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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대학 졸업장은 아직도 밥벌이를 보장하는가
[경제일보] 대학 졸업장이 한 사람의 인생을 보증하던 시대가 있었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가 첫 직장을 정했고 첫 직장이 평생 소득의 궤도를 만들었다. 부모는 아이를 학원으로 보냈고 학생은 시험 한 번에 청춘을 걸었다. 한국 사회는 그것을 경쟁이라 불렀고 국가는 그것을 교육이라 불렀다. 그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명문대의 힘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좋은 대학의 이름은 여전히 통한다. 기업도 아직 학벌을 본다. 사람도 학벌을 본다. 한국 사회에서 간판의 힘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그러나 국민이 묻는 것은 단순하다. 그 졸업장이 앞으로도 밥벌이를 보장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답은 이미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은 대학 졸업장의 권위를 정면에서 흔들고 있다. 보고서 초안, 코드 작성, 회의록 정리, 시장 조사, 번역, 디자인 시안, 법률 문서의 1차 검토까지 AI가 처리한다. 예전 같으면 신입사원이 회사에 들어가 몇 년 동안 배우며 하던 일이다. 그 일이 사라지고 있다. 사다리의 첫 칸이 없어지는 것이다. 청년에게는 잔인한 변화다. 과거에는 회사에 들어가 낮은 단계의 일을 하며 조직을 배웠다. 문서를 고치고 보고를 다시 쓰고 선배에게 깨지면서 업무 감각을 익혔다. 실수할 시간이 있었다. 지금 기업은 신입에게도 처음부터 AI를 다루고 결과물을 검증하고 판단까지 하라고 요구한다. 배울 시간은 줄었고 요구 수준은 높아졌다. 대학은 이 변화를 알고 있는가. 한국 교육은 오랫동안 선발에 몰두했다. 아이를 잘 가르치는 제도보다 아이를 잘 줄 세우는 제도를 더 정교하게 만들었다. 누가 더 빨리 정답을 고르는지, 누가 더 실수 없이 문제를 푸는지, 누가 더 오래 버티는지를 시험했다. 그렇게 뽑힌 학생에게 사회는 우수하다는 도장을 찍었다. 그러나 AI 시대에 정답을 빨리 찾는 능력은 더 이상 인간만의 경쟁력이 아니다. 기계가 더 빨리 찾고 더 많이 요약하고 더 그럴듯하게 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이다. 판단이다. 맥락을 읽는 능력이다. 기계가 내놓은 답을 의심하고 잘못된 결론을 바로잡고 현실의 사람과 조직 안에서 문제를 풀어내는 힘이다. 대학 졸업장이 아니라 평생 역량이 경쟁력이라는 말은 구호가 아니다. 이미 노동시장에서 벌어지는 냉정한 현실이다. 그런데도 우리 교육은 여전히 입시의 관성에 갇혀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입시를 향해 달린다. 중학교는 고등학교를 준비하고 고등학교는 대학을 준비한다. 대학은 취업을 준비한다. 정작 사회에 나가 평생 배워야 할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은 허약하다. 아이들은 왜 배우는지 모른 채 문제를 풀고 대학생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른 채 졸업장을 받는다. 이것이 교육인가. 정부는 AI 교육을 말한다. 디지털교과서도 말하고 AI 교실도 말하고 미래 인재도 말한다. 그러나 교실에 태블릿을 넣는다고 교육이 바뀌지 않는다. 칠판이 전자칠판으로 바뀌었다고 좋은 수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도구가 아니다. 학생이 스스로 질문하고 배운 것을 현실 문제에 적용하고 실패한 뒤 다시 고치는 경험이다. AI 시대 교육개혁의 핵심은 기계를 더 많이 쓰게 하는 데 있지 않다.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을 인간이 더 잘하게 만드는 데 있다. 대학도 자기 역할을 다시 물어야 한다. 대학은 그 자리에 무엇을 하러 있는가. 4년 동안 학점을 모아 졸업장을 나눠주는 기관인가. 입시에서 이긴 학생에게 사회적 신분증을 발급하는 기관인가. 아니면 산업과 사회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 배우고 전환할 수 있는 지식의 플랫폼인가. 앞으로 대학은 청년기에 한 번 통과하는 관문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직장인이 돌아와 AI와 데이터, 반도체와 바이오, 경영과 디자인을 다시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중장년이 일자리를 바꾸기 위해 대학 문을 두드릴 수 있어야 한다. 지역 대학은 지역 산업과 연결돼야 하고 전문대학은 현장 기술의 중심이 돼야 한다. 대학이 변하지 않으면 학령인구 감소가 대학을 먼저 흔들고 AI가 그 존재 이유를 다시 흔들 것이다. 기업도 책임에서 빠질 수 없다. 기업은 늘 쓸 만한 인재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재는 완제품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과거 기업은 신입을 뽑아 가르쳤다. 지금은 즉시 투입 가능한 사람만 찾는다. AI가 초급 업무를 대신하자 신입 채용은 줄고 다시 경력직만 찾는다. 그러면 청년은 어디서 경험을 쌓는가. 사다리의 첫 칸을 기업이 걷어차 놓고 대학에만 인재 양성을 요구할 수는 없다. 정부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교육부는 교육을 말하고 고용노동부는 직업훈련을 말하고 산업부는 인재 수급을 말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모두 하나의 문제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기업에서 어떻게 성장하며, 중장년이 어떻게 다시 일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부처별 사업을 늘어놓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평생학습은 복지 사업의 한 항목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기반이 돼야 한다. AI 시대에 인문교육이 덜 중요해졌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다. 오히려 더 중요해졌다. AI가 답을 만들수록 인간은 질문해야 한다. AI가 계산할수록 인간은 판단해야 한다. AI가 효율을 높일수록 인간은 방향을 정해야 한다. 기술이 강해질수록 기준 없는 사회는 더 위험해진다. 읽기와 쓰기, 역사와 철학, 윤리와 시민교육은 낡은 과목이 아니다. AI 시대를 버티게 하는 기본 체력이다. 한국 사회는 학벌의 효용을 너무 오래 믿었다.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직장에 가고 좋은 직장에 가면 삶이 안정된다는 공식은 한때 현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공식이 빠르게 낡고 있다. 대학 간판은 출발선을 앞당겨줄 수 있다. 그러나 결승선까지 데려다주지는 못한다. 한 번 얻은 학위보다 계속 갱신되는 역량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왔다. 문제는 이 변화가 모두에게 공정하게 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돈 있는 집 아이는 더 좋은 AI 도구와 더 좋은 교육 기회를 먼저 얻는다. 대기업 직원은 사내 교육과 재훈련 기회를 갖지만 중소기업 노동자와 자영업자, 경력 단절자에게는 그런 기회가 드물다. 평생학습을 개인의 노력으로만 떠넘기면 교육 격차는 더 벌어진다. AI 시대의 교육개혁은 학벌 경쟁을 줄이는 일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격차를 막는 일이기도 하다. AI는 사람을 밀어내는 기술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의 능력을 키우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될지는 교육에 달려 있다. 준비된 사람에게 AI는 날개가 된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벽이 된다. 그 벽 앞에서 다시 학벌만 붙잡는 사회가 된다면 한국 교육은 또 한 번 실패할 것이다. 이제 물어야 한다. 대학은 학생에게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기업은 청년에게 성장할 시간을 주고 있는가. 정부는 국민이 평생 다시 배울 수 있는 길을 열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졸업장 한 장이 인생을 보장한다고 믿고 있는가. AI 시대의 진짜 학력은 대학 이름이 아니다. 낯선 기술 앞에서 다시 배우는 힘이다. 기계가 만든 답을 검증하는 힘이다. 남이 낸 문제를 푸는 능력이 아니라 세상에 없는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능력이다. 한국 교육이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대학 졸업장을 숭배하는 교육에서 평생 역량을 키우는 교육으로 가야 한다. 졸업장은 한 번 받는다. 그러나 역량은 평생 갱신해야 한다. AI 시대에 더 위험한 사람은 AI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더 배우지 않아도 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더 위험한 사회는 대학 간판을 가진 소수에게만 기회를 몰아주는 사회다. 대학 졸업장이 밥벌이를 보장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교육개혁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2026-06-16 0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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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선거서 진보 교육감 약진이 던지는 교육계 메시지는?
[경제일보] 6·3 지방선거에서 가장 조용했지만 가장 깊은 변화가 일어난 곳은 교육감 선거였다. 시장·도지사 선거의 함성, 여야 대표의 공방, 전·현직 정치 지도자의 지원 유세에 가려졌지만 유권자는 아이들의 교실을 맡길 사람을 따로 골랐다. 그 결과 전국 16개 시·도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성향 후보들이 11곳 안팎에서 승리하거나 당선이 유력한 흐름을 보였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진보 교육감이 9명 수준으로 줄었던 것과 비교하면 교육계의 무게추가 다시 진보 쪽으로 이동한 셈이다. 이 결과를 단순히 진보 진영의 승리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교육감 선거는 정당 공천이 없다. 후보 이름도, 정책도, 성향도 유권자에게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번 선거 역시 후보 난립과 단일화 갈등, 낮은 관심 속에 ‘깜깜이 선거’라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실제 선거 전 교육감 선거에서 ‘지지 후보 없음’과 ‘모름’ 응답이 높아 유권자의 무관심이 심각했던 게 사실이다. 정당 공천이 없는 교육감 선거에서 단일화 여부가 판세를 좌우해왔지만, 이번에는 곳곳에서 다자 구도와 단일화 불복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데도 진보 교육감이 약진했다면, 그 안에는 분명한 민심의 결이 있다. 첫째 메시지는 경쟁 일변도 교육에 대한 피로감이다. 학부모는 성적을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초학력 회복, 디지털 역량, AI 시대 인재 교육, 대학 진학 경쟁력에 대한 요구는 어느 때보다 강하다. 다만 아이를 점수와 서열의 사다리에만 묶어두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미래를 만들 수 없다는 문제의식도 커졌다. 학교가 입시 공장만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 교육이 최소한 아이의 자존감과 공동체 감각을 지켜야 한다는 요구가 표심에 반영됐다고 봐야 한다. 둘째 메시지는 공교육 회복에 대한 주문이다. 사교육비 부담은 이미 가계 경제의 고질병이 됐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 시간표가 아이의 하루를 지배하고, 중산층 가계조차 교육비 앞에서 허리가 휜다. 진보 교육감 후보들이 내세운 무상·보편 교육, 돌봄 확대, 교육복지 강화, 학교 현장 지원 공약은 이런 현실과 맞닿아 있다. 유권자는 이념의 깃발보다 “내 아이가 학교 안에서 충분히 배울 수 있는가”를 물었다. 교육감 선거 결과는 사교육에 밀린 공교육의 체면을 다시 세우라는 명령에 가깝다. 셋째 메시지는 학생 인권과 교권을 대립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교육 현장은 학생 인권과 교권 침해 논란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일부 보수 진영은 학생 인권 조례를 교권 약화의 원인처럼 몰아갔고, 일부 진보 진영은 교사들의 절박한 호소를 충분히 껴안지 못했다. 그러나 학교는 학생과 교사가 서로를 이기는 공간이 아니다. 학생의 존엄과 교사의 권위는 함께 서야 한다. 진보 교육감 약진은 학생 인권을 지키되, 교사가 무너지는 학교를 방치하지 말라는 이중의 요구로 해석해야 한다. 넷째 메시지는 ‘교육의 정치화’에 대한 경고다. 교육감 선거가 진보 대 보수의 대리전으로 흐를수록 정작 교실의 문제는 뒤로 밀린다. 한 아이가 문해력을 잃고, 한 교사가 악성 민원에 지치고, 한 학교가 디지털 격차 앞에서 흔들리는 문제는 좌우의 구호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는 진보 교육감에게 힘을 실어줬지만, 그것은 백지수표가 아니다. 교육을 정쟁의 전초기지로 만들지 말고 학교의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요구다. 진보 교육감들이 특히 새겨야 할 대목도 있다. 과거 혁신학교, 민주시민교육, 학생인권조례는 진보 교육의 상징이었다. 이번 선거 결과로 민주시민교육,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 자사고 정책 등이 다시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정책의 이름이 곧 성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혁신학교가 실제 학력과 학교 만족도를 높였는지, 민주시민교육이 균형 잡힌 시민성을 길렀는지, 학생인권정책이 교권 보호 장치와 함께 설계됐는지 냉정하게 검증해야 한다. 진보 교육이 다시 기회를 얻었다면, 이번에는 구호보다 성과로 답해야 한다. 보수 교육계도 반성할 대목이 적지 않다. 학력 회복과 학교 질서 회복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의제였다. 그러나 그것이 학생 인권의 후퇴, 과거식 입시 경쟁의 복원, 서열화 교육의 재가동처럼 비치면 중도 학부모를 붙잡기 어렵다. 보수 교육이 다시 신뢰를 얻으려면 ‘경쟁’만 말할 것이 아니라 ‘좋은 공교육 안에서의 실력’을 말해야 한다. 기초학력 진단은 필요하지만 낙인찍기가 되어서는 안 되고, 자율과 선택은 필요하지만 교육 격차를 방치하는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동서양의 고전은 교육의 본질을 이미 오래전에 말했다. <논어>의 ‘유교무류(有敎無類)’는 가르침에는 부류가 없다는 뜻이다. 신분과 배경에 따라 배움의 문을 달리해서는 안 된다는 공자의 말이다. 오늘의 한국 교육에 옮기면 부모의 소득, 사는 지역, 장애 여부, 학교 유형에 따라 아이의 미래가 갈라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진보 교육감 약진의 가장 큰 의미도 여기에 있다. 유권자는 교육이 다시 기회의 사다리가 되기를 바랐다. 사다리가 사교육 시장 안에만 놓여 있다면 그것은 공교육의 실패다. 그러나 평등만으로 교육은 완성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탁월함은 반복된 습관에서 나온다고 봤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학교를 만드는 것과 높은 기준을 세우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공정한 기회 위에서 더 많이 읽고,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정확히 쓰고, 더 책임 있게 행동하도록 이끄는 것이 교육이다. 진보 교육감들은 이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평등의 언어만 있고 수월성의 설계가 없다면 학부모는 다시 사교육 시장으로 달려갈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교육계에 세 가지 숙제를 남겼다. 첫째, 공교육의 질을 숫자로 증명해야 한다. 기초학력, 학교폭력, 교권 침해, 돌봄 공백, 디지털 격차에 대해 지역별 목표와 지표를 공개해야 한다. 둘째, 교사를 교육개혁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주체로 세워야 한다. 교사가 지쳐 있으면 어떤 혁신도 교실 문턱을 넘지 못한다. 셋째, 이념형 정책보다 현장형 정책을 앞세워야 한다. 학부모가 원하는 것은 거대한 담론보다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변화다. 교육감 선거는 무관심 속에서 치러졌지만, 그 결과가 가벼운 것은 아니다. 진보 교육감의 약진은 ‘아이들을 경쟁의 벼랑 끝에만 세우지 말라’는 호소이자 ‘공교육을 다시 믿을 수 있게 만들라’는 명령이다. 동시에 ‘진보 교육도 성과와 책임의 언어로 말하라’는 경고다. 교육은 정권보다 길고, 선거보다 깊다. 교육감의 임기는 4년이지만 한 아이의 삶에는 수십 년의 흔적을 남긴다. 이번 6·3 지방선거가 교육계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학교를 이념의 전시장으로 만들지 말라. 아이가 배우고, 교사가 가르치며, 학부모가 믿을 수 있는 공교육을 복원하라. 진보 교육감들의 승리는 그 출발선일 뿐이다. 이제부터는 승리의 말이 아니라 교실의 변화로 답할 시간이다.
2026-06-05 10:2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