다. 고유가에 짓눌렸던 소비심리도 일부 회복될 수 있다. 환율 안정은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에도 긍정적이다. 최근 반도체 수출 호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 부담이 낮아지면 한국경제는 다시 회복 궤도에 올라설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것을 경기 반전의 신호로 과대해석해서는 안 된다. 종전 합의가 곧 경기부양책은 아니다. 전쟁은 이미 비용을 남겼다. 기업들은 몇 달 동안 비싼 원료와 물류비를 감당했다. 일부 기업은 납기와 계약조건을 조정했고 일부 가계는 고유가와 고물가 속에서 소비를 줄였다. 한번 미뤄진 투자는 다시 집행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한번 닫힌 소비지갑은 유가가 떨어졌다는 뉴스 하나로 곧바로 열리지 않는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봐야 할 지점도 여기에 있다. 지금 필요한 정책은 ‘전쟁이 끝났으니 정상화됐다’는 낙관론이 아니라, ‘전쟁이 끝났지만 불확실성은 남았다’는 위험관리다. 물가가 완전히 안정되기 전까지 통화정책은 신중해야 한다. 동시에 취약계층과 에너지 다소비 업종에는 선별 지원이 필요하다. 고유가의 부담은 모든 국민에게 같지 않다. 대기업은 헤지와 장기계약으로 버틸 수 있지만 영세 자영업자와 운송업자, 농어민, 저소득층은 유가 변동을 그대로 맞는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 같은 단기 처방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필요할 때 한시적 완충장치는 있어야 하지만 재정 여력이 무한한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 전략비축 체계 점검, 핵심 원자재 공급망 확보, 항만·해운 리스크 관리, 기업의 환율·유가 헤지 역량 강화다. 전쟁이 남긴 교훈은 단순하다. 싸게 사는 것보다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효율만 따지던 공급망의 시대가 저물고, 회복탄력성을 따지는 공급망의 시대가 왔다. 기업도 달라져야 한다. 중동 리스크를 일시적 외부 변수로만 볼 수 없다. 지정학은 이제 재무제표의 바깥에 있는 문제가 아니다. 원가, 환율, 운송, 보험, 재고, 투자, 배당까지 모두 흔드는 변수다. 최고경영자는 매출 목표만이 아니라 지정학적 리스크 시나리오를 들여다봐야 한다. 에너지 가격이 배럴당 70달러일 때와 100달러일 때, 호르무즈 통항이 정상일 때와 부분 제한될 때, 환율이 100원 더 오를 때의 손익을 따져야 한다. 위기 대응은 전쟁이 난 뒤 만드는 문서가 아니라 평시에 쌓아두는 체력이다. 금융시장도 안도 랠리에 취해서는 안 된다. 전쟁 합의 이후 주가가 오르고 유가가 내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종종 정치적 이벤트에 먼저 환호하고 실물경제의 복구 속도를 뒤늦게 확인한다. 유가 하락이 물가 안정으로 이어질지, 물가 안정이 금리 인하로 이어질지, 금리 인하가 소비와 투자 회복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열린 질문이다. 지금의 시장 반등은 ‘평화 배당’이라기보다 ‘공포 할인 해소’에 가깝다. 여기서 고전의 지혜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손자병법은 “용병을 잘하는 자는 다시 징병하지 않고, 군량을 세 번 싣지 않는다”고 했다. 전쟁을 잘하는 장수는 싸움터에서만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보급의 비용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오늘의 경제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실력은 전쟁의 승패보다 전쟁 뒤 비용을 얼마나 줄이느냐에서 드러난다. 에너지, 물류, 금융, 물가, 환율의 보급선을 관리하지 못하면 평화의 이름 아래서도 경제는 계속 흔들린다. 이번 미국·이란 합의는 세계경제에 시간을 벌어줬다. 하지만 시간을 번 것과 문제를 해결한 것은 다르다.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린다고 해도 세계경제는 이미 에너지 안보의 취약성을 봤다. 국제유가가 내려간다고 해도 한국경제는 수입 에너지 의존 구조를 다시 확인했다. 증시가 오른다고 해도 기업과 가계가 체감하는 불확실성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는다. 정책당국은 이제 세 가지를 해야 한다. 첫째, 유가·환율·물류비의 변동이 물가와 산업별 비용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추적해야 한다. 둘째, 에너지와 원자재 공급망을 장기계약·비축·대체선 확보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셋째, 전쟁 이후 완화된 시장 분위기를 구조개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위기가 지나가면 개혁의 긴장도 함께 풀린다. 그러나 다음 위기는 늘 우리가 방심할 때 온다. 전쟁보다 무서운 것은 경제 불확실성이다. 전쟁은 언젠가 끝난다. 그러나 불확실성은 끝났다는 선언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숫자와 가격과 계약과 기대 속에 남아 서서히 비용을 청구한다. 지금 한국경제가 해야 할 일은 평화의 뉴스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남긴 경제의 균열을 차분히 메우는 일이다. 평화는 합의문으로 시작되지만 경제의 안정은 준비된 국가만이 얻을 수 있다.
2026-06-16 15: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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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 충남의 선택은…'AI 대전환' vs '힘쎈 충남'
[경제일보]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한민국의 시선이 다시금 ‘중원’ 충남으로 쏠리고 있다. 충청남도는 단순히 수도권과 영·호남 사이의 지리적 교량(橋梁)이 아니다. 역대 선거마다 민심의 향배를 가늠하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온 정치적 바로미터이자, 반도체·디스플레이·석유화학 등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 역할을 수행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번 선거는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 더불어민주당이 ‘국정 안정’의 기치를 공고히 할 것인지, 아니면 야당 국민의힘이 ‘정권 견제’와 ‘인물론’을 앞세워 탈환에 성공할 것인지를 가르는 최대 승부처다. 특히 박수현 후보(민주당)의 ‘AI 대전환’ 담론과 김태흠 후보(국민의힘)의 ‘현직 프리미엄’이 정면으로 충돌하며 선거판은 안개 속 정국이다. 현재까지의 수치는 여당의 우세를 가리키고 있다. KBS대전방송총국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KBS대전방송총국 의뢰, 한국리서치 조사, 2026년 4월 26~28일, 충남도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0명 대상, 면접원에 의한 전화면접조사, 성·연령·지역으로 층화된 가상번호 내 무작위 추출, 응답률 17.4%,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5%포인트, 가중값은 지역별·성별·연령별 셀가중 방식.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박 후보는 44%의 지지율을 얻어 23%를 기록한 김태흠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고 있다. 주목할 대목은 선거의 성격이다. 같은 조사에서 충남 유권자의 53%가 이번 선거를 ‘국정 안정용’이라고 답했다. 이는 ‘정부 견제용’(29%)보다 24%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여당 지지율(민주당 50%)이 야당(국민의힘 21%)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현 정부의 국정 수행에 힘을 실어주려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박 후보가 20대와 70대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대에서 고른 지지를 받는 이유도 이러한 여권의 강세 기류와 무관치 않다. ◆박수현, 'AI 대전환' 비전 제시… '추상적 구호' 넘어야 할 과제 박 후보는 국정의 중심에서 소통을 책임졌던 경험을 바탕으로 ‘설계자’로서의 면모를 부각하고 있다. 실제 그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 대변인과 소통 수석은 단순히 말을 전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정 전반을 꿰뚫어 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자리였다”고 강조하며 중앙정치의 네트워크와 정책 설계 역량을 자신의 강점으로 내세운 바 있다. 박 후보가 내세운 핵심 키워드는 ‘AI 시대의 충남 대전환’이다. 그는 AI를 단순한 산업 기술이 아닌 의료·복지·교육·문화 전반에 이식하는 ‘AI 기본사회’를 구상하고 있다. 특히 농어촌 지역의 고질적인 문제인 의료 공백과 교육 불균형을 AI 시스템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행정 실무 경험 부족’이라는 꼬리표는 그가 넘어야 할 산이다. 충남은 천안·아산의 첨단 산업군부터 남부권의 국방 자산, 서해안의 에너지 전환 이슈까지 시군별 현안이 매우 이질적이다. 박 후보의 AI 담론이 도민들의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시군별 실행 계획으로 치환되지 못할 경우 자칫 추상적인 구호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언론계와 정가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된다. ◆‘현직 프리미엄’ 김태흠…“일해본 사람이 대형 프로젝트 완수” 재선에 도전하는 김 후보는 현직 지사로서 거둔 실적을 전면에 배치했다. 김 후보는 민선 8기 동안 2026년도 정부 예산 12조3000억원 확보, 민간 기업 투자 유치 43조7000억 원 달성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이는 2022년 대비 국비 규모를 4조원 이상 늘린 수치로 김 지사는 이를 통해 자신의 슬로건인 ‘힘쎈 충남’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하려 한다. 그의 전략은 도정의 연속성이다. 베이밸리 메가시티 조성, 탄소중립 경제 선도, 농업 구조개혁 등 이미 궤도에 오른 대형 프로젝트들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일해본 사람’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김 후보는 행정통합을 통한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을 강조하며, 충남을 권역별 맞춤형 발전 전략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현직 책임론은 양날의 검이다. 막대한 투자 유치에도 불구하고 농어촌 소멸과 지역 간 불균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TJB가 조원씨앤아이·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TJB 의뢰, 조원씨앤아이·리서치앤리서치 조사, 2026년 4월 18~19일, 충남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3명 대상, 전화면접조사, 휴대전화 가상번호 100%, 응답률 14.1%,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5%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도민들이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농어촌 인구 소멸 대책’(26.4%)과 ‘의료 인프라 구축’(21.1%)을 꼽았다는 점은 현직 지사인 그에게 뼈아픈 대목이다. 중앙정치 구도에서 기인한 낮은 정당 지지도 역시 그가 독자적인 행정 성과로 돌파해야 할 거대한 벽이다. ◆승패 가를 소멸 위기·의료 공백 해법…현실적 ‘생존 전략’ 중요 이번 선거의 최종 승부처는 정당의 깃발이 아닌 ‘민생의 현장’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우선 지방 소멸에 대한 실효적 대안이다. 충남 남부권과 내륙권의 인구 감소는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는 평가다. 유권자들은 누가 더 현실적인 일자리 대책과 정주 여건 개선안을 내놓느냐를 지켜보고 있다. ‘의료 시스템의 혁신’ 부분도 이번 선거의 핵심 변수다. TJB 조사에서 나타났듯 도민들은 정당보다 정책과 도덕성을 우선시하고 있고, 특히 의료 인프라에 대한 갈증이 깊다. 박 후보의 AI 의료 시스템과 김 후보의 공공의료 강화안 중 어느 쪽이 도민의 신뢰를 얻느냐가 관건이다. 또 다른 핵심 승부처는 ‘충남·대전 행정통합’에 대한 태도다. KBS 조사에서는 찬성(59%)이 압도적이었지만, TJB 조사에서는 찬반이 팽팽하게 맞섰다. 이는 통합의 당위성에는 공감하지만 방법론에서는 유권자들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뜻한다. 통합의 시기와 주도권 문제를 놓고 두 후보가 제시할 세부 청사진이 표심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관계자는 “충남도지사 선거는 단순히 권력을 교체하거나 유지하는 과정이 아니다”라며 “충남이 가진 잠재력을 극대화하여 도민의 행복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엄중한 선택”이라고 했다.
2026-05-09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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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선 정치, 길 잃은 경제...상식과 원칙의 복원이 시급하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함선이 짙은 안개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거센 파도가 배를 때리고 있지만, 조타실의 키는 고장 났고 엔진은 가열된 채 비명만 지른다. 작금의 현실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자면 '정치는 죽었고, 경제는 멍들었다'는 탄식일 것이다. 경제는 불확실성이라는 늪에 빠져 방향을 잃었으며, 정치는 정쟁이라는 족쇄에 묶여 기능을 상실했다. 더 비극적인 사실은 이 두 축이 서로를 구원하기는커녕 서로의 발목을 잡아채며 동반 침몰의 길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의 부침 속에서도 지금처럼 '기본'과 '상식'이 무너진 적은 드물었다. 인류의 오랜 지혜를 담은 경전들은 공통으로 '화합'과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가르친다.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 '식량을 충분히 하고, 군대를 튼튼히 하며, 백성의 믿음을 얻는 것(足食, 足兵, 民信)'을 꼽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이 중 하나라도 온전한 것이 있는가. 우선, 경제의 맥박이 희미해지고 있다. 내수 침체의 골은 깊어지는데 대외 환경은 흡사 전장(戰場)을 방불케 한다. 글로벌 공급망의 급격한 재편, 격화되는 미·중 패권 경쟁, 그리고 고금리의 장기화는 한국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가는 명확한 나침반을 제시해야 한다. 정책의 일관성과 적기(適期) 대응은 시장의 신뢰를 먹고 산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 정책은 시장에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규제 혁파를 외치면서도 정작 기업의 손발을 묶는 입법은 쏟아지고,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면서도 선거철만 되면 포퓰리즘의 유혹에 흔들린다. 구조개혁이라는 과제는 구호로만 존재할 뿐, 실행의 용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시장이 정책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정책을 의심하고 회피하는 현상은 국가 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신호탄이다. 노동 문제에 이르면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노동은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는 신성한 가치이자 경제 발전의 핵심 동력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노동의 '유연성'과 '안전망'이라는 두 가치를 놓고 극단적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경영계는 생존을 위해 유연화를 외치고, 노동계는 생존권을 위해 보호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는 택일(擇一)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가 쌓아온 보편적 상식에 비추어 볼 때, 생산성이 담보되지 않는 임금 인상은 기업의 파멸을 부르고, 안전망 없는 유연화는 공동체의 붕괴를 초래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균형의 예술'이다. 그러나 작금의 논의는 해법을 찾는 치열한 고민 대신 진영 논리라는 낡은 프레임에 갇혀 있다. 상대방을 타도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순간, 합리적인 대안은 설 자리를 잃는다. 원칙과 상식에 기반한 사회적 대타협은 실종되었고, 그 빈자리를 자극적인 선동과 혐오가 채우고 있다. 정치가 경제의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고 공동체의 비전을 설정하는 고도의 지적 행위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갈등을 먹고 자라는 기생(寄生) 정치가 되어버렸다. 민생은 뒷전이고 정파적 이익을 위한 입법 전쟁에만 몰두한다.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던 과거의 일침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 참담할 따름이다. 이제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류 경전의 가르침대로 순리를 따르고 상식을 회복해야 한다. 경제 정책은 정치가 아닌 '숫자'와 '현장'의 목소리에 기반해야 하며, 노동 개혁은 진영이 아닌 '상생'의 원칙 위에 세워져야 한다. 정치권은 서로를 향한 삿대질을 멈추고 국가의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협치(協治)를 보여줘야 한다. 국민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정치가 경제를 가로막고, 경제가 미래를 보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위기는 기회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지만, 그 기회는 준비된 자, 즉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법이다. 지금 당장 정치는 제자리로 돌아오고, 경제는 다시금 성장의 엔진을 가동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준엄한 책무다.
2026-05-06 16:5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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