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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부(知足富)는 이란 전쟁...과잉의 전략과 절제의 병법
전쟁은 힘의 총합으로 결정된다고 믿기 쉽다. 더 많은 무기, 더 큰 경제력, 더 강한 동맹이 승패를 가른다는 통념이다. 그러나 역사는 그 통념이 얼마나 자주 깨져왔는지를 반복해 증명한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이란 전쟁 역시 그러하다. 겉으로는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국가와 중동의 지역 강국이 맞서는 구도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과잉의 전략’과 ‘절제의 병법’이 충돌하는 장면에 가깝다. 손자는 “병자는 국지대사(兵者, 國之大事)”라 했다. 전쟁은 국가의 중대한 일이며, 생사와 존망이 달린 문제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전쟁은 감정이 아니라 계산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의 국제정치에서는 이 계산이 점점 흐려지고 있다. 강한 언어와 즉각적인 반응이 전략을 대신하는 순간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식의 ‘거래형 전술’은 압박과 후퇴를 반복하며 단기적 성과를 노리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 방식이 장기전, 특히 ‘버티기’를 핵심으로 하는 상대에게는 쉽게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란의 전략은 정반대에 서 있다. 과잉이 아니라 절제, 속도가 아니라 시간, 충돌이 아니라 소모를 택한다. 노자의 도덕경은 말한다. “지족자부(知足者富).” 만족할 줄 아는 자가 부유하다는 뜻이다. 이란의 전략은 바로 이 ‘지족’의 원리에 가깝다. 상대가 더 크게 움직일수록, 더 강하게 압박할수록, 자신은 그만큼 물러서며 시간을 확보한다. 겉으로는 후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장의 조건을 바꾸는 행위다. 손자는 또 말한다. “이일대로(以逸待勞).” 편안한 상태로 피로한 적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이란은 바로 이 병법을 충실히 실행하고 있다. 직접적인 전면전을 피하면서 긴장을 유지하고, 상대가 스스로 지치도록 만든다. 반면 미국은 빠른 결단과 압박을 통해 상황을 단기에 정리하려 한다. 이 두 전략이 충돌할 때, 전쟁은 길어지고 불확실성은 커진다. 최근 전개된 일련의 국면을 보면, 강한 발언과 일정의 변화, 그리고 그 사이의 시간차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혼선이 아니라 전략의 충돌이 만들어낸 결과다. 거래의 기술은 상대가 빠르게 반응할 때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이란은 반응을 늦추고, 때로는 응답 자체를 회피하며, 외부의 압박을 내부 결속으로 전환한다. 결국 협상의 속도가 맞지 않는 순간, 거래는 힘을 잃는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허세’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허세는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그것은 기대를 형성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스스로를 구속하는 약속이 된다. 강한 발언은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낼 수 있지만, 그것이 반복되고 수정될 때 신뢰는 빠르게 소모된다. 국제정치에서 신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한번 흔들린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노자는 또 말한다. “대국자하류(大國者下流).” 큰 나라는 낮은 곳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한 겸손의 미덕이 아니라, 힘을 유지하는 방식에 대한 통찰이다. 낮은 곳에 있을 때 모든 물이 모이듯, 절제된 태도는 오히려 더 큰 영향력을 만든다. 반대로 과잉의 표현과 과도한 압박은 단기적 효과를 낼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반발을 키우고 구조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이번 이란 전쟁은 바로 이 두 가지 원리가 충돌하는 현장이다. 한쪽은 힘을 앞세워 속도를 높이고, 다른 한쪽은 시간을 무기로 삼아 버틴다. 한쪽은 거래를 통해 결론을 내리려 하고, 다른 한쪽은 결론 자체를 지연시킨다. 이 구조에서 승패는 단순한 군사력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누가 더 오래, 더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된다. 한국의 입장에서 이 전쟁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느 전략에 더 가까운가. 빠른 결단과 압박을 중시하는가, 아니면 절제와 균형을 통해 시간을 관리하는가. 에너지 수입 구조, 안보 체계, 공급망 전략 모두가 이 선택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중동의 불안은 곧 에너지 가격의 변동으로 이어지고, 이는 우리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이 구조 속에 놓인 참여자다. 손자는 “승병선승이후구전(勝兵先勝而後求戰)”이라 했다. 이기는 군대는 먼저 이길 조건을 만들어 놓고 싸운다는 뜻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조건 만들기’다. 특정 국가나 진영에 기대어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선택의 폭을 넓히는 전략이 필요하다. 결국 이번 전쟁이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분명하다. 과잉은 힘을 약화시키고, 절제는 힘을 지속시킨다. 빠름은 순간을 장악하지만, 느림은 구조를 바꾼다. 그리고 전쟁은 언제나 구조를 바꾸는 쪽이 이긴다. '지족부, 만족을 아는 자가 부유하다'는 이 한 문장은 단순한 도덕적 교훈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 전략의 원리이며,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의 기준이다. 지금의 이란 전쟁은 그 원리가 어떻게 현실에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사례다. 그리고 그 사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 전략 또한 달라질 것이다.
2026-04-06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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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前 한전 사장 별세… '원전 불모지'에서 '원자력 강국'을 일군 거인 잠들다
[경제일보] ‘한국형 원전(APR-1400)’의 설계 기반을 닦고 원자력 기술 자립을 이끈 이종훈 전 한국전력 사장이 3일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그의 삶은 1961년 한국전력의 전신인 조선전업에 입사한 이래 오직 ‘대한민국의 전력 자립’이라는 한 길만을 걸어온 엔지니어의 역사 그 자체였다. 이종훈이라는 이름은 이제 단순한 과거의 기록을 넘어 대한민국이 세계 6대 원전 강국으로 우뚝 서게 된 ‘기술 독립의 상징’으로 영원히 남게 됐다. 1920년대생으로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은 그는 ‘우리 손으로 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당시 최대 국영기업이었던 조선전업에 몸을 담았다. 화력발전소 설계를 주도하며 실무를 익힌 그는 1973년, 본사 전원부 전기과장으로 발령받으며 원자력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시작했다. 그의 첫 번째 도전은 ‘국내 1호 원자력발전소’ 고리 1호기 건설이었다. 1975년 부소장으로 부임했을 때, 현장은 원자로 기초 공사를 겨우 마친 허허벌판이었다. 그는 당시의 첨단 기술이었던 원전 건설의 모든 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지휘하며 1977년 6월 19일 마침내 대한민국 원자력 역사의 첫 장을 여는 ‘최초 임계’ 달성에 성공했다. 그의 업적은 단순히 원전을 짓는 데 그치지 않았다. 한전 부사장 시절이던 1985년, 그는 ‘원전 노형 표준화’라는 담대한 정책을 추진했다. 해외 기술에 의존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설계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도전이었다. 이 정책을 통해 그는 원자로 설계의 핵심인 ‘계통설계 기술’ 도입을 성사시켰고 이는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된 ‘한국형 원전(APR-1400)’의 뿌리가 되었다. 그가 한국전력기술 사장으로 재직하던 1990년, ‘APR-1400’ 개발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는 단순히 해외 모델을 복제하는 수준을 넘어 안전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확보한 독자적인 원자로 모델을 구축하려는 시도였다. 이 신형경수로 개발의 성공 경험은 2009년 UAE 원전 수출이라는 기적적인 성과로 이어지며 대한민국이 세계 원전 시장의 ‘기술 종속국’에서 ‘수출국’으로 도약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그는 단순히 원전 기술 개발에만 머물지 않았다. 한전 사장 시절에는 해외 화력발전 사업에 최초로 진출해 에너지 수출의 길을 열었고 한국 표준원전(KSNP)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업에 채택되어 북한에 수출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기초전력공학 공동연구소(현 기초전력연구원)를 설립해 미래 세대를 위한 기술 인력 양성에 힘썼으며 한국공학한림원 창립 이사장을 맡아 대한민국 엔지니어들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그의 삶은 원전이라는 한 분야를 넘어 대한민국의 산업 기술 생태계 전체를 설계하고 발전시킨 거대한 궤적이었다. 사위인 황일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는 “고인은 원자력 도입, 건설, 운영에 헌신했고 UAE 원전 수출의 기반을 닦았다”고 회고했다. ‘한국은 어떻게 원자력 강국이 되었나’라는 그의 저서는 이제 후배 엔지니어들에게 남겨진 유산이 되었다. 전 세계가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라는 두 가지 난제에 직면한 지금 원자력의 가치는 다시금 재조명받고 있다. 이종훈이라는 선구자가 뿌린 ‘기술 자립’의 씨앗은 이제 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 개발과 해외 원전 시장 개척이라는 새로운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하고 있다. 원전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원자력 강국으로 일으켜 세운 거인, 이종훈.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기술 독립의 정신’과 ‘에너지 자립의 꿈’은 한국의 미래를 밝히는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 발인 5일 오전 5시20분, 장지 경북 안동시 풍산읍 선영. 02·3010·2000
2026-04-03 18:5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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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U 넘어 NPU로"…금융위·과기정통부, 'K-엔비디아' 키운다
[경제일보] 정부가 'K-엔비디아' 육성을 목표로 인공지능(AI) 반도체 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정책 지원에 나선다. 금융위원회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손잡고 민관 협력 기반의 투자 전략을 본격화해 글로벌 AI 패권 경쟁 속에서 국산 AI 반도체 경쟁력 확보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17일 금융위원회와 과기정통부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산업은행 및 국내 AI 반도체 기업들과 함께 'K-엔비디아 육성 프로젝트' 간담회를 열고 국민성장펀드를 활용한 투자 전략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이 특정 기업 중심의 GPU(그래픽처리장치)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구조에서 벗어나, 저전력·고효율 기반의 NPU(신경망처리장치) 중심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적 사업이다. 과기정통부는 이미 지난해 'AI 반도체 산업 도약 전략'을 발표하고 국산 AI 반도체 설계·생산 지원을 핵심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특히 GPU의 높은 전력 소모와 비용 부담이 AI 서비스 확산의 한계로 지적되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추론 특화 NPU 기술 확보 경쟁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배경훈 과기정통부 장관은 "AI 기술 변곡점에서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강자로 도약할 수 있도록 국산 NPU 산업 육성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도 대규모 자금 지원을 통해 산업 성장 기반을 뒷받침한다. 금융위는 국민성장펀드를 활용해 향후 5년간 총 50조원 규모의 자금을 AI·반도체 분야에 공급하고, 올해에만 10조원을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AI 산업은 초기 인프라 구축뿐 아니라 지속적인 하드웨어 업그레이드와 시장 확산을 위한 장기 투자가 필수적인 분야"라며 "민간 자금과 연계한 장기 인내자본을 통해 AI 기업의 성장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투자 전략은 단순한 자금 공급을 넘어 산업 단계별 맞춤 지원에 초점을 맞춘다. 초기 인프라 구축, 운영, 유지·확장 단계까지 전 주기를 고려한 투자 구조를 설계해 민간 투자 유입을 유도하고 산업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이날 간담회에는 리벨리온, 퓨리오사AI, 딥엑스, 하이퍼엑셀, 모빌린트 등 국내 주요 AI 반도체 기업들이 참여해 차세대 NPU 개발 로드맵을 공유했다.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 재원이 적기에 확보될 경우 양산 시점을 앞당겨 글로벌 시장 진출 ‘골든타임’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책금융기관 역할도 확대된다. 한국산업은행은 AI 반도체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규정하고, 팹리스부터 파운드리, 패키징까지 밸류체인 전반에 대한 투자를 강화할 방침이다. 이는 단일 기업 지원을 넘어 산업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한 접근이다. 정부는 이번 'K-엔비디아'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국가 AI 컴퓨팅센터 구축, 피지컬 AI 생태계 조성, 산업 전반의 AI 전환(AX) 가속화 등 후속 메가 프로젝트도 지속적으로 발굴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책이 단기적인 산업 지원을 넘어 국가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한다. AI 반도체는 데이터센터, 자율주행, 로봇, 국방 등 다양한 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어, 기술 주도권 확보 여부가 향후 국가 경제 구조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정책과 금융의 유기적 결합을 통해 'AI 3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내세웠다. 배 장관은 "정책과 금융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릴 때 AI 산업의 거대한 엔진이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며 "민관이 원팀이 되어 글로벌 시장 선점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대규모 자금과 정책 지원이 결합된 이번 프로젝트가 국내 AI 반도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제2의 엔비디아'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26-03-17 16: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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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大 狂風'과 中國의 '硏究型 崛起'… 과학 國富를 잃은 나라에 미래는 없다
[경제일보] 천하의 형세는 흐르는 물과 같아, 잠시도 멈추지 않고 변한다. 노자(老子)는 『도덕경』에서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水善利萬物而不爭)"고 했으나, 오늘날 국가 간의 패권 다툼은 물길을 돌려 스스로의 옥토를 만들려는 치열한 생존 전쟁이다. 이 전쟁의 핵심 병기(兵器)는 다름 아닌 '과학기술'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을 보면, 인재라는 귀한 물줄기가 '국부(國富)의 창출'이라는 바다로 흐르지 못하고 '의대 입시'라는 거대한 웅덩이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최근 발표된 '네이처 인덱스'의 성적표는 가히 충격적이다.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3년째 세계 1위를 수성했다. 더 무서운 것은 질적 도약이다. 상위 10개 연구기관 중 9개를 중국이 싹쓸이하는 동안, 대한민국의 자존심이라는 서울대와 KAIST의 순위는 뒷걸음질 쳤다. 중국이 딥시크(DeepSeek)와 같은 초격차 AI 모델을 내놓고 인공지능, 로봇, 배터리 등 첨단 산업을 집어삼키는 저력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국가 전략산업의 엔진을 '대학'으로 설정하고, 젊은 인재들을 파격적으로 대우하며 '연구형 대학'이라는 신형 무기를 실전 배치한 결과다. 중국의 푸야오과학기술대나 대만구대학의 출범을 보라. 이들은 전통적 상아탑에 안주하지 않는다. 1학년부터 전공 벽을 허물고, 화웨이 같은 초일류 기업의 멘토를 붙여 산업 현장에서 즉각 통용되는 지식을 연마한다. 이공계 인재가 국가의 보배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반면 대한민국은 어떤가. 국가 전체가 '의대 블랙홀'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지방 의대 증원 소식에 상위권 이공계 학생들은 전공 서적 대신 다시 수능 교재를 펼쳐 든다. 매년 1만 명의 석·박사급 두뇌가 기회의 땅을 찾아 해외로 떠나는 마당에, 남은 인재들마저 환자의 환부만 들여다보겠다고 줄을 서는 나라에 무슨 내일이 있겠는가. 인류결정(Human Destiny)』에서 강조하듯, 인류의 진보는 정신적 갈망과 지적 탐구가 물리적 환경을 극복할 때 이루어진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인재들은 '지적 탐구'가 아닌 '안정적 수익'이라는 세속적 욕망에 매몰되어 있다. 물론 생명을 살리는 의업(醫業)은 숭고하다. 그러나 AI가 진단과 수술의 상당 부분을 대체할 미래 사회에서, 국가 인재의 90%가 의대에 목을 매는 것은 명백한 '자원 배분의 왜곡'이자 '국가적 자살 행위'다. 도덕경의 가르침대로 "족함을 모르는 것보다 큰 화는 없다(禍莫大於不知足)"고 했다. 특정 직역의 기득권과 그를 쫓는 맹목적 추종이 과학 입국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중국은 제조 강국을 넘어 '지식 강국'으로 대전환을 이루며 신질(新質) 생산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들은 기초과학이라는 뿌리를 깊게 내리고, 인재라는 양분을 전폭적으로 공급한다. 우리가 안이하게 "그래도 기술은 우리가 앞서겠지"라는 근거 없는 낙관론에 빠져 있을 때, 저들은 이미 우리의 뒤통수를 넘어 저만치 앞서 달려가고 있다. 과학기술이 무너진 나라는 결국 타국의 기술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의 엄중한 경고다. 정부에 묻는다. 연구개발(R&D) 예산을 깎았다가 다시 늘리는 갈지자 행보와 땜질식 처방으로 어떻게 천하의 인재를 붙잡겠는가. 성과에 따른 파격적인 보상 체계를 확립하고, 이공계 인재가 의사보다 더 높은 사회적 존경과 실질적 혜택을 누리는 '상식적인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대학은 산업의 엔진으로 거듭나야 하고, 교육 시스템은 입시 기술자가 아닌 '연구 전사'를 길러내는 구조로 완전히 탈바꿈해야 한다. "근본이 서야 도가 생긴다(本立而道生)"고 했다. 국가의 근본은 인재요, 인재의 길은 국익과 인류의 진보를 향해야 한다. '의대 광풍'이라는 집단 최면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머지않아 중국의 기술 패권 아래 신음하는 변방의 낙오자로 전락할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인재의 물길을 다시 과학의 바다로 돌려라. 그것만이 망국(亡國)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는 유일한 길이다.
2026-03-17 09:3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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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곧 방산주의 축복이라는 착각
[경제일보] 중동의 전운이 짙어질수록 금융시장은 냉혹해진다. 포성이 커질수록 누가 죽고 누가 다치는가보다, 어느 산업이 수혜를 입고 어느 종목이 더 오를 것인가를 먼저 계산하는 자금이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방산주는 언제나 유력한 수혜주로 호명된다. 실제로 최근 1년간 선진국 무기 제조사 주가는 크게 올랐고, 한국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같은 기업은 2024년 초 이후 기업가치가 10배 이상 뛰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했듯, 지금 방산은 벤처투자 시장에서도 인공지능 못지않게 뜨거운 분야가 됐다. 그러나 여기서 투자자들이 반드시 새겨야 할 사실이 있다. 전쟁이 난다고 해서 방산주가 무조건 오래 오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대사의 교훈은 그 반대에 가깝다. 갈등이 적당한 수준일 때는 군수 주문이 늘고 기업 실적이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이 국가 총력전의 단계로 깊어지면, 정부는 언제든 기업 이익을 공공 목적 아래 회수한다. 초과이윤세를 물리고, 계약 가격을 다시 깎고,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막고, 때로는 경영자 보수까지 제한한다. 이코노미스트가 말한 이른바 ‘골디락스 전쟁’이 아니면 방산주의 고평가는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실제로 역사는 단순하지 않았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동안 영국 정부는 고율의 초과이윤세로 군수업체 이익을 강하게 환수했다. 미국도 제2차 세계대전 본격 참전 뒤에는 이미 체결된 무기 계약 가격을 반복적으로 재협상하며 낮췄고, 이런 관행은 한국전쟁과 냉전기까지 이어졌다. 이코노미스트는 1938년부터 진주만 공습 전까지 미국 항공기 제조업체 주가는 양호했지만, 1941년 말부터 1945년 전쟁 종결까지는 미국 전체 주식 포트폴리오 수익률이 방산주보다 높았다는 연구를 함께 인용했다. 전쟁이 커질수록 국가가 기업의 초과 수익을 용인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오늘의 국제 정세도 이 오래된 패턴을 되살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1월 방산업체들이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내렸고, 방산기업 최고경영자 보수를 연 500만 달러 수준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뜻도 밝혔다. 법적 강제력의 범위와 별개로 메시지는 분명하다. 안보가 걸린 순간, 정부는 “시장 논리”보다 “국가 우선”을 앞세운다. 투자자들이 전쟁 수혜를 꿈꾸는 바로 그 순간, 정치권은 그 수혜를 다시 공공의 이름으로 회수할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방산 산업의 장기 수요 기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NATO는 2025년 회원국들이 '핵심 국방비 3.5%와 안보 관련 투자 1.5%를 합쳐 GDP의 5%'를 목표로 삼는 새 기준에 합의했다. 유럽이 미국 안보 우산의 불확실성에 대비해 재무장에 나서는 흐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역시 곧바로 전차와 미사일, 자주포 대량 발주로만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로이터통신 보도대로 이 목표에는 사이버 안보, 에너지 인프라 보호, 군용 도로·교량 정비 같은 광의의 안보 투자도 포함된다. 즉 국방비 숫자가 커져도 그 전체가 순수 방산업체의 매출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방산업체를 봐야 한다. 한국 기업들은 분명 지난 몇 년간 세계 시장에서 눈부신 성과를 냈다. 2022년 폴란드와 체결한 137억 달러 규모의 대형 계약은 한국 방산 수출사의 전환점이었고, 이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유럽 육상무기 매출을 2027년까지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의 현대로템은 폴란드에 K2 전차 180대를 추가 공급하는 약 65억 달러 규모 계약을 성사시켰고, LIG넥스원은 이라크와 약 3조7100억 원 규모의 중거리 지대공미사일 수출 계약을 따냈다. 한국산 무기의 강점인 빠른 납기, 가격 경쟁력, 기술 이전과 현지 생산의 유연성이 유럽과 중동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지금 한국 방산주의 문제는 '좋은 산업인가'가 아니라, '좋은 산업이 이미 너무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지는 않은가'에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서구 방산업체 주가가 예상 이익의 약 35배에 거래되고 있으며, 이는 인공지능 붐의 상징인 엔비디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라고 짚었다. 전쟁 뉴스가 이어질수록 투자자들은 방산을 영구 성장산업처럼 바라보지만, 방산의 주요 고객은 어디까지나 국가다. 고객이 국가라는 것은 호황기에도 매력적이지만, 위기기에는 가장 위험한 조건이 된다. 국가는 계약 상대이면서 동시에 규제자이고, 필요하면 이익을 제한하는 주권 권력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한국 투자자들 사이에서 특히 퍼져 있는 오해는 이것이다. '큰 전쟁이 나면 한화에어로 같은 종목은 더 크게 오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선적이지 않다. 전쟁이 제한적 충돌에 머물면 무기 수요 기대가 주가를 밀어올릴 수 있다. 반면 전쟁이 장기화하고 총력전화하면 각국 재정은 압박받고, 정부는 예산을 더 세밀하게 통제하며, 가격 협상은 기업보다 국가에 유리하게 바뀐다. 심지어 방산업체가 공급 지연이나 원가 상승으로 제때 납품하지 못하면, 높은 기대를 받던 기업일수록 더 큰 정치적 압박을 받게 된다. 최근 미국이 방산업체의 주주환원 정책에 직접 제동을 건 것도 이 위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고 한국 방산 산업의 미래를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한국은 2023년 기준 세계 10위권 방산 판매국이며, 정부는 세계 4대 방산 강국 도약을 목표로 제시해 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재무장, 중동의 미사일 방어 수요, 인도·태평양의 안보 불안은 한국 기업에 분명한 기회다. 다만 그 기회는 '전쟁의 확대'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공급 능력, 품질, 납기, 현지화, 외교적 신뢰'위에서만 실적으로 연결된다. 방산은 결국 산업이기 전에 국가 전략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은 늘 단순화를 좋아한다. 전쟁이 나면 유가가 오르고, 유가가 오르면 에너지주가 뛰고, 불안이 커지면 방산주가 오른다는 식이다. 그러나 역사는 말한다. 전쟁은 방산업체에 주문서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익의 천장을 씌우는 국가 권력도 함께 데려온다. 전쟁이 클수록 기업의 자유는 줄고, 안보가 앞설수록 주주의 몫은 작아진다. 이것이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냉전이 남긴 냉정한 교훈이다. 결국 방산주를 보는 올바른 시선은 열광이 아니라 절제다. 한국 방산업체들은 분명 세계 시장에서 실력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자는 ‘국가가 더 많은 무기를 원한다’는 사실만 볼 것이 아니라, ‘국가가 그 과정에서 기업 이익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까지 함께 봐야 한다. 전쟁은 매출을 키울 수 있어도, 언제나 주주의 잔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안보 앞에서 기업 이익은 언제든 후순위가 될 수 있다. 지금 방산주 투자자가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장은 바로 그것이다.
2026-03-09 17: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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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 2027년·UAM 2028년"…국토부, 모빌리티 로드맵 현실성은
[이코노믹데일리] 정부가 2027년 고도 자율주행차와 2028년 도심항공교통(UAM) 상용화를 목표로 한 중장기 모빌리티 로드맵을 공개했다. 자율주행과 UAM을 중심으로 한 정책 일정이 제시됐지만 사고 대응과 책임 구조, 엣지 케이스 검증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책의 현실성이 검증 대상에 올랐다. 국토교통부는 26일 발표한 '2030 모빌리티 혁신성장 로드맵'을 통해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로 이동의 편의를 높이고, 미래 친환경 모빌리티의 확산을 지원하기 위한 향후 5년간 모빌리티 정책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먼저 미국, 중국에 이은 글로벌 3대 자율주행 강국 도약을 목표로 2027년 레벨4(고도 자동화) 자율주행을 상용화한다. 레벨4는 운전석에 사람이 없이 실증구역 등 특정 구간에서 자율주행이 가능한 수준의 기술이다. 올해 국내 첫 도시 단위 자율주행 실증 공간으로 지정된 광주광역시에 200대가 넘는 자율주행차를 투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규모 실증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통해 학습한 실주행 데이터는 표준화해 통합·공유하는 자율주행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 AI 기반 자율주행 기술개발 체계 구축을 본격화한다. 동시에 범부처 협력을 통해 엔드투엔드(E2E·AI가 학습한 데이터에 기반해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 자율주행 AI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낸다. 자율주행 AI 파운데이션 모델 등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차량용 고성능 AI 가속기 반도체 등을 개발해 고도화된 E2E 기술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현재 국내 자율주행 제도는 여전히 실증 특례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다. 사고 발생 시 책임 주체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보험 적용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실증 사업별로 다르게 적용되고 있으며, 제조사·소프트웨어 개발사·원격 관제 사업자·서비스 운영 주체 간 책임 배분 구조도 전국 단위 상용 서비스를 전제로 한 법 체계는 정리되지 않았다. 특히 실제 도로 환경에서 발생하는 비정형 상황, 이른바 '엣지 케이스'에 대한 데이터 축적이 충분한 수준인지에 대해서는 검증이 진행 중이다. 현지 실증은 특정 지역과 조건에 한정돼 있어, 일반 도로 전반으로 확대될 경우 사고 대응과 제도적 보완이 어느 수준까지 가능한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한 단계다. 국토부는 자율주행 실증을 가로막는 규제를 '선허용 후규제'를 원칙으로 개선할 예정이다. 자율주행 안전을 책임지면서 원격 관제·대여·중개 등을 전문으로 하는 서비스 사업을 제도화하고 보험 제도를 정비하는 등 산업 생태계 육성도 추진한다. UAM은 2028년 공공 서비스 중심의 상용화를 우선 목표로 제시했다. 제주와 대구·경북 등을 시범 운용 구역으로 지정하고 응급의료·재난·치안·관광 등 공공 분야 서비스를 제공한다. 제주에서는 제주 성산항·제주공항·중문에 UAM 이착륙장인 버티포트를 둬 지역 간 이동을 겸한 관광 사업을 추진한다. 대구와 경북에서는 UAM을 산불 감시와 고속도로 사고 모니터링 등 공공 안전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2030년에는 민간 주도의 UAM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승객들이 UAM을 타고 도심과 공항 사이를 이동하거나, 빠른 배송이 필요한 화물을 UAM으로 나르는 서비스를 상용화해 '일상 속의 UAM' 시대를 연다는 구상이다. UAM과 함께 드론 활용도가 높은 소방·항공·농업·물류·시설관리 등 5대 분야의 드론 기체 및 모터 등 핵심 부품·기술 개발을 적극 지원하고 드론 공원 등 일반 국민이 드론을 띄울 수 있는 구역을 내년까지 대폭 늘린다. 그러나 UAM 관련 제도 역시 기체 인증, 운항 기준, 공역 관리, 소음 및 안전 기준 등 핵심 요소가 동시에 정비되고 있는 단계다. 기존 항공 안전 체계는 유인 항공기 중심으로 설계돼 저고도 도심 운항을 전제로 한 새로운 안전 기준과 사고 책임 구조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국토부는 내년 공공플랫폼을 구축하는 등 수요응답형 교통체계(DRT) 활성화 기반을 마련하고, 미래 모빌리티와 도시가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도록 제도 정비에 나설 계획이다. 홍지선 국토부 제2차관은 "AI 전환으로 모빌리티 혁신 속도가 빨라지는 상황에서 이번 로드맵이 정책적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세부 과제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2026-02-26 15:28:27