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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이름의 면죄부, 사법정의는 어디에 있었나
[경제일보] 친족상도례라는 말은 어렵다. 한자로 쓰면 더 멀어진다. 그러나 내용은 어렵지 않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족 사이에서 절도, 사기, 횡령, 배임 같은 재산범죄가 벌어졌을 때 국가가 처벌을 삼가거나, 피해자가 고소해야만 처벌 절차로 갈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법은 오래전부터 가족 안의 돈 문제에 형벌권을 들이대는 일을 조심스러워했다. 가정의 평온을 지키고, 가족 사이의 일을 가족 내부에서 해결하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그 취지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사이의 사소한 금전 다툼까지 모두 경찰서와 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회가 건강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가족이라는 말이 언제나 따뜻한 울타리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신뢰의 이름이지만, 범죄자가 그 신뢰를 이용하면 피해자는 가장 늦게 구조된다. 남이 훔치면 절도이고, 남이 속이면 사기인데, 가족이 훔치고 속이면 “집안일”로 밀려나는 순간이 있었다. 법의 이름으로 그런 일이 가능했다. 친족상도례 논란의 본질은 가족 해체가 아니다. 피해자를 법 밖에 세워 둔 제도의 문제다. 피해자가 가족이라는 이유로 재판절차에서 말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가해자가 가족이라는 이유로 형사책임을 피한다면 사법정의는 출발선에서 멈춘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24년 형법 제328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당시 조항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사이의 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도록 했다. 형법은 절도, 사기, 공갈, 횡령·배임 등 여러 재산범죄에도 제328조를 준용해 왔다. 다시 말해 친족상도례는 권리행사방해죄 한 조항에 머무르지 않고 친족 간 재산범죄 전반에 영향을 미쳐 온 셈이다. 헌재는 해당 조항이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헌재 결정문을 보면 친족상도례가 왜 더 이상 옛 논리로 버틸 수 없게 됐는지 알 수 있다. 청구인 측은 친족상도례가 노인이나 장애인 등 약자를 상대로 한 악질적 재산범죄의 면죄부로 기능한다고 주장했다. 법이 가족 내부의 자율 해결을 기대하는 사이, 현실의 피해자는 고립됐다. 가족 안에서 돈을 빼앗긴 사람은 가족 안에서 침묵을 요구받는다. 가해자는 경찰서 앞에서 가족을 말하고, 법정 앞에서 화해를 말한다. 피해자는 생활비, 주거, 간병, 정서적 의존 때문에 끝까지 싸우기 어렵다. 형사사건 현장에서 자주 보는 장면이다. 친족 간 재산범죄는 폭행처럼 상처가 바로 보이지 않는다. 통장, 인감, 위임장, 법인카드, 가족회사, 명의신탁, 생활비 계좌 같은 이름 뒤로 숨어 있다. 처음에는 부탁처럼 시작된다. “가족인데 믿어라”, “내가 관리해 주겠다”, “나중에 정산하자”는 말이 이어진다. 피해자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계좌가 비어 있거나, 회사 돈이 빠져나갔거나, 명의가 옮겨져 있다. 그때 가해자는 다시 가족을 앞세운다. “고소까지 할 일이냐”는 말이 나온다. 가족의 이름은 한 번은 범행의 도구가 되고, 또 한 번은 책임 회피의 방패가 된다. 방송인 박수홍 씨 사건이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 씨 친형은 2011년부터 2021년까지 매니지먼트 회사를 운영하면서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았고, 2026년 2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 6개월이 확정됐다. 이 사건은 법인 자금 횡령이 중심이어서 친족상도례가 그대로 적용된 전형적 사건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대중이 이 사건을 통해 본 것은 가족회사, 가족 간 신뢰, 돈 관리, 내부 감시 부재가 맞물릴 때 재산범죄가 얼마나 오래 숨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항소심은 피해 회사가 가족회사로서 내부 감시체계가 취약했고 형제 관계의 신뢰가 악용됐다는 점을 특별가중 요소로 봤다. 국회도 헌재 결정 이후 움직였다. 2025년 12월 31일 공포된 형법 개정으로 과거의 형 면제 조항은 삭제됐다. 개정 형법 제328조는 피해자의 친족이 재산범죄를 저지른 경우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도 고소할 수 있도록 형사소송법상 직계존속 고소 제한을 배제했다. 친족 아닌 공범에게는 친족 특례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남겼다. 가까운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형을 면제받던 시대는 끝났다. 아버지 돈을 자식이 훔쳐도, 형제의 돈을 다른 형제가 빼돌려도, 배우자가 상대방 재산을 횡령해도 이제 “가족이니까 처벌하지 않는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고소하면 수사와 재판으로 갈 수 있다. 가족 내부의 자율 해결이라는 이름 아래 피해자의 입을 막던 낡은 문은 닫혔다. 그러나 여기서 칼럼을 끝내면 절반만 본 것이다. 형 면제가 사라졌다고 친족 특례의 문제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개정법은 친족 간 재산범죄를 원칙적으로 친고죄로 정리했다. 친고죄란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검사가 재판에 넘길 수 있는 범죄를 말한다.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장점이 있다. 가족 사이의 일률적 처벌을 피하고, 진정한 화해가 이뤄진 사건까지 국가가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도록 하는 기능도 있다. 하지만 친고죄는 피해자가 자유롭게 고소하고 자유롭게 고소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가족 내부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노부모가 자식에게 생활을 의존하고 있다면 어떠한가. 장애가 있는 피해자가 재산 관리를 친족에게 맡겨 왔다면 어떠한가. 배우자나 형제가 집안 여론을 동원해 “네가 가족을 감옥 보낼 셈이냐”고 몰아붙이면, 피해자의 고소 취소가 정말 자유로운 결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형 면제의 시대에는 법이 피해자를 밀어냈고, 친고죄의 시대에는 가족 내부 압박이 피해자를 다시 밀어낼 수 있다. 대법원의 2026년 4월 판단은 이 대목을 생각하게 한다. 부모의 집에서 금고를 들고 나와 현금, 상품권, 귀금속 등을 훔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피해자인 부모가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하자, 대법원은 개정 형법상 친족 간 절도는 친고죄에 해당하고 1심 판결 선고 전 고소가 취소된 이상 공소기각 판단을 했어야 한다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판단은 현행법 체계상 자연스럽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친고죄 사건에서 법원이 공소를 유지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사건은 개정 이후의 숙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법은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동시에 그 의사가 가족 내부의 압박, 두려움, 생계 의존, 정서적 굴레 속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도 살펴야 한다. 특히 노인과 장애인 피해자는 이 논의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보건복지부의 2024년 장애인학대 현황에 따르면 전국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접수된 장애인학대 신고는 6031건이었다. 학대로 판정된 사례는 1449건이었다. 학대 피해자 중 발달장애인의 비율은 71.1%였고, 학대 유형 중 경제적 착취는 18.6%를 차지했다. 숫자가 말하는 장면은 냉정하다. 가족 안에서 돌봄을 받아야 할 사람이 오히려 돈과 노동력을 빼앗기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노인학대도 가정 안에서 많이 발생한다. 법제처 생활법령정보는 2025년 학대피해노인이 7973명으로 전년보다 11.2% 증가했다고 정리하고 있다. 노인학대는 신체적 학대만을 뜻하지 않는다. 정서적 학대, 경제적 학대, 방임, 유기도 포함된다. 재산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통장을 가져가고, 기초연금이나 예금을 생활비라는 이름으로 빼 쓰고, 부동산 처분 권한을 넘겨받은 뒤 돌려주지 않는 일도 가족 안에서 벌어진다. 가족은 법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그래서 위험할 때 더 무섭다. 타인의 범죄는 경찰에 신고하면 된다. 가족의 범죄는 신고하기 전부터 설명해야 할 것이 많다. 왜 가족을 고소하느냐는 질문을 먼저 받는다. 피해자는 돈을 잃은 사람인데도 가족을 깨뜨린 사람처럼 몰린다. 가해자는 범행을 설명하기보다 관계를 내세운다. “부모 자식 사이”, “형제 사이”, “부부 사이”라는 말이 피해 사실 위에 덮인다. 사법정의가 어려워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형사법의 목적은 국가가 벌을 주고 끝내는 데만 있지 않다. 죄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고, 피해자의 말을 공적 절차 안으로 들여오며,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를 세우는 일도 형사사법의 역할이다. 응보라는 말도 거칠게만 볼 필요가 없다. 응보는 복수가 아니다. 범죄로 무너진 질서에 대해 공동체가 “그 일은 잘못됐다”고 말하는 절차다. 피해자는 그 선언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당한 일이 집안일이나 운명의 문제가 아니라 범죄였다는 확인을 받는다. 가족 안의 재산범죄에서도 그 확인은 필요하다. 친족 특례를 모두 없애자는 말이 아니다. 가족관계에는 회복 가능성이 있고, 형사처벌이 오히려 분쟁을 키우는 사건도 있다. 부모 지갑에서 소액을 가져간 미성년 자녀 사건과, 장애가 있는 친족의 보조금과 예금을 장기간 빼돌린 사건을 같은 눈으로 볼 수는 없다. 술김에 벌어진 일회성 절도와, 가족회사를 이용해 수년간 돈을 빼낸 횡령도 다르다. 법은 차이를 봐야 한다. 과거 친족상도례의 잘못은 그 차이를 보지 않았다는 데 있다. 가까운 친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피해 규모, 범행 기간, 피해자의 처벌 의사, 피해자의 취약성, 가해자의 지배관계, 피해 회복 정도를 뒤로 밀었다. 앞으로의 과제도 그 지점에 있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친족 간 재산범죄에서 고소 취소가 접수됐다고 곧바로 “화해”라고 읽어서는 안 된다. 피해자가 독립된 상태에서 의사를 밝혔는지, 가해자와 주거·생계·돌봄 관계로 묶여 있지는 않은지, 피해 회복이 실제로 이뤄졌는지, 다른 가족의 압박이 있었는지 따져야 한다. 노인, 장애인, 질병이 있는 피해자라면 진술 조력, 국선변호인, 피해자 보호명령, 후견제도, 임시 재산관리 장치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고소권을 법전에 적어 두는 일과 피해자가 그 권리를 실제로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일은 다르다. 입법도 한 번 더 손봐야 한다. 친고죄 일원화는 헌재 결정 이후 급한 불을 끈 절충안에 가깝다. 친족 간 재산범죄를 모두 일률적으로 친고죄로 묶는 방식이 적절한지도 계속 따져야 한다. 피해액이 크거나 범행 기간이 길거나, 피해자가 노인·장애인 등 취약한 지위에 있거나, 가해자가 재산관리 권한을 이용한 사건이라면 고소 취소만으로 절차가 끝나지 않도록 별도의 예외를 둘 필요가 있다. 가족 내부 해결을 존중하더라도, 가족 내부에서 해결될 수 없는 범죄까지 가족에게 되돌려 보내서는 안 된다. 언론도 이 문제를 연예인 가족 분쟁이나 자극적인 집안싸움으로 소비해선 안 된다. 친족상도례 논란은 유명인의 불행담이 아니라 우리 형사사법이 가족 안의 피해자를 어디까지 보호할 수 있는지 묻는 사건이다. 고령화가 빨라지고 1인 가구와 재혼가정, 사실상 돌봄 가족, 가족회사, 가족 간 재산관리 관계가 복잡해지는 시대다. 예전처럼 “가족끼리 알아서 하라”는 말로 덮을 수 있는 사건은 줄어들고 있다. 가족의 형태가 달라졌는데 법의 감각만 오래된 사진첩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친족상도례의 형 면제 조항은 역사 속으로 물러났다. 늦었지만 필요한 변화였다. 그러나 사법정의는 조항 하나를 고쳤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피해자가 고소할 수 있어야 하고, 고소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며, 고소를 취소할 때도 그 결정이 자유로운 의사에서 나온 것인지 확인받을 수 있어야 한다. 가족이라는 말이 피해자의 권리를 지우는 순간, 법은 가장 가까운 곳의 약자를 놓친다. 가족의 평온은 범죄의 침묵 위에 세울 수 없다. 진짜 평온은 가해자의 책임을 덮는 데서 오지 않는다. 피해자가 자신이 당한 일을 말할 수 있고, 국가는 그 말을 절차 안에서 듣고, 법원은 관계가 아니라 행위를 기준으로 판단할 때 가족도 사회도 무너지지 않는다. 친족 특례의 시대가 남긴 교훈은 하나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사법정의보다 앞설 수는 없다.
2026-07-09 07:5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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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법연령은 낮추고, 국가는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경제일보] 소년범죄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나이는 첫 번째 질문이 아니다. 흉기에 다쳤다면 상처가 남고, 집단폭행을 당했다면 학교에 다시 가는 일부터 두려워진다. 성범죄 피해를 입은 아이와 가족에게는 일상이 무너진다. 가해자가 열세 살이라는 사정이 피해의 크기를 줄여주지는 않는다. 현행 형법은 14세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다.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은 소년부 심리를 거쳐 보호관찰이나 소년원 송치 같은 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형사재판을 받는 것과 같은 무게의 책임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와 가족의 눈에는 법이 가해 소년의 나이부터 살피고, 자신들이 겪은 고통은 뒤로 미루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촉법연령은 낮춰야 한다. 살인과 강도, 성폭력, 흉기 사용, 집단폭행처럼 타인의 생명과 신체를 심각하게 침해한 범죄라면 더욱 그렇다. 보호처분을 받고도 폭력과 절도를 반복하는 소년에게도 마찬가지다. 범행의 결과를 알면서도 타인에게 중대한 해악을 입히는 행위까지 나이 하나만으로 형사사법의 바깥에 둘 이유는 약하다. 소년에게 성인과 똑같은 처벌을 하자는 뜻은 아니다. 열세 살의 판단력과 책임 능력을 성인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수사와 재판, 형의 집행도 소년의 발달 단계와 회복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책임의 경계는 분명해야 한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누군가의 삶을 어떻게 훼손했는지, 그 행동에 왜 법적 책임이 따르는지를 가르치지 않는 교화는 훈계에 그치기 쉽다. 형벌에는 재범을 막고 사회를 지키는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응보 역시 형벌의 중요한 목적이다. 응보는 피해자의 분노를 대신 풀어주는 보복이 아니다. 국가가 범죄의 위법성과 피해의 무게를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가해자에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일이다. 법원이 책임을 선언할 때 피해자는 자신이 겪은 일이 사적인 불운이나 아이들 사이의 다툼으로 축소되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소년범죄 논의에서는 가해 소년의 성장 가능성과 교화 필요성이 자주 강조된다. 그 원칙은 필요하다. 그러나 가해 소년의 장래를 살핀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상처와 불안을 주변으로 밀어낼 수는 없다. 피해자 보호는 소년사법의 부수적 과제가 아니다. 소년사법이 시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기준이다. 촉법연령 하향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법의 문턱만 낮춰 놓고 소년을 다시 방치한다면, 제도는 또 다른 실패를 낳는다. 가해 소년은 더 깊은 비행으로 들어가고, 피해자는 계속 늘어난다. 소년분류심사원의 현실은 국가가 소년범죄에 얼마나 임시방편으로 대응해 왔는지를 드러낸다. 지난해 새로 위탁된 소년은 5489명이었다. 4년 전보다 42% 증가했다. 2025년 하루 평균 수용 인원은 460명으로 정원 410명을 넘어섰다. 원칙상 한 달인 위탁 기간도 절반가량이 연장됐다. 심사원은 이미 정원을 넘긴 인원을 안고 돌아가고 있다. 소년분류심사원은 단순히 소년을 머물게 하는 시설이 아니다. 법원이 처분을 정하기 전 가정환경과 학교생활, 또래관계, 정신건강, 중독 문제를 살피고 재비행 위험을 판단하는 기관이다. 심사관이 작성한 분류심사서는 소년의 처분을 정하는 재판부 판단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런데 전국 심사관은 22명에 불과하다. 한 사람이 해마다 250건 안팎을 맡아야 한다. 정신질환과 약물·도박 문제, 가정 해체와 학대 경험, 학교 부적응까지 겹친 소년을 짧은 기간에 파악하고 적절한 처우를 정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심사원에 들어오는 소년 세 명 중 한 명이 정신질환을 안고 있다는 현장 진단까지 나온다. 상담과 치료, 교육을 맡을 인력은 부족하고, 심사관들은 사건 처리와 행정 업무, 야간근무까지 감당해야 한다. 심사원 안에서 달라지는 소년도 적지 않다. 규칙적인 생활을 배우고, 끼니를 챙겨 먹으며, 상담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본다. 밖에서 굶거나 약물에 손댔던 소년이 생활을 회복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평균 44일의 변화는 심사원 문을 나서는 순간 흔들리기 쉽다. 소년은 다시 가출을 반복하던 집으로 돌아간다. 학교에서는 이미 낙오자로 취급받고, 범행을 함께했던 또래는 연락을 기다린다. 도박과 폭력, 성착취와 마약에 닿는 온라인 공간도 그대로 남아 있다. 심사원에서 재비행 위험을 진단해 놓고도 가정과 학교, 보호관찰소와 지역사회가 뒤를 잇지 못하면 심사 결과는 보고서에 머문다. 재위탁률이 40%를 넘는 현실도 같은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심사원에 여러 차례 드나드는 소년이 생기는 이유를 개인의 의지 부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보호관찰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학교 출석이 무너진 소년에게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생활 기반부터 없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돌볼 여력이 없고, 학교는 손을 놓으며, 보호관찰관은 지나치게 많은 사건을 맡는다. 지역사회 상담기관은 도움을 청하는 소년에게만 문을 연다. 가장 먼저 손을 내밀기 어려운 소년에게 스스로 찾아오라고 요구하는 방식이다. 국가의 관리 실패는 결국 새로운 피해로 돌아온다. 재비행은 숫자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두 번째 폭행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처음 겪는 공포다. 가해 소년을 제대로 붙들지 못한 국가는 다음 피해자를 막을 기회도 놓친다. 재범 방지는 가해 소년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가장 현실적인 피해자 보호 정책이다. 촉법연령을 낮춘다면 처벌 뒤의 관리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 중대 범죄나 반복 비행으로 보호처분 또는 형사처분을 받은 소년에게는 전담 사례관리자가 필요하다. 보호관찰소와 학교, 지방자치단체, 상담기관이 각자 공문만 주고받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한 명의 담당자가 소년의 출석과 치료, 가정환경, 또래관계, 직업교육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필요한 기관을 연결해야 한다. 보호자 책임도 분명히 해야 한다. 부모의 방임과 폭력, 중독과 가정 붕괴가 비행의 배경이라면 소년만 교육해서는 달라질 것이 없다. 보호자 상담과 교육, 필요한 경우 가정에 대한 개입이 병행돼야 한다. 아이를 심사원에 맡긴 뒤 집안은 예전과 다름없이 두고 “다시 잘해 보라”고 돌려보내는 방식은 재비행을 막지 못한다. 학교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 재적만 유지한 채 교실에서 사실상 밀려난 소년이 적지 않다. 일반 학교로 돌아가기 어렵다면 대안교육과 직업교육으로 이어져야 한다. 수업을 듣지 않고, 일할 곳도 없으며, 집에서도 돌봄을 받지 못하는 소년에게 보호관찰 준수만 요구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처방이다. 촉법연령 하향은 소년을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다. 더 이른 시점에 책임을 가르치고, 그 책임이 다음 범죄로 이어지지 않도록 국가가 더 오래 관리하자는 요구다. 피해자에게는 “당신이 겪은 피해를 법은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가해 소년에게는 “나이가 책임을 지워주지는 않지만, 국가는 당신을 다시 범죄로 밀어 넣지도 않겠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촉법연령을 낮추는 일은 출발일 뿐이다. 심사원에서 44일을 보낸 뒤에도 국가가 소년의 삶을 붙들 수 있어야 한다. 책임을 묻되 방치하지 않고, 피해자를 보호하되 소년의 재기를 포기하지 않는 제도. 그 두 가지를 함께 해내지 못한다면 촉법소년 논쟁은 언제까지나 같은 자리만 맴돌게 된다.
2026-07-05 14: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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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 증시, 천수답 시장을 끝내야 한다
[경제일보] 비가 오면 살고, 비가 오지 않으면 말라 죽는다. 천수답의 운명이다. 지금 한국 증시가 그렇다. 기업 실적이 좋아지고 반도체 슈퍼사이클 기대가 커져도, 외국인 수급과 미국 기술주 흐름, 환율과 금리, 지정학 리스크가 흔들리면 시장은 하루아침에 출렁인다. 오를 때는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시장처럼 달리지만 빠질 때는 안전벨트 없는 롤러코스터처럼 추락한다. 최근 코스피 장세는 그 단면을 숫자로 보여줬다. 지난 23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910.71포인트, 9.99% 급락한 8203.84에 거래를 마쳤다. 전일 종가 대비 낙폭으로는 역대 최대 수준의 충격이었다. 그런데 하루 뒤인 24일 시장은 다시 급반등했다. 코스피는 전장보다 152.95포인트, 1.86% 오른 8356.79로 출발했다. 며칠 전에는 9000선을 넘보던 지수가 하루 만에 8200선으로 밀리고 다시 하루 만에 반등을 시도하는 장세가 반복된 것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상승장인지, 조정장인지, 거품 붕괴의 전조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시장이다. 더 불안한 것은 지수의 반등에도 공포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형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는 24일 94.81까지 치솟았다. 장중에는 97선을 넘어서며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주가는 올랐는데 공포지수도 함께 오른 셈이다. 이는 시장이 단순히 ‘싸졌으니 사자’는 반등 국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단순한 변동성이 아니다. 한국 증시는 오랫동안 외부 변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를 안고 있었다. 외국인이 사면 오르고 팔면 빠지는 수급 구조, 반도체와 일부 대형주에 집중된 산업 쏠림, 상승장마다 반복되는 레버리지 투자 확대가 시장의 흔들림을 키웠다. 증시가 경제 전체의 체온계가 아니라 특정 산업과 외국인 매매의 체온계처럼 움직인다면 충격 흡수력은 약할 수밖에 없다. 시장은 홀로 움직이지 않는다. 금리와 환율, 기업 실적과 정책 신뢰, 투자 심리와 국제 정세가 얽혀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미국 반도체주가 흔들리면 한국 지수도 흔들리고 달러가 강해지면 외국인 이탈을 걱정한다. 중동 정세가 불안해지면 유가와 환율이 먼저 반응하고, 미국 금리 전망이 바뀌면 국내 성장주와 기술주가 흔들린다. 외부 충격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충격을 흡수할 둑과 저수지가 없다면 매번 위기는 반복된다. 천수답 시장에서 벗어나려면 국내 장기자금의 힘을 키워야 한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이 단기 매매의 보조자가 아니라 시장의 하방을 받치는 축이 돼야 한다. 한국 가계 자산은 여전히 부동산에 치우쳐 있다. 노후자금이 자본시장으로 안정적으로 흘러 들어가고 배당과 성장의 과실을 장기적으로 나누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한국 증시는 외국인 매수세라는 빗물만 기다리지 않는다. 기업도 달라져야 한다. 한국 증시가 선진시장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는 지수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다. 투자자가 기업 이익의 주인으로 대우받는다는 확신이 약했기 때문이다. 배당은 들쑥날쑥했고 자사주 매입은 소각보다 주가 방어용 이벤트로 소비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시장이 믿는 것은 말이 아니라 반복된 행동이다. 벌면 나누고, 투자하면 설명하고, 실패하면 책임지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산업 저변도 넓혀야 한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심장이지만 심장만으로 몸 전체가 건강해질 수는 없다. 바이오, 방산, 조선, 전력기기, 로봇, 콘텐츠, 금융, 친환경 인프라 등 다양한 산업이 자본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 코스닥도 단기 테마장이 아니라 혁신기업의 성장판이 돼야 한다. 지수 상승의 과실이 소수 대형주에 머물면 시장은 넓어지지 않고 넓지 않은 시장은 충격에도 약하다. 레버리지 투자 관리도 필요하다. 빚을 낸 투자와 고위험 ETF가 과도하게 늘어나면 하락장에서 매도 압력은 증폭된다. 상승장에서는 수익률을 키우는 도구처럼 보이지만, 급락장에서는 시장 전체를 흔드는 화약고가 된다. 금융당국은 투자자의 자유를 존중하되 위험 설명, 증거금 관리, 고위험 상품 판매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증권사도 거래대금 확대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고객이 오래 살아남아야 시장도 오래 간다. 제도 인프라도 선진시장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편입 실패는 한국 시장이 아직 글로벌 투자자에게 충분히 예측 가능하고 접근하기 쉬운 시장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외환시장 접근성, 영문 공시, 배당 절차, 공매도와 결제 인프라를 국제 기준에 맞춰 더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제도는 도입보다 작동이 중요하다. 변동성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시장은 본래 흔들린다. 그러나 좋은 시장은 흔들리지 않는 시장이 아니라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는 시장이다. 비가 오지 않아도 물길이 있고, 가뭄이 와도 저수지가 있으며, 홍수가 나도 배수로가 있는 논이 좋은 논이다. 한국 증시도 이제 비를 기다리는 시장에서 물길을 만드는 시장으로 가야 한다. 외국인 자금이라는 하늘만 바라보지 말고 국내 장기자금이라는 저수지를 만들고 기업 신뢰라는 수로를 놓고 제도 안정성이라는 둑을 쌓아야 한다. 그것이 롤러코스터 장세를 넘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바꾸는 길이다.
2026-06-25 15:4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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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주차비·출장비도 이자"…고금리 차량담보대출 주의보
[경제일보] 금융감독원이 고금리 변종 차량담보대출에 대한 소비자 주의를 당부했다. 대부업자가 주차비와 출장비, 수수료 등 명목으로 요구하는 비용은 모두 이자에 포함되는 만큼 법정 최고금리를 초과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채무자의 차량을 담보로 확보한 뒤 법정이자를 초과하는 고금리를 받는 변종 불법사금융 신고가 총 12건 접수됐다. 월별로는 지난 1월 1건, 3월 2건, 4월 1건, 5월 4건, 6월 4건이다. 금감원은 불법사금융 범죄가 금융소비자를 기망하는 형태로 진화하면서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고 보고 소비자경보를 통해 유의사항과 대응요령을 안내했다. 불법 차량담보대출은 외형상 일반 차량담보대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금리 불법사금융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업자 등이 오토바이나 자가용 등을 인도받아 직접 점유하는 방식으로 담보를 확보한 뒤 각종 명목의 부대비용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일부 업자는 할부·리스차량으로도 담보대출이 가능하다고 소비자를 속인 것으로 나타났다. 할부차량은 피해자 소유인 경우에도 저당권자인 할부금융회사 동의 없이 담보로 제공하거나 인도하면 저당목적물 은닉에 해당할 수 있다. 리스차량은 리스회사 소유이기 때문에 담보 제공 자체가 불가능하다. 고금리 수취 방식도 다양했다. 대부업자는 약정이자와 별도로 주차비와 출장비, 수수료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대부업법상 명칭과 관계없이 대부와 관련해 대부업자가 청구한 비용은 모두 이자에 포함된다. 등록대부업자도 연 이자율 20%를 초과해 이자를 받을 수 없다. 연 이자율이 60%를 초과하면 원금과 이자가 모두 무효가 된다. 불법 추심 사례도 확인됐다. 할부 또는 리스차량인 경우 대부업자가 이를 빌미로 "할부금융·리스회사에 알려 고소당하게 하겠다"는 취지로 피해자를 협박하는 경우가 있었다. 채무자에 대한 협박이나 공포심·불안감 유발, 무효인 채권에 대한 추심은 불법 채권추심에 해당한다. 담보물을 무단으로 이용한 피해도 발생했다. 대부업자가 채무자 동의 없이 차량을 운행하면서 차량 가치가 하락하고 주정차 위반 과태료와 통행료가 채무자에게 부과되는 사례가 있었다. 피해 대출 규모는 250만원에서 3000만원 수준이었다. 선공제 금액과 출장비·주차비 등 각종 부대비용을 이자로 간주해 산출한 이자율은 27%에서 229%에 달했다. 기간 등이 특정되지 않아 이자율을 산정할 수 없는 1건은 제외됐다. 피해자는 30대가 가장 많았다. 전체 12명 중 30대가 6명으로 절반을 차지했고 60대 2명, 20대·40대·50대가 각각 1명으로 나타났다. 거주지는 경기 5명, 서울 3명, 인천 1명 등 수도권이 대부분이었으며 대구·경남·광주에서도 각 1명씩 피해가 확인됐다. 금감원은 주차비, 출장비, 수수료 등 명칭이 무엇이든 대부업자가 요구하는 비용은 이자에 포함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출 과정에서 부대비용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경우 법정 최고금리 위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리스·할부차량을 담보로 제공할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 채무자가 적법한 권한 없이 리스·할부차량을 담보로 제공하거나 인도하는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대부업자도 리스·할부차량을 담보로 받으면 형사처벌 대상에 해당할 수 있다. 금감원은 관련 판례도 제시했다. 승용차를 담보로 250만원을 대부하면서 선이자 4만원, 담보차량 주차요금 35만원, 출장비 및 이동비 8만원 등 총 47만원을 제외한 사례에서 법원은 출장비와 주차비를 모두 이자로 산정했다. 리스차량을 대부업자에게 담보 제공 명목으로 인도한 경우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판례도 있다. 할부차량을 담보로 넘겨 자동차 저당권 행사를 방해한 경우에는 권리행사방해죄가 인정될 수 있다. 금감원은 불법 차량담보대출이 의심되면 추가 피해 방지와 피해 구제를 위해 금감원이나 수사기관에 적극 신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고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 원스톱 종합·전담 지원 시스템을 통해 피해내역 정리, 증빙자료 준비, 신고서 작성, 채무조정, 고용·복지 연계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금감원은 고금리 불법 차량담보대출 신고 건 중 증빙자료가 확보된 건에 대해서는 채무자대리인 선임, 무효확인서 발급 등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 불법사금융 피해에 노출된 경우 금융감독원 1332번으로 신고하면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과다채무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에는 서민금융진흥원이나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상담이 가능하다.
2026-06-25 08:5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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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의 귀환, 에너지 안보와 책임의 균형을 세울 때다
문명이 화려해질수록 인간은 때때로 가장 기본적인 것을 잊는다. 전기가 그렇다. 우리는 스마트폰과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의 불빛을 당연한 듯 여기지만, 그 모든 문명의 밑바닥에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라는 가장 오래되고도 근본적인 조건이 놓여 있다. 전기가 흔들리면 산업이 흔들리고, 산업이 흔들리면 국가의 경쟁력과 국민의 삶도 함께 흔들린다. 정부가 경북 영덕에 대형 원전 2기, 부산 기장에 국내 첫 소형모듈원전(SMR) 1기 건설 용지를 확정한 것은 그런 점에서 단순한 발전소 건설 계획이 아니다. 신규 원전 부지 선정이 14년 만이라는 사실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에너지 문제를 얼마나 오랫동안 이념과 공포,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 묶어 두었는지를 보여준다. 이제야 비로소 국가 에너지 전략의 저울추를 현실 쪽으로 돌려놓으려는 늦었지만 필요한 결단이라 할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는 전력의 시대다. AI 데이터센터, 첨단 반도체 공장, 배터리 산업, 클라우드 서비스는 막대한 전기를 먹고 자란다. 데이터가 새로운 석유라면 전기는 그 데이터를 움직이는 혈액이다. 안정적인 전력 없이 AI 강국도, 제조업 강국도, 첨단산업의 미래도 없다. 에너지는 더 이상 단순한 산업 정책이 아니라 안보 그 자체다. 국제 정세가 흔들리고 에너지 공급망이 불안정해질수록 자국 안에서 안정적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은 국가 생존의 핵심 조건이 된다. 이번 결정에서 주목할 대목은 지역 주민들의 높은 찬성률이다. 영덕 주민 찬성률이 86%에 달했다는 사실은 과거의 이른바 ‘원전 포비아’를 넘어선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말해 준다. 원전은 한때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막연한 공포만으로 국가의 미래를 설계할 수는 없다. 주민들은 이제 위험과 편익, 지역 경제와 국가적 필요를 함께 따져 보기 시작했다. 이는 감정의 정치에서 상식의 정치로 이동하는 중요한 신호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서 시작되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데서 시작된다”고 했다. 에너지 정책도 마찬가지다. 거창한 구호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필요한 한 걸음을 내딛는 일이다. 원전 부지 확정은 그 첫걸음이다. 그러나 첫걸음이 옳다고 해서 모든 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큰 결단일수록 그 뒤에는 더 큰 책임이 따라야 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다. 원전을 짓겠다고 하면서 사용후핵연료의 영구처분장 문제를 뒤로 미루는 것은 책임 있는 국가 운영이 아니다. 지금의 임시 저장 방식은 언젠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오늘의 전기를 쓰기 위해 내일의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원전 확대가 진정한 국가 전략이 되려면 영구처분장 마련을 위한 사회적 합의와 법적·제도적 장치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공자는 “군자는 의를 생각하고 소인은 이익을 생각한다”고 했다. 원전의 경제성과 효율성만 앞세우고 폐기물 처리라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의로운 정책이 아니다. 정부는 부지 선정과 발전소 건설만 발표할 것이 아니라,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안전하게 관리하고 최종 처분할 것인지 국민 앞에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원전 정책의 신뢰는 안전 기술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책임 있는 정보 공개와 장기 계획, 그리고 주민과의 정직한 소통에서 나온다. 또 하나의 원칙은 균형이다. 원전이 필요하다고 해서 신재생에너지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태양광과 풍력, 수소와 에너지저장장치 역시 미래 에너지 체계의 중요한 축이다. 원전은 안정적인 기저전원으로서 산업을 떠받치고, 신재생에너지는 탄소중립과 지속 가능성의 길을 넓혀야 한다. 어느 하나만을 절대화하는 순간 에너지 정책은 다시 이념의 함정에 빠진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원전 부지 선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안전성 검증, 주민 지원, 지역 경제와의 상생, 폐기물 처리, 전력망 확충까지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특히 지역 주민의 높은 찬성률을 단순한 정책 명분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찬성한 주민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신뢰와 보상이 따라야 하고, 우려하는 국민들에게는 과학적이고 정직한 설명이 제공되어야 한다. 에너지는 국가의 기본이다. 기본이 흔들리면 화려한 문명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AI 시대의 대한민국이 세계와 경쟁하려면 안정적인 전력 기반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그 기반은 안전과 책임, 균형이라는 세 기둥 위에 세워져야 한다. 이번 원전 부지 확정은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우리는 이제 원전 공포를 넘어 현실을 보아야 한다. 동시에 원전 낙관에 취해 미래 세대의 부담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참된 국정은 오늘의 필요와 내일의 책임을 함께 살피는 데 있다. 정부가 원칙을 지키되 섬세하게 조정하고, 국민이 공포가 아니라 상식으로 판단할 때 대한민국의 에너지 안보는 비로소 단단한 토대 위에 설 것이다.
2026-06-20 10: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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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뒷전, 당권만 좇는 여의도의 씁쓸한 자화상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선장과 항해사는 서로 조타기를 잘못 잡았다며 멱살잡이만 하고 있다. 갑판 아래에서는 승객들이 물이 차오르는 공포에 떨고 있는데도 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의 모습이 꼭 그렇다. 6·3 지방선거가 끝난 지 2주가 지났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선거의 후유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선거의 교훈을 되새기기는커녕 선거 결과를 둘러싼 책임 공방과 당권 투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여의도는 민심을 읽는 공간이 아니라 권력을 계산하는 공간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예외가 아니다.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자 지도부를 향한 사퇴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국민이 진정 묻고 있는 것은 누가 대표직을 유지할 것인가가 아니다. 왜 국민이 등을 돌렸는가, 왜 국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안타깝게도 정치권은 그 질문을 외면한 채 차기 권력의 향배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투표용지 부실 관리 사태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였다. 선거 관리 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났고 국민의 신뢰는 상처를 입었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 속에서 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폐업을 고민하고 청년들은 취업난에 신음하며 노년층은 생활비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 그러나 국회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민생 대책이 아니라 계파 갈등과 권력 재편 이야기뿐이다. 정치가 국민을 위한 것인지, 정치인 자신을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자는 논어에서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도자가 바르면 백성도 자연히 바르게 따른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는 바름보다 유불리를 먼저 따지고 있다. 국민의 고통보다 당내 권력 지형에 더 관심을 보이고, 국가의 미래보다 다음 전당대회와 공천을 더 걱정하는 모습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성인은 자기 자신을 뒤로하고 백성을 앞세운다"고 했다. 또한 "강한 것은 부러지고 부드러운 것이 살아남는다"고 가르쳤다. 지도자는 권력을 움켜쥐려 할수록 결국 그 권력에 갇히게 되고, 백성의 목소리를 낮은 자세로 듣는 자만이 오래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권은 어떠한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는 대신 상대 진영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데 더 익숙해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양당 모두 선거 결과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만 해석한다는 점이다. 국민의 심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보다 이를 내부 권력투쟁의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선거 책임론이 본래의 의미를 잃고 정적 제거의 수단으로 변질되는 순간, 정치의 품격은 무너진다. 국민의 채찍질은 쇄신을 위한 것이지 계파 싸움의 명분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은 책임 정치다. 권한을 가졌다면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잘못이 있다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개선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에서는 책임지는 지도자를 찾기 어렵다. 모두가 남의 탓을 한다. 정부는 야당을 탓하고 야당은 정부를 탓한다. 당 지도부는 전임 지도부를 탓하고 계파는 상대 계파를 탓한다. 국민은 이미 알고 있다. 서로를 향한 비난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성경 잠언에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는 구절이 있다. 지도자가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고 권력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는 순간 몰락은 시작된다는 경고다. 역사를 돌아보면 국민의 경고를 무시한 정권과 정당 가운데 오래 살아남은 사례는 없다.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한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저성장과 고물가, 인구 감소와 청년 실업, 인공지능(AI) 시대의 산업 재편, 국제 질서의 불확실성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문제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이 권력 다툼에만 몰두한다면 국가는 방향을 잃고 국민은 희망을 잃게 된다. 정당은 권력을 얻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다.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존재하는 공적 기관이다. 대표직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당권은 국민을 위한 봉사의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수단이 목적이 되고 봉사가 권력욕으로 변질되면 정치는 본래의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된다. 배가 침몰할 때 필요한 것은 서로의 잘못을 따지는 싸움이 아니다. 승객을 구하기 위한 협력이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에도 필요한 것은 상대를 무너뜨리는 기술이 아니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다. 국민은 더 이상 변명하는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다. 국민은 책임지는 지도자, 듣는 지도자, 행동하는 지도자를 원한다. 여야는 이제 당권이라는 독배를 내려놓아야 한다. 선거 결과에 담긴 국민의 경고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민생이라는 본분으로 돌아와야 한다. 쇄신 없는 권력투쟁의 끝은 공멸이다. 반대로 책임 정치와 협치의 정신을 회복한다면 위기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정치는 권력을 위한 게임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일이다. 그 가장 단순한 진실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오늘 대한민국 정치가 가장 먼저 되찾아야 할 상식이다.
2026-06-18 17:4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